(KBS cool FM 굿모닝 팝스 vol.277 2014.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영어는 외국어다!
: 쉽고 정확한 표현의 중요성
글 김건태(〈영어원론 〉저자, 중앙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사람들이 영어를 잘하는 것은 출생의 우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도 이런 우연의 덕을 입거나 장기간의 조기 유학 등으로 영어를 모국어처럼 잘하는 사람들이 늘언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멋있어 보이는 영어 구사력에 주눅 들지 마라. 영어는 모국어(mother tougue)가 아니고 외국어(foreign language)라는 인식이 중요하다. 다소 어눌하더라도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명료하게 표현하는 능력(ability to articulate)이 유창한 영어 실력보다 더욱 돋보이고 효과적일 때가 많다. 특히 국제무대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러면 기본적인 문법 지식이나 어휘 구사력도 중요하지만 다양한 주제에 대한 지식이나 상식을 늘리는 일을 게을리 해서는 안된다. 머리가 텅 빈 사람한테서 멋있는 영어 표현이 나올 리가 없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학습자들에게 몇 가지 당부의 말을 다음에 적는다.
1. 콩글리시를 남발하지 마라.
우리나라에는 콩글리시(Konglish), 일본에서는 재플리시(Japlish) 프랑스에는 프랑글레이(Franglais)가 있다. 역사, 지리, 문화, 관습 등의 차이 때문에 나라마다 엉터리 영어가 생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잘못된 표현이 굳어지기 전에 바르게 고쳐 써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누군가에게 응원을 할 때 자주 쓰이는 "Fighting!"이라는 표현은 이제 콩글리시가 아니라 표준외래어로 자리 잡은 듯하다. 문제는 이런 콩글리시가 마치 교양있는 표준 영어인양 마구잡이로 사용되는 현실이다.
한 예로 알려지지 않은 뒷이야기란 뜻으로 '비하인드 스토리(behind story)'란 콩글리시를 심지어 아나운서들까지 사용하고 있다. behind는 전치사나 부사로 쓰이고 명사를 앞에서 수식하는 한정형용사로 쓰이는 법이 없다. 굳이 영어를 써야 한다면 'behind-the-scences story' 또는 'the story behind something'과 같이 표현해야 한다.
또 신체적인 접촉, 특히 남녀 간의 애정 행위를 지칭하는 말로 '스킨십(skinship)'이라는 엉터리 영어가 널리 쓰이고 있다. 'kinship(친척 관계, 강한 유대 관계)'이란 단어는 있어도 'skinship'이란 단어는 없다.
2. 영어식 표현을 정확히 사용하라.
영어와 우리말은 다른 언어이기 때문에 당연히 여러 가지 표현 방식이 상이하다. 그런데 이를 확인해 보지 않고 우리말 식으로 사용해 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현상이 만연하면 영어식 표현은 더욱 익숙해지지 않을 수 밖에 없다.
예를 들어 우리말은 '동서남북'의 순서가 정립되어 있지 않지만, 영어는 '북남동서'의 순서를 확실히 지키며 사용한다. 우리나라는 기상청에서는 '북동풍'이 분다고 하고, 역사학계에서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비판하고, 정부에서는 '동북아 물류센터'를 건립한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남동 발저소', 다른 한편에서는 '동남아시아'라고 한다. 그러나 영어로 표현할 때는 'North-South Talks(남북대화)', 'Southeast Asia(동남아시아)', 'Northeast Asia(동북아시아)' 등으로 해야한다.
특히 숫자가 들어간 표현 중 우리와 다른 것이 많은데, 이를 우리말처럼 표현해 버리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텔레비전 화면의 자막에도 'A.M 10', '2 P.M.', '300 B.C.'처럼 표기해야 한다. 영문은 소문자로 써도 되고 생략점(period)을 생략하기도 한다.
반면 'Lesson 5', 'page 20', 'Room 5', 'Floor 5' 같은 경우에는 숫자가 반드시 뒤에 나와야 한다. 따라서 건물의 '1층','2층',은 영어로 'Floor 1', 'Floor 2'처럼 표기해야 하고 , 이것을 약어로 쓴다면 'F1', 'F2'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건물에는 '1F', 'F2'라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거의 모든 건물에는 '1F','2F','3F' 같은 엉터리 표기가 난무하고 있다. 희한한 것은 '지하 1층', '지하 2층'은 'B1', 'B2'로 바르게 표기된 경우가 많다.
3. 영어에는 현재 지향적 표현이 많다.
영어는 우리말과 시제의 개념이 조금 다르다. 특히 현재 지향적 표현이 많은데, 이는 우리가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신경 써서 익히고 사용해야 한다.
예를들어 우리는'실종된 어린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여기엔 실종되었다는 과거 사실은 담겨 있지만 현재도 실종 상태인지는 정확히 담겨 있다. 영어에서는 이러한 개념을 확실히 표현하는 경향이 있어'a missing child'라고 한다. 즉 missin은 '실종된, 행방불명인'의 뜻을 가진 형용사지만, -ing형은 현재 상태를 암시하는 것이다.
'초빙 교수'는 'an invited professor'가 아니고 'a visiting professor', 노벨상 수상 작가'는 'a Nobel-winning writer', '우승팀'은 'the winning team'이라고 한다. 이 밖에도 'an inviting/a winning smile(매혹적인 미소)', 'a demanding wife(욕구하는 것이 많은 아내)', 'an exacting teacher(엄격한 선생)', 'an understanding woman(이해심이 많은 아내)' 따위의 표현에서 -ing형은 단순한 형용사이지만 현재 상태가 암시되어 있다.
4. 부정적인 표현은 지양하고 긍정적인 표현을 지향한다.
영어는 우리말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을 덜 사용한다. 우리는 '과속 금지', '추월 금지' 등 위압적이고 부정적인 표현을 자주 사용하지만, 영어는 'Share the road.(도로를 함께 나누어 쓰세요.)'처럼 우희적이고 긍적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한다. 'Adopt a highway.(고속도로를 입양하세요.)'란 표현도 있는데, 마치 애완동물을 입양하듯 도로의 일정 부분을 맡아서 잘 보살펴 달라는 우정 어린 설득의 표현이다. 우리나라 고속도로에서 '5분 먼저 가려다 20년 먼저 간다', '비 오는 날 추돌 사고 사망자 000명' 같은 표현을 본다면 매우 섬뜩하게 느낄 것이다.
이 밖에도 버스에 좌석이 없을 때 '만석'이란 표현은 영어로'SRO(Standing Room Only, 입석만 있음)'라고 하고 , '외부인 출입 금지'란 'Employees Only(관계자만)', '미성년자 출입금지'란 표현은 'Adults Only(성인들만)' 등으로 표기한다.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5. 사람 관계에서 나이는 중요치 않다.
"내 고등학교 3년 선배야." 또는 "대학교 2년 후배야."란 식으로 사람을 소개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엔 나이를 중시하는 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영어로 "He is three years my senior. (그는 3년 선배다.)" 또는 " He is two years my junior.(그는 2년 후배다.)"처럼 표현할 수는 있지만, 실제로 senior, junior는 남녀 관계에서 연상 연하를 따질 수때 주로 쓰인다. "He married a woman three years his senior.(세 살 연상인 여자와 결혼했다.)"처럼 말이다.
미국 청소년들 사이에서 "He is two years behind me in high school.(그는 고등학교 2년 후배다.)"처럼 behind, before를 써서 선후배를 구분하는 경우는 있지만 우리처럼 선배를 대우하고 후배를 아랫사람으로 여기는 문화는 없다. 자기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뻘 되는 사람을 'my friend."라고 소개하는 곳이 미국이다.
우리는 연장자 우대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미국인들은 우리만큼 나이에 관심이 없다. 그래서 형, 동생, 언니를 그냥 brother, sister로 인식할 뿐, 굳이 older brother, younger brother와 같은 나이를 근거로 사람을 구분하는 관습이 거의 없다. 장남, 차남, 장녀,막내 등도 the oldest son, the oldest daughter, the last son or daughter라는 표현 보다는 남녀 구별 없이 the first-born, the second-born, the last-born 식의 표현을 더 많이 쓴다.
6. 혈연관계에 대한 개념이 약하다.
영어권 국가들이 우리나라보다 혈연관계나 족보(family tree, genealgy)를 일일이 따지는 관습의 뿌리가 앝다. 이모, 고모, 숙모 등은 다 aunt, 삼촌, 고모부, 당숙 등은 다 uncle의 범주 속에 집어넣어버린다. 물론 외가 쪽 친척을 구분할 때, '어머니의'란 뜻이 형용사 maternal을 써서 maternal uncle(외삼촌), maternal uncle(이모), maternal grandfather(외할아버지) 식의 표현이 가능하고, 촌수를 따질 때도 removed를 사용해서 my cousin twice removed(6촌), my cousin three times removed(8촌), my cousin thirty times removes(사돈의 팔촌)식으로 표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표현을 듣거나 쓸 기회는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 son-in-law(사위), mother-in-law(,시어머니, 장모님), sister-in-law(시누이, 동서, 올케)등은 자주 쓰인다.
7. 언어를 배우는 것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지리를 배우는 것이다.
영어도 잘하고 미국도 잘 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미국에 있는 강과 산 이름을 물어보면 미시시피 강(the Mississippi)과 로키(the Rockies)을 아는 것이 고작이다. 네바다(Nevada) 주의 주도를 라스베이거스(Las Vegas)로, 캘리포니아(California) 주의 주도를 로스앤젤레스 (Los Angeles)로 착각하기도 한다. 몬태나(Montana) 주는 가축을 기르는 사람들만 사는 것으로 오해한다.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소위 일류대학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돌아온 인재들도 메리 포핀스(Mary poppins)가 누구인지, 프린스 유진(Prince Eugene)이나 패트릭 헨리(Patrick Henry)가 누인지 모른다. 미국 총등학생도 거의 아는 내용이지만,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모르는 것이다.
이처럼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결국은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 지리 등을 배우는 것이다.
역사와 지리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호에 계속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