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정체성
윤리적 소비로 인간다운 삶을!
ICOOP생협 10주년 기념 선언
1997년!
iCOOP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iCOOP)의 모태인 한국생협연대가 활동을 시작한 것은 한국의 경제 주권이 IMF에 넘어가기 2개월 전인 9월부터였다. 생협운동 내부에서는 지역의 많은 생협들이 경영 실패로 파산 위기에 몰려서 사업 연합을 통해 재건을 위한 노력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 가운데 소규모로 영세하게 연명하고 있던 생협들이 생존을 위해 연대활동을 시작한 것은 숙명과도 같았다. 이후 한국생협연대는 iCOOP생협으로 거듭나는 동안 혹독한 시련기를 통과하면서 어려움을 나누며 한 발 한 발 전진 해왔다.
그로부터 10년. 사회에서는 도산과 대량 실업으로 경제 주체들이 무너지고 가족이 급속도로 해체되었다. 고용,교육,문화,사회적 가치 등 생활의 기반이 이전과는 여러 모로 달라졌다. 경제적 불안, 특히 고용 불안은 우리 사회의 유대관계를 악화시키고, ‘적자생존(適者生拵)’ 과 ‘승자독식(勝者獨食)’ 이 당연한 사회원리인 것처럼 자리 잡게 했다. 지금 그 불안의 원인은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사회에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 부엌에서 바라 본 세상…
자연이란 ‘본디 있는 것’ 으로 스스로의 순환 속에서 생명이 태어나고 왕성하게 활동하며 마침내는 소멸하여 새로운 생명의 거름이 된다.
유기농업은 일한 먹이사슬과 에너지의 순환을 자연스럽게 이용한 것으로 인간의 소비도 이 안에서 조화를 이루어왔다.
그러나 이 순환 고리가 지난 60년 동안의 근대화, 산업화 과정에서 튀틀리고 끊어졌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의 자유화를 통해 자본주의의 속성인 과잉생간과 과잉축적을 끝없이 강요한다. 그것은 개별 국가를 넘어서 전지구적인 규모로 ‘물질과 생명이 만들어지고 사라지는 순환의 고리’ 를 끊어지게 한다. 또한 노동자의 서민이 낸 연금, 재테크 자금까지도 결국 투기 자본으로 흘러들어가 지역사회의 중소기업을 파산시키고 노동자와 서민들을 비정규직으로 내몰고 있다. 나아가 초국적 기업과 투기 자본가들은 영구적 식량 지배 체제를 만들기 위해 광우병 위험이 있는 소를 수출하고 학교 급식에 사용 할 것을 요구하며 유전자를 조작한 동식물을 식용으로 사용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상품을 이 지구상에서 누구나 사용할 수밖에 없도록 소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전지구적 자본주의의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스템은 제3세계의 자원을 수탈하고 그들의 생활 터전을 훼손하며 생태계를 파괴한다. 그 결과로 지구 온난화의 많은 종의 소명을 가져오고 있으며, 그 피해는 불행하게도 가해 세력이 아닌, 가난 제3세계의 민중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돌아가고 있다. 이와 같은 악순화(惡循環)을 선순환(善循環)으로 바꾸는 데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여 정치권력이 시민들의 품으로 돌아오고 이를 통해 시장 권력을 통제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시장권력은 오랫동안 그 힘을 축적해서 거대한 기득권을 만들어왔고,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게 IMF,WTO,FTA와 같은 카르텔을 형성해 지배체제를 구조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는 것이 곧 모든 경제성장과 축적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현재의 독점이고 불균형적인 성장과 축적을 대해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신자유주의 체제의 부정적 영향에 대해 대안을 준비하고 자본주의를 변화시키는 일은 실사구시의 입장에서 지속되어야 한다. 바람직한 변화의 종착점은 바로 비인간적인 생산 체제를 바꾸는 것이지만, 이는 매우 어려운 일이며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생산 체제의 변화가 어려운 데 비해 소비 체제를 바꾸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우며, 나아가 변화된 소비 체제는 대안 생산 체제를 만드는 토양이 된다. 바람직한 소비란 봄, 여름에는 도끼와 낫을 들고 산에 들어가 나무를 베지 않고, 촘촘함 그물로 하천에서 고기를 잡지 않듯이 인간의 삶이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것을 의미한다. 지속 가능한 사회는 인간과 자연을 착취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고 공존해야 하는 존재로 인식할 때 가능하다. 협동조합은 출발부터 ‘인간 존중’ 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했다. 근대적 협동조합의 모태인 소비자협 동조합운동은 자본의 독점으로 고용도 건강도 생활도 피폐해진 노동자들이 인간적인 삶을 살기위해 ‘독점을 타파하기 위한 운동’ 을 주도한 것으로 비롯되었다. 160여 년 전에는 자본가가 세운 가게밖에 없었기 때문에 모래가 섞인 밀가루인 것을 알면서도 구입할 수밖에 없었던 로치데일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출자하여 협동조합 점포를 세웠고, 그 점포는 자본가들의 독점과 지배 체제를 제치고 보다 안전한 식료품을 생산하고 조달하고 보급해 왔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소비자 협동조합은 영국에서 정직하고 안전하고 신뢰받는 소비재를 생산하고 보급함으로써 영국 내의 유통혁명을 일으켰다. 이같이 소비자협동조합운동은 세계 각지에서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질주하는 시장’ 을 변화시키고 있다.
생협이 걸어온 길은 아름다운 ‘윤리적 소비’ 였습니다.
소비자협동조합의 이러한 전통이 한국 사회에서는 어떻게 실현되어 왔을까? 나아가 바람직한 소비 체제를 만들기 위해서 iCOOP생협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
iCOOP생협은 10년 전에 소비를 바꾸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였다. 내 가족을 지키고 싶다는 소박한 바람에서 시작한 식품 안전 활동, 대안 물품 운동이 자연스럽게 농업 지킴으로 이어졌으며, 농업 지킴은 곧 환경 지킴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0년 동안 농업과 환경을 배려한 소비를 확대하기 위해 협동하는 가운데iCOOP생협의 조합원 , 생산자, 직원은 자신감과 역할을 더울 강하게 의식하게 되었다. 그것은 소비 행태를 적극적으로 바꿈으로써 우리 사회의 생산 체제를 마침내 지속 가능한 인간적인 생산 체제로 이끌어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소비 행태를 바꾸는 활동과 사업, iCOOP생협은 이를 ‘윤리적소비’ 라 부르고자 한다.
‘윤리적소비’ 란 인간적인 얼굴을 한 소비를 말한다. 윤리적 소비는 소비자협동조합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킨 개념이다. 즉, 조합언이 소비자로서 물품을 소비하되 ‘내가 지불한 대가가 그 물품을 생산한 노동자, 농민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정당하게 보상한 것인가? 를 우선 살피고 아울러 ‘그 물품의 생산과 유통의 과정이 물질과 에너지의 순환을 지속 가능하게 하는 것인가? 를 배려하는 것이다. 이러한 살핌과 배려는 한반도 안에서만 그치지 않는다. 자본에 의해 착취당해 온 제3세계의 민중, 어린이, 여성 등의 생산자와 그들이 생산한 물품에도 적용된다. 30여 년 전에 유럽의 시민사회단체 그리고 협동조합이 이러한 운동을 시작하였고, 지금은 많은 나라에서 인간다운 가치에 맞는 소비 방식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윤리적 소비가 하나의 대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보다 많은 대중들이 참여해야 한다. 많은 대중이 참여할 때, 생산도 윤리적 생산이 가능하게 되고 나아가 사회의 생산체제로 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윤리적 소비는 궁극적으로 ‘나’ 와 ‘이웃’과 그리고 ‘지구’ 의 공생을 위한 소비라고 할 수 있다. 즉, ‘인간다움 삶’ 의 질을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따라서 앞으로 이러한 윤리적 소비의 대상도 농산물, 공산품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교육,서비스 등으로 더욱 확대되어야 할 것이다.윤리적 소비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을 준비합니다.
-2008년을 맞이한 한국 사회…
국가 경쟁력은 높아졌다지만 우리 사회의 개인은 항상 불안감에 시달리고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해소하기 위해 인생의 귀중한 시간과 자신을 적자생존의 경쟁에 모두 투입하고 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 입시지옥에서 헤매는 아이들, 해체된 가족, 빈곤이 대물림되는 저소득층, 그리고 외롭고 쓸쓸한 노년과 같은 비인간적인 삶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인가? 아이들이 자기 인생을 즐겁게 걸계하고 행복한 노동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배움의 길은 어디에 있는가? 노년이 되어도 실버노동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유지하고 지역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일자리 창출은 어떻게 가능한가?
이제 iCOOP생협은 이 물음에 답을 찾고자 한다. 윤리적 소비를 바탕으로 인간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바람을 실현하고자 한다. 지난 10년 동안 새로운 존재에 대한 희망은 결코 헛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스스로에게서 거듭 확인했듯이 앞으로 조합원들과 함께 자본도, 노동도, 운영도 협력해서 구체적인 대안을 만들어 갈 것이다. 아울러 인간적인 교육을 위한 교육기관 설립과 건강과 고령자를 위한 노동과 삶을 담아내는 활동 또한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는 과제로 삼고자 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생산과 소비, 물질과 에너지의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는 일을 어렵고 그 과정이 결코 쉽지 않으며 고통스럽기도 한다. 그러나 로치데일의 선구자들이 소비자협동조랍을 만들어 소비 생활과 노동 환경을 인간답게 만들었고 몬드라곤의 노동다들이 건설한 노동자협동조합을 통해 버려진 지역 사회에 다시 사람들이 돌아오게 했듯이 우리는 협동의 힘과 생활의 위대함을 믿는다. 이제는 우리가 시나리오를 쓸 차례이다. iCOOP생협에 참여한느 우리들이 머리를 맞대면 먹는다는 것, 배운다는 것, 일한다는 것, 그리고 늙어 간다는 것이 버거운 지밍 아니라 즐거운 삶의 과정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믿는다. 이 작은 희망이 강이 되어 바다로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