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시가 충청남도로 부터 따로나와 동격의 광역자치단체로 분리되던 1989년 1월1일
대전직할시가 되면서,인근지역인 대덕군을 흡수하여 기존의 동구, 중구, 서구, 3개구
와 새로 편입된 대덕군을 유성구, 대덕구,2개구를 포함하여 모두 5개 기초 자치단체가
탄생하였다.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직할시장과 구청장 모두가 새로 임명되였다.
그중 나는 충청남도 서산군수에서 대전광역시 대덕구청장으로 발령받았다.
전국에서 가장 면적이 큰 서산군도 이번 개편으로 서산시, 태안군, 서산군,3개시군으로
분리되고, 직급이 하나위인 서산시장에 승진 함은 몰라도 그중 서산군수에 재임명
되어 남아 있기란 1/3로 작아진 자리에서 강등 당한 느낌이 짙어 대전광역시 관할에서
근무하기를 희망했다.
공직사회나, 일반사회에서 좌천된 인사라는 평까지 들으면서도 초대 구청장으로서
대덕구는 특성이 다양하고 도농 복합지역으로 해야할 일이 많고 복잡할것임에 전문성과
행정경험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오히려 대덕구를 희망 했었다,
.충남도청 건설국장으로 5년 넘게 국토개발과 건설행정 전반에 대해 경험을 쌓고, 보령군수
로서 사양화 되어가는 광산분규, 서해안의 어업분규, 수해피해의 원상복구에서 개량복구의
실천등 현장에서 해결하는 임장행정의 경험등 .
서산군수로서 서산A,B지구 인근지역농민과의 기득권과의 갈등, 해미 공군 비행장 설치반대
데모 등 갈등해소와 대안마련등 민원소화에 자신감을 가지게된 점은 주민대표로서의 지휘관,
국가를 대행하는 지휘관으로 양면의 자질을 높이는 계기가 되었다.
구청장으로 부임후 변화된 내부조직의 구성과 안정은 개편지침에 의거 빠른 속도로 끝냈고
매사에 공정, 투명, 화합,속에 소신을 가지고 추진해 갔다. 개청후 당장 처리해야할 타구에
없었던 몇가지 잊지못할 사례를 소개 하겠습니다.
대덕구청의 금고지기 변경
대덕구청 금고지기를 대덕군 시절의 농협으로 지정 할것인가,아니면 대전직할시 금고인 충청
은행으로 할것인가를 놓고 농협과 충청은행의 로비와 압력은 관련기관과 유력인사를 총동원
하고 있었다. 대덕군시절 농협을 금고로 이용 하였으나, 대전직할시와 금고 일관성을 존중
하자는 명분을 내세워 충청은행을 금고지기로 발표하고 윗분들의 고민을 구청장의 책임으로
덮어 썼다. 물론 함께 개청한 유성구청도 따라왔다. 농협의 단위 조합장들의 비난과 데모가
있었으나,한때에 불과했다.상부와 여러기관에서 과단성에 치하를 받었고, 공명과 명분에는
달리 다툼이 없었다.
대덕구청 주소지 새로히 탄생
대덕구청 주소지가 동구청 홍도동 구역이라 구청청사 구조를 변경, 증설할때 동구청장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불합리를 조속 시정하기 위해 동구 홍도동을 대덕구로 편입 시키거나,구청주위를
대덕구로 편입 시켜야 함은 또 하나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고, 더구나
선거구 조정으로 인한 정치적 협의가 쉽지 않으리라 판단되어 위 양안을 들고 내무부에올라가
동구 홍도동 통반 일부를 대덕구 오정동으로 편입시키고 대덕구청 새 주소지를 오정동500번지
로 탄생 시켰다. 그다음 정치적으로 두고 두고 매맞은 사항은 독자의 상상에 마낀다.
수해피해를 개량 복구
1989년 7월초에 지역성 집중호우가 있어 법동, 대화동 1,2공단에 하천의 유실과 공장이 침수
되는등 피해가 막심하여 지방비로서는 하천복구가 어려운 실정이여서 법동천이 국가하천
갑천의 지천으로서 피해가 극심하다는 피해조서와 복구계획을 만들어 건설부에 제출하여
5억원의 국비보조를 받아 공단일대 하천을 개량복구 했던일들은 보람으로 남는다.
기타
대화동의 주거환경개선사업의 시작과 함께 타구에서 사업의 준비가 안되고 어렵다는 사유로
반납한 물량을 보태어 사업시기를 단축함과 아울러 계속사업으로 수행할수 있었던 보람과
대전직할시로 편입은 되었으나 왠지 대덕구란 구청이름으로서는 대덕군 시절을 탈피하지
못했다는 여론도 있었으나, 대덕 이름의 전통과 대덕의 도농복합도시가 오히려 장차의
구색을 고루 가춘 도시특성으로 성장 헐것 이란점을 부단히 설득하면서 민삼안정과 주민화합
에 역점두면서 대더구 원년을 보냈다.
1989년은 나에게 너무나도 뜻있는 한해였다.초대구청장으로 임명받고 15만 대덕구민과 구청
공무원과 함께 대덕구 발전을 위해 동분서주 하던 대덕구 원년 당시성과를 결산하는 대덕구
원년의 보람을 추억으로 기록코저 정리한 기념패를 애써온 간부들에 논아준 적이 있어 그때를
회상하면서 올려봅니다. 그리 멀지않은 옛날이지만 무척 아름답고 소중하기만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