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많이 팔리고 읽히는 젊은?? 작가들의 책은 거의 읽은 적이 없는 듯 하다.
이름도 생소한 작가 정유정의 소설 <종의 기원>.
어떤 내용인지 짚히는 것 전무한 백지 상태에서..책띠와 표지에 있는 글로 미루어 짐작컨대..
가장 <가족적>이어야 할 가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일어날 수 있는 폭력과 갈등 상황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영화 <가족의 탄생>의 심드렁한 가족이야기의 소설 버젼이 아닐까 혼자 예상하기도 했다.
물론 그 예상은..책의 도입부에서 여지없이 께졌으니..
심드렁한 가족이야기에는 아들의 면도날에 날렵하게 베여 널부러진 엄마의 시신따위는 등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드렁한 가족들은 대체로.. 하나마나한 이야기를 나누며 관심 있는 척 하지만 관심이 없거나..애들 공부가 초미의 관심사거나..집안 경조사나 명절 정도의 <행사>가 있어야 뭉칠 이유가 생기기도 하는..그 정도의 문제같지도 않은 문제점을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면 <심드렁>은 얼마나 평범한 것이었단 말인가.
결말이 궁금해서 줄거리를 정신없이 따라가는 잘 만든 스릴러 영화를 보는 기분으로 이 책을 읽었다.
보통 사람의 정서라는게, 선악구도에서 늘 선한 편에 서게 되는것이 인지상정인데..
스스로 놀랍게도 나는 연쇄 살인을 저지르는 대학생 <유진>을 깊은 연민과 공감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억하지 못한다>는 소설 속 장치를 갖고 있긴 하지만..
밤길 생면부지의 여성을 죽이고..
엄마의 목을 면도칼로 날렵하게 베어낸 후 증거인멸을 위해 락스로 집안을 닦아내고.,
엄마의 시신을 발견한 이모를 태연하게 또 죽이고,.
가장 친한 친구를 죽음으로 몰아넣고,,
그 와중에 살아남기 위한 치밀한 계획으로 허벅지에 5만원권 두 장을 테이프로 붙여두는 냉정함까지 갖춘,
어느모로 보나 <악마의 화신>으로 보이는 대학생 <유진>을..
나는 책 읽는 내내 시종일관 연민과 걱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누굴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은 아마도 없을 테지만..
<차라리 아버지가 없었으면>이라고 생각했던 어릴적 기억은 아프게 남아있고..
치매걸린 할머니를 진심 미워했던 내 모습은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다.
<조근조근 야단치기>라는 특기를 지닌 유진엄마의 모습에서 내 모습을 보았으니..
어쩌면..차마 생각하는 것 조차 무섭고 끔찍하지만..유진의 모습에 내 아이의 모습을 투영한 지도 모른다.
내 속의 악함..그와 아울러 내 아이가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를 악함..
나의 인격적 미성숙함..그로 인해 혹시 내 자식이 내게 품고 있을 불만이 있는 것은 아닌가 라는 두려움.
우리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억눌린 <악의 본성>이 거리낌없이 최고치로 분출된 것이 유진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그래서 어쩌면 유진을 내 속의 악을 최대치로 끌어올린 나의 분신쯤으로 여긴 듯 하다.
영화 <추격자>나 <악마를 보았다> 혹은 <살인의 추억>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 등등..
무수한 스릴러 영화나 공포영화를 보면서 <악역>에 감정이입하여 악인에게 심리적 동조를 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종의 기원>에서는 유진의 시선으로 엄마와 이모와 친구를 바라 보며 분노하고 서운해하고 슬퍼하는 것일까..
왜..
가족 이야기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족 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가해지는<심리 스릴러 공포 서스펜스 > 상황극들은 얼마나 많을 거이며..
그래서 하루가 멀다하고 가족간 공포스런 상황들은 언론지상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정상과 비정상..일상과 일탈은 한끗 차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래서 유진의 비정상적이며 일탈적인 행위들이..어쩌면 한끗의 차이만 있었어도 벌어지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생긴다.
다름 아닌 엄마의 마음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