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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소설
개펄소년의 반란
지 당
무심코 출입문을 열고 들어선 나의 눈에 싱크대 앞에서 식칼을 들고 뒤돌아보는 엄마의 모습이 꼭 마귀할멈 같다. 시장에서 생선을 손질하고 있거나 지나가는 손님을 부르며 생선을 팔고 있어야 할 엄마다. 그런 엄마가 하필이면 이 시간에 집에 와 있을 게 뭐람.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나는 소매치기를 하다 들킨 것처럼 오금이 저리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엄마의 즉각 반응은 꾸지람 섞인 물음으로 날아왔다.
“진우야, 학원에 안가고 왜 집으로 오니?”
침착해야한다. 조금이라도 불안한 내색을 보여서는 안 된다. 그리고 이 위기상황을 모면하려면 그럴듯하게 둘러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눈치 빠른 엄마가 내 속마음을 훤히 꿰뚫어 볼 것이다. 그러나 마땅한 핑계거리가 얼른 떠오르지 않았다. ‘오늘은 엄마가 웬일로 이처럼 빨리 집에 들어온 것일까?’ 궁금증만 앞섰다.
“엄마! 오늘은 장사 안 해?”
엄마는 내가 묻는 말은 들은 척도 않고 재차 다그쳐 물었다.
“왜 학원에 안 가고 집으로 왔냐니까?”
엄마의 목소리엔 짜증이 섞여 있다. 어제 오락실에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늦게 오는 바람에 철대가 요구하는 돈을 미리 챙기지 못했다. 후회해 봐야 소용없다. 엄마의 물음에 수긍할 만 한 이유를 대야한다. 나는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심드렁한 목소리로 태연을 가장했다.
“응, 아침에 영어 문제집을 빠뜨려서 학원가는 길에 가지러 왔어.”
“그럼, 얼른 가지고 가. 그리고 너 오늘 학원 세 군데지? 한곳도 빼먹지 말고 잘 다녀 와. 알았지?”
내가 학원에서 늦게 오는 날이면 엄마는 가끔 생선국을 맛있게 끓여놓고 나를 기다려 주었다. 그런 날엔 엄마의 몸에서는 생선비린내가 나지 않았다. 우리 집 앞 미장원 아줌마처럼 얼굴도 환하고 화장품 냄새가 나기도 했다. 나는 화장한 엄마의 모습이 무척 좋았다. 사실 엄마가 생선가게에서 비린내를 묻히지 않고 예쁜 아줌마들이 들락거리는 미장원을 한다면 엄마는 미장원 아줌마보다도 훨씬 더 예쁘게 보일 것이다. 모처럼 얼굴에 화장을 하는 날이면 옅은 술기로 양 볼이 불그스레하게 달아오른 엄마는 늦게 들어오는 나를 끌어안고 볼에 입을 맞추곤 했다. 그럴 때면 까닭을 알 수 없는 엄마의 눈물이 내 목덜미로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엄마의 눈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다만 엄마의 미지근한 눈물이 싫지 않은 나도 왠지 모를 슬픔이 뭉클하게 가슴으로 밀려들어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할 수 있었다.
그나저나 큰 낭패다. 이불장 안에 숨겨둔 금고에서 돈을 훔쳐내야 하는데 엄마가 집에 있으니 그럴 수가 없다. 금고를 여는 순간, ‘따르릉!’ 신호음이 울려 싱크대에서 생선을 다듬고 계시는 엄마가 금방 알아차릴 것이다. 지금 이 상황에서는 금고 속에 들어있는 돈을 귀신도 꺼낼 수 없다. 할 수 없다. 이처럼 다급한 때에는 엄마의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는 공부를 앞세울 수밖에 다른 뾰쪽한 수가 없다.
“엄마, 오늘 문제집 새로 사야 해요.”
“문제집? 지난주에 사지 않았니?”
학원에서 공부하는 문제집은 아직 절반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옆 폐품창고 뒤에서 철대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 조금이라도 늦는 날엔 코피 터질 각오를 해야 한다. 계획이 어긋나버린 지금 엄마의 주머니가 금고나 마찬가지다. 그리고 엄마를 속일 수 있는 가장 손쉬운 과녁은 모성애다. 공부를 많이 하는 척 능청을 떨어대는 아들의 응석이 최선의 무기다.
“응, 지난번 산 것은 참고서야. 엄마는 사랑하는 아들이 문제집 많이 푸는 게 안 좋아?”
엄마는 내 속임수 한 방에 금방 백기를 들고 만다.
“그랬니? 지금 내 손에 비린내 묻었으니까 네가 꺼내. 얼마면 되니?”
휴! 살았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코맹맹이 소리로 아양을 떨어댔다.
“으응, 문제집 세 권 값 3만원이면 돼.”
나는 엄마의 앞치마를 들어 올리고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만 원짜리 세 장을 챙긴 뒤 지갑을 도로 넣었다.
“학원 늦겠다. 어서 가.”
“응. 그럼, 다녀올게.”
나는 부리나케 교회 쪽 언덕을 향해 달음박질 쳤다.
내가 이 학교로 전학을 온 것은 지난 3월 이였다. 엄마와 나는 아침 일찍 학교에 왔다. 교문에 들어서자 아파트처럼 크고 웅장한 건물에 먼저 주눅이 들고 말았다. 지금까지 내가 다니던 학교는 이 학교에 비하면 오두막이나 다름없었다. 쪽빛바다가 푸른 하늘과 맞닿은 갯마을 언덕에 웅크리고 앉아있는 동명초등학교는 학생 수도 한 학급에 겨우 7,8명이어서 전교생이 50명이 채 안 되는 작은 학교였다. 엄마와 나는 6학년교실 복도에서 창밖을 내다보며 선생님이 오시기를 기다렸다. 널따란 운동장으로 울긋불긋 밀려오는 아이들의 모습이 마치 바닷가 개펄의 꽃게 떼처럼 보였다. 엄마는 저 많은 도시의 낯선 아이들 속에 나를 내동댕이치듯 들여놓는 것이 무척 걱정스러운지 몇 번이나 일러준 말을 또 못 박았다.
“절대로 싸우지 마라. 참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그래야만 저 도시 아이들과 친구가 될 수 있어. 엄마 말 명심해라. 알아들었지?”
엄마는 갯마을 촌놈인 내가 못미더워 말할 때마다 도시아이들을 강조했다. 전학절차가 다 끝난 후에도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은지 복도 끝에서 계단을 내려가지 못하고 손을 저으며 서성거렸다. 선생님을 따라 교실에 들어오자 시골에서는 중학생이나 됨직한 덩치 큰 아이들이 호기심이 가득 찬 눈초리로 노려보고 있어서 내가 마치 중학교 교실에 끌려온 것처럼 저절로 다리가 후들거렸다.
“영광에서 전학 온 새 친구 공진우를 소개한다. 진우는 바닷가 마을에서 왔기 때문에 모든 것이 낯설고 새로울 것이다. 진우가 하루빨리 우리학교에 잘 적응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너희들 모두 친절히 도와주어야 한다. 자, 우리 모두 환영의 박수!”
나는 선생님의 소개에 어쭙잖게 인사만 하고 손가락으로 가리켜 준 빈자리로 가서 살그머니 앉았다. 순간, ‘아!’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려는 신음소리를 간신히 삼켰다. 엉거주춤 이상스런 나의 몸짓을 본 선생님은
“왜 그러니?”
하고 물었다. 그렇지만 나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자리에 앉으며 엉덩이에서 빼낸 두 개의 압정을 몰래 가만히 손에 쥐었다. 압정의 뾰쪽한 침은 나의 도시학교생활의 첫 시험대인 셈이었다. 이런 나의 태도를 옆자리에 앉아있는 덩치 큰 아이가 지긋이 노려보고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입가에 흘렸다.
1교시가 끝나고 선생님이 나가시자 아이들이 우르르 내 자리로 몰려왔다. 마치 동물원의 원숭이라도 구경하듯 히죽히죽 웃음기를 흘려대는 아이들의 눈총이 내 온몸을 훑어 내렸다. 개펄에서 그을린 까만 얼굴과 작은 체구에 걸친 볼품없는 차림새를 얕잡아 보고 깔아뭉개는 수십 개의 눈초리가 이제 막 갯마을에서 올라 와 낯선 자리에 달랑 혼자 앉아있는 촌놈의 몸뚱이를 꽁꽁 묶어버렸다. 심한 모멸감을 느낀 나는 더 깊이 고개를 처박을 수밖에 없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숨어버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 나의 웅크린 모습은 더욱 왜소하게 보였을 것이다. 무리들 중에서 덩치가 가장 큰 아이가 마치 유치원생이라도 얼려대듯 거만한 태도로
“얘! 꼬맹이, 고개 들어! 너 몇 살이야?”
하고 내 머리에 알밤을 깠다. 나의 작은 몸뚱이는 점점 더 쪼그라들었다. 순간, 내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던 아이가 갑자기 벼락 치듯 내쏘았다.
“야, 꺼져! 내말 안 들려?”
얼핏 훔쳐보니 아이의 치켜 뜬 눈매가 독사눈처럼 날카로웠다. 놀라운 일은 다음에 벌어졌다. 둘러섰던 아이들이 말 한마디 없이 슬금슬금 제자리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시골 학교의 교실모습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시골아이들은 선생님의 호령에도 이처럼 주눅이 들지는 않는다. 하물며 같은 반 친구의 호통 한마디에 꼼짝을 못하고 꽁무니를 빼다니 내가 마치 교실이 아닌 엉뚱한 곳에 와 있는 것처럼 신기했다.
종례를 마친 후, 현관 계단을 막 내려서는데 언제 따라왔는지 두 아이가 갑자기 내 양팔을 잡아채서는 체육관 뒤로 끌고 갔다. 그곳에는 쉬는 시간에 나에게 군밤을 먹였던 덩치 큰 녀석과 양쪽에 졸때기로 보이는 두 녀석이 버티고 서서 끌려오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왼쪽에 서있던 뱁새눈이 다짜고짜 내 등덜미를 잡아 꿇어 앉혔다.
“야, 빨리 신고 해!”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것인지 영문을 몰라 그저 우두커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전학 온 아이의 신고는 자신의 신상에 관한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의 궁금증을 채워줄 가장 중요한 관심사는 생활정도와 부모의 직업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과점에서 한방 쏘면 신고가 끝난다.
“이 새끼! 너, 귀머거리야?”
한 아이의 발길이 내 옆구리를 걷어찼다. 나는 얼떨결에 공격당한 오른쪽 옆구리를 틀어쥐고 이를 앙당그려 물었다. 그때, 등 뒤에서 강철대의 굵직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야, 그만두지 못해? 한주먹 감도 못되는 촌놈 불쌍하지도 않아?”
아이들의 일그러진 표정에는 불만스런 낌새가 뚜렷했다. 그러나 철대는 그런 분위기를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다짐을 주는 것 이였다.
“앞으로 진우 건드리는 놈은 누구든 가만두지 않겠다.”
나지막한 철대의 목소리에는 어른스런 무게가 실려 있었다. 실은 오전 내내 아무런 말이 없던 옆자리의 아이가 점심시간에
“너 영광에서 왔다며? 영광 어디야?”
하고 말을 붙여왔다.
“응, 영광 홍농…….”
“그래? 홍농 어디?”
“단덕리 단동.”
“단동이라고? 우리 외갓집은 단덕리 덕동이야. 잘 만났다. 나 강철대다. 앞으로 너 괴롭히는 얘 있으면 말해. 아니야, 말할 필요도 없어. 내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하고 내 손을 잡았었다. 이 학교에서는 철대의 주먹에 맞설 아이가 없었다. 나에게 군밤을 먹인 상호도 철대에게는 꼼짝 못했다. 전학 온 첫날부터 나는 이 학교에서 제일 힘이 쌘 주먹대장 강철대의 보호를 받으며 신고도 없이 촌놈의 때를 벗고 점점 도시 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사 온 뒤, 처음 한 달간은 모든 것이 낯설고 마음 놓고 어울릴 친구도 없어 학원에만 열심히 다녔다. 엄마는 나 하나 잘 키우기 위해 도시로 나와 이 고생을 한다며 촌놈이 도시 아이들을 따라가려면 두 배, 세 배 노력해야 한다고 전학 온 다음날 학원을 세 곳이나 등록했다. 그렇지만 채 두 달을 넘기지 못 하고 가끔 철대와 어울려 학원을 빼먹기도 했다. 그것은 철대가 바라서 하는 짓이 아니었다. 어쩌면 철대가 나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고마움에 대한 보답인 셈이었다.
“얘들아, 철대 생일 축하 해주자. 가지고 있는 용돈 다 꺼내.”
상호의 말에 아이들은 모두 호주머니를 털었다. 케이크와 군것질거리들을 몽땅 사들고 철대네 집으로 향했다. 생일파티라면 응당 철대네 집에서 준비하고 초대받은 친구들은 선물을 챙겨야 할 텐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가서야 나는 그 까닭을 알았다. 철대네 집에는 두 살 터울의 여동생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삼년 전에 교통사고로 엄마가 돌아가신 후, 아빠와 세 식구만 살고 있다고 한다. 철대와 제일 친한 재구는 엄마 잃은 남매에게 온갖 정성을 다 쏟던 아빠가 웬일인지 작년 봄부터 갑자기 변하여 뒷바라지가 시원찮아 아빠 얘기만 나오면 철대가 몹시 화를 내니까 조심하라고 귀띔을 해 주기도 했다.
파티가 끝나고 무심코 벽에 걸려있는 사진틀을 바라보던 나는 그만 눈이 똥그래지고 말았다. 저 사진은 분명히 엄마의 사진첩 속에 들어있는 사진이 아닌가. 나는 다급하게 철대를 불렀다.
“철대야, 이 사람 누구야?”
하고 엄마의 친구를 가리켰다.
“응, 우리 엄마. 함께 찍은 여학생은 제일 친한 친구였대.”
그제야 나는 철대 외갓집과 나의 외갓집이 이웃동네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렇잖아도 든든하고 고맙던 철대가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엄마친구의 아들인 철대는 내 가슴 속에 깊숙이 들어앉았다. 그날부터 나는 철대와 어울리는 시간도 더 많아졌다.
그날도 영어와 수학, 그리고 글짓기학원 세 군데나 가야하는 수요일 날이었다. 철대와 나는 영어학원이 끝난 뒤 수학과 글짓기학원을 빼먹고 오락실을 향해 걸어가는데 갑자기 철대가 내 팔을 붙잡았다. 철대의 눈은 큰길 건너편을 노려보고 있었다. 강철대의 눈길을 따라 간 곳에는 엄마가 어떤 아저씨와 마치 부부처럼 다정하게 걸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눈을 비비고 다시 보아도 여자는 분명히 우리 엄마였다. 엄마가 이 시간에 장사를 안 하고 무슨 일일까? 철대와 나는 숨어서 살그머니 뒤를 밟았다. 그런데 엄마와 아저씨의 발걸음이 우리 집 쪽을 향해가더니 결국 내가 염려한 대로 우리가 세 들어 사는 집으로 들어가는 것 이였다. 나는 그럴 리는 없지만 혹 엄마의 부정한 행위를 철대에게 들키기라도 할까봐 겁이 나서
“얘, 가자!”
하고 철대의 팔을 끌었다.
“쉿! 조용히 해.”
철대가 내 손을 뿌리치는 모습이 심상치가 않았다. 철대의 태도는 호기심만이 아니었다. 얼마나 세게 뿌리쳤는지 내 손등이 얼얼했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고양이 걸음으로 다가가 방안에서 나는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날 교회 뒤 창고모퉁이로 끌려간 나는 철대에게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친형처럼 다정하게 대해 주던 철대가 내 아픈 마음을 위로해 주기는커녕 왜 갑자기 그토록 사납게 돌변했는지 나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엄마가 외간남자와 만나는 것에 대하여 철대가 왜 나보다도 더 화를 내는지 짐작도 할 수 없었다. 엄마의 배신감에 대한 나의 분노보다 돌아가신 엄마의 가장 친한 친구였기 때문에 느끼는 철대의 분노가 더 큰 것이었을까? 나는 부끄러움이 앞서서 모질게 분풀이를 해대는 철대에게 한마디의 항변도 할 수 없었다. 한없이 두들겨 맞으면서도 아프기 보다는 오히려 후련했다. 엄마의 부정행위에 대한 분풀이를 철대가 나에게 대신 해준 셈이었다.
그날 이후부터 철대는 나를 더러운 벌레를 보 듯 철저히 외면해 버렸다. 나는 반 아이들에게 지금까지 철대에게 보호받은 것까지 합쳐 곱절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해야 했다.
“야! 이 새끼 호주머니에 든 것 모두 꺼내. 다 내꺼니까.”
하고 똘마니를 시켜서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모두 빼앗아갔다. 그리고 친구들과 어울리는 놀이에는 어김없이 나를 제외시켜버렸다. 내가 아이들 가까이 접근이라도 하면 ‘어디서 함부로 끼어들어? 넌 빠져!’ 하고 밀어내 버린다든가, 점심시간 줄서기에 내가 먼저 와 서 있으면 뒤에 온 아이가 ‘임마, 넌 맨 뒤로 가!’ 하고 내 옆구리를 팔꿈치로 찍는 식이였다. 나는 철저히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었다.
“오늘부터 우리 반 쓰레기통 비우기와 화장실청소는 공진우 차지다. 진우가 제 스스로 하겠다고 나선 일이니까 당번들은 안 해도 된다.”
철대의 선언이 곧 법이었다. 일주일마다 번호대로 돌아가는 당번들은 지겨운 화장실 청소에서 해방된 셈이다. 학교생활 중에서 한 시간 내내 운동장에서 뛰놀 수 있는 가장 즐거운 점심시간에 화장실은 나의 감옥이 되어버렸다. 철대는 점심시간에 내가 아예 화장실을 벗어날 수 없도록 티끌만큼의 흠만 있어도 다시 시켰다. 내가 날마다 파고 산 화장실이 흠잡을 데 없이 깨끗해지면 몰래 닦기 사나운 곳에 낙서를 해놓고는 트집을 잡기도 했다.
“이따위로 해놓고 다 했다고? 너 죽고 싶어?”
그날은 내가 청소하는 모습이 우연히 선생님의 눈에 띄었다.
“진우야, 이 맑고 좋은날 운동장에 나가 놀지 않고 왜 혼자 청소를 하니? 그만 하고 나가 놀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의 눈에는 전학 온 내가 덩치 큰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누구나 싫어하는 화장실청소를 혼자 하는 것이 무척 안쓰럽게 보였을 것이다.
그날 종례시간에
“오늘 점심시간에 진우 혼자 화장실 청소를 하는 모습을 보았다. 함께 어울릴 수 있도록 너희들이 이끌어주는 게 어때?”
하고 말씀하셨다. 철대의 오른팔 재구가 잽싸게
“내가 놀자고 해도 화장실 청소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던걸요?”
나는 얼떨결에 고집쟁이가 되고 말았다. 이런 상황을 예상하여 미리 짜놓은 대답이 분명했다. 하교 후 나는 창고 뒤로 끌려갔다. 벽돌 위에 무릎 꿇고 앉아서 두 손을 높이 들어 올린 벌은 견디기 힘들었다.
“이 새끼, 네가 일렀지?”
“아니야, 선생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우연히 본거야.”
“건방진 새끼, 어디서 말대꾸야!”
나는 철대패들에게 안 죽을 만큼 두들겨 맞았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이런 일들을 어른들은 선생님께 말씀드려서 얼마든지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그것은 우리들의 세계를 모르는 어림없는 생각이다. 나 혼자 고자질을 해봤자 다수의 아이들이 꾸며대는 말 속에 숨겨진 진실을 믿어주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되돌아오는 폭력이 두려워 숨길 수밖에 없다. 안타깝게도 학교에서 벌어지는 이런 실태를 어른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철대가 시키는 일 때문에 학원에 빠지는 시간도 많아졌다. 특히 오전 수업만 하는 수요일이면 철대는 어김없이 나에게 돈을 가져오라고 을러댔다.
“임마, 늬네 집에 있는 돈 다 내꺼니까 가져와!”
하고 겁을 주었다. 다른 일들은 모두 참을 수 있었지만 엄마가 나를 위해 생선비린내를 둘러쓰고 고생스럽게 번 돈을 몰래 훔쳐다 바쳐야만 하는 나는 죽고 싶은 만큼 괴로웠다. 철대에 대한 분노로 엄마의 배신에 대한 분노는 이미 누그러져 버렸다. 엄마의 비린내와 내 고통으로 마련한 돈을 마치 제 돈 이라도 된다는 듯 당당한 철대의 태도는 내 증오심에 불을 질렀다.
나는 언젠가는 철대에게 앙갚음을 하리라고 단단히 벼르고 있었다. 나는 비록 체구는 작지만 덩치만 큰 도시 아이들을 해볼 자신이 있었다. 어쩌다가 아이들과 부딪는 몸놀림만으로도 바닷가 개펄에서 다진 내 몸뚱이의 단단한 힘을 능히 가늠할 수 있었다. 봄 운동회 날 달리기에서도 나는 어렵잖게 1등을 했었다. 그리고 철봉이나 뜀틀, 매트 등 온 몸을 움직여야 하는 체육시간에 반 아이들의 시원찮은 꼬락서니를 보면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얼마든지 상대해 이길 자신이 있었다. 그렇지만 나는 내 힘을 숨기고 바보처럼 아이들이 시키는 온갖 지저분한 일을 말없이 해냈다.
따돌림을 당해 친구들과 어울릴 수 없는 나는 아이들이 노는 시간에 공부만 파고들었다. ‘두고 봐. 먼저 실력으로 너희들을 이기고 말테니까.’ 마음속으로 벼르고 있었다. 철대에게 괴롭힘을 당하면 당할수록 내 오기는 더욱 깊어져갔다. 학원에서도 한눈을 팔지 않고 더 열심히 실력을 다져나갔다. 밤이면 엄마가 온 뒤로도 자정이 넘도록 두 눈을 부릅뜨고 문제집을 풀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엄마는 내가 공부를 마치고 잠들 때까지 뒷바라지를 해주며 무척 행복해 하는 눈치였다.
사실 학생 수가 적은 동명초등학교에서는 선생님이 도시의 가정교사나 다름없이 개별지도를 해 주셔서 내 학력은 교과서의 수준을 훨씬 뛰어 넘었었다. 도시로 전학을 온 뒤 학원을 세 군데나 다니고 있지만 오히려 시골에서 공부할 때보다 뒷걸음질 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실력으로 이기기 위해서는 남이 노는 시간에 끈질기게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남을 이기기 전에 먼저 나를 이겨내야 한다. 나는 오락실에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기 위해 아이들의 괴롭힘을 가슴깊이 새겼다. 밤에 나 혼자 공부하다가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다음날 학원이 끝날 때 개별적으로 찾아가 선생님께 물어서 끝내 해결하고야 말았다. 학원 선생님은 그런 나를 귀찮아하지 않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셨다. 오히려 끈기 있게 파고드는 내 학습태도를 대견스러워 하시며 올림픽 천재수학 문제집을 풀어보라고 주시기도 했다.
내가 전학 온지 넉 달이 다 된 유월 말일 전교생이 학기말 일제 평가를 치렀다. 칠월 첫날 교실에 들어서니 아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눈초리가 심상찮았다. 여자들은 나를 손가락질 하며 자기들끼리 웅성웅성 귓속말로 무슨 얘긴가 소곤댔다. 나는 아이들이 그러든 말든 태연히 내 자리에 가 앉았다. 학교에서는 시험결과를 공식적으로 공개하지는 않지만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학부모와 아이들이 알게 되고 만다. 어제 본 학기말평가에서 내가 우리학교 6학년 전체에서 2등을 하였다는 소문이 벌써 등교한 아이들에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물론 우리학급에서는 당연히 내가 1등 이였다. 이 특종은 호외로 날개를 달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반 아이들이 우리 교실 복도로 몰려와 나를 보려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교실에 들어오신 선생님의 눈빛도 의혹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뚜렷했다.
2교시는 수학시간 이였다. 선생님께서는 교실에 들어 오시자마자 칠판에 무언가를 쓰셨다. 칠판에는 올림픽 천재수학 중에서도 가장 어려운 문제가 제시되어 있었다.
“이 문제 풀 자신이 있는 사람 손들어 봐.”
아무도 손을 드는 사람이 없었다. 나는 손을 들고 싶었지만 치밀어 오르는 욕구를 의식적으로 억제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한참 동안 아이들을 훑어보시던 선생님이 나를 향해 눈길을 주었다.
“공진우, 나와서 풀어봐.”
나는 선생님이 칠판에 어려운 수학문제를 쓰실 때부터 선생님의 의도를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선생님은 내 실력을 검증해 보시기위해 문제를 내신 것이었다. 내 진짜 실력을 보여줄 기회는 바로 이때다. 나는 당당하게 걸어 나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교실은 칠판의 분필 기어가는 소리만 아이들의 귓속을 후비고 들었다.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을 눈여겨보시던 선생님은 내가 분필을 놓자마자,
“진우야, 참 잘했다. 내가 20여 년 동안 교단에 있었지만 너처럼 조용히 자기실력을 쌓아나가는 아이는 처음이다. 한 학기 동안이나 너를 알아보지 못한 내 자신이 몹시 부끄럽구나.”
미안해하시면서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는 것이었다. 그러나 선생님 앞에서 증명된 내 실력을 반 아이들은 결코 믿으려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바보처럼 굴던 꼬맹이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아이들은 내가 반에서 1등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만약에 이 사실을 인정해 버린다면 자신들은 더 바보가 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의식적으로 나의 실력을 부정하고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마저도 지우려 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바보의 탈을 벗고 전교 2등이라는 명예를 쓰고 새롭게 태어난 나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박수를 보내는 아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그날 오후, 교문을 나서는 나에게 철대 패들이 다가왔다. 나는 늘 그렇듯 교회 언덕 위 창고 뒤로 끌려갔다.
“엉큼한 자식, 솔직히 고백해! 너 시험지 훔쳤지?”
“아니야, 선생님이 내주신 문제 푸는 것 못 봤어?”
“임마! 그건 운 좋게 학원에서 풀어본 문제였을 뿐이야. 이 새끼 실토할 때까지 쓴 맛 좀 보여 줘!”
철대의 명령에 성호의 주먹이 내 얼굴을 향해 날아왔다. 이런 장면을 예상하고 미리 대기하고 있던 나는 살짝 비켜 차돌처럼 단단한 이마로 들어오는 성호의 턱을 받아버렸다. 감히 대응하리라 생각지도 못한 나의 민첩한 반격에 성호는 뒤로 나가 떨어져 버둥거렸다. 주위에 빙 둘러섰던 아이들은 이 놀라운 광경에 어안이 벙벙하여 온 몸이 얼음장처럼 굳어져버렸다. 그러나 상대는 철대다. 철대를 쓰러뜨려야만 내 승리가 완성된다. 나는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야! 강철대 너 덤벼. 오늘은 내가 뭔가 보여 줄 테니까.”
아이들이 지금까지 바보 꼬맹이로만 여겨오던 나다. 체구가 철대의 반밖에 안 되는 내가 철대를 향해 내지르는 당찬 함성에 아이들은 더 놀라 눈이 둥그레졌다. 지금까지 철대에게 대든다는 것은 곧 그 아이의 파멸을 의미했다. 그만큼 철대는 우리학교에서 주먹대장으로 군림하여 그 자리를 누구도 넘볼 수 없었다. 그런데 조그만 꼬맹이 더구나 새까만 갯골 촌놈이 감히 철대에게 맞서다니 아이들의 눈에는 내가 제 무덤을 파는 것처럼 보였을 게 분명했다.
“얼러리여? 너 오늘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철대는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상호가 방심하여 엉겁결에 급소인 턱밑을 우연히 가격 당했을 뿐 철대의 눈에는 한주먹감도 못되는 피라미다. 쫄짜들 앞에서 감히 큰 소리 치며 대들다니 몹시 분하고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상대가 흥분하면 할수록 나에게는 유리한 싸움이다. 키가 큰 철대를 온전히 제압하기 위해서 주먹으로는 어림없다. 재빠른 발 공격 밖에는 통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날쌔게 몸을 움직여 철대의 등이 처마의 낙숫물에 패인 쪽으로 향하도록 유도했다. 철대는 내 움직임이나 공격 자세에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도저히 자신의 상대가 될 수 없다고 얕잡아보기 때문이다. 방심은 자장 효과적인 공격기회다. 내가 두 손을 땅에 짚고 물구나무 돌 때까지도 철대는 내가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그저 우두커니 서서 구경하는 꼴 이였다. 순간, 나는 굽혔던 팔과 두 다리를 동시에 뻗어 발부리로 철대의 가슴팍을 잽싸게 찍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민첩하고 엉뚱한 공격이었다. 엉겁결에 오목가슴을 들이받힌 철대는 뒤로 나가떨어지며 뒤통수를 창고 벽에 부딪혀 일어나지 못했다. 아이들이 지켜보는 내 유연한 공격 자세는 서커스단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몸놀림으로 도시 아이들은 처음 보는 구경거리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물구나무 공격은 질퍽거리는 개펄에서 낙지나 게를 잡을 때마다 수없이 연습해서 몸에 익은 자세다.
나는 상호나 철대에게 털끝하나 당하지 않고 아이들이 두려워하는 두 상대를 보기 좋게 때려눕힌 것이다. 갯마을 꼬마의 반란이 성공한 것이다. 한참 뒤에 일어난 철대가 무적 대장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게 고개를 푹 숙이고 언덕 아래로 힘없이 내려가는 모습을 바라보던 아이들도 슬금슬금 꽁무니를 빼고 사라져갔다. 그러나 나는 그런 철대의 비참한 모습이 결코 통쾌하지만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야호! 해방이다!”
여름방학을 맞은 아이들의 함성이 교문 밖으로 쏟아져 나갔다.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풀려난 아이들의 가슴은 수소 풍선처럼 푸른 하늘을 향해 부풀어 올랐다. 그러나 나는 모든 아이들이 갖는 그 즐거움을 가질 수 없었다. 그날 이후로 학교에서 철대의 그림자가 사라져버렸다.
철대가 없는 교실에서 아이들은 마치 굴레 벗은 망아지처럼 나대며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대장이 없으면 교실의 혼란이 더 가중될 뿐이다. 모든 아이들이 평등하여 자유롭게 생활할 수 있어 즐거울 것처럼 생각되지만 오히려 질서가 서지 않아 생활이 문란해지고 만다. 선생님이 자리를 비우실 때면 우리 교실은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철대 앞에서는 오금을 펴지 못하던 아이가 꺼떡대며 어깨에 힘을 주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새로운 대장이 나타나서 질서를 바로잡아주기를 바라는 아이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철대가 사라진 교실에서 눈꼴 시릴 정도로 비겁하게 접근해 오는 아이들이 내 주변을 서성거렸다. 공부뿐만 아니라 주먹으로도 철대를 이긴 내가 당연히 대장이라는 듯 체구와는 어울리지 않게 아양을 떨어대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의식적으로 피했다.
나는 대장이 싫었다. 아이들 세계에서 대장은 정당하고 옳은 일보다는 어른들에게 꾸지람들을 일에 앞장서야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리고 대장에게는 그만한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하기 싫은 일도 억지로 해야만 한다. 사실 나에 대한 부당한 행위만 아니었더라면 대장으로서의 철대는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었다. 그래서 선거에서 당당하게 당선된 반장과 임원들도 철대의 대장을 공공연히 인정하고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철대와 싸운 후 방학할 때까지 나는 대장노릇 피하기에 신경을 써야만 했다.
방학이 되자 엄마는 나와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두 시간이나 더 늘려 학원 등록을 하였다. 여름철이여서 생선장사가 안된다고 하면서도 내 학원비만은 아까운줄 모른다. 학기말 평가에서 내가 전교 2등을 하였다는 소식을 어디서 들었는지 그날 밤은 한잠도 못자고 뜬눈으로 지새웠다. 고기잡이 나간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엄마가 잠 못 자고 뒤척이던 때의 모습과 흡사했다. 그러나 그때는 고통과 슬픔한테 잠이 쫓겨났으나 이번에는 기쁨과 설렘이 잠을 쫓아버린 것이다. 나는 엄마가 원망스러우면서도 나의 장래에 자신의 모든 희망을 걸고 정성을 다하는 엄마가 가엽기도 했다.
그날은 영어선생님의 출근길 사고로 수업을 다음 주로 연기하여 한 시간 일찍 학원에서 나왔다. 오락실에나 들렸다 갈까 하다가 시장으로 향했다. 장사가 끝나면 함께 집에 오려고 엄마의 가게로 갔다. 가게는 이미 문이 잠겨있었다. 왜 오늘은 이리 빨리 문을 닫았을까? 시장 통 가게들이 모두 문이 활짝 열려 손님들을 맞이하고 있는데 우리 가게만 문이 꽉 닫혀있는 모습이 왠지 불안했다. 가슴이 마구 두근거렸다. 철대와 함께였던 석 달 전의 광경이 퍼뜩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어느새 나는 집을 향해 달음박질 치고 있었다. 집이 가까워지자 나는 모퉁이에서 한참동안 숨고르기를 했다. 그리고는 살금살금 창문 쪽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내가 상상했던 대로 방안에서 두런두런 얘기 소리가 들려왔다. 오늘은 이 아저씨의 정체를 밝히고야 말리라.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드디어 아저씨가 문을 열고 방에서 나왔다. 아저씨의 얼굴을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엄마 가게에 생선을 대주는 아저씨다. 엄마가 가게를 차린 지 얼마 되지 않아 처음 만난 아저씨는 나에게 이상할 정도로 호의를 베풀어 주었었다. 그리고는 처음 보는 나에게 주저 없이 큰 용돈을 쥐어주었다. 나는 갯마을에서 도시로 올라와 이것저것 사고 싶은 것이 많아 용돈이 필요한데다가 엄마가게에 생선을 대주는 아저씨이기 때문에 어쩌면 엄마와 거래에서 이익의 일부일 거라는 생각에 사양하지 않고 받아 넣었었다.
그러니까 엄마와 아저씨의 관계는 작년 봄부터였다. 엄마가 단동 갯마을 식당에서 일할 때 이 아저씨와 만나는 것을 얼핏 본적이 있었다. 어쩌면 엄마가 이 도시로 이사와 생선가게를 차린 것도 이 아저씨가 뒤를 봐주었다는 낌새를 어렴풋이나마 짐작은 하고 있었다. 나는 얼른 전봇대 뒤로 몸을 숨기고 아저씨의 뒤를 밟기 시작했다. 산동네 골목길은 꼬불꼬불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그런데 아저씨가 들어서는 길목은 어딘가 낯이 익었다. 이 골목은 들림 없이 생일파티 날 한 번 가본 적이 있는 철대네 집 앞 골목이다. 심장이 마구 뛰어 숨이 막혔다. 벨소리에 문을 열고 나오는 아이는 분명 철대의 동생 철순이었다.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오세요?”
눈앞이 캄캄해진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 골목에서 누구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숲속에서 맹수에게 쫓기듯 정신없이 달렸다. 어느새 내 온몸은 땀으로 멱 감았다. 교회 언덕으로 치달아 오른 나는 미루나무 아래서 가쁜 숨을 골랐다. 마주 보이는 창고 뒤에서 친형처럼 보살펴주던 철대가 원수로 돌변해 분풀이를 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것은 철대의 엄마 친구인 우리 엄마의 부정행위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던 것이다. 철대의 분노는 아내의 친구였던 우리 엄마와 정을 통한 아빠의 배신감에 대한 분노였다. 죽은 친구의 남편과 정을 통한 우리 엄마에 대한 분노의 화살이 나에게로 향한 것 이였다.
나의 달음박질은 버스터미널을 향하고 있었다. 나는 어느새 영광 홍농행 버스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무덤에 찾아가 목이 터지도록 소리치며 울고 싶었다. 동명초등학교 교문 앞에서 내린 나는 학교 뒷산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언덕 위의 느티나무에 저녁노을이 내려앉아 불그스레하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 돌팍에 혼자 쪼그리고 앉은 한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턱밑에 두 손을 괴고 우두커니 노을을 향한 모습이 몹시도 처량해 보였다. 아이는 분명 강철대였다.
“야, 강철대!……”
철대를 본 순간 나도 모르게 튀어나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린 강철대 역시 나를 알아보는 순간
“이 시간에 네가 어찌……”
말끝을 잇지 못하고 우두커니 바라보기만 했다. 빨갛게 물든 노을 속에서 둘이는 그렇게 한참 동안 물끄러미 마주보고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노을빛이 짙게 깔린 바다에서 비린내를 싣고 온 바람이 목덜미를 쓰다듬고 산으로 달아났다. 더 이상 말문을 잇지 못한 나는 철대 앞을 지나 밭둑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철대도 어슬렁어슬렁 내 뒤를 따라 왔다. 아버지의 묘 앞에 선 나는 목이 터져라 외치며 울고 싶었지만 내 마음과는 달리 목구멍에선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눈물만 한없이 흘러내렸다. 섬 그림자가 천천히 바다에 깔린 노을을 걷어내고 검은 이불을 펴 나갔다. 올라갔던 길을 터벅터벅 되돌아 내려와 정자나무에 다다르자,
“철대야, 어디 있냐? 어서 저녁밥 먹자.”
하고 철대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철대 외할머니 목소리였다. 철대는 아무 말 없이 내 팔을 잡아끌었다. 나는 왠지 철대의 손을 뿌리칠 수가 없었다. 그저 그냥 이끌려 철대의 외갓집으로 들어섰다.
진우와 싸운 칠월 첫날 철대가 외갓집 사립을 열고 들어서자 혼자 굴을 까고 계시던 외할머니는
“방학 낼라먼 당아 멀었을 턴디 늬 혼자 소식도 없이 워쩐 일이냐?”
하고 의아해 하셨다. 외갓집에 머무르는 동안 철대는 아빠와 진우 엄마와의 관계를 털어놓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 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외할머니께서는 천천히 말문을 열었다.
“철대야, 참 잘된 일이다. 늬 엄마 친구 순덕이가 늬덜 새엄마가 된다면 얼마나 좋겄냐? 순덕이도 젊은 것이 홀엄씨로 혼자 살기는 아까운 나이고 강서방도 어차피 그 나이에 혼자는 못살팅께 생판 모르는 여자가 늬 새엄마 되는 것보다는 천만 다행이 아니겄냐? 늬 엄마 친구여서 내가 순덕이 맴을 쪼께 안다마는 아마 순덕이가 느그 남매를 지 친자식맹이로 돌봐줄 것이다. 이 할미는 아조 이참에 순덕이를 늬 새엄마 맹글어뿐지는 것이 백번 좋을 것이라고 생각되니께 너도 잘 되짚어 생각해봐라.”
하고 기뻐하시는 것이었다. 외할머니의 말씀을 들은 철대는 그 말씀을 몇 번이나 되씹곤 하였었다.
진우와 함께 들어서는 철대를 본 할머니가 물으셨다.
“얘는 누구냐?”
“제가 지난번에 말씀드린 진우에요.”
“얘가 순덕이 아덜 그 진우?”
“예.”
“오메! 그래야? 반갑다. 어서 올라오니라. 너도 항꾸네 밥 먹자.”
둘이 밥을 먹는 모습을 한참 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시던 할머니는 비워가는 밥그릇에 밥을 더 퍼 담아 주걱으로 꾹꾹 눌러주며 이르신다.
“철대야, 진우야, 이참에 느그덜 아조 형제간 되야뿌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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