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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생각> 마을교육공동체, 그 본질과 장곡동의 사례
가장 작은 상업신문 - 장곡타임즈 2016.03.06.
마을은 없다
마을교육공동체에 대한 얘기가 나오면 듣는 소리가 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문구를 벌써 백 번은 들은 것 같다. 너 나 없이 하는 이 말을 들을 때 마다 공허하다. 온 마을이 필요한 줄은 아는데 지금 대한민국에 마을이 거의 없다. 적어도 시흥시에는 어디에도 없다.
‘동네’라고 하지 않고 ‘마을’이라고 표현할 때는 의도가 있다. 단순히 작은 단위의 주거지를 표현하려면 동네가 적합하고 공동체(community)의 의미를 드러내고 싶을 때는 마을이라고 표현할 것이다. 그런 의미의 마을이라고 부를 만한 곳이 적어도 우리 주변에는 없다. 대체로 공동체라고 하면 ‘따뜻한 이웃’ 같은 단어를 떠 올릴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현상이고 본질은 의사결정방식이나 주민의 참여가 이루어지는 시스템 같은 방식일 것이다. 한 아이를 키우는데 온 마을이 필요한 줄은 알겠는데 지금 마을이 없는 것이다.
마을공동체는 마을 민주주의
어디서나 마을을 만들자는 구호가 한창이다. 현재 ‘마을만들기’ 사업에 가장 적극적인 곳이 행정관청이다. 그러나 행정이 주도하는 마을만들기는 일반적 의미의 마을만들기가 아니다. 일본의 분권주의자 이케가미 교수도 입버릇처럼 말하거늘 마을만들기는 마을 민주주의 세우기다. 그런 점에서 현재 관청이 주도하는 벽화그리기나 꽃길조성 같은 마을만들기는 환경 개선 사업에 해당하고 마을학교를 지정해서 강좌를 개설하는 것은 주민 여가활동 지원에 가깝다. 마을 만들기란 단적으로 말하면 마을 사람들이 제 각각 주인으로 살아가자는 사업이다. 마을사업은 문자 그대로의 민주주의를 지향한다.
‘마을’보다는 ‘마을사람’이다
얼마 전 시흥시의 어느 복지관 관장을 만났다. 서울대에서 학생운동을 하고 졸업 후에는 노동운동을 하고 지금은 마을운동을 하는 사람이다. 이른바 문자 그대로 운동권 인생을 사는 사람이다. 처음에는 시의 정책을 통해서 가난의 문제라든가 주변의 문제들을 해결해 보려고 했으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고 했다. 문제가 해결되는 실마리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문제가 해결된다고 했다. 마을공동체가 강조되면서 전국의 마을들로 사람들이 몰려다닌다. 우수 마을을 찾아서 배우겠다고 다니는 사람들이다. 그런 견학이 지금 붐을 이룬다.
서울의 삼각산재미난마을을 갔다 왔고 충청남도 홍성군에도 가보았다. 가서 여러 사례들을 듣다보면 우리 마을에도 그런 사업을 해 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돌아와서 그렇게 해 본 적이 없다. 그 마을과 우리 마을은 사는 사람이 다르기 때문이다. 도시든 동네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닮아간다.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각이 동네의 모양을 만들어나간다. 뭔가를 하고 싶다면 그런 생각을 함께 하는 사람을 만들어야 한다.
한 사람이 귀하다
마을에 사람이 없다. 자치와 분권의 정신을 추구하면서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이해하고 말이나 글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고학력 한국사회의 그 똑똑한 사람들은 모두 서울이라는 한국의 중심만 바라보고 있다. 젊은 사람들은 광화문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여하고 나이 든 사람들은 중앙정치 평론에만 열을 올린다. 동네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는다. 동네일들에 관심을 가졌다 해도 금세 되돌아갔을 것이다. 지금 동네일의 속성은 자율과 협의 보다는 시정방침의 구현에 가깝다. 누군가 동네일에 합류한다는 의미가 의사 결집이나 참여 확대가 아니라 머릿수의 증가에 불과하다면 동네의 앞날도 무망하다.
그러나 주위의 일들을 논리적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생각을 글이나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상황을 고쳐 나갈수 있다. 이케가미 교수는 중앙과 지방은 대등하다고 했다. 중앙과 동네도 대등한 것이다. 그런데 전국적 문제에 대하여 자기 주장을 글로 쓸 수 있는 사람은 꽤 있는데 반해 시흥시나 장곡동의 문제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는 사람은 드물다. 시흥시를 대상으로 하는 신문사를 운영하면서 우리 시의 문제에 대하여 글을 쓸 수 있는 필진을 찾아 헤맨 적이 있다. 가뭄에 콩 나듯하다.
글과 말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고 마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논리적으로 분류할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없는 마을이 너무 많다. 그래서 오늘 한국의 마을들은 논리로부터 멀어지고 관청이 나서는 통에 자발성은 실종되고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고착된 상황이다.
한 교사가 한 마을을 키운다
학교와 마을의 협력에 대하여 말할 때 학교 측은 늘 마을의 인재를 발굴해서 강사로 쓰겠다는 말을 주로 한다. 좀 더 실생활에 가까운 교육을 하고 싶다는 의도로 이해한다. 그러나 실상을 보면 정작 지역의 정체성이나 인생의 신산함 또는 보람에 대하여 할 말이 있는 사람은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런 저런 자격증을 가진 강사들이 학교에 가서 수업을 한다.
학교가 마을에 원하는 것이 고작 강사 정도라면 마을이 학교에 원하는 것은 마을로 나올 수 있는 교사다. 어느 마을이나 비슷하겠지만 그 마을 전체에서 지식이나 시민의식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학교 교사다.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인 교사들이 학교 담장 안에 갇혀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의 큰 손실이다. 교사가 마을의 선생이기도 했던 시절로 돌아가야 한다. 마을에 말과 글을 다룰 줄 아는 한 사람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크다. 프랑스 공산당과 사회당의 주축이 교사들이라고 했다. 교사들은 사회 변화의 주요 축인 것이다. 교사들의 정당활동을 법으로 막아 놓은 한국의 현실에서 교사들이 지역 현안에 대하여 목소리를 내는 것은 현행 악법에 대한 휼륭한 되치기라고 믿는다.
지역 단위 교사 모임 활성화
지역에서 돌아가는 일들들 보면 상식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많다. 많이 배웠다는 멀쩡한 사람들도 정치인이라는 이름만 달면 주장이 아닌 어거지를 부린다. 상식을 가진 사람이 보면 혀를 차게 된다. 그리고 지역 문제에 대한 관심을 거두어 버린다. 그러면 지역은 더욱 우스꽝스럽게 돌아간다.
예를 들어 시흥시 신 개발지에 서울대의 꼬리라도 모셔오려고 십년 가까이 온갖 짓을 다하고 있다. 성적 높은 학생이 진학할 만한 학교가 없다는 등의 학부모들의 불만에 편승한 ‘일류 팔이’ 정치 게임이다. 정작 지역에 있는 대학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서울대에 주겠다는 지원액이면 지역 대학도 반값 등록금 학교로 만들고 남는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교육적으로 어떤 의미와 효과가 있는지 교사단체의 입장 발표 같은 것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입장도 중요하지만 시흥시가 벌이는 문화수도 사업에 대해서도 입장이 나오면 좋겠다는 주장이다. 교사들은 이처럼 머리와 입으로 참여하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의외로 교사들이 학교 밖에서 벌어지는 문제에 대하여 잘 알지 못하는 경우를 자주 본다.
늘 하는 말이지만, 이 나라가 바뀌지 않는 이유는 나라를 바꾸려는 사람들만 있기 때문이다. 동네가 바뀌면 나라가 바뀌는데 죄다 서울만 쳐다본다. 모두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손잡이가 주어져 있는데 손은 움직이지 않고 죄다 서울만 쳐다보면서 푸념하고 좌절하고 선동할 뿐이다.
흔히 세상을 바꾸는 손잡이를 투표권으로 이해한다. 투표에 빠지지 않으면 세상이 꽤나 돌아갈 것처럼 말한다. 단언컨대 투표를 통해서 나라가 바뀌지 않는다. 우리는 분권주의자다. 작은 것을 존중해야 한다는 스몰리스트(smallist)다. 정치 경제 문화 등 제 분야에서 한 군데에 몰려있는 권력을 나누자는 입장이다. 그러나 선거에 나온 모든 후보들은 그 반대편에 서 있다. 그리고 1등과 2등만 유의미한 그런 경쟁 방식으로, 3위 이하를 지지하는 유권자를 투표장 밖으로 내 모는 한국의 선거제도다.
오늘 세상을 바꾸는 각자의 손잡이는 투표 보다는 마을사업에 참여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뽑아서 세상을 바꾸기보다 내 주변을 내가 원하는 세상으로 만들면 된다. 장곡동의 마을사업을 통틀어 ‘장곡동천’이라고 이름 지어 보았다. 동천(洞天)이란 이상향을 뜻한다. 어떤 의미에서 ‘신하방(新下放)’운동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 교사가 선다면 이 나라는 2, 3년 안에도 크게 바뀔 것이라고 믿는다. 동네 새마을부녀회에 교사가 소속되고 조기축구회에 교사가 나오고 동네 카페에서 이어폰 끼고 노트북을 두드리는 교사를 보는 것이 그리 어려울까. 이보다 앞서 시흥시평교사협의회 같은 조직이 있어서 토론도 조직하고 지역 현안에 대한 입장도 발표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시흥시에 사는 교사의 비율이 적다.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이 자녀 교육 때문에 시흥시에 이사오기 어렵다고 한다. 교육 여건이 나쁘다는 것이다.
동네 현안을 교실로
시 단위의 지역 문제뿐 아니라 동네 문제들이 교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장곡동의 예를 들면 동네 한 가운데 길이 늘 차와 사람으로 뒤엉킨다. 여기에 대한 대책을 학생들이 연구해서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장의 문제점들을 기록하면서 조사하고 현장 주변의 사람들을 인터뷰 하면서 개선 방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보행자 도로에 물건을 지나치게 내 놓은 상점들이나 거리의 공공주차장에 차를 대지 못하게 통 같은 것을 갖다 놓는 사람들 역시 규제나 고발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배우는 학생들이 이 문제에 주목하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그들에게도 자식이 있기 때문이다.
장곡동은 동네를 사이에 두고 골프장이 두 개나 들어섰다. 동네에 좋은 점도 있을 것이고 나쁜 점도 많은 것이다. 나쁜 점들은 없애거나 줄여야 하고 좋은 점은 더 크게 만들어야 한다. 교실의 연구 주제로 가능한 일들이다. 학생들 역시 교사들처럼 관심사가 학교 내에 국한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다. 장곡동의 경우 마을총회(town meeting)가 열리면 교사들 뿐 아니라 학생들도 참여하면 좋은 교육 기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마을신문
마을교육공동체의 첫 사업으로 마을신문을 제안한다. 지금까지 마을신문은 마을에서 제작하면서 학교 소식이나 학생들의 글을 싣는 형태였다. 그러나 발상을 바꾸어서 학교신문이 마을의 문제를 기사로 싣고 마을사람들을 소개하면서 마을신문 역할을 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학교에서 마을신문을 만들면 우선 비용문제가 해결된다. 신문 제작비용은 크게 인건비와 인쇄비인데 현재 마을신문은 인건비를 생각도 못하고 있다. 자원봉사로 해결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오래 가지 못한다. 최소한 원고료를 지급해야 하고 한 두 사람이 상근할 수 있는 여건이 되어야 한다.
학생으로서 기자 활동을 하는 것은 대학입시에서 입학사정관의 구미를 당기게 할 것이다. 대학들이 수시모집 지원서에 적게 하는 것은 크게 독서, 봉사, 동아리에 대한 활동 내용이다.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서 읽어야 할 참고서적이 있고 신문에 직접 책 소개를 할 수도 있다. 책을 읽고 본인 내면의 변화를 넘어서서 글로 재생산하는 단계까지 가는 것이니 적극적 독서활동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고 마을공동체를 위하여 기사를 쓰고 편집을 하고 마을을 돌면서 배포까지 해야 하니 봉사활동의 상투적 영역을 넘어선다. 게다가 글 쓰기를 배우고 대중들의 요구를 살피고 사진 찍는 방법을 배우고 기사의 비중을 따지는 편집의 세계를 맛 볼 수 있으니 이만큼 자기계발이 선명한 동아리활동도 드물다고 할 것이다.
마을사업에서 마을매체를 강조하고 선행작업으로 내 세우는 이유는 이곳이 수도권이기 때문이다. 주민들이 바깥을 바라보고 살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일단 사람들의 시선을 내가 딛고 선 땅으로 옮겨와야 하기 때문에 마을매체가 중요하다.
그리고 특별한 산업이 없는 수도권의 베드타운에서 주민들이 지역에 관련해서 유일하게 에너지를 쏟는 부분이 자녀교육이다. 지역의 학교나 학생에 관한 뉴스는 마을신문으로서는 주요 뉴스일 수밖에 없다. 그러기에 학교에서 마을신문을 발행하는 방안이 유력한 것이다. 다만 아직 대부분의 학교 책임자들은 학교 내의 소식이 바깥으로 알려지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래서 교사들의 이해와 협력이 중요하다.
장곡중학교신문, 학교신문이 마을신문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사례를 보여준다. 1면에 마을소식을 배치했다.
길게 해야 성공한다
작년인가 방영된 드라마 ‘프로듀사’에서 깜짝 등장한 방송인 송해는 “길게 하다보면 장수프로그램이 된다”고 말한다. 전국노래자랑이라는 장수 프로그램 사회자로서 시청률을 고민하는 프로듀서에게 하는 말이다. 말장난 같은 그 말이 마을사업을 고민하는 우리에게 의미있게 들렸다. 오래하는 것이 성공의 유일한 비결이라는 말이었다.
장곡동에서 마을신문을 처음 낼 때 어느 아파트에서는 ‘먼저 보는 사람이 수거해서 버리기로’ 결의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아파트 출입구에 신문을 놓는데 먼저 발견한 사람이 다른 출입구까지 거두어서 버리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년이 지나고 신문을 마흔 번 만들었다. 이제 인쇄비 걱정은 안 해도 되고 장곡중에서 수업시간에 우리 신문을 교재로 썼다는 말도 들었다. 지난날을 돌아보면 마음이 아련해지면서 맥이 풀린다. 그래서 손 놓고 있는 사이 넉 달이 지나도록 신문이 나오지 않는다. 내가 만들지 않으면 만들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을 재생산 하지 못한 것이다.
마을신문과 중앙지의 차이
마을신문에 실리는 모든 내용은 특종이다, 어느 매체에도 실리지 않는 단독보도다. 누구네 집 딸이 대학생인데 시청 알바 모집 1, 2차 모두 떨어졌다는 기사나 신랑들 빼고 여자들끼리 어디에 여행을 갔다 왔다는 그런 내용들이다. 드물지만 우리 기사가 얼마 후에 sbs 뉴스에 나오기도 했다. 아이들이 딱지치고 논다는 그런 기사였다. 식당 주인이 옆 식당 수족관에 기름을 부은 사건은 우리가 기사로 올린 다음 날 모든 방송에 보도되기도 했다. 신문에 실린 전체 내용에 대하여 자체 생산한 컨텐츠의 비율을 따져보면 마을신문이 가장 높을 것이다. 시흥시를 대상으로 발행되는 주간지들은 자체 생산 기사의 비율이 20%도 되지 않는다. 시흥신문이라는 주간지를 맡아서 해 본 적이 있는데, ‘1면 톱과 사설만 쓰면 신문은 나온다’고 과장을 섞어서 말하기도 했다.
그런 점에서 마을신문은 중앙지 흉내를 내기보다 ‘지금까지 기사가 아니었던’ 것들을 기사로 실어야 한다. 사건이 크기보다 내 가까운데서 벌어졌기에 중요한 그런 일들을 실어서 독자들의 시선을 잡아야 한다. 기사 작성의 틀을 염두에 두지 말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그냥 손 가는 대로 적은 것이 기사라고 주위의 ‘초보기자’들을 부추겨야 한다. 그러나 중앙지에서 배워야 하는 것은 편집 기술이다. 사진 구도도 따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쉽고 바른 우리말을 쓰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마을학교
마을학교가 딱히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른다. 단지 마을사업들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는 정도로 생각한다. 도 교육청에서 지원받는 수업도 하고 주민강좌도 열면서 근무자 네 명이 뭔가를 열심히 하지만, ‘이런 일로 동네가 변할까?’ 회의가 들 때가 있다. 동네가 변하기를 바라는 사람에게는 변화의 방향에 대한 생각이 분명해야 한다. 나의 주장은 ‘사는 것이 재미있는’ 마을이다. ‘경제적으로 잘 사는 마을’과는 거리가 있다.
서울 강남의 아이들이 이곳 아이들에 비해 돈을 더 많이 쓸 수 있는 것에 더해 공부도 더 잘하고 인물도 더 좋고 예의까지 더 바르다고 누군가 말을 하면 당황스럽다. 도무지 이런 세상에서 뭘 해야 하는지 신자유주의만 들먹이며 탓하기에는 스스로가 무력해진다. 그러나 하나 남은 것이 있다. 우리가 더 재미있게 살면 된다. 우리에게 가능한 일이다. 사는 것이 재미있는 동네로 만드는 것,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만들기’이며 마을공동체사업이다.
작년에는 주로 프로그램을 했다. 강좌를 개설하고 축제를 기획 추진했다. 그러나 올해 역점을 둘 부분은 마을시스템이다. 마을의회, 주민총회, 공연기획단, 영농단 등의 조직 작업을 해야 한다. 지속가능한 마을을 위해서나 국가 변화를 위해서나 필요한 것은 조직이다.
책방과 영농단
충남 홍성에서 들은 말이다. ‘교육 프로그램을 하려 하지 말고 마을의 경제적 사업에다 교육을 연결시켜라’. 우리 생각에 확신을 더해 준 말이다. 장곡 마을학교가 서점을 열었다. ‘마을학교 취지에 동감하면 책을 사 주세요’만 갖고는 모자란다. 다른 업소보다 어떤 재미를 줄 수 있을지 연구한다. 페이스북에 책방일기를 올리는 것도 그런 취지다.
책방 다음으로 농사를 짓고 식당을 열어서 농업과 상업을 일으키고 교육과 연결하고 싶다. 도시 근교의 농지를 농업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규모나 경작 여건이 잘 맞지 않다.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도 어려울뿐더러 그들의 거주지가 아파트 중심으로 농업과 무관한 형태이다 보니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불리한 점이 많을 것이다. 따라서 아파트 중심의 주거지와 인접한 농지는 다수의 주민들이 경작에 참여하는 영농단 형태로 운영되면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장곡동은 논이 주거지와 가까이 있어, 영농단에 대한 시도를 하기에 좋은 조건이다.
마을의회
마을공동체에 대한 이론적 기반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분권과 자치에 대한 사례와 이론들일 것이다. 그리고 기본 이념은 앞서 말했듯 사람이 각자가 주인으로 사는 민주주의다. 그리고 우리는 크고 작은 의사결정을 위해 대의민주주의제를 시행하고 있다.
도시의 마을들은 대체로 인구가 만 명을 넘어선다. 이곳 장곡동도 인구가 2만명이다. 마을 단위라고 해도 직접민주주의를 시행하기에는 인구가 많다. 지난달에 일본의 마을을 둘러보았다. 인구가 6천 6백 명인 기초자치단체다. 기초의원이 12명이 활동하고 있다. 의원 한 명이 2백 가구를 대표한다. 시흥시는 15만 8천 가구에 의원수가 12명이니 의원 1명이 1만 3천 가구를 대변하는 셈이다. 한국에서는 정치의 낙후를 정치인의 자질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제도의 문제가 더 근본적인 것이다. 기초의원이 주민들의 기초적 문제를 세심하게 살필 처지가 아닌 것이다. 교사의 처지에 빗대서 말하면 한 학급 학생수가 수백명인데 교사에게 수업을 잘 못한다고 탓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마을 일에 전념하라고 월급 주면서 고용된 시의원이지만 담당 구역이 너무 넓다보니 그냥 손 놓고 있는 셈이다.
그렇지만 마을에도 결정해야 할 문제들이 있다. 마을사업을 벌이면 의사 결정이 필요한 일이 늘어난다. 그런데 현재 마을 일을 논의하고 의사를 결집할 수단은 없다. 그래서 법에도 없고 국내의 사례도 들어보지 못했지만 ‘마을의회’를 구상중이다. 외국의 community council과 town meeting 등의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
* 일본에는 1727개의 기초자치단체가 있다. 일본 인구가 1억 2천 7백만 명 정도이니 기초자치단체 평균 인구는 약 7만명이다. 같은 방식으로 계산해보면 우리나라 기초자치단체 평균인구는 22만명 정도다. 프랑스는 인구 6천6백만명에 기초자치단체가 3만7천개 있으니 한 기초단체 인구평균이 2천명이 되지 않는다.
마을축제
마을교육공동체가 강조되면서 ‘마을과 학교가 함께 하는 축제’ 사례가 들려온다. 그러나 학교와 마을이 함께 한다는 것이 어떤 양상인지에 대한 모델은 아직 보지 못했다. 무대 하나에 학교와 마을의 공연팀이 번갈아 선다고 ‘함께 하는 것’은 아니다.
장곡동에서는 올해 모든 학교가 축제를 함께 한다는 취지에서 날짜를 맞추었지만 어떻게 축제를 치룰 것인가는 과제로 남아있다. 다섯 학교가 한 군데에 모여서 하나의 무대에서 번갈아 공연하는 것이 ‘함께 하는 축제’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 유익하지도 교육적이지도 재미있지도 않을 가능성이 크다. 더 생각이 진화해야겠지만 지금으로서는 학교와 마을이 ‘함께 제안하고 기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주영경 장곡마을학교장(교사 연수 자료, 2016년 2월 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