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김상훈 기자
아동문학 애호가들 '동시·동화나무의 숲' 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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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경남 고성에 집을 마련했을 때부터 아동문학인들을 위한 공간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있었습니다. 2006년 고성 집 근처에 산이 매물로 나왔다고 홍종관 사장에게 얘기를 했죠. 홍 사장이 산을 매입할 수 있도록 경제적 후원을 해줬습니다."
부산의 배익천(61) 동화작가와 홍종관(62) 방파제 횟집 사장. 이들은 1988년 횟집 주인과 고객으로 인연을 맺었다. 부산MBC에 재직하고 있던 배 작가가 방파제 횟집을 자주 찾았기 때문이다. 배 작가는 매년 봄, 가을에 전국 아동문학인들을 초청해 방파제 횟집에서 모임을 가졌다. 홍 사장도 자연스럽게 아동문학인들을 알게 됐고, 지금은 아동문학을 열렬히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 배 작가와 홍 사장은 아동문학을 매개로 형제 이상의 끈끈한 우정을 이어오고 있다.
20년지기 배익천·홍종관 씨 고성군 야산 매입
14일 '제1회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 열기로
작가 이름표 단 나무 심고 도서관 건립도 추진
배 작가는 "홍 사장은 내가 추진하는 아동문학 관련 일에 대해 다 믿어주고 아낌없이 후원해준다"고 했다. 홍 사장은 1995년부터 부산아동문학상 상금을 후원하고 있다. 뒤풀이 공간도 제공했다. 앞에 나서기 싫어하는 홍 사장은 상금을 후원하면서도 7~8년간 비밀로 부쳐 달라고 얘기했단다.
홍 사장은 2009년 봄부터 계간 '열린아동문학' 발행인도 맡았다. 열린아동문학은 아동문학가 고 유경환(1936~2007) 씨가 1998년 서울에서 창간한 권위 있는 잡지다. 창간인이 2007년 타계하면서 배익천 작가에게 발행해 달라는 유지를 남겼다. 배 작가는 유지를 받들 수밖에 없었고 그의 사정을 알게 된 홍 사장은 발행인을 맡아 잡지 제작비를 후원하고 있다. 배 작가는 편집주간을 맡고 있다.
배 작가와 홍 사장은 2006년과 지난달 매입한 1만 6천 평의 임야를 '동시·동화나무의 숲'으로 가꾸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경남 고성군 대가면 연지리에 있는 이 숲을 동심의 요람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오는 14일 열리는 '제1회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이 그 프로젝트의 첫 무대다.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열린아동문학상 수상자 이름을 붙여주기로 했습니다. 또 열린아동문학의 매호에 게재되는 '이 계절에 심은 동시나무' '이 계절에 심은 동화나무'라는 코너에 선정된 작가 8명의 이름표를 단 나무도 심어주기로 했습니다. 해마다 동시·동화나무 열 그루를 심는 것이죠. 10년이 지나면 동시·동화의 나무가 100그루 생기는 거죠."
배익천 작가의 목소리가 살짝 들떴다. 배 작가와 홍 사장의 꿈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동시·동화나무의 숲에 동시, 동화, 그림책 도서관을 짓는 것이다. 전국 어린이들이 숲속에서 책을 읽고 자연과 어울려 지내게 하기 위해서다. 또 동화작가, 동시인을 초청해 정기적인 세미나도 열고 작가들에게 창작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갖고 있다. 계획이 성사된다면 전국적으로 유례없는 공간이 된다.
배 작가와 홍 사장의 서로를 위하는 마음도 각별하다. 배 작가는 "아동문학인들이 머리와 손으로 작품을 쓴다면 홍 사장은 온몸으로 더 아름다운 작품을 쓰는 사람"이라고 했다. 홍 사장은 "배 작가를 알게 되면서 가게가 번창하기 시작했고, 그는 잃어버린 동심을 찾게 해준 마음의 지표"라고 화답했다. 이들의 아름다운 우정이 동시·동화나무의 숲이란 동심의 공간을 잉태하게 한 원형질이었다.
이들은 오는 14일 오후 4시 동시·동화나무의 숲에서 제1회 열린아동문학상 시상식을 연다. 전국 아동문학인 200여 명이 1박 2일의 흥겨운 아동문학 잔치판에 참여한다. 동시인 신새별(수상작 '발의 잠')과 동화작가 선안나(수상작 '투명 까마귀')가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019-9101-6368. 김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