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도(影島)는 부산의 모진 근현대가 농축되어 있는 곳이다. 영도 해안길인 깡깡이길과 흰여울길을 가기 위해 영도대교에서 출발점을 잡는다. 2013년부터 다시 상판을 힘껏 들어올리기 시작한 영도대교를 지나면 대평동 물양장이 나오고 선박 부속품 가게가 이어진다. 그 모퉁이에 대풍포 매축비가 있다. 1916년부터 10년간 포구를 메워 시가지로 조성한 곳이다. 대풍포(待風浦)는 바람을 막는 포구란 의미로, 태풍이나 강풍을 피하는 배의 피신처였다. 일제강점기, 이 일대는 대부분 2층집이고 세금 납부액이 대신동과 1, 2위를 다툴 정도로 부자동네였다고 한다. 선박 부속품 가게인 진영상사 앞 컨테이너는 도선장 터였다. 자갈치시장을 오가던 도선이 승객을 태우고 내리던 곳. 디젤 엔진에서 통통 소리가 난다고 통통배라고 불렀다. 영도대교가 만들어진 1934년 이전에도 있었고 2000년대 초반까지도 있었으니 통통배 역사는 참으로 길다. 하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어버렸다.
1990년대까지 영도에서는 망치로 배를 두들기는 모습을 늘 볼 수 있었다. 영도 대평동 바닷가에 조선소가 이어졌고, "깡! 깡! 깡!" 하는 소리가 귀를 때렸다. 배를 수리하기 위해 조선소에 올린 배 갑판을 두들기던 곳. 아주머니들이 2인 1조가 돼 양끝에 밧줄에 매단 나무 널빤지에 앉아 갑판 위에서 내려오면서 망치를 두들겼다. 따개비 녹슨 페인트가 차례차례 벗겨지면서 낡은 배는 말쑥해졌다. '깡깡이길'이란 이름은 바로 여기서 나왔다. 진영상사 옆 종합해사에서 왼쪽으로 가면 1887년 설립된 최초의 근대식 목선 조선소인 다나카 조선소 자리가 보인다. 사실 실질적인 깡깡이길은 여기서 시작한다. 다나카 조선소 옆에 나카무라 조선소가 있었고 그밖에 크고 작은 조선소 60여 곳에서 배를 두들기는 소리가 하늘을 찔렀다. 요즘은 기계화돼 그라인더를 쓰지만 이전에는 망치를 썼다. 망치는 세 종류. 뭉툭한 것은 널찍한 데를 두들기는 데 썼고 뾰족한 것은 좁고 구석진 곳을 두들기는 데 썼다. 나머지 하나는 긁는 망치였다.
그런데 깡깡이 망치질은 기술이 따로 필요 없는 여자들의 몫이었다. 하지만 쇠 먼지 날려 비닐과 수건으로 얼굴을 감싸야 하고 마스크를 세 겹으로 둘러야 할 정도로 고된 일이었다. 땡볕을 참아야 하고, 2인 1조 작업을 마무리할 때까지 대소변을 참아야 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그래서 주로 생활력 강한 인근 이북마을 아낙들이 도맡았다. 이북마을은 지금도 있다. 이곳 할머니들은 깡깡이 일을 하느라 손이 망가지기도 했다. 남포동 먹자골목에서 김밥 말아 아이들 공부시키고 시집 장가 보낸 할머니도 있다.
사천고물상을 지나면 청도식당 사거리가 나오는데, 이 일대는 조선소 인부들이 밥을 먹던 식당가였다. 아직 몇몇 집이 남아 있다. 다방도 한창 때 17곳이나 됐다고 한다. 진주수퍼 사거리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페인트 가게 뒤 향나무 2층집은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전형적인 일제강점기 적산가옥이다. 사거리에서 우회전 뒤 직진하다가 흰색 4층 건물 안쪽으로 들어가 다시 우회전하면 이북마을이다. 근처에 대평유치원과 지금은 주차장이 된 대평시장도 있다. 인근 부산항국제선용품유통센터 정문 100m 전방에 보이는 청색 기와지붕은 용신당(龍神堂)이다. 영도대교 공사 도중 숨진 인부들의 영혼을 달래던 신당이라고 한다.
깡깡이길이 끝나면 이내 나오는 것이 흰여울길이다. 여울은 바닥이 얕거나 폭이 좁아 물살이 빠른 곳을 이른다. 영도 봉래산에서 굽이쳐 내려오는 하얀 줄기가 이곳을 지나면서 흰여울길이 됐다. 마을 이름도 흰여울마을이다.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풍광은 천혜의 비경 같다. 처음 온 사람이든 평생을 사는 사람이든 누구나 혼이 빠질만 하다. 천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변호인>도 여기서 찍었다.
영도 영선동 흰여울길은 남항호안 해상조망로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한다. 해상조망로 끝나는 지점에서 시작하는 길은 사실은 절영해안 산책로다. 흰여울길을 가려면 산책로를 걷다가 처음 만나는 맏머리계단으로 올라가야 한다. 산책로 네 계단 맨 처음에 있다고 맏머리계단이고 맏머리샘이 있었다고 맏머리계단이다. 맏머리샘은 세 개인 흰여울길 샘의 맨 처음 샘이다. 샘은 덮었지만 봉래산 물줄기에서 치솟는 힘을 어쩌지 못해 지금도 배수구로 콸콸 흐른다.
흰여울길은 길이 마당이다. 집 앞 골목길에 화분을 두거나 텃밭을 일구고 빨래를 말린다. 1945년 광복 직후 바닷가 산비탈 이곳에 집이 다닥다닥 들어섰다. 일본 등지에서 귀환한 동포가 고향에 돌아가는 대신 여기서 터를 닦았고 1950년 한국전쟁 피란민이 또 터를 닦으면서 마을이 이뤄졌다.
마을 주민이 꾸리는 아담한 가게 흰여울점빵은 작지만 이층도 있고 라면 맛이 천하제일이다. 가게에서 보는 노을 풍경은 가히 천상의 것이다. 길 끝은 이송도 전망대고, 전망대 가는 길목은 영화와 드라마의 인기 있는 촬영지다. 영화 '변호인' '범죄와의 전쟁', SBS 드라마 '딴따라' 등등. 길 끝 전망대 역시 천하제일 풍광이다. 대마도가 손에 닿을 듯 가깝고 부산 남쪽 섬들, 즉 주전자섬이며 나무섬이며 형제섬 같은 앙증 맞은 섬이 부산의 풍광에 감탄을 더하게 한다. 전망대에서 절영로 위길로 올라가면 흰여울문화마을 예술공방이 있다.
고달팠으나 건강했던 삶의 현장이 부산의 바닷길이다. 그 하나가 영도 깡깡이길과 흰여울길이다. 팔과 귀가 멍들어도 깡깡깡 두드리며 내일로 나아가던 사람들, 바닷가 아슬아슬한 산비탈에 집 짓고 텃밭 일구며 삶을 담금질하던 사람들. 그들이 매일매일 다져서 딴딴해진 길이 깡깡이길이고 흰여울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