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운남성 여행기 2. 수허 고성, 바이샤 고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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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잔 것 같은데 머리 맡에 놓아둔 시계를 보니 6시였다. 잘 잔 덕분인지 아니면 고소에 적응을 한건지 컨디션도 좋아졌다. 계

획 대로 호도협에 갈까 했지만 괜히 무리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호텔에 하루 더 있겠다고 말하고 아침 산책을 했다. 이제

리장 고성이 왠만큼 익숙해져서 지도는 필요 없었다. 어제 가보지 않은 길로 가봤는데 초등학교가 나왔다. 학교 앞에서 아침을 사

먹는 아이들이 많있다. 나도 사이에 껴서 국수를 한 그릇 사먹었다.

오늘은 주변을 맴돌아야겠다. 스팡지에에서 멀어지는 쪽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길가에 어제 감자를 팔던 아줌마가 앉아 있었

다. 어 어 떻게 된거지? 오늘은 자리를 옮기신건가? 의아해하면서 계속 길을 걸었는데 잠시 후 스팡지에가 나왔다. 난 분명 스팡지

에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했는데......이런, 아줌마가 자리를 옮긴 것이 아니라 내가 길을 잃었군. 오늘 호도협으로 가지 않기를 잘한

것 같다.

 아침은 온전히 동네 주민들의 시간이다. 가게 문을 열고 골목에서 머리를 감고 수로에서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아

침을 사먹고 출근을 한다. 사진에 담고 싶은 풍경이지만 왠지 이 시간에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는 것은 무례한 시선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카메라를 내려놓고 아침을 먹을만한 카페를 찾아 수로를 따라 걸었다.

아침의 리장 고성

쓰팡지에에서 조금 더 가니 '프라하 카페'라는 예쁜 카페가 있었다. 손님은 외국인 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럴만도 한 것이 아침식

사 가격이 거의 내 호텔 숙소 하루 방값과 맞먹었다. 그래도 난 예쁜 카페가 좋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샌드위치와 윈난 커피를 시

켰다.

 카페 한켠에 있는 책꽃이에는 여행자들이 놓고간 다양한 언어의 책들이 많이 꼽혀 있었다. 단연 눈에 띄는 것은 노란색 일본판

'지구를 걷는 법' 시리즈. 우리 나라에서는 '세계를 간다'라는 이름으로 출판되고 있다. 그 옆에는 100배 즐기기 베트남 편도 있었

다. 베트남에서 운남성으로 올라온 사람이 놓고 간 것 같다. 저 책의 주인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아직 여행 중일까?

 샌드위치는 맛있었지만 너무 컸다. 중국에서는 뭐든 너무 많이 나온다. 다 먹어본 적이 없다. 그에 비해 커피는 너무 적었다. 세잔

째 커피를 주문하고 여자친구에게 엽서를 썼다. 카페 종업원이 커피와 함께 방명록을 써달라고 가져왔다. 한국어로 '리장은 아침

에만 참 예쁜 도시다. 이 카페도 예쁘다. 즐거운 여행 하시기 바란다' 등등 뻔한 내용을 적어서 돌려주었다.

"한국어에요?"

"네. 맞아요. 어떻게 알았어요?"

"글자가 예뻐서요. 그런데 뭐라고 쓰신거에요?"

"리장은 아침에 션머션머~"

"그게 다에요? 종업원은요? ㅋㅋㅋ 농담이에요"

"아. 하하하. 써줄게요. 잠시만요"

 종업원이 정말 예쁘다고 중국어로, 한국어로, 영어로 써주었다. 카페를 나오니 여행자들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리장 고성을 떠나

야 할 때다. 근처에 있는 수허 고성에 가려고 호텔에 자전거를 빌려달라고 했다. 그런데 로비를 지키던 화가 비가 올 것 같다고 택

시를 타고 가는 것이 어떻겠냐고 한다. 하늘을 보니 정말로 구름이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중국산 자전거를 타고 가다가 자전거

는 퍼지고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는 장면이 상상되었다. 바로 마음을 고쳐먹고 택시를 타고 가기로 했다. 오늘 베이징으로 떠난다

는 잉과 인사를 하고 화와 "수허고성에 가요"를 중국어로 연습한 다음에 호텔을 나왔다.

프라하 카페

잉과 함께

연습의 효과는 완벽했다. 택시 기사는 내가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중국어로 말을 건다. 그녀가 교과서에 나오는 회화만 이야기

해서 대략 3분 동안 중국인인 척 할 수 있었다. 내 중국어 밑천이 떨어져서 한국인이라고 이야기했더니 택시기사 아줌마는 "쩐더!

(정말!)" 하며 한참을 내 얼굴을 봤다. 운전을 하면서. 젠장 "샤오신샤오신!(조심조심!)" 그나저나 수허고성으로 가는 길은 내가 상

상했던 시골 길이 아니라 잘 포장된 시내 도로였다. 자전거로 왔다면 실망했을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수허고성은 아직 예전의 모습을 많이 보존하고 있다고 읽었는데, 막상 가보니 전혀! 아니였다. 리장 고성과 만만치 않

게 변신해 있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리장 고성이 중국 관광객에 맞춰 리모델링 되었다면 수허 고성은 외국인 관광객을 위해 리모

델링 된 듯한 느낌이었다. 고성 가운데 있는 카페와 식당은 유럽의 어느 도시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예쁘기는 했지만 별로였다. 난

유럽이 아니라 중국에 와있으니까.

그나마 덜 개발된 언덕 쪽으로 걸었는데 갑자기 비가 왔다. 바로 옆에 있던 카페에 들어갔다가, 그냥 점심까지 그곳에서 먹기로 했

다. 메뉴판을 봤는데 정말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었다. 하지만 이미 메뉴판을 봤더니 배가 고파서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 수 없

을 것 같았다. '나시 전통 방식으로 요리한 치킨 숩'를 주문하고 창밖으로 비가 오는 것을 구경했다. 수허고성은 리장 고성에 비하

면 정말 평화롭다. 좋다.

나시 전통 방식으로 요리한 치킨 숩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나는 고수만 빼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 편인데 이건 정말

입도 대기 힘들었다. 순식간에 입맛이 싹 사라져버렸다. 마침 비가 그쳤길래 미안하지만 그대로 놓고 식당을 나왔다. 정말 미안해

요. 고성의 전경을 보고 싶어서 언덕 위로 올라갔다. 360도 파노라마 전경을 자랑한다는 숙소마다 다 올라가봤지만 어느 곳에서도

고성의 전경을 볼 수 없었다. 이런 뻥쟁이들. 숙소 앞에 붙여놓은 사진들은 대체 어디서 찍은거지?

수허고성

수허고성은 작아서 몇 시간이면 돌 수 있었다. 리장으로 돌아가기 싫어서 다시 택시를 타고 잉이 강추했던 바이샤에 갔다. 바이샤

에 가까워지자 멀리 눈 덮인 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건 무슨 산이에요?"

"옥룡설산"

아 저게 옥룡설산이구나. 바이샤는 옥룡설산 아래 자리 잡은 작은 마을이었다. 고성에 들어가기 전에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고 초

등학교에도 가봤다. 벌써 수업이 끝났는지 아이들은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학교에서 나와 고성으로 들어가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갑

자기 리장고성 입장표를 보여달라고 한다. 리장고성 입장표? 그걸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구!

하지만 리장 고성 곳곳에서 입장료가 80원이라는 표지판을 봤으니 티켓을 보여달라는 것이 부당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입구를 지

키고 있던 아줌마도 자기 일을 열심히 하는 사람일 뿐 돈을 받아서 뺴돌리거나 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리장고성 입장료 80원에

바이샤고성 입장료까지 조금 더 내고 들어갔다.

바이샤는 리장 고성이나 수허 고성에 비하면 별 볼일 없었지만 그만큼 정말 조용했다. 기념품을 파는 상인들이 조금 있었지만 누

군가 자신들의 물건을 사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가까이 가서 관심을 보여도 그들은 내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습관적으로 가게에 서 있는 것 같았다. 치킨 숩을 먹고 사라졌던 입맛이 돌아와서 LP에서 추천한 부에나 비스타 카페에 갔다. 카페

종업원은 한국 드라마에 빠져서 내가 왔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바이샤 고성

"저기, 뭐 좀 먹을 수 있을까?

"응 메뉴판 거기 있어"

나시 국수를 고르고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오지 않아 메뉴판을 들고 직접 그에게 갔다.

"나 나시 볶음 국수 먹을래. 고수는 빼줘"

"그래 알았어. 아줌마 여기 나시 볶음 국수 하나!"

"근데 너 뭐 보니"

"아이리스. 한국 드라마야"

내가 미국 드라마를 다운받아 보는 것처럼 그가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것이 조금 신기했다. 잠시 후 서양인 커플이 들어왔다.

뉴질랜드에서 왔다는 마이클과 바바라 커플. 합석해서 같이 밥을 먹었다. 다음에는 어디로 가냐고 묻길래 아마도 호도협을 거쳐

샹그릴라에 갈 것 같다고 했더니 그들도 같은 코스라고 한다. 아마 산에서 만나게 되겠구나. 나시 볶음 국수는 맛있었다. 가격도

치킨 숩의 1/5도 안되는데다가 홍차는 그냥 서비스였다.

카페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적어놓은 메모들이 덕지덕지 붙어있었다. 한글의 세계화를 위해 나도 동참했다. 한참을 쉬다

가 고성 입구에서 빵차를 타고 리장 고성으로 돌아왔다. 다마스만한 봉고차에 9명이 탔다. 우즈베키스탄에서 12명까지 태우는 것

을 봤으니 이정도는 편안한 편이다. 게다가 요금은 단돈 3원. 올 때는 택시비로 30원 썼는데;;

호텔로 돌아와서 차를 마셨다. 잉이 돌아가고 나니 심심하다. 앞에 예의상 같이 앉아있는 것으로 보이는 일하는 청년은 차만 묵묵

하게 만들어줄 뿐 말이 없다. 차는 역시 사람들과 같이 마셔야 좋은 것 같다. 혼자 마시는 차는 별로 맛이 없다.

부에나 비스타 카페

 바이샤 고성과 옥룡 설산

http://www.cyworld.com/itsnodoub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