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장편소설>
첫 사랑 - 사랑은 후회하지 않는다. ( 10편 )
강성수
K의 기척이 느껴졌다.
“ 사랑은 무엇인가?”
“ 이곳에 있는 모든 일이 사랑이다.”
“ 우리는 때로 심하게 다투기도 하고 사기당하기도 하고 철천지원수도 있지 않은가?”
“ 숲 속에 갇혀 있으면 숲 전체를 볼 수 없듯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곳을 떠나게 되는 임종(臨終)이 다가오면 다투어야 할 명분이 없어지므로 이해관계로 심하게 다투었던 일이나 사기를 당했던 일도 이 세상에 와서 먹고 살기 위해서 있었던 일로 여겨지게 되어 양보하고 용서하게 되고 철천지원수도 자신의 부덕(不德)함이나 무지몽매(無知蒙昧)함 때문임을 깨닫게 된다. 예수님은 자신의 목숨을 뺏는 사람들도 그 자리에서 하나님에게 용서를 구하지 않았나. 인생은 한바탕 봄날의 꿈(一場春夢)이며, 장자가 말하는 나비의 꿈(胡蝶夢)이다. 우리는 미련하게도 이때가 되어서야 아욕(我慾)과 아집(我執)에서 벗어나 비로소 숲 전체를 보게 되고 세상만사가 부질없는 일로 여겨지게 되니 역으로 허접한 잡동사니 같은 일들이 -이발, 면도, 손톱 깎는 일, 간혹 만났던 친구들과 담소시간 - 귀한 사랑으로 다가와서 이곳의 모든 일이 사랑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평소에 이곳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꿈이고 사랑임을 알고 행동으로 실천하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꽤 괜찮은 사람이다. 사소한 선행(善行)과 악행(惡行)도 공짜는 없다. 반드시 보상과 벌이 따르니 그것이 진리다. 선(善)하게 살아가라.”
“일생을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나?”
“죽은 자에게 잘해주라. 노잣돈이라도 쥐어주고 좋은 곳으로 가라고 빌어주라. 죽은 자하고 원(怨)지지 마라. 일상의 사소한 일에서 복을 지으면서 살아가고 그 복을 길게 받을 생각으로 천천히 아껴서 받아라. 자연히 범사(凡事)에 감사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나이 들면서 우울증이나 불면증이 생기게 되면 또 네가 모르는 업(業, karma)에 대하여 죄 사함을 받고 싶다면 주인이 내다버린 유기견이나 집 없는 길 고양이를 입양해서 죽을 때까지 지극 정성으로 한번 보살 펴 줘보라. 자신의 안위를 걱정하기보다 유기견이나 길 고양이의 안위를 걱정하며 살아가다 보면 보호를 기다리는 그것들에게서 많은 사랑을 배우게 될 것이다. 그런 일은 사랑으로 마음의 평온함과 평화스러움을 가지게 하고 사람을 순수하게 하니 그 순화된 마음은 우울증이나 불면증도 사라지게 하고 이곳을 ‘낙원과 천국’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어 사후 세상도 좋은 곳으로 가게 하는 것이다. 덕행(德行)과 보은(報恩)은 모르게 해야 지은 업(業, karma)도 사(赦)하는 일이 되는 것이다. 이 세상에 살아 있는 한 순리(順理)대로 행(行)하고 어떤 일이라도 누구에게라도 악심(惡心)을 품지마라.”
“사람이 어떻게 매번 양보하고 용서하고 사랑하고만 살아 갈 수가 있는가?”
“이곳에서 편안하고 행복한 삶(極樂之生)을 살아가기 위함이다.”
뒤돌아보니 K는 사라지고 없었다.
꿈14) 여름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어두운 밤이었다. 고등학교 동기 친구들과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기위해 차가 카이스트 대학 앞길을 지나쳐서 도로 위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희끗한 물체가 길옆에 떨어져 있었다. 아무래도 고양이 같았다. 집사람에게 차를 세우라고 하고 비상등을 켜고 차를 뒤로 후진하라고 했다.
“왜 그러세요?”
“고양이 한 마리가 길가에 떨어져 있는데 치워주고 가려고 해요”
“비까지 오는데....... 에그 무서워....... 그냥 가면 안 돼요?”
“그냥 가면 차에 짓이겨져서 형편없이 될 텐데, 것이니 내가 치울 터이니 차만 뒤로 후진만 해봐요”
그렇게 해서 내려서 보니 개만한 고양이가 금방 차에 받혔는지 아무데도 다친 데가 없이 깨끗하게 누워있었다. 들어보니 새끼를 가졌는지 축 늘어진 채로 묵직했다. 들고서 도로 펜스 뒤로 가져가서 살며시 놓아주고 다시 차를 타고 집으로 왔다.
아들이 군대 간다고 하여 통영에 가서 회나 사 먹이려고 어머님과 아들 딸 그리고 집사람까지 다섯 명이 차를 타고 대진 고속도로위를 달리고 있었다. 당시의 대진 고속도로는 신설도로라 차 통행량이 많지 않아서 보통 시속 140Km 이상 달리고 있었는데 그 때는 160km 정도의 속도로 운행하고 있었다. 그 때 집 사람이 나를 보고,
“위 점퍼가 더워 보이니 벗자”고 해서,
오른쪽 팔을 주니 소매 단추를 끌러서 팔을 벗기고 다시 왼쪽 팔을 달라고 해서 소매 단추를 풀고 난 후 왼쪽 팔을 등 뒤로 돌려주어 집사람이 끌어당기니 오른손에 잡혔던 핸들이 왼쪽으로 꺾이면서 순식간에 차가 중앙 분리대쪽으로 쏠리는 것이었다. 160km로 달리는 차에서 중앙 분리대가 벼락처럼 다가오기에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1/1000초의 시간차로 오른쪽으로 차의 핸들을 꺾었다. 차의 조수석 범퍼가 땅에 받히며 쿵! 하는 소리가 났다. 차의 중심을 잡으려고 핸들을 다시 왼쪽으로 꺾으면서 몇 번을 지그재그 하면서 겨우 차의 중심을 잡았다. 등에 식은땀이 흘렀다. 어머님은 뒷좌석에 받힌 머리를 만지시면서 “ 야야 ~ 무슨 운전을 이렇게 하노? 천천히 가자!” 하셨다. 그 때 그 순간에 생각난 것이 그 길옆에 떨어져 있던 고양이 생각이었다. “아! 네가 나를 도와주었구나! 고맙다! 내가 너의 안위를 걱정해 주었더니 네가 나를 다치지 않게 도와주었구나!” 그런 생각이 강하게 나의 뒷머리를 강타했다. 뒤의 차들은 천천히 가라는 표시로 운전석 창문을 열고 손을 아래, 위로 흔들면서 지나가고 있었다. 아마 내가 졸음운전을 하고 가는 것으로 잘못 알고 가는 것 같았다. 나중에 택시기사에게 들으니 시속 160Km로 달리다가 중앙 분리대를 들이 받으면 적어도 10회전 이상 차가 회전하여 굴러가게 되고 탑승자는 중상이 아니라 거의 사망하게 된다고 하였다. 그 생각이 우연의 일치인지 누가 믿든 믿지 않든지 간에 그 고양이가 순간적으로 기억이 난 것은 사실이다.
꿈 15) 이 얘기를 듣던 큰 동생도 비슷한 경험담을 나에게 해 주었다. 공중목욕탕은 젊은 사람 대여섯 명하고 어린 아이들하고 때밀이 하는 사람하고 목욕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물속에서 엎드려 물에 떠 있는 노인의 모습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여보시오! 때밀이 아저씨! 저 할아버지 모양이 어째 좀 이상하지 않소?”
“저 할아버지 본래 탕에서 엎드려서 잘 노시는 분입니다!”
“그래요? 이상한데?”하면서 동생이 다가가서 노인을 건드리니 그냥 그 자리에서 빙글빙글 돌더라는 도는 것이었다. 옆의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니 모두 겁을 먹고 탕 밖으로 달아나기에 때밀이 아저씨에게 부탁을 해서 둘이서 같이 할아버지를 탕 밖으로 꺼내었단다. 해양대학교를 나와서 배에서 선장을 하는 동생이라 응급조치에 들어가고 119에 연락도 했다. 우선 살려야 되겠다는 생각에 노인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구강 대 구강 응급조치도 했다고 한다. 응급차가 오고 깨어나지 못한 채 실려 갔는데 나중에 경찰서에서 오라고 해서 가서 들으니 결국 돌아가셨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심장마비였단다.
그 후에 배에서 일을 하다가 배의 부품 하나가 바다에 떨어져서 하급 근무자를 시켜서 건져오라고 하고 싶은데 옆에 하급자가 아무도 보이지를 않고 부품은 배에서 자꾸 멀어져가서 평소 수영에 남다른 자신이 있었던 동생이 부품을 건지러 바다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한참 헤엄을 치고 부품을 건져서 배위로 건져 올리게 하고 하급자 보고 구명정을 던지게 하여 밧줄을 잡고 배 위로 올라가던는 끝 무렵에 기력이 다해 앗! 하는 순간에 정신을 잃고 구명정을 놓고 그대로 바다로 떨어졌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닷물에 떨어져서 쭉∼ 내려가며 가라앉는 순간에 목욕탕에서 봤던 그 노인의 희미한 영상이 보이며 “정신 차려요! 정신 차려요!” 가느다란 목소리로 급하게 여러 번 말하는 것을 비몽사몽간에 들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정신을 차리고 헤엄쳐서 선원들의 도움을 받아 배 위까지 올라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후일에 “그 영감이 나를 살렸나?”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헤어지고 난 후 그녀가 없으면 숨이 멎을 것 같은 군대 생활도, 잊지 않으면 서로가 불행해진다는 일념으로 군대 생활에 열중하기로 하면서 점차 안정을 되찾아 갔다. 군대를 만기전역하고 사회생활에 적응한다고 한 동안 정신이 없었다. 그 동안 회사에 입사도 하고 나름대로 바쁘게 지내고 있었으나 사회생활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녀에게 연락을 취하고 싶었지만 마음만 그럴 뿐 상황과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았다. 또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은 그녀에 대한 절절한 서운함도 짙게 배어 있었다.
75년 6월 제대하고 만 2년이 후딱 지난 77년 7월 어느 날 그녀 생각이 났다. 아니 하루도 그녀 생각을 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제대하고 직장을 구하고 경황없이 바쁜 날들의 연속이었지만 사회생활이 힘들수록 그녀가 더 그리웠다. 그러나 차가운 현실은 내 마음과 정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앞이 캄캄하여 나의 장래의 청사진이 보이지 않았다. 내가 취직한 곳은 비행기 화물을 취급하는 항공화물 회사였는데 지점장은 서울 본사에 전화를 걸어 자기를 험담하는 사람이 없는지 물어 보기도 하고 아래 직원들은 나름대로 회사 생활은 하고 있었으나 장래가 크게 보장되는 직장은 아니게 보였다. 회사 생활을 하는 내내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하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가진 밑천도 없고 거짓말도 못하는 성격이라 늦기는 했지만 출세하는 길은 다시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직장 생활을 2년 정도 하고 더 늦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회사에 사표를 냈다. 하루에 수십 건씩 나오는 카고 샘플(cargo sample)을 전 세계 공항(airport)으로 보내는 것을 처리하는 일을 하다 사직서를 제출하자 지점장님이 무슨 일인가 싶어 나를 불러 올렸다.
“무슨 일이 있나?”
“없습니다.”
“사직서를 제출 했던데?”
“그렇습니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나?”
“무슨 일 때문은 아니고 대학에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지금 나이에? 대학을? 올해 몇 살이고?”
“28살입니다.”
“너무 늦지 않았나?”
“다른 재주가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어느 대학을 가려고 하는데?”
“한의대를 가려고 합니다.”
“한의대? 어렵다 카던데?”
“예. 어려운 줄 알고 있습니다.”
“자신 있나?”
“한번 해봐야지 예...”
“그래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근 10년인데 잘 되겠나?”
“해 묵고 살 일이 별로 없습니다.”
“회사 계속 다니면 장래는 보장된다 아이가?”
“제 적성하고 달라서 그렇습니다.”
“나는 다른 회사에서 취업 픽업이 들어 온줄 알고 오해했는데 공부하겠다면 허락해 줘야겠네. 열심히 해봐라. 인생의 전환기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지점장님! 쉽게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해서 퇴사하고 그토록 원하던 공부에 뛰어 들게 되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 날로 각 과목마다 두 권씩 책을 사서 공부가 시작되었다. 인생에서 마지막 배수진이 쳐졌다. 이게 내 인생에서 마지막 기회다! 떨어지면 이 세상을 거지처럼 많은 무시와 괄시를 받으며 허접한 삶을 살아 갈 것을 각오해야 한다! 실패하면 나의 인생에 더는 희망이 없다! 잠이 오지 않으면 무조건 공부한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이 세상에 안되는 게 어디 있나! 열심히 하면 된다! 게으른 생각이 나면 마음을 닦달하고 채근하는, 자신을 스스로 독려하는 30여개에 달하는 여러 가지 교훈을 공부방 벽에다 써 놓고 매일 아침에 그 격려하는 글에 도장을 찍어가며 공부했다. 지치지 않도록 50분 공부하고 10분 쉬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한 여름 엉덩이에 땀띠가 나서 살이 허물어지는 데도 하루 20시간 이상씩 강행군이 시작되었다. 후일에 아버님이 큰 놈이 흐리멍덩한 줄 알고 있었는데 독하게 공부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고 하셨다. 그러나 공부를 시작하기 전에 꼭 해결해야 할 일이 하나 있었다. 개인적인 시간이 허락되었기에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그녀를 만나는 일이었다. 서로 냉대하며 매몰차게 헤어지고 왔지만 첫 편지에서 생명이 다하는 날까지 사랑하겠다고 약속했으니 틀림없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결혼이라도 했으면 그녀에게 큰 실수를 할까봐 여동생 이름으로 엽서를 짤막하게 썼다.
- 언니! 그동안 많이 적조하였지요? 잘 지내면 연락주세요. -
여동생 이름으로 보냈다. 그녀에게서 답장이 왔다.
이제는 너무 오래되어 편지인지 엽서인지도 기억이 분명하지 않지만 답장이 왔다는 것은 그녀가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혼했으면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73년도 싸우고 돌아섰을 때가 10월이었으니 꼭 3개월이 모자라는 4년의 시간이 흘러갔다.
나는 두 번째 전보를 쳤다.
- 77년 7월 28일 4시 목포역 여로 다방에 도착합니다. 나와 주시오. -
약속대로 그 시간에 다방 문을 밀고 들어갔다. 그녀가 시선을 내려다보며 그림처럼 앉아 있었다. 갑자기 눈앞에 하얗게 안개가 끼는 것 같았다. 얼마나 보고 싶어 하고 그리워했던 사람이던가! 그런 그녀가 한쪽에 단정히 앉아있었다. 일부러 눈을 한번 크게 뜨고 심호흡을 한번 하고나니 마음이 조금 진정되었다. 그녀 역시 내가 온 것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도 나를 쳐다보지 못했다. 천천히 그녀 앞자리에 앉았다. 그녀도, 나도 고개 숙이고 서로 쳐다보지를 못했다. 그리고 한참을 두 사람 다 아무 말도 못했다.
내가 말문을 열었다.
“어머님은 잘 계시오? 어디 불편하지는 않으시오?”
“편찮으시진 않아요...” 그녀가 처음으로 말문을 열었다.
“다방이라 답답하니 밖으로 나가서 걸읍시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는 지난번에 그녀가 하도 완강하게 버티는 바람에 그녀에게 약간 주눅이 들어 있어 말 건네기가 쉽지 않았다. 거절을 당하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순순히 따라나섰다.
날씨도 후덥지근했지만 막상 만나니 말을 꺼내기도 쉽지 않아 말없는 가운데 유달산을 걸어 올라가 중턱의 나무 의자에 앉아서 삼학도 구경도 하고 주변 풍경도 구경하고 있었다. 삼학도 쪽은 개발을 하는지 연신 트럭이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심하게 싸우고 먼 길을 돌아서 왔지만 다시 만나 그녀와 같이 걷고 있으니 ‘오랜만에 한가하고 행복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조금 더 올라가고 싶었으나 다리가 아프니 그만 올라가자는 그녀의 말에 산을 내려 와서 택시를 타고 째보 선창으로 갔다. 그녀를 데리고 들어 간 곳이 조그만 횟집이었다. 회도 시키고 맥주도, 음료수도 시켰다. 음식들이 나오고도 둘 다 한참 말이 없었다. 3년이란 긴 시간이 공백으로 남아 있어 그녀도 나도 먼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참 있다가 내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내가 올 줄 알고 있었소?”
“........ ”
대답이 없었다.
“얼굴이 괜찮아 보이는데 고생스럽진 않았소?”
“영찬씨도 얼굴이 좋게 보여요...”
그녀가 겨우 한마디 했다. 그래도 언제 내 얼굴을 보기는 했나보다.
나는 맥주도 한잔 곁들이고 얘기는 하고 있었으나 우리들의 얘기는 정작 묻고 싶은 것은 그녀의 마음을 다치게 할까 봐 묻지도 못하고 겉도는 얘기만 하고 있었다. 그녀는 맥주를 마시지 않고 술잔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시계가 6시 쯤 되었을 때,
“저 들어가 봐야 되요...”
그녀가 시계를 쳐다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을 했다.
“아니? 어디를 들어가 봐야 된다는 게요? 오늘은 나하고 있어야 되요.”
“저 결혼했어요...”
“결혼했으면 답장을 보내지 않았어야 할 것 아니요!”
내 말이 직선으로 날아갔다. 목소리가 갑자기 두 옥타브는 커졌다.
한참 있다가 그녀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다.
“한번은 꼭 보고 싶어서...”
“더 만나서는 안 되는 사람처럼 한번은 꼭 보고 싶어서 연락을 했단 그 말이요?”
나는 그녀의 성의 없는 말에 화가 났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번은 꼭 만나 뵙고 싶었어요.”
“그래서 나를 두고 그냥 들어가야겠다. 그 말이요? 오늘 내가 이렇게 싸우려고 온 것 같아요?”
“누가 싸우자고 그래요?”
“지금 또 실랑이를 하고 있으니까 하는 말이요”
“아무튼 저는 가봐야 해요”
“왜? 중요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우리는 만나기만 하면 이렇게 다퉈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저도 다투고 싶지 않아요.”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한 번은 꼭! 보고 싶었다. - 하는 것은 이 만남을 끝으로 그만 만나자는 말이 아닌가! 그렇다면 내가 그녀에게 궁금해 하는 그녀 마음을 채워주지 못한 미흡한 그것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가 그런 말을 하기에 힘들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헤어져도 그것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적어도 부산에서 목포까지 왔으면 그것에 대한 얘기는 해 줘야 할 것이 아니겠는가? 죄송하다고... 마음을 열지 못하겠다고... 우리는 인연이 아닌 것 같다고... 그렇게 말해주면 그렇게 알고 갈 것이 아닌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번은 보고 싶었다가 아니라 마지막으로 한번 만나고 보니 또 마음에 차지 않아서 나를 찬 것 같았다.
지금 막 일어서려고 하는 그녀를 붙잡고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녀가 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내가 서둘러 계산하고 따라나섰다. 목포역에서 기차표를 어디까지 끊은 줄을 알 수가 없어 대충 대전으로 끊었다. 따라가면서도 왜 이렇게 부딪히는 일이 많을까? 왜 만날 때마다 이렇게 티격태격하는 일이 많을까? 우리는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인가?
그녀를 따라 열차를 타고 그녀 좌석 앞자리에 앉았다. 차 안은 목포에서 해물 장사하는 아주머니들의 큰 목소리와 큰 원형 고무다라들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 때문에 왁자지껄 시끄러웠다. 목포가 해산물이 많이 들어오는 도시가 되어서인지 그 시간에 타 도시나 읍에서 출퇴근을 하는 생선 장수 아주머니들인지는 잘 구분이 안 갔지만 열차 객실 내에는 비릿한 생선냄새와 함께 부산 자갈치 시장에서 볼 수 있는 아주머니들의 집단으로 떠들썩해져서 순식간에 마치 시장터의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런 와중에 우리도 시끄러운 자리를 피해 적당한 자리를 물색하여 마주 앉았다.
“왜? 결혼했다는데 따라 오고 있어요?”
그녀가 따라붙는 나에게 말을 걸어 왔다.
“어머님 만나 뵙고 결혼했다고 하면 두 말도 안하고 나올 테니 아무 걱정하지 말아요.”
“왜? 우리 엄마한테 물어봐야 되요? 결혼했다고 하면 내 말을 그대로 믿으면 될 것 아니에요?”
“결혼했다는 사람이 답장을 보내요? 또 그 동안에도 한번은 보고 싶었다면서요? 얼굴만 보고 가버리면 그만 인거요? 나는 그저 아무렇게나 되어도 좋다는 게요? 그것이 4년 만에 만난 나한테 하는 인사요?”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그냥 가게 보내주세요”
그녀의 말투가 변해있었다.
“그렇게는 못하겠어요. 어머님 만나 뵙고 결혼했다고 하면 그냥 그 자리에서 나올 것이에요. 그러니 걱정 말아요.” 나도 단호했다.
“그냥 가게 보내주세요.” 애원하듯 다시 말해 왔다.
“목포로 다시 내려가기 전에는 나는 이대로 보내 줄 수가 없어요.”
“........”
그녀와 나는 그런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 때 원형 고무다라를 객석 사이에 두고 생선 장사하는 아줌마들이 전라도 말로 우리 다툼에 끼어들었다.
“새 애기도 겁나게 예쁘고 총각도 겁나게 잘 생기고 그랬는데 무신일로 그래 싸워 쌌는기라∼잉∼ ”
그때 아줌마들은 근 40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거의 돌아가시고 계시지 않을 것이다. 내가 대답했다.
“글쎄, 헤어진 후로 근 4년 만에 편지를 보냈더니 답장이 와서 목포까지 찾아 왔더니 결혼했다며 집으로 보내 달라고 하는데 이대로 보내줘야 하는 겁니까?”
“답장을 한 것으로 봐서는 결혼을 안 한 것이 맞는데 총각이 엄청 사람이 좋아 보이는 고만... 새 애기가 총각 말을 들어 주는 게 좋겠구만 그라네...” 하며 내 역정을 드는 것이었다.
그녀가 듣고 있기가 민망했던지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목포역에서 몇 정거장을 지나고 이름 모를 역에서 내렸는데 황량한 벌판이라 택시도 없고 후덥지근한 바람만 까만 밤에 휭∼휭∼불고 있었다. 둘이서 한참 걷고 나와서야 비로소 택시를 잡아타고 목포로 다시 들어올 수가 있었다. 밥이고 뭐고 챙길 여유도 없이 맥주를 사들고 들어가서 속이 상한 김에 혼자서 몇 병을 거푸 마셨다. 그녀는 구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고개를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고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대전을 거쳐 목포까지 온다고 힘들고, 의견이 서로 맞지 않아 다투고 맥주를 마셔서 그런지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던 모양이었다.
잠귀가 밝은 나는 팔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있어 잠에서 깨어났다.
그녀가 팔에 안기어 있었다. 그녀는 흐르는 눈물을 손등으로 훔치고 있었다. 시계는 12시에 시침이 있었다.
“잠들었을 때 가지 그랬소!”
가지 않고 곁에 있다는 안도감과 함께 서운한 마음이 겹쳐서 툭! 투박스럽게 말을 던졌다.
“가지 말라고 해놓고 선...”
모기소리로 대답했다.
말꼬리는 없었으나 약간은 젖은 목소리가 예전의 현숙으로 돌아와 있었다.
눈물에 젖은 까만 눈동자가 내 눈을 쳐다보고 있었다. 문득 이리에서 보냈던 일이 생각났다. 그 때는 서로의 눈동자에 찍힌 모습에 신기해했었는데... 밤이 깊어 있었다. 가지 않은데 대한 고마움인지 내 목소리도 다소 젖어 있었다.
“정말 결혼했소?”
그녀가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나는 여태까지 서울 얘기 이후부터는 아무 얘기도 못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어요. 그러니 내가 그것을 알고 싶어서 못 간다고 한 것이고...”
내가 모로 돌아누우며 그녀를 팔베개하며 다시 안았다.
고개는 숙이고 있었으나 내 품 속에 그녀가 들어와 있었다.
‘지금 내가 꿈을 꾸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바보처럼 행복했다. 눈에는 눈물 자국이 있었으나 나무라기보다는 애처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 세상에 와서 못난 나를 만나서 마음고생을 하는 그녀가 내가게 딱하고 가엾게 보이게 하는 것 같았다. 내가 더 잘났다고 한다면 그녀가 그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터인데 내가 못나서 그렇구나!
나는 그 때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왜? 결혼했다고 거짓말을 했소?”
“그러면 갈 것 같아서요 ...”
“아니 그런 얘기가 아니라 왜? 가게 만들려고 하느냐는 거요?”
“ .......”
여자의 마음은 알다가도 모를 구석이 있었다. 나보고 그냥 갔으면 하고 바란다면 잠자는 나를 두고 가버렸으면 됐을 것이 아닌가. 그녀로 하여금 가지 못하게 내 팔에 안겨서 흐느끼게 만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또 무슨 심사란 말인가. 그래도 자는 사람을 버려두고 가지는 못할 만큼 그녀의 마음이 내게 대한 미련이 있었다는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일까. 도대체 그런 마음을 여자의 뭐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인가. - 헤어지면 그리웁고 만나보면 시들하고, 몹쓸 건 이내심사(남 인수의‘청춘고백’)인가, 아니면 말없이 가신 여인이 눈물을 아랴 ∼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박 일남)인가? -
많은 시간이 흐르고 난 후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가 나를 저울질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당시는 이런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다. 반추해보면 결혼을 하기에는 뭔가가 미흡하고 그녀의 마음을 다 채우지 못한 구석이 있었던 것 같다. 자격지심 인지는 모르지만 자신보다 조금 작은 키도 그녀의 마음에 미흡했는지 모르고 대학도 나오지 않았고 직장도 뚜렷한 것이 없었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를 않았으니 사람은 그렇게 싫지는 않은데 여러 가지 여건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니 사랑도 하고 보고도 싶었지만 이 결혼카드는 접어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물론 그녀도 사람을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나 딱히 꼭 집어 어떤 말을 듣지는 않았으니 그 이유가 뭣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그 때는 그녀가 한마디 상의 없이 서울로 간 것이나 아니면 느닷없이 결혼을 했다는 오늘의 일들에 대해서 그녀와의 만남은 왜? 이렇게나 반전이 심한 것이지? 나로서는 혼란스러울 뿐이었고, 단지 나는 그녀가 나를 미흡하게 생각하는 그것이 무엇인가가 가장 궁금할 뿐이었다. 이 세상에 와서 아직 영글지 않은 남녀의 첫 만남이었으니 서로가 미숙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내가 싫어서 그래요? 아니면 마음에 차지 않은 미흡한 무엇이 있어 그래요?”
내가 물었다. 그녀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영찬 씨는 저한테 과분한 사람이에요..... 여러 가지가 장점이나 좋은 점이 많으신 분이에요. 우선 밝고 명랑하고 구김살도 없고 활달하고 ....”
그녀는 내 앞이라 그런지, 듣기 좋으라고 그랬는지는 모르나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생각이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이요? 내가 모르는 다른 이유라도 있는 것이요? 내가 생긴 게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래요? 아니면 내가 돈이 많이 없어서 그래요?”
직설적으로 연이어 물었다.
“전 영찬 씨에게 갈 수없는 몸이에요...”
“그건 또 무슨 얘기요?”
“지금도 집에서는 촌에서 적은 나이가 아니라며 결혼을 하라고 닦달해서 난리에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그리고 다른 이유도 있어요......”
“그건 나하고 내년에 결혼하면 될 것이고... 어머님은 지금도 나를 좋아하시잖아요?”
“엄마는 어제도 영찬 씨한테 시집가라고 성화신데, 무것도 모르는 큰 오빠가 닦달이 심해요.”
첫 번째 이유는 들어 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다른 이유를 물었다.
“다른 이유는 뭐요?”
그녀는 한참 머뭇거리고 있었다.
“말해보아요......”
“말하긴 어렵지만 영찬 씨와 헤어지고 난 후에 다른 남자와 사귄 적이 있었어요.”
갑자기 그녀의 말이 나의 뒷머리를 강타했다. 천국에서 살다 사람의 세상에 내려앉는 순간인 것 같았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컥! 하고 숨이 멎는 것 같은 충격이 오고 사람이 멍해졌다.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정신차려야 하고 냉정해져야 했다.
“ ....... ”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없이 싸우고 간 뒤 4년 가까이 되었으니 그럴 수는 있을 것이다.
“지금도 만나고 있어요?”
한참 후에 내가 말을 던졌다.
“오래 전에 헤어졌어요. 지금은 끝난 지 오래 됐어요.”
“어떻게 만났소?”
“영찬 씨가 가고 연락도 되지 않고... 친구들한테 인기가 있고 콧대가 높고 도도한 친구였어요. 그래서 친구들 보란 듯이... 그냥 장난으로 몇 번 만나다 그 뒤로 안 만난 거예요......”
몸까지 허락했느냐고 묻고 싶었지만 내 자존심도 상하고 또 민망할까봐 차마 그렇게 물을 수는 없었다. 아마 그런 것이 포함이 됐으니까? 나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닐까?
- 아! 아! 못 믿을 것은 여자의 마음이라고 하더니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내가 그대를 얼마나 귀하게 생각하고 아끼며 사랑했는데 ... 내가 그대를 금덩어리처럼 귀하고 귀하게 여겼었는데... 그대는 헌 가구 갖다 버리듯 자신을 쓰레기 마냥 시장 거름 터에 갖다 버렸구나. 고귀한 것은 고귀한 처신을 할 때 고귀한 대접을 받는다. 금의 대접을 받는 것을 마다하고 구리의 대접을 받으려고 자청하였단 말이냐. 어찌 여자가 되어서 그런 것도 모르더란 말이냐. 어떻게 나와의 일을 그렇게 쉽게 포기할 수가 있더란 말이냐. 우리들의 약속이 그렇게 쉽게 갖다버릴 그런 것이었던가. 이 세상에 단 한 사람 너를 처음 가졌던 나만이 그런 대우를 해 줄 수 있는데 너는 그 대접도 마다하고 천지분간도 못한 채 마음대로 날 뛰는 망아지처럼 울타리를 뛰어 넘어 훌쩍 달아나 버리고 말았구나. 이것으로 우리들의 아름다운 꿈은 금이 가고 다 깨어져 버리고 말았구나! -
밖으로 말하지 못하고 속으로 분을 삭이고 있었으나 한 바탕 무서운 회오리바람이 태풍처럼 가슴을 휩쓸고 지나가고 있었다. 낮에는 결혼을 했다고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밤에는 다른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나를 또 놀라게 하는 것이다. 왜? 이 사람은 끊임없이 나를 실망시키는 일만 하고, 내가 놀라는 행동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지.... 사랑은 두 사람의 영혼의 결합이라 그 행위 속에 ‘낙원과 천국’의 아름다움이 있다. 서로가 상대를 존중하고 지켜주려는 마음이 있어야 상대에게 몰입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하고 그와 같이 아름다운 시간을 나눌 수 있다면 몰입 도는 형편없이 떨이지기 마련이고 그런 일을 자주 반복한다면 그것은 폐선(廢船)의 깃발처럼 너덜너덜해져서 더는 아름다울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배우자의 불륜에 대하여 서로가 예민한 것은 단순한 시기나 질투가 아닌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몸과 마음이 헤픈 여자는 그런 이유로 남자에게 존중받지 못하고 그녀 스스로도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게 되니 사람으로써의 자존감이 사라지게 되어 시장판에 쌓이는 쓰레기처럼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얘기에 어이가 없어 놀라고 기가 막혔다. 갑자기 우리들의 만남이 삼류 통속 소설의 쓰레기가 되는 것 같은 충격이 왔다. 그녀를 만나고 크게 두 번 크게 놀라니 지난번 “댁!” 이라고 나를 불렀을 때와 지금이었다.
“.......”
연락을 하지 않은데 대한 후회와 회한이 밀려들었다. 그러나 이미 엎지른 물이고 지나간 일이니 주워담을 수도 없고 돌이킬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부분 잘 챙겨주지 못한 내 잘못도 있었다. 남자다운 결심이 필요했다. 첫 편지에서 이 세상에 있는 날까지 사랑해 보고 싶다고 희망하고 약속하지 않았던가! 기껏 이런 사소한 것 하나도 소화시키지 못하고 덮어 줄 수 없다고 해서야 어디 남자라고 할 수 있겠느냐? 덮기로 마음을 작정하였다.
“그게 다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만나지 않은 시간에 그대가 누구를 만났던 간에 괘념치 않겠소. 내가 자기의 첫 남자이기 때문에... 그렇지요?”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누구를 만났던 간에 그런 얘기로 지저분하게 자기를 괴롭히는 일은 없을 거요. 자기가 그런 말을 꺼내지 않는데 내가 먼저 입에 올리는 일은 없을 거요. 나도 잘 챙겨주지 못한 책임이 있는 것이니... 무슨 말인가 알겠어요? 앞으로는 그와 같은 일이 두 번 다시는 없어야 할 것이요? 물론 내가 그렇게 내버려 두는 일도 없겠지만...”
이 말은 다시 말하면 “기다릴 수 있겠느냐?”를 묻고 있는 것이다.
그녀는 그냥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다시 내가 말을 이어 나갔다.
“지금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내년 초에 합격자 발표가 날 텐데 떨어지던 걸리던 데리러 올 터이니까 그 때까지 기다려 줄 수 있겠소? 학교를 다닌다고 하여도 난 지금까지도 혼자서 살아왔소. 고생시키지 않을 자신이 있소. 기다려주면 좋겠소.”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아마 학생으로서 생활하는 것에 대하여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불안해하는가 싶어 내가 부언 설명을 해야 했다. 문제는 사랑에 대한 결속력이 얼마나 견고한 것인가가 문제가 되겠지만 그녀 쪽에서 확실하게 다가서지 않으니 자존심이 상해도 내가 말해 주어야만 했다.
그녀는 가만히 있었다. 고개를 끄덕이지 않자 언뜻 그녀가 시집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그녀와 보내는 오늘이 그녀와의 마지막 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실제로 그 날 이후에는 그녀를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 날이 그녀와의 마지막 밤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 날 밤도 그녀는 몸이 뜨거운 여자였다. 우리들의 다툼과 우리들의 사랑은 별개였다. 두 사람 다 몸이 건강하고 싱싱한 젊은 청춘이었다. 두 사람 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 세상에서의 서로에 대한 마지막 밤이 될 것을 추측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녀도 어쩌면 이 밤이 나와의 마지막 밤이 라는 것을 알고 그랬을까? 나는 부지불식간(不知不識間)에 불빛에 반사되어 벽면에 비춰 흔들리는 그녀와 나의 움직이는 그림자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이리의 여인숙에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늘 우리들의 일에 대해서 후회하지 않을 께요.” 하는 말을 했었다. 그녀의 말은 그 때 이미 오늘과 같은 이별을 염두에 두고 했던 말일까? 먼 훗날에 생각하니 오늘 나한테 한 얘기는 내가 그녀를 쉽게 단념하도록 배려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들었다. ( 여름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