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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 한달동안 그리스, 터키의 고대 유적지를 주마간산으로 훑어보고 문명의 교류니 문명의 원형 (Archetype)에 대해서 얘기를 꺼낸다는 것이 가당치도 않은 일이란 것을 알지만, 여행을 통해 느끼거나 생각해본 것을 더 잊어버리기 전에 글로 남겨놓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내서 이 글을 쓴다.
여기에 끄적거린 내용은 이번 터키.그리스의 고대 유적지 또는 박물관 전시물에서 봤거나 관련 책을 읽다가 호기심 또는 궁금증을 갖게 된 내용으로, 이 분야의 전문지식이 별로 없는 내가 어떤 학술적 주장을 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다. ^^;;
2015년 9월6일 오전에 터키 카파도키아 지역의 으흘라라 계곡을 구경갔다. 마치 미국 서부의 그랜드캐니언처럼 땅이 쩍 갈라진 곳인데 계곡 바닥엔 개울물이 콸콸 흐르고 주변에 미루나무, 버드나무가 잘 자라고 있어 풍광이 장엄하면서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이 계곡의 개울물을 따라서 오솔길이 나 있었고 이 길을 따라서 1시간 정도 트래킹을 하였는데 이번 터키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소 가운데 하나였다.
계곡 아래로 내려가는 중간 쯤에 기독교 석굴사원이 있어서 잠시 잠깐 들러 내부를 구경했다.
언제 만들어진 석굴사원인지는 모르겠는데 안쪽에 몇개의 방이 있었고, 천정과 벽면에 채색 성화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양식은 기독교 성서의 내용을 주제로 한 정형화된 그림으로 이 지역의 석굴사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런 그림이었다.
(아래 사진) 석굴사원의 한 동굴에는 이 지역의 토착문양인 악마의 눈이라 일컫는 '나자르 본주' 문양이 정면 벽면에 그려져 있었다. 그런데 이번 여행기를 쓰면서 이 사진을 찬찬히 들여다 보다가 석굴의 천정에서 재미난 문양을 발견하였다. 마치 십자가 모양으로 배치된 4개의 꽃잎이 사방연속무늬로 그려진 문양인데 아름다운 현대 벽지 문양을 보는 듯해서 그냥 별 생각없이 찍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 여행기 1편을 쓰면서 이 사진을 다시 찬찬히 들여다 보다가 이 문양과 매우 비슷한 문양이 새겨져 있는 고려시대 청자향로가 퍼뜩 떠올랐다. ^^ 그건 바로 고려청자 투각 칠보뚜껑 향로이다.
(1) & (2): 터키 카파도키아의 으흘라라 계곡에 있는 기독교 석굴사원의 벽면 및 천정 문양: 십자가 모양으로 동.서.남.북으로 펼쳐진 4개의 꽃잎 문양이 사방연속무늬로 장식되어 있다.
(3): 청자 투각 칠보뚜껑 향로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작품으로 추정됨): 향로 연기가 나오는 투각 부분에 4개 꽃잎이 사방연속무늬로 배치되어 있다. 이 문양에 대해서는 우리 미술사에서 칠보 문양이라 부른다. 왜 칠보 무늬라고 부르는지는 모르겠으나 기독교 석굴사원 천정의 문양과 너무나 비슷하다.
(4) 청자 사자장식 뚜껑 향로 (고려청자 전성기인 12세기 작품으로 추정됨): 사자 모양의 동물이 오른발로 동그란 수국(绣球: 수놓은 공 모양의 장식물)을 딛고 있는 향로이다. 이 수국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희미하지만 4개의 꽃잎 문양이 사방연속무늬로 수를 놓고 있다고 한다.
고려청자 향로를 장식하고 있는 4개의 꽃잎이 동.서.남.북으로 펼쳐져 사방연속무늬를 이루고 있는 문양이 소아시아 지역의 꽃잎 문양과 어떤 연관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지난 그리스 여행-1편에 언급한 내용으로, 고려청자의 접시나 향로에 새겨진 꼬불이 문양 (Meander pattern)이 고대 그리스 전통문양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인데, 1편에 소개한 내용이니까 간단히 언급하고 지나간다.
(1): 고대 그리스 전통 문양 종류
(2): 청자 학 무늬 반 (12세기, 전남 강진군 사당리 도요지에서 출토): 반(盤)이면 바닥이 넙적한 대접인데 바닥 옆면에 고대 그리스 문양 (파도형 문양)이 둘러쳐져 있다.
(3) 청자 도철 무늬 향로 (12세기, 전남 강진군 사당리 도요지에서 출토): 향로 손잡이 부문이랑 몸체에 고대 그리스 문양 (파도형 문양 + 이중 나선형 문양)이 장식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많은 고려청자에서 고대 그리스 문양이 관찰된다.
아래 그림은 고대 그리스 문양 종류 가운데 일부로써 문양의 변천 과정을 내 나름대로 추정해 본 것이다. 고대 그리스 문명은 서양문명의 원형이기에 수많은 서양의 고대 미술사학자들이 이 문양에 대해 깊은 연구를 하고 논문이나 책으로 발표를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연구결과를 들여다 보지도 않고 섣부르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나중에 틀렸다는 것을 알았을 때 민망함을 느끼겠지만.... 일단 내가 고대 그리스 문양을 보고 직관적으로 느낀 바를 말해 본다면, 왼쪽의 파도형 문양이 먼저 디자인되었고 나중에 보다 단순한 형태의 오른쪽 문양으로 변화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
그리고 이러한 문양이 고려청자에 등장한 것을 봤을 때, 나는 매우 놀라지 않을 수 없었고, 무려 3,000년의 세월을 뛰어 넘어 동서양 문명의 교류가 일어났다는 생각에 감탄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래는 고대 그리스 청동기 시대의 유물에서 본 들국화 문양으로 고려청자의 들국화 문양과 형태가 매우 비슷하다. 사실 들국화는 고유명사가 아닌 보통명사이다. 이러한 꽃잎 모양을 갖는 들국화로는 구절초, 쑥부쟁이, 개미취가 있다.
(1)&(2): 고대 그리스 청동기 시대 유물의 들국화 문양 (그리스 아테네 국립 고고학 박물관)
(3)&(4) 12세기 고려 청자에 등장하는 들국화 문양
여기까지가 내가 이번에 터키.그리스 여행 중에 본 고대 그리스 문양과 우리나라 청자에 등장하는 문양이 서로 매우 닮은 것을 발견하고 소개한 것의 전부이다. 언제 기회가 된다면 고대 그리스 문양이 어떤 경로로 해서 고려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밝혀내고 싶다. ^^
다음부터는 위와 다른 얘기인데, 인류 문명의 교류, 문명의 원형 (Archetype)에 관해 이런 저런 나의 잡생각을 두서없이 적어 본 것이다.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구려 무용총의 벽화 (사냥 장면)랑 6세기 전반 (A.D 535-556)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둔황석굴 249굴의 벽화 (사냥 장면)가 그림의 구도나 화법 측면에서 닮은 면이 많다고 생각된다. 시기적으로 앞선 고구려 무용총의 사냥 그림이 이런 그림의 원형(Archetype)일까?
박물관, 유적지, 그리고 역사책에서 본 유물 달랑 3점을 가지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기엔 매우 조심스럽지만, 오늘날 고대 그리스 문양의 하나로 알려진 동아줄 2개를 서로 꼬은 듯한 아래 문양의 원형은 내가 본 3점의 유물에 비춰봤을 때, 고대 히타이트 문양으로 짐작된다.
(1) 고대 히타이트 문양 (기원전 8세기, 히타이트의 돌기둥 받침대, 터키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 소장품)
(2) 고대 그리스 문양 (기원전 421-406; 아테네 아크로폴리스 언덕 위에 세워진 에레크테이온 신전 (Temple of Erechtheion)의 기둥 하단부에 문양이 새겨져 있다.)
(3) 고대 그리스 문양 (기원전 4세기, 스키타이 황금 항아리,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소장품)
스키타이 부족은 기원전 8세기~2세기 사이에 터키 북부~우크라이나 지역 (흑해 연안)에 살던 유목 민족으로 인류 최초로 유목민족 국가를 건설하였다. 스키타이 국가의 최전성기는 기원전 4세기로 그리스 지역의 폴리스와 왕성하게 문명 교류를 하였는데, 황금 항아리는 그리스 장인이 스키타이족의 주문에 맞춰 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스키타이 국가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인 마케도니아 필리포스 2세와 전투 (기원전 339년)에서 패하면서 몰락의 길을 걸었다. ㅠ
나는 최근에 김호동 교수가 쓴 책, '아틀라스-5편: 중앙유라시아사'에서 스키타이 부족과 국가를 다룬 챕터를 읽고 나서 신라 경주에서 발견되는 황금 유물이 과연 스키타이 부족과 연관성이 있을까? 하는 의심이 생겼다. 왜냐하면 두 문명간에 시기적으로, 지리적으로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원전 2,000년-3,000년경부터 등장하는 고대 그리스 문양이 기원후 1100년대에 제작된 고려청자에 등장하는 것을 보면, 이런 일이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긴 한다. ㅎ
도올 김용옥 선생님이 쓴 중국일기-2편에 부록형식으로 작년 10월경에 IS 에 의해 파괴된 시리아 팔미아 유적지에 대한 사진과 소개 글이 실려있다. 인류문명의 위대한 유산이 폭도들에 의해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것을 보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기에, 그리고 다시는 볼 수 없기에 자신이 오래전에 이 유물을 직접 보고 찍은 사진을 일종의 기록화로 남겨 놓은 것이다.
(1) 시리아 지역의 팔미라 유적지에 있는 바알 신전의 천정 꽃문양 부조 (건축시기: A.D 32년). 가운데 원 중심에 커다란 꽃 문양이 있고 주위를 에워싼 원판에는 고대 그리스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만 (卍)자 문양이 있다.
(2) 터키 안탈리아에 있는 하드리안 문의 천정 꽃문양 부조 (건축시기: A.D 130 년)
(3) 터키 에페스의 로마황제에 헌정된 도미티안 신전의 잔해로 꽃문양이 새겨진 아치형 석재 (건축시기: A.D 89-90년)
도올 선생에 의하면, 팔미라의 바알신전의 천정에 새겨진 각종 문양이, 이후에 지어진 많은 신전이나 기념비적인 건축물에 새겨진 각종 문양의 원형(Archetype) 이라고 한다. 특히 로마시대 건축물의 꽃 문양에는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연꽃처럼 생긴 문양도 있기에, 고구려 와당에 나타나는 다양한 문양이 과연 중국의 위.진시대에 고구려에 전달된 불교문화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연꽃 문양인지에 대해서는 한번쯤 의심을 하고 면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다.
또 이건 여담이지만, 나는 예전에 기독교 구약에 등장하는 바알신에 대해서 하나님이 몹시 질투하면서 바알신을 숭배하는 유대인에게는 혹독한 벌을 내렸기에 사탄과 같은 나쁜 신인줄만 알았다. 그런데 인류 문명사를 공부하다보니, 바알신 (God of Bel, God of Baal)이야 말로 인류가 수렵.채취.유목 생활에서 농경 생활로 전환하면서, 그리고 정착생활을 하는 무리가 모여 부족국가가 성립되면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등장할 수 밖에 없는 농경신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바알신은 천둥의 신, 폭풍의 신이기도 하지만 농사가 잘 되도록 해주는 풍요의 신 (God of fertility) 이기도 했다. 농사에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기후.자연 현상을 지배하는 바알신을 잘 달래야만 풍년을 맞이할 수 있기에 고대인이 바알신에게 달램의 제사를 지낸다는 것은 자연 앞에 무력한 인간의 너무나 자연스런 모습인 것이다.
이름만 달리 불렀을 뿐이지, 우리 단군신화에도 바알신이 등장한다는 것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삼국유사의 고조선 건국신화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환웅이 무리 3천을 이끌고 태백산(太白山) 꼭대기 신단수(神壇樹) 밑에 내려와 여기를 신시(神市)라고 하니 이로부터 환웅천왕이라 불렀다.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 곡(穀), 명(命), 병(病), 형(刑), 선(善), 악(惡) 등 무릇 인간의 3백 60여 가지의 일을 주관하고 인간세상에 살며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여기서 농경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를 거느리고'라는말이 나오는데 바로 풍백(風伯), 우사(雨師), 운사(雲師)가 농사를 주관하는 바알신인 것이다. 이와같이 농경문화와 부족국가의 성립과 더불어 호모 사피엔스는 바알신을 숭배하였고, 농사가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던 것이다.
(1) 시리아 지역의 우가리트 (Ugarit)에서 발굴된 중동의 바알신 부조. 오른손에 벼락을, 왼손에는 곡식을 쥐고 있다.
(2) 고구려 고분 (오회분 4호묘)의 벽면에 그려진 신농. (우리 고대역사에 밝은 법륜스님은 신농은 중국의 농업신을 일컫는 말이기에, 고구려의 농업신은 우가 (牛家)일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우가 (또는 신농)의 모습은 농사와 밀접한 황소 머리를 하고 있고, 오른손에 곡식 이삭이 쥐어져 있다. (고구려 바알신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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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 한달이나 그리스 여행을 했다니 우선 부럽네요. 그리고 이렇게 세밀한 관찰력으로 유물을 살펴보시다니 대단하십니다. 그런데 큰 틀에서 여행에서 느낀점도 올려주세요. 나중에 참고로 하게요.^^.
네,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회사일이 바빠서 그리스 여행기를 못 쓰고 있는데, 이번주에 그리스 여행기-3편 나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