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판 맥베드라는 평을 받는 인간상인 보리스 고두노프Borís Godunóv(1552~1605)는 푸시킨Pushkin이 작품의 경향을 바꿨다는 귀양지 미하일로프스코에서 쓴 희곡 <보리스 고두노프>로 널리 알려져 있다. 권력의 속성이자 숙명인 인기상승을 빌미삼은 집권과 그로 말미암은 권력 확장의 야욕이 끝내 지지자들도 등을 돌리게 만들 뿐 아니라 적대세력을 양산하게 되어 개인적으로도 비참하지만 민족적으로 역사의 암흑기를 만든 예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교훈으로 남아 있다.
러시아사에서 공식적으로 차르라는 칭호를 처음 도입해 강력한 독재권을 확립했던 이반 4세(1530~1584)는 그 살기등등한 위세 때문에 ‘이반 뇌제雷帝’로 불린다. 보리스 고두노프는 이 뇌성벽력 같은 독재자의 환심을 산 타타르족 귀족으로, 누이동생 이리나를 황태자(표트르 이바노비치)와 결혼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는 후환이 될 소지가 있는 황태자의 동생 드미트리를 몰래 죽여버려 자신이 섭정할 수 있는 길을 훤히 열어두었다. 러시아의 천재화가 레핀은 ‘살해당한 아들을 안고 있는 이반 뇌제’라는 그림을 남겼는데, 자식을 잃은 슬픔 앞에서는 독재자도 역시 연약한 갈대임을 느끼게 한다.
뇌제의 뒤를 이은 표트르를 앞세워 섭정을 시작한 보리스는 부당한 권력 찬탈자가 초기에는 항상 그랬듯이 역사적인 업적을 세워 민심을 얻는 데 성공한다. 표트르 황제가 죽자 귀족들이 보리스를 황제로 추대할 정도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이내 본색을 드러내 귀족들의 이익을 챙겨주기 위해 그때까지 비교적 자유로웠던 농민들을 더욱 옥죄기 시작했다. 자유로웠던 이주권을 1년에 하루만 허용하는가 싶더니 그것마저 박탈해 버렸을 뿐만 아니라 자유농민을 농노로 만들기도 했다. 여기에다 부역과 수탈은 더욱 극심해졌다.
불만이 쌓이자 농민반란이 도처로 확대되어 갔는데, 한 가짜 승려가 이미 죽어버린 이반 뇌제의 막내아들 드미트리를 사칭하며 등장했다. 마침 러시아를 넘보던 폴란드가 이 땡초를 내세워 침공하자 농민은 물론 귀족들조차도 공공연히 보리스 치하에 있기보다는 폴란드의 지배가 낫다면서 황제로부터 등을 돌려버렸다. 보리스는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 생각이었으나 그럴 여유도 없이 죽어버렸고 침략자 폴란드군은 아예 그의 가족을 하나도 남겨두지 않았다. 가짜 드미트리가 지배자로 앉았으나 이내 그 정체가 탄로나 살해당하자 폴란드는 새로운 드미트리 참칭자를 내세워 러시아를 지배하게 되었고, 러시아 민중은 독립운동을 전개해 1612년 크렘린의 폴란드군으로부터 항복을 받아냈다.
셰익스피어의 영향을 받은 푸시킨이 이 파란만장한 역사를, 보리스가 회개하는 모습에 초점을 맞춰 그린 것이 <보리스 고두노프>이다. 드미트리를 살해한 범인이었던 보리스는 가짜가 등장하자 자신이 죽인 그의 망령이 나타난 것으로 여겨 공포와 번민 속에서 죽어간 것으로 푸시킨은 해석했다. 그러나 보리스를 증오하는 농민들 때문에 조국 러시아가 멸망하도록 해서는 안 된다는 배려에서 푸시킨은 폴란드군의 입성을 환영이 아닌 침묵으로 맞아들인 것으로 묘사한다. 이 침묵은 역사의 진실을 간파한 농민들이 곧 가담하게 될 독립투쟁을 상징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관료주의를 비판하는 입장에 섰던 작가 알렉세이 콘스타노비치 톨스토이는 이 시대를 <이반 뇌제의 죽음> <황제 표트르 이바노비치> <황제 보리스>라는 3부작 희곡으로 썼는데 권선징악적인 요소가 강한 대신 민족사적인 평가나 의미는 약화돼 있다. 작곡가 무소르그스키는 푸시킨의 작품을 본떠 제목도 그대로 오페라로 만들었으면서도 죄의식보다는 민중의 의지를 강조함으로써 오히려 문학성을 더한다. 즉 보리스가 처음에는 민중의 환호를 받으며 집권했으나, 그가 멸망하게 된 것도 가짜 드미트리 때문이라기보다는 민중의 저항의 의한 것으로 구성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