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드림산행안내:2022. 4.3 산행지(트래킹):경남 창녕 남지 개비리길***
산행코스:창나루주차장―마분산(180m)―영아주차장―양수장
―창나루주차장(6.4km)
###출발지: 신기 한마음상가(09:00)출발
###준비물:트램킹복장&도시락.식수 준비할것
###트래킹 소요시간:3시간정도
###회비(정회원):30.000
(비회원):35.000
###차량지원회원:지원비 지급
《창녕 남지 마분산馬墳山개비리길》
낙동강 남지개비리길은 남지읍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에 이르는 낙동강길로 남강이 낙동강을 만나 몸을 섞는 기강(岐江) 유역에
자연적으로 형성된 이 길은 용산마을에서 영아지마을까지 길이 약 2.4㎞, 높이 수십 m의 수직 벼랑의 중간에 나 있다.
너비가 1m 안팎으로 매우 좁지만 푸른 강물과 그 위로 우뚝 솟은 거무스름한 빛깔의 단애(斷崖), '기강단애'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곳 경치는 '남지 8경'의 하나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좁은 이 길은 수십 미터 절벽 위로 아슬아슬 이 어가며 낙동강이 그려주는 눈부신 풍경이다.
<마분산 馬墳山180m>1592년 임란이 발발하자마자 의병을 일으킨 망우당(忘憂堂) 곽재우(郭再祐·1552~1617) 장군은 개비리길이 있는
마분산(馬墳山)에 토성을 쌓고 왜적과 싸워 승리를 거뒀다. 당시 망우당은 애마어 벌집을 말에 매어 적진으로 돌격시켜 왜적과 싸워 최초의 승전을 했다.
왜적의 총탄에 맞아 죽은 자신의 애마를 토성 안에 묻었는데, '마분(말무덤)'이란 산 이름은 거기서 유래됐다.
6·25 때는 부산을 점령하기 위해 창녕으로 밀고 내려온 북한군에 맞서 아군이 배수진을 치고싸운 끝에 가까스로 저지. 강이 피로 물들 정도로 큰 희생을 치렀다.
<역사의 현장> 개비리길 주변은 임진왜란 당시 곽재우 장군과 의병들이 육지에서 첫 승리를 거둔 기음강 전투의 역사적 현장이며,
한국전쟁의 낙동강 최후 방어선으로 남지철교(등록문화재 제145호)와 함께 전쟁의 상흔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개비리길 유래>는 여러 이야기로 전해진다. 영아지마을에 사는 황씨할아버지의 개 누렁이가 11마리의 새끼를 낳았는데
그 중에 한 마리가 유독 눈에 띄게 조그만한 조리쟁이(못나고 작아 볼품이 없다는 뜻의 지방 사투리)
였다.
힘이 약했던 조리쟁이는 어미젖이 10개 밖에 되지 않아 젖먹이 경쟁에서 항상 밀렸고 황씨 할아버지는 그런 조리쟁이를 가엾게 여겼었고
새끼들이 크자 10마리는 남지시장에 내다 팔았지만 조리쟁이는 집에 남겨두었다. 어느 날 등(山) 너머 시집간 딸이
친정에 왔다가면서 조리쟁이를 키우겠다며 시집인 알개실(용산리)로 데려갔다. 며칠 후 딸은 깜짝
놀랐다.
친정의 누렁이가 조리쟁이에게 젖을 먹이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누렁이가 젖을 주려고 등(山)을 넘어 온 것이었다.
누렁이는 낙동강을 따라 있는 절벽면의 급경사로 인하여 눈이 쌓이지 못하고 강으로 떨어져 눈이 없는 곳을 따라 다녔던 것을 확인하였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높은 산 고개를 넘는 수고로움을 피하고 ‘개(누렁이)가 다닌 비리(절벽)’로 다니게 되어 ‘개비리’라는 길 이름으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다른 유래로는 ‘개’는 강가를 말하며 ‘비리’는 벼랑이란 뜻의 벼루에서 나온 말로서 강가 절벽 위에 난 길의 뜻으로 벼랑을 따라 조성된 길을 의미한다.
<함안 능가사 楞伽寺>능가란 용어는 미혹의 세계에서 깨달음의 세계로 갈수있는 여래장사상을 설한
능가경이다. 楞 모릉능 모 伽절가
부처님이 대혜보살을 위해 법화경을 설한 곳이 스리랑카의 능가산이다. 인간은 본래 여래가 될 본성을 가진다는 뜻의 “일체중생은 여래장” 설법이다.
지금의 능가사(남지사람들은 남지 철교절이라 한다)의 창건당시 절 이름은 용주사였다. 절 이름도 땅의 형세 그대로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합천 해인사의 지원스님은 전국을 만행하다.
낙동강 용화산에서 용주사 김선덕화 보살을 만나게 된다.
나이가 많은 선덕화보살이 세상과의 인연을 다하자 1971년 지원스님은 이 절로 와서 1972년도에 능가사로 개명한다.
<약사대불>여래장사상과 결부된 여래태를 근간으로 중생을 모든 병고에서 구하고 무명의 아픔까지도 치유하라는
부처님의 가피를 입어 용화산 머리에 약사여래대불을 조성하게 된다.현재 능가사의 약사대불은 왼손에 약병을 들고 있어 약사십이대원을 베풀고 있는듯 하다.
이때가 1999년 착공하여 2000년 10월에 조성하니 부처님 경전에 보듯이 바로 중생의 병을 고쳐주는 위대한 부처인 大醫王佛 즉, 약사유리광여래인것이다.
능가사범종루 앞에 포대화상의 석상 얼굴은 환한 웃음으로 앉자 게신다.
불조사 포대화상(布袋和尙) 이약기
포대화상은 미륵보살 화현이라 하여 신앙의 대상으로 섬겨지고 있다
포대화상은 중국 당나라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법명은 계차, 호는 장정자 이다
악림사에 출가 했으며 뚱뚱한 몸집에 항상 웃는얼굴이며 배는 풍선처럼 늘어져서 지팡이를 짚고 커다란 자루를 메고 다녔기에 사람들이 포대화상이라 한다
자루 속에는 장난감 과자 엿 등을 넣어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무엇이든 주는대로 받아 먹고 땅을 방바닥 삼고 구름을 이불 삼아
아무곳에서나 벌렁 드러누워 태평하게 코를 골고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면서 세상사람들과 차별없이 어울리고 길을 가르쳐 주고 이끌었다고 한다.
포대화상은 복을 가져다 주는 분이다. 포대화상의 시 한수를 소개한다
"나에게 한자루의 포대가 있으니 온 허공에 걸림이 없도다 열어서 펼치면 온 우주에 두루하고 오무리면 관자재로다"
포대화상은 육신의 몸을 버릴때 악림사 입구 반석 위에 앉아 큰 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그후 사람들은 포대화상을 미륵불의 화현으로 여기게 되었다
포대화상은 생각만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분 이다 포대화상을 만나면
★손가락으로 포대화상의 배꼽을 간지른다 간지러워서 포대화상이 웃으면 따라서 크게 웃는다 큰 웃음에 마음속 고민이 사라지고 세가지 복이 생겨난다 (건강, 장수, 부귀)
★ 포대화상의 머리를 만지면 지혜가 생겨서 자신보다 못한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 포대화상의 자루를 만지면 재물운이 들어와 돈이 생겨서 남에게 베풀수 있는 사람이 된다
.
미륵이 백 사람 천 사람 억 사람의 몸으로 나투셨는데 때때로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였지만 그때마다 아무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더라 발닿고 머무는 곳이 안방 이었고 아이들이 배를 만지고 간지럽혀도
마냥 웃기만 했던 인자하신 포대화상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 도훈스님추천
<용왕제>남지철교아래에는 용의 아들인 이목離目이 살고있어 가끔 강물의 풍랑이 심하여 나룻배의 사고가 빈번하여
해마다 수신을 다스리는 용왕제를 지내야 도하가 쉽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번뇌와 열화를 줄여준다고 한다.
이처럼 용주사는 용왕제를 주관하며 1931년 철교가 들어선 이후 철교절로 이름이 자자하고 함안군 사람보다는 남지사람들의 기도처로 많이 알려져 있다.
###참고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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