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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마오타이주 (홈피) | 2) 리네 아쿠아비트 | 3) 리네 아쿠아비트 행로 표기 |
마오타이주처럼 특정 지역에서 특정 방식으로만 만들어야 제 맛이 나는 술이 또 있다. 바로 아쿠아비트라는 증류주인데, 라틴어로 '생명의 물'을 의미하는 'aqua vitae'에서 이름을 가져왔다. 이 술은 북유럽 일대에는 잘 알려져 있고 여러 지역에서 생산되지만 노르웨이 중서부 지방에서 생산되는 '리네 아쿠아비트'(linje akvavits)를 으뜸으로 친다. 생산 지역을 나타내는 지도가 술병에 붙어 있지만, 줄곧 그곳에서만 만드는 것은 아니다. 오크통에 넣어 배에 싣고 다니며 적도를 두 번 가로지르는 동안 술이 흔들리도록 하는 특별한 방식을 사용한다. 극심한 기후 변화와 장기간의 흔들림이 특별한 향과 맛을 만들어낸다고 믿는다.
그런 생산 방식에는 연기설화가 있다. 노르웨이의 리스홀름(Lysholm)이라는 회사에서 1805년에 아쿠아비트를 팔기 위해 동인도로 갔다가 못 팔고 배 안에 실은 채로 다시 노르웨이에 돌아와보니 술맛이 좋아져 있었다고 했다. 경비 감소와 수익 증대를 위해 과학적 설비를 갖추고 대량생산을 하려고 했으나, 향과 맛이 달라져 실패하는 것이 마오타이의 경우와 같다. 그 뒤 다시 고전적인 방식으로 되돌아가서 오늘날까지 그대로 지키고 있다. 술병에 술이 지나온 행로를 표기하여 실제 적도를 지나왔음을 인증하고 있다.
2.
특정지역의 물과 자연 환경에서 만들어내야 제 맛 나는 발효음식이 우리나라에도 있다. 바로 순창고추장이다. 순창과 마오타이는 둘 다 시골 청정지역이고 양자강이나 섬진강을 끼고 있다. 날씨 등 입지 조건이 음식 발효에 적당하다. 각각 만들어낸 술이나 고추장이 오랫 동안 이름을 날리며 상품 이름이 된 생산지를 널리 알리는 것도 같다.
순창은 물과 토양과 기후가 고추장 발효에 적절하다. 섬진강을 끼고 있어 물이 좋고, 토양이 비옥해 농산물의 품질이 좋다. 물에는 철분이 많고 고추와 콩은 당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개일수는 70~75일이어서 전국평균 50일보다 월등히 많다. 습도가 72.8%로 높고, 일교차도 15~20°C로 크다. 뚜렷한 일교차나 높은 습도는 효모균 발효에 최적의 조건이다.
순창고추장은 이와 같은 자연조건에서 만들어져서 순창고추장이다. 순창에서 만들어져서 순창고추장이고, 순창에서만 내는 맛을 가져서 순창고추장이다. 다른 곳에서 만든 고추장은 순창고추장이 아니다.
순창 고추장에는 이성계가 만일사(萬日寺)라는 절에 가다가 농가에서 대접받은 고추장 맛을 잊지 못해 왕이 된 후 진상하라고 했다는 설화가 있다. 그런데 고추는 임진왜란 즈음 들어왔으며《증보산림경제》(1766)에 '만초장'이라는 이름으로 고추장 제조방법이 최초로 기록되어 있다. 그 뒤 〈농가월령가〉 3월령과 《규합총서(閨閤叢書)》(1809)에 올라 있다. 고추장은 1700년대에 담그기 시작하여 19세기에는 고추장이 보편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성계가 고추장을 맛봤다는 현저한 당착은 이면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멍이라 할 수 있다.
순창까지 올 수 있었던 임금은 이성계가 유일하다. 구중궁궐에 계시는 왕이 어떻게 순창까지 올 수 있겠는가. 설화에 암행을 다닌 임금으로는 숙종이 유명하지만 설화 속 숙종대왕이 간 곳은 한양 인근이다. 임진왜란 때 궁궐을 떠나 선조임금은 북으로 의주까지 갔을 뿐이므로, 순창에 들렀을 가능성은 없다. 세종이나 세조, 영조 등 다른 임금은 온양으로 휴양차 오고, 정조가 수원으로 부친 사도세자를 기리려 행차한 기록은 있지만, 순창까지 내려온 임금은 없다. 순창의 고추장을 현지에서 먹어볼 가능성이 있는 임금으로는 태조 이성계가 유일한 것이다. 순창 고추장을 먹은 임금은 이성계라고 할 수밖에 없어서 고추장 제조 시기와 맞지 않아도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 설화에서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더 중요하다.
고추장맛을 안다는 것은 의식주 중 식생활의 기본을 잘 안다는 것이다. 식생활의 기본은 백성들 삶의 근간이다. 이성계는 순창 고추장을 먹어 민생을 살피는 어진 현군으로 인정된다. 이것은 이야기의 표면이다. 그 이면에는 고추장을 함께 먹어 백성이나 임금이나 마찬가지라는 평등사상, 임금을 그렇게 만든 순창 사람들의 자부심이 나타나 있다.
순창 사람들의 품격은 장유(張維,1587-1638)의 시에서도 확인된다. 장유는 순창 고을 원님으로 가는 사람에게 「순창에 부임하는 임실지를 전송하며(送林實之赴官淳昌)」(『谿谷集라』권31)라는 시를 지어 주었다.
昔年行役遍湖中 왕년에 호남 땅 두루 돌아다녀 보니,
脩竹淸川處處同 어딜 가나 대나무 숲 맑은 시냇물.
最是名區赤城勝 그 가운데 적성이 으뜸가는 명승이고
況聞淳俗訟庭空 더구나 풍속이 순박해 재판정이 비었다네,
明時帶印寧非達 밝은 시대 벼슬한 그대 능숙한 인재 아니리요
妙手操刀本自工 일 처리하는 솜씨 본래부터 능란하겠지.
百里鄕關官路穩 백리 시골 고장에서 관직 생활 편안하리니,
安輿迎奉趁春風 모친을 모시고 봄바람 맞으러 가게나.
순창 고을은 경치가 빼어나고, 풍속이 순박해 송사가 없어 재판정이 비어 있는 고장이라고 칭송했다. “적성”(赤城)은 순창의 옛 이름이다. 임실지는 행적이 확인되지 않는 관리다.
명승지에서 순박한 풍속을 이루고 재판정이 빌 정도로 순수한 마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니 순창고추장을 먹은 임금과 동격일 수 있다. 순창 고추장은 귀하고 격이 높은 사람들이 즐기는 품격 있는 음식이라는 의식이 설화와 한시를 이어보면 확인된다.
<순창 강천산 병풍바위>
<만일사 장독대>
<고추장 익는 마을>
3.
의식주 가운데 전통이 가장 강한 것은 식생활이다. 한복과 한옥은 일상생활에서 유리되었으나, 음식은 이어지는 것이 많다. 간장, 된장, 고추장은 버릴 수 없다. 순창은 장맛이 가장 좋은 곳이며 맛과 제조법이 잘 전승되고 있어, 한국음식의 근원을 간직하고 있다. 음식 전통의 성지라고 할 수 있다.
소금이 아닌 간장으로 간을 해야, 음식 맛과 영양이 더 풍부해진다. 간장에는 메주간장과 젓갈간장이 있다. 동남아시아는 젓갈간장을, 동북아시아는 메주간장을 사용한다. 일본은 이 둘을 다 쓰다가 요즘은 거의 메주간장만 쓴다. 메주간장과 젓갈간장을 다 쓰는 곳은 우리 한국만이다. 또 하나의 발효식품 고추장까지 있다. 양념으로 쓰는 발효음식이 이처럼 다양한 나라는 세계적으로 찾기 어렵다. 다양한 양념 발효음식을 갖추어야 맛의 교향곡을 연주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한국이 세계적인 음식의 나라가 될 수 있는 절대조건이다. 이 절대적 조건의 핵심을 장악하고 있어, 순창은 한국 음식의 성지를 넘어 세계 음식의 성지가 될 수 있다.
순창이 제공하는 양념의 힘을 받아들여 전주는 음식의 고장으로 등장해 화려한 조명을 받고 있다. 전주비빔밥은 전주 콩나물과 순창고추장과의 만남에서 시작되었다. 전주의 한다하는 맛집의 재료를 확인해보면 고추장은 무조건 순창고추장이다. 닭볶음과 민물매운탕이 전문인 한 음식점 주인은 우리는 절대 순창고추장만 쓴다, 다른 고추장을 써서는 이런 맛을 절대 낼 수 없다, 비싸도 순창고추장이다. 거의 신앙처럼 순창고추장을 받든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한국식당에서도 순창고추장만 사간다고 한다. 스페인은 유럽 최고의 맛 고장이라 거기서 경쟁력을 가지려면 맛을 제대로 내야 해서 순창고추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세계 음식의 성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빈말이 아니다.
그런데 고추장도 순창도 이름이 높아야 할 만큼 높지는 않다. 순창고추장을 사용하는 전주비빔밥이나 전주 한정식의 이름은 높을 대로 높으나, 맛의 벼리를 제공하는 순창은 후견인 노릇만 조용히 하고 있다. 순창을 찾아와 순창고추장마을, 장류박물관, 고추장시원지박물관 등의 성지를 순례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져야 한다. 강천산 단풍 구경까지 하면 더 큰 감격을 누릴 수 있다. 음식 한류의 메카가 순창인 줄 세계 각국 사람들까지 알고 가야 한다.
<옹기체험관>
<순창장류박물관>
<순창 장류체험관>
한국의 대중문화가 물결을 이루어 세계 도처로 나가 널리 사랑을 받는 한류는 대중문화의 영역을 넘어서고 있다. 한국적인 것, 대중적인 것의 세계화인 한류에서 전통이 가장 강한 음식문화가 중심을 이루어야 한다. 순창은 국내 명성을 넘어 국제 명성을 누려야 한다.
마오타이주가 국제무대에서 처음부터 주목받았던 것은 아니다. 시골 촌스러운 포장을 하고 1915년 박람회에 나타난 이 술은 누구의 이목도 끌지 못했다. 대표단 중 한 사람이 고의로 술병을 깨뜨려 향기가 박람회장에 그득하게 퍼지자 주목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마오타이주의 세계화와 고급화에는 모택동과 주은래가 크게 한몫을 했다. 이들이 닉슨, 스탈린, 김일성 등 외국 지도자의 접대와 국내 거국적 행사에 이 술을 적극 사용했다. 대국의 힘, 정치의 힘이 세계화의 배경이다. 이번 추석에는 한 병에 20만원이 넘는 마오타이주가 품귀 현상을 빚어 판매를 제한해야 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다.
순창고추장은 마오타이주보다는 팔자를 잘 타고났다. 충격요법이나 의도적인 지원이 없어도 성장이 순조로울 수 있다. 한류가 이미 다음 세대 문화의 대세가 되어가고 있어 그 중심에 자리 잡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 한류는 소수 귀족 문화가 아니다. 한류는 차등의 문화가 아니라 향유하는 사람 누구나 동등해지고 즐거워지는 대등의 문화, 신명풀이의 문화다. 순창고추장은 세계인 입맛의 신명풀이를 함께 하게 할 수 있다.
<장류 장아찌 등 순창 저장 식품들>
<순창 장류 식품>
<순창고추장 이용 한정식(산경가든)>
마오타이주는 이름은 높아도 실속이 없다. 한 병에 20만 원이나 하는 높은 가격으로는 소수 귀족 문화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범람하는 수많은 가짜 또한 진짜 마오타이주 문화를 그들만의 소수 귀족문화로 가두고 있다. 차등의 문화, 귀족 문화는 확산되기 어려워 단명하기 쉽다.
마오타이주는 이름이 높아지자 진가를 잃었다. 한 병에 20만 원이나 되어 소수 귀족 문화의 한계를 넘어설 수 없다. 덕분에 가짜가 범람해 경계의 대상이 된다. 소수 귀족 문화, 차등의 문화는 질시의 대상이 되고 가짜의 공격을 받아 위태로워진다. 처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갈 수 없는 가혹한 운명이다.
순창고추장은 처음 그대로이다. 알려지기 시작해도 고급화되지 않고, 고가품과는 거리가 멀다. 누구나 쉽게 사 먹을 수 있는 대중의 음식이다. 할머니들의 손맛을 누구나 즐길 수 있게 해서 원근 사람들이 모두 하나가 될 수 있게 한다. 한국인이 순창인이게 하고, 세계인도 순창인이게 한다.
* 산경가든 http://cafe.daum.net/koreawonderland/Zetj/21
<참고문헌>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관련항목
위키백과, 아쿠아비트 항목
다음백과 관련항목
마오타이주 중국 홈피 https://www.emaotai.cn/product_detail-9.htm
송수권(1995), 남도의 맛과 멋, 창공사
전희정ㆍ정희선(2009), 전통저장음식, 교문사
장영섭(2009), 길위의 절, 불광출판사
김효선(2017), 겨울왕국 노르웨이를 가다, 재원
조동일ㆍ이은숙(2017), 한국문화, 한눈에 보인다, 푸른사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