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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
그림 이정희 수채화가
너
라
서
아
프
다
해
윤
김
지
연
표지 뒷면
시를 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슬픈 울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겨울 달처럼
처연한 풍경 속에서 집을 짓고 있는 일인지 모른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메이는 것을
참으로 위대하다.’라고 표현했는데 김시인의 삶을 두고 노래했다면 서러운 과장일까?
김시인의 삶은 낙엽처럼 흩날렸다. 아니 죽을 힘을 다해 사랑에 몸부림쳐 왔다.
사랑했기에 봄과 여름, 가을을 내주고 겨울 앞에서 선 여인...
떨어진 낙엽마저도 다시 사랑으로 주워 담아 겨울에게 보내고 있는 시인, 그 겨울은 어떠할까?
- 김지연의 『너라서 아프다』 시집을 읽고
이삭빛의 시평 中에서-
너라서 아프고
너라서 그리워
밤새도록 달이 떠 있다.
김지연의 「너라서 아프다」 中에서
이정희 수채화가
내지1.
해윤 김지연시인
전북 전주 거주
한국그린문학회원(미디어 홍보위원)
전북재능시낭송협회 회원
한국그린문학 아카데미회원
전주시독서연합포럼 논개의 아미 사무국장
시집: 너라서 아프다
문학愛 신인문학상(등단)
계간 「한국문학작가」 시부문 신인문학상
제2회 환경창작문학상 본상수상
한국그린문학 문예진흥기금 2020(상반기)
주)리애드코리아 문예진흥기금 2020
leeccc28524711@daum.net
H·P 010 4586 9611
수채화가 이 정 희
지후아트갤러리&카페 관장/전주대 평교 미술아카데미 교수
전주시 덕진구 숲정이2길 46 이정희수채화실
[갤러리] 063-252-0224 [이메일] chocolrit@naver.com
시인의 말
학창시절 노래 가사를 쓰려던 글이, 반 친구의 권유로 시를 쓰게 되었고,
어쩌다가 한번 응모한 글이 여러 차례 창작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수업 중 공상에 빠져 창밖을 바라보며 글을 쓰다가도
좋았던 연기의 꿈이 잊혀지질 않아 연극반에 가서 기웃거리기도 했습니다.
그렇게라도 좋아하는 것들에 가 닿을 수만 있다면 그 몸부림마저 좋았습니다.
콩쿠르 대회에 나가 노래를 불러 상을 받아도 ‘딴다라는 싫다’ 하시던
부모님께서도 글을 쓰는 것만큼은 아무 말씀 안 하셨습니다.
집안 사정으로 언니가 양딸로 입양을 가게 되고부터 제 인생도 뒤바꿨습니다.
언니를 보내고 죽을 만큼 큰 외로움에 복도 끝에 앉아 하소연하듯
눈물로 글을 수도 없이 써내갔었습니다.
그렇게 어린시절은 늘 허기진 그리움과 외로움이었습니다.
부모님마저도 객지에 있는 공사현장으로 돌아다니셔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가슴시린 기억에서 배어 나오는 글귀들이 그 어린 날에 채워지지 않은
색깔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부디 제 시집을 사랑으로 보듬어 주시고, 사랑으로 느껴주길 바랍니다.
더불어 시사랑으로 시평을 써주신 이삭빛시인님과
그림을 그려주신 이정희화가님께 감사하다는 말씀 올립니다.
그리고
나의 보이지 않은 사랑의 화신과 연년생인 남동생, 세상에서 둘도 없는 나의 아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합니다.
특별히 이 시집은 하늘에 계신 어머니께 바치며,
앞으로 공생 공존하실 관계자여러분과 독자님들께 엎드려 절하옵나이다.
행복하시길 빕니다!
2020년 황금빛 시월을 바치며 ~
해윤 김지연
차례
1부 그림 너라서 아프다!
너라서 아프다
-달에게-
대화 상자를 열어
달빛 난간에 셋방 하나 들었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얄팍한 두께에 아픔만 짙어져
가슴을 외면하는
주인 잃은 삶의 그림자
읊어 보는 달빛
영롱한 별빛도 동무되어 말이 없다
밤길 헤맨 고양이 홀연히 다가와
뒤얽힌 하루 사연 들려주고
심장을 향한 날 선 칼끝 아래처럼
손때 묻은 학독의 고인물도 처연하다
지나가는 겨울이 떼를 써
몸살을 부르고 있다
휭하니 바람이 스치는 이밤
고운 너를 베개 삼아
옛 이야기 가득 싣고
서리 앉은 터에
내일의 충만한 빛
향기 품으려 너에게 달려가는 맘
너라서 아프고
너라서 그리워
밤새도록 달이 떠 있다.
맨드라미
내 안의 그대
수평선처럼
멀게만 느껴지는 그대
밀려오는 파도처럼
그리운 사람이여
그대 이름을 새겨도
채워지지 않는 빈자리
세월 쏙에 나를 묻었나
머리에 스치듯이
그대 홀연히 떠나가나
가슴에 남겨 두고
밀려드는 그리움에
내 눈에 그대 보일 듯
모래 속에 숨은 듯
아득히 먼 그대여
배회
하늘을 치솟은 높은 빌딩 숲이
우뚝 서 있다
한참을 달렸을 길 위로 뒤를 보니
흔적 없이 사라져 아득하다
옛 기억을 찾아 헤매지만
자꾸만 낯설기만 한 그 자리
비개인 하늘 푸르름이 반짝이는
숲속에 숨을 크게 쉬어 볼까
내 가슴 속에 차곡히 쌓여
그리움으로 쏟아지는 발걸음
시골 아침
이른 아침
새들이 지저귀고 시냇물 소리
창문을 두드리며
넓은 대지 위에
한 폭의 수채화를
그려내는 단풍잎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거짓 없는 자연 속에
찌든 때마저
초로에 씻겨 영롱하다
몇 채 없는 동네 고사티 초가집
모락모락 피어나는 굴뚝 연기
꼬부랑 할머니 가마솥 불 지피고
장작불 구수한 청국장 올리신다
부뚜막 연기 매운 줄도 모르고
밥 냄새에 눈 비비던 키 작은 아이
타닥 타닥 타는 장작소리
외양간의 소 울음소리 따라
하늘 문 열고 어머니가 날 부르는 날
회상
주옥 같은 꿈
추억 속 책장을 넘기듯
한여름 아지랑이 피어
갈증 난 몸부림에
똬리를 움켜잡고
상념의 조각들이
춤추는 나뭇가지 사이로
몸을 던지고
설익은 한 편의 시처럼
바람맞은 약속들은
냇물에 쏠려 사라져 가고 있다.
독백
세월은 흘러
어느덧 중년의 나이
꽃대 세우고 미소짓던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다림의 변화 속에
버거운 가슴,
옛 시절만이 그립구나
해 닮은 모습이
거대한 성을 쌓던
소녀의 몸짓
혼자만의 울타리로
가두어 온 시절 앞에
숨어 울고 있는 현실이
왜 이리 두려울까?
그대
눈에 밟힌 소나무 한 그루
천년의 세월 부푼 가슴
하늘의 눈을 닮았나
바람이 스치는 향
달빛 아래
새색시 시집 온 양
하얀 볼, 붉그레
피어오른 봉우리
살굿빛 초원으로 그려지고
은빛 구슬 맴도는
초록 풀잎도 좋아라
연못 위 수양버들
곡선을 타고 춤을 추네
달빛 소나타
행선지의 좌표도 희미한데
힘겨운 한 발짝의 무게
저울의 눈금은 아량 곳 없다
편안한 낮꽃의 물음에
답 없는 답을 던진
나침판 같은 당신
잡을 수 없는 손짓
가쁜 숨 한마디에
어둑 어둑
붉은 노을은 짙어만 간다
기다려야 했던 기억은
달빛에 그려진
당신의 그림자
옛 무심이라 토했던
욕심 끝에 빛
빚어진 다툼이었을까
초라한 자화상에
얼굴을 묻는다.
석류
꿈이었으면 좋았을 걸
순간 훅 들어와
심장의 붉은 빛 불어 놓고
보고 싶은 너를 안고
긴 한숨에 감기는 눈
지새우게 만들고
내 귓가에
너의 목소리 다가와
길을 묻는데
지난 날의 꿈을
누가 적을까
메달린 얘기 하나
작은 가슴에 뛰고 있는
포개진 입맞춤
눈 감으면 잊힐 줄 알았지
툭 하고 건드린 떨림이
네가 서 있던 자리에
난 추억하며 맴돌지
아직도
너의 생각에
빨갛게 익어가는 내 심장
낙엽
애틋한 눈
간절함에 눈이 멀고
무모한 사랑하나
막연했던 그날
빛처럼 다가와
서투른 질투였을까
일렁이는 마음
엇갈리는 눈은
욕망의 덫을 놓았다
잔혹하게 밀려든 지친 영혼
싸늘해진 시선
혼란스런 마음들은 길을 떠난다.
그림 2 연모의 꿈
연모의 꿈
애틋한 눈
간절함에 눈이 멀고
무모한 사람에
마음의 줄을 놓아
막연했던 그날
빛처럼 다가와
서투른 질투일까
일렁이는 마음
엇갈린 시작이
욕망의 덫을 놓고
잔혹한 밤
지친 영혼
싸늘해진 시선 속
혼란스런 마음들이
슬픈 여명으로 길을 떠난다.
별을 헤아리는 밤
너와 보던 노을
자몽같이 바알간 볼
꿈을 부르던 주문
너는 무슨 꽃이야
마음에 무지개가 내리고 있어
마지막 벚꽃이 흩날리던
봄 같은 풍경
너를 마주 보던 밤
기억에서 찾아오는 그리움
한 잔의 추억을 담아
변치 않을 인연
따뜻한 입담의 속삭임
노모의 삶
짜투리 땅에
한숨 젖은 눈물
자갈을 고르며
서리태 콩을 심었나
한 서린 마음
세월은 가고
칠순이 되어 버린
노모의 땀방울
근심의 무게
나이를 팔아
손에 쥔 배춧잎 한 장
티 없이 맑게 웃는 모습은
백일의 갓난아이
거칠고 가라진 손
꼭 쥔 호미자루는
세월의 흔적을 남기고
아네모네
사계가 변한 오늘
조그만 사랑이
상처가 고름 될 줄 몰랐다
싸늘해진 바람은
봄을 스치고
허공에 그려진 아팠던 기억
하늘 바람 앞 뭉개구름
한들한들 조각 구름되어
그리움이라 적는다
잠기지 않은
문고리에 고인 눈물
흐르는 시간에도 세월은 가고
마르지 않을 만큼 웃을 수 있기에
하늘 하늘한 기운으로
수줍은 향기가 되었다.
도가니
해가 구름에 가려
떠내려 가네
거침없는 세상사
말없이 흘러 가라고
베일에 쌓인
못다한 사연들
뭐 그리 대단해서
속없는 우리네야
웃으면서 가는게지
속빈 강정이 된 게야
힘없는 세월에
뭘 알겠나 싶지
거칠고 단단함에
숨을 쉬어가고
막걸리 한 사발에
흥얼대는 콧노래가
허리띠 졸라맨
아낙네들의 풍요라네
농부님들의 한숨 소리
그냥 웃는게 아닌게지
폐지 줍는 할아버지
기억을 걷다 보면
돌담길 너머
그리운 사람 있네
마른 체격에
허리가 휘어져
햇빛에 산란되어
비춰지는 하얀머리
세월을 낚은 지팡이에 기대
토방 위 옥수수 걸어 놓고
그림 같이 늘어지는 수수는
알알이 맺혀가던 인생
그대 떠난 빈자리
빛바랜 사진 속에서
추억 나들이를 나서네
태양 연가
푸르던 몸짓
어지럽게 얽힌 사연
부축 임에 엉켜 보듬어가고
설계하지 않은 미래
뜨거운 정열에 어리네
푸른 도시에 흩어져 내려
온누리에 자리를 잡았어
비밀스런 뜨거운 열기
누구의 연인이라 말할까
빨갛게 달궈진 얼굴
독오른 탐욕이
너를 훔치러 간다
엽서
그러게 왜
나는 연필을 들었을까
하고픈 얘기도 없는데 말야
내 나이 중년이 되어
그 시절에 머물러
너를 소환시켜 본다
학창시절 통금시간
호루라기 삑삑 울리던
고요한 밤
백열등을 꺼져
촛불에 의지하며
얘기 나누던
하숙집 아주머니
들어설까 모를 두려움
통기타 연주에 스르르
그날처럼 바람만 분다
무얼하며 살고 있을지
어제의 일기장이
오늘날
한 편의 시와 노래로
화려하게 빛나 있을
먼 기억 속의 너를 그린다
꽃비
스치는 인연의 꽃
봄바람에 흩날리고
서러움의 눈물
깊은 강에 던져 볼까나
애절함에 묻어나는
청춘의 그림자는
사소로운 정에
갈피를 못 잡고
마르지도 않을 눈물
그리움으로 드리워진다
무우
머리 반 자르고
또 한 번 솎았지
심신이 어지러워 다듬어 보지만
변화는 잠시
어쩌다 흙먼지 털어
하얀 얼굴 드러나나 싶지
황토빛 점 찍어 놓인 자리
연지 곤지 되었나
파란 저고리 주름치마 벗기니
뽀얀 속살 드러나
참으로 예쁘더이다
윤기 흐르는 살 내음에
코를 들이대고 향속으로
촉촉한 기운
항상 이때만 같아라
세월 가면 윤기는 떠나고
메마른 겉은 타
향은 날아가나니
별거 없더라 세상사
다 거시서 거기더라
마음은 청춘인데
내 육신은 늙어가더라
강천산
가지 사이로 빛이 부서진다
숲에 스며든 향기
들려오는 새소리에
그을린 도시가 묻힌다
황톳빛에 반짝이는 돌덩이도
이끼 낀 바위도
침묵에 눈이 부시다
물줄기 따라 내리는 폭포수
환상의 화폭을 그려내고
모퉁이에 갇힌 역리에
붉은 날개옷을 입힌다.
손을 맞잡은 동행
서로의 이름을 새기며
너와 나
색동으로 가을 하늘에 물든다.
어머니
가슴 깊은 곳
꺼내보는 주름진 얼굴
햇살 가득 정원에 나이를 묻고
한숨 쥔 어깨가 세월을 못 이겨
5월의 꽃가루를 뿌려놓고
봄같이 가시었다.
빗물소리∏
봄 같이
밝은 웃음으로 떠나신 오늘
허기진 마음 시절을 잃어
샘의 기록은 말이 없다.
오늘은 봄비
내일은 꽃비
떨어지는 빗물 따라
또각, 또각
멀어져 가는 봄의 소리
엄마의 발자국 소리
먹구름
짓궂은 바람
분노를 삼킨다
추억이 담을 쌓아
무거운 발길을 돌린다
초점 없이 그려지는 인연
쳇바퀴처럼 새겨지는 이름
먹먹한 가슴이
비구름을 몰고 온다
호전 못 할 거친 한숨
이별의 뜰
잎새 같은 떨림
언제 우리 꿈 같은 인연이었던가
별
분주한 세상 속
홀로 외로이 서 있네
칠흙같은 밤은 깊어
아득히 먼 길 앞에
불현듯 찾아온 운명
거부할 수가 없었네
손 내밀지 않았더라면
눈물도 없었겠지
슬픔으로 빚어내는 너의 심장
봄을 그리다
오솔길 따라
노란 길을 걸어요
그대와 함께라면
좋을텐데 말이죠
꽁보리 초록잎
수줍은 노란 민들레
햇살 가득 담아
하얀 젖줄 품고서
옹알이를 하듯...
그대와 함께라면
좋을텐데 말이죠
웃음
아
그가 온다
이름 없는 홀씨 되어
동심으로 돌아간
나는 소녀다.
기도
이 세상 끝날 때까지
당신의 눈물 닦아 줄 수 있는
여자로만 남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추념
무엇을 얻고 잃었던가?
가늠할 수 없는 마음이
스님의 밤 독경 소리에 귀가 기울인다
밤은 고요하고
바람에 스쳐 우는 풍경소리
가려진 달을 보고
거스릴 수 없는 운명 앞에
시한 줄 달빛에 걸어보고
도망칠 수 없는 목숨
휘청이는 대나무 잎새로
찾아드는 역경
명주실 같은 질긴
눈물 한 줌 훔쳐내고
번뇌가 해우소 앞으로
너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무상
풍경 소리에
근심 걱정 묻히고
은은한 목탁소리
스님의 독경
비워지지 않는
칼바람 맞은
어리석은 독배
은행잎 사이로
책갈피에 꽂아 두었던 짧은 기억
노란 풍경이 하늘에 걸려
새순으로 꼬물댄다
꼼지락 등껍질 사이로
어둠을 꿈꾸는 풀벌레
의식을 잃어가는 세월에서도
넌
바람에 기대어 치맛자락을 흔든다.
녹색 깃발아래 살구빛 구슬
대롱 대롱 열매를 맺어가고
잎 속에 숨겨 놓은 떨림도
저녁 노을 속에 맴돌다
노란 열기에 오늘 밤
사랑이 되고 만다.
봄비
너의 고백으로
설레는 시간 속에 살아
처음 만난 그날처럼
그대 있던 자리
아직도 온기가 있어
내 심장이 말하는걸
향긋한 풀 내음에 너를 기다려
곰티제
굽이굽이 사연을 담았나
허리 휜 고갯길
영혼의 소리련가
삶의 무게 실은 발자국
메마른 대지는
마른 기침을 삼키고
벌거숭이 산들성 위
우뚝선 비가
하늘을 향해 치솟았다.
눈물이 고드름이 되어
바닥에 내려앉았다.
너와 이별하던 날.
당신의 미소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마을
하얀 솜 뭉치 위에 누가 살까
내미는 햇님의 미소에
살랑살랑 가을바람 고개들고
꽃무리 몰고 가는 구름마차
멈춰 선 발걸음
눈동자는 땡그르
머리 위로 그려 보는
하늘
푸른 초원이 뛰어논다.
홀로 된다는 것
-메아리-
남는다는 것이 혼자만의 굴레였던가
같은 하늘 아래 서 있어도
너의 심장 소리 들리지 않고
잡으려 했던 바람은 빈손이 되고
사무치는 그리움이 적막으로 갇힌다
얻으려 했던 게 무엇이었던가
각자의 길 시작에 비밀 감추고
기웃거리는 망설임들
목소리 들려준 넌
산 넘어에 피를 토해 놓고
차오르는 마음
암벽이 되어 멈춰 서 있다.
맨드라미
너는 나인가
나는 너인가
너울대는 가지가 꼬리를 흔든다
부서져라 지는 더위에
미끄럼을 타고 땀방울
한숨 소리도 현기증에 전략하고
외나무타기 행군을 이루는
우리네 마음도
사슬들을 풀어헤쳤다.
갈등의 떨림이 웅크린다.
눈금을 재던 박새 한 마리
잿빛 날갯짓에 둥지를 틀고
무리를 지어 살아가건만
우리는 왜 서로가 적이 되어
사라가는 것일까
부서지는 빛타기
나를 닮은 너
너를 닮은 나
한 구비 넘어서면 또 한 굴레길
그림 3 사랑고백
사랑고백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제압당한 듯 가슴 조여오는 떨림
갈등을 사이에 두고
두 다리는 사슬이 풀린 듯 허우적
이마엔 구슬땀이 흩어져
터진 주머니 속 실오라기들
불빛이 붉은 얼룩으로 번진다
희망이 체열 되듯 미풍같은 행복
흔들리는 설움이 먹물인지 먹지인지
못다 한 말
눈시울 짓던 어제를
멀리 멀리 보내지만
밤의 정적을 깨우는
식은땀의 몸부림
그대 떠난 자리
까맣게 타버린 재로
겨울바람에 실어 보낸다
눈처럼 다가오소서
새록 새록 피어나는 꿈
그대 가슴에 서렸네
눈 꽃송이 바람 안고
그대 어깨에 앉으니
온 세상이 뽀해
사랑이라 말을 건낼까
설레이는 이 마음
그대 가슴 녹아 내릴 쯤
찬란한 햇살에
그대 품속으로 달려 가려니
서릿대 찬 바람으로
내몰지는 마오
그대 온전히 사랑하리니
당신을 만나
창 너머 아침 햇살에
삶의 고단함을 편다
얼마나 돌고 돌았던가
새살이 돋기까지
찌적 찌적 글을 남기고
꾸깃 꾸깃 삼켜버린 꿈
드높은 비상
산허리 능선을 타고
아스팔트 위 질주를 한다
음반 위에 춤을 추듯
섬
슬픈 영혼의 바다
물거품이 피어올라
일렁이는 파도에
모래알을 삼켜 버렸다
찰싹대며 부딪히는 소리
가슴 언저리에 뛰는 맥박
바람도 끈적임이
그리움의 살갗을 태운다.
벚꽃
차츰 초라해질
네 모습이 애처롭구나
바람을 타고 흩날릴
꽃잎이여
흰눈 꽃송이처럼 피어나
오가는 길가에 서서
함박 웃음을 선사하고
앙상한 가지로 남을 너
잊지 말고 다시 찾아오라고
한아름 안아주고 싶어
다시 한 세월이 지나
피어날 네가 그립구나
풍경
거리에 안개가 자욱하다
나 뒹구는 낙엽 위로
빗방울은 떨어지는데
여전히 산천은 저마다 자랑하듯
형형색색 옷을 입고 보란 듯 뽐을 내며
거리거리 사람들을 감탄에 빠져들게 한다
섬진강 강물도 푸르름을 자랑하고
물속에서 숨을 쉬는 물고기 한 마리
뽀금뽀금 고개를 내밀다 들어간다
잠시 쉬어가는 골목에서
단풍에 스며 나를 적신다
새장 속에서
떠나고픈 마음이 든다
어느 누구도 터치하지 않은 곳
가슴 깊이 박힌 못하나
빼내지 못하는 내가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 걸어갈까?
포항 호미곶에서
바다의 풍경이 네 마음 같이 펼쳐진다
아름답고 신비로운 바다
그러나 넌 먼 곳을 바라본다
어쩌란 말이냐
목 놓아 소리쳐 울어본다
운담댐에서
또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무작정 길을 나서 본다
예전의 모습은 숨어 있고
운치라는 놈도 이미 사라져 버렸다.
그리움이 길어진 탓일까?
낯선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일기
너무 많이 아팠다.
텅 빈 방
세상에 나 홀로 있다.
질주
눈이 내린다
속절없이 내린다
울면서 내리는 눈은 꽃이 아니다
삶의 아픈 질주이다
동행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일까
꽃비가 내린다
허리춤을 졸라맨 듯
안개가 산마다 자욱하고
들판과 언덕 위로 비집고 나오는
네 웃음도 온통 초록이다
시(詩)
길이라고 다 걸어 선 안된다
네 길을 걸어라
배움
겨울이 성큼 다가옵니다.
파란 풀잎들도
들녘에 들꽃들도
풀내음도 사라지고
싸늘한 바람으로 시들었습니다.
귓가에 들려오던
풀벌레 소리도
오늘은 들리지 않습니다
붉게 물들어 가는 석양만이
길을 안내합니다.
길
이른새벽
눈을 떠 창을 열고
삶의 지지개를 편다
휴먼의 시간이
세월 앞에 목을 놓고
차가운 가을 앞에 서 있다.
잠시 잊고 살았던 생각들이
그리움으로 젖은 시간
아직 남은 태양의 온기가
아침을 열기 전
내 마음을 달군다.
내 안의 기도
미소 속에
가려진 눈물
커튼에 가려
말 못한 사연들
거침없는 세상은
말없이 흘러가도
한결같은 마음
속없는 낯꽃
힘없는 세상
추구하는 갈망은
정신없는 생활에
한숨으로 몰아쳐도
사연 담은
콧노래가
바람을 타고 가네
불꽃
외쳐보고 울어봐도
가슴에 피는 꽃
어디에도 마음 둘 곳 없어
낯선 배회의 길
정처 없이 걷다 보니
어여쁜 들꽃의 향기
바람이 지나간 자리였음을
깨닫는 순간,
넌 나만의 불꽃
바람의 언덕
모래 위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지평선 너머로
수를 놓아야 할까요?
그냥
그림자로만 남아야 할까요?
구름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질 않아요
산도 들도 바다도
떠도는 바람처럼
세월에 묻어 둘까요?
내리는 비떼에
나도 따라 울고 님도 따라우는데
찢어진 상처
이 언덕에서 씻어 내려가길
어제의 기억이
우리를 끌어 내리지 않기를
모래 위
그림을 그려야 할까요?
가난한 비에게
그대 입김으로 다가오소서
아, 그대 눈빛으로 다가오소서
당신은 나의 빛
촉촉이 젖어 드는 햇살입니다.
가을 이야기
안개가 자욱한 거리
나뒹구는 낙엽 위
한 발 두 발 더딘 발걸음
산과 들녘은
형형색색 옷을 입었다.
섬진강 강물도
푸름에 말을 건네고
잠시 쉬어가는 길
네가 한 말
사랑해
살포시 내려앉은
우리 이야기가 달콤하게 색칠한다.
들꽃
세월의 여정 속에
아픈 노래는
시(詩)가 되고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별빛으로
온 세상을 품고 있는 세계
넌 우리의 가슴이다.
시간 여행
지난 세월의 변화에도
살아남는 건 너의 흔적이 아닐까?
그림 4
내면화의 언어, 그리움과 시詩로 태어난 사랑
- 김지연의 『너라서 아프다』 시집을 읽고
이삭빛시인
시를 쓴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슬픈 울림을 받아들여야 하는 겨울 달처럼
처연한 풍경 속에서 집을 짓고 있는 일인지 모른다.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낙엽이 흩날리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메이는 것을
참으로 위대하다.’라고 표현했는데 김시인의 삶을 두고 노래했다면 서러운 과장일까?
김시인의 삶은 낙엽처럼 흩날렸다. 아니 죽을 힘을 다해 사랑에 몸부림쳐 왔다.
사랑했기에 봄과 여름, 가을을 내주고 겨울 앞에서 선 여인, 떨어진 낙엽마저도 아름답게
주워 담아 겨울에게 보내고 있는 시인, 그 겨울은 어떠할까?
설령 강추위가 몰아친다 해도 시인은 그 추위마저 시로 승화할 내면의 집을 짓고 있으니 오
히려 슬퍼서 빛날 것이다. 필자의 어느 시(詩)구절처럼 ‘너를 사랑하였기에 늘 어둠의 골짜기
에 서 있으나, 빛나는 별’처럼 사랑할 때 빛나는 사랑시인이다.
대화 상자를 열어
달빛 난간에 셋방 하나 들었다
비라도 내렸으면 좋으련만
얄팍한 두께에 아픔만 짙어져
가슴을 외면하는
주인 잃은 삶의 그림자
읊어 보는 달빛
영롱한 별빛도 동무되어 말이 없다
밤길 헤맨 고양이 홀연히 다가와
뒤얽힌 하루 사연 들려주고
심장을 향한 날선 칼끝 아래처럼
손때 묻은 학독의 고인물도 처연하다
지나가는 겨울이 떼를 써
몸살을 부르고 있다
휭하니 바람이 스치는 이밤
고운 너를 베개 삼아
옛 이야기 가득 싣고
서리 앉은 터에
내일의 충만한 빛
향기 품으려 너에게 달려가는 맘
너라서 아프고
너라서 그리워
밤새도록 달이 떠 있다.
- 「너라서 아프다 /부제 – 달에게」 전문
시인의 삶은 분명 인간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잘 눈여겨 보아라. 그녀의 삶은 어디에도 드
러나 있지 않다. 그늘이다. 빛없는 그늘. 무대는 광장과 같아 무대가 갖는 확장성은 남다르게
크다. 관객은 밴드의 전면에 선 배우에게 눈길을 준다.
정면은 언제나 주목받는 대상이자 빛이다. 하지만 정면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보이지 않는 무
대 뒤나 후면은 시인이 응시하고 바라보아야 할 신이 준 과제이다.
그래서 세상은 따뜻한 길을 내는 자가 별로 빛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시인이 가는 길은 돌담길이다. 그 돌담길에 그리운 사람이 있다. ‘허리가 휘어져 햇빛
도 가닿지 못하는 곳에/ 토방 뒤 옥수수처럼 다음 생을 기다리는 내어줌’으로 찬란히 빛나고
있는 사람. 누구에게나 버림 받는 휴지에게 조차 눈길을 주는 할아버지의 시선을 잊지 않는
다. 휴지는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 휴지는 자기 자신을 버리고 마지막까지도 가장 낮은
자와 함께 걸어왔기 때문이다. 김시인은 그 내면, 빛없는 뒤의 어둠의 속성을 잘 알고 시를
쓰고 있다. 그래서 김시인은 사랑시인이요, 앞뒤로 눈을 달고 영혼을 위로하는 가장 낮은 자
의 맑고 고운 시인이다.
기억을 걷다 보면
돌담길 너머
그리운 사람 있네
마른 체격에
허리가 휘어져
햇빛에 산란되어
비춰지는 하얀머리
세월을 낚은 지팡이에 기대
토방 위 옥수수 걸어 놓고
그림 같이 늘어지는 수수는
알알이 맺혀가던 인생
그대 떠난 빈자리
빛바랜 사진 속에서
추억 나들이를 나서네
- 「폐지 줍는 할아버지」 전문
세상에는 항상 이단아들이 존재한다.
기존 질서나 권력에 저항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자기 자신의 인생은 불행했다.
안전한 삶에 안주하지 않는 습성 때문에 그들은 비바람 몰아치는 거센 파도를 타고 생을 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불온한 삶은 세상에 별같이 빛나는 훈장을 남겼다.
옆으로 비켜선 채 세상을 바라본 그들은 울타리 안에서 평온을 추구한 사람들은 보지 못한 수
면 밑을 바라봤다.
김시인은 여성으로서 여리디, 여린 품성을 지니고 있지만 내유외강으로 세상을 호령한다.
사실 김시인은 세상의 이단아이다. 기존 질서에 위배한 적 없이 위배하고 만 여인이 되버린
이단아. 그녀는 이름 없는 들꽃이다. 아니 들꽃이기에 그녀는 끝까지 벼랑 끝에서 선 들꽃으
로 살아가고 자 한다. 살아있는 별이요, 누구나 바라보고 향기를 맡을 수 있지만 아무도 꺽
을 수 없는 이단아. 그는 우리의 별이다. 그녀의 시 들꽃 전문을 살펴보자. 시인 자신에게 화
자는 말하고 있다. ‘넌 우리의 가슴이라’고...
세월의 여정 속에
아픈 노래는
시(詩)가 되고
이 세상의 둘도 없는
별빛으로
온 세상을 품고 있는 세계
넌 우리의 가슴이다.
-「들꽃」 전문
시인은 가장 밑바닥 울림을 듣는 시인이다.
그의 삶도 아픔으로 점철된 시인이다. 한 아이 엄마로만 홀로 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늘 고프
고 아프고 힘겨운 삶, 그렇지만 그녀는 거기에서 끝을 찾지 않는다.
결국 사랑은 오래참고 기다리는 것으로 승화시키고 자기의 삶을 혹독하게 훈련 시켜 나간다.
조개가 보석을 만들어 내듯 아픔과 맞바꿔 별을 만든다.
슬픈 영혼의 바다
물거품이 피어올라
일렁이는 파도에
모래알을 삼켜 버렸다
찰싹대며 부딪히는 소리
가슴 언저리에 뛰는 맥박
바람도 끈적임이
그리움의 살갗을 태운다.
-「섬」 전문
김지연시인의 처녀작 「너라서 아프다」라는 시집을 읽고 후작으로 「너라서 기쁘다」가 바로 연
작으로 나올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
을 보라’고 한 윌리엄 블레이크처럼 김지연시인은 들꽃을 보고 ‘넌 우리의 가슴’이라고 말
한다. 그리고 일회용 사랑으로 넘실대는 현시대에 그리움의 살갗을 태우며까지 사랑을 지켜나
가는 한 여인의 사랑, 그녀는 진정한 사랑시인이다.
코로나 19로 많이 힘들텐데 이 시가 영원한 위로가 되기를 바라며, 가슴으로 읽는 시집이 되
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