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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인간의공존,생활기술
_안성균(산마을고등학교 교장, 교사대학 이사)
_작성: 2015년 1월 10일
“거기 언덕 꼭대기에 서서
소리치지 말라.
물론 네 말은 옳다.
너무 옳아서
말하는 것이 도리어 성가시다.
언덕으로 올라가
거기 대장간을 지어라.
거기 풀무를 만들고,
거기 쇠를 달구고,
망치질하며 노래하라!
그걸 듣고,
네가 어디 있는지 알 것이다.”
_올리브 H. 하우게
“생태전환, 자급자족, 지역순환 사회를 지향하는 생활기술교육이 시작됩니다. 의·식·주·에너지분야의 다양한 생활기술을 익히고 실제 삶에 적용할 때 사회와 문화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위의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지난 8월 강화 산마을고등학교에서는 여름의 작열하는 태양 아래 열띤 배움의 장이 펼쳐졌다.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자급자족을 위한 생활기술교육 교사/활동가 양성과정’이 란, 다소 긴 이름의 연수가 5박 6일 간 진행되었다. 교육과 사회의 본질을 묻는 기술, 직조(베틀 만들 기, 래그러그, 툴니팅), 천연페인팅, 흙미장, 바이오디젤 만들기, 기화열에어콘 만들기, 연구수업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대안교육현장을 중심으로 청소년에게 생활기술을 전파할 교사와 활동가들이 땀 흘 리며, 말 그대로 ‘노작’에 임했다. 대안교육현장에 필요한 교사와 활동가를 양성하면서 대안교육 관련 연구를 위해 설립된 ‘삶을 위한 교사대학 협동조합’이 주관하였고, 전국에서 교사와 활동가, 농부, 학 부모 등 40여 명이 참가하였다.
간디는 일찍이 ‘우리가 품위 있게 생활하는 기술을 배웠을 때만 삶의 모든 은총이 가능하다’고 설 파한 바 있다. 우리는 익히 예술(art)이 기술(technique)임을 알고 있으나, 어쩌면 애써 외면하며 분리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동일한 어원을 갖지만 품격이 다른 양 층위를 나누기도 한다. 탄성을 자 아내는 ‘생활의 달인’들을 보면 그들의 솜씨와 열정이 여느 예술가의 경지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느 낌을 받는데도 말이다. 사실 교육 역시 삶과 멀어진 대표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삶을 위한 교육이 아 니라 대학을 위한 교육, 취직을 위한 교육, 자본을 위한 교육으로 전락한지 오래이다. 교육을 예술이 라 이르던 슈타이너의 읊조림은 이 땅에선 공염불에 불과하다. 의식주조차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젬병으로 자라나는 머리만 비대해진 청소년들에게 손발을 움직여 몸과 정신의 균형을 회복하도록 돕 고자 하는 의도가 이번 양성과정에 깔려 있다. 물론 청장년에게도 적용된다. 그러기 위해서 먼저 교 사가, 활동가가, 학부모가 익혀보자는 것이 이번 과정의 목적이라면 목적이었다.
항간에 회자되는 적정기술이나 적당기술, 혹은 전환기술이라는 용어 대신 ‘생활기술’이란 개념을 굳 이 사용했던 이유는 누구든지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기술을 활용하여 삶의 품격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서였다. 다행스럽게도 초기 논의 단계에서 관계된 분들이 이러한 제안에 모두 흔쾌 히 동의했다. 전국귀농운동본부,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 지역순환전국협의회 등의 단체가 공동주최를 하였고, 산마을고등학교는 이를 적극 후원하였다. 산마을고등학교는 이미 교육과정을 개편하면서 ‘생활 기술’이란 특성화 교과를 신설하였고, 이를 위해서 ‘생활기술공방’을 공들여 지으며 운용을 준비하고 있 는 상황이었다. 사실 필자는 산마을고등학교가 생활기술학교로 일정 정도 특화되기를 바라는 바람이 있 기도 하다. 강화지역에서 산마을이 생활기술의 전파와 실천의 진지가 되기를 내심 원한다. ‘자립과 전 환(에너지의 전환)’이란 시대적 명제와 씨름하는 아이들로 키우고픈 욕심도 부려보고 싶다.
‘아이들로 하여금 들일을 하게 하고, 음식을 만들게 하고, 맛보고, 소화시킴으로써 마침내 피가 되 고 살이 되는 것이 진정한 교육’이라던 비노바 바베의 신교육운동의 결론은 지극히 명쾌하다. 이 곳 산마을에서 나이탈림의 정신이 펼쳐질 때, 우리 친구들이 그 행운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적정기술(appropriate technology)’이란 용어는 슈마허의 ‘중간기술(intermediate technology)’이라는 개 념에서 유래했다.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값싸고 노동집약적인 기술로서, 작은 규모에 적합하고 인간의 창조적 욕구에 부합하는 기술을 의미한다. 대안기술(alternative technology) 혹은 ‘민주적 기술’, ‘민중의 기술’이라고도 불린다. 이 새로운 기술은 인간을 기계의 노예상태에서 해방시키고, 인간의 본 성과 자연과의 공존에 초점을 맞추도록 ‘전환하는 기술’이다. 슈마허는 작은 것에 만족할 줄 아는 마 음, 민중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적정기술이 있다면 첨단기술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고 주장했다.(* 정기석, ‘마을을 전환시키는 장흥의 슈마허’, 《프레시안》, 10.29 기사 일부 인용)
적정기술을 넘어 자급자족을 위한 생활기술을 배운다는 것은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소비자 로 전락한, 먹고 즐길 줄만 아는 돼지와 같은 존재(돼지에겐 미안한 표현이지만)로서만 자신의 정체 성을 확인하는 현대인에겐 생뚱맞은 일일지도 모른다. 기계문명과 자본의 탁류로 말미암아 상실해버 린 인간 본래의 만들고, 창조하고, 표현하는 데서 오는 기쁨을 누려보자는 것이다. 뜨개질을 하는 학 생들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편안함, 물레에서 실을 잣는 할머니의 손짓에서 우러나는 고요함, 빵 굽는 셰프의 산뜻한 뒷모습, 나무를 다듬는 목수의 진중한 손놀림, 용접 불꽃에서 터져 나오는 철수(鐵手) 의 땀방울은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부지런히 손발을 놀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작은 평화를 맛본다. 삶을 위한 기술이란 그런 평온함을 동반하는 마력을 지녔다.
‘생각하는 손에 의한 인간회복기술’을 통한 문예부흥을 주창하는 김성원, 그는 적정기술을 이 땅에 보급하는 선구자이다. 그가 메인디렉터로 이번 생활기술교육 교사/활동가 양성과정을 이끌었다. 그는 애써 수집한 귀한 정보와 정련한 소스를 무한 개방하는 열린 마음과, 인간적으로 지극히 겸손하기까 지 한 이 시대의 존경스러운 스승이라 감히 말할 수 있다. 한국에서 최초로 생태적인 흙부대 집짓기 의 지평을 열었고, 자작 고효율난로를 만들어 화석에너지를 최소화하는 움직임에 기름을 부은 인물이 다. 그가 기획한 ‘나는 난로다’라는 행사는 전국의 숨은 장인들을 끌어내고, 일반인도 아마추어 철수 로 변모시키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의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도 같은 행사가 생겨났다. 그는 흙 미장 천연페인팅을 담당하여 온갖 시행착오 끝에 터득한 기술을 전수하였다. 덕분에 산마을학교의 흙 벽은 아름다운 타데락트 예술작품으로 재탄생하였다.
직조는 이세일, 윤용신, 송은희 선생이 담당하였다. 재야의 직조 고수인 이세일 선생과 함께 참가자 들은 자기 손으로 직접 베틀을 조립했고, 윤용신 선생은 베틀을 이용해 못 쓰는 천을 재활용한 깔개 나 무릎담요 등을 만드는 래그러그 직조법을 가르쳤다. 송은희 선생은 툴니팅 도구를 이용한 직조법 을 가르쳤는데, 의외로 간단하여 참가자들의 호응이 매우 높았다. 실제 교사들이 각 교육현장으로 돌 아가자마자 2학기부터 바로 쉽게 수업에 적용한 과정이기도 했다. 베틀모임은 여름연수가 끝나고 나 서도 소그룹이 결성되어 틈틈이 모이고 있고, 어느 교사는 벌써 나무베틀을 응용하여 파이프베틀을 제작하기도 했다.
바이오디젤 만들기와 기화열에어콘 만들기는 전환기술사회적협동조합의 안병일 선생이 진행하였다. 근처 치킨집에서 수거해 온 폐식용유를 정제하고 가공하여 바이오디젤을 만드는 공정은 신기했다. 두 부와 유부를 생산하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는 한 참가자는 유부생산 과정에서 버려지는 다량의 폐 식용유를 정제하여 공장의 자동차와 기계의 연료로 활용할 수 있는지 여부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사실 의식주는 우리의 생활에서 가장 기본적인 분야이다. 이미 이 기본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에겐 몇십년 전만해도 일상이었던 바느질, 뜨개질은 고사하고 실로 천을 짜는 기초 작업은 보통 고된 일이 아닐 터이다. 그러나 이외로 그 인내의 시간을 참가자들은 몹시 즐겼다. 늦은 시간까지 빼꼼한 눈으로 직조에 여념이 없던 그들에게서 평화를 보았다면 지나친 감상일까? 생활기술과 관련하여 앞으로 도 의식주(衣·醫食住)를 중심으로 직조, 대체의학, 요리(자연요리, 베이킹, 화덕 만들기 등), 집짓기(목 공, 천연페인팅, 흙미장, 벽난로 만들기 등), 대장장이의 과정을 지속적으로 개설해나갈 계획이다. 11 월에도 직조 심화과정(줄베틀, 휠물레, 허리띠베틀, 대받침 엮기, 덩굴바구니 짜기, 나뭇가지쟁반 엮기, 목화씨앗 빼기 등)이 진행되었고, 2015년 1월에는 철공예와 난로(화덕) 만들기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한편 강화지역에서 동네차원의 공부자리가 따로 마련되면 좋겠다는 생각도 이참에 하게 되었다. 강 화에는 다양한 생활기술의 실력자들이 즐비하다. 난로 만들기의 달인이나 자연요리에 일가를 이룬 요 리사도 계시고, 소목의 기능장도 가까이 사신다. 게다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강화 화문석짜기 어 르신들도 아직 정정하시다. 왕골공예나 짚풀공예도 한번 해봄직하다. 언제 기회가 되면 판을 벌여 신 명나게 놀아보는 꿈을 꾼다. 비단 강화뿐 아니라 이 땅 방방곡곡 재야의 생활기술 고수가 허다하지 않은가? 그 분은 나의 부모님이거나 이모님일 수도 있고, 노인회장님일 수도 있고, 옆집 아줌마일 수도 있다. 동네 형님 또는 아우이기도 할 것이다. 온 나라가 학교요, 온 마을이 교실이 되는, 모든 이 가 가르치고 배우는 자로 움직이는, 그야말로 삶과 배움이 둘이 아님을 나의 온몸으로 익히는 참교육 의 잔치가 눈에 선하다.
삶의 기술, 인문적 소양과 자연과학적 지식에 기반한 인간의 얼굴을 닮은 생활기술이 우리네 삶과 세상을 좀 더 살만한 곳으로 내딛게 하기를 소망한다. 대량생산과 첨단기술이 불가피하다는 측면을 간과하지는 않더라도, 이로 인한 문명의 비정상적인 행로와 삶의 피폐함을 새삼 거론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손은 마음의 자궁’이란 말이 있다. 물리적인 손만을 뜻하진 않을 것이다. 나의 몸을 사용했 을 때 만끽할 수 있는 어머니의 자궁처럼 평온한 세계로, 정신 못 차리게 만드는 빠른 속도를 거부하 며, ‘내 손으로 살아가는 소박한 삶을 꿈꾸는 이들을 위한 착한 기술’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문명화는 인간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던 완전함과 품위로부터 단절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가 인 간성이라고 부르는 이 불쌍한 것은 우리의 본성이 아니라 병에 걸린 상태이다. 갈수록 기계화되고 메 말라가는 세상을 아무리 합리화하고 찬양해도 공허함을 메울 순 없다. 문명이 진보함에 따라 우리 인 류는 점점 더 의존적이 되면서 유아기로 퇴보하고 있다.(존 저잔, 《문명에 반대한다》, 와이즈북, 12, 2009년)
의존적인 병약한 유아로부터 자립적인 건 강한 성인이 되는 길로의 점화본능이 되살아난 성스러운 순례자는 점차 늘어날 것이다. 장차 ‘자급자 족을 위한 생활기술교육 교사/활동가 양성과정’이 이 땅에서의 인간부흥 민예운동에 있어서 유의미한 작은 발자국이 되리라 믿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