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 7. 일요일. 날씨: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인천공항 하늘이 자욱하다.
교육의 지속가능성, 덴마크·독일에서 배우다(교육문화예술기행)
[다시 덴마크에 왔다]
8시 공항 H카운터에서 기행단이 모인다. 광주에서 새벽버스를 타고 온 지혜학교 장종택 선생과 가장 일찍 만났다. 곧 칠보산자유학교, 성미산학교 선생들을 만나고 유은영 교사대 사무국장, 문선 선생을 뵈니 모두 반갑다. 출국장이 붐빈다. 칠보산 선생들이 빵을 건네줘서 같이 나눠먹는다. 같이 덴마크를 다녀온 강영미 선생을 뵈니 또 반갑다. 안성균 선생과 이병곤 선생을 나중에 뵜다. 순조롭고 넉넉하게 출국 심사를 마치고 비행기를 탔다.
7733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데 11시간이 걸린다. 같이 자리를 잡아야는데 실수로 따로 표를 받아 좌석이 나뉘어져 긴 비행시간이 심심하겠다. 두 끼 먹고 영화 두 편 보니 바르샤바공항이다. 갈아타는데 두 시간 대기다. 저녁 6시50분 코펜하겐공항, 삼 년 전 첫 기억처럼 아담하고 소박해 보인다. 먼저 자유여행을 하고 온 산돌학교 이진영·이지소 선생을 보니 반갑다. 개별여정으로 따로 온 일곱 분까지 33명 기행단이다. 환전하고 다함께 올로럽으로 가는 버스에 탔다. 다시 두 시간이다. 9시, 첫 방문지 올로럽 댄프라이 자유교원대학에 닿았다. 32시간이 하루인 날이다. 덴마크 애프터스콜레협회 야콥이 우리를 기다리며 반긴다. 내 얼굴을 기억한다. 다시 방문한 걸 환영한단다. 누군가를 기억하고 반겨준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하늘엔 밝은 별들이 뚜렷하다. 오리온과 북두칠성이 한 눈에 보인다. 9시쯤 자유교원대학에서 준비한 저녁을 먹는다. 늦은 시간인데 자유교원대학 학장과 애프터스콜레 협회장이 우리를 기다려 반겨줌에 정말 고맙다. 반기고 환영하는 덴마크 사람들이 언제나 친근하다.
저녁 먹고 기숙사에 방 배정받아 가는데 힐튼이라고 쓰여 있는 남자기숙사다. 침대보와 이불보 모두 정갈한 새 덮개가 놓여있다. 부천에서 온 장하성 선생과 한 방을 쓴다. 초등 선생이라 반갑다. 씻고 산돌학교 이진형 선생, 지혜학교 장종택 선생, 장하성선생과 첫날밤 회포를 푼다. 안성균 선생은 요즘 몸이 좋지 않아 술을 안 먹는다. 이진형 선생이 사온 위스키와 장하성 선생이 가져온 팩소주로 17시간 걸려 닿은 먼나라의 여독을 달랬다.
첫 날이라 삼년 전 덴마크 기행을 읽어보며 두 번째 방문에서 무엇을 생각할지 생각하게 된다. 첫 기행 보고서에 덴마크 학제와 프리스콜레와 애프터스콜레, 폴케호이스콜레에 대해 잘 정리해놓은 게 눈에 들어온다. 삼 년의 시간이 흘러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그룬트비와 크리스텐콜을 떠올리며 내가 쓴 첫 덴마크 기행 보고서에서 눈에 들어오는 구절을 다시 읽는다. 나는 무엇때문에 다시 덴마크에 왔는가.
[덴마크 자유학교의 기본 교육철학 아홉가지-1. 학교는 아이가 사는 가정의 연장이다. 2. 학교를 아이들을 위해 존재한다. 3. 손은 마음의 자궁이다. 4. 배우는 법을 배운다. 5. 구술언어, 이야기 하기, 아침모임. 6. 종교(기독교)적 전통, 7. 친교와 자유, 8. 교육과 자유-상호작용의 자유, 9. 민주적학교 - 위대한 평민을 기르는 덴마크 자유교육(민들레))
프리스콜레 Friskole (primary school)는 공립기초학교인 폴케스콜레(Folkeskole)에 대응하는 자유학교로 초등과 중등교육을 한다. 9/10학년까지 있다. 농민운동을 통해 학교를 세웠고, 폴케호이스콜레 운동이 사회를 바꾼 역사처럼, 1852년 “아이들은 부모의 것이지 국가의 것이 아니다. 국가로부터 아이들을 되찾자.”고 주장한 크리스텐 콜이 국가로부터 자유롭고 시험과 규칙이 얽매이지 않는 프리스콜레를 처음 세웠다.
애프터스콜레는 우리나라로 치면 중2에서 고1단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기숙형 자유학교다. 공립기초학교나 프리스콜레를 졸업하거나 졸업하기 전에 8학년에서 10학년 학생들이 선택해서 1년이나 혹은 1년을 더 다닐 수 있는 자유중등학교이다. 애프터스콜레는 1851년 크리스텐 콜과 포울센달이 처음 설립했는데 시험이 없고, 자유로운 교과 과정, 살아있는 말과 대화, 학생과 교사간 동등함과 가족 같은 공동체가 특징이다. 학생들이 부모 곁을 떠나 많은 동무들과 기숙 생활을 하면서 자유와 즐거움을 누리며 삶의 뜻을 발견하도록 돕고, 공동체성과 사회성을 배울 수 있는 학교이다.
폴케호이스콜레는 시민대학쯤 되는 곳인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이나 성인들이 4개월에서 1년 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단기 기숙학교로 삶의 계몽과 민주사회를 위한 깨어있는 농민과 시민 교육을 말한 그룬트비 사상을 실천한 덴마크 교육의 중심이다. 1844년 뢰딩에 세워진 최초의 시민대학이 있지만, 그룬트비 사상의 실천가 크리스텐 콜이 1851년에 세운 뢰스링에 시민대학이 오늘날 시민대학의 형태이다. 주로 덴마크 시골이나 작은 도시 지역에 75개쯤 있다고 한다. 주로 18세에서 23세 젊은이들이 많이 다니긴 하지만 해마다 덴마크 성인 인구 2%정도가 다니는 평생교육기관 노릇도 한다. 일반 학교 시스템과 학교 형태과 차이는 더 많은 자유에 있다. 과목, 교수 방법, 반 형태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 학교마다 철학과 신념에 따라 삶을 위한 배움 과정을 지니고 있다.
크리스텐 콜은 그룬트비 사상을 실천한 분으로 가난한 구두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자유 평등 사랑을 자유학교 교육 이념으로 삼고 1851년 뢰스링에 시민대학과 1852년 어린이를 위한 최초의 프리스콜레를 열어 살아있는 말과 대화, 공동체 생활로 자유 교육을 실천했다.
지금 덴마크 사회는 그룬트비가 있어 가능했다. 사회를 변혁하는 정신, 실천이 있었다. 오래전 유산이라 지금 세대는 유산 속에서 살 뿐이다. 잘 모른다. 수많은 나라에서 위대한 사상가가 있었지만 이렇게 사회 전체를 변혁시킨 사례는 없었다. 덴마크 그룬트비는 그래서 특별하다. 살아있는 말, 대화, 상호작용, 스토리텔링은 교육에서 아주 중요하다. 듣는 사람과 말하는 사람 사이의 교감이 일어난다. 듣는 사람의 자유가 중요하다. 이야기를 잘 하고 이야기를 잘 만들면 듣는 사람을 끌어들이도록 하는데 도움이 된다. 사회 변화를 위해서는 시작은 어렵지만 줄곧 노력해야 한다. 불신을 신뢰로 바꾸어야 한다.
덴마크인들의 여유는 어디서 나온 것일까. 사회안전망과 교육의 힘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았다. 언제든지 삶을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는 학교에 갈 수 있는 사회가 있어 행복한 학교에서 행복하게 사는 아이들이 있었다
1864년 전쟁 뒤 1/3이나 되는 영토와 2/5나 되는 국민을 빼앗기고 작은 나라 덴마크를 다시 일으켜 세우는데 협동조합운동이 있었고,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 로 대표되는 국토개간운동을 벌인 달가스도 었었지만, 무엇보다 민족의 혼을 깨운 그룬트비가 있었다. 덴마크의 아버지, 위대한 실천하는 사상가 니콜라이 그룬트비가 보여준 삶의 흔적을 보며 이오덕 선생님과 동학을, 사회의 진정한 지도자상을 떠올린다. 민족의 얼, 민족의 정신을 사랑하며 시와 노래, 살아있는 말로 농민과 시민들을 깨운 실천에서 우리말을 바로 쓰고 살려 쓰는 교육의 정신을 본다. 삶의 계몽, 민주시민의식 모두 민족, 민주, 인간 교육을 외친 참교육 운동 아닌가. 덴마크 폴케호이스콜레와 애프터스콜레를 보며 덴마크 학교와 사회에 흐르는 자유와 평등, 연대와 협력, 민주주의의 가치들을 일찍부터 실천하며 한국 교육의 혁신과 삶을 위한 교육을 실천해온 풀무학교와 대안교육운동이 시대 정신임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실천임을 깨닫는다.
덴마크 교육제도를 우리와 견주어 보면 공립기초학교(폴케어스콜레)가 1학년부터 10학년까지 있고, 3년 과정 김나지움과 실업학교, 대학교가 있는데, 사립학교인 자유학교 계열도 자유학교(프리스콜레)(1-9학년), 자유중등학교(애프터스콜레)(9학년, 10학년들이 선택)-시민대학(폴케호이스콜레)(18세 이상-)과 대학이 있다. 청소년기에 애프터스콜레와 폴케호이스콜레와 같은 학교에서 두 번에 걸쳐 진지하게 삶을 탐구하고 길 찾기를 하는 특별한 교육체제에서 행복한 교육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