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목전통시장
김금만
1년 중 아름다운 꽃들이 절정을 이루는 계절이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롭게 꽃길을 거닐며 오순도순 대화의 꽃을 피우는 가족들의 얼굴에는 행복이 넘쳐흐른다. 올해는 코로나로 인해 남목 주전 벚꽃길 축제가 취소되었다. 하지만 아름다운 벚꽃터널에는 차량이 밀릴 정도로 많은 인파가 몰렸다.
그 벚꽃길 초입에 남목전통시장이 있다. 예전부터 장이 서던 재래시장이다. 약 160여개의 점포와 40여개의 노점이 형성되어 손님을 맞는다. 동구 일대에서 직접 재배한 농산물과, 어민들이 직접 잡은 싱싱한 해산물, 공산품을 판매하는 시장이다. 울산 동구를 대표하는 시장으로 이름이 높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즈음이면 상가의 통행로는 사람들로 넘쳐났다. 하지만 청결하지 않은 화장실, 상가의 점포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전선줄, 정찰제 없는 영업방식이 손님의 발길을 돌리게 했다. 백화점과 대형 유통업체에 경쟁력을 잃어갔다.
상인들은 잃었던 상권을 회복하고 시장의 활기를 찾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정부의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으로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약간의 자비부담이 있었지만 상인들은 만족스러워했다. 노후되어 위험했던 전선도 안전하게 정비했다. 무질서했던 노점상 구역을 정비하였다.
노란색 실선을 그어놓고 그 선을 넘지 않도록 물건을 진열하였다. 고객의 편안한 이동 통로가 확보되었다. 처음에는 협조가 되지 않아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지금은 상인과 노점상모두 양심선을 잘 지킨다. 아케이드를 설치한 후에는 비가 오는 날에 우산을 펼치지 않고 시장을 볼 수가 있다. 또 가게마다 진열된 물건을 안으로 들이지 않아 상인들도 편리해졌다.
울산 동구에는 세계 굴지의 현대중공업이 있다. 생산과 소비가 활성화된 지역경제가 형성되어 있다. 호황일 때는 울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모든 경제지표의 수치를 올려 선진국의 대열로 이끌었다. 하지만 유가 하락과 장기간 조선업의 불황으로 인해 동구경제는 암흑 속에 갇혔다. 주민들은 시장에 나오는 횟수도 줄이고 지출을 하지 않았다.
중요한 시기에 전통시장 ‘1단계 특성화첫걸음 육성사업’에 선정되었다. ‘간편한 결제’, ‘고객신뢰’, ‘위생청결’ 3대 서비스 혁신을 강화했다. 원산지 표시, 가격 표시제등 특성화에 관련된 여러 사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었다. 서비스 개선교육 후에는 상인들은 밝은 표정으로 손님을 맞았다.
지금은 소통의 시대라고 한다. 최첨단을 걷고 있는 정보통신기술 때문에 과거 어느 때 보다 의견이나 감정의 교류가 원활하다. 하루가 다르게 다양성이 확대된다.
1단계 특성화 육성사업이 잘 마무리 되었다. 올해 초 그 노력을 인정받아 중소벤쳐기업부 공모 2단계 육성사업에 선정되었다. 여러 전통시장이 치열하게 경쟁하는 가운데 선정되어 그 기쁨이 컸다. 앞으로 남목전통시장은 ‘문화관광형시장 육성사업’으로 활기를 찾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육성사업단이 꾸려졌다. 코로나19에 따른 내수경기침체로 경영애로를 겪고 있는 소상공인을 돕는 기관이다.
전문지식을 가진 단장님, 실장님, 운영팀장과 상인회 기획단원 9명이 한마음으로 시장을 위해 분투노력하고 있다. 이 달에는 대한민국 동행세일을 준비하고 있다. 행사기간 각 점포에서 할인행사를 하며 경품지급행사도 준비한다. ‘덕분에 릴레이’ 기부행사로 동구 노인복지관에 생필품도 전달될 예정이다. 남목지역의 특색이 잘 나타날 수 있는 행사가 될 것이다. 상가에도 생기가 돌 것이다.
상인들의 동아리 수업도 예정되어 있다. 노래교실과 줌마댄스가 상가에서 열리게 된다. 시장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인들을 위해 장소와 시간을 정했다. 10월 하반기에는 다채로운 체험행사 공연이벤트도 계획되어있다.
처음 시작은 미약하지만 상인모두가 한마음이 되면 성공할 수 있다. 지역사회에서 서로가 따뜻하게 도와주고 격려하며 유대를 넓혀 가면 평화롭고 희망이 넘치는 시장이 될 것이다. 희망만이 희망을 낳기에 가슴이 뛴다.
박꽃
처마에 달린 풍경이 바람 부는 대로 흔들리면서 시원한 소리를 내고, 소나무 숲을 쓸고 가는 바람소리는 유난히 청량하다. 말복과 입추가 지나니 아침저녁으로 신선한 공기가 달콤해져 바싹 다가온 가을 기온에 흙과 풀냄새가 그리워진다. 이럴 때면 집 앞의 텃밭을 찾는다.
올해도 잊지 않고 박 모종을 사다 심었더니 이 가을 문턱에도 꽃을 볼 수가 있다. 언제 보아도 정겨워 마음이 넉넉한 하얀 박꽃이 물끄러미 나를 맞는다. 박꽃을 볼 때 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 하나가 가슴속으로 가득 밀려온다. 박꽃을 좋아했던 어머니의 모습이다.
어머니는 화려하고 향기 짙은 꽃보다는, 소박하고 냄새마저 미미한 박꽃을 좋아하셨다. 어쩌면 박꽃이 박을 맺어 그 박속의 연하고 하얀 속은 좋은 찬거리가 되고, 영글어 딱딱한 껍질은 바가지로 쓰이는 그 다양한 용도 때문에 박꽃을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새벽에 일어나 밤늦게야 일을 끝내는 어머니였다. 새벽이슬을 머금고 피었다가 해 질 무렵이면 고운 자태를 뽐내며 수줍은 새색시처럼 다시 피어나는 박꽃은, 서로를 바라보며 시간을 맞고 보냈는지 모른다. 꽃을 오래보고 싶어, 아니 어머니의 발걸음 소리라도 들을 수 있기를 바라며 열매를 자꾸 따주니 지금까지 꽃을 피운다.
하얀 꽃잎 다섯 장이 여리 여리 고와서 쳐다만 보아도 찢어 질것 같은데 그 꽃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지금 곁에 안 계신다.
박꽃이 지고 열매를 맺어 애기박이 열리면 어머니는 나물을 해서 밥상에 올렸다. 늦가을까지 박이 여물도록 기다렸다가 일손이 한가한 날에 흥부네 박을 타듯이 풍성하게 마당에 멍석을 깔아놓고 박을 타서 삶아 말리기를 반복하여 예쁜 바가지를 만드셨다. 어머니의 바가지는 친척들과 마을사람들의 쌀바가지로 물바가지로 제자리를 찾았다.
여고시절 학교 생활관에서 다도와 예절교육을 받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일주일 동안 예절교육을 받은 후 각자 어머니를 초청해 그동안 배운 것을 시연해야 했다. 시간이 되니 어머니들이 모습을 보였다. 이모님과 동행하신 어머니는 고운 한복을 차려입고 박꽃 같은 미소를 지으며 나와 눈맞춤을 했다. 우리는 그동안 배운 대로 어머니 앞에서 큰절 올릴 준비를 했다.
그런데 내 옆자리 윤희는 어머니가 안 계셨다. 친척분이 오시기로 했다는데 무슨 연유인지 빈 자리였다. 그때 어머니께서 얼른 윤희의 앞으로 옮기시어 큰절을 받았다. 나는 이모님께 절을 하였다. 다른 어머니들이 여럿이었지만 윤희의 어머니가 되어 상처 난 마음을 다독여주고 슬프고 우울한 분위기를 밝게 해준 어머니가 자랑스러웠다.
그날 행사가 끝난 후 윤희를 데리고 떡국을 먹으러 갔다. 어머니는 아무 말 없이 윤희의 손을 꼭 잡아 주셨다. 그 날 이후 윤희는 우리 집에 자주 왕래하였고 어머니도 딸처럼 보살펴 주었다.
어머니는 늘 주변을 따뜻하고 조용하게 이끌며 마음을 너그럽게 가지셨다. 어머니의 그런 모습은 담벼락에 소리 없이 피어 주변을 환하게 하는 박꽃과 같아 보였다. 소박하면서도 속이 꽉 차 있는 꽃의 모습이었다. 늘 다른 사람의 말을 귀 기울여 들어주고, 가지고 있는 것을 주변과 나누었다. 어머니의 따뜻함과 주변을 챙기는 모습은 자식들의 가슴에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항상 밥을 지으면 다른 식구들 앞에는 갓 지은 밥을 놓고 어머니는 묵은 밥을 드셨던 모습이 나를 아프게 한다. 박꽃이 시든 자리에 조그만 열매가 맺혔다. 뿌리로부터 올라오는 자양분으로 열매를 키우더니 시간이 지난 후 튼실하고 풍성한 박을 선물로 주었다. 자식들은 어머니의 젊음을 먹고 건강하게 자랐고 어머니는 늙어갔다.
언제나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계시리라 생각했는데 언제부터인가 구부정한 허리로 천천히 걷고 계신 어머니를 보고 모든 감각이 뭉툭해졌다. 어머니의 키가 작아져 찬장 높은 칸에 놓은 그릇을 꺼낼 수 없었다. 그릇들을 아래 칸 으로 옮겨주며 나는 상실감에 마음 둘 데가 없었다.
마음이 박꽃처럼 깨끗하셨던 어머니는 글씨가 적힌 거라면 모두 귀하게 여겼고 평생 자식들이 썼던 책과 공책을 함부로 대하는 법이 없었다. 문학에 대한 내 갈증과 열정의 근본이라 여겨진다. 그리고 책에서 삶의 지식을 얻어 쓸모 있는 사회의 구성원이 될 것을 원하셨으리라 생각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도 날이 저물도록 일하고 오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농사일은 다 때가 있는 법이라 시기를 놓쳐서는 안된다며 해 지는 줄 모르고 일하셨다. 그런 어머니를 잃은 빈 자리는 그 어떤 것으로도 채울 수 없다.
나는 지금 취미로 텃밭을 가꾸지만 어머니는 절실한 생계수단이었으니 쉬이 농사일을 떠날 수 없었을 거다. 늘 척박한 터전에서도 한결 같은 꽃을 피우던 박꽃처럼, 흙속에 맨발을 딛고서도 자신의 자리를 꿋꿋이 지키셨던 어머니를 생각하면 더욱 마음이 애잔하다.
생전에 자식들 앞에서 늘 말씀하시던 ‘사람된 도리를 하고 살라’는 말이 내안에 꽃잎처럼 피어서 흔들린다. 세파에 시달리며 온갖 사연을 안고 살다보니 내가 사람된 도리를 하며 살고 있는지 자문해본다.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거저 소리 없이 흔들리던 그 꽃잎처럼, 어머니가 소리 없이 행하셨던 겸손과 배려가 얼마나 실행하기가 어려운 일인지 내 나이 오십 고개를 넘기면서 몸소 느낀다.
시간은 꽃을 떨어뜨리고 어머니를 데려갔다. 자신을 위해서는 아끼시지만 자식을 위해서는 다 내어주셨던 어머니를 보낸 슬픔이 시간에 닦일수록 빛이 선명해진다. 어머니의 소박했던 삶은 계절이 되면 피었다 지는 꽃의 이치를 말없이 알려준다. 박꽃을 보면 따뜻하고 정겨운 어머니의 미소와 이 가을에 떠난 어머니의 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온다.
김금만 _울산광역시 동구 남목 14길21 썬누리501호
약력 _
울산 장미축제 편지쓰기 대상
여성의 전화, 부산체신청, 현대백일장 최우수상 수상
2016년 월간문학 수필 신인상 등단
2018년 울산전국 시조 백일장 장원
2018년 월간문학 시조 신인상 등단
2019년 샘터 시조 월,장원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