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20세기 과거로의 '시간여행'
영화 "카사블랑카(Casablanca)"로 잘 알려져 있는, 파리에서 비행기로 3시3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
나라 모로코(불어로는 Maroc)는 이제 막 관광의 문을 연 모로코는 아랍의 지리학에서 "석양의 섬"이라고 부르는 북서아프리카의 최서단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으로는 대서양를 안고 있고 남쪽으로는 세계최대의 사하라사막을 접하고 있다. 또한 북쪽으로는 지중해를 접해 지브랄타 해협을 경계로 스페인과 14km 떨어진 유럽에선 그리 멀지 않은 나라이다.
공식국명은 모로코 왕국,
종교는 여타 아랍 국가들과 같이 회교가 국교이며,
국왕이 종교수반을 겸하고 있다.
회교 온건파인 수니파가 절대다수라 회교 근본주의 세력이 약하며, 지리적으로 유럽과 인접한 관계로 유럽과의 교류가 많았다. 44년에 걸친 불란서 식민통치의 영향을 받아 아랍권에서 개방된 국가에 속한다.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어 있고, 전국에 외국인을 위한 캐돌릭성당 10개, 기독교회 5개 및 유대교회 10개 등이 있으나 모로코인에 대한 기독교 등 타 종교 전파는 금지되어 있다고 한다. 국기(國旗)는 붉은 색의 바탕에 녹색 선으로 별모양이 그려져 있다. 중앙의 녹색 별은 솔로몬왕의 옥쇄를 상징한다.
모로코 여행에 앞서 역사를 잠깐 살펴보고 지나가자. 원주민은 베르베르인, 7세기 후반 아랍인이 침입하여 8세기에 이슬람권에 들어가 여러 크고 작은 이슬람 왕조가 흥망성쇠를 거듭했다. 그 이후 17세기부터 프랑스와 스페인의 침략을 받았고, 20세기 초에는 프랑스와 독일 등 강대국의 싸움을 둘러싸고 영국. 이탈리아. 미국의 간섭을 받았다. 1912년 프랑스, 일부는 스페인 보호령에 속하면서 23년 탄지르가 국제관리지구로 되면서 모로코는 세 개로 분할되는 시련을 겪는다. 56년 3월 3지구를 통합, 독립하며 탄지르를 반환받은 후 57년 벤 유세흐 수장이 모하메드 5세로 국왕에 취임했다. 그 시기에 국명도 모로코 왕국으로 정했다.
사하라와 해변의 나라 모로코
모로코 여행 계획을 위해 파리의 한 여행사를 찾았다. 여행사 직원은 카사블랑카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상업도시로 한마디로 유명세보다는 '만족도'가 떨어진다고 한다. '모로코'다운 '모로코'를 보기 위해선 옛 도시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비교적 관광 개발이 잘 되어 있는 마라케쉬(Marrakesh)부터 시작하라고 권고한다. 또한 파리에서 마라케쉬까지 직항 항공편이 운행되고 있으며 프랑스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란 설명도 덧붙였다.
파리-마라케쉬 직항 비행기표와 호텔 예약만 하고 떠난 모로코! 8월 첫째주는 최고 온도 때문에 오히려 여행 비수기에 속한다. 통계를 보니 마라케쉬는 여름 평균기온 35-38도로 건조하므로 한국의 한여름보다는 나을 거라는, 거뜬히 버틸 수 있을 거란 자만심(?)에 떠난 아랍하고도 모로코 여행. 그러나 우리가 도착한 첫날은 그 나라 역시 이상기온... 착륙시 기장이 48도라고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 공항내까지 걸어가는 몇 분 동안도 강렬한 태양은 호흡과 함께 폐까지 들어오는 것 같았다. '과연 이런 날씨에 관광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50년대에 지은 것 같은 공항 건물(최근에 지은 도착기 전용)은 에어컨 시설이 없다. 여권검사를 위해 줄을 선 관광객들. 내 주변엔 거의 대부분 프랑스인들 그리고 귀국하는 아랍인들 뿐이었다. 아랍인들에겐 줄서는 문화가 없는 것일까? 아니면 줄 서있는 사람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일까? 당당히 새치기하는 모습이 눈가에 힘이 간다.
관광을 목적으로 할 경우엔 '3개월 무비자'. 파리 출발 전 주불한국대사관과 모로코 영사과로부터 한국인은 3개월 동안 비자가 필요 없다는 확인 대답을 재차 들었지만 그래도 은근히 걱정이 앞섰다. 드디어 우리 차례. 아니다 다를까! 앞에 있는 직원(입국심사 경찰관)은 한국여권을 보며 고민, 옆에 부착되어 있는 리스트를 보기도 하며 아랍어로 옆 동료와 말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또 다른 동료에게도... 4명의 경찰관이 우리들의 한국여권을 들고 웅성웅성하는 몇 초사이 우리는 '이러다 모로코 땅도 구경 못하고 곧바로 파리로 되돌아가야만 하는 것은 아닐까?'하는 불안감이 고개를 쳐드는데. 한참만에 "꼬레 시울?"이라고 우리에게 묻는 경찰관에게 "위, 꼬레 뒤 쉬드"라 대답하지만 그 경찰관은 "꼬레 시울?"이라 되물어온다. 다시 우린 똑같은 대답을 하며 시울은 캐피탈이라 설명해주었지만 그들에겐 '쉬드'와 '노흐'는 모르고 꼬레 시울만 알고있었다.
붉은 도시 마라케쉬
인구 79만의 모로코 제 4대 도시 마라케쉬. 표고 545m에 자리잡은 이 도시는 사하라 사막 바깥쪽의 오아시스와 야자수들, 올리브나무 등 푸른 녹지 지대가 시원하게 눈에 들어온다. 흙 색깔이 붉은 색이어서 건물 벽이 온통 붉은 색으로 통일되어 "붉은 도시"라고 불리기도 한다.
대부분 모로코의 도시는 두 부분으로 나뉜다. 메디나(medina)는 대체로 오래된 구역으로서 성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며 Ville Nouvelle(신시가지)는 비교적 새로 조성된 지역. 보통 관광객의 흥미를 끄는 곳은 메디나로 이곳에는 공예품상 등 문화적으로 매력이 넘친다.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은 물론 신시가지지역이다. 그곳엔 프랑스 거리, 프랑스문화원, 유치원에서부터 고등학교까지 프랑스 학교들이 자리 잡고 있다.
마라케쉬는 1062년 알 모라비드 왕조를 일으킨 유세프 이븐 타시핀에 의해 건설되었다. 모로코에서는 페스 다음으로 오래된 도시. 도시 건설은 그의 아들 알리에게 인계되어, 지금 메디나라고 불리는 구 시가는 이때에 그 규모가 결정되었다. 메디나는 시가의 동쪽에 위치하고, 주위는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다. 마라케쉬의 역사를 말해주는 건축. 유물 등은 대개 메디나 안에 있고, 서민의 주거 역시 오랜 세월을 거친 것이 많으나 일행과 떨어져 서민 주거지를 구경하는 것은 안전상 문제가 있으니 피하는 것이 좋다고 가이드가 귀띔한다.
마라케쉬에 사는 사람들은 아직까지 순박한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다. 미소 짓고 있는 가난에 찌든 이들을 거리에서 수 없이 만날 수 있다. 돈을 요구하는 사람, 볼펜을 달라고 외치는 소년들의 검게 그을린 얼굴까지.
독일 문화권인 아가디
마라케쉬에서 차를 렌트해(호텔에 문의하는게 가장 편리하다) 해변 도시 아가디(Agadir)로 달리면 그리 높지 않은 산맥을 만난다. 푸른 산만 가지고 있는 우리 한국인들에겐 신비하기까지 한 산세(山勢)이다. 초록색을 거의 볼 수 없다. 물이 모자라는 나라. 사하라 사막으로 길목을 잡은 것도 아닌데 사막으로 들어서고 있는 듯한 주변 풍경이 펼쳐진다.
마라케쉬에선 호텔, 식당, 관광명소에서 불어로 의사소통을 했는데 우리 일행이 도착한, 대서양에 접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해변이 있는 '아가디'는 불어권이 아니었다. 호텔에서 첫 번째로 듣는 언어는 독일어. 해변가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는 대부분의 서양인들도 독일인들이다. 독일이 한때 통치해서 일까? 어째든 독일 문화에 익숙해진 도시 같았다.
지진 피해로 오래된 건물은 거의 없고 새롭게 건설된 휴양도시. 해변을 중심으로 식당, 호텔 등 관광객들을 위한 시설이 밀집되어 있어 마치 우리나라 해운대에 온 것 같은 분위기이다. 해변에서 부는 바람과 함께 기온도 뚝 떨어져 26도정도. 한 여름 평균 기온이 26도 정도란다.
주민들의 모습도 많이 다르다. 마라케쉬에선 온 몸을 감싼 전통의상을 입고 다니는 이들이 많았었는데 이곳 거리에서 만난 여성들은 요즘 유행하는 반바지에 나시 차림이다. 해변에선 비키니까지 볼 수 있다. 작년부터 갑자기 출현?한 외세 물결이라고 해변의 한 카페에서 일하는 이가 설명해준다. 그러고 보니 젊은 여성들은 수영복으로 노출시키고 일광욕을 하고 있는데 40대 부인들은 전통의상으로 꼭꼭 싸매고 해변에 앉아 물가에서 노는 자식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가디'는 우리나라 원양어업의 기지로 사용되던 곳으로 지금도 약 250명의 선원들이 원양어업에 종사하고 있다. 가보진 못했지만 이곳엔 한국음식점도 하나 있다고 한다.
스위하의 해변과 시골마을들의 풍경
아가디를 출발해 스위하(Essaouira)를 향해 해변도로를 달려보자. 아가디 해변보다 더 아름답지만 관광객에게 덜 알려진 환상적인 해변들을 보며 넉넉잡아 3시간 정도 드라이브를 즐기면 스위하란 문화도시에 도착한다. 과거 포르투갈의 식민지. 노예들의 후손이 세운 항구도시로 현재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아랍,아프리카,서구문화가 혼합되어 있는 예술의 도시이다. 18세기 Theodore Cornut란 한 프랑스인에 계획 건설된 이 도시는 아가디처럼 여름평균기온이 25도정도. 도시 건설전에 도시 계획을 한 이 도시엔 화가, 음악가, 영화인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예술인들이 다녀가기도했다. Orson Welles은 Othello란 영화를 이 도시에서 촬영했고 60년대엔 Jimi Hendrix 등을 비롯한 히피족들의 집합지였고, 오늘날엔 영화가 Jacaues Doillon, 음악가 Rita Mitsouko 등이 이곳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또한 좁다란 옛 도시의 거리, Haik란 전통의상으로 온 몸을 감싸 눈과 발만 보이는 여인네들, 관광객을 상대로 거리에, 벽에 진열되어 있는 양탄자, 도자기, 나무로 만든 제품 등 모든 것들이 마냥 아름답게 보이는 해변도시이다. 하얀색과 푸른색의 건물에 비해 막상 이 도시 해변은 너무 평범하다. 참고로 이 도시엔 다른 관광지에 비해 호텔이 그리 많지 않으므로 성수기엔 주의해야 한다.
이 도시에선 꼭 화랑(La galerie des arts Frederic Damgard)을 둘러보는게 좋다. 아프리카문화와 아랍문화가 만나 탄생된 작품들이 볼만하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긴 편이므로 주의해야한다.(9h-13h, 15h-19h). 신선하고 풍성한 맛있는 생선요리가 많다. 가격도 아주 저렴하므로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단 여름철은 주의) 스위하를 떠나 마라케쉬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만나는 조그마한 시골 마을들은 관광객이 없는 100% 그들만의 삶의 풍경. 마치 우리나라 60년대 시골장주변을 보는 듯하다. 우물, 거리에 걸려놓고 고기를 파는 정육점, 노점상, 동네 카페 등은 그들의 시골마을 풍경이다. 이에 장이 열리면 멀리서 당나귀를 타고 시장을 보러 온 남자들, 물을 길러 나온 소년들로 가득하다. 아랍권은 이 모든 일이 남자들의 일이란다. 시골마을 거리에선 여자들이 거의 없을 정도.
도로를 달리다 보면 arganiers(가시나무 관목)위에 염소들이 올라가 있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는데, 이것은 모로코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관광객들은 처음 보는, 믿어지지 않은 이염소들을 모델로 제공한다는 소년들과 사진 찍기 전에 꼭 가격 협상을 해야한다. 염소들이 유유히 나뭇잎을 뜯고 있는 가시나무 관목은 나무는 숯, 열매는 샐러드 용 기름으로, 나뭇잎은 염소들의 양식으로 이용되니 하나 버릴 것 없는 모로코에선 귀중한 나무라고 한다.
'현대화'를 외치고 있는 모로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우물 밖의 개구리'가 되고자 노력하는 나라. 이 나라를 여행하고자 하는 이들은 -모든 아랍권 나라들도 마찬가지지만- 라마단 기간은 피해 떠나라는 점. 이슬람의 전통적인 종교 축제인 라마단은 한 달간 계속되는데 해가 떠있는 동안은 먹지도 않고 술은 물론 담배도 입에 대지 않는다. 음력으로 계산된다.
모로코 주재 한국대사관
주소 41 Av. Mehdi Ben Barka, Souissi, Rabat. Morocco
전화 : (7) 75-1767, 75-6791
[여행자를 위한 조언] 모로코에 한번 가보려는 그대에게~
1. 모로코에선 음식, 음료에 주의해야한다. 되도록 물은 사 마셔야한다. 더운 나라일수록, 수돗물은 피하는 것이 좋다. 특히 거리에서 직접 짜서 파는 오렌지 주스는 안 마시는게 좋다. 압축시키는 기계의 청결상태를 보면 마시기도 전에 배부터 살살 아파 올 정도. 이처럼 위생 관념이 철저하지 않아 바이러스에 의한 감염을 조심해야 하며, 호텔 등 고급 식당이나, 외국 패스트 푸드 식당을 제외한 일반 대중 식당 이용은 삼가는 것이 좋다. 또한 날 음식보다는 익힌 음식을 되도록 선택하도록 한다. 다양한 종류의 샐러드와 타진, 꾸스꾸스 등의 아랍음식, 맛깔스러운 이태리 음식 등... 먹거리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저렴한 가격에 엄청난 양이 제공되므로.
아랍식 코스는 여러 종류의 샐러드로 시작해 타진 꾸스꾸스 등의 본식을 거쳐 박하차에 아랍식 비스켓까지가 일반적인 코스이다. 저녁식사 시간이 상당히 긴데 식사도중 나이든 양반들은 식사가 거의 끝날 무렵엔 식탁 옆에 누워서 자는 신기한? 모습도 눈에 띈다. 그래서인지 이곳의 아랍식 쇼파는 1인용 침대보다는 폭은 좁지만 길다란 방석을 많이 사용하나보다. 우리들에겐 예절없는 행동이지만 그들에겐 평범한 관습이랄 수도.. 이런 것들이 문화적 차이라 할 수 있겠지.
2. 사소한 문화적 차이 하나를 더 집고 넘어가자.
거리, 가게, 박물관 등에서 만나는 이들의 인사말이다. 봉쥐에 이어 곧바로 덧붙이는 말이 사바?( a va?)이다. 처음 만나도 곧바로 tu와 a va를 사용한다. 그것도 친구처럼 다정하게. 호텔 등 관광객을 상대하는 곳을 제외하곤 일반적으론 vous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여자 혼자 길을 걷다보면 너무도 친절히, 이 사람이 날 유혹하고 있나 싶을 정도로 " a va?"를 던지는 사나이들을 많이 만나는데 그렇다고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므로 적당히 응수해주던지 무시하면 된다. 파리에서 만나는 " a va?"의 남정네들보다는 덜 불쾌하므로.
3. 모로코다운 이색적인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싶을 땐 꼭 가격 협상부터 해야한다.
또한 거리에서 모로코인 한 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기만 해도 그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나라가 모로코다. 나라의 궁핍성도 있겠지만 친절함에 대한 해석차이로 모로코인들은 '친절'을 주웠으면 무언가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느낀다. 거리에서 여행책자를 가지고 두리번 두리번 거리면 영낙없이 다가서는 아랍인이 있는데 이들은 박물관까지 안내해주고 손님들이 나올 때까지 문밖에서 기다린다. 그리곤 다음 코스로 친절히 안내하려고 하는데 이때는 약간의 잔돈을 주고 거절하면 된다. 거절시엔 확실한 의사표시. 그들 역시 끈기 있는(?) 상술을 가지고 있으므로...
모로코엔 두 종류의 가이드가 있다.
정식가이드와 박물관 등에 상주하고 있는 가짜가이드다. 반나절 또는 한나절 정식 가이드를 원할 경우엔 묶고 있는 호텔에 문의하면 된다. 자칭 가이드의 연령층도 다양하다. 어린 꼬마부터 할아버지까지. 공통점은 남자란 점. 가격 역시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자세한 설명후 만족도에 따라 가이드비를 주면 된다고 하는 엉터리 가이드도 있다. 나라 경제를 살리고자 관광객 유치에 전력을 쏟고 있는 모로코 정부는 국민들을 상대로 관광교육을 시키고 있다고 한다. 지나친 상품 권유 안하기, 심한 바가지 요금 없애기, 지나친 가이드 안하기 등.
4. 못사는 나라가 대부분 그렇듯이 모로코 역시 빈부의 격차가 심하다. 빈곤층은 집에 수도와 전기도 없이 생활을 한다고 한다. 그들은 월 1000-1500디람(환율: 1프랑에 6-6.5디람)정도의 수입으로 한 가족이 살아간다고. 카사블랑카, 아가디 등 휴양지엔 최고급 브랜드 상가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고 주민들 사는 모습도 유럽 사회와 그리 다른 바가 없지만 옛도시의 모습을 안고 있는 마라케쉬, 페스 등 그리고 조그마한 시골 마을 등에서 만나는 주민들의 모습은 19세기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런면에서 모로코 여행은 19세기와 20세가 공존하는 '시간 여행'이라고 할 수 있다. 멈춰 있는 나라, 적당히 서구 문명이 혼합되어 있는 나라. 가진자와 못 가진자가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 우리들의 기준으로 쉽게 설명, 이해되지 못하는 점들이다.
5. 선물 구입시 주의점은 이 나라에도 바가지가 활성화(?)되어 있다는 점. 돈이 많을 것 같은 관광객에겐 몇 배의 바가지 요금을 당연하게 요구한다. 불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가진자'란 선입견을 가진 듯 하다. 가격협상에 자신 있다면 Souk이란 노점상들이 모여있는 시장을 권한다. 그러나 본격적인 가격 협상을 위해선 몇 시간 할해 할 것도 각오해야한다. 친구를 사귀는 것처럼 여유롭게 말을 풀어나가며 느긋하게 앉아 가격협상을 하면 성공할 수 있단다.
또한 모로코인들은 "인샬라"라는 후렴을 자주 부친다. 이는 '신이 원한다면'이란 뜻. 본래는 전지전능하신 신 앞에서의 겸허함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그래서 일까? 모로코인들은 스트레스가 없어 보인다. 가타부타 빨리 결정을 내리지도 않고 항상 느긋하고... 우리가 "빨리 빨리"라는 말을 밥먹듯 하듯이, "슈이아 슈이아"라는 말을 이들은 즐겨 쓴다. '천천히 천천히'란 의미다. 점심식사 후 낮잠까지 자는 그들에겐 시간의 흐름은 그리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여행 선물을 구입하고자 한 가게를 간 적이 있다. 점심 시간이라 문이 닫혀 있어 옆에 앉아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한 남자에게 영업시간을 물어보았다. "3시 또는 3시30분, 아니면 아마도 4시정도" 그 사람 표정만큼이나 느긋한 대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