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협이와 막내의 나이차이는 16년이다.
상협이 어려서 글을 쓸때마다 강조한 내용이 있다. 자폐아 상협이를 키우는 것과 일반아이 키우는 것이 동일하며 이 방법들은 아이들이 가진 최대의 재능을 끌어올릴수 있다고 정말 많이 강조하고 또 강조했었는데... 마치 그 결과를 증명해 보이기라도 하듯 막내의 지금까지의 경로가 그러했다.
막내를 낳고 병원서 진단받지 않은 자가 진단으로 보았을때 내겐 산후 우울증이 왔던것 같았다. 너무 많이 힘이 들었고 노산이라는 상황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상협이를 중학생이 되어서도 일거수 일투족을 관리해야 하는 상황과 그 외 가족적인 어려움까지 나는 삶을 12번 포기해야 할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막내를 임신하고 태교도 어려웠고 낳고 나서도 기뻐하며 육아에 전념할수 없었고 육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2살정도가 되었을까? 일찍 동네 유아방에 보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아파트 1층에 있는 유아들만우 받는 곳이었고 가깝고 남편회사에서 육아교육비도 지원이 되어 나는 그런 결정을 내리고 쉼표를 찍고자 했다.
훗날 지나고 보니 막내에게는 상처였었다. 그때 당시는 내가 너무 힘이 들어 그 누구도 돌아볼 여유가 없었다. 2년여간 보내다 유아원으로부터 검사를 받아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막내는 너무 천방지축이라 혼자서 3명의 역할을 할 정도로 힘이든다는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 했다. 나이로 4살 만3돌이 다가오도록 말을 전혀 하지 않기도 했다. 그러나 상협이를 키워본 경험상 막내가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고 유아원을 옮기기로 결정하고 옮길곳에 대한 기준을 나름데로 잡아 그런곳이 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온화한 선생님 그리고 기독교적인 곳을 찾아보았다. 마침 가까운 주택에 목사님 사모님이 선생님 한분과 운영하시는 유아원이 있었다. 얼마나 온화해 보이는지 얼굴에 착함 이렇게 써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한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후 막내는 유아원을 옮기고 하루가 지나면서 말을 하기 시작했고 유아원 가는 것을 너무 기뻐하기 시작했다. 막내는 시간이 흘러 자라면서 첫 유아원 원장님을 보면 인사도 안하고 얼굴을 돌리며 피하는 모습을 목격하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첫 유아원에서 나이가 많은 할머니 선생님이 매일같이 소리를 지르고 윽박지르고 밥도 숟가락 하나로 이아이 저 아이 먹이곤 했던 것이다. 아니 하나의 숟가락으로 밥을 먹이는 것은 내가 직접 목격했었다. 낮잠도 늦게 자면 야단을 맞고 했던 모양이었다. 나는 내 우울과 연민에 갇혀 막내를 방임했다. 건강하지 못한 엄마가 이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