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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2월 5일 금요일
2.0 신약1(마막)
신구약 중간사
① 회당 Synagogue
유대인들이 종교, 집회, 교육의 장소로 사용하는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곳이다.
바벨론 포로 생활 중에 처음 등장했으며
당시엔 성전이 없었기에 율법에 의지하고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을 지켰다. 유대인 성인 남성 10명이 있으면 어디든지 새로운 회당을
세울 수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글을 읽을 줄 몰랐기에 회당을 책임지는
회당장이 성경을 리딩하고 설교를 하였다.
유대인들은 여행 중인 랍비에게 설교를 부탁하는 관습이 있었는데 예수와
바울은 이런 관습을 활용하여 쉽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다.
성경에서 예수와 바울이 낮선 회당에서 설교했던 것은 대부분 이런 경우이다.
②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
앗시리아에게 멸망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포로로 끌려가 여러 나라로
흩어지면서 역사에서 사라진다. 그리고 많은 이방인들이 우상과 함께
북이스라엘 땅으로 유입된다. 그들이 남은 북이스라엘 사람들과 섞이면서
민족의 identity는 흐려졌다. 그런데 남유다인들은 포로로 끌려갔지만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고 신앙을 유지하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들이 보기엔 북이스라엘인들은 이방인이며 변질된 타락한 족속일 뿐이었다.
그런 이유로 신약에서 유대인들은 그들을 ‘사마리아 사람들’이라 칭하며
경멸하고 그 땅을 지나는 것조차 불결하게 여겼다.
③ Hellenism 헬레니즘
헬레니즘 시대는 알렉산더가 죽은 해인 B.C. 323년부터 로마가 그리스와
마케도니아를 점령한 B.C. 146년까지 보기도 하고, 로마가 마지막으로
남은 디아도코이 왕국인 이집트를 점령한 B.C. 30년까지 보기도 한다.
이 시기에 그리스식 신도시인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그리스인들이
이주하면서 그들의 언어, 정치, 종교, 철학, 문학이 점령지에 널리
퍼졌고, 그들은 점령지 문화의 영향을 받고 관습을 받아들이면서
동, 서양의 문화가 융합되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헬레니즘은
디아도코이 왕국으로 이어지며, 그 후 그곳을 점령한 로마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④ Palestrine 팔레스타인
북으로는 단, 남으로는 브엘세바까지 요단 강 서쪽 땅으로 신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지칭한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있었던 지역으로 블레셋 사람들 Philistines에서 유래되었다.
로마는 A.D. 66년 1차 유대 전쟁 이후 거듭된 유대인의 반란에
대한 조치로 유대인들을 강제 이주시키고 유대인이 쓰던
지명을 없애면서 그 지역을 Palesina라고 불렀다.
⑤ 유대인
남유다 왕국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한 후 많은 백성이 포로로 끌려갔다.
그들은 이방인을 배척하고 회당을 중심으로 공동체를 이루며
신앙을 지키고자 했다. 그들은 대부분 유다 지파였기에
타국에서 온 포로들은 이 특이한 민족을 유다 사람이라 불렀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 들어서 유다 왕국이 있던 지역을
유대아 Judea라고 불렀고, 그 후로 히브리인, 이스라엘인을
유대인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자로는 유태인 猶太人,
영어로는 쥬이시 jewish라고 하는데 유대인들이 전 세계 보석
jewely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기에 그렇게 불렸다고 한다.
⑥ Diaspora와 Synagugu
디아스포라는 ‘흩어지다’, ‘퍼지다’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한다.
넓은 의미로는 자신의 땅을 떠나 새로운 곳에 정착한 사람들을
말하며, 성경에서는 유대 땅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한 유대인들을 일컫는다.
그들은 이집트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으로 흩어졌으며 이주민의 특성상 타 문화를
빨리 받아들이고, 헬레니즘에도 빠르게 적응했다.
어디든 유대인이 있는 곳에는 회당을 만들었으며,
회당은 그들의 종교, 생활의 중심이자, 신을 경외하는 이방인들이 모이는
장소이기도 하였다. 예수 이후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확산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들은 절기 때 예루살렘으로 모였으며 그들의 헌금으로 예루살렘은
부유해졌다. 절기가 끝난 후 그들은 다시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흩어졌는데,
신약 때는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 세계로 전하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⑦ 70인역 성경 Septuaginta, LXX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2세 B.C. 308-2436년 는 당시 세계 최대였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에 비치할 목적으로 유대 학자 72명에게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게 하였다. 이 때 모세오경이 번역되었고, 이후 백여 년에 걸쳐
예언서와 성문서가 추가 번역되었으며, 그로 인해 유대 땅을 떠나 타국에 살면서
히브리어를 잊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헬라어를 사용했던 헬레니즘 제국과 거대 로마 제국, 그리고
디아스포라를 통해 성경이 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LXX라고도 하는데 로마는 L=50, X=10으로 표기했다.
즉 LXX란 70을 뜻하는데 이는 70인역 성경을 가리킨다.
⑧ 하시딤 Hasidim
하시딤은 헤세드 chesed라는 히브리어에서 비롯되었는데
충절, 신의, 경건, 은혜, 자비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유대 사회가 헬레니즘으로 세속화되어 갈 때 이를 지키려던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는 싸웠지만
정치적인 자유에는 관심이 없었다.
⑨ 대제사장
대제사장은 레위 지파 중에 아론의 후손만이 맡을 수 있었고,
다윗 때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라는 두 명의 대제사장이 있었다.
하지만 솔로몬 왕이 되기 직전 아도니아가 반란을 일으키자
군사령관 요압과 대제사장 아비아ᄃᆞᆯ이 그에게 가담한다.
반란이 실패한 후, 아도니아와 요압은 처형되고 아비아달은
대제사장직에서 박탈되어 추방된다. 그 후부터 대제사장은
오직 사독 가문에서만 나온다.
⑩ 수전절 Feast Dedication
수전절은 유대 절기 중 구약에서 유일하게 언급하지 않는 절기이다.
시리아 안티오쿠스 4세에 의해 더럽혀진 성전을 되찾아 깨끗이 한 후
다시 신에게 드린 걸 기념하는 절기로 오늘날까지 지키고 있다.
이날은 8일 동안 성전과 각 가정에 불을 밝히고 감사의 찬송을
하기 때문에 ‘빛의 축제’ (히브리어로 하누카 Hanukkah)라고도 한다.
이날은 각지에서 흩어져 있던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예루살렘으로
모여들었고 예수님도 어 절기에 참석해서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선포를 하신다.
⑪ 분리된 종파
바벨론 포로기에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율법이지만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후 성전을 재건하면서 제사장이 최고 권위자가 되었다. 이후
유대인들의 중심이 된 것은 성전과 율법이다. 그로 인해 성전을 맡은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은 사두개파가 되고, 율법을 중시하던 지식인들은 바리새파가 된다.
그들은 마카베오 형제들이 정치, 종교의 권력을 함께 지니면서 유대인의 자치권과
종교적 자유가 보장되자 각자의 종교적 신념과 이해 관계에 따라 분파된다.
사두개 Sadducees : 성전을 중심으로 한 종교 귀족들과 막강한 권력을 지닌 제사장 계급을 대표하는 집단으로 당시 대부분의 제사장들은 이에 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성전에 바쳐지는 헌물로 부유한 생활을 했다. 세속적이며 정치와 결탁하여 풍요로운 지위를 계속 누리려 했기에 일반 백성들의 지지를 받지는 못한다. 1차 유대 전쟁 때인 A.D 70년에 예루살렘이 파괴되면서 그들도 사라지게 된다.
바리새 Pharisees : ‘경건한 자’를 뜻하는 하시딤의 계승자로 본다. ‘분리주의자’라는 뜻에서 보듯이 부정한 것들과 일체의 접촉을 피하며 엄격하게 율법을 지키던 사람들이다. 스스로 성경의 율법보다 훨씬 더 엄격한 ‘구전 율법’을 만들어 신의 말씀과 동일시하는 과오를 저지른다. 그들은 회당을 중심으로 한 중류계급으로 일반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존경을 받으나, 지나친 형식, 율법, 백성들의 지지에 의한 특권에 빠진다. 예수는 자신들의 기반이 되는 구전 율법을 인정하지 않자 적대시한다.
에세네 Essenes : 유대 전통주의 금욕주의자로 요나단이 왕과 대제사장을 겸하자 이에 반대하여 예루살렘을 떠나 쿰란에 공동체를 이루게 된다. 주로 흰옷을 입고 독신을 권했다. 사유재산을 부인하고 검약한 생활을 하여 수도원 같은 공동생활을 한다. 이에 그들은 왕권과 대제사장에게 반대하기에 습격과 죽음에 쉽게 노출되었기 때문이다. 운명을 믿고, 구원을 기대하며 구약성경을 지나치게 자신들의 관점에서만 해석하였다. 1차 유대전쟁 때인 A.D. 70년경에 로마에 의해 사라진다.
열심당 Zealot : 율법에 충실하고 신에게 열정적으로 헌신하는 자들이지만 종교적인 집단보다 정치집단에 가깝다. 성경은 셀롯, 셀롯당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방인인 로마의 지배가 시작되자 극단적 무장 독립 투쟁 단체가 되었고, 그중에 항상 단검을 숨기고 다녔던 시카리오Sicario들은 신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여 장소를 가리지 않고 암살한다. A.D. 66-70년 1차 유대 전쟁에서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끝까지 저항을 이끌었으며 A.D. 73년 마사다 요새에서 최후의 항전을 벌이다 모두 자결하면서 그 세력이 사라진다.
⑫ 하스본 Hasmonean 왕조
마카베오 가문의 조상 하스모니안의 이름에서 유래하였다.
B.C. 142-63년까지 79년간 이어지던 마지막 유대 독립왕조이다.
하스몬 왕조는 300년 만에 유대 독립 국가를 세우고 넓은 영토를 지녔지만
다윗의 후손이 아니며, 사독의 후손도 아니라는 정통성 문제에 시달리게 된다.
게다가 왕권과 대제사장을 한 사람이 가짐으로 종교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하였다.
⑬ 이두매 Idumea
헬라어 ‘에돔 사람들의(땅)’이라는 뜻에서 유래.
구약에서 에돔은 사해 남동쪽에 위치한다. 하지만 바벨론에 의해 유다가 멸망하고
그들이 포로로 끌려가면서 그 지역에 공백이 생긴다. 그 때 에돔 동쪽에서
아랍 유목민족인 나바테아의 세력이 커지자 에돔은 서쪽인 유대 땅 아래로 이동해서
헤브론에 수도를 두기도 했다.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이두매를 정복하고 그들을 유대교로 강제 개종시켰는데
그로 인해 후일 이두매 출신의 헤롯이 유대 왕이 되는 계기가 된다.
⑭ 헤롯 안티파터 Herod Antipater
이두매 사람으로 신약 초반에 등장하는 헤롯 대왕의 아버지.
하스몬 왕조의 요한 힐카누스 1세는 이두매를 정복한 후 유대교로 개종시켰다.
그리고 이두매 총독을 임명했는데 그가 안티파터이다.
그는 힐카누스 2세와 아리스토 불루스 2세의 권력 다툼의 와중에서
빠른 정세 판단으로 폼페이우스 편에 섰다. 이로써 요한 힐카누스 1세가
정복하고 유대교로 개종시킨 이두매인이 유대의 최고 권력자가 된 것이다.
⑮ 율리우스 카이사르 Julius Caesar
로마의 군인이자 정치가로 로마 최초의 종신 독재관이 되면서 왕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졌고, B.C. 44년 이를 경계한 세력에게 암살된다.
그 후, 그의 아들은 로마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된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
등의 주인공이며 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초기 로마 황제들은 카이사르의 영향력을 얻기 위해 자신의 이름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Caesar’라는 라틴어로는 ‘카이사르’, 영어로는 ‘시저’,
한글 성경에는 ‘가이사’로 로마 황제를 지칭하는 말로 쓰인다.
⑯ 로마의 정책 변화
로마는 B.C. 63년 팔레스틴 지역을 정복했으나 깊이 개입하지는 않았다.
이는 로마의 내분과 팔레스틴의 전략적 중요성 때문이다. 로마는 유대인들이
파르티아와 손잡을 것을 우려한다. 이는 팔레스타인이 북쪽 로마군과 남쪽
로마군의 연결을 끊고, 파르티아가 지중해로 진출할 수 있는 통로가 되어
로마 본토가 바다를 통한 침략 위험이 놓이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그즈음 로마의 내분이 정리되고 헤롯을 유대 왕으로 세우면서
로마는 대팔레스타인 정책을 바꿔 본격적인 착취를 시작한다.
⑰ 예루살렘 성전
예루살렘 성전은 3차례에 걸쳐 지었다. 첫 번은 B.C. 957년 솔로몬이 지었으며,
B.C. 586년 바벨론이 유다를 점령하면서 부서진다. 둘째는 바벨론에 끌려갔다가
돌아온 유대인들이 B.C. 535년에 건축을 시작해서 B.C. 516년에 완성했지만
페르시아의 지배하에 있던 열악한 상황이라 규모가 작았다.
흔히 스룹바벨 성전이라고 한다. 세 번은 B.C. 20년 헤롯대왕이 스룹바벨 성전을
대대적으로 확장하여 크고 아름답게 지어 A.D. 70년 로마가 1차 유대 전쟁을
진압하면서 함께 파괴된다. 지금은 그 성전의 서쪽 벽 일부만 남아있는데 이를
‘통곡의 벽’이라 한다.
⑱ 산헤드린 공회
유대인 최고 의결기관으로 모세의 ‘70인의 장로회’가 기원이다.
유대 주요 도시마다 23명으로 구성된 공회가 있었으며, 예루살렘에는 70명(의장 포함)으로 구성된 대공회가 있었는데 대제사장이 의장을 맡았다. 공회는 제사장, 장로, 서기관 등 유대 사회의 지도자들로 구성되었으며 대부분 사두개파와 바리새파가 장악하고 있었다.
그들은 시대에 따라 주도권을 놓고 다투었다. 공회의 결정은 절대적이었지만 사형에 대한 권한은 가지고 있지 않아서 로마 총독의 승인을 받아야 했다.
A.D. 70년 로마에 의해 1차 유대 전쟁이 진압되는 과정에서 예루살렘이 멸망하고,
성전이 파괴되면서 공회도 함께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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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2.0 신약1권, CM출판사, 김종우/배광선/오광만, 21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