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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
주일예배
예배의 부름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며 예배합니다.
찬양하며 살기를 소원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살아 갈 믿음을 주옵소서.
어디를 가든, 무엇을 하든, 주님과 함께하는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하나님의 돌보심이 아니면 한순간도 살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해주시되
오직 하나님을 앙망하는 자에게는 새 힘주심을 확신 합니다.
독수리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은 역사를 주옵소서.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않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않게 하옵소서.
이 시간 전국 곳곳에서 예배하는 성도들 …각자 있는 자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가까이 하며 사는 승리자가 되게 하옵소서. 부족한 종, 말씀 전합니다.
성령의 기름 부어주셔서 은혜의 시간 되게 하실 것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송 영 찬송가10장 전능왕 오셔서교 독 문 제73문 이사야 65장
신 앙 고 백 사도신경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 옵 나이다. 아멘. 찬 송 가 375장 나는 갈 길 모르니
기 도 정은선 전도사
성 경 봉독 여호수아 7:1~15 봉독 김종훈 목사.
제 목 다 된 밥에 재 뿌린다.
다 된 밥에 재 뿌린다.
여호수아 7:1~15
I. 다 된 죽에 코 빠뜨린 사람
발바닥에 가시 하나가 박혔습니다.
발바닥하고 가장 멀리 있는 뇌가 인식하고 명령합니다. 입이 아야- 소리를 지릅니다. 엉덩이가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고 왼손이 발목을 붙들고 가시가 잘 보이게 뒤집어 놓습니다. 눈은 가시를 찾고 가시를 발견한 순간 오른손이 박힌 가시를 뽑았습니다. 옆에 계시던 어머니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가시가 박히면 안 되니까 가시를 입으로 질근질근 씹고 목구멍에서 바람불어 퉤퉤 뱉어 버리게 됩니다. 그동안 놀고 있던 오른쪽 발이 싹 뭉개고 길을 갑니다.
이렇게 유기적으로 움직이는 마치 오토메이션처럼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우리는 이름하여 유기체라고 합니다.
육체적,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공동체를 유기체라고 합니다.
따라서 공동체 안에서 한 사람의 말이, 한 사람의 행동이, 한 사람의 판단이 공동체를 살릴 수도 있고 공동체를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요단강을 기적적으로 건넜습니다.
하나님의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 하나님의 은혜로 여리고성도 점령했습니다.
바로 그 다음에 만난 성이 아이성이라고 하는 작은 성입니다.
castle of child. 아주 조그마한 성이었습니다.
정탐꾼을 보내서 조사한 결과 이삼, 천명이면 능히 정복할 수 있겠다.고해서 넉넉하게 삼천명의 군사를 보내서 점령을 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데 결과는 엄청난 패배에 직면하게 됩니다.
아군36명이 전사하고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 혼비백산하여 쫓겨납니다.
이에 여호수아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통곡합니다.
하나님아버지, 이방 땅 가나안에서 당신의 백성이 멸망하게 생겼나이다.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위해서 어찌 하시려고 이렇게 하시는 것입니까?
가나안의 첫 성, 여리고 성은 아이성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큰 성과 전투 할 때는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가운데 큰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작은 아이성과의 전투에서 아군이 죽고 혼비백산 대패를 하게 된 것입니다.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이스라엘 패하게 되는 것이일까요?
여호수아가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하니 하나님께서 소상하게 말씀 하십니다.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탐하여 숨긴 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조사결과 찾아보니 아간이 범인이었습니다.
결국 아간은 물론 그 가족까지 다 돌에 맞아 불에 타서 멸망을 당하게 되고 저들은 다 아골 골짜기에 집어 던졌습니다.
그래서 아골 골짜기는 지금까지 이름이 아간의 골짜기, 아골 골짜기로 불리워진다는 오늘 본문이 나오는 여호수아7장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여호수아 7장을 읽어내려가는 중에 몇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깁니다.
첫째 이 사건에 아간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간이 범죄했다고 말하지 않고 아간의 족보를 들추어냅니다.
조부는 누구이고 아버지는 누구이고 아간의 모든 가족이 드러나게 됩니다.
아간은 유다지파 사람입니다. 명문 가문입니다.
우리가 이해하게 말하면 미국 케네디가나 신라의 박혁거세 같은 가문입니다.
증조부 세라는 싹이 난다는 뜻을 가진 분으로 가문을 일으킨 사람입니다.
조부 할아버지 삽디는 꽃을 피운다는 뜻입니다. 가문을 번창시킵니다.
아버지 갈미는 풍성한 수확 열매란 뜻입니다. 열매가 나타나기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중 아간이 태어납니다.
아간은 가만히만 있어도 유다지파에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아간의 한번 잘못으로 말미암아 온 집안이 쑥대밭이 되고 멸망당하고 만 것입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다 된 죽에 코 빠뜨린”격입니다. 가만히만 있으면 되는데 아간으로 말미암아 다 된 밥에 재가 뿌려지는 다 되어있는 영광의 가문에 코가 빠진 격이 된 것입니다.
오늘 본문 25절 26절에 나오는 “괴롭다”는 말이 나오는데 공교롭게도 아간이라는 이름의 뜻이 “괴롭다”는 뜻입니다.
아간이 멸망당한 뒤에 버려진 골짜기가 괴로움 골짜기 아골 골짜기입니다.
공동체를 괴롭히고 하나님을 괴롭히고 복의 근원이었던 유다지파를 괴롭힌 인물이 바로 아간인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 영웅들이 나옵니다.
모세가 나오고 다윗이 나오고 여호수아가 나오면 그래 내가 모세야. 내가 다윗이야. 내가 여호수아야. 아버지여 모세와 같은 믿음을 주시고 다윗같은 믿음을 주옵소서 그렇게 자신과 동일시 하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반대로 가롯 유다가 나온다. 아간이 나온다. 그러면 자기와 상관이 없는 것인 양 말씀에서 자기를 동일시 하지 않음으로 성경을 침묵하고 지나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노만 도트발트라는 성경연구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확신을 가지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성경을 잘못 읽고 있다는 확신 말입니다.
오늘 본문을 대할 때
내게는 아간은 없는가? 혹시 내가 아간은 아닌가?
내 안에 아간이 살아 꿈틀거리지는 않는가?
스스로가 질문하고 자신을 살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아간과 대비되는 한 인물이 나옵니다.
2장과6:22이하에 등장하는 기생 라합입니다. 이방 여인입니다.
기생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임을 소문으로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이 광야에서 어떻게 함께 하셨는지? 요단강을 어떻게 갈랐는지?
소문듣고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백성을 자기 백성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렇게 기생이, 이방여인이 다윗 왕의 할머니가 됩니다.
유다지파 가문에 어머니가 됩니다.
아간은 영광스런 유다 지파에 소속된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야 할 것을 바치지 않은 그의 범죄로 말미암아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다 된 죽에 코를 빠뜨려”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따라서 유다 지파는 그 영광, 영예, 예수님이 족보에 들어 갈 기회를 잃어버고 만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들에게 두 가지를 말씀 하십니다.
행여 네가 아간은 아닌가? 하나님이 다 너에게 준 축복인데 네가 관리하지 못함으로 네가 멸망당하고 있지는 않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또 한가지는 행여 지금까지 어떤 실패와 어떤 어려움이 있다할지라도 네가 라합처럼 하나님의 가족이 되어서 영광을 누릴 수 있다고 말씀하시고 묻고 계십니다.
II. 미운 송아지 우쭐거리며 똥싼다.
오늘 본문을 읽어내려가다 보면 두 번째 의문이 되는 문제가 있습니다.
이 상황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는 실패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전에 첫 성 여리고를 정복함으로 이스라엘의 사기가 충천, 하늘을 찌르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백성들이 왕들이 정신을 잃어버리고 간담이 녹았습니다.
그런데 아이성 실패로 완전히 역전이 됩니다.
본문 5절에 보면 이 일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되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수7:5)
어디서 들어본 얘기인데 어디서 들었을까요?
가나안의 많은 왕들이 부족들이 마음이 녹았다고 여호수아6장에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어져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녹아서 물 같이 되고 이방 가나안 땅 부족들의 왕들이 사기가 살아나게 생겼다는 것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먹칠을 당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영광이 땅에 떨어지는 이 수모를 당하고, 당신의 이름이 먹칠을 당하는 수모를 견디면서
이스라엘 사건에 관여하고 간섭하시기 위해 들어오시는 것일까요?
지금 이런 영적인 상태, 정신적인 상태로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이성을 목전에 두고 그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요단강을 가른 것도 자기가 잘나서 가른 줄로 압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도 자기들의 군사력 때문에 정복한 것인 양 자기들이 우쭐대고 있었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을 정복하기 위해서 그들이 한 것이라고는 성을 일곱바퀴 돈 것 밖에 없었습니다. 말하지 않고 침묵한 것 밖에 없었습니다. 외치라 해서 외친 것 밖에 없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 백성과 여리고성이 무너진 것과 어떤 관계가 있더란 말입니까? 그럼에도 자기들이 했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미운 송아지 얼덩이에 뿔이 난다”“미운 송아지 우쭐거리며 똥싼다”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예언을 잘 하지는 않는데 예언을 하게되면 반듯이 틀림없이 맞습니다.
지금까지 야당이 몇 번의 선거에 걸쳐서 다 실패했지요.
여당이 몇 번 선거에서 이겼습니다. 이번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에서 야당이 이겼습니다. 그러면 내년 4월 대통령 선거에서 누가 이길까요? 모르지요. 만약 여당이 자기들의 숫자를 자랑하고 국민의 마음을 읽는데 실패하고 우쭐거리고 어쩡정하게 했다가는 반드시 망할 겁니다.
이번에 야당이 서울시장 부산시장 선거에 이긴 것이 자기들이 잘나서 그런양 우쭐대며 똥 싸게되면 역시 반드시 실패할 것입니다.
국민의 마음을 읽고 겸손히 낮아지고 달라질 줄 알고 변화될 줄 아는 당이이 되면 바로 그 당이 여당이 되었든 야당이 되었든지 필승을 할 것입니다,
경영컨설턴트 짐 콜린스의 책이 있습니다.
「위대한 기업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책입니다.
성공한 기업이 무너지는 이유가 있더라. 멋있게 성공한 다음에 무너지는 기업들이 있는데 몇 가지 이유 가운데 그 첫 번째 성공으로부터 온 자만심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성공한 다음에 더 경성하지 않으면 밑바닥부터 처절하게 개혁하지 않으면 본질로 부터 달라지지 않으면 다음 성공이 보장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 시간 여러분 자신을 뒤 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멋있게 승리하신 분이 계십니까?
아니면 세상 살다가 내 능력 아닌 것 같은데 멋있게 성공을 거둔 분이 계십니까? 자만에 빠진 것입니다. 섰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질까 조심하라.
승리의 순간처럼 위험할 때가 없는 것입니다.
대군을 무찌르고 돌아오던 장수가 성문 앞에서 풀뿌리에 걸려 넘어집니다.
대산맥을 넘었다고 자유하는 분들 긴장하고 앞을 바라보아야 할 때입니다.
반면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큰 문제에 부딪힐 때가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막다른 골목에서 쩔쩔매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없는 그 때 우리는 무릎을 꿇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사랑하시는 내 아버지가 하나님 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고 낮아져서 기도하면 예기치 못했던 기적이 일어납니다. 역사가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승리와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셨습니다.
그러면 또 다음에 승리가 습관화 되어지는 은혜를 입게 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 반드시 또 사탄이 찾아옵니다.
야 너 대단하다. 네가 이겼어. 앞으로도 네가 큰 일을 이룰 거야.
이 때 진짜 대단해지는 겁니다. 그럼 실패합니다.
대단이라는 말은 대가리가 단단해지는 겁니다.
아무런 생각이 안 나고 자기도취에 빠져들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읽다 보면 문제가 또 하나 있습니다.
아간이 자신의 잘못을 고백합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아간을 처벌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아니십니까? 용서의 하나님 아니셨습니까?
벌을 내리더라도 훈계나 몽둥이가 아니라 아간과 온 가족을 돌로 쳐서 불에 태워 죽입니다.
지금까지도 아골 골짜기라 불리워지는 골짜기에 매장 시켜버립니다.
하나님 너무 잔인 한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처벌이 굉장히 감정적이지 않습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가나안의 첫 성 여리고는 하나님께 바친 물건들이야.
너희들이 가져서는 안돼. 아간의 고백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야.
수사 과정에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고백한 양심의 가책 정도였다.
양심의 가책을 회개라 한다면 가롯 유다보다 양심의 가책을 더 받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은 삼십 냥을 피 밭에 던지고 목매달아 죽어야 할 만큼 양심의 가책을 받았지만 그건 회개가 아니었습니다.
회개는 하나님께 온전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약점과 자신의 죄를 깨끗이 인정하는 것입니다.
온전히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그것이 회개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6장 18절에
“너희는 온전히 바치고 그 바친 것 중에서 어떤 것이든지 취하여 너희가 이스라엘 진영으로 바치는 것이 되게 하여 고통을 당하게 되지 아니하도록 오직 너희는 그 바친 물건에 손대지 말라”
바친 물건을 가지게 되면 이스라엘 진영 전체가 진멸 당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아이성 싸움에서 삼천 군사가 올라갔다가 36명이 전사하는데도 아간은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수사의 막다른 골목에서 어쩔 수 없이 고백한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교회 오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주일마다 교회 와서 예배하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세상에서는 덮을 수도 있어요. 감출 수도 있어요. 속일 수도 있어요.
그러나 주님 앞에 오면 속일 수 없지 없습니다.
덮을 수도 감출 수도 없습니다.
나의 약점을 내 실수를 지난 일주일 동안의 내 삶을 세상에서 숨겼던 모든 것을 끄집어 내놓고 주님으로부터 용서받고 새로워지기 위해서, 잃어버렸던 힘을 찾기 위해서, 실패를 있는 그대로 내려놓고 가슴 속에 있는 울분과 상처와 원망을 주님 앞에 있는 그대로 내어놓고 주님의 능력을 덧입고 위로받고 치료받고 용서받아 새 힘을 얻어서 다시 세상에 하나님의 자녀로써 당당히 살아가기 위해서 능력 있는 삶을 살기 위해서
오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III. 실패의 자리에서 회복의 영웅이 되라.
저는 오늘 이 본문을 읽을 때 아슬아슬한 스릴과 박진감을 느끼게 됩니다.
만약 바친 물건을 가지게 되면 이스라엘 전체가 진멸 당할 것이라고 주님이 경고했는데 여호수아의 기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용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살다가 실패할 때가 있습니다.
실패 안하는 사람,실패 안하는 가정,실패가 없는 공동체가 어디 있겠습니까? 실패한 그 자리에서 원망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평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원인을 다른 사람에게 찾아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신앙의 졸장부입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영웅적인 기도를 드립니다.
실패의 자리에서 낙담하지 않습니다. 절망하지 않습니다.
담대히 하나님과 담판 씨름하여 영웅적인 기도를 하고 다시 일어서는 사람 그가 믿음의 영웅이 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를 보세요.
수7:9을 볼까요?
“가나안 사람과 이 땅의 모든 사람들이 듣고 우리를 둘러싸고 우리 이름을 세상에서 끊으리니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떻게 하시려 하나이까”(수7:9)
나를 지도자를 세우고 왜 나의 이름을 땅에 떨어뜨리실까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당신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삼으시고 왜 이스라엘의 이름을 짓밟으십니까?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주의 크신 이름을 위하여 어찌 하시려 하나이까?
우리의 실수로 주의 크신 이름이 먹칠을 당했으니 어찌하면 좋습니까?
과연 영웅의 기도는 아닙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기도를 보세요? 10절입니다.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수7:10)
일류 역사상 하나님이 만든 이 천체질서를 감히 멈추도록 기도했던 인물이 있습니까?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의 주인이시라면 우주의 질서를 하나님이 친히 만드셨다면 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서 그리할지어다.
그렇게 기도하자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셔서 말씀 하십니다.
7:10에“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수7:10) 이 영웅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일어나라. 다시 시작하자. 다시 거룩해지자. 다시 도전하자.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지금 이 시대 위기 시대를 살아가면서 나의 실패의 늪에 빠져 고통에 당한 분이 계십니까?
세상의 위기보다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 가정 공동체가, 세상의 일거리, 기업이 위기를 만난 분, 실패의 늪에 빠진 분이 계십니까?
절대로 절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 담대히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이 당한 한 번의 실패가 곧 실패자임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당한 한번의 실패가 당신이 곧 열등한 존재임을 의미하지도 않습니다.
여러분이 당한 한번의 실패가 곧 인생의 낭비를 의미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한번의 실패가 곧 모든 것을 포기해야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한번의 실패가 곧 하나님이 나를 버린 것도 아닙니다.
기도하자. 새로워지자. 거룩해지자. 다시 도전하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니라. 네가 달라지면, 네가 변화되어지면, 네가 거룩해지면, 네가 당한 실패는 승리로 바뀌어 지게 될 것입니다.
VI. 바친 물건이 뭐길래
그럼에도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그 의혹이 해결되지 않습니다.
한 가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 한 생명이 온 천하 보다도 귀중할진대 외투 한 벌, 금덩어리 한개 뭐가 대단하다고 아간을 비참하게 죽이십니까?
가문에 싹을 잘라 버리십니까?
하나님 너무 잔인하지 않으신가요?
오늘 본문 여호수아 7장에 온전히 바친 물건이란 말이 8번씩이나 계속 반복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바친 물건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 언약의 관계가 바로 바친 물건의 관계입니다.
내심 아간은 불태워 없애는 물건 내가 한두개 가져다 쓰면 되는 것 아닌가?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성의 금과 은은 우상을 만들고우상을 치장하던것들이었습니다.
그것을 가진 자는 그것과 동일시 되어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불타 없어져야 되는데 그것을 가졌으니 그 물건과 네 자신이 동일시되어져서 네가 불타고 네가 멸망 당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리고성의 동과 철은 군사력을 의미합니다.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군사력에 의해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불레셋이라는 골리앗의 나라는 칼과 창과 단창에 있었지만 이스라엘이라는 다윗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하나님의 권능에 있었던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금과 은으로 정복하는 나라가 아니고 약속으로 거룩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정복되는 땅임을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내 생명 내 것이었습니까?
내가 만들어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까?
이 땅에서 태어난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입니다.
재능, 은사, 내가 만들었습니까?
내가 어디서 사 왔나요?
하나님으로부터 빌려서 쓰고 섬기다가 오늘이라도 오라 하면 내려놓고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가 누리는 분복, 세상의 직업, 건강, 내 자식, 내 부모, 영원히 우리 곁에 있을 수 있습니까?
엄마 아빠 우리랑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입니까?.
아무리 붙들고 매달려도 손 흔들고 가야 하는게 내 인생 아닙니까?
눅12:20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눅12:20) 본래부터 하나님의 것 아니었습니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거두는 분도 하나님 아닌가요?
아브라함이 늘그막에 아들을 하나 얻었습니다.
자신만만해졌습니다.
내 건강 좀 봐라. 이 나이에 아들을 얻었어. 우쭐대기 시작했습니다.
아들 밖에 안 보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내가 은혜로 약속으로 주었더니 내 아들인데 내가 준 선물인데 네 아들로 훔쳐 버렸구나? 돌리도?
그 아들을 내게 바쳐라.
아브라함은 즉시 결단하고 모리아산으로 데려가 아들을 바칩니다.
번제물로 올려놓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시퍼런 칼을 뽑았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옵니다.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1-12)
“이제야” 온전히 바친 것이 온전히 하나님께 바쳐질 때에 그게 하나님의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게 저주가 아니고 축복이 되는 거야.
그게 징계가 아니라 약속의 아들이 되는 거야.
이제야 온전히 바친 것은 온전히 바쳐질 때에 이제야 은혜가 되는 것이야.
베세다 들녘에서 굶주린 오천 장정들이 허기에 지쳐 있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이때 어린아이 하나가 도시락 하나를 바칩니다.
하나님께 바쳤더니 보잘 것 없는 도시락 하나가 기적을 낳게 됩니다.
오천 장정이 먹고 열두 광주리가 남았습니다.
왜 열두 광주리가 남았을까요?
제자가 열둘이 나누었으니 열두 광주리가 남은 것입니다.
제자 백명이 나누었으면 백 광주리가 남을 것입니다.
이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의 광주리는 차고 넘치게끔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리떡이 찰떡으로 바뀌어 지고 빵집에 빵으로 바뀌어져 나뉘어 진 것이 아닙니다. 보리떡 그대로 오천명이 먹었습니다.
옵사리온. 말라빠진 물고기 그것이 집채 만한 연어로 바뀌어 진 것이 아닙니다. 고래로 바뀌어진 것도 아닙니다.
물고기 그대로 기적을 낳는 씨앗이 되었던 것입니다.
못나도 바치면 기적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도 바치면 기적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V. 바친 자는 어떻게 사는가?
도대체 바친 물건이 무엇입니까?.
바친 물건에는 신비한 의미가 있고 능력이 있습니다.
본문 21절 아간의 고백 중에 “금 덩이 하나를 보고”라는 말이 나옵니다.
여기 “본다”라는 단어 “라아”는 창세기 3장 아담이 선악과를 보니 보암직했다는 “라아”단어와 동일한 단어입니다.
여러분 보는 것은 비전이요 관심사입니다.
하나님의 눈이 아닌 내 눈으로 보는 것은 탐욕이요 욕심이 됩니다.
아담과 아간을 보세요.
공교롭게도 “아”씨 집안 인물들입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보아야 할 그 눈으로 선악과를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눈으로 가나안 땅을 봐야 하는데 탐욕의 눈으로 금덩어리를 보았습니다.
아담은 선악과를 먹고 하나님처럼 되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바친 금덩어리 외투를 자기가 쓰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대신 내가 쓰면 될 것 아니냐.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라아의 눈이었습니다.
예수 믿고 인생을 살다가 종종 우리는 선악과 하나 가진다고 탈이나랴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다 불태워 없애는 것들 중 한 두 개 내가 잘 사용하면 경제적인 것 아니냐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여리고를 이겼는데 그까짓 꼬맹이 아이성 쯤이야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세요.
여러분 인생사에 결코 아이 성은 없습니다.
아이성이 결코 아이성이 아닙니다.
castle of child. 인생사에 작은 문제도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 멸망하거나 망할 수 있습니다.
인생사에 어떤 여리고를 만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면 무너집니다.
이깁니다. 승리합니다. 정복되어집니다. 기적이 나타납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문제라도 하나님 없으면, 하나님 제외하면 그 아이성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인생사에 아이(child)성은 없더라는 것입니다.
미국 역사상 많은 부호들이 있었습니다.
제 생각에 가장 의미있는 선행을 가장 많이 한 사람은 록 펠러입니다.
록 펠러의 어머니는 우리 가정을 하나님이 구원해 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우리 가정에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우리 가정은 하나님께 바쳐진 가정이다.
그러니 바친 가정답게 살자. 그리고 교훈을 남깁니다.
첫째, 우리는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바친 사람들이니 하나님을 친아버지로 섬겨야 한다. 이것이 록 펠러 가문에 첫 번째 교훈입니다.
그다음 말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길은 눈에 보이는 목사님을 친아버지처럼 섬기는 것이다.
둘째, 주일은 하나님께 바친 날이다.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날 예배하는 일, 성수주일 하는 것 기억해야 된다.
셋째, 죽는 날까지 굶어 죽어도 십일조는 하나님께 바치고 사는 것이다.
그것 내것 아니다. 온전히 정직하게 기쁨으로 바쳐라.
이것이 하나님께 자신을 바친 자의 삶이다.
기 도 길창원 목사
아버지 하나님 오직 아버지의 것은 아버지의 것으로 살게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눈으로 늘 살아가는 인생으로 살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들 인생사에는 결코 아이 성은 없습니다. castle of child. 인생사에 작은 문제 일지라도 늘 하나님과 함께하여 주시옵소서. 우리인생에 어떤 인생사, 어떤 여리고를 만난다 할지라도 오직 아버지와 늘 함께하여 주옵소서.
우리들 인생사에 아이(child)성은 없음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임을 깨닫고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살아가는 하나님께 바쳐진 저희임을 고백합니다. 오직 아버지께 바쳐친 가정으로만 살게하여 주옵소서.
죽는 날까지 굶어 죽는다해도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되 온전히 정직하게 기쁨으로 바쳐기를 소망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 온전히 내 자신 전체를 드리는 바쳐진자의 삶을 살게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봉 헌 찬 송 538장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봉 헌 기 도 김종훈 목사
광 고 및 교제축도지금은우리를구원하여주신예수그리스도의은혜독생하신예수그리스도를보내주신하나님아버지의크신사랑하심과날마다우리를보호하시고, 승리케하시는성령하나님의역사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1-12)
“이제야” 온전히 바쳐 하나님께 바쳐질 그 때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 나의 아버지께 온전히 드리고 온전히 하나님의 자녀로 또 기도하는 아브라함처럼, 여호수아처럼 살기를 각오하고 다짐하는
여기 고개 숙인 주님의 종들 위에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육이 강건하여 승리하고자하는 주님을 따르는 성도들 위에와
마지막 때를 위해 남겨 놓으신 더 큰 일들을 감당하고자하는 진성교회 위에 지금부터 영원까지 함께 있을 지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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