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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원하는 믿음
2016. 1. 10(주일낮예배) 요한복음 2:11, 4:46-53
이탈리아 오르비에트에 두오모라는 성당이 있다. 이 성당에는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에 영향을 준 루카 시뇨렐리가 그린 최후의 심판이 있다. 시뇨렐리는 최후의 심판을 나타내는 그림 2장을 그렸는데, 하나는 지옥이고, 또 다른 하나는 천국이다. 하늘을 나는 존재가 사람을 업어서 나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나르는 존재의 얼굴을 보면 사단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단이 사람을 업어서 떨어뜨리는 그 아래를 보면 사람들이 뒤엉켜서 괴로워하는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 사이를 자세히 보면 사단이 함께 뒤엉겨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사람의 얼굴이 사단의 얼굴과 유사하다는 것도 발견할 수 있다.
이것이 루카 시뇨렐리가 표현하는 지옥이다. 시뇨렐리가 표현하는 지옥이란 사단의 괴롭힘을 당하고, 사단과 뒤엉겨져서 사단과 같은 모습을 하고 사는 곳이 지옥이다.
그런데 그 옆에 있는 천국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천국은 천사들의 찬양이 있고, 그 찬양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임 속에 천사가 함께 있으면서 사람의 머리를 스다듬는 아름다움이 넘치는 곳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사는 삶은 천국과 지옥 중 어디에 더 가까운가? 우리는 천국과 지옥의 삶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얼마나 이루고 사는가?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일 년에 한 번이상은 해외여행을 하고, 또 매달 백화점 쇼핑을 자유롭게 할 수 있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으면 그 사람은 천국에 살고, 직장에서 실직하여 자녀를 키울 학자금이 없어서 전전긍긍하며 사는 사람은 지옥에서 산다는 생각을 한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천국과 지옥은 경제와 문화적인 힘으로 말하지 않는다. 신학적으로 천국과 지옥을 구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어 죄악의 본성을 떠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따라 살면 그 사람의 삶은 천국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못해서 자신의 욕구에 의하여 살아가는 사람은 모두 지옥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천국의 삶을 살고 있는가? 요한복음 2장에는 가나혼인잔치 이야기가 기록되어져 있다. 예수님께서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가나혼인잔치에 참여했는데 그 집에 포도주가 부족하게 된 것이다. 그때 예수님이 하인들에게 돌항아리에 물을 채우라고 하였다. 그리고 하인들이 물을 아구까지 가득채웠을 때 예수님은 그 물을 떠서 연회장에게 가자다 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연회장에게 하인들이 물을 가져다 주었는데 연회장은 그 물을 맛보고는 최고의 포도주를 남겨 두었다고 칭찬하는 이야기가 가나혼인잔치이야기이다.
그런데 제가 살펴보고 싶은 것은 가나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은 왜 물을 포도주로 바꾸어 주었는가? 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였다. 그 후에 사단은 예수님께 와서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면 돌을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하였다. 그때 예수님께서 돌을 떡덩이가 되는 기적을 나타내면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고, 또 그 순간 사단의 시험은 끝이 나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때 돌이 떡덩이되는 기적을 나타내지 않았다. 만약 예수님이 돌을 떡덩이 되게 하였다면 배고픔의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고, 또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다는 것을 증명하였기 때문에 더 이상 시험을 받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돌을 떡덩이되게 하지 않았다. 그랬던 예수님이 요한복음 2장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킨 것이다.
왜 예수님은 물을 포도주로 만들었겠는가? 요한복음 20장에는 요한이 성경을 기록한 목적을 말하고 있다. 먼저 그 부분을 읽어보기 바란다.
(요 20:30-31) 예수께서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아니한 다른 표적도 많이 행하셨으나 31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한복음에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나타내는 표적 8가지를 기록하고 있다. 제일 첫 번째인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물을 포도주 만드는 표적이고, 4장에는 거의 죽어가는 왕의 신하의 아들을 살리는 표적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5장에는 38년된 병자를 고쳐 주었고, 6장에서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보이셨고, 6장 끝에는 물위를 걸으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9장에서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을 고쳐주었고, 11장에는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려주었다. 그리고 21장에서 예수님은 배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고 하여서 밤새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던 제자들에게 318마리의 고기를 잡을 수 있도록 해 주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신성을 증거하는 표적이었다. 그리고 이 8가지 기적을 뛰어넘는 표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건이다. 예수님께서 이런 표적을 나타내신 것은 예수님의 ①하나님의 아들되심을 믿어서 ②영생을 얻게 하려 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오늘 본문도 마찬가지이다. 어떤 목사님은 물을 포도주 만드는 사건을 시간의 단축으로 설교하였다. 그래서 우리가 씨를 심고 물을 주어 가꾸면 포도열매가 맺는다. 그 포도를 따서 즙을 내어 숙성을 시킬 때 양질의 포도주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물이 포도주되는 사건을 통하여 시간의 축약하는 능력을 보이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을 포도주 만드는 사건은 시간을 축약하는 능력이 아니라,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 보인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물이 포도주로 바뀔 때의 상황을 한번 생각해 보기 바란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하인들이 항아리 아구까지 물을 가득채웠을 때 물이 포도주로 바뀌었는지, 아니면 하인들이 그 물을 연회장에게 가져다 주었을 때 포도주로 바뀌었는지 알 수 없다. 그런데 연회장이 하인들이 가져다 준 물을 마시고 최고의 포도주를 남겨두었다고 주인을 칭찬할 때 그 물이 어디에서 나온 것인지 아는 하인들의 마음은 어떠했겠는가?
이찬수목사님이 사랑의 교회에서 고등부 사역을 할 때였다. 영동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한 아이가 있어서 병원으로 갔다. 노란 머리에 코에는 호스를 꽂고 있는 녀석은 당시 나이로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그런데 중학교에 적응하지 못하여서 이미 학교를 떠난 지 오래되었고, 그런 아들을 부모님이 억지로 고등학교에 입학을 시켰는데, 그 학교에서도 결국 적응하지 못하여 한 달만에 자퇴하고 말았다.
그렇게 부모의 속을 썩이던 녀석이 본인의 말에 의하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장이 꼬여 수술을 했다고 말할 정도로 많은 술을 마신 정말 앞길이 막막한 녀석이었다. 그런데 이찬수목사님이 장이 꼬여서 수술을 한 그 녀석의 손을 잡고 뜨겁게 기도한 후 이제 마지막 기회이다. 하나님이 너 병을 고쳐주시면 이제 마음을 잡고 바르게 살아가는 거다. 고 말했다. 그때 그 녀석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이고 있었다. 그렇게 눈물을 글썽이는 녀석에게 퇴원하면 연락해라고 말하고 목사님은 병원을 떠났다.
그 후에 하나님의 특별한 은혜로 인하여 심각했던 병이 나아서 그 녀석은 고등부예배에 출석하게 되었다. 여전히 노란 머리를 하고 있었지만, 나름대로 교회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고등부 예배 후에 노랑머리의 그 녀석이 목사님을 찾아왔다. 아주 기쁜 얼굴로 목사님 저 검정고시 합격했어요. 병원에서 퇴원한 그 녀석은 검정고시 준비를 하여서 결국 검정고시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목사님은 600-700명이 되는 고등학생을 돌아보느라 그 녀석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 그 녀석이 목사님을 다시 찾아왔다. 이제는 노란머리가 아니라, 검은머리를 하고,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서 목사님을 찾아온 것이다.
목사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저 합격했습니다. 대학에 합격했다구요. 중앙대 작곡과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너무 좋아서 어찌할 줄 몰라하는 그 녀석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며 그 동안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타락한 생활을 할 때의 마음이랑, 또 그 이후에 마음을 잡도록 인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그 녀석은 기쁨이 넘쳐서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그 녀석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후에 식당에서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그렇게 기도를 하고 눈을 떴을 때 목사님과 그 녀석의 눈에는 똑같이 눈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목사님이 왜 울었겠는가? 그러면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이 사건에서 감동해야 할 사람들은 많이 있다. 하인은 물이 포도주로 바뀌는 것을 보면서 신기함에 놀라와 했을 것이다. 그리고 연회장은 더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둔 그 집안을 보면서 기뻐했을 것이다. 또 집주인은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었기 때문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좋아했을 것이다. 모두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사건을 통하여 제일 크게 감동하고 변화된 사람은 제자들이었다. 그 부분을 읽어보기 바란다.
(요 2: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표적(sign)은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증거하기 위하여 나타내는 기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므로 표적은 그 신기한 사건을 바라보며 그냥 좋아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 표적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나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을 알게 된 사람은 하인도 아니고, 또 연회장도 아니라, 바로 5명의 제자였다는 것이다.
왜 제자들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가? 지난 목요일 금요일 이틀동안 교역자 MT를 다녀왔다. 언양에서 맛있는 점심을 먹고, 또 울산주상절리대 구경을 하고 정말 재미난 시간을 보내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서 안압지(동궁과 월지)를 투어한 후에 설빙에서 얼음빙수를 사 먹었다. 빙수를 시켜놓고 아침 빵사기 팔씨름 대회를 했다. 20대의 이충만전도사님, 30대의 김성용전도사님, 50대의 공범식목사님이 팔씨름을 하면 누가 이기겠는가? 40대의 강석현목사님은 건강상의 문제로 그 대회에 참여하지 못했고, 3명이 팔씨름을 했는데, 50대가 1등을 했다. 그런데 제가 1등했을 때는 그렇게 재미나지 않았다. 왜냐하면 전도사님들이 팔씨름을 할 때 100% 힘을 다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목사님과 팔씨름하면서 서비스 차원에서 힘을 빼주었기 때문에 제가 1등 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싱겁게 경기는 끝이 났다.
그리고 난 후에 이충만전도사님과 김성용전도사님의 팔씨름이 시작되었다. 팔씨름이 시작되자 이충만전도사님이 압도적인 힘이 김성용전도사님을 눌렀다. 그때 김성용전도사님이 지금 이것은 무엇을 걸고 하는 겁니까? 하고 묻는 것이었다. 그래서 2만원짜리 케익이다고 했을 때 김성용전도사님이 케잌이다. 2만원짜리 케잌이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힘을 쓰는데 거의 바닥에 닿았던 손이 중간으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는 눈물을 흘리며 웃었다. 정말 재미난 시간이었다. 김성용전도사님의 재치가 분위기를 정말 좋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가 사는 삶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하여 때로는 내 힘을 다 쓰지 못할 때가 있다. 또 어떤 때는 내 것을 지키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하여 땀을 흘리며 수고하는 것이다. 아마 여러분은 직장생활을 그러게 할 것이다. 그래서 자신에게 주어진 그 일을 잘하여서 내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 것인가?를 증명하기 위하여 온 힘을 다해 일을 할 것이다. 그리고 또 때로는 사람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서 잘하는 것도 못하는 것처럼 할 때도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내가 가지고 있는 이것을 지켜야 행복할 수 있고, 또 그것이 힘이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복음 2장에 나오는 주인과 연회장과 하인이 바로 그러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잘하고, 또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그것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었다. 그랬던 주인과 연회장과 하인은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그 자리에 멈추고 말았던 것이다.
그런데 표적을 보면서 자기만족과 기쁨에 멈추어 버린 그 사람들을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로 다시 가신다. 그리고 그곳에서 아들이 병들어서 죽어가는 왕의 신하를 만나시고 그의 아들을 고쳐주는 표적을 다시 보여 주었다. 그런데 아들을 고쳐달라는 왕의 신하에게 예수님은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요 4:4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왕의 신하는 예수님을 자신의 집이 있는 가버나움으로 오셔서 고쳐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예수님은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 왕의 신하에게 네 아들이 살아 있다고 말씀하였을 때 왕의 신하는 그 예수님의 말씀을 믿고 집으로 내려갔다. 그리고 집으로 가는 길에 그의 종을 만나 아들의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 아들이 죽었겠는가? 살아났겠는가? 왕의 신하는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아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바로 그 시간에 아들이 낫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후에 왕의 신하와 그 온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 여기서 믿게 되었다는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겠는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한다는 것이다.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자기의 힘과 방법을 의지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랬던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다른 것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바라보고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면 저와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인가?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예수님을 바라보고 의지하여서 그 구원하심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주의 백성이 되어서 믿음이 참된 평화와 승리를 가져다 주는 것을 체험하며 살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말씀을 맺는다.
김동호목사님은 남을 도와주고 베푸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목사님 집안 사람들은 모두 남을 도와주는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4번째 손자인 진욱이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목사님이 손자들에게 아 하고 입을 벌리면 다른 모든 손자들은 가지고 있던 과자를 다 목사님의 입에 넣어주는데, 진욱이는 그 손을 뒤로 감추고 목사님의 입에 넣어주지 않는 것이다. 목사님은 진욱이의 그러한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리고 이 녀석은 우리집 종자가 아니라, 특별한 종자라고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진욱이가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다른 손자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들고 있던 과자를 할아버지 입에 넣어주는 것을 아까와하지 않는 진욱이로 바뀐 것이다.
진욱이가 이렇게 바뀌었을 때 목사님은 진욱이가 어떻게 변화될 수 있었을까? 생각을 해 보았다고 한다. 진욱이 어머니는 어린이집 원장이었다. 그러므로 진욱이는 엄마는 내 엄마인데 어린이집에 가면 내 엄마가 아니라, 모든 친구들의 원장님이었다. 그러므로 내 것을 빼앗겼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진욱이는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진욱이 어머니가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진욱이에게 충분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을 때 이제 진욱이는 원래 목사님 집안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이제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이제 움켜쥐었던 내 삶의 영역을 하나씩 펼쳐서 나누고 섬기는 일에 사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저와 여러분이 이렇게 할 때 이 세상은 천국이 되고, 또 우리는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우리는 천국에 살고 있는가? 그러기 위해서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복된 성도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첫댓글 말씀만 듣고 순종하는 믿음- 대단해요.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며 사는 것이 믿음인데, 우리는 왕의 신하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처럼 내 생각과 방법을 의지하여 예수님을 부리려고만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이 많이 됩니다. 그런데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는 참믿음을 가지는 것이 쉽지 않네요....
물이 포도주가 된 시점을 알았어요. 왕의 신하의 아들이 예수님이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시던 그때 인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