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전 학교의 짐을 구름산초로 옮겼다. 일곱시 반쯤 전 학교에 가서 짐을 실어, 구름산에 도착하니 여덟시 반, 그리고 끌차로 이삿짐을 옮기니 아홉시 반이다. 짐이 많아 용달을 불렀다. 다들 "아니, 왜 이렇게 짐이 많아?" 하신다. 나도 모르겠다. 왜 나는 짐이 많지? 책이 너무 많다. 이것저것 버리고 온다고 버렸는데도 뭐가 많다. 학습준비물들을 좀 줄이려는 노력을 해야겠다. 각종 파일들도...
사실 전 학교 교사 연구실에 내가 안 쓰는 물건들 넣어놓을까? 했는데 괜히 선생님들이 필요도 없는데 챙겨 넣어두면 연구실 정리할 때 다 쓰레기 통으로 직진할 것 같아 쓰레기를 생산하는 것 같은 마음에 불확실한 행동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학기 초에 써야지, 하고 꾸역꾸역 넣어온 게 한 용달이다.
아침에 이미 두 시간이나 짐 옮긴다고 진을 뺐으니 기운이 날리 있나, 난 티나지 않게 노력했지만 정말 기운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오늘의 워크숍도 시이작~^^
오늘의 일정은 학교 비전 정하기이다.
첫 번째 질문 : "학생이 중심에 있는 학교는 어떤 모습일까요?"
칠판에 붙어 있는 이미지카드를 뽑아 자신의 생각을 돌아가며 이야기했다. 나는 별 고민없이 알록달록 여러 꽃이 피어있는 꽃밭을 골랐다. 활짝 핀 꽃도 있고, 봉우리만 맺힌 꽃도 있다. 꽃은 봉우리만 보고서도 예뻐하고 기뻐하고, 그 색깔이 어떻든, 꽃잎 크기가 큰든 작든, 차별하거나 우열을 가리지 않는다. 우리 아이들도 학교에서는 여기 보이는 꽃처럼, 존재 자체로 인정받고 이쁨받았으면 좋겠다, 그런 학교가 학생이 중심이 있는 학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선생님들도 각자 자기가 뽑은 이미지의 의미를 말하고, 부장님이 그 말들을 정리해서 모아 발표했다. 다른 학년들의 생각도 들었는데, 같은 이미지 카드를 선택해도 생각하는 뜻은 제각기 달라 재미있었다. 이렇게 이미지 카드 뽑기 활동은 많이 했었는데, 나는 그동안 나온 이야기들을 모아서 정리하지 못했다. 서클 한 바퀴 돌고나면, 우리의 이야기를 정리해 다시 한번 더 전체에게 들려주는 과정이 참 좋다 생각하였다.
두 번째 질문은 : "학생 중심으로 가기 위해 우리는 무엇에 중심을 두어야 할까요?"이다.
나는 "여유시간"과 "학생 자치"를 적었다.
여유 시간이라 답한 이유는, 구름산초의 교육과정을 보았을 때, 선생님들이 학생들과 소통하며 충분히 공감하고 그들 삶에서 수업거리를 찾는 시간적 여유가 적을 것 같다 지레짐작하였기 때문이다. 활동이 바쁘면 학생이 활동에 눌린다. 교사도 수업을 이끌어 가느라, 학생 한명 한명 봐 주느라 정작 아이들이 사는 이야기를, 현재 고민을 못 듣고, 따뜻하게 눈맞춤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교실이 바쁘면 그렇다. 그럴 때이면 교사는 이룬 것이 많아서 뿌듯하고, 아이들도 훌쩍 성장한 것 같은데, 나는 그 아이와 내 삶을 교류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서로를 잘 모르면 좋아하는 마음도 줄어든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 애쓰고 싶다. '여유시간'이라 함은 교사가 쉬는 시간을 뜻하는 바가 아니다. 여유롭게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 아이들과 '휘게'를 하고 싶다.
그리고 학생 자치는 내 수업의 핵심이다. 나는 내가 수업을 하기 보다 아이들이 던지고, 내가 꾸리는 수업을 선호한다. 주제만 맞다면, 어떤 학습과 방법이든 아이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수업을 꾸려나간다. 그 속에서 주인공은 학생이다. 사실 학생 자치는 학생이 바쁠 것 같지만, 교사가 더 바쁘다. 학생들이 보지 못하는 틈을 교사가 적시적소에 메꾸어 주어야 하기 때문이다. 답답한 것도 각오해야한다. 아이들이 모여 꼬물거리며 하는 것들을 보면, 교사는 지적과 잔소리와 조언을 이따아~~만큼 하고싶어진다. 하지만 참고, 지나가는 말로 조언만 툭 던진다. 어쨌던간 스스로 해낸 일에 성취감을 느끼게 하기 위해서다. 학생 자치는 교사에게는 참을 인자를 그리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른 선생님들도 이것저것 이야기를 많이 해 주셨다. 우리 학년은 '민주적인 학급 운영', '스스로 공부하는 기쁨', '아이들끼리도, 선생님과의 관계에서도 이해하고 관용을 베푸는 것', '교육과정 운영 시 아이들의 의견 반영' 등이 나왔다. 재구성 쪽으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열정있으신 선생님들. 그에 비해서 나는 '여유시간'^^;. 꼭 필요하다 본다. 사실 내가 교육과정 운영하다보면 이리저리 어디로 튈지 몰라서 여유시간을 확보해두는 편이기도 하다..^^
전교의 선생님들께서 모아주신 의견을 모아 유목화 하니, '즐겁고 의미있는 배움', '아름다운 소통문화', '여유' 이 세 가지로 정리되었다. 이제 이것으로 학교 비전을 만들면 된다.
학교 비전이라... 난 이거 너무 어렵다.
예쁜 말을 센스있게 팽글팽글 만들어내야 하는데, 신은 나에게 센스를 0프로 주셨나보다.
어찌저찌 우리 학년이 낸 의견이 비전으로 채택되었다.
"지금 우리 학교는, 즐겁게, 의미있게, 느려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