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이씨 청도유적지 - 효진재(孝眞齋)와 문산재(文山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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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진재(孝眞齋) 경북 청도군 운문면 오진리 소진(小津) 한성좌운(漢城左尹)을 지낸 휘 종명(宗明)의 묘재사이다
| 문산재(文山齋) 경북 청도군 이서면 문수리 448번지 문산 이노(李櫓)선생의 묘재사이다. 공은 좌윤공 휘 종명(宗明)의 첫째 아들로서 字는 경섭(景涉)이요 문산(文山)은 선생의 호(號)이다. 穆陵정미년(1607)에 태어나셔서 肅陵계축년(1673)에 돌아가셨다. 當時鄕中士林稱之曰 "吾鄕中 人物孰有與李櫓同傳乎 威儀之魁傑 言辭之辨論文字之精通履之安詳獨得鄕中首位"云 |
文山李公墓表 公諱櫓 字景涉 李氏其先 本慶州人 新羅開國元勳 諱謁平 爲得姓之祖 高麗駙馬門下侍中 載寧君 諱偊稱 爲受貫之祖 入李朝 全羅監司 諱榮中 古阜郡守 諱繼孫父子皆良吏 郡守載古硯一面 歸密陽移淸道 五傳而漢城左尹 諱宗明 娶貞夫人 淸道金氏 郡守克裕女 生公於文殊里第 穆.陵丁未月日也 後崇陵癸丑 壽六十七而卒 葬蓮池內山枕丙原 按家乘 三代千六百年 世貴風烈 至公之世熄矣 然公皇祖 砥岩先生 諱𡐤 游寒岡鄭文穆 東岡金文貞 及守愚崔徵君之門 淵源之盛 基業之厚 著稱儒藪 中 而其孫琴窩景濂 又葛庵李文敬徒弟也 文學與 仕官相禪 方此時 公之上述下啓 必有其道 則是豈可以徽細論哉 惜乎 李朝末 冑孫某之弟某 抱文獻客游遼河不返徒使公困于無徵 而升沈顯晦之數 隨之以形也 是歲秋 諸雲仍 議言文殊里後山 端莊特立 嵬然可仰 斯實公之所由降 吾輩悲公 久見山如見公 盍且呼公 爲文山府君 藉此求表墓之文耶東浩鉉碩二丈 故善一海 遂來請書 公之配曰 將仕郞 永川李煒女 男曰宜洪宜潤宜淳 孫曰景河景川景洙景濂景洛 宜潤宜淳無子 景川宜潤取以自嗣 (屈川集) 굴천집 원문에 郡守載古硯一面 歸密陽移淸道라 되어 있어 그 번역문에 모두 어진 관리이자 군수로 옛 典籍의 한 면에 실려있다. 밀양으로 돌아갔다가 청도로 옮겼다. 족보에는 瓜滿只載一古硯而歸州로 그 뜻이 다를수가 있다. 족보에 고부군수의 임기를 마치고 오직 벼루하나 실고 밀양에 귀향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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