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하며
4월 25일, 비온 후 갬
1일차 : 생장에서 오리송 대피소까지, 9킬로미터
일기를 써본 지가 오래되었다. 이번에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 동안 가능하면 일기를 좀 써보려고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르는 경험이고, 260그람짜리 무선 키보드를 들고 온 보람도 찾기 위해서다.
이 길을 걸으려면 파리에서 생장 피에 드 포르까지 가야한다. 그런데 이곳을 가려면 바이온이라는 도시까지 가야 한다. 여기까지 가는 나의 일정은 험난하였다. 서울에서 파리까지 14시간의 비행, 파리에서 바이온까지 12시간의 야간 버스, 5시간의 기다림 끝에 25일 오전 11시 20분쯤 바이온역에 도착했다. 역앞 케밥집에서 7유로짜리 케밥을 먹었다. 양이 크지 않은 탓에 3분의 2쯤 먹고 아깝지만 버렸다. 12시 35분에 떠나는 기차표를 샀으나 사람은 많고 기차는 두 량밖에 없어서 행동이 굼뜬 나는 자리를 잡지 못했다. 다행이 선 사람이 너무 많은 것을 보고, 역에서 급히 버스편을 마련해줘서 나는 버스로 바꿔탔다. 나처럼 굼뜬 사람이 40여명이나 된다는 사실에 마음의 위안을 얻었다.
생장에 도착해서 순례자 사무실 앞에서 줄지어 기다리다가 1시간 10분만에 순례자증명서를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생장에서 9키로 정도 떨어진 오리송 대피소를 예약했기 때문에 바로 길을 나섰다. 끝없는 오르막길이었다. 많은 사람이 나를 추월했다. 결국 모든 예약자들이 도착한 후에 마지막으로 도착해서 많은 사람의 축하를 받았다.
여기를 예약한 까닭은 이 길의 경사가 악명 높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내일 죽어나지 않기 위해 오늘 조금이라도 걸어가 두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에서 그렇게 했다. 7.5키로의 배낭을 지고 2시간 반을 걷는 일은 힘들었다. 그래도 내일은 좀 편하리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급경사를 견디며 야고보의 길을 걸어보기로 했다.
심한 오르막길. 끝없이 계속되는길. 오직 위만 보이고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 힘든 길. 이 길은 그런 길이었다. 이 길을 걸으며 이런 인생길을 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그들은 무슨 힘으로, 어떤 즐거움으로 이런 길을 걷고 있을까?
야고보!
이 사도님이 전도여행을 한 곳이 스페인이라고 한다. 이 길은 중세에 천주교에서 만든 전설에 토대하고 있고, 그 전설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순례의 여행을 오는 길이라는 점에서 이 길의 의미를 찾기도 한다.
예수님의 12 제자들 가운데 왜 야고보만 순례길이 만들어졌을까? 왜 야고보가 대중들에게 이처럼 사랑받는 제자가 되었을까? 난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걸 찾으려고 온 것도 아니다.
야고보. 우리말로 야고보란 이름이 영어로는 제임스 James, 프랑스어로는 쟉끄 Jaques, 스페인어로는 띠아고Tiago, 디에고 Diego, 같은 스페인어인데, 스페인 사람들은 띠아고, 남미 사람들은 디에고라고 한다. 야고보란 이름에서 파생된 단어들로 보이는데, 왜 이렇게 한 사람의 이름을 다양하게 부를까? 각 나라의 발음이 야고보의 발음과 유사한 것도 아니면서 이렇게 다른 이름을 가진 것이 흥미롭다.
서양 사람들의 이름은 예수님 주변 인물들에서 유래한 경우가 많다. 반면에 우리 나라 사람의 경우 조상들과 관련되어 있는 듯하다. 아무튼 이름에 대한 동서양 비교 연구를 하는 것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40여명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후에 각자 소개의 시간을 가졌다. 국적의 다양함에 놀랐다. 6:4 정도로 여성들이 많다는 사실도 교회 신도분포와 관계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너무 피곤한 탓에 일찍 자리에서 나와 씻고 자리에 누웠다. 힘든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