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처럼 장수태왕은 외교 관계를 잘 풀어나가 중국과의 마찰을 가급적 피하고 복수를 빌미로 백제는 물론 신라까지 압박하여 남으로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확장시켰으며 수도를 평양성으로 옮겨 나라의 기강을 더욱 바로 잡는 등 내정에도 주력하여 태평성대를 일구어 낸, 광개토태왕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걸출한 태왕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판도를 최대로 넓혀 세계제국을 이룩한 트라야누스 대제와 더불어 동방의 대제라고 불릴 만합니다.
이처럼 태왕으로서도, 영웅 광개토태왕의 아들로서도 부끄럽지 않게 역시 영웅적인 삶을 살았던 장수태왕은 무려 78년간의 길고도 영광스런 치세를 마치고 491년 12월 향년 98세를 일기로 승하하였습니다. 천수를 다 누렸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고구려태왕의 부고를 들은 북위의 왕 탁발원굉은 상복을 입고 궁궐 동쪽 교외에서 애도식을 거행했으며 고구려에 조문 사절단을 보냈는데 이는 북위와 고구려의 관계가 어떠했는지 아주 단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라 하겠습니다.
첫댓글 좋은 게시물이네요.스크랩 해갈게요.감사합니다.
저렇게 넓히면 오히려 고구려가 더 중국의 정권인 것처럼 보이는것이 아닐까요. 저 땅에 살았던사람들이 다 한반도로 온것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