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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명-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새 정리:박경선 홈피.어린이문학교육 272번)
저- 류시화
출-더숲(2017.4.19.280쪽)
독정-2018.2.5.
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 날아가면서 뒤돌아보는 새는 죽은 새다. 모든 과거는 좋든, 나쁘든 날개에 매단 돌과 같아 지금이 순간의 여행을 방해햔다.
<우연한 선물- 넓어져 가는 원>
시인 파불로 네루다는 자서전 <추억>에서 집 뒷마당에서 놀다가 담장 판자에 뚫린 구멍을 발견해서 내다보니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풍경이었다. 그런데 그때 작은 손 하나가 구멍으로 장난감 흰 양을 밀어 넣어 주었다. 털이 바래고 바퀴가 덜어져 나간 양. 그는 그 구멍으로 다시 밖을 내다보았지만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파블로는 솔 냄새와 송진으로 가득한,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 중 하나인 솔방울 하나를 가져와 구멍 밖에 내려놓고 왔다. 인간과 인산 사이엫서 느끼는 친밀감만큼 근사한 것은 없다. 사랑하는 사람의 사랑은 우리 삶을 지탱하는 불이다. 모르는 사람의 사랑은 더 위대하고 아름답다. 사랑을 느끼는 것은 존재의 법위를 넓혀주고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을 하나로 묶어 준다. 선물 교환처럼 모든 인간은 하나라는 소중한 생각에 눈뜨게 된다. 그는 “나는 인간의 형제애를 나누기 위해 그날 담 너머에 솔방울을 갖다 놓았듯이 나의 말과 언어를 내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문 앞에 놓아왔다. 그것이 어린 시절 이딴 집 뒤들에서 배운 교훈이다. 서로 모르면서도 삶의 어떤 좋은 걸 상대에게 주고 싶어 한, 두 아이의 놀이에서 작고 신비한 선물 교환은 내속 깊이 불멸의 것으로 남아 내 시에 빛을 준다.
·인도 여행하다가 길 가다 만나 말을 건 뉴욕 남자에게서 그의 어깨에 맨 천가방에서 음악 테이프 두 개를 꺼내주어 얻었는데 그 테이프가 늘어날 정도로 복사해서 듣고 명상 음악 마니아가 되었다는 이야기. 우연을 가장하고 신이 보낸 놀라운 선물을 ‘지복(더 없는 행복)’이라 한다.
<찻잔 속 파리>
인도와 네팔을 여행할 때 괴로웠던 일 중 하나는 다양한 벌레와 공생하는 점이다. 파리, 벼룩, 도마뱀. 지네. 환경운동가 조애나 메이시가 미국 평화봉사단으로 북인도 히말라야 기슭의 티베트 난민 공동체서 활동 할 때 회의 중 그녀 찻잔에 파리가 빠졌다. 그녀는 노 프라블럼하며 건져내고 마시면 돼요 했는데 최갈 린포체는 그녀 컵 속에 손가락을 넣어 파리를 건져 밖으로 나갔다와서 말했다. “파리는 이제 아무 문제없을 겁니다.” 그는 문밖 나무 잎사귀 위에 파리를 오려놓고 파리가 날갯짓 할 때까지 지켜보고 왔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 난 괜찮아요”생각만 말고 “당신도 괜찮은가요?”다
ㆍ오디세이아의 주제는 귀향이지만 작품 전체를 지배하는 것은 항해와 여행이다.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목적지에 성공적으로 도착하는 결말이 아니라 모험과 위기와 장애물들이 등장하는 여정이다. 그 여정을 어떻게 경험하고 극복하는가가 모든 영웅 신화의 줄거리다.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여정 중에 있는 오디세우스이다. 어느 날 이 행성에 태어나 다시 우리 본향으로 돌아가기까지의 여정이 삶이다. 생명으로 반짝이는 이 아름다운 별에는 우리 여행을 방해하는 시련과 역경이 기다리고 있다. 마치 신이 계획한 것처럼 곳곳에서 장애물이 나타나 우리를 가두고 굴복시킨다. 암초와 소용돌이로 길을 가로막고, 우리가 세운 계획을 무효화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굴복하지 않는다. 굴복해야 할 때는 잠시 무릎 꿇지만 곧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다시 시작한다. 지도를 수없이 고치고, 경로를 수정하고, 멀어진 꿈을 붙잡는다. 그러나 그 길이 순탄하기를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인생 자체가 오디세이아이며 삶의 묘미는 과정에 있다는 것을 나는 여행을 통해 배웠다. 내 여행기는 목적지로 가는 도중에 겪은 일과 이야기로 채워진다. 많은 모험과 시련과 근사한 일, 모퉁이를 돌 때마다 온갖 사건이 펼쳐져 이야깃거리가 많아지기를 그 이야기가 없으면 삶은 흥미진진한 여행기가 아니라 안전한 가이드북을 따르는 것이다.
ㆍ<금간 보석>- 부서져서 열리기-우리의 부서짐이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이끈다. 부서진 마음을 가진 사람만큼 온전한 이는 없다
왕에게 특별한 다이아몬드가 있었다. 어느 날 금이 가서 보석을 수리할 보석 세공사를 찾았다. 노인이 그 금을 고쳐주기로 하며 왕궁에 머물렀다. 그는 보석 한가운데를 지나간 금을 줄기로 삼아 활짝 핀 장미꽃과 생동감 있는 잎사귀, 가시들을 조각했다. 정교한 솜씨에 놀란 임금이 궁에 머물기를 청했지만
“내가 한 것은 단지 결함 있고 금 간 것을 아름다운 요소로 바꿔 놓았을 뿐입니다.” 인간 존재는 누구나 완벽하게 아름다운 다이아몬드로 태어난다. 다만 삶이 우리 존재의 보석에 금이 가게 만든다. 하지만 상처 입은 자신을 아름답게 재탄생시키는 것이 바로 삶의 예술이다. 흠과 결함을 더 창조적으로 변신시키기 때문에 예술인 것이다.
유방 한쪽을 절제한 여자가 결혼을 포기하고 절망 속에 지내다가 화가 남자친구를 만나 유방에 그림을 그리고 신혼여행으로 암스테르담에 가서 문신을 완성했다. 우리의 부서짐이 우리를 온전한 존재로 이끈다.
ㆍ어둠의 시련을 거치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의 어둠을 치료할 수 없다. 상처와 고통은 단순한 지식에서 통찰력 있는 지혜로 옮겨 가는 다리이다. 축복은 영어 단어의 ‘상처 입히다’라는 프랑스어에서 나왔다. 축복은 종종 상처와 고통을 통해 오기에.
ㆍ그 삶을 잘 사는 것만이 그 생명들에게 값하는 길이다. 그들이 우리에게 물을 것이다. 자신들의 수많은 희생에 값하는 삶을 살고 있느냐고
ㆍ<자두 하나>
농부가 자두 하나를 시주하면 그는 자두를 손에 들고 자두의 윤기 나는 질감, 모양, 부드러운 곡선을 살펴보았다. 잘 익었음을 의미하는 불그스름한 색감에 감탄하며 그것이 세상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상상했다. 자두를 키운 따사로운 햇살, 땅의 기운, 비를 내려 주는 구름과 밤의 빛, 농부의 노동에 고마움을 느꼈다. 자두 한 알 속에 자연과 우주의 모든 것이 응축되어 있었다. 자두를 먹는다는 것은 그 모든 것이 자신 안으로 들어오는 일이었다. 손에 든 자두의 감촉을 느끼며 자두를 입으로 가져갔다. 한 입 깨물 때 나는 소리, 입 안에 번지는 과즙의 단맛과 향긋함을 충분히 즐겼다. 자두를 먹으면서 느껴지는 행복감, 평온함, 기쁨, 만족감의 순간들을 좋고 나쁨의 판단 없이 그대로 받아들였다.
ㆍ`마음이 과거에 일어난 일들에 분노를 느낄수록 현재를 사랑하기 더 어렵다. 마음의 문제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특징 중 하나는 과거의 일을 계속 곱씹으면서, 그것에 의해 왜곡된 인식으로 자기 자신과 세상을 대한다.
화 잘 내는 사람에게 스승이 작은 물병을 주고 조금 걷다 어떤가 묻자 괜찮다고 했다가 더 있자 무겁다고 하자 스승왈
“문제는 물병의 무게가 아니라, 그대가 그것을 얼마나 오래 들고 있는가이아. 과거의 상처나 기억을 내려놓아야 한다. 오래 들고 있을수록 그것들은 이 물병처럼 무게를 더한다. ”
나무에 앉은 새는 가지가 부러질까 두려워하지 않는다. 새는 나무가 아니라 자신의 날개를 믿기 때문이다. 자유를 위해 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것 자체가 자유다.
자신이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날개를 펼치고 있는 한 바람이 당신을 데려갈 것이다. 새는 날개깃에 닿는 그 바람을 좋아한다.
생각는 내가 아니다. 본래 내 생각이 아니라 그것의 관찰자다. 나의 알아차림이 없으면 생각이 우리 삶의 주인이 되고, 현존이 아니라 끊임없는 중얼거림이 일상을 차지한다.
<무명스님>
이름을 지어달라고 찾아와 귀찮아서 무명이라 지어주었다. 나중에 헤어져 스님이 되어 법명을 무명으로 해서 친구가 뒤에서 부른다. “무명스님!”
ㆍ <니글의 잎새>- 톨킨<반지의 제왕 작가> 저
화가, 니글이 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마음에 품은 그림 한 점을 그리고 싶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 하나로 시작해 수많은 잎과 가지를 가진 거대한 나무로 그리고 제각기 다른 빛과 다른 각도로 음영을 표현하고 싶었다. 신비한 깃의 새들을 가지 위에 내려앉게 할 것이다. 나무 너머로는 들판과 들판 끝의 오래된 숲과 그 너머 눈 쌓인 산이 바라보일 것이다. 이런 상상을 담아낼 대작을 그리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커다란 캔버스를 만들고, 화폭 여기저기에 스케치를 하고 물감을 칠했다. 자질구레한 처리해야 할 일과 이웃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붓 들 틈이 없었다. 비가 오자 이웃들은 가가 가진 커다란 캔버스로 비 새는 지붕을 덮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흘러 독감에 걸렸을 대 죽음의 사자가 떠날 시간이라 하자 ‘아직 그림을 끝내지도 못했어요. 제발 시간을 더 주세요.“하니 ”당신 입장에서 보면 그렇지만 어쨌든 이제 끝났소. 갑시다.“해서 죽어 하늘나라로 가는 기차에 태워졌다. 하늘나라 가장자리에 이르렀을 때 보니 자기가 완성하려던 나무가 완성되어 있는 모습을 보고 “이건 선물이야!; 외친다. 저 세상에서 선물 받는 것으로 소설은 끝나지만 그 순간 그는 자신이 가졌던 재능이 신이 준 선물이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우리가 마음에 품은 나의 이야기는 그 돌들과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새는 자신이 볼래 드넓은 하늘이며 그 외의 것들은 변화하는 날씨 같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날 수 있다.
ㆍ감동 받아야 감동 줄 수 있다. 남의 마음에 불을 전하려면 먼저 자기 마음이 불타야 한다. 가장 가난한 사람은 내면의 불이 꺼진 사람이다.
<치료의 원-바벰바 부족의 지혜-잘못했을 대 칭찬으로 살리는 힘>
우리는 가만히 있으면 왜 그렇게 우두커니 앉아 있느냐 나무라고 풀꽃을 감상하면 왜 시간 낭비하나 나무라고 웃으면 소란스럽다하고 자기가 웃으면 행복해서 웃는다 했다. 우리가 춤 추면 난동이고 자기가 춤 푸면 춤 명상이라 한다. 행복한 관계는 비평이나 조언이 아니라 상대방의 순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찾아온다. 나는 당신과 그렇게 만나면 좋겠다. 비평과 평가없이 존재와 존재로.
ㆍ비평과 비판이 건강한 공동체를 만드는 방법이라고 믿으며 비판의 눈을 가져야만 의식 있는 사람으로 여긴다. 그 결과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도 모르게 자기 안에 비판자를 갖게 되었다. 그 비판자는 습관적으로 우리 생각 전면에 등장하고 우리 얼굴 관상이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모두가 모두를 비판하고 공격하는 사회가 되었다. 남아프리카 바뱀바 부족은 잘못된 구성원을 바로잡는 형식이 있다. 먼저 잘못한 사람을 마을 광장 한가운데 세워두고 한 명씩 돌아가며 그 삶이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행한 좋은 일들을 하나씩 이야기한다. 그의 긍정 성품과 재능, 그가 베푼 호의와 선행, 인내심을 갖고 마을 일에 참여한 것 등을. 이 의식은 며칠씩 걸리기도 한다. 그 사람의 현재의 잘못 대신 과거를 더듬어 칭찬할 수 있는 모든 좋은 면을 이야기한다. 그에 대한 불만이나 잘못은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부족원 전체가 칭찬거리를 다 찾아내면 의식이 끝나고 즐거운 축제를 벌인다. 잘못 한 사람은 환영 받으며 다시 부족 일원으로 돌아온다. 자존심 훼손이 아니라 애정 어린 방법으로 그의 가치를 상기시켜 자존심을 북동아 교화한다. 그래서 법죄 행위가 줄어든다.
습관적으로 비난과 공격의 칼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칼이 작아도 위험하다. 그런 습관이 마으에 뙤를 틀면 세상 즐거움과 평화는 없다.
ㆍ누군가가 자신이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하면 그 해답은 당신의 목적지가 아닌 그의 목적지로 당신을 데려갈 것이기에 그를 따르지 말라. 벽에 문을 그려놓았다 해서 문이 아니다. 그것이 문이라고 우리 마음이 세뇌 당했을 뿐이다. 문은 우리 스스로 벽을 뚫어야 만들어진다.
ㆍ우리에게 주어진 날들이 영원하지 않음을 알면 삶이 그만큼 더 소중해진다. 아침을 더 절실하게 맞이하고 더 깊이 사랑하게 된다. 인생은 필사본이 아니라 각자 스스로 써 나가는 책이다.
<자연에서 얻는 치유-고래와 문어가 준
ㆍ<어머니 고래- 바위> 삶이 알아서 하리라-<숨은 여행> 엔드류 하비 저에서
뉴욕에서 살던 남자가 삶에 회의를 느끼고 하와이 섬 부족민과 살던 중 추장이 가족 고래를 소개시켜 주며 “당신은 물속에서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고래가 당신의 존재를 감지하고 당신에게 올 거다.” 부족인은 그 고래를 어머니라 불렀다. 추장은 그를 바다로 데려갔고 남자는 수영할 줄 모른다고 했지만 “걱정마라. 바위를 붙잡고 있으면 나머지는 어머니가 알아 해요.”
남자는 옷으 벗고 떨며 물속에 몸을 담갔다. 부족은 노래를 불렀다. 500미터쯤 떨어진 곳에서 흑단 같은 고래등이 모습을 드러내어 거대한 사라의 에너지르 보냈다. 고래가 움직이자 남자느 고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래는 파도를 뒤집어쓰거나 물에 빠지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수평으로 움직여 한 번에 몇 미터씩만 다가왔다. 마침내 고래가 다가오자 추장이 “어머니를 만져요. 어서요. 당신의 어머니를 만져 보고 싶지 않아요?”했다.
남자는 떨리는 손을 뻗어 고래의 매끄럽고 까만 피부를 만졌다. 고래는 몸을 뒤집어서 배도 만질 수 있게 했다. 그가 마치 자신의 사랑스런 아이인 것처럼. 그런 다음 고래는 물속으로 사라졌다. 경이로움이 두려움을 압도했다. 고래의 배가 손가락에 스치는 순간 남자는 지구의 사랑을 느꼈다. 그는 바위를 붙잡고 있던 손을 놓고 물속으로 헤엄쳐 갔다. 자신이 물에 떠 있을 수 있음을 알고 다시 벅찬 전율과 환희를 느꼈다. 그는 어머니 고래를 다시 만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언제나 사랑의 에너지에 둘러싸여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그 후 그의 세계관이 달라졌다. 돌처럼 삶 속으로 가라앉을 것 같았던 두려움이 삶의 바다를 헤엄쳐 나갈 수 있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나머지는 삶이 알아서 하리라는 것을 알았다. 바위를 움켜잡고 있는 두려움에 찬 손을 놓기만 하면 삶이 알아서 하리라.
<문어가 말을 걸다-회복의 시간>
썰물 때 바다에 한 남자가 횃불을 들고 서 있었다. 무릎까지 바지를 걷고 물 속에 꼼작 않고 서서 문어를 잡는다며 물속에 들어오라했다. 솜에 기름 적신 횃불을 ㅅ노에 들려주어 물 속에 서서 관찰하니 돌 츰에 다가오는 문어가 보였다. 10분도 채 안되어 내 발을 톡 건ㄷ그렸다. 문어는 긴 다리를 뻗어 마치 너는 누구냐 묻듯이 발등을 톡톡 건드렸다. 그 접촉은 내 고독감을 날려 외로문 세상을 상실했다. 그 어린 문어를 통해 바다와 새명체 전체와 연결된 기분이었다.
ㆍ많은 영적 치료사들은 인생의 시련을 겪고 동불 밖으로 나와 세상의 신비와 마주한 사람들이다. 너무 밝은 빛 속에선 보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볼 수 없을 때, 빛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나온다. 시인 시어도어 로스케는
‘어둠 속에서 눈은 비로소 보기 시작한다.’했다.
ㆍ밖에서 날아오는 화살은 피하면 그만이다. 안에서 자기 스스로 쏘는 화살, 자기 잘못의 되새김은 독화살과 같다.
ㆍ용서는 내개 상처 준 사람을 해방시켜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을 향한 원망과 분노. 증오에서 내가 해방되는 일이다. 삶의 지혜는 불행을 멈추게 하는 것이 아니라 불행 속에서도 건강한 씨앗을 심는데 있다. 그것은 그만큼 생명의 원천을 신뢰하는 일이다. 역경은 씨앗의 껍질을 벗겨 내는 바람 같아서. 우리 존재의 중심부a만 남긴다. 그러면 그 중심부가 놀라운 힘을 낸다. 자연주의자 소로는 말했다. “나는 씨앗에 대해 깊은 믿음을 가졌다. 당신에게 씨앗이 있다면 나는 놀라운 기적을 기대할 것이다.”
<김혜자씨의 공감 눈물>
그와 네팔 여행 때 카트만두 외곽 유적지에 갔을 때 장신구를 파는 여자를 보았다. 그런데 김혜자씨가 걸음을 멈추더니 그녀 옆에 가서 앉았다. 물건을 사려는 게 아니었다. 그제야 보니 그 여인은 고개를 숙이고 조용히 울고 있었다. 눈물이 턱을 타고 흘러내려 싸구려 장신구들 위로 번졌다. 놀라운 일은 김혜자 역시 그녀 옆에 앉아 울기 시작했다. 말도 없이 한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국적과 언어와 신분이 다른 두 여인이 서로 눈물의 이유도 묻지 않은 채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었다. 공감의 눈물이었다. 네팔 여인의 울음은 김혜자를 보며 웃음 섞인 울음으로 바뀌었으며 이내 밝은 미소로 번졌다. 공감이 가진 치유의 힘이었다. 김혜자는 팔찌 하나를 고른 후 그 노점상 여인의 손에 300달러를 쥐어 주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횡재를 하고 싶지 않겠어요? 인생은 누구에게나 힘들잖아요.”
김혜자는 그 팔찌를 여행 내내 하고 다녔다. 그 무렵 김혜자 역시 힘든 시기를 보낼 때였다. 그녀 고뇌와 절망은 대중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나 타인의 아픔에 대한 진실한 공감능력으로 자기 아픔까지 치유해 나갔다. 공감은 나의 아픔에도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겠다는 선택이다. “그녀와 나는 아무 차이가 없어요. 그녀도 나처럼 행복하기를 원하고 작은 기적을 원하고 잠시라도 위안 받기를 원하잖아요. 우리는 다 같아요.”
ㆍ<춤 명상>-
춤안에서 몸과 의식이 하나가 될 때 춤추는 사람은 사라지고 춤만 남는다. 사람은 사라지고 춤 자체가 된다. 나타리즈 춤 명상은 40분 동안 춤과 15분 동안 좌선으로 구성되어 좌선이 끝나면 15분 동안 기쁘게 축복의 춤을 춘다. 춤 명상은 춤으로 하는 자기 치유이다. 무의식 속에 쌓인 잠재의식을 몸으로 표현해 지워 버린다. 몸은 수많은 기억과 상처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가 춤을 통해 몸 깊은 곳으로 들어가 해방시킨다. 우리 안에 피어나지 못한 꽃들이 개화하도록 돕는다. <그리스인 조르마>의 주인공 조르바에게 춤은 상처를 준 세상과의 화해이자 아픔을 승화하는 몸짓이다. 어린 아들이 죽었을 때 조르바는 아들의 주검 앞에서 춤을 춘다. 사람들은 그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지만 그는 춤을 추지 않았다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것이다. 춤의 치료 효과는 오래된 문화들도 인식하고 있다. 아프리카 어느 부족은 아침에 노래 부르고 춤추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픈 사람을 찾아간 치료사는 묻는다. 마지막으로 노래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춤 춘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자기 이야기를 한 것이 언제인가? 마지막으로 고요히 앉아 있었던 것이 언제인가?
<신은 길을 보여주기 위해 길을 잃게 한다.>
-나는 더 어두워지기 전에 눈 덮인 호수를 한 바퀴 돌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저녁이라 인적이 거의 끊겼다. 그런데 산책로 중간에서 한 백인 노인과 마주쳤다. 그는 오솔길 모퉁이에서 갑자기 나타난 장발의 동양인을 보로 놀랐고 자연스레 인사를 나누었다. 그날 내가 실수하지 않았다면 곧바로 월든 호수에 갔다면 나는 그와 마주치지 못했고 그와의 만남에 지름길이 되었다. 때로는 우회로가 지름길이다. 우회로에는 뜻밖의 선물과 예상하지 못한 만남이 있다.
ㆍ내가 그림 그릴 때 나와 파장이 맞는 고호, 모네같은 예술가들의 영혼이 나타나 나를 돕는다면?
ㆍ우리는 보고 느끼기 위해 태어났다. 그밖에 꼭 무엇이 되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아름다움에 몰입하고 감동할 줄 아는 영혼을 가지고 왔다. 그 몰입과 감동이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인생을 살아 나가게 하는 힘이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은 삶과 세상에 대한 예찬, 그것이다. 예찬하는 마음 역시 모든 돌들을 보석으로 만든다. 부자는 많이 감동받는 사람이다. 감동 모르는 사람은 가장 가난한 사람이다.
<지금이 바로 그때-두 점성가 이야기>
천문학 점성가 아내가 “매일 천문학 책만 보면 별자리에서 밀가루가 나오나 돈이 나오냐.” 남편을 핀잔주자 남편은 이제 깊은 명상에 들어갈 건데 한순간에 모인 우주 에너지를 이곳으로 끌어당기기 위해서다. 당신은 옥수수와 뜨겁게 달군 솥을 준비해서 내 신호에 옥수 알갱이를 전부 솥에 부어야 팝콘처럼 터지면서 황금 알갱이로 변한다고 일러주었다. 그런데 옥수수가 없어 옆집에 가서 옥수수를 빌려왔다. 남편의 신호“바로 지금이야!”소리에도 “지금이 그 순간인 게 맞아요? 다시 한 번 확인 해 봐요.”하며 기회를 잃었고 옆집 아내는 그 순간 옥수수를 넣어서 황금알갱이를 얻어 가져와 나누어주었다.
ㆍ길의 어원이 길들이다 이다. 스스로 길을 들여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가야 한다.
<나는 누구인가>
사람들은 나를 만나지만 사실은 내가 아니라 자신이 상상하고 추축한 나를 만난다. 우리는 하나로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매 순간 변화하는 무수한 모습들의 종합이라 호랑이의 줄무늬는 밖에 있고 사람의 줄무늬는 안에 있다. 그 내면의 줄무늬는 타인이 읽어 내기 힘들다. 그 줄무늬는 삶 속에서 시시각각 변하며 성장과 변신한다. 사람들은 당신의 이름을 알지만 당신의 스토리는 모른다. 그들은 당신이 해 온 것들은 들었지만, 당신이 겪어 온 일들은 듣지 못했다.따라서 당신에 대한 그들의 견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말라. 결국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 당신에 대한 단신 자신의 생각이다. 대로 자신과 자신의 삶에 최고의 것을 해야만 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니라.
<짐 코벳 이야기>
영국인 우체국장의 아들로 태어난 짐 코벳은 주변에 펼쳐진 밀림과 야생동물에 매료되어 식인 맹수임이 확인되지 않으면 죽이지 않고 환경운동가로서 쿠미온에 인도 최초 국립공원을 세우고 멸종 위기에 처한 벵골 호랑이와 야생동물 보호에도 앞장섰다. 그의 업적을 기려 현재 짐 코셋 국립공원이 있다. 코벳의 일화 중 하나다. 코벳이 사냥꾼과 히말라야 발치의 밀림 속을 걸어갈 때 4월이라 자연이 최고 아름다웠다.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은 주위 풍광을 신비롭게 비추었다. 계절이 주는 선물로 영혼 속까지 충만해졌다. 그러나 동료는 아름다운 풍경을 음미할 마음 여유가 없었다. 자연이 선사하는 꽃. 새소리와 향기는 그의 오감 속에 스며들지 않았다. 밀림 속 오솔길은 자주 끊겨 넝쿨들을 자르며 길을 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몸에 달라붙는 벌레들도 수시로 떼어 내야만 했고 발이 미끄러지는 진흙탕과 오르막길도 많았다. 해가 남아 있을 때 목적지에 도착할지도 미지수였다. 미지의 환경에 느껴지는 불안감도 컸다. 그러나 코벳은 야생의 정글이 주는 경이로움과 신비로움만으로도 모든 고난을 충분히 잊을 수 있었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을 스쳐가는 풍경을 즐기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야영지에 도착해 있었다. 우리도 목표 지점과 원하는 결과로 가느라 삶이 그 여정에서 선물하는 것들을 지나치기 일쑤다. 삶은 그 여정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프루스트의 장미>
프루스트가 친구와 정원을 거닐다가 진홍색 뱅골장미나무를 보고 걸음을 멈추고 친구 혼자 산책하고 오라 했다. 작곡가 레이날도가 한 바퀴 돌아 다시 오자 그때까지 프로스트가 그 자리에서 있었다. 그런 신비한 순간을 엄마라 많이 목격했던가. 그 순간 프루프트는 자연, 문학, 인새과 완전히 하나가 되어 그 깊은 순간들 속에 온 존재가 물아일체로 잠겨 있었다. 보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존해해야 한다.
·상실과 실패의 재난은 누구의 삶에나 일어난다. 그러나 고통의 대부분은 실제의 사건 그 자체보다 그것에 대한 감정적 반응으로 더 심화된다.
<별이 보이는가-모든 진리를 가지고 오지 말라>
티;베트 불교에 족첸 수행법은 스스로 완전한 상패라느 의미로 삼선 명상이다. 어떤 현사에도 마음의 흐트러짐 없이 깨어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마음 본래의 상태가 이미 완전하므로 필요한 것은 오직 알아차림, 자각이다. 족첸 수행 스승은 제자를 옆에 눕게 하고 물었다.게
“그내는 마음의 본질을 보른다고 했지?”그렇다고 하자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이 보이는가?” 물어 보인다고 하자 “마음에 개 짓는 소리가 들리는가?”물어 보인다고 하자
“이것이 그것이다. 단지 이것뿐이다.”
고 했다. 스승은 내 안의 의문이 더 깊어지게 스스로 해답을 찾아네게 미리 해답을 주지 ㅇ낳고 한 걸음씩 알아가느 기쁨을 주려했다. 새는 알에서 나올 때 두 다리로 힘껏 껍질을 깨고 나온다. 이때 사람이 껍질을 깨 주면 다리 힘이 부족해 잘 날지 못하고 도태된다. 껌상처는 설명을 듣는다고 낫지 않고 시간이 걸려야 아물고 새살이 돋는다. 의문이 깊으면 문이 열린다. 문제를 살아야만 해답을 발견한다. 별이 보이는가 한 마디를 듣는데 뇨술을 18년이 걸렸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는 “우리는 ‘나처럼 해 봐.’라고 하는 살마 곁에서는 아무것도 배울 수 없다. 나와 함께 해보자라는 사람만이 우리 스승이다. 했다. 논리정연하고 해박한 설명보다 존재로써 보여주고 묵언 속에 나의 진면목과 마주하도록 도와준 이들, 나 자신의 강력한 의지 안에서 진정한 자유에 이르게 해 준이드이다. 마음의 세계, 삶과 진리에 대해 설명하려하지만 공식처럼 들려 주는 설명은 때로 독이 되어 우리 스스로 추종자가 될 마음을 이미 갖고 있기 때문에 작은 이정표에 의지해 혼자 힘으로 찾아 나갈 인내력을 서둘러 포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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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
내가 목말라한다고 바다를 가져 오지는 말라
내가 빛을 찾는다고 하늘을 가져오지는 말라
다만 하나의 암시, 이슬 몇 방울, 파편 하나를 보여달라
호수에서 나온 새가 물방울 몇 개 묻혀 나르듯
바람이 소금 알갱이 하나 실어 나르듯
-올리브 H.하우게(노르웨이 시인)
<벽과 문>
벽에 누군가 문을 그려놓았다고 문이 아니다. 단지 그것이 문이라고 우리 마음이 세뇌당했을 뿐, 문은 우리 스스로 벽을 뚫어야 만들어진다.
=자신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부터는
언제나 거리를 두게 하시고
보라라고 말하면서 놀앙무 속에 웃는 사람들과는
언제나 가까이 있게 하소서.
세상은 산이다. 당신이 말하는 것마다 당신에게 메아리로 돌아온다. 멋지게 노래했는데 매아리가 괴상한 노래를 들려주지 않듯이. 책 후반부를 보기 전에 앞 부분이 슬프다고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아니다. 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수도승과 전갈>
전갈을 구해줄 때마다 전갈이 수도승을 물지만 그것은 전갈의 본성이고 위험에 처한 전갈을 안전하게 데려다 주는 것은 수행자의 본성이다. 상대방이 당신에게 어떤 행동을 하는가 관계없이 그 선택이 당신의 본성을 결정한다.
<한 개의 기쁨이 천 개의 슬픔을 사라지게 한다-사랑을 잊지 못하는 이유-머리 감겨준 아이>
먼 지역에서 온 순례자들은 기다란 대나무를 강에 던져 새들이 내려앉을 자리를 마련해주는 풍습이 있다. ‘프라야’는 사랑스러운 소녀라는 뜻이다. 열 살이네도 제대로 먹지 못해 몸이 가냘프고 두세 살 어려 보이는 프라하는 눈 아래가 파리한 수줍이 많은 아이였다. 나는 종종 강가 계단에 프리야를 옆에 앉히고 당콩을 사서 나눠 먹거나 주인 없는 개들에게 비스킷을 던져 줬다. 프리야 머리가 늘 부스스해서 집으로 데려와 삼퓨로 머리를 감겨주었다. 헤어드라이어는 필요 없었다. 태양이 말려주었다. 머리가 마르는 동안 땅콩을 까먹고 샴푸가 떨어지면 재래시장에 가서 사고, 맨발에 샌들도 샀다. 몽이 약해 오래 살지 못할 거라던 아이 머리에 윤기가 흐르고 대학 졸업반이 되었을 때 찾아갔더니 언니가 “프라야는 머리를 감을 때마다 어렸을 때 당신이 자기 머리르 감겨준 액,ㄹ 해요. 거의 하루도 빼놓지 않고 말해요.”했다. 모든 감정 중에 내가 죽을 때 기억하는 것은 사랑하고 사랑받은 경험이다. 사랑을 잊지 못하는 것은 절벽에서 떨어지는 것 같을 때, 누군가가 팔을 뻗어 우리를 붙잡아 추락을 멈추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빛은 상처를 통해 들어온다.-고통은 지나가고 아름다움은 남는다>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고 이혼해달라고 하자 그 순간 모든 것이 정지했다. 그냥 하늘이 넓다는 것과 집 옆으로 흘러가는 개울물 소리와 찾잔에서 올라오는 김이 느껴졌다. 시간도 사라지고 생각도 멈추고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빛과 무한한 고요만이 있었다. 이윽고 정신을 수습하여 돌멩이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큰 자동차 사고를 당한 것과 같았다. 무중력 상태에 서 있는 것처럼 시간이 멈췄다. 생각이 정지하고 삶이 정지했다. 진공의 병 속처럼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남자가 아니라 마음 수행이라 깨닫고 삭발하고 불교에 입문했다. 그는 아의 가장 큰 스승이 되었다. 그가 나를 떠났기 때문에. 불행은 껍질을 태워버리는 불과 같아서 껍질 속에 가려져 있던 우리 본연의 모습을 보게 한다.
실제 땅콩 장사를 했는지 흉내를 내어보라 했는데 “치니아 빠다암~ 맛있는 땅콩 사세요!”
그러자 정말로 옆집에서 땅콩을 사려고 사람이 달려 나왔다.
-상처를 외면하지 말라. 붕대 감긴 곳을 보라. 빛은 상처가 난 곳을 통해 들어온다.-
슬픔이 난폭하게 모든 것을 쓸어가 버린 뒤 새 기쁨이 들어올 공간을 발견할 수 있다.
ㆍ<뉴욕 택시 운전사의 경험담-요양원으로 이동하는 할머니 이야기>- 한 밤중에 전화를 받고 승객을 태우러 갔는데 연약한 할머니가 짐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녀는 지금 노인 요양원으로 가는 길이라며 두 시간 동안 시내 곳곳. 자신이 처녀 시절에 엘리베이터 걸로 일하던 빌딩 앞에 차를 세워 창문 밖으로 한참 동안 그 건물을 바라보았다. 그 다음에 그녀가 결혼해서 갓 신혼살림을 차린 주택가였다. 지금은 가죽 전시장으로 바뀐, 소녀 시절 춤추던 무도회장 앞에서도 멈췄다. 그녀는 건물 앞이나 네거리에 차를 세우게 하고는 아무 말 없이 어두운 차 안에 앉아 밖을 응시하곤 했다. “이제 가야겠어요.” 작고 허름한 요양원 앞에 직원들이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차비를 받지 않겠다고 하자 그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이 늙은이가 생의 마지막 기쁜 순간들을 가질 수 있게 해 줘서 고마워요.”
그녀는 요양원 안으로 들어갔고 소리를 내며 문이 닫혔다. 그녀 인생의 마지막 문이 닫히는 소리였다. 우리가 하는 행동과 말, 우리가 내미는 손길이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수도 있다. 그 영혼은 그 마지막 느낌을 마음에 간직한 채 이 세상을 떠날 것이다.
사람들은 화가 나면 서로의 가슴이 멀어져 소리를 지른다. 소리를 질러야 상대방에게 자기 말이 가 닿는다고 여긴다. 화가 나면 마음이 닫혀 버리기 때문에 상대방이 멀게 느껴진다. 그것이 화의 작용이다 반면에 사랑은 가슴의 문을 열어, 멀리 있는 사람도 가깝게 느낀다. 그게 사랑의 작용이다. 갈등의 10%는 의견 차이에서 오며 90%는 적절치 못한 목소리와 억양에서 온다는 심리학의 통계가 있다. 소리 지를 때 고통 받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자신이다. 불붙은 석탄을 던지는 자는 자기부터 화상을 입는다. 남태평양 부족은 쓸모없는 나무를 제거할 때 소리를 질러 “필요 없는 나무야. 넌 아무 가치가 없어.” 쓰러져라하고 외치면 얼마 안 가 나무가 시들어 죽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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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소가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구역이 있다. 투우사와 싸우다가 지친 소는 자신이 정한 그 장소로 가서 숨을 고르며 힘을 모은다. 기운을 되찾아 계속 싸우기 위해서다. 그곳에 있으면 소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소만 아는 그 자리를 스페인 어로 퀘렌시아라 부른다. 안식처. 파난처라는 뜻이다. 산양이나 순록이 두려움 없이 풀 뜯는 장소, 독수리가 마음 놓고 둥지 트는 거처. 곤충이 비 피하는 나뭇잎 뒷면. 땅 두더지가 숨는 굴이 그곳이다. 명상에서는 이 퀘렌시아를 인간 내면에 있는 성소에 비유한다. 우리 안에는 늘 새로워지려는 다시 생기를 얻으려는 본능이이 있다.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자기 안에서 깨우려는 의지가 우리는 본능으로 자아 회복의 장소를 찾고 있으며, 삶에 매몰되어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치유하고 온전해지려는 의지를 지닌다.
ㆍ우리는 자신이 여행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는 여행이 우리를 만든다.
거래에서는 순수 존재로서의 나보다 상품 가치로서의 나가 우위다. 작가의 행복은 책이 얼마나 팔리는가가 아니라 독자와 공감을 통해 이루어지는 나-너의 순수 관계다. 히말라야 일출 감상지로 유명한 네팔 카트만두 근교 나르콧 산장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스케치북을 든 일본 남자는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는 희열의 순간을 즐기려고 떠아온 여행자였다.
삶은 풀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살아야 할 신비다. 이해는 머리가 아니라 경험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인 까비르도 노래한다. 살아 있는 동안 손님을 맞이하라고. 살아 있는 동안 경험 속으로 뛰어들고, 살아 있는 동안 삶을 이해하라고.
어느 곳을 가든 내가 집으로 향하고 있음이 인간이요. 인간은 모두 자기 집에 이르기 위해 여행하고 여졍은 진리의 발견기오 자아실현의 과정이다.
책명-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보지 않는다-새 정리-박경선 홈피.어린이문학교육 272번.h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