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향기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5)
고후2:14은 사람 앞에서의 향기라면, 본 절은 하나님 앞에서의 향기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향기라 함은 그리스도를 본 받아 자신을 드림보다 더한 향기는 없다. 성경에서 말하는 향기는 동양의 도덕으로 본다면 덕을 지칭함이다. 덕이라 함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다. 남을 위함이 덕이다. 향기를 날린다 함도 이와 상응하니 자신에게도 향의 냄새가 좋기도 하려니와 남의 기분을 좋게 함이니 서양에서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같이 동석할 때에 향수를 뿌리는 것이 예로 간주된다. 남을 기분 좋게 함에 있음이다. 더욱 체취가 있는 사람은 반드시 향수를 사용한다. 사람을 대할 때 향기가 풍김에 상대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향기가 다 없어져서 체취가 나게 되면 다시 안으로 들어가 향수를 뿌리고 나오는 이를 여러 번 상면하면서 본고로 이를 깊이 느낀다.
신앙적으로 향기를 풍긴다 함은 남을 좋게 남을 기쁘게 즐겁게 하는 일이다. 신앙인으로 남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줌에 있음이니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요13:15) 이 보이신 본이 곧 자신을 내여 주심이요 나 죽을 대신에 그 자신이 제물이 되심인 것이다. 하나님 앞에는 그보다 더 큰 향기가 없음이다. “제사장은 그 전부를 제단 위에서 불살라 번제를 드릴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항기로운 냄새니라”(레1:9) 모든 제물은 하나님께서 향기롭게 흠향(歆饗)하신다.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아1:12)
언제나 우리의 삶에는 왕을 모시고 사는 삶인데 그때마다 내 왕을 기쁘시게 내 전부를 그에게 드리는 삶이 되면 그에게 향기롭고 내 자신에게도 그 흐뭇함이 있어 만족하다. 더욱 주님께서 나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주신 그 사랑은 내게 언제나 그 흐뭇함이 있음이다. 그의 구속함을 받은 성도들은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아1:13)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르는 그 누구든지 그 십자가의 향기 나는 향주머니를 품에 품고 삶이다. 그 십자가의 향기에 도취하게 마련이다. 바울은 이렇게 이런 사실을 표현한다.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골1:24)
십자가의 향기에 도취하여 산 삶의 한 표현이라 할 것이다. 이런 삶을 우리 주님께서 기쁘시게 향기롭게 받으심을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아1:14) 포도원은 곧 주님의 피로 세우신 교회이다. 주님의 몸 된 교회에 나는 고벨화 송이 같이 향기롭게 주인 되신 주님을 기쁘시게 함을 가리킴이니 우리 모두는 이렇게 살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향기를 날리는 성도는 이렇게 노래하기도 한다. “북풍아 일어나라 남풍아 오라 나의 동산에 불어서 향기를 날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가 그 동산에 들어가서 그 아름다운 열매 먹기를 원하노라”(아4:16)
매섭고 차가운 바람을 청한다. 무서운 고난도 오라! 훈훈한 봄바람도 불어라. 다 좋다. 어떤 환경에도 향기를 날리어 사랑하는 자로 그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동산으로 향하게 하심이다. “부지중에 내 마음이 나를 내 귀한 백성의 수레 가운데에 이르게 하였구나.”(아6:12) 그 발걸음이 수레를 탄 것같이 동산에 이름은 그 향기가 사랑하는 자를 이끌기 때문이다. 신앙인들은 모든 구원 얻은 자들에게 이런 향기로 주님을 이끌 뿐만 아니라 이 향기로 많은 사람을 구원으로 이끌게 됨이다. 꽃향기가 벌과 나비를 부르듯이 그리스도의 향기는, 드리는 제물을 많은 사람을 이끌게 된다. 그러나 망하는 자는 이 향기를 싫어한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고전1:18)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눅2:34)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마21:44)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는 큰 죄라, 향기를 싫어할 뿐 아니라 악취 나는 삶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로 삶이 곧 전도이다”
“그리스도의 향기! 그의 속죄 희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