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강 성서란 무엇인가 2 (신약편)
신약성경은 모두 27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 분류방법은 복음서, 역사서, 서신서 그리고 묵시록입니다. 복음서는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권인데, 그중에 마태, 마가, 누가복음을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이라고 부릅니다. 서로 맥락이 유사한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당연히 요한복음은 개성이 뚜렷한 복음서여서 공관복음으로 분류하지 않습니다.
복음서가 기록된 순서는 지금까지 밝혀진 데에 따르면 마가복음(70년경)이 가장 먼저입니다. 마태와 누가는 엇비슷한 시기(80-90년경)에 쓰였는데, 이미 마가복음을 알고 기록한 성경입니다. 그리고 실물로 존재하지는 않지만 예수의 어록을 모은 자료가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학자들은 이 자료를 Q자료라고 부릅니다. 독일어로 Quelle 원전이라는 단어의 첫 글자를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Q자료와 마가복음자료 그리고 마태만 아는 구전들을 가지고 기록했고, 누가 역시 Q와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만의 자료로 복음서를 집필하였습니다. 이에 비하여 요한복음(90-100년경)에서는 이런 경향이 미미합니다. 그래서 제 4복음서라고도 불립니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그리스어를 사용하는 지식인들에게 철학적인 설득력을 보여주는 성경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이 가장 신학적인 복음서이고,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훨씬 잘 이해되는 성경으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우에 각각의 복음서 내용이 머릿속에 섞여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십자가 위에서 말씀하신 예수의 어록을 <가상칠언>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이것은 네 복음서에서 발췌하여 모은 것입니다. 합쳐놓으면 외우기는 좋지만, 각각의 복음서가 증거하고 싶었던 핵심이 흐려집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이 예수의 족보로 시작하고, 누가복음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으로 시작하고, 요한복음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인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는 창조의 시대부터 시작하는 저자의 의도를 이해해야 합니다. 반면에 마가복음은 세례요한의 선포와 예수의 세례로 시작합니다.
역사서는 사도행전입니다. 사도들의 행적을 기록했다고 하지만, 대부분 베드로와 바울의 행적입니다. 이 글은 누가복음의 저자와 동일한 저자에 의하여 기록된 것이 분명하기에 누가와 묶어서 “누가문서”라고 부르자는 제안도 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을 읽고 이어서 사도행전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예수시대와 베드로의 전도활동 그리고 바울의 선교여행에 대한 상세한 역사를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초음의 교회들이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되고, 처음 전도자들의 희생과 봉사의 정신이 우리의 기억에 깊이 남아있게 됩니다.
서신서는 21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편지 형식의 글을 의미합니다. 저자들이 이글을 편지의 형태로 전달하였기 때문입니다. 그중 대부분의 서신을 바울이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신약성서에 대한 바울의 영향력은 지대합니다. 전통적으로 13권이 바울의 저작으로 알려졌습니다. 전도자들이 설립한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 발생하는 갈등이나, 윤리적 해이나, 광신주의의 등장 등등 전도자들이 보기에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만한 일들이 벌어지자, 이를 훈계하려고 써서 보낸 것들이 오늘까지 전해진 것입니다.
바울의 서신들은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인데, 이를 분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특정한 교회에 보낸 서신 외에 일반적인 교훈을 담아서 여러 교회가 돌려 보도록 쓴 서신을 목회서신(디모데전후, 디도)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쓴 서신을 옥중서신(빌립보, 빌레몬, 에베소, 골로새)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바울서신 중에 제일 주목을 받는 4대 서신이 있는데,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입니다. 물론 바울 서신으로 분류된 13개 서신서 중에 바울의 이름을 빌린 제자들의 글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 서신도 있습니다.
그 다음에 일반서신으로 부르는 것이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일이삼서, 유다서(7권)입니다. 그러면 남는 나머지 한 개의 서신이 히브리서입니다. 바울서신은 대개 수신하는 지역 또는 개인 이름을 달고 있고, 기타 일반서신은 저자의 이름을 달고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서는 바울의 글과 매우 비슷한 저술을 하는 다른 사람의 글임이 확인 되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그 내용이 뒤떨어지는 것을 결코 아닙니다.
신약성경이 기록된 것은 주후 50년 경 바울이 데살로니가 전서를 쓰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요한문서들과 계시록이 완성된 것은 도미티안 황제의 기독교박해 때인 AD 95년경이므로 대개의 신약성경의 각권들이 완성된 것은 AD 100년 이전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리스도인들이 사랑한 문서들은 이것들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그 이름을 열거하면, 야고보 복음서, 히브리인들의 복음서, 베드로 복음서, 도마 복음서, 이집트인들의 복음, 마리아 복음, 빌립 복음서, 안드레 행전, 요한 행전, 유다 복음서, 베드로 행전입니다. 그런데 이것들은 보시는 바와 같이 저명한 이름을 차용하여 그 권위를 인정받으려한 흔적이 강하게 보이는 위작들입니다. 그래서 위경이라고 부릅니다.
오히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문서들이 있습니다. 교부문서라고 부르는데요, 사도들의 뒤를 이은 사람들이라서 이들을 속사도시대의 교부 또는 사도교부라고 부르며 그들의 저작을 매우 중요하게 다룹니다. 이그나티우스의 편지, 클레멘트의 서신, 폴리갑의 순교사화, 디다케, 헤르마스의 목자, 바나바의 서신 등등인데, 초대교회의 신앙상황을 알려주는 중요한 문서들이지만, 신약정경에는 들어가지 못하였습니다. 그만큼 엄격한 심사과정을 거쳐서 초대교회는 397년 카르타고 종교회의에 가서야 오늘날의 27권 신약성경목록을 정경으로 확정하였습니다.
물론 그 이전에 성경목록이 혼란스러웠던 것은 아닙니다. 1700년대 이탈리아의 역사가인 무라토리라는 사람이 발견한 성경목록이 있는데 거기에는 오늘의 27권 가운데 23권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 문서는 AD 200년경의 문서로 판별되었기 때문에, 이미 초대교회 때에 오늘의 성경목록이 존재했다고 보아도 무난합니다.
네로황제 때 시작된 그리스도교 박해는 300년대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박해의 강도에는 차이가 있었지만, 근 250년 동안을 그리스도인은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러다보니 로마제국 전역에 흩어진 그리스도교 교회는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하기 시작하여서, 이제는 일치된 그리스도교 가르침이 매우 필요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가 공부하게 될 갈라디아서에서도 바울은 이미 그런 염려 때문에 갈라디아서를 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정경을 확립하는 일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지키는 데에 아주 시급한 과제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성경목록이 확정될 때까지 교회를 하나 되게 지켜준 것이 신앙고백의 등장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교회의 감독들입니다. AD 325년 튀르키예 지역의 니케아에서 전체 그리스도교 공의회가 처음 열렸습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313년 그리스도교를 공인해 주고 난 뒤 처음 공식적인 모임을 가진 것입니다. 그때부터 교회는 신약성경 정경확립을 위해 속도를 냈고, 397년에 확정하게 된 것입니다.
신약성경은 바울의 서신들을 역사적인 순서에 따라 배열하지 않아서 읽는 이들에게 혼란을 줍니다. 물론 바울 서신서의 저술순서 자체가 분명하지도 않습니다. 대략 정해보면 데살로니가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빌레몬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로마서의 순서라고 보면 됩니다. 신약성경은 아마도 중요한 성경 순서를 택한 것 같습니다. 어떤 순서로 성경을 읽던지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어떤 사람들에게 어떤 문제로 그런 내용의 편지를 썼는지 역사적인 관심을 가지고 읽어야 서신서들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복음서를 읽을 때에는 공관복음서가 매우 비슷하지만, 비슷한 책을 3권이나 성경목록에 들어오게 한 것은 그 복음서들 사이에 서로 보완할 만한 특징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차이점들을 통해서 복음이 그 공동체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되었는지 이해하는 감동을 얻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성경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해서 공부하기도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성경 속에 등장하는 예수의 가르침들을 통해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이해하고, 우리에게 허락하신 영원한 생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깨닫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다음 시간부터 갈라디아서를 읽기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