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동물은 움직인다. 대부분의 동물은 소리를 낸다. 움직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활동이고 소리를 내는 것은 어떤 욕구나 의지의 표현이다. 그런 욕구에는 번식을 위한 본능이 기본이다. 새나 곤충들이 소리 내는—운다고도 하고 노래한다고도 하는—건 대부분 짝짓기할 상대를 찾는 활동이다. 늦여름 저녁 풀벌레들이 연주하는 교향곡이나 봄밤이나 여름밤에 산기슭에서 “솟쩍 솟쩍” 우는 소쩍새 열창이 그 전형적인 경우이다. 나는 미국에서 애팔래치안 산맥에 속하는 어떤 산을 친구와 둘이 등산한 적이 있는데 산 중턱쯤 울창한 숲에 이르렀을 때 그늘진 땅속에서 들려오는 생전 처음 듣는 어떤 웅장한 우주적인 소리가 숲 전체를 압도하는 걸 듣고 놀랍고도 신기하게 느꼈었다. 그때 나와 내 친구는 그게 땅속에서 지렁이가 떼 지어 내는 소리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땅강아지들이 짝을 찾는 소리라고 한다. 지렁이는 소리를 내지 못한다. 밟히면 다만 꿈틀할 따름이다. 꿈틀한다기보다는 몸부림친다.
모든 동물들 중에서 움직임이나 소리를 내는 데 있어서 가장 극성을 피우는 존재는 인간이다. 무진장 움직이며 무진장 소리 낸다. 어제는 친구 딸 결혼식에 참석하느라 다른 네 친구들과 함께 KTX로 서울에 다녀왔다. 말 그대로 시골영감들의 기차놀이였다. 기차가 송정역에서 출발하자마자 나는 옆자리에 앉은 친구와 빤한 내용의 잡담을 시작했다. 대부분 건강이나 질병, 운동 등이 그 단골 메뉴이다. 2-3분쯤 지났는데 통로를 지나가던 승무원이 좀 작은 소리로 말하라고 우리에게 정중히 주의를 주었다. 딴에 우리는 작은 소리로 말한다고 했는데도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정도로 목소리가 컸던 모양이다. 그래서 우리는 용산에 도착할 때까지 그만 입을 닫고 침묵하고 말았다. 그런데 내 뒷자리에 앉은 친구들이 더 큰 문제를 일으켰다. 그중 한 친구는 본래 목소리가 기차화통을 삶아먹은 듯한 장땡땡이다. 그는 ROTC출신 장교로 군복무를 했었다. 그 친구가 옆에 앉은 다른 친구와 상당히 큰소리로 이야기를 약 10분쯤 계속했다. 그러자 내 앞자리에 앉은 40대로 보이는, 도수가 높은 안경을 낀 남자가—그는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는데—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뒷자리 친구에게 다가가서 “아저씨, 좀 조용히 해주세요”라고 엄중하게 요구했다. 그러자 장땡땡이 “예, 알겠습니다” 하고 공손하게 대답한 뒤, 역시 용산에 도착할 때까지 끽소리도 내지 않았다. 기차간은 내내 절간처럼 조용했다.
내가 어렸거나 젊었을 때는 기차간이 난장판에 가까웠었다. 누군가 젠체하는 사람이 분위기를 장악하고 계속해서 서사를 늘어놓거나 젊은이들이 소위 “우왕”(부러 큰소리로 떠드는 행위)을 끌거나, 손뼉 치며 고래고래 노래 부르거나—그 행위엔 남녀구분이 없었다. 나는 서울 말씨의 여대생들이 기차간에서 “서울 가는 십이열차에~”라고 “이별의 부산정거장”을 박수 치며 신나서 불러대는 걸 목격한 적이 있다—시각장애인 아저씨가 처절하게 기타를 뜯으며 큰소리로 “비 내리는 고모령”을 토해내면서 깡통을 든 어린 아들의 손에 이끌려 지나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변했다. 지금은 승객 모두들 “아닥하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지그시 눈을 감고 명상에 잠겨 있다. 가히 문명국의 선진 시민의식이 철저한 개인주의의 기차간이다. 나는 지금이 예전보다 더 개화되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어선 안 된다는 게 문명사회의 기본 태도이기 때문이다. 언제나 어디서나 자아 성찰이 요구되는 개인주의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함께하는 “글쓰기 치료 연구” 카페의 강령에 “진솔한 자아 성찰을 바탕으로” 글쓰기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글쓰기는 머릿속으로 하는 묵음된 말하기 또는 소리내기이고, 나아가서 그것을 문자로 표현하는 것이다. 자아 성찰은 제 마음의 구리거울을 정성껏 닦고 또 닦아 거기에 제 생각과 감정이 비치게 하여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는 행위이다. 거기에 뭐가 비치는지, 무슨 무늬나 무슨 모습, 어떤 사물이나 사람이 떠오르는지. 지금 자신에게 가장 절실한 것이 비치지 않을까? 자아 성찰을 조용하고 진솔하게 표현하는 것이 좋은 글쓰기인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읽고 마음이 따뜻해질 만한 내용을 전략적으로 쓰는 게 더 좋은가? 누구든 읽고 재미있어 하게 만드는 내용이나 표현 방식이 더 좋은가? 그 세 가지가 조화되게 하는 글쓰기가 가능할까?
첫댓글 자아 성찰이 조용하고 진솔하게 표현되고, 그것을 읽은 사람들의 마음이 따뜻해지며, 누구든 읽고 재미있어하는 글이 완벽한 글일까요? 모르겠습다만, 어떤 글이든지 쓰고 읽고 싶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인적으로 조용한 기차 여행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특히 알고 싶지 않은 가족사를 큰 소리로 떠드는 장년층의 수다를 견디기 힘들어하는 편이고요, 하하.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이 있다는 건 처음 알았는데, 시끄러운 장소에서 소품으로 들고 있기 딱 좋은 책이네요, 하하하.
진솔한 이야기가 재미도 있고, 감동도 준다고 생각합니다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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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영감 기차놀이' 라는 제목도 재미있구요,, 기차 내부 상황을 어쩌면 이렇게 재미있게 그리셨는지요.. 웃으면서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