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임연재선생조천록(臨淵齋先生朝天錄)》 2권1책
배삼익의 사행 기록을 전하는 또 하나의 판본은 《임연재선생조천록(臨淵齋先生朝天錄)》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과 국립중앙도서관 등지에 소장된 이 판본은 책 말미에 배삼익의 후손 배동환(裵東煥, 1898~1984)의 <발문(跋文)>이 있고, 석판본으로 발행한 사실에 비춰보면 아마도 일제강점기에 출간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임연재선생조천록》 출간에는 배삼익 가문이 대대로 풀지 못한 원통한 사정이 숨어있다.
배삼익은 선조 20년(1587년) 3월 13일 진사사(陳謝使)로 명나라에 파견될 때 자신의 집안 노비인 양승개(梁承凱)를 대동했다. 그런데 사행 과정에서 도적 이산(李山)이 양승개와 공모하여 명나라에 바칠 보환(寶環)을 훔친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배삼익 일행이 귀국한 후 철저한 조사가 이루어져 선조 22년(1589년)에 황해도 관찰사로 구황에 힘쓰다가 과로로 세상을 떠난 뒤였지만, 결국 간악한 자를 자세히 살피지 않고 대동했다는 죄명으로 그에게 삭탈관직 처분을 내렸다. 뿐만 아니라 선조 23년(1590) 종계변무에 공을 세운 사신들을 광국공신(光國功臣)으로 책봉할 때도, 배삼익을 수행했던 서장관 원사안(元士安)은 광국공신으로 책봉되었지만, 배삼익은 복직 처분도 받지 못했고 공신에도 들지 못했다.
임진왜란 이후인 선조 27년(1594년) 배삼익의 아들 배용길(裵龍吉)은 부친의 원통함을 풀기 위해 첫 번째 〈신원소(伸寃疏)〉를 올려 고인이 된 부친의 복관작(復官爵)과 공신 책봉을 요청했다. 이에 선조는 어명으로 삭탈한 배삼익의 직첩을 돌려주라고 했지만, 공신 책봉은 허락하지 않았다. 다음 해인 선조 28년(1895년), 배용길은 다시 공신 책봉을 허락해 달라는 두 번째 〈신원소〉를 올렸으나, 역시 선조의 윤허를 얻지 못했다. 이후에도 이 집안에서는 배삼익의 공신 책봉을 위해 계속 노력을 기울였고, 경종 때는 수찬(修撰) 권두경(權斗經, 1654~1725)이 〈광국훈을 추가로 녹훈해 주기를 청하는 계문[請追錄光國勳啓]〉을, 헌종 때는 응교(應敎) 이가순(李家淳, 1768~1844)이 〈관작과 시호 증정 겸 녹훈을 청하는 상소문(請贈爵諡兼錄勳上言)〉을 올려 배삼익의 공신 책봉을 요청했으나 역시 허락을 얻지 못했다.
거의 350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배삼익의 공신 책봉을 위해 노력한 일들이 수포가 되고, 일제강점기를 맞자 배삼익의 후손 배동환은 종계변무에 특별한 공을 세운 자신의 조상 배삼익의 업적을 잊지 않기 위해, 종계변무 활동 기록, 선조 임금의 어찰, 관리들의 상소문, 문인들의 관련 시문을 모아 《임연재선생조천록(臨淵齋先生朝天錄)》을 석판본 2권 1책으로 출간했다.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판본의 형태를 보면, 사주쌍변(四周雙邊) 반곽(半郭)에 크기는 20.2 × 15.3cm이다. 한 면에 세로 20자(字), 가로 10행(行)의 글자가 들어있으며, 상하향2엽(上下向2葉) 화문어미(花紋魚尾)에 전체 면의 크기는 29.5 × 19.5cm이다.
《임연재선생조천록》의 내용을 보면, 권지일(卷之一)에 〈조천일기(朝天日記)〉 〈예부에 올리는 글(呈禮部文)〉, 〈다시 예부에 올리는 글(再呈禮部文)〉, 〈귀국 길에 압록강을 건너서 올린 장계(歸渡再鴨綠江啓)〉가 실려있고, 권지이(卷之二)에 부록으로 〈선조의 어찰(宣祖御札)〉, 〈종계 정정과 망룡의 하사를 축하하는 본조 신료들의 표문(本朝群臣賀宗系釐正兼受欽賜蟒龍衣表〉, 여러 문인들이 배삼익의 사행을 전별한 시 〈조천별장(朝天別章)〉, 배삼익의 아들 배용길이 부친의 신원을 호소한 〈신원소 일(伸寃疏一)〉, 이에 대한 〈이조의 회계(吏曹回啓)〉, 〈복직을 집안 사당에 고유하는 제문(復職祭告家廟文)〉, 〈신원소 이(伸寃疏二)〉, 〈충훈부 회계(忠勳府回啓)〉, 수찬 권두경의 〈광국훈을 추가로 녹훈해 주기를 청하는 계문[請追錄光國勳啓]〉, 응교 이가순의 〈관작과 시호 증정 겸 녹훈을 청하는 상소문(請贈爵諡兼錄勳上言)〉, 〈황조에서 세 가지 물건을 상으로 하사한 일에 대한 기문(皇朝賞賜三物記)〉, 〈三物詩〉 등이 들어 있으며 말미에 권상규(權相圭)의 발문과 후손 배동환의 발문이 실려있다.
《임연재선생조천록》은 당시 배삼익이 종계변무를 위해 헌신한 사적이 담겨 있으므로, 그의 사행 활동의 주요 임무를 확인할 수 있으나, 조천시가 누락되어 있으므로 그의 사행록 번역 저본으로 삼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따라서 이 번역본에서는 《임연재선생문집》의 〈조천록〉과 〈조천시〉를 저본으로 삼고, 임연재선생조천록에서 그의 사행 활동의 핵심을 알려주는 〈예부에 올리는 글〉, 〈다시 예부에 올리는 글〉, 〈귀국 길에 압록강을 건너서 올린 장계〉, 〈선조의 어찰〉, 〈종계 정정과 망룡의 하사를 축하하는 본조 신료들의 표문〉을 뽑아 번역하여 함께 편집했다.
국역 : 김영문(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