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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부터 제2의 삶이 계속 이어진다. 고생 고생해서 실습한 Long Line선(延繩, 주낙선)과는 전연 다른 Trawler(曳引網) 2/O(2등항해사)로서 시작된 것이다. #51 Dong Bang 이다.
299Ton. 강○훈 선장에 최상윤 C/O에 키가 작았던 김원술 C/E, 박종민 1/E가 Key Member로 갔었다. 나는 일본 仙台(센다이)에서의 인수팀에는 가지 않고 남아 나머지 선원구성을 했다. 인수한 선박이 부산이 아닌 묵호에 입항하기에 구성한 선원들을 인솔하여 강원도 묵호항에서 승선했다. Owner(소유주)였던 동방원양(주)이 그기에 기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11월에 시작한 첫 항차는 어떻게 마쳤는지 기록이 없다. 인수 후 한국국적으로 바꾸고 새로운 어구와 작업을 위한 모든 준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본래의 의도와는 달리 냉동이 아닌 냉장을 위해 얼음을 실은 것으로 기억된다. 아무튼 첫 항차는 불난 집에 뭐 처럼 후딱 지나갔다. 뭣이 뭔지도, 겨울의 북태평양 바다가 어떤 것인지도 모른 체 막무가네로 부딪쳤고 무사히 마친 것이다. 모르는 놈이 용감하다더니… . 두 번째 항차부터 다소 제정신을 차린 탓에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이리라. 그런데 이 기간 동안에는 어쩐 일인지 사진이 한 장도 없다. 사진기를 갖고 다니지도 못했지만 실은 그럴 만한 여유도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1970년 12. 11 금.
지금 시각은 02시2분. 한국시간으로는 01시. 한밤중이다. 위치는 위도 북위 46도36.8분 경도 동경 150도 02.01분. 소련령 新知島(시무실섬) 남단을 왼쪽으로 14마일 띄어 두고 있다. 음력 열사흘 달이 희부연 구름 속에 쌓여 그런대로 훤히 수평선을 밝혀주고 있다. 어제까지 격심했던 파도와 강풍이 지금은 잠잠하다. 마치 항해하기 알맞은 날씨다. 앞서서 진행 중이던 972mb짜리 저기압이 서서히 약해져 이동했나 보다. 겨울철 이 지방의 저기압은 무서운 것이다. 또다시 일본 혼슈우 동쪽에서 발생한 2개의 저기압이 서서히 동쪽으로 이동하고 있으나 아직 아무런 영향은 없다. 바로 어제 밤 이 때문에 일정하게 Course(방향)도 잡지 못하고 피항차 Heaving to(파도가 오는 방향과 약 15도 각도로 선박의 진로를 잡고 저속으로 배의 안전을 위해 띄워두는 상태)하던 일이 너무나 생생하게 되새겨 온다. ‘바람은 공기지만 단순한 공기의 흐름이 아니고, 파도는 물이지만 단순한 물이 아니다’하고 한 P.A Lusin씨(초대 훈련소의 유엔관리인으로 스웨덴사람이었다.)의 말이 더욱 절감된다. 물론 지내고 보면 한결 안도의 숨을 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지만 막상 당했을 땐 또 그렇지가 않았다. 고기밥 1초전의 어떤 상황을 상상하지 않을 수 없고 그기에 따른 제 나름의 철학과 어떤 신념이, 믿음이 마음가운데 생기는가 보다. 잔잔해진 수평선을 본다. ‘내가 언제 그랬냐?’ 하는 듯이 조용해진 바다가 한결 밉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바람탓’으로만 미뤄버리는 능청스러움마져 느낀다. 내일로 예정됐던 어장(漁場)도착이 지난밤의 영향으로 완전히 하루가 늦어졌다. 어장에 도착하기까지 날씨가 계속 이래 줬으면 좋겠다. 전번 항차부터 있던 이성식, 김용태, 그리고 새로 승선한 송세권, 장석도 4명을 키잡이와 견시원(Look-out men)으로 하고 오늘의 Mid-Watch(심야당직) 근무중이다. 두 번째 항차로 묵호를 떠난 지 6일을 맞는다.
이 선상의 기록은 평소 내가 남기고 싶었고 또 얼마간이나마 종이와 붓과 가까이서 지내보려는 의도와 함께 내 사랑하는 아내 영아에게도 주고 싶은 것이었다. 그랬던 것이 전 11월 첫 항차분은 기록하지 못했다. 변명이 있을 테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내 게으른 탓이었다. 실상 저번 첫 항차에는 기억해 둘만한 일이 많았다. 내가 직업으로서 처음 가져보는 실무 항해였기도 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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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항차에 대한 기억을 대강 남는 것만 적어보자.
11월 1일 새벽1시 경황없이 부산을 출항했었다. 인간관계에서부터 얘기가 있어야 했을 몇 가지 문제를 안은 체 피차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모두 성격이 무거운 탓이리라. 11일 첫 투망이 시작됐었다. 그로부터 16일간, 그야말로 고전이였다. 우선 경험자가 적은 것이 첫 번째 Handicap이였다. 멀미로 결국 ‘어로장’과 ‘항해장’이란 별명이 붙고 낙오돼 버린 고광수와 실항사 하 군도 좋은 반성의 자료가 된다.
Screw(추진기)에 어망이 감긴 사고는 거의 절망적인 타격을 준 사건이기도 했다. 가변 Pitch Propeller식*인 선박인데, Bridge(선교) 계기판이 지시하는 Screw와 실지 각도가 1도 정도 차이가 남으로, 선교의 계기가 0도일 때 실지는 1도. 즉 선체가 뒤로 후진한다는 사실을 몰랐었기에 양망하고 있는 중에 0도에 맞춘 것이 실지는 선체가 후진하여 결국 선미에 달려 있던 어망이 프로펠러에 걸리고 만 사고였다.
항해중인 선박으로서 스쿠류에 이물질이 걸린다는 것은 치명적인 사고이며 사건이다. 요지부동이다. 그냥 물결치는 데로 흘러갈 뿐이다. 이대로 둔다면. 자동차로 치면 네 바퀴가 부러진 것이고, 사람은 두 다리가 잘린 것과 같은 상황이다.
만약에 그것이 해결되지 못했을 경우 내 자신도 선박생활을 포기하고 다시 육상으로 Come back할 마음을 가졌었다. 아니 그 이전에 북녘 바다에서 모두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눈바람도 차가웠고, 해수(海水)는 영하 2도로 더욱 차갑게 속살을 파고들었다. 무심한 갈매기는 또 어찌 그리 많이 모여들었나. 그나마 그날 밤 파도가 적었다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신의 가호가 바로 이런 것이리라.
하도 그 인상이 험악해 처음 승선시키기를 꺼렸었지만, 다행히 잠수(潛水)경험이 있었던 김용태* 군의 생명을 건 잠수활동과 성과는 결국 그를 본선의 지보적 존재로 만들었지만 쾌거였고, 우리 모두의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날 밤의 고생은 잊을 수 없는 것이다.
몇 개조로 나뉘어 물을 끓이고, 칼을 연속 갈면서 바다 속과 연결된 줄을 잡고 당겼다 늘였다 하며 조절을 했다. 그 줄은 바로 김용태 한 사람을 위한 줄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의 생명줄인 것이었다. 콧물과 눈물과 눈(雪)물이 뒤섞이어 앞이 보이질 않았다. 바닷물 수온이 낮아 3분 이상 잠수하지 못했기에 작업시간 보다 들어갔다 나왔다 하는 시간이 더 많이 걸렸다. 그래도 해냈다.
마지막 남은 Wire Rope 한 가닥은 쇠톱으로 반쯤 자른 후에 갑판위의 Winch(권양기)로 양쪽에서 잡아당기기로 했다. 그 순간의 긴장감은 정말 간절한 기구였다. 툭하고 쇠줄이 터지는 소리와 더불어 터진 줄 부스러기가 올라 왔을 때는 누구나 와! 하는 함성이 터졌다. 바로 살았다는 절규였다. 일이 끝났음을 보고 받고 ‘정말 다 됐나?’ 하며 방문을 나서던 강선장의 얼굴은 환희에 빛났다. 그래서 한 고비를 넘긴 것이다.
*가변 Pitch Propeller : 추진기인 프로펠러 자체의 각도를 조정함으로 선속을 가감하는 방식. 일반적으로는 프로펠러는 고정이나 회전속도로 선속을 조정함.
*김용태 : 고향이 포항으로 내가 이력서를 보고 면담 한 후 채용한 사람이다. 인상이 좋지는 않았지만 심성이 무던하고 성실해 보였던 것이 적중했다.
Radar(레이더)의 고장 또한 분명히 항해자의 눈을 빼갔다. 여기서 또 한번 Engine Part와의 관계를 생각치 않을 수 없었다. 선내 전 선원은 선장을 중심으로 그야말로 일사불란한 지도체계와 통솔권이 확립되어야 한다. 두 Radar의 고장은 결국 어획부진의 요인이 되었고 귀항 길의 악전고투를 가져오게 하였다. 또 취급자들의 각성도 필요하다. 남용이라고 할까 계기를 아끼고 설비를 다루는 정성어린 마음들이 절실히 요구된다.
그기다 정봉두(鄭奉斗)와 임금맥(林今脈) 두 사람의 작업 중 중상 사고도 아찔한 순간이었다. 정봉두씨는 선미 왼쪽의 육중한 Guide Roller와 선체 사이에 얼굴이 끼어들었던 것이다. 두꺼운 방한모를 쓰지 않았드라면 즉사했을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했다. 완전히 기절상태였다. 귀와 코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숨을 쉰다는 것만으로 살아있음을 알 정도였다.
입원을 시켜두고 나왔지만 지금쯤 완전히 회복이 됐는지 모르겠다. Mr. 정이 다치던 날 또 한번 마지막 결심을 했었다. 그의 생명을 잃지 않은 것이 다행한 일이라고 말한 그 자신과 더불어 충심으로 그만한 것을 감사히 여긴다. 선내 의무 담당은 2등항해사인 내 담당이었음으로 더욱 그랬다.
그 원인을 구체적으로 규명하기는 어렵지만 서로가 각자의 책임에 완전무결에 가까우리 만큼 충실히 이행해야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서로가 갖는 연관성은 바로 하나같이 맞아야 한다. Bridge의 판단과 Order, Winch(권양기) 취급자와 밑에서 일하는 3자의 호흡이 맞다는 것은 또한 선원이면서도 필연적으로 맺어져야 하는 인간관계. 두터운 믿음과 융화가 필요했다. Mr.정의 턱뼈와 왼쪽 귀가 다소 시일이 걸리는 한이 있어도 정상을 회복할 수 있고, 임 씨의 타박상이 내상(內傷)을 수반하지 않고 완치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설상가상으로 3일간의 저기압 피항은 전 선원의 몸과 마음을 피로에 젖게 했으며 어획부진에 대한 원인규명에도 분명한 대책이 요청된다. 그 원인을 대강 잡아보면,
1. 어구의 성능 파악이 분명치 못했고, 특히 어구와 배의 성능과의 관계가 불명확 한 점.
2. Otter Board(전개판)의 개선. (구식)
3. Radar의 고장으로 인한 정확한 위치를 잡지 못한 점.
4. 선원구성 후 처음 갖는 작업으로 인한 호흡의 불일치와 그로 인한 부상 때문에 생긴 인원부족.
5. 최고 책임자의 어로작업에 대한 기본방침의 불확실한 점.
6. 어구 및 장비의 점검과 정비가 불완전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으리라.
이 가운데서 무엇인가 찾아내고 알아내고 개선시켜야 하고 발견해야할 문제점들이 있다.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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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게 개인다. 별이 총총 빛나고 달빛이 수평선에 내려앉았다. 기분 좋을 정도로 알맞게 Swell(너울)이 있고 Pitching을 하면서 코스 50도 Nothing Port*하면서 북상중이다. 선속은 10Kont(놋트). 모래 오전쯤은 첫 투망을 할 수 있을 거다.
묵호항에서 보낸 5일은 상상과는 달리 너무나 Dirty 했었다. 마을 자체가 그랬다. 입항 이틀 전 동해에서 겪은 모진 한랭성고기압의 영향은 北洋에서 받은 저기압의 인상을 무색하게 했으며 2일간의 지친 심신을 묵호항 땅 위에 던질 때 살아왔다는 안도감을 더욱 절실하게 했었다. 석탄적하 때문에 왼 시가가 검정 속에 쌓인 묵호는 그야말로 불결하고 무질서한 곳이었다. 하역 중 어판장(漁販場)의 무질서. 바람에 흩어지는 석탄가루의 횡포에 질렸다. 하루라도 더 머물고 싶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나 40여일 만에 담가보는 목욕의 기분과 길어진 수염을 깎고 난 이발의 상쾌함은 순간적이나마 좋은 것이었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이 가족들이였다. 워낙 경황없이 떠난 탓이 였으니 아내와 귀여운 아가의 사진 한 장 지니지 못했던 자신의 불실을 무척 후회했었다. C/O 최상윤과 나를 제외한 전 사관들의 가족들이 부산에서 올라 왔었다. 밀렸던 세탁을 부탁할 수 있었던 것은 고마운 일이었다. 떠난 지 불과 한 달인데 왜 그리 오랜 느낌이 드는지 모르겠다. 혼자서 깊은 상념에 빠져 훌쩍이기도 했다. 공연한 짓이였을지 모르지만 그때만은 울적했고 정착을 갖지 못한 내 자신의 신세가 너무 서글펐는지도 모른다.
상륙비 만원을 죄다 술값으로 낭비했고 빌린 2,500원으로 대강 이번 항해의 준비를 마쳤다. 지금 양말도 뒷꿈치가 떨어진 것을 빨아서 신고 있다. 새것을 아끼기 위해서다. 생각해보면 참 어처구니 없는 놈이다. 영아에게 ‘여자들은 반찬값 1-2원을 흥정하면서 화장품 1-2백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핀잔을 준 일이 양심에 거리낀다. 정말 자각하고 각성해야 할 내 자신의 너무나 절실한 현실적 자세가 아닐 수 없다.
6명이 자진 하선했다. Capt.가 짐스러워 하던 사람들이다. 대신 7명이 왔다. 보다 나은 성과를 기대해 볼 따름이다. 사람이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반드시 정(正)과 진(進)에서만은 아니다. 부정과 후(後)에서도 얼마든지 배우고 얻을 수 있는 점이 많다. 이것을 얻고 줍고 찾아가면서 내 것으로 하는 것이 내 생활의 방침중의 하나이니까. 지난날 진달래호에서도 그랬듯이 - .
* Nothing Port : 정해진 코스보다 왼쪽(port)으로 가서는 안 된다는 오더.
70년 12월 11일 금요일
같은 날이다,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오고 새벽이 다하면 해가 뜨고 낮이 되고. 너무나 평범한 사실이지만 하루하루의 시간은 참 빠르게 간다. Bridge의 항해 사관 당직을 C/O와 함께 2교대를 하니까 너무나 바쁘다. 어망 설계도 한 장 제대로 그릴 시간과 보고 싶은, 또 보아야 할 책 한 권 읽을 만한 여유가 생기질 않는다. 하기야 잠을 줄인다면 전연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기껏해야 3시간, 2시간씩 토끼잠을 자야하는 잠이기에 그 시간을 놓치면 8시간 계속 근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대로 만들고 쪼개면 생긴다는 시간을 가급적 유효하게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의 정오위치는 북위 47도 45분. 동경 153도 26분이다. Kulil열도의 松輪島(마투아섬)를 좌현으로 17마일로 항과 중이다. 지금까지 항해 총시간은 139시간, Nautical Mile(항해거리)로는 1289마일. 앞으로 11시간이 지나면 Fishing Ground(어장)에 도착. Shooting Net(투망)할 수 있다. 계속 좋은 날씨로 호조를 보이고 있다. 조업이 끝나는 날까지 이같이 좋은 날씨가 계속되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은 진실로 간절하다만 이 계절에 기대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옆으로 보이는 해발 1485m의 송륜도는 왼통 백설로 뒤덮혀 있다. 영화 Doctor Zibago에서 본 아름다운 설경이 연상된다.
이번 항해에는 초반부터 약을 찾는 선원이 많다. 의외로 T.M(테러마이신)을 요구한다. 대강 짐작은 간다. 묵호항 그 유명한 ‘보지골(?)’ 뻘 밭을 장화(?)도 없이 돌아다녔지 않은가. 그렇지 않길 바라며 약을 준다. 역시 무서운 일임은 틀림없다. 감기환자도 부쩍는다.
선실 내외와 외기의 기온차가 심하므로 옷과 잠자리에 늘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비교적 이번은 저번보다 견디기가 쉽다. 식사도 순조롭다. 비타민도 샀다. 잊지 말고 먹어야지. 전번 목욕 시 체중이 5kg이나 줄었다. 손익 어떤 결과인지는 모르겠으나 가급적 약을 피하고 밥을 정상적으로 잘 먹는 것을 내 생활의 Moto로 하고 있으니까. 다행이랄까 이번의 김치맛이 좋은 편이라 괜찮다. 하기야 그만큼 애를 섰으니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뱃놈에겐 김치가 여자와 맞먹을 만큼 귀하게 여기니까. 매 출항 때마다 특히 신경을 써야 할 것 같다.
아울러 조리수를 바꿨다. Mr.조를 기관실로 보내고 Mr.황을 택했다. Mr.조는 조리사를 처음 하는 사람이다. 그의 카레 요리는 특미(?)였다. 한 봉지가 25인용인 카레를 다섯 봉지나 넣었으니. 하루 종일 입과 목구멍에서 카레 냄새만 난 날이 있었다.
기관장과 선장 간의 합의를 그대로 실행 모양이다. 잘하고 못하고 보담 우선 전 선원들의 주부(主婦)로서 성실한 태도와 성의가 필요하다. 선장의 사전 계획도 재고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 선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쏟는 신경은 육상 어느 직장이나 사업에서도 볼 수 없는 철저한 면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서서히 어장도착과 더불어 만반의 준비가 이루어져 간다. 갑판장의 위치와 역량이 더없이 중요시 된다.
당직시 개개인의 지난 과거 얘기를 듣는 것은 무척 재미있는 일이며 그 사람을 파악하는데 좋은 자료가 된다. 군대시절 상관의 가정부를 지냈다는 Mr.장의 얘기. 그 당시 육군사관학교에서 클라리넷을 불렀는데 즉시 그 길로 갔더라면 지금 이 고생은 않으리라는 Mr.조의 한스런 얘기. 순진한 총각이 파월가족의 유부녀에게 농락을 당했다고 통분하는, 그러면서도 좋다고 희희낙낙하는 Mr.김의 엉큼한 얘기. 하룻밤에 10여만원어치 술을 마시고 달러 빚으로 갚아준 일이 있다는 강화호 시절의 묵호항을 그리운 듯 얘기하는 Mr.강. 모두가 꾸밈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결국 귀착된 현실은 너나 나나 북양선의 한 뱃사람으로서 지금 순간도 모진 바람과 파도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결론은 같다. 어서 벌어서 뱃생활을 그만둔다는 것이다. 자! 과연 누가 가장 먼저 그 뜻을 이룰 것인가? 그 시기가 이르면 이를수록 그는 그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다고 일단 평가해주기로 하고 두고 볼 일이다.
101행복호 정진천 군(FAO 동기생). 505호 구한명 선장(동기생인 구한진군의 형님) 및 항해사에게 전보를 치다 건투와 대어를 빌면서 -.
20:00시 부여된 임무를 마친다는 것이 홀가분하다는 것은 누구나 느낄 수 있는 일이리라. 또 한 차례의 당직임무를 무사히 끝냈다. 내일부터는 새로운 격전이 전개된다. 조용히 전장(戰場)에 잠입하는 게리라들 마냥 서서히 한 발 한 발 격전지에 접근하고 있다. 좀 더 달이 밝았으면 좋으련만-. 지금쯤 영아는 뭘 할까?
정화와 더불어 아빠 얘길 나누고 있을까? 못난 아빠라고 하겠지. 정화의 웃음 머금은 모습이 너무 보고 싶다. 영아의 포근한 품속은 더욱 그립다. 당신과 나. 7년이란 긴 시류가 우리들의 연륜을 쌓았고 정을 묶어 왔다. 예나 지금이나 내가 당신에게 줄 수 있는 사랑의 농도는 변함이 없다. 오히려 깊이와 무게가 더했다. 헌데 이렇게 멀리서 애타게 불러야 하는 것이 무슨 놈의 사연인지 모르겠다. 생각이 깊어질수록 마음이 맑아지질 못한다. 다만 지금의 대가를 정확히 계산해 받는 날이 우리들에겐 있을 것이다. 있다. 그때까지 내 노력과 정력을 바다 위에 던져보자. 마지막 잘 수 있는 앞으로의 4시간이다. 다시 잠을 깰 때에는 새로운 임무와 부딪칠 것이다. 대어를 빌며 자자.
70. 12. 14(월)
20시 동경 155도12. 북위 49도21. Onekotan 섬을 약 16마일 앞두고 Heaving to*하고 있다. 오전 10시부터 948mb짜리 대형 저기압을 피항중이다.
Strong Breeze(강풍)이다. 파고가 7~8m나 된다. 이제는 그래도 마음이 안정된다. 차츰 파고나 황천에 익숙해진다는 것이겠지. 바람이 울고 바다가 울고 배도 울부짓는다. 대자연의 힘도 크고 웅대하지만 인간의 힘과 재주도 위대하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서너 척의 같은 작업선이 함께 피항중이다. 이런 곳에 반겨줄 피항지가 있고 깜빡이는 등대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등대, 그것은 분명히 바다의 이정표이고 뱃사람들의 마음의 등불이다. 정진천군의 101행복호도, 용길형의 102행복호도 함께 이 저기압을 피해 황천항해를 계속하고 있을 거다. 기압이 차츰 상승한다. 어서 회복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처음으로 대양에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다소 마음의 불안을 느끼는가 보다.
12일 01시에 첫 투망을 했다. 13일 오전에는 어획이 좋았다. 그러나 줄 곳 부진한 편이다. 어망이 두 번이나 상했다. 꽤 오랜시간 눈보라 속에서 고쳤다. 계절 탓인지 눈이 잦다. 기온 자체보다 수온과 바람이 찹고 강하다. Bridge에서 내려다보는, Deck 위의 선원들이 한결 믿음직스러운 반면 처량해 보인다. 피차 같은 입장이자만 저토록 따가운 고생을 과연 누가 알아 줄 것인가. 저렇게 해서 버는 대가가 얼마만큼 귀중하다는 것을 가족들이 알아줄 것인지. 삶의 경쟁이 치열하고 억척스럽게 여기 망망한 대해(大海) 선상에서도 느낀다.
* Heaving to : 풍랑 때문에 더 이상 항해가 불가능 할때, 진행방향을 밀려오는 파도와 약 15도 각도로 맞추고 선박이 파곡에 빠지지 않도록 조선하며 기다리는 방식.
기업이나 사업을 운영하는데 일반적으로 3가지 요소가 있다. 그 분야의 기술에 대한 지식과 기능과 조직이다. 거기다 그 조직을 운영하는 운영의 묘. 즉 통솔, 통제가 절실해야 한다. 현재 우리 배의 구조를 살펴본다. 지식, 기능은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보자. 조직면에서도 그만하면 괜찮은 것 같다. 헌데 그 조직을 운영하고 이용하는데 다소 이의가 있다. 첫째 Bridge와 Eng. Rm.(기관실)과의 상호연락이 불확실하다.
둘째, 일이 체계적이지 못하다. 하나의 일을 두고 Brain들이나 Master가 분명히 목표나 방법이 제시되고 지시되어야 한다. 어획물 처리상의 실수가 있었다. 한 일의 반복이 잦으면 반드시 불신과 불만이 된다. 더욱이 고된 해상의 작업에 있어서랴.
셋째, 인적 자원을 적재적소에 배치, 활용하는 문제다. 이 배는 개개인의 능력에 따라 대가를 주는 성질의 것이다. 가르치고 키우는 Training Ship(훈련선)이 아니다. 그렇다면 능력과 소질대로 배치시켜야 한다. 도중에서 능력인정이 안 되면 즉시 재배치를 해야 한다. 그것이 곧 자신을 위하고 전체를 위하는 것이다.
넷째, Master의 주체성과 사전 계획성이다. 어업이 그저 투망해서 양망만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학과 같은 정밀성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정확한 측정, 올바른 코스, 위치, 시간 등이 바로 ‘하나 더하기 하나는 둘’이라는 의식이 되어야 한다. 대강의 수치가 아니다. 물론 필요한 때도 있다. 그러나 사전에 다음 행동의 코스와 위치와 방법이 서 있어야 한다. 주위의 사정과 기상, 해상 관계 등 제반 여건이 여의치 못한 수가 태반이다. 그렇지만 그것을 최대한 미리 감안해서 계획이 서 있어야 하고 그 원칙에 가까워야 한다.
잠이 부족하다. 우선 필요한 게 잠이다. 식사는 잘한다. 저번 항해에는 욕심보다 먹어야 한다는 의무적인 의식 때문에 먹었지만 이번에는 저절로 식욕이 생긴다. 군것질도 꽤 하고 싶다. 시원한 사과, 채소, 특히 동치미 김치가 무척 먹고 싶다. 입에 군침이 돌다 넘어 간다. 시원한 김치 좀 담긴 했는지 모르겠다. 어제 101호 정진천군과 Voice(무선전화)로 교신하다. 그는 FAO 동기생이고 나이는 적지만 수산업계에서는 나보다 선배다. 입소 전 이미 승선경력을 가지고 있어 면허장 취득과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을 위해 들어온 친구다.
이번엔 그도 어획이 부진한 모양이다. 대어를 빈다. 용길 형 한테서 안부가 왔다. 내일이라도 Voice가되면 연락하자. 집 소식 궁금타. 큰집이랑 모두-. 내가 묵호간다는 것을 걱정하더란 소식을 듣다. 모두들 염려해 주는 덕분이다. 어서 내일부터라도 어획이 좋았으면 한다. 고기뱃놈은 하나뿐이다. 어떻게 하거나 단위시간에 고기만 많이 잡으면 되니까 -.
12월 15일 (화) 04:00시
지금 땅위엔 평안과 고요와 깊은 안식이 깃들어 있을 시간이다. 오직 바다 위에서만 심한 바람과 높은 파도와 매서운 눈보라와 다툴 뿐이다. Onekotan섬이 바로 눈앞에 왔을 만큼 육박했다. 배들이 있었다. Radar의 Scanner에도 눈과 얼음이 겹쳐 붙었고 Deck 위에도 미끄러워 다니지 못할 정도이다. 정식으로 하면 소련의 영해침범(領海侵犯)이다. 지금이라도 Coast guard(경비정)가 나와서 납치해간다면 영락없이 당하는 거다. 그러나 우리뿐이 아니다. 우리보다 먼저 10여척의 같은 배가 제각기 집결상태로 모여들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다. 약속한 것도 아니다. 거친 바다 위에 불빛만 보아도 반갑고 위안이 되는 것이리라. 가끔 달빛에 백설이 뒤덮인 섬의 한 부분이 선명히 보인다. 날이 세면 절경이 펼쳐지리라. 이 섬의 서쪽 끝에는 해발 380미터의 큰 호수가 있고 그 호수 한가운데 다시 1380미터 높이의 산이 솟아있는 섬이다. 이런 섬이 내 것이라면 멋진 관광지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사상과 이념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런 곳이라면 같은 뱃놈의 입장에서라도 인도적인 면에서 피차 피항할 수 있는 길을 어떤 세계적인 기구를 통해 열렸으면 좋겠다. 파도에 시달리는 것이 몹시도 피곤하다. 배의 Pitching이 심하니 글씨가 쓰여지질 않는다. 또 한숨 자야한다. 내일을 위한 힘을 장만하기 위해서 -.
Capt. Room에서 히터의 취급 잘못으로 잠간 화재소동이 있었다. 진작 조처나 주의가 있어야 했던 일이다. 선박에서 가장 무서운 것은 화재이다. 천만다행이다. 겨우 손바닥만큼이나 탔는데도 그 연기하며 냄새는 지독하다. 역시 화학섬유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조타실에 난로를 끄기로 했다. 춥다. 분위기조차 추우면 안 되는데 -.
12월 15일(화) 13:35시
어제 오전 10시부터 지금까지 계속 저기압을 피항중이다. 위도 49도30분까지 올라왔다. 새벽2부터 Onekotan섬 약 2마일까지 접근, 표류했다가 다시 기상이 악화, Onekotan섬 黑石灣(흑석만)까지 들어왔다. 주위엔 일본선들도 많다. 모두 U•P의 Flag를 달았다. ‘본선 긴급상황이 발생. 지급 입항허가를 원한다’는 뜻이다. 일본은 소련과 정치적 수교관계가 성립되어 있으니 별개지만 현재 한국선으로선 처음인데 약간 불안하기도 하다. 멀리서 본 섬의 자세가 그야말로 웅장하다. 가파르게 높은 산, 뒤덮힌 눈, 사람이 살만한 곳 같기도 한데 전혀 보이지 않는다. 간혹 심한 눈(아니 차라리 얼음 덩어리라고 하는 게 낫겠다.)과 함께 폭풍이 계속 분다. 灣內(만의안)이므로 파고는 낮다. 28시간이란 귀중한 시간을 허비했다. ‘시간이 돈’이란 격언이 바로 우리들에게 한 말 같이 시간이 중요한데 몰라주는 대자연의 현상에 안타까울 뿐이다.
물개(물범이 맞다고들 한다)와 갈매기는 계속 배 주위를 맴돈다. 배에서 나오는 찌꺼기 들이 곧 그들의 먹이가 되는가 보다. 그저께는 큰 물개가 산채로 그물에 걸려 올라와 한때 작업 중지까지의 소동이 있었다. 스스로 기어내려 가긴 했지만 참 영리한 동물이다. 떡 벌어진 어께, 두툼한 목덜미에 시원스런 머리와 마치 점잖은 영웅의 타입이다. 울부짖음 또한 우렁차다.
대변이 일정치 않고 변비의 현상이 계속 있다. 약은 있지만 먹기 싫다기 보담 먹지 말아야 한다. 모처럼 세수와 세면과 양치질을 하다. 역시 개운하고 맑은 기분이다.
벌써 12월 15일. 묵호항을 떠난 지 10일이다. 참 빠르다고 느껴진다. 앞으로 15일 이내에 입항해야 할텐데. 한 달만 있으면 귀여운 정화의 첫돌이다. 그때 있어주지 못하면 어쩐다. 몹시 서운하겠군. 역시 부족한 아빠고 남편일 수밖에 없군. 가끔 뱃놈들 간에 얘기지만 어제 밤 Mid Watch 시간에도 얘기하며 웃었다. Wife들에 대한 얘기다. ‘혹시 바람이나 피우지 않을까?’ 하는 식이다. 서로 놀려가며 농담을 주고 받지만 막상 본인 자신들의 은근한 우려들 같은 느낌이 든다. Mr. 장의 표정이 우울하군. 수심이 있을까?
15일 L.M.T(현지시각) 21:20
계속 강풍 속에 피항(避航) 중이다. 섬 가까이라 파도는 약간 숙어진 감이다. 연 이틀째 계속이다. 이젠 지나가고 회복될 시간이 넘었는데. 일본선들도 같이 피항중이다. 101와 102 행복호는 현장에서 Heaving to 하는 모양이다. 한국의 연안에서 여객선이 기관고장으로 침몰, 1명 생존 300여명이 익사했다는 뉴스다. 쇼킹하군. 해녀 1명이 표류 중 구출됐단다. 같은 회사 동방53호는 아직 부산 입항을 못했다니 그쪽에도 상당히 기상이 악화된 모양이군. 집에서 무척이나 걱정하겠다.
내일은 전보 한 장 쳐주어야겠다. 황천 피항중 기관 고장은 위험천만이다. 기관정비는 곧 생명과 직결됨을 기관부는 명심해야 할 일이다. 내일쯤은 작업장으로 나갈 수 있어야 할텐데 -.
12월 16일(수) 16:00
연3일간 계속 저속으로 피항중이다. 역시 위치는 Onekotan섬 만안이다. 육지를 3마일 거리에 두고 있다. 가까이서 보는 섬의 모습이 이상하다. 지질학적으로 얘기할 수는 없으나 대강 갱년기쯤 되는 침식이 되고 있는 땅이다. 해안선은 가파른 절벽이며 그 위는 평평한 평지가 있기도 하고 험한 산이 서 있기도 하다. 생물이라고는 거의 없어 뵈리만큼 침울하다. 가끔 산허리에서 일어나는 눈보라의 희부연 모습이 보인다.
차츰 표정들이 우울해진다. 차라리 파도 밭에서 작업하는 게 낫겠다. 3일간 잠도 많이 잤다. 다음 예비어망도 준비했다. 해상에서 할 일 없이 무료하니 시간을 보내는 만큼 지루한 것이 없을 것 같다. 우울한 표정들의 뒤안에는 각자의 환경과 여건과 처지가 한데 어울려 각가지 착찹한 심정들이 되어있으리라. 어쩌면 절망적인 생각에 빠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직 그럴 필요는 없다. 남은 시간 유유사정이 허락하는 한도까지의 시간이면 충분히 대어만선의 기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그냥 빈 배로 귀항한들 어쩌겠나. 해상조건의 악화는 비단 우리만의 영향이 아니다. 또한 이런 현상이 일년 내내 계속하는 것도 아니다. 마침 지금이 저기압의 시기인 한 겨울이다. 무엇보다 안전을, 그리고 어획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앞으로 71년 2월까지는 계속 기상이 나쁘다고 보아야한다. 그러면 그 다음 하절기가 또 있지 않느냐. 그때는 좀 더 북상해서 황금의 어장인 Bearing Sea까지 우리의 손이, 힘이 뻗어야 할 것이 아닌가.
소련 상선 한 척이 지나간다. Derrick와 Deck에 붙은 얼음을 보니 상당히 고생한 모양이다. Kamchatka(캄차카)로 가는 모양. Container와 자동차를 실었다.
일본선들도, 우리도 왼통 배가 얼어붙었다. 가끔 심한 눈과 동시에 강풍이 일어난다. 기압의 중심도 꽤 이동한 모양인데 계속 기압계는 980mb을 가리킨다. 슬그머니 짜증도 난다. 다소 풍파가 심해도 조업에 임하자고 하고 싶다. 그러나 실은 그렇다. 승산이 적으면 공연히 헛일로서 선원들을 피로하게 하고 사기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선장의 표정도 사뭇 침통하다. 한 통 사온 인삼차를 헐었다. 12개 들었군. 얍삽한 놈들! 일등항해사, 일등기관사와 더불어 한잔 나누며 ‘너무 상심말자’고 얘기 나누다.
성급히 서둘러 되는 일이 없다는데 내 자신도 무척 성이 급한 편이라 하겠다. 이 배를 탈 때는 금년이면 2항차로 보고 왠만하면 지고 있는 빚은 갚으리라 했다. 역시 성급한 생각이었나 보다. 한꺼번에 이루어 보려는 일확천금의 뜻에 다소 개조가 있어야겠나 보다. 늘 충고해 주던 영아가 고맙다고 느껴진다. 그러나 앞으로 일년간을 다시 준비기간으로 하고 차근히 착실한 자가발전을 이룩해 보자. 생활도 다소 안정시키고 내 자신의 길과 뜻도 영글 수 있도록 -.
저기 보이는 불모일지도 모르는 동결된 땅이지만 디뎌 보고 싶다. 그리고는 외쳐보고 싶다. 운명의 신에게! 좀 더 밝은 현실을 열어 달라고. 또 힘끗 달리고 뛰어도 보고 싶다. 지나날 교단 시절에 가끔 가져보았던 직원체육일의 행사나 친구들간의 운동시합이 그리워진다. 너무나 밀폐된 좁은 선실, 그나마 유동적으로 불규칙적으로 움직이는 여기서랴. 너무나 몸의 운동량이 적다. 차라리 선원들과 같이 온몸으로 일하는 작업이 필요하고 또 하고 싶다.
20th. Dec. 70.(일) L.M.T 15:40
또 며칠이 지났다. 저기압이 지난 후의 날씨가 맑았다고 하지만 계속 7-8m의 바람과 눈이 온다. 무엇보다 눈이 많이 내리는 데도 질색이다. 예전엔 눈을 두고 퍽 Romantic한 사연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젠 그게 아니다. 바로 우리 생활에 지대한 영향이 있다. 조타실 유리에도 겹겹이 바닷물이 얼어붙는다. 갑판에도 두 겹 세 겹, 높은 곳엔 고드름까지 달렸다. 왠일인지 그제부터 기온과 해수온도가 강한 현상을 보인다. 수온이 1도. 기온이 영하 7-8도. 그러니까 갑판상의 온도는 영하 15도는 될 것이다. 바람을 등지고 일하는 선원들의 우의 위에 하얀 눈이 쌓인다. 16일 오후 늦게 다시 시작한 조업성적이 부진하다. 역시 타선들도 같은 모양이다. 수온을 따라 어군의 이동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언짢은 것이 어망을 놓은 정신자세다. 좀 더 독자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을 택하라고 하고 싶다. 어장의 선택과 투망하는 곳의 위치가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부질없이 타선의, 특히 일본선의 맹종은 보기 딱할 정도다. 그래서 어획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해서 좋을 리가 만무하다. 선장에 대한 인간상과 직업인으로서의 내가 지금까지 기대해오던 것과는 차이가 있다. 더우기 처음이니까 Pioneer적인 입장에서 자기화 시킬 생각을 해야 할 것인데. 또한 번복은 왜 그리 심하며 무얼보고 장소를 택하는지? 조업일지에 하루 중 한 번도 제대로 예망을 못하고 중간에서 양망해버리고 만 것을 보면 얼마만큼 무계획적이었음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첫째 위치(Position), 둘째 코스(Course), 셋째 수심(Deep)과 저질(Bottom) 이 세 가지 요소를 입으로는 외면서도 다만 추측으로 행한다는 것은 너무나 아이러니칼하고 어찌보면 이상해지기도 한다. 하기야 무엇인가 머릿속에 그리고 생각하고 한 마리라도 더 잡아야 한다는 의욕에서 그러리라고 보지만-. 연3일간 가히 공치다 시피 하고 말았다. 이번 항해에도 만선의 꿈이 깨지고 마는가 보다. 권태와 실증이 나려한다. 고기잡이도 일종의 생과 사의 투쟁이다. 고기자체도 생명을 가진 놈들인데 잡히려 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어제 여러 곳 친구들과 영아, 형님 고모부께 성탄절 연하전보를 띄우다. 아마 벌써부터 거리엔 X-mas Carol이 넘치고 Mood가 가득하리라. 금년도 10여일 남긴다. 그간 과연 내가 무얼 했는가? 사회인으로서 개인으로서 또한 한 가정의 장으로서 아빠로서 좀 더 무엇인가 가슴 무겁게 부딪치는 게 있다. 이달 말경이면 엄마 제삿날이다. 모두 모이겠지. 그때까지 귀항하기는 텃고 마음속으로나마 모셔야지.
우연히 C/O의 설합 속에서 Nude Photo를 보고 모처럼 Sex를 생각했다. 2/E. No.1과 더불어 보고 웃고 넘기긴 했지만-. 일인(日人)들의 Sexual한 모습들이 무척 농도가 짙다. 바깥엔 센 파도가 흰머리를 들고 부르짖고 바람 속에 눈보라가 휘날려도 Bridge속의 훈훈한 난로 곁에서 조용히 흐르는 부드러운 경음악의 섹스폰 소리 또한 이색적인 풍경이다. 음악이 생활의 Vitamin제 역할을 한다는 것이 잘 느껴진다. 강풍과 파도와 눈보라와 얼음, 그 속에 끼인 음악이 조화가 되지 않을 것 같아도 그런대로 협화가 되는 것 같다. 자연과 인공의 좋은 대조라고도 하겠지.
Mr.강이 오늘 손을 다쳤다. 칼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왼손을 찌른 모양이다. 장갑을 두겹이나 뚫고도 깊은 상처를 입었다. 다친 자신이야 말 할 것도 없지만 선내 전체로 봐서도 영향이 크다. 그가 현재 차지하고 있는 위치의 비중을 생각하면 마치 중요한 계기나 기기가 고장인 것 같은 것이다. 속히, 쉬이 완쾌했으면 좋겠고 역시 성의를 다해서 치료해 줘야겠다.
의료기구나 의학에 관한 상식이 좀 더 필요하다. 틈나는 데로 책을 구해서 읽어두어야 하다. ‘완전무결’한 것이 곧 선박이 물 위에 떠 있을 때의 상태라고 할 수 있어야 한다.
조리사 Mr.황을 통해 선원들의 분위기를 알아본다. 별로 부족한 것은 없단다. 없는 것이 아니라 않겠지, 새로 온 사람들의 식성이 무지하게 좋단다. 또 같은 선원끼리지만 다소 예의가 있었으면 좋겠단다. 그렇겠지 산골 놈이 평소 구경조차 하기 힘든 세끼 더운 쌀밥에 싱싱한 생선반찬이니 오죽이나 맛이 있겠나. 더구나 배를 처음 타는 사람들이 선내 생활의 예의를 알 수 있겠나. 우선 갑판장의 지도역량에 맡겨 둘 수밖에 없지만 언젠가는 얘기해야 할이다. 영양관리도 그만하면 괜찮겠다. 이번엔 특히 멀미하는 사람도 없고 제대로 잘 먹으니까. 앞으로도 계속 부상자가 생기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은 다소 생기가 난다. 고기가 조금 낫게 잡히기 때문이다. 어제는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결국 선장은 내려가고 C/O와 더불어 야간항해를 한다. 격심한 눈 때문에 잠시 작업을 중지하고 저속 노보리(のぼり : 히빙투의 일본어)를 하다. 어획부진이 원인은 분석해야겠지만 먼저 주체성 없는 어장선정이 되고 보니 타의 이유는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런대로 귀중한 하루는 빠짐없이 24시간 흘러갔던 것이다.
준비한 간식들이 다 되었다. 과자. 곶감, 사과, 드링크... . 육상에서는 평소 잘 먹지도 않던 것들이 이곳에서는 귀중한 간식이 된다. 통신장의 곶감, Mr.신의 사과 모두 다 뺏어 먹고 오늘은 선장의 곶감까지 손이 미친다. 왠지 먹고 싶은 것이 많은 게 탈이다. 지난날 진달래 시절, 깻잎 한 장을 두고 절친하던 이광환 군과 김판개 군이 싸우던 일이 생각난다. 선상(船上)이 아니면 보지 못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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