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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17 :
Panama Canal 통과. 오랜만이다. 언제봐도 슬기롭게 만든 Lock다. 백년 가까운 역사에도 여전히 큰 수리없이 사용하는 그 놈들의 지혜가 과연 세계의 초대국을 유지하고 있지 않은가. 사흘이 멀다 하고 팠다 하면 곧 묻어대는 한치 앞을 못 보는 우리네 행정가들이니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아닐까? Fortuna로부터 다음 Schedule를 받았다. 빌어먹을 Europe행이다. 거기서 Dock한다니. 이제 영 삼천포로 빠지나 보다. 혹시나 부산행을 기대했던 그 바램이 그대로 폭삭 사그러진다. 모두가 밥 굶은 시어미 상이다.
Mar/18(화) 1986 :
그냥 기간과 공간을 날려 보낸다. 아무런 의욕이 없다. 어제 받은 그 한 장의 Telex 때문이다. 항시 꿈을 바라고 사는 이에게 꿈을 앗긴다는 것은 곧 절망이다. 입항을 3일 앞두었는데도 아무런 감흥이 없다. 그저 달력에만 눈이 자꾸 갈 뿐이다. 욕은 저절로 나오고-.
Mar/21 :
다 된 밥에 코빠지듯 하루를 앞두고 다시 강풍이 분다. 미치는구먼. 저녁때 입항이 결국 midnight로 바뀐다. 또 밤을 꼬박 새야 할 판이다. 다시 고갤 쳐드는 어수선한 감정의 물결. 기다려 줄 아무런 고무신도 토끼 같은 새끼들도 없지만 오랜 항해 끝의 입항은 가슴 설레게 하는 것인데-.
Mar/22 :
미국 남부의 거대 도시 Houston항이다. 그저 큰 것만이 움직이는 이놈의 미국. 언제 보아도 거만스럽고 거창하다. 큰 잔디구장과 Hall을 갖춘 Seaman’s Club. 과연 미국답다. 기어이 병원엘 가다. 발등에 패인 골 같은 증상 때문이다. 남미 출신인듯한 의사 녀석이 무릎을 땅에 대고 한참 들여다 보더니 고갤 쳐 들고 “이거 왜 이러냐?”고 묻는다. “I don’t know.” 그걸 내가 알면 미쳤다고 여길 오냐. 가루비누를 푼 것 같은 물에 한참을 담군 후 닦아 내고는 하얀 치약 같은 걸 쳐 바르고는 붕대로 싸메고 가란다. 약은 한 통을 준다. 하루 한 번씩 바르기만 하란다. 아무래도 쉬이 나을 것 같지가 않다. 다시 전화하고 칫솔, 군것질 거리 등을 사다.
Mar/26(수) 1986 :
2-3일 전부터 방귀가 자주 난다. 꼭 집에 있을 때처럼. 별일이다. Mississippi 강. 듣고 사진으로만 보던 세계 제1의 강. 흑인 노예들의 한을 씻은 강. 학클베리 핀의 모험이 있던 강. 과연 강의 왕자다웁다. New Orleans. 옛날 흑인들을 사용해서 지은 목화를 수출하던 당시의 낡은 목조 부두가 색깔별로 장식된 체 허물어져 가고 있다. 선미에 물레방아처럼 수레를 단 유람선이 한가롭다. 허나 한 발짝만 Gate를 나서면 그냥 몽탕털리고 마는 무법의 천지란다. 그걸 단속치 않는 이유가 있을 거야. 숨은 속셈이 있을 게다.
Mar/27 :
Korea House의 趙씨 부부와 Burbon Street를 구경하다 Oyster를 한 접시 먹다. 이름보다 초라하기는 하지만 Franch Section으로 지정되어 보호구역으로 되어 있단다. 역시 전통을 중히 여기나 보다. 별 것 없으면서도 그 역사적인 이름 때문에 지금도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 단다. 진정한 관광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실내 체육관까지 갖춘 Seaman’s Club이 크긴 크다.
Mar/31(월) 1986 :
Tampa. 퇴직 경찰로 Agent를 한다는 그 영감님의 평화론. 과욕이 모든 범죄의 원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었다. 과연 없는 자 보다 있는 자에 의한 범죄가 크고 더 악랄했음은 사실이다. 한 때는 이곳도 범죄로 유명했던 곳이란다. ‘Kim Sister’의 백화점. 그저 돈이라면 포주 노릇해서도 벌려는 모양이다. 자정 넘어 Tampa 외항을 벗어나다. Showa Line의 Voy.가 끝난 셈이다. 발등의 상처가 거짓말처럼 아물어 간다. 신통한 일이다.
Apr/1(화) :
한약을 전부 마친다. 장장 65일간을 끓였다. 그 흔들림 속에서도-. 뚜렷이 남는 것은 느끼지 못하나 그간 기울인 정성은 실로 지극했다고 본다. 바로 정성을 다려 마신 셈치자. 14일간의 Ballast 항해가 또 염려스럽다. 북태평양, 버뮤다 삼각지대도 과히 좋은 기분은 아니고-. 너무 많이 실어도 걱정이지만 너무 안 실어도 탈이 많다.
Apr/15(화) 1986 :
엊저녁 때 Rotterdam 외항에 도착. 닻을 내렸다. 새벽 3시부터 Stnad By. 아직도 북극의 추위와 짖궂은 비가 찔끔거린다. 07:00 Wilton-Fijenoord의 Floating Dock에 올렸다. 앞으로 10여일간의 예정이다. 그냥 춥고 마음만 허전하다. 다음의 Schedule이 어떻게 될는지? C/O 병원에 보내다. 삐친 발목이 아무래도 시원찮은 모양이다.
Apr. 24(목) :
16:50 Wilton Dock를 나서서 바로 Antwerp로 향했다. 10여일간 그냥 잘 보냈다. 바람, 파도, 흔들림의 걱정없이-. 걸음도 많이 걸었고 孔 선장도 만나 한잔 나누기도 했다. 결국 출항전에 dock측 인부들의 무성의에 Mr. Horemans와 얼굴을 붉히긴 했으나 후딱 지났다. Owner측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기에 선주 대리로서 내 임무를 마친 셈이다.
다음 항차는 West Africa로 Liner Service(定期船) 한다니 그게 염려스럽다만 대부분 가 본 곳이고 또 남들이 다 하는데 못할거야 있겠나만. 그 놈의 저쪽 하늘이 자꾸만 쳐다 뵈며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한다. 이제 겨우 3개월이 갔는데-. Super Cargo가 승선한다니 사람이 좋아 유대가 잘 되야 할텐데-.
Apr./27(일) :
CMB(벨기에의 국영해운사) 하나의 왕국이다. 한국의 KSC나 일본의 NYK와 같은 것. 지금까지 Fortuna의 ‘Eastern Unicorn’을 대신하여 본선이 배정되어 정기선으로 하는 모양이다. 완전히 새로운 체제와 System이 적용될 듯 하다.
One Voy.가 56일. 12-13개 Ports. 모든 Cargo의 처리가 육상과 Super Cargo의 담당이다. 수월한 점도 있지만 불편하고 신경 쓰일 일이 많을 것도 같다. Super Cargo로 Mr. L. Husson 이란 젊은 놈이다. 27-8살이다. 생기기는 순진스럽게 생겼다만 어떨는지. 부닥트려 보는 거다. 별 놈 있을라고-.
Unicorn의 Capt.와 서 기관장을 만나다. 염려했던 매선의 염려는 없어진 셈이다. 다시 모아 놓고 Africa 특유의 주의사항들을 이야기 했다. 그놈의 열병. Malaria. 키니네도 주사약도 Arrange 했다. 씨팔놈의 것 이판사판아닌가. 무엇보다 건강에 자신이 서는 것 같아 마음 든든하다. CMB 구내에 마련되어 있는 각 직급별 Restaurant에서 대접받은 점심 식사가 인상적이었지만 점심 한 끼에 2시간 반은 너무 지루했다.
소속선의 선장은 본사의 부장급인 듯 그들만의 식당이었다. 여자로서 30년간 국영선사에서 연료유만 취급했다는 할마씨의 능수능란한 몸짓이 일품이었다. 그야말로 선박 연료에 대해서는 道士다.
May/5(월) :
5월로 접어든지 벌써 5일째다. 4월 28일 Ant.출항. 오늘 France의 Le Havre항에 도착했다. 오랜만이다. 의외로 새로 만든 Lock 건너편 Container Yard에 접안했으나 시내가 너무 멀다. OL-1이 다리,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진작 얘기 할 일이지.
병원의 진단으로 척추이상으로 ‘Unfit for work(직무수행불가)’이다. 급작스런 입원과 하선.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이제 첫 항차로 시작인데-. 하기야 아프고 낙오해야 하는 본인만큼이야 누군들 더 답답하겠나만 이런 일은 우리들에게 없어야 한다. 모든 System이 정확하고 재빠른 Port로 다행스럽다만 결원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다. 5월이라지만 아직도 으시시하고 춥고 찬바람이 분다. 대지 위엔 파란색이 차츰 짙어가지만 나무가지엔 그냥 눈만 내민다. 앞으로 7일간이 가장 긴 항해기간이 될 것이다.
May/7 :
마라리아 예방을 위해서 Niva qunine 복용을 시작토록 지시하다. 20일간 계속 먹어야 한다. 보통일은 아니다만 과거 Nigeira시절 겪어보지 못한 놈들은 이해를 못할 것이다. 한번 걸려봐야 아는 병 아닌가?
May/12 :
Dakar 입항. 10여년전의 그 상냥하고 순진스럽던 인상은 입항도 하기 전에 박살이 났다. 새벽의 어둠속에서 잠시 정선했던 틈을 타 그 높은 선미에 도둑이 올라 Rope하나를 걷어갔다. 해상강도들 소행이다. 앗찔하다. 그리고 대단한 배짱이다. 접안 후에도 마찬가지. 꼭 작년 남미 Peru의 그 무슨항이더라? 쬐그만 그곳과 같다. 갑판의 물건을 바다 위로 던지고 다이빙을 해서 뛰어들고 Boat로 건져가고… . 난장판이다. 눈 번히 뜨고 그 꼴을 봐야 하는 실정이다. Damage 건으로 관계도 없는 Police가 다녀가고 하자 없는 검역도 Super Cargo 한테 공갈쳐서 술 담배를 앗아간다. 정신이 버쩍 든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더니 -. 역시 편리하고 화려한 물질문명이 순진했던 이놈들에게 가르쳐 준 것은 그저 물욕밖에 없다. 정상적으로 얻지 못하니 그냥 도둑질과 빼앗는 것 뿐이잖은가.
앞으로 이 항로가 계속되는 한 고생문이 훤한 느낌이다. Super Cargo가 있으니 화물에 대한 신경은 덜 쓰게 됐다만 젊은 녀석이 너무 돈을 밝히는 것 같기도 하다. C/O와의 불화도 문제의 여지를 남긴다. 아침에 일찍 Berthing. 오후에 출항하는 것이 얼마나 편한지 모른다. 이 판에 하룻밤을 묵는다는 것은 바늘방석에 누운 것이나 다름없다.
May/15(목) 1986 :
Abidjan. Raffia Universal 시절 마지막 항차 때 그놈의 세관 때문에 혼이 난 곳이다. 새것이라면 비누. 칫솔까지 신고하라고 했다. Container 및 전용선 부두라 그런지 아니면 Agent Sisa 때문인지는 모르나 생각보단 까다롭지 않고 넘어가지만 역시 기분이 좋지 않고 마음을 놓지 못한다. 고장 난 20피트짜리 Ref. container 한 개를 40 Feet 짜리에 옮겨 실었다. 냉동컨테이너의 고장율이 너무 잦은 듯 하다. 갑판상의 모든 비품, Life Boat의 것까지 몽탕 집어넣고 자물쇠를 채웠는데도 결국 Life Ring에 달린 Signal 한 개를 잃었다. 분명 Dakar에서 그랬을성 싶다. 2/O의 불찰이고 책임이다. Agent의 Mr. Bam이란 놈이 사람 좋아보인다만 앞으로의 유대가 어떨는지?
May/17(토) :
Lome 항이다. Hiroshimamaru시절의 그 황량했고 절박했으나 달러벌이는 그런대로 괜찮았던 추억을 가진 곳이다. 많이 확장하고 건설했다. 그러나 재수없이 No.4 Crane cargo wire 사고로 12시간을 꼬박 전 갑판원들이 철야 작업을 했다. Stevedore 들의 Crane 운전이 미숙함을 사전에 몰랐던 탓이다. 아무래도 이놈의 항로엔 고생깨나 할 모양이다.
May/18(일) :
Cotonou. 지나치면서도 한 번도 들려보지 못했던 곳이기도 하다. 생각보다 조용하고 깨끗하다. 역시 Africa의 Socialist 국이다. 모든 것이 국유다. Agent의 Operation Manager란 녀석이 감자를 부탁하는 걸 보면 실정을 짐작한다. 햇볕이 너무 강하다. 그래도 하루 6-7000보씩 걷기를 계속한다. 엉치뼈가 뻐근함이 없어진지도 오래됐다. 매일 1만보가 목표다.
May/27(화) :
Zaire의 Matadi. Banana Pilot station부터 시작한 장장 7시간 Congo강의 급류를 타고 올랐다. 탐나는 강이다. 70마일이면 우리 릿수로 150여리. 낙동강이 이러하다면 대구넘어 왜관까진 얼마든지 거슬러 올라가면서 수많은 항구를 만들고 물류기지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지지리도 못생기고 쓸모없는 땅덩이련가. 어릴 적 영국 탐험가들이 오르내리며 새로운 것을 찾고 우정어린 만남을 가졌다는 교과서에 실린 리빙스턴의 얘기가 바로 이 Congo강이 아니었던가. 급류 속의 한쪽 켠에 만든 부두. 자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곧 식민통치국인 Belgium 놈들의 덕분이다. 그냥 검둥이들의 물결이고 천지다. 아직도 가난과 무질서의 뗏국이 덕지덕지 붙었다. 설탕과 밀가루 하역에 골치가 아플 지경. 어디서 날아오는지 수많은 벌떼도 굉장하달 지경이다. 하기야 그놈이나 사람이나 배 고픈데야 당할 수 없지 않은가. 하루에도 몇 놈씩 현장에서 쇠고랑을 차고 가는 걸 본다. 과연 어느 놈이 도둑놈인지 모르겠다. 없는 놈이 저지러는 범죄와 배부른 놈이 저지르는 죄질의 차이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어느 책에서 본 글이 절실히 느껴진다. 정치라는 것은 잘 모르지만 이러한 가난과 무질서를 두고도 무얼 한다는 말인가?
May/28 :
바로 앞에 접안한 Matadi 선적의 Zaire 국적선은 바로 돛대기 시장 바닥이다. 헌 타이어, 양파, 중고 쇼파, 냉장고 없는 게 없다. 저것들이 어떻게 처리되고 빠져 나가는지는 몰라도 정식으로 싣고 온 화물보다 밀수품이 더 많을 듯도 하다. 까 벌려 놓고 하는 수작들이니 굳이 밀수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Mr. Huson의 말처럼 과거에는 벨기에 배들이 Hold 별로 선장용. 일항사용, 갑판장용이라고 공식적으로 했다던 시절이 있었다니 참으로 좋은 때(?)였으리라. 아마 이 녀석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배도 몸도 마음마져도 검어져 가고 있는 듯하다. 아무런 흥미를 끌만한 게 없다. 더위 속에 한 두 차례 땀을 흘리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낙이요 보람이다. 무엇보다 밀항자(Stowage)가 극성이라니 그게 걱정이다.
May/30(금) :
06:00 Matadi 출항. 시원하다. 다행히 밀항자는 없는 듯-. 강 입구의 Boma 항 기항 예정이 취소된 것도 다행이다. Extra Meal(외래객 식사) 이 너무 많다. 너도 나도 한 끼 얻어먹으려고 기를 쓰고 달려 들었으니 그럴 수밖에 더 있냐만. 어떻게 처리될런지가 궁금하다. 무려 $700이나 된다. Fortuna에서 인정 못하면 CMB와 협의하겠지. Super Cargo 녀석의 Sign이 있으니까-. 얕은 야산 사이를 비집고 흐르는 푸짐한 자이레강. 아직도 이 놈의 강를 몇번이나 더 오르내려야 할 것인가. 우선 水流가 강하고 급하다. 군데군데 보이는 모래톱도 변화가 무쌍한 듯 해 보인다. 조심스럽다.
Jun/ 2(월) :
6월! Africa 서안의 Cameroon의 Kiribi항. 항구랄 것도 없다. 그냥 이름뿐이다. 겨우 찾아 닻을 내렸다만 더욱 가까이 오라는 Agent의 무선 연락. 느닷없이 Fishing net가 잘렸다고 항의하며 떼거리를 쓰는 놈이 있다. 이곳도 까딱하면 재수 옴 붙을 곳이다. 그냥 바다에 띄워 두고 Barge로 Coffee와 Cocoa원료를 포대로 싣는다. Rolling이 다소 있어 애로가 있었지만 그런대로 잘 해낸다. 한 두 번 해본 것이 아닐테지. 예정보다 하루를 더 잡는다. 더러운 관리놈들의 하는 짓이 어디가나 마찬가지. 없는 곳일수록 民度가, 정치가 낮은 곳일수록 관리들의 꼬락서니가 그렇다. 우리 한국의 공무원들을 생각하면 여기가 거기나 오십보 백보다. 이것이 시정되지 않는 한 선진국은 요원한 일이다.
Jun/7(토) :
4일 Kiribi 출항. 7일 다시 Abidjan 도착. 새벽 입항 전 격심한 스콜에 적잖이 당황하기도 했다. Super Cargo의 접대품 취급이 아무래도 시원찮다. 대책이 있어야겠다. 2명의 밀항자가 본선에서 발견됐다는 현지 Watchman의 보고에 한바탕 소란을 피웠지만 다행이 본선은 아니었다. Agent의 Mr. Bam과 그의 Wife. 보기 보담 꽤 괜찮은 마누라를 얻었군. 뒷치기(?)들의 얘기가 한창이다. 돈벌이도 세상살이도 가지가지다.
Jun/9(월) :
엊저녁 공연이 잠을 설치더니 새벽에 4놈의 검둥이 밀항자가 발견됐다는 보고다. 새끼들이 어디에 숨었더란 말이냐? 당장 물에 집어 던질 작정이었다. 때려 죽여도 시원찮을 놈들이다. 그렇게 챙기고 뒤지고 살펴봤는데-. 집어 던져라고 Order만 떨어지면 당장이라도 집어던질 기세의 C/O와 갑판장이다. 그들의 분노도 짐작이 간다. 일단 조사를 시켰다. No.5 Lower Hold에 3단으로 쌓아둔 빈 Container속에 숨어 있디가 배가 고파서 기어 나왔단다. 몸 전체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 망설임이 따른다. 슈퍼카고 녀석이 자기는 눈감겠다고 선장이 알아서 하란다. 종종 소련선이나 유럽선들은 검둥이 밀항자가 발견되면 그 자리에서 바다에 마치 쥐새끼 던져 버리듯 던져버린다고 했다. 그래서 그 놈들도 그런 실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 그쪽으론 얼씬도 않고 인심 좋다는 한국인들이 승선한 배만 노려서 기어 오른단다. 쥐새끼 버리듯이 바다에 던져 버린다는 것은 곧 살인이다.
과연 Super Cargo 그 놈을 믿을 수가 있을까? 누구의 얼굴인지는 모르겠으나 근엄한 어른의 얼굴이 떠 올랐다 사라진다. 공자님의 모습이 아닐까. 정모녀석의 얼굴. 그리고 부처님 앞에 정성을 드려 절하던 Wife의 모습이 불연 듯 스친다.
참자. 그들도 사람인데 죽일 수야 없지 않나. 일단 빈 컨테이너 속에 가두게 하고 죽지 않을 만큼의 밥만 주도록 했다. 놈들이 죽을 고생을 해보아야 다시는 안 탄다는 관례가 있다고 했으니까. 기회 있는 대로 불러내어 상처나지 않게 죽도록 두들겨 패라고도 했다. 해군 하사관 출신인 갑판장이 솜씨 좋게 조진다. 사람으로 뵈지 않는다. 바로 짐승이다. 그런데 어떻게 그 높은 곳엘 올라갔냐고 하니 그냥 올라갔단다. 한 번 해보라니까 서슴없이 오른다. 마치 원숭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어림도 없는 높이다. 역시 다르다. 아직 미분화했다는 생각조차 든다. 그걸 몰랐다고 일등항해사도 말한다. 설마 저 높은 3단까지야 … 하고 검색을 않은 것이 이 모양이 됐단다. S.C를 앞세워 조사를 했다. 다행이 국적이 밝혀진다. 천만다행이다. 만약 이들 밀항자들의 국적이 밝혀지지 않으면 이놈들이 죽을 때까지 선박측이 책임지고 태워 다녀야 한다. 그저 말로만 해서는 각국의 영사관에서 인정하지 않고 자국민이 아니라고 하면서 받아 주지 않으려는 경향이 이곳에는 있다. 하도 많고 처리가 골치가 아프니까. 정당한 근거 서류라도 찾아서 들이 밀어야 영사관도 도리없이 자국민으로 처리하는 모양이다.
그래도 글자께나 알고 상습적이다. 사진을 찍고 Protest도 만들었지만 Owner놈들의 찡그릴 표정이 역력하다. Dakar에서 내려 보내야 한다. 씨팔놈의 개새끼들! 남의 신세 팍 조질 놈들이 아닌가. 이것도 과거 있는 놈들이 남겨 놓은 식민지시절의 산물이다. 벨기에가 자이레를 식민지로 다스릴 적에 흑인들 중엔 벨기에로 넘어간 놈들이 많다. 그 이유와 사정은 넘어간 사람만큼이나 많다. 그러나 그 동안에 그들 나름대로 벨기에의 시민으로서 뿌리는 내린 것이다.
독립이 되고 각각 다른 나라가 되었지만 그 뻗은 뿌리는 그대로 남았다. 일찍 건너가 자리잡은 놈들은 역시 잘사는 유럽의 시민이 됐다. 가난밖에 남은 것이 없는 자이레 현지 사람들이 그냥 있을 수는 없으니 죽을 각오로 밀항을 하려 한다. 그 뒤에는 반드시 연락선이 닿아있고 뒤를 봐주는 끈이 있다. 우리와 일본의 관계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좋은 경험으로 삼자. 아무튼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것은 잘한 일이다.
Jun/11 :
Dakar 입항. Immigration 에 인계한 4명의 검둥이 밀항자. 여기 또 하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종족은 달라도 같은 색깔의 피부를 가진 놈들이 한 통속이란걸 미쳐 생각을 못했다. 그저 종족이 다르고 국적이 다르면 다르게 취급하는 줄로만 알았다. 수갑도 안 채우는 것은 고사하고 오히려 본선에서 맞았다고 항의하자 사실이냐고 따지고 든다.
賊反荷杖이다. 심지어 Agent녀석도 관계 기관놈들도 동조한다. 한 놈은 어제까지 멀쩡하던 다리를 갑자기 절룩거리기까지 한다. 무시무시한 억지다. 이젠 오히려 내가 조사를 받는 꼴이 된다. “그래 나는 때린 적 없다. 오히려 밥 먹여 주고 여기까지 데려 왔잖냐. 이런 식이면 다음부터는 굶어 죽어도 밥은커녕 물도 한 방울 안 줄테니 그리 알아라.”. “말이 났으니 그렇지 사실 패 죽이고 싶다. 나도-. 이제 너희들 보는 데서 한번 두들겨 패자” 하고 일어섰더니 알았다고 그만두란다. 잘못하다간 우리가 피해자가 될 뻔했다. 억울하게 담배만 나갔다. S.C Mr. Huson은 空路로 귀국했다. 첫 기항지가 Hamburg이다. 한 주일은 걸리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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