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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법대사 어묘
고야산(高野山)트레킹
2018.3.29~4.2
1일차 오사카행-고야산 정석도 트레킹 일정 준비
동해안 해파랑길을 걷던 4부부팀이 이번엔 일본 원정에 나섰다.
사전 미팅시에 몇가지가 합의되었다. 전문여행사의 도움을 받되 가이드를 붙이지 않고 자유여행으로 한다.
항공편,오사카에서 고야산까지 가는 교통편,숙박편을 여행사에서 준비하고 자유로이 다닐 수 있는 드루패
스 3일권과 오사카 관광을 위해 시내투어 원더루프(2일권)을 한국에서 구입,제공한다---
1주일전에 다시 모여 식사를 하면서 준비물과 궁금사항을 서로 논의하였다.
진행된 개략적인 일정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일차 :김포공항에서 KAL기로 9시5분 오사카로 출발,10시50분 간사이국제공항 도착
난바행 기차를 타고 하시모도에서 다이몬(大門) 하차 숙소 후쿠지이인(福智院) 입숙
2일차 :숙소-정석도(町石道)코스 트레킹(1번 町石-180번 町石 총 21km)
단상가람-대문-야다떼(矢立)-경석(鏡石카가미이시)-압상석(押上石)-가사괘석(袈裟挂石)-
------자존원(慈尊院 지손인)->구도산역(九度山驛) ->숙소
3일차 :오쿠노인(奧之院)과 참배길-공고부지(金剛峰寺)-도꾸가와이예야스영대(德川家康靈台)-
여인당(女人堂) 관람->급경사 전동차-난바선 천하다옥(天下茶屋)-오사카 숙소
4일차 :숙소-오사카 시티투어버스로-
난바역 도돈보리에서 크루즈로 벚꽃구경-오사카성 벚꽃놀이 감상
5일차 :난바공원-도돔보리에서 회전초밥(쓰시)로 식사후 도돔보리 구경과 쇼핑
공항 7시45분발 김포행
출발 당일 아침 7시까지 공항에 집합. 수속절차를 밟고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9시5분발 정시에 KAL기로
출발했다. 기내 조식과 조간신문을 보느라 금새 오사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패키지팀이 아니므로 여행
사 가이드가 마중 나오지도 않고 우리끼리 짐찾아 바로 난바행 기차로 옮겨 탔다. 난바역 구내에서 점심
을 사 먹고 하시모도(橋本)로 거쳐 다이몽(大門)까지 버스로 간다.원래는 가파른 전동열차로 가야 하는데
작년 10월 태풍으로 부서져 임시로 대행버스가 운행중이다. 도중에 셔틀버스로 갈아타서 숙소인 복지원
앞에 내렸다. 이미 인터넷 사진으로 눈에 익은 후쿠지이인(福智院)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틀간 이집에서
숙식을 하게 된다. 저녁식사는 템플스테이식 식사이다.절 음식이라 물론 육식은 없지만 두부,덴뿌라,연근,
가지 등의 요리가 색다르다. 식사후 주변 산책을 나섰다. 숙박을 겸하는 사찰들이 온 고야산 일대에 산재
해 있다.
내일 점심은 산중에서 도시락을 먹어야 하니 편의점을 찾아 어떤 김밥이나 도시락이 있는지 미리 확인했
다. 나는 김으로 만든 주먹밥을 선택했다 김주먹밥 내용물이 괜찮은 것 같다. 숙소에는 이곳에서 유일하게
온천탕이 이 복지원에 있었다. 남탕과 여탕이 올나이트로 편한 시간에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옆에는 야외
온천과 사우나실도 있어서 편리했다. 물이 너무 좋은 것 같다. 숙식 중에 저녁과 아침 온천탕을 이용했다.
피로가 풀리는 기분이다.
2일차-세계유산 고야산 참배길 町石道 트레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길은 전 세계를 통틀어 단 두 곳뿐이다. 스페인에 있는 ‘카미노 데 산티
아고’ 순례길(800km)이 그 중 한 곳이고, 다른 한 곳은 일본에 있는 ‘구마노고도’ 순례길(307.6km)이다.
와카야마현,나라현과 미에현에 걸치는 영지와 참배길이 200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참배길이다.
그 중에서 공고부지를 포함한 고야산지구에 구로고미찌(黑河道)코스(19km),후도우사카(不動坂)코스(15km),
미타니사카(三谷坂)코스(7.6km),죠이시미찌(町石道)코스(21km),뇨닌미찌(女人道)(10km) 5개 코스가 있다.
우리가 택한 코스는 네번째인 정석도(町石道)코스인데 자존원(慈尊院)에서 다이몽과 단상가람까지
180개의 정석(석탑의 도표로 1정석은 109m)이 세워진 총 21km의 거리인데 높이는 80m에서 개략800m
높이의 길을 걷는 코스이다. 진언종을 창시한 홍법대사 구카이(弘法大師 空海)가 걸었던 신앙의 길이다.
원래는 자존원에서 출발해야 하는데 우리는 거꾸로 단상가람에서 자존원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택했다.
정석도(町石道) 21km 트레킹길을 나서다.
숙소를 나와 어제 저녁 봐두었던 편의점에 들러 먹고싶은 도시락을 골랐다.
집사람은 도시락을, 나는 주먹김밥을 사서 베낭에 넣고 길을 나섰다. 출발점인 단상가람의 근본대탑까지도
제법 거리가 있다. 출발선에 있는 근본대탑과 금당을 구경했다. 정석 1,2번은 지판만 보았는데 3번부터는
정석기둥이 있어 카메라로 번호를 찍기 시작했다. 700m거리에 다이몽(大門)이 우람하게 서 있다. 대문을
지나니 제법 급경사로 내려가는 길이 이어진다. 여기서 쵸이시미치(町石道)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町石道(쵸이시미치)는 고야산 순례길에 지손인(慈尊院)에서부터 고야산 의 단상가람까지 정석(町石)이
180개가 세워져 있다.정석 한개 간의 거리가 109M이므로 총 길이가 21km이다. 이 정석 기둥은 총 다섯
단으로 되어 있으며, 각 단마다 인도의 산스크리트어로 우주 오행에 해당하는 글씨가 각각 새겨져 있다.
檀上伽藍
단상가람은 홀법대사 구카이(空海)가 고야산의 토지를 하사 받은 뒤 고야산에서 가장 먼저 설립란 사찰이
며 고야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찰 중의 하나이다. 본래 고야산의 사찰들은 단상가람을 중심
으로 난립하였는데 곧 공고부지(金剛峰寺)를 진언종(眞言宗)의 총본산으로 만들고 단상가람을 이에 편입,
정리되었다. 단상가람은 오쿠노인(奧之院)과 함께 고야산의 2대성지로 불린다.
根本大塔
根本大塔홍인7년(817년)부터 887년경에 걸쳐 완성되었다고 전해지는데 홍법대사 空海가 이 대탑을 眞言
密敎의 근본도장으로 여겼기에 근본대탑이라 불린다. 단상가람의 상징으로 金堂과 함께 가장 중요한 건
물이다. 근본대탑은 단상가람 나아가 고야산을 대표하는 탑으로 팜프렛 등에 실려 쉽게 볼 수 있는 건물
이다.현재의 탑은 1937년 홍법대사 입적 1100주년을 기념해 지어진 것이다.
金堂
단상가람 중문을 나서면 금당이 보인다. 단상가람의 금당은 고야산 개창시 가장 먼저 만든 건축물이며
밀교사상에 따라 空海(구카이)가 직접 지었다고 전해진다. 금당 역시 화재로 여러차례 소싷되었고 현재
건물은 1932년에 재건 된 것이다.
大門
고야산 입구에 있다. 산의 총문이 대문이다. 개창 당시에는 지금보다 조금 아래에 도리이를 세워서 그것
을 총문이라 했던 것인데 산불과 낙뇌로 불타 현재의 건물은 1705년에 재건되었고 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다.
다행히 비가 오지않아 걷기가 어렵지는 않았으니 비가 온다면 여간 미끄럽지 않아 위험한 길이었다.
매번 정석이 나올때마다 109m를 지난다는 기쁨도 있고 정석의 번호를 세어가며 걸으니 지루함도 이겨
낼 수 있었다. 27번 정석에는 가가미이시(경석鏡石)이 있고 54번 정석 부근에는 홍법대사가 어머니와 동
행할때 번개가 쳐 돌을 들어올려 구했다는 압상석(押上石)도 있고 그 옆에는 홍법대사가 가사를 걸쳤다는
가사괘석(袈裟挂石)이 있엇다. 드디어j 60번 정석인 1/3 지점인 야다테(矢立)에 도착했다.
야다테는 옆으로 차길이 교차한다. 그러나 버스정류장이 없어 차편이 없으면 등산로만이 유일한 길이다.
야다테는 유일한 찻집이 있는 곳이다. 차와 모찌를 팔고 있었는데 커피는 팔지 않았고 그 옆에 따로 커피
집이 있단다. 길 맞은 편에 지장보살을 모시는 전각이 있다고 알려주어 올라가 보았다.
고야산코스는 오래된 삼나무숲으로 유명하다. 수백만그루가 빽빽히 들어서 있어 햇볕을 볼수가 없다.
그래서 나무 높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키가 크고 오래된 삼나무는 굵기가 사람 팔 몇개를 이어야
할 정도다. 연리지로 뿌리가 하나인 두나무가 붙은 기혈도 있고. 삼나무 외에도 대나무 군락지도 종종
보인다. 또 동백나무도 제법 많이 보이는데 빨간 동백꽃이 시선을 끈다.
경석(鏡石)
표면이 거울과 같이 평평한 것에서 거울돌 경석(鏡石)이라 불린다. 아 돌의 모서리에 앉아 진언을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고 있다.
압상석(押上石)
홍법대사 구카이의 어머니가 여인 금지구역인 고야산으로 들어오도록 할 때 심하게 벼락이 쳐 불비(火
雨)가 내렸다고 한다. 구카이가 그 돌을 들어올려 어머니를 구했다고 전해지며 그 돌에 양손의 흔적이 남
아 있다고 한다.
가사괘석(袈裟挂石)
홍법대사가 가사를 걸었다고 하는 데서 이런 이름이 나왔다. 또 말안장처럼 생겨서 안장걸괘돌(鞍掛石)
이라고도 하고 돌과 돌 사이를 묶으면 장수한다고 해서 묶는돌(くぐり石)이라고도 불린다.
정석번호가 90번째- 반을 오고 나니 왠지 다왔다는 기분은 무엇을 의미하나? 우리말에 시작이 반이다
라는 말이 있다. 시작이 반인데 또 실제로 절반을 왔으니- 다 온게 아닌가? 물론 생각하기 나름이다.
당나라 서예가 안진경이 쓴 쟁좌위고(爭座位稿)에 나오는 글에 어반구십(於半九十)이라 하여 사람은
백리길을 가는데 구십리를 절반으로 여긴다 했으니 마무리의 중요함을 이른 것으로 이 또한 신중함의
깨우침이다. 그러나 절반을 왔다는 반가움에 배도 고프고 하여 갖고 온 도시락을 먹기로 만장일치 합의
되었다.양지바른 곳에 앉아 주먹밥과 도시락을 각자 꺼내 맛있게 먹는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이 또 있을
까? 시장이 최고의 반찬이라고는 하지만--커피까지 마시고 다시 후반부 걷기가 시작된다.
양 옆으로는 여전히 수없이 많은 하늘키의 삼나무들이 키재기를 하듯 늘어서 있고 정석의 번호도 빨리
지나간다. 111번째 정석을 지나니 모처럼 자그마한 나무집으로 된 불당이 아담히 서 있다. 신전지장당
(神田地蔵堂)이라고 명패가 붙어 있다. 지장당을 지나니 모처럼 물이 든 연목도 보인다. 신전응기지
(神田應其池)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또 115번 정석과 116번 정석 사이에는 백사의 바위(白蛇の岩)이라
는 신비한 바위와 도리이가 있었다. 궁금해서 자세히 읽어 보았다.
神田地蔵堂
옛날부터 神田의 마을은 단상도비매신사에 쌀을 헌납해 왔었다. 마을 한쪽에 세운 지장당(地蔵堂)은
平安,鎌倉시대의 고야산 참배객들의 휴식처로 되었고 이 지장당에는 홍법대사,子安지장,나중에는 應其
上人도 안치되어 있다.
백사의 바위(白蛇の岩)
丹生都比賣神社로 참배하러 가던 스님이 이 바위 틈새에 들어가 있던 뱀을 지팽이로 쿡쿡찔러 놀라게
했는데 ,신사에서 돌아오니 흰 큰 이 이 바위의 윗쪽 나무에 휘감겨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스님은
자기가 잘못했음을 깨닫고 다시한번 단생도비매신사에 참배하는 기도를 하며 눈물을 흘리니 큰 뱀은
이미 사라졌다고- 그런 일 이래로 이 바위에서 백사 모습을 보면 행운이 온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두개의 도리이(二っ鳥居)
丹生都比賣神社의 동남쪽에 있는 두개의 도리이는 丹生明神과 高野明神의 도리이로 홍법대사가 건립
했다고 전해진다. 당초는 너무로 만들었는데 개수를 거듭하다가 1649년에 현재와 같은 석조로 고치게
되었다. 이 두개의 도리이는 天野의 아름다운 전원풍경을 보여준다.
丹生都比賣神社
창건은 약 1700년 전이라 전해지고 있다. 현존하는 本殿은 室町시대에 부흥되어 붉은 색으로 조각과
채색이 되어 장엄하고 화려한 모습을 과시한다.
마침내 2/3로 계산되는 120번째의 정석을 지나게 되니 감개가 무량해 진다. 처음 열개,스무번째일 때는
한없이 멀게만 느꺄졌던 고난의 길이 이제 거의 다 왔다는 안도감에 스스로 대견해진다.
120번째의 정석 옆에는 두개의 도리이가 나란히 서 있었다. 홍법대사가 세웠다는 두개의 도리이이다.
1700년전 세워졌다고 하는 단생도비매신사(丹生都比賣神社)로 들어가는 입구에 어마어마하게 큰 여섯
그루의 삼나무가 서 있었다. 소위 롯폰스기(六本杉)라는 곳이다. 이제 거리상으로 21km중 5.9km가 남았
다. 다시 1.5km정도 더 걸으니 우인산분기(雨引山分岐)점을 지나게 되고 156번째의 정석 부근에 젠쯔보
이시(錢壷石)와 가야마끼이시(榧蒔石)도 눈길을 끈다. 정석도 전망대가 165번과 166번 정석 사이에 있었
으나 다리가 주인 말을 듣지 않아 그냥 지나갔다. 내려가는 길 중에 가장 고약한 돌이 많은 길이 이어져
상당히 조심했다. 잘목 발목이라도 삐끗하면 큰일이라 여간 조심스럽지 않았다. 여태껏 육산의 좋은 길
이었는데 마지막 돌길이 흠이라면 흠이었다. 이제 감나무 농장도 보이고 농로도 이어진다. 훤히 하늘이
보이고 숨통이 트인다. 단지 농사용 차량을 위해서인지 시멘트길로 바뀐다. 역시 흙길과는 천지차,
걸음이 쉽지 않다.
젠쯔보이시(錢壺石)
文永2년(1265년)가꾸교우上人의 발원에 따라 20년이라는 긴 세월을 거쳐 정석도가 정비되었다. 정비작업
때 北條時宗의 외척인 야스모리씨가 이 돌 위에 놓아두었던 항아리에 돈을 넣어 작원원들이 꺼내 쓰도록
했다고 한다.
비시석(榧蒔石 가야마끼이시)
157정석 옆 좌측 길을 조금 오르면 이 비시석이 있다. 비자나무는 비틀림이 적어 고급 바둑판의 재료로
유명하고 비자나무 열매는 기름을 짜서 사용한다. 홍법대사는 이곳의 많은 사람들에게 고야산 등불의
기름을 생산해 주도록 비자나무 품종을 심도록 했다고 한다.
179번째 정석은 빨간 신사입구가 서 있는 단생관성부신사(丹生官省符神社)가 있고-드디어
마지막 종점인 자존원(慈尊院 지손인)에 도착했다. 세계문화유산답게 유서깊고 아름다운 사찰이다.
벚꽃이 만발해 있고 홍법대사당이 여기에 있어서 고야산 정적도의 시발점임을 알린다. 그런데 180이라는
숫자의 정석을 보아야 하는데 보이지 않아 일본관광객에게 물으니 자기도 어디에 있는지 모른단다.
일행중 육사출신 부사단장을 지낸 S동문이 지도를 한참 보더니 장소를 알아냈다. 우리가 찾던 그 180번째
정석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정석을 잡고 감격에 겨워 만세를 불렀다. 정석도 21km를 전원이 무사히 완주한
소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지손인(慈尊員)
816년 구카이가 사가천황(嵯峨天皇)으로부터 고야산의 땅을 하사 받을 때 고야산 참배의 장소에 해당하고,
九度山의 雨引山 산 기슭에 고야산의 현관으로 가람을 창건하고 고야산 일대의 사무를 담당하는 政所를
두고 고야산에 숙소 및 겨울철 피한 수행의 장으로 만들었다.
노인이 된 공해의 어머니 阿刀씨(전승에서는 玉依御前)는 82세의 고령임에도 사누키국(讃岐国) 타도군
(多度郡, 현 카가와현 젠쓰지시(善通寺市))에서 아들인 구카이가 개창한 고야산을 한번 보려고 왔으나 당시
에 고야산 내부는 7리 사방이 금녀의 구역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산기슭에 있는 이 政所에 머물면서 본존
미륵보살을 독실하게 신앙하고 있었다. 구카이는 한달에 9번(정확히 9번이라는 것은 아니고 그만큼 자주
라는 예라고 알려져 있다)은 반드시 20여 km에 이르는 산길(고야산 쵸이시미치(町石道)을 내려와 政所의
어머니를 찾아왔기 때문에 이 근처에 "九度山"이라는 지명이 붙었다. 구카이의 어머니는 영화 2년(835년)
2월 5일에 사망했지만, 그 때 구카이는 미륵보살의 霊夢을 보고 있었기 때문에 廟堂을 건립하여 스스로
만든 미륵보살상과 어머니의 령을 모셨다고 한다. 미륵의 별명을 "지손(慈尊)"이라고 부르면서 이 政所가
지손인(慈尊院)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제 기차를 타고 또 버스를 갈아타면서 숙소로 돌아가야 한다. 우선 구도산역(九度山驛)까지 걸어서 갔다.
지도를 보면서 방향을 잡고 S대장이 앞서 가고 혹 틀릴까봐 나는 가면서 일본사람만 보면 방향을 물었다.
걸어서 30여분 걸린다니 꽤 먼거리이다. 구도산역에서 하시모도까지 기차를 타고 가서 다시 산악전동차를
대신하는 대행버스로 하시모도까지 갔다. 그러나 이미 숙소로 가는 고산버스는 끊기고 택시를 불러서 태워
주었다. 산악전동차가 작년 10월 태풍으로 철로가 망가져 복구중인데 버스로 무료택시로 대신 태워다 준다.
이미 기차값으로 다 지불했기 때문이란다. 택시를 기다리며 안 사실이지만 그 산악 전동차가 5개월간 중단
되었다가 내일부터 재개통한다고 한다. 내일은 급경사 전동차를 타 볼 수 있겠다. 택시로 돌아오니 시간이
저녁 7시반이다.
우리 숙소의 식당은 6시반이 마지막이고 우리 일행도 6시반에 저녁식사를 하도록 되어 있었는데 하시모도
역에서 역장께 전화를 좀 해달라고 했더니 7시반경까지 식사를 준비해 주었다. 밖에서 먹을 각오를 했었는
데 너무도 고맙웠다. 물경 오늘 걸은 거리가 스마트폰에 43,000보를 넘고 있었다. 31km이다. 상상을 초월
하는 거리이다. 서울에서 등산을 할때 보통 8km 정도가 4시간 코스이다. 하여튼 해냈다. 온천욕으로 하루의
피로를 푼다. 특히 다리,발 고생이 많아서 발에게 고맙다고 인사하고 애정의 손으로 많이 물러주었다.
발 맛사지라도 해주는 곳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피곤해서인지 잠도 잘 온다. 내일은 시간이 루즈
하니 늦잠을 자도 좋다.
3알처-오쿠노인(奧の院),공고부지(金剛峰寺),여인당(女人堂),德川家靈台-오사카행
이번 여행의 하일라이트는 역시 어제 21km의 정석도 트레킹이다. 무려 30km를 하루에 걸었다면 엄청 피곤
할텐데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삼나무 숲길을 친구들과 걸어서인지 도리어 심신이 힐링이 된 듯 아침에 일어나
니 가뿐하다. 더구나 온천물이 좋아 저녁과 아침 뜨거운 온천에 몸을 녹여서인 탓도 있을 것이다.
오늘은 오전에 고야산지역의 사찰과 묘역을 돌고 오후에는 오사카로 가야 한다. 고야산일대에는 예전에는
2천여개의 사찰이 있었다 하나 현재에는 200여개의 사찰이 남아 있고 숙박기능을 겸한 곳이 117곳이라고
한다. 명실공히 일본 최고의 불교성지지역이다. 아침에 떠나면서 체크아웃을 하고 짐은 일단 福智院에 맡기
기로 했다. 숙소에서 마지막 인사를 하니 예쁘게 포장한 선물까지 준다. 일본사람들의 오미야게는 정성이란
말이 생각난다.
오쿠노인(奧の院)
첫 방문지는 오쿠노인이다. 버스가 오쿠노인 앞에 정류하였다.
오쿠노인은 고야산의 성지이자 고야산의 메인이라고 할 수 있다. 고야산 성지를 만든 홍법대사의 묘역이 있
기 때문이다. 오쿠노인 입구에서 2km가 참배길인데 키가 큰 삼나무가 의장대인양 도열해 있어서 한층 엄숙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삼나무 안쪽으로 20만기가 넘는 유명인사와 기업인들의 비석,위령비등 묘석이 줄지어 있다.
얼마나 이곳이 신성시 되었는지 일본 역사상 유명한 천황,장군,불교종파 시조,그리고 영주들이 이곳에 묻혔다.
관음상의 일종인 어린상(魚鱗像)도 보이고 버섯 모양의 등롱도 보인다. 비석 역할을 하는 석조 오륜탑과 나무로
만든 각탑파(角塔婆)도 보인다. 그리고 무연고 공양탑이 있는데 연고없이 죽은 수많은 영혼들을 위로하기 위한
탑이다. 목표는 마지막에 있는 홍법대사 空海의 묘역과 사당을 참배하는 것. 어묘교(御墓橋)를 건너면 홍법대사
구카이 묘역이 나온다. 홍법대사의 묘에는 현재에도 홍법대사 구카이(空海)가 명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다. 풍천수길(도요도미히데요시)가의 묘역도 눈에 띈다.풍신수길과 그 어머니,동생내외 등 일가의 묘역이다.
도꾸가와이예야스의 차남묘도 넓게 자리하고 있다.
어묘교(御墓橋) 부근의 어공소(御供所) 앞에는 수향지장상(水向地蔵像)이 있는데 줄지어선 지장보살,부동명왕,
관음보살상에 물바가지로 물을 끼얹는다. 불교신자인 집사람도 경건하게 의식을 치룬다. 이는 망자의 혼을 위로
하고 명복을 빌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나오면서 보니 부모은중탑도 큰 자리를 차지하면서 많은 관광객들이
구경을 한다. 세상의 모든 부모님의 은공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또 팔미시(八尾市)전사자를 위한 영령탑
(英靈塔)도 있고 한국인의 묘역도 큰 자리를 차지해 시선을 끈다.순흥 안씨 가족묘인데 한국식 무덤이다.
공고부지/덕천가영대/여인당
오쿠인을 나와 공고부지(金剛峰寺)를 찾았다. 공고부지는 고야산 진언종(眞言宗)의 총본산이다. 5만평 가까운
넓은 경내에 주전과 서원 등 많은 건물이 있고 국내 최대급의 석정(石庭)을 자랑한다. 우리 숙소 福智院
길 뒤쪽에 위치한 덕천가영대(德天家靈臺)도 구경했다. 오른쪽은 덕천가강의 영대이고 왼쪽이 수충(秀忠)의
영대인데 건축미가 빼어나 중요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욕심을 내어 여인당(女人堂)을 찾았다.
천여년전 고야산은 여인들은 출입을 할 수 없어서 7개 출입구에 기도하는 여인당을 두었는데 이곳 한곳만 잔존
하고 있다. 점심시간이다. 항상 밥먹는 것이 어렵다. 식사후 일본 고로케를 하나씩 사먹었다. 手製 고로케를 만
드는 집이 보였기에- 숙소에 맡긴 짐을 찾아 고야산역으로 갔다. 오늘부터 고야산역까지 케이블카(급경사 전동
차)가 재가동 되어 어제까지도 꼬불꼬불한 산고갯길을 버스로 다녔는데 그런 불편과 위험이 없어졌다. 전동차는
구조자체가 경사지게 좌석이 되어 있어서 신기했다. 타는 시간을 재어보니 불과 4분간이다. 안내방송은 일본어
외에 영어,중국어 한국어가 차레로 이어져 놀라웠다. 한국 관광객이 그다지 많지 않는 것 같은데--
다시 일반기차로, 전철로 갈아타며 천하다옥(天下茶屋)역에서 사카이스지선으로 환승-혼마치역-중앙선-다니마치
욘쫀메(谷町4丁目)에서 하차하여 예약된 썬화이트 호텔에 입숙 수속을 밟았다.
4일차-오사카 시티투어
여행 4일차이다. 숙소가 오사카성 부근이다. 시티투어는 원더루프 관광차량을 이용하도록 예약되어 있다.
오사카성 인근에 원드루프 정류장이 있고 9시10분에 탑승시간이다.서울 시티투어도 손님이 별로 없는 것을 목격
했는데 이곳 오사카 시티투어를 이용하는 관광객이 거의 없다. 무개차와 유개차가 있는데 시간에 따라 구분되는데
우리차는 무개차였는데 추울 수도 있어서 옷을 껴 입고 왔더니 너무 덥다. 크루즈를 먼저 이용하기로 했다.
탑승 장소를 몰라 애를 먹다가 겨우 탔는데 14인승이라 금새 만선이다. 우리는 일행이 8명이나 되니 잘못해 팀이
쪼개지면 큰일이라 걱정했는데 전원이 다 탔다. 다리 위나 길쪽에서 손을 흔들어주기도 하고- 물길따라 벚꽃이 한
창 만개를 하고 있어 사진찍기에 정신 없다.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오사카 성을 돌며 벚꽃구경을 하기로 했다.
4월1일이 아마도 벚꽃의 최고 절정기인듯 하다. 마침 일요일이라 오사카 벚꽃축제가 열리고 있었는데 온시민이
가족들과 같이 돗자리를 깔고 먹거리를 가져와서 소풍을 즐기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너무 많아 걷기도 힘든다.
잘못 일행을 놓치기 쉽다. 벚꽃 구경을 싫컷하고 다리도 아프고 피곤하여 우리부부는 호텔로 가고, 일부는 난바역
으로 가서 도돈보리에서 쇼핑을 하고 돌아왔다. 저녁식사는 호텔주변에서 했는데 일본은 주말 식사가 참 어렵다.
대부분 식당이 놀기 때문에 특별히 예약한 식당이 아니면 먹고싶은 것도 못먹는다. 해물을 먹고 싶어 미리 조사를
하니 주말은 싱싱한 회 먹기가 힘든단다. 끓인 탕으로 식사를 하고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일은 벌써 귀국일이다.
오사카 도돈보리(道頓堀)
느지막히 호텔을 나와 전철로 난바역 인근에 있는 난바공원을 갔다. 공원 안에 있는 꽃과 식물들을 구경했는데
8개층 건물과 엘리베티어가 11시부터 작동되어 무조건 계단으로 걸어다녀야 했다. 한국의 경로들이 너무 부지런을
떨어 스스로 불편을 자초하고 있으니--스스로 생각해도 우습다. 도돈보리의 회전식 초밥이 먹고 싶어 서울있는 딸
에게 어디가 맛집이냐 물어 찾은 집이 겐로꾸스시(元祿壽司). 관광객들에게 소문난 집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이 집도 순서를 기다려 겨우 일행이 쪼개져서 자리를 잡았다. 맛있는 초밥을 양껏 먹고 소화 겸 도돈보리 거리를
거닐었다. 오후 시간은 쇼핑시간. 남자들은 아예 쇼핑에 관심이 없고 그저 짐꾼 역할이다. 이곳의 주 품목은 식품
류와 의약품이다. 한국고객이 가장 많은 집은 돈키호테라는 집인데 아예 한국인 매점원이 많고 일본 점원도 어지
간히 한국말을 할 줄 안다. 호텔로 다시 와서 맡겼던 가방을 찾아 공항으로--
이번 여행 교통은 미리 준비해온 드루패스권을 이용하여 전철,기차,버스를 두루 이용했다. 대장에게 공공비용으로
맡겼던 돈이 남아 상당액을 환불 받으니 공짜로 여행온 기분이다. 일찌감치 공항으로 가서 여유있게 기다리며 이
번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여행의 주목적은 고야산 트레킹인데 21km를 하루에 주파하는 것이
무리라 나누는 방법을 강구했으나 방법이 없어 강행을 했고- 결과적으로는 추억에 남는 대기록을 세우며 보람있는
여정이 되었다. 일본에 오면 늘 느끼는 것이지만 깨끗하고 질서가 있고 사람들이 친절하다는 점이다.
배울 점이 많다. 패키지가 아닌 자유여행의 진수를 맛보는 여행이었다. 언어 소통이 좀더 원활했으면 좋겠지만
그래도 큰 불편없이 다녔고 무슨 말이든지 걸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기니 그저 놀랍기만 하다. 큰 변화이다.
열심히 배우고는 있지만 중국어가 이 정도라도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혹 고야산 트레킹에 관심 있으
신 분들께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첫댓글 선생님 글 읽고 오늘 다이몬에서 구도야마역까지 잘 걸었습니다.
산에서 내려 와 우측화살표로 지손인 구도야마역 방향 이후
화살표 등 표시를 못 찾아 구글지도보며 겨우 오사카로 돌아 왔습니다.
감사드립니다 꾸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