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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11(수) :
04:00 크리스토발 외항 도착. 의외로 기다리는 선박들이 없다. 곧 바로 묘박지 ‘D’에 투묘. Boarding Office의 수속이 끝남과 동시에 Pilot 승선. 오히려 Agent의 수속이 늦었다. 언제보아도 재간스럽게 만든 파나마 운하. 그것도 France가 시작한 것을 미국이 쌌고 그 때문에 Panama란 나라를 미국이 급조했단다. 낮시간에 운하를 통과하는 것도 드문 일. Gatun Lock에 관광객을 위해 만든 좌대에는 많은 백인 관광객들이 기이한 듯 쳐다보며 손을 흔들기도 한다. 하기사 수만톤의 쇳덩이가 물에 뜬 체 산 위에 올라왔으니 신기할 수밖에 없다. 오후 4시 완전히 통과. 피곤하다. 13시간을 Bridge에서 꼬박 서서 보냈다. 앞을 남은 20여일간의 항정이 조용해야 할 텐데-. Ocean Route의 권유데로 Hawaii를 경유하는 Course로 잡았다. 흔들림이 싫다. 10여일간의 귀국 기간 동안이 너무 진하게 남아 끈적거린다. 그것이 생활과 시간은 아득하게만 느껴지게만 한다. 빌어먹을!
Mar/13(금) :
순항이다. Weather Report 및 Ocean Route의 권고에 따라 약간 북상키로 했다. 양손에 껍질이 벗겨진다. 근래 없던 일이다. 별다른 원인이 될만한 게 없다. 李貞桓씨의 소설 “뱀춤” 상하를 완독하다. 언젠가 월간 잡지에서 일부분을 읽은 기억이 있다.
Mar/14 :
Os-1 김지곤이 자원 하선 말이 있다. 역시 사람됨됨이다 그 스스로의 인생을 露呈하고 있다. 36세의 미혼. 막내 그것도 다방출신 여자와 말썽이 있다니-. 알만한 친구다. 거기다 술까지 즐기니 그 인생의 앞날이 훤하다. 재고의 여유를 줬지만 가까이 있을 때 보내는 게 나을 것 같다.
Mar/15(일) :
C/S가 Os-1의 음주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다소 월권적인 의미도 있다만 뭔가 직장들 사이가 원만치 못한 것도 같다. 또 그만한 소란이 있었으면 누가 알아도 알았을 텐데? 일단은 그냥 들어두기로 하고 귀추를 보자. 말이 난 김에 보내버리는 것도 앞으로의 선례를 보아서도 좋을 것이고 만기 교대자 5-6명이 바뀜으로서 전체의 분위기도 새로워 질 수 있다. C/S에 대한 견제도 필요한 것 같고. 자기의 직무관계를 넘어선다는 것은 그만큼 타인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 되기도 한다.
Mar/17(화) :
바람이 없는데도 Swell에 의한 횡요가 있다. 우선은 싫다. 그것이 싫어진다는 것 자체가 ‘싫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만 아무튼 너무 싫다. ‘Cold-Treatment’의 Reduction이 Instruction에 나온 2일만에는 무리임이 판명된다. Delivering Temp.를 화씨 32도로 Limit한 것이 원인 것 같기도 하다.
계속 일일 1만보 걷기를 한다. 아직은 한 달간에 생긴 Gab을 메우지 못하는지 다소 피로감이 있다. 귀국 첫날 먹었던 그 구수한 된장찌개, 그리고 막국수가 먹고 싶다. Wife 손으로 만든 그것 한 사발 먹고 나올 정신적 여유가 없었던 것을 보면 무엇인가 쫒기고 서둔감이 없질 않다. 그러나 며칠간이지만 밝고 화사했던 그의 얼굴빛은 잊을 수가 없다. 그것이 곧 보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였던가도 싶다. 늘 그렇게 해주는 것이 당연한 나의 의무임에도-. Personal computer를 또 시작해 본다. 결국 이것도 사람이 만든 것이고 사람이 하는 일이며, 사람이 쓰기 위한 것인데 악착같이 달라 붙으면 안 될 것도 없으리다만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투자 등이 없다. 결국은 게을러 빠진 것이 첫 번째 원인이고 이유가 아닌가.
Mar/18 :
출국한지 겨우 한 달이 되는 날이다. 하루하루는 무섭게 지나가면서도 이제 겨우 한 달이라니. 시간, 날 그리고 이것들이 쌓여 이루는 한 달과 한 해이기는 하지만 결코 많은 것이라 생각하지 말자. 지나간 10년 20년을 돌이켜 보면 그것은 잠시일 뿐이 잖는가. 어차피 맞고 겪고 보낼 시간들임에랴 좀 더 마음에 드는 일, 아깝지 않게 느껴지도록 보내자. 무엇이 남을 것이라는 목적의식을 뚜렷이 갖지 않아도 좋다. 결국은 강바닥에 모래 쌓이듯 쌓여가는 것이 있을 것이라 믿으면 된다. 지난 15일은 어느 녀석이 생일일텐데 다섯이나 되고 보니 누군지 모르겠다. 애비 역할이 비참해 진다.
Cold-Treatment의 온도가 고르지 못한 편이다. 특히 No.2 C. D가 늦다. 용선자와 빈번한 Cable이 오가지만 시간이 문제해결의 Point일 것이다. 새로 시작한 중국어는 그런대로 흥미를 잃지 않는다. 그놈의 簡字体와 발음이 애를 먹인다만 하는데 까진 해볼까 보다. 일본어와 마찬가지로 우선은 우리 언어문화에 가장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고 유사성도 있으니 영어보다야 쉬울 것도 같다.
Mar/20(금) :
USDA의 위치를 바꾸라는 Cable가 왔다. 답답한 모양이다. 진작 그렇게 나올 일이지. 어떻게 저들도 많은 연구와 경험을 통한 결과일 테지만 나 같은 현장의 상황도 고려해야지. 그렇다고 내가 먼저 제의할 수는 없는 일. 하는 데까진 해주다. Co2가 2%나 되는 곳이라 안전에 염려가 된다만 Air Circulation을 계속하면서 하다. 역시 오랫동안 있으니 골치가 팅하고 두통도 남는다. 이상하게 맨 윗층의 Pulp 온도가 높은 것에 의심이 간다. 높은 곳이기에 냉각이 잘 된다는 결론인지도 모르겠다. 역시 Cold-Treatment가 어렵다는 것을 체험한다.
Mar/22(일) :
일요일인데도 아침부터 다시 No.2 Hold D deck를 기었다. 그놈의 G2. G3. G5 3개의 Sensor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G2 하나는 저녁때 해질 무렵까지 C/O가 Hold 속을 헤매게 했다. 물론 Cable이 오고 간 탓도 있어 겨우 조작을 마치긴 했어도 어쩐지 씁쓸한 뒷맛이 남는다. 1/E에 대한 C/E의 문제 제기가 있다. 보기 보담 영 믿을 수가 없다. 그러기에 그 나이에 그 만한 햇수를 여전히 같은 직책을 면치 못하고 있다. 남아 있는 일본인 Mr. 竹田의 기본적인 자세. 기관장이 되기 위해 배우려는 그 태도가 곧 일본사람들의 철저한 사고방식과 생활습관이 아닌가. 그걸 배우기는커녕 느끼지도 못하고 그냥 시간 떼우기만 하는 우리 사람들, 발전은 백년하청이다. 나이를 의식하지 말아야지. 나이에 맞는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지 못하면 그 나이도 헛것으로 보일 뿐이다. 무엇인가 스스로의 목표와 목적의식을 가지고 조금씩이나마 접근해가려는 노력만 있으면 분명히 결실은 남는다.
C/O 백성흠의 사생활. 그의 Wife에 대한 얘기가 무척 인상적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데는 어디서나 어떤 것이든 문제는 있기 마련이고 고민은 있다. 오직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행・불행을 느낄 따름이다. ‘행복이란 만족에 있다’는 말이 옳을 것만 같다. 그래도 자신의 비밀스런 Privacy를 얘기 할 수 있다는 그 인간관계와 분위기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꼭 필요한 것이다. 그 만큼 자신의 문제가 비중이 있음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Mar/26(목) :
Data Line을 넘어 하루를 건너뛴다. 일년 만에 하는 장기항해다. 해상이 고르지 못하면 못한데로, 좋으면 좋은대로 지루함은 언제나 꼬리처럼 붙어 다니나 보다. 아마도 첫 기항지인 川崎(가와사키)에 입항하면 또 할 일이 너무 많을 것도 같다. NYK에서도, Owner측에서도 새로운 Instruction을 한 아름 안고 올 것이고, 새로운 선장 선도 보잘 것이다. 나야 일본놈들이 본다면 언제라도 자신이 있으니까. 급유. USDA검사. 선용품 수령, Main Eng.수리, 德丸와의 관계되는 물품의 인도와 새로운 것 수령. 거기다 Panama와 해상보안청의 Inspect와 노조까지 덮치지 않을까 싶다. 세상이 참으로 어렵게 되어간다. 물론 안전과 집단의 이익 보장을 위한다는 명분이지만 현실이 따라가지 못하는 지금 막상 골탕먹는 것은 현장의 실무자들뿐 아닌가. 有備無患의 자세가 항상 따라야 하지만 그렇다고 매사에 완벽할 수는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장점보다 결점이 눈에 띄는 게 많다. 편견때문일까? 이등항해사가 그렇다. 인간성에 신뢰가 모자란다. 부족한 실력과 경험은 쌓아갈 수가 있지만 스스로의 인간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데 그의 결점이 두드러진다.
Mar/28토) :
다시 토요일. 船上에서의 토. 일요일은 그래도 그 효력을 발휘한다. 큰 의미는 없어도 변화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생활의 연장이라는 바램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정모녀석의 모습이 삼삼거린다. 이상하게도 어려운 일을 당하거나 마음에 혼란이 올 때 고놈의 모습이 떠오른다.
저녁에 Mr. 竹田와 맥주 한 잔 나누었다. 그가 어떤 임무를 띄고 남아 있는지는 아직도 의문이지만 구태여 사실을 꾸며서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東日(Tohnich) 입장에서 볼 때 여러 가지를 묻고 찾을 테지만 그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전형적이 일본인 것 같다만 속이 그렇게 차 있는 사람 같지는 않다. 여하튼 혼자서 40여일 동안 지루했을 것이다.
밑에서는 大阪에서 교대할 사람들을 위한 간단한 송별 Party가 있다고 했다. 나보다 먼저 알고 있군. SSB로 통화한 때문이다. OSK ETA를 내달 4일로 Cable했으니 3일쯤 출발하겠지. 닿는데로 전화될려나? 참기름, 종이, 사진, 잡지 등 필요한 것이 많은데.
Mar/31(화) :
10:50시 Uraga 도착 14:00시 Kawasaki Toyo부두에 접안했다. Owner측 菅野(간노) 공무부장, 伊藤(이토) 선원과장이 내선, 만나다. 사람들이 좋아 보인다. 8척을 골고루 각국의 선원들로 나누어 Manning하고 있다고. 그래서 비교하는 것이겠지. Japan Refeer의 森保(모리야스)운항과장이 와서 Cold-Treatment관계를 Check했다. 내 의견을 신중히 청취, 메모해갔다.
主機修理 시작하다. 철야작업 예정이다. 선용품은 신청한 그대로 Supply 해준다니 다행한 일. 어찌보면 회사가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기도 한다. 모든 것을 믿고 맡겨준다면 내로서도 더 책임을 무겁게 생각한다고 했더니 수긍을 한다. 역시 유창한(?) 일본어 덕을 톡톡히 본다. 바쁘고 피곤한 하루다.
Apr/01(수) :
여전히 부산한 하루. 09시부터 시작된 USDA 검사. 日本靑果物輸入安全推進協會(일청협)이란 긴 이름을 가진 단체다. 이 단체가 USDA의 Licence를 가지고 실시한다고 했다. 한치의 여유도 없이 크다란 돋보기를 데고 훑어 나간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만 그걸 Check하는 영감님 만큼이나 나도 땀이 난다. 결국 No.2 D-deck는 堺(사카이)항에서 다시 하겠단다. 항해 중의 처리에 대한 설명에 藤井(후지이)도 森保(모리야스)도 충분히 이해를 한다. 수고했다는 인사도 잊지 않는다. 대아에도 전화. 저녁에는 집에도 전화했다. 완전히 변해버린 川崎역 주변이다. 결국 지상과 지하를 이중으로 충분히 활용하고 있는 일본이다. 거기에다 바다까지를-.
이 USDA검사는 원래 미국이 외국으로부터 自國으로 수입되는 청과물에 대해서 미국 농무성이 과일에 붙어 들어오는 해충이나 해충의 알 등을 예방하는 것과 수입청과물에 대한 규제방안의 일환으로 까다롭게 실시해 오던 것인데, 무역의 역조 현상으로 일본이 법적으로 미국의 농산물을 수입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이르자 일본 정부가 민간의 이름으로 미국 농산물의 수입제한의 한 방법으로 미 농무성이 하던 방법 그대로를 본 따 실시하는 방법이다. 좀 야박한 감이 없지도 않다.
예를 들면 USDA 규정에 이태리에서 들어오는 밀감은 섭씨 0도 ±0.2 범위에서 15일간 계속 유지 보관해야만 미국의 영토에 양육할 수가 있게 되어 있다. 만약 그 기간 중에 지정 온도를 넘은 경우가 있으면 그 시간으로부터 다시 15일을 유지해야만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때문에 미국의 양육항에 입항해도 그 온도와 기간을 맞추기 위해 외항에서 대기하는 수도 허다했다고 한다. 결국 제 꾀에 제가 걸려던 것이 된 셈이다.
언제와 보아도 부러운 이놈의 나라. 언제 따라잡을 수 있을까? 어쩌면 영영 앞설 수 없는 나라인지도 모르겠다. 질서와 성실과 협조 정신은 우리가 열번 백번 본받아도 시원찮은 것이다. 같은 계열의 인종이면서도 역사적으로 분명히 우리보다 못했던 과거였건만 어떻게 이렇게 달라져 버렸을까? 역시 역사 속에서의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투쟁과 노력 등이 이러한 결과를 낳았으리라. 다소 피곤함은 있어도 별로 지장이 있다고 생각되진 않는다. 매일 1만보씩 걸었음의 덕분일까. 자신감이 생기는 일이다. カイロ(카이로:열기구) 2개, むひ(무히)ーL 등을 사다.
Apr/02(목) :
東日의 藤田(후지타) 海務부장을 만나다. 생각 외로 수월하다. 어디서 들었는지는 몰라도 ‘Good Capt.’라고 인정한다. 아마도 德丸가 아닐는지? 대아에도 연락이 간 모양이다. 결국 그만큼 남은 기간 동안 무거운 짐을 떠맡은 결과다. 몇 가지 문제점이나 의문스러운 점을 상의하고 분명히 했다. 오후에는 Broker인 伊藤忠)이토쮸)에서 두 사람이 방선했다. 東日로서는 큰 고객임으로 잘 부탁한다는 藤田부장의 사전 부탁이 있었기에 Best를 다해주었다. 무엇보다 서로의 의사를 충분히 주고받을 수 있는 언어의 소통이 더욱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제놈들도 만족스럽다고 했다. 어떻게 일본어를 그렇게 잘 할 수 있는냐는 질문은 지금까지 그네들을 상대하면서 여러 번 받은 일이다. 그러나 할수록 어려워지는 것이 또한 어학임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기도 하다. 특히 여자를 꼬실때는 당췌 쉽게 안 된다. 저녁에 다시 나가 화장품 2개와 벤젠까지 쌌다. 일단 カイロ는 시험을 해보고 보내기 위해서다.
Apr/03(금) :
08:00 출항. 입항부터 출항까지 바쁘고 피곤한 일정이었지만 그런대로 노력한 만큼의 보람을 느낀다. Piston Overhaul이 무엇보다 큰 일이였지만 잘 끝났으니 앞으로 1년간은 무사운전을 바랄뿐이다. 12월에 정기 Dock가 있다니 또 한 번의 기회는 있을 것이다. 내일이면 사진도 책도 편지도 받을 수 있으리라. 이미 보낸 편지의 답신이 오지 않은 것이 이상타. 분명 藤田부장의 말로는 편지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Tosei Kaiun”이라고 쓴 것이 잘못 아닌가도 싶다. 내일 아침 Tomogashima(友ヶ島) 04:30시 ETA를 맞추기 위해 신경을 쓴다. 강한 黑潮의 영향과 어제 막 교환한 Piston Ring 때문이다.
Apr/04 :
예정보다 30분 일찍 堺(사카이)항 도착. 大兵(오하마)부두에 접안. USDA 검사를 무사히 마치다. 앓던 어금니를 뽑은 듯 시원하다. 꼭 20여일간 너무 신경 쓰이던 작업이었다. C/O에게도 노고를 치하했다. 앞으로 일본 수입청과물은 대부분 Cold-Treatment 방식으로 한댔다. 일본 사람들이 교묘하게 미국의 통상압력에 버티기 위한 한 방편으로 사용하는 모양이다. 결국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격으로 우리만 골병드는 셈이다.
교대자 5명 도착. 부탁했던 참기름, 종이, 사진, 책 등을 받았다. 우선은 마음부터가 푸짐하고 넉넉하다. 무엇보다 그 한 장의 사진은 마치 내 식솔이 모두 한꺼번에 나를 찾아온 느낌이다. Wife의 인물이 그렇게 젊게 뵈이기도, 얘들의 이처럼 인물들이 훤하게 생겨 보이는 것에다 정모녀석의 의젓한 모습이 새삼스레 느껴진다. 두고두고 위안이 되겠다만 만약 정모가 없이 찍었다고 생각하면 역시 구색을 갖춘 것이 얼마다 다행인지 모른다. 가장 좋은 ‘調和’란 부모, 아들, 딸을 갖춘 것이란 박인환씨의 수필이 생각난다.
‘가까히 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라는 말이 심도 있게 다가온다. 무척도 밉고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어쩌면 후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으로-. 서로가 기대하는 것이 많은 것이 부부사이인지라 쉽게 체념하긴 어렵다고 했다만 갈수록 정신적인 방황이 생각보다 쉽게 또 자주 따른다는 것은 전연 예기치 못했던 일이기도 하다. 역시 인생은 살아보지 않으면 그 뜻과 의미의 참된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이 백번 옳다는 생각이다. 그저 고마울뿐이다. 저녁에 難波(난바)까지 나가서 Radio 하나 사고 오는 길에 다시 전화했다. 언제 들어도 더 좋은 약이 없음을 느끼게 한다. “저 세상에 태어나도 당신만을 사랑할 거요.”
Apr/05(일) :
일요일 -모처럼 휴일이다. 좋은 날씨다. 벚꽃 구경이라도 갈까 하다가 그만두다. 기분데로 쓸 만큼 여유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책이나 한 권 사고 영화 하나 그리고 외식 한 끼로 모든 걸 참는다. 기분에 의해서 생활을 하기엔 너무나 나이도 들지 않았는가.
많은 사람들의 안정되고 근심 없는 표정들이 부럽지만 조금도 내 스스로를 낮춤이 없이 당당히 그네들과 함께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그렇기 때문이다. 지난 31일 입항 후 계속 많이 걸었지만 오히려 힘이 남는 듯 함은 역시 건강해졌다는 증거이리라. 그놈의 ‘다리에 가려움증’ 만 없어진다면 -.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제 받은 내 가족들의 사진은 허황한 꿈에서 현실로 강하게 되돌아오게 한다. 특히 정모 녀석의 어젓한 모습은 아무리 보아도 희망적이다. 그 놈의 허황한 꿈. 곧 부자방망이이라도 주울 것만 같은 환상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날, 내 참 모습이 나타날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야 할 곳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서 더욱 그러하다. 역시 어디까지나 환상. 실현될 수 없는 환상이다
Apr/06(월) :
순조로운 양하. 비가 올 듯하더니만 결국 마치고 난 뒤부터 찔끔거린다. 닿으면 뜨고 싶고 나서고 나면 멎고 싶은 이 역마살! 분명히 병이다. 그것도 현실도피를 위한 중증의 증세가 아닌가. 계속되는 흔들림 속에 부질없이 날려버리는 시간의 침전 속에 내 인생의 마모는 계속돼 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교대자 5명을 보냈다. 그리곤 오후 5시 출항했다. 부두가에 산책 나온 My Car 族의 젊은 혹은 중년의 夫婦群들과 젊음을 Speed로 불태우는 청년들의 패기. 모두가 부러움이 지나쳐 미움마져 생긴다. 결국 보지 않으면 편해지므로 눈과 마음을 닫아 버리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빗방울이 찔끔거리는 해풍에 아직도 써늘함이 묻어있다. 불과 1시간이면 갈 수 있는 집을 두고도 마음조차 두지 못하고 다시 수천리 바닷길을 떠나야 하는 悲哀! 그래서 그런지 모두가 침통한 표정들이다.
Apr/07(화) :
늘 그랬듯이 정박 후 출항 첫날의 피곤함. 그러나 아침부터 Gyro Repeater Cover 분실사건에 대한 C/O의 보고가 더욱 짜증스럽다. 결국 오후에는 모임을 한 번 더 가지게 했고 잔소리를 늘어놓게 했다. 순간적인 사고가 돌이킬 수 없는 자신의 파멸을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좀 더 의미 깊고 실감나게 느껴주길 바라는 것이 경험상 책임상 무리인지는 모르겠다만 육상과 달리 우리 모두에게는 절실한 현실이다. Radio 얹을 자리를 만들고 방안을 시원스레 청소를 했다. 어두운 기분을 잊을 수 있어 좋다. 부하를 믿으면서도 언제나 몰래 확인하는 태도가 바람직스럽지 못하면서도 꼭 필요한 지금이다.
Apr/09(목) :
생각보다 흔들림이 심하다. 갈수록 생활에 대한 싫증 (아니 흥미를 잃어가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같은 것을 느끼는 횟수가 잦다. 해야 할 일이, 그렇다고 꼭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얼마든지 있는데도 그 놈의 고질적인 게으름이 초여름 뱀 대가리 쳐들 듯 발작을 할 땐 마치 열병처럼 스스로의 마음에 상처를 일군다. 결국은 자신을 客體로 보고 싸워 이기지 못하고 主體化한 체 체념을 해버리는 탓은 아닌지. 그렇다고 주어진 황금 같은 시간을 주체하지 못한다는 것도 언감생심 지나친 사치다. 결국 그 틈을 비집고 파고 들어오는 것은 게으름뿐이다. 그저 아무런 의미 없이 하루를 보내지는 말자. 비록 잠을 자도 그것이 내 스스로의 필요에 의한 것이라는 의식을 갖고 잘 것이며 음악을 들어도 의도에 의해서라는 분명한 목적을 설정하자. 하루의 시간을 이 세상 누구에게도 공평하게 신이 준 것이다. 이것의 이용 여하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것이다. 무엇인가 만들고 정신을 쏟고 집중해야만 시간을 잊고 살 수가 있다. 벌써 6월까지 앞서가 있는 마음의 상태를 되돌아오게 해서 현재와 일치시키지 않으면 계속 지루하다는 생각밖에 남는 게 없을 것이다.
Apr/12(일) :
Hold Cleaning 문제로 2/O와 두 시간 얘기를 했으나 결과는 시원찮다. 아무래도 살짝 돈 사람 같다. 사고방식 자체가 이해가 안 된다. TungHo 시절의 Mr. 변기훈과 같은 증세같다. 어찌보면 아주 간사한 여우같기도 한 것 같고. 스스로 신체적 결함이 있으면 틀어놓고 양해를 구하면 될 일이고, 그 상황에 따라 대처하면 된다. 어쩌면 그 자신의 무능과 무경험을 이상한 논리로 합리화시킴으로 감추려는 수작 같기도 하다. 계속 그러한 생각이라면 앞으로 문제가 된다. 그와 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와 전체와의 관계가 어렵게 된다. 출국시 길 과장이 무엇인가 Hint를 주는 듯 했으나 귀담아 듣지 않았었는데 결국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응당 그 대가는 자신이 받으면서 남과 같이는 못하겠다는 생각.
Mid-Watch가 무슨 특권인양 생각하는 잘못된 판단. 2/O라는 직책이 대단하다는 웃지 못할 우월감 등이 아무래도 비정상적이다.
Apr/14(화) :
2/O 문제가 다시 발생. 이번엔 C/O와의 관계다. Napier에서 정박 중 당직 배정에 관한 것이다. 온갖 제스쳐가 다 나오고, 얄사한 변명과 자기합리화가 죽 끓듯 한다. 정신상태를 한번 검사해 봤으면 싶다. 스스로 하선 귀국하겠다는 소리도 나오고 사표도 냈다. 그래 잘 됐다. 가거라. 가시를 두었다 칼로 째는 결과를 초래할 것만 같다. 어째서 이런 사람을 특히 이번 같은 경우에 선발해 보냈을까? 이런 녀석을 달래서 1년 데리고 있질 않고 보낸다는 원망이 내게 오겠지만 너네들도 한번쯤 당해봐라. 회사에 대한 일종의 경종이 될 것이다. 젊은 인생의 내일이 염려스럽다만 지난날 많이도 가졌었던 부질없는 아량들은 버리고 보다 냉정하고 현실적으로 처리하자 본선의 상황, 적은 인원수로 남은 10개월간의 안전한 항해를 위해서-.(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