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글쓰기 128 ㅡ 도쿄 스노우크랩 (미식여행1) (사소)
올 해 초부터 해 본 것을 다시 해보기와 안 해본 것 해보기, 이 두가지의 과제를 스스로에게 냈다. 그중 하나는 '맛'을 탐닉하는 것이다. 그동안 먹는다는 것은 생존을 위한 의무였다. 장년이 되고는 지극히 목적 지향적 삶으로 폭주하느라 늘 먹을 시간이 없었다. 그런데 도착지를 잃어버리고 서서이 정지되 느낌이 들었을 때, 사람들은 어떤 '낙樂' 으로 사나 궁금했다.
도쿄 첫 날 밤. 북해도 스노우크랩을 맘껏 먹을수 있게, 미리 서칭한 작은 가게를 찾았다. 떠나기 전 한국은 '홍게' 철이었다. 살아있는 홍게를 바로 쪄서 먹으면서 " 아! 맛살맛이다!" 하고 본말 전도의 상황을 경험했다. 내 인생은 게 맛보다 맛살 맛이 선행했다. 글을 쓰면서 인간은 개인 경험의 순서나 양으로 원조를 무의식화 하는구나 싶다. 분명 거슬러 교정될 의식도 있을 법하다. 탤런트 신구였던가? "니들이 게 맛을 알아?" 코믹한 특유의 표정이 떠오른다.
구글과 파파고는 몇 걸음 헤매지 않아도 될만큼 유용했다. 먹글씨가 써진 2층에 들어서니 쓰윽 게 냄세가 코끝에 와 닿는다. 가게 안은 작아서 열 테이블이 채 안된다. 낯선 느낌의, 초보 식도락가는 '고독한 미식가' 를 찍는 것처럼 흥미롭게 도쿄의 스노크랩 부페 집에 앉는다. 우선 사악한 가격표를 보니 냉동인데도 홍게보다 두 배라니 싶어 비판적인 마음이 든다. 여러가지 게를 각각 시키는 것보다 합리적인 ONLY 부페 오더를 내린다. 몇 분 후 소스가 깔리고 스노우크랩을 가져다 주는 데 크기가 커서 몇 쪽 아니어도 커다란 접시가 넘친다. 튼튼한 게 다리를 잡으니 차갑다. 두 손으로 바짝잡고 부러트리니 홍게보다 게 살이 툭 스르륵 빼내지진 않는다. 처음엔 미각에 별 감동이 없다. '북해도와 도쿄에서 즐기는 맛이 다를까?' 나중에 경험해 볼 일이다. 그런데 버너를 달라해서 구워 먹기를 해보니, 왜 스노우크랩은 차갑게 먹어야 하는지 맛의 차이를 확연히 알 수 있다.
스노우크랩은 구워 먹으면 수분이 빠져나가 껍질과 함께 게 살이 꼬들하게 말라버린다. 그래서 육즙을 그대로 살린 차갑고 촉촉한 상태가 풍미를 즐기는 최적의 조건이다. 한국의 홍게가 달콤하고 아기 살결처럼 부드럽다면, 북해도 스노우크랩은 묵직하고 거친데, 은근 맛의 깊이와 무게감이 있다. 식감도 결이 느껴질 정도로 더 단단하다. 참고로 도쿄 스노우크랩 부페는 첫 오더 후 60분 안에 라스트 오더를 내야하고 90분까지 식사를 할 수 있다. 시간 안에 접시가 비워진 것을 확인할 수 있으면 몇 번이고 스노우크랩을 리필해서 먹을 수 있다는 얘기다.
처음엔 느긋하게 먹다가 후반부로 갈수록, 마치 게 박살내서 속살 빼내기 대회에 출전한 것처럼 가속도가 붙는다. 마지막 주문 전 속도가 더 빨라진다. 그런데 문제는 다 먹자니 질려버릴것 같다. 그래서 무지막지한 속도로 절단된 노우크랩의 속살을 마지막 쯤에 나온 스프 속에 모두 투하한다. F1게임 마지막 코너에서 드리프팅으로 턴을 했다고 할까? 덕분에 남은 시간에, 도저히 중화 요리집에선 주문할 수 없을 정도로, 게 살만을 그릇에 맘껏 채운, 순 게살 스프를 차분하게 즐길 수 있었다. 마지막은 아이스크림 디저트가 나온다. 탄수화물을 한 숟가락도 안먹었다는 안도감으로 다행히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한 번 더 달라해서 먹을 수 있었다.
한 번도 안해본 것 해보기는 생각보다 위험하지 않다. '쓸데 없는 것이 먼 길을 가리고 자꾸 엿을 보면, 뇌를 단순하게 한다. 우선, 짧은 길에 나서 본다. 처음처럼 다시 집중해본다. 새롭고 낯선 곳으로 자꾸 가보자! 이 기록의 끝이 어디 닿을지 모르겠지만 당분간 계속 해보려한다. 비행기에서 내려 평택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첫 기록을 쓴다. (25.03.15)
첫댓글 인생삼락: 먹는 것, 자는 것, 노는 것
저는 자숙된 '러시아 스노우크랩'을 사서 뜨거운 물에 담궜다 먹는데, 차가운 채로 먹어볼 생각은 못했네요. 풍미가 더한다니 시도해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