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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오해’와 ‘거짓말’의 모멘트
―이담하 시의 ‘말’과 시적 순간
전해수(문학평론가)
이담하 시인의 첫 시집 『다음 달부터 웃을 수 있어요』는 하나의 대상에서 상상되는 두 가지 이미지를 제시하거나 두 이미지의 상충된 특징을 오가며 대상을 낯설게 배치한 다. 그것은 “냉온을 번갈아 맛본 혀”(이하 「한 번쯤 울었던 맛」) 의 감각에 도달한 두 개의 맛, 이른바 “씁쓸한” 맛과 “불안 한” 맛을 통해 느끼는 시인의 예민한 감수성에서 기인한 것 일 수도 있겠고, “두 계절을 믿지 않는”(「입속에 들어 있는 두 계 절」) 오래된 불신이 ‘오해’를 낳아 불안정한 저항의 방식으 로 시화화(詩話化)된 것일 수도 있겠으며, 때로는 “거짓에 열광하는 세상”(「거짓말 크레셴도」)을 향해 ‘진실’과 ‘거짓말’의 경계를 수시로 무화하고 발아된 말의 씨앗을 두 개의 이미 지로 나누면서 도달할 수 없는 세계와의 불화를 드러내는 방식을 취하고 있기도 한 듯하다. 그래서인지 두 가지의 화 110 합할 수 없는 이미지의 표출로부터 출발하고 있는 이담하 의 시는 기이하고도 이색적이다.
이와 같이 두 개의 이미지와 ‘말’에 대한 시인의 인식은 이담하의 시에서 자주 등장하는 언어인 ‘거짓말’과 ‘진실’에 서 쉽게 포착되는데, 한 대상의 이미지를 따라가며 의미를 추적하기보다는 낯설게 부딪히는 한 대상의 상충된 이미지 를 발견하여 선뜻 두 이미지의 충돌을 무심한 태도로 보여 주고 있어서 특징적이다. 요컨대 이담하의 시는 ‘말’에서 혹 은 ‘말’을 통해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언어적 태도를 고수한다. 이담하 시인에게 있어 ‘말’은 ‘시어(詩語)’와는 다 른 양상을 띠는 것이기에 이담하의 시는 ‘시어’라기보다는 ‘말’의 인식에서 유발된 시의 언어 그러니까 문자로 안착된 규범적 언어 이전의, ‘말’로 살아 꿈틀거리는 일상의 언어에 가까운 ‘말’의 언어를 보다 친밀하게 사용하고 있다. 한 예 로 술어의 사용에서 ‘-어요’체와 ‘-습니다’체, ‘-이다’체가 수시로 뒤섞이고 있는 그의 시는(시집의 첫 시 「사과가 가득한 방」은 특히 술어 사용이 주목된다) 대상의 이미지를 낯선 두 가지 혹은 세 가지의 ‘말’의 언어로 쉽게 바꾸면서 ‘말’에 대한 독 특한 인식 체계를 ‘술어’로써 제시한다.
이처럼 이담하 시의 언어는 하나의 대상에 두 가지의 시 적 이미지가 나뉘고 이내 다시 하나로 뭉치려는 시도를 자 주 보여 준다. 마치 “피(皮)”(「바늘이 가리키는 본질」)에서 ‘피 (皮)’의 내부인 ‘피(血)’를 동시에 의식하고 있는 것처럼 이담 하의 시적 언어는 무의식적인 습성에 가까운 ‘말’의 언어를 통해 매우 생경하고 낯선 두 이미지 사이 새로운 시의 ‘말’ 로 다시 태어난다. 이 점은 시인이 흔하게 사용하고 있는 말의 두 가지 속성인 ‘거짓말’과 ‘진실’의 양립적인 구분과 혹은 ‘웃다’와 ‘울다’의 대척적인 감정마저도 한자리에 놓거 나 이질적인 감정으로 이분화하고, 한 계절보다는 두 계절 을 번갈아 오가며 두 계절을 서로 섞고 분해하는 것을 반복 하는 방식으로 표출된다.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이 물에서 나왔다고 믿었다
물의 머리를 땋고 물의 치아를 닦고 얼굴을 바꾸려고
자신들의 얼굴에는 물고기와 날벌레의 파문이 있다고 믿 었다
여름옷을 입고 있는데
거울이 깨지면 겨울옷을 입고 있는 허상
오른손으로 열고 왼손으로 닫고
―「완벽한 모습」 부분
위 시 「완벽한 모습」은 “웃는 얼굴”과 “우는 얼굴” 그리고 “여름”과 “겨울”, “오른손”과 “왼손” 등 양가적인 것들을 한 자리에 들여 궁극적으로는 소멸과 탄생의 한 공간(“물”) 안 에서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 예컨대 “물”(水)은 모든 사물이 뒤섞여 사라지거나 혹은 여러 사물로 나뉘어 탄생하는 화 합의 공간으로 제시된다. “완벽한 모습”은 두 개의 이미지로 나뉘거나 분해된 양가적인 것들이 또한 일체(一體)의 공 간(“물”) 안에 놓이게 됨을 보여 준다. 그러나 두 이미지의 충돌하는 양상은 이에 앞서서 전제된다. 이른바 “여름옷을 입고 있는데” “겨울옷을 입고 있는 허상”을 보거나 “오른손 으로 열”어 “왼손”을 “닫는” 낯설고 이질적인 것들을 데칼 코마니처럼 펼쳐 낸다. 이담하 시인에게 세계는 비극과 희 극처럼 둘로 나뉜 것이며, 이들은 하나(삶)로 향해 가더라 도 여전히 둘의 모습이 전제되어 있기에 이 둘은 아쉽고 부 족한 세계지만 “완벽한 모습”의 세계를 찾아 나서는 시도를 반복한다.
그러므로 이담하 시인에게 “완벽한 모습”은 모든 이질적 인 대상이 “물”에서 나와 “물”로 되돌아가는 것과도 같아서 그저 대척되고 이질적인 것으로 ‘남겨지는 것’은 결코 아니 며, “거울” 앞에서 깨닫게 되는 “거울” 안의 모습으로 하나 의 진실로 비춰진다. 이른바 “물고기와 날벌레”를 동시에 “자신들의 얼굴”로 여기는 것은 “거짓말” 같지만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이어서 진정 새빨간 “거짓말”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진실 너머의 “허상”은 이담하의 시에서 “진실” 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써 목도된 것이기에 이 “허상”은 “스스로 보는 법을 모르는 실체”에서 움트며, “보 는 법”은 매우 중요한 이담하 시의 (또렷한) 시선(視線)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 보는 법을 모르는 실체는
허상에서 다듬는다
―「완벽한 모습』 부분
그런데 이담하 시인이 “스스로 보는 법”을 “허상”에서 찾 는다는 점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이담하 시의 “허 상”은 ‘오해’와 ‘거짓말’의 언어를 잉태하고 있기 때문에 허 상에 머물지 않고 실체가 가능한 것이 된다. “허상”에 관한 시인의 돌발적인 인식(말)의 코드는 “완벽한 모습”이라는 시의 제목과도 연관된다. 역설적이게도 이질적인 두 개의 세계가 한자리에 있고 이 세계는 허상이기에 (가능한) ‘완 벽함’의 세계를 지향한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거짓말’이 수시로 등장하는 이담하 의 시는 “서정적 거짓말”(「입속에 쌓이는 말줄임표」)을 향해 나 아간다. ‘거짓말’ 이면(裏面)에 자리한 ‘오해’의 세계는 이담 하 시인이 ‘울다’와 ‘웃다’의 상반된 감정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 ‘진실’ 쪽보다는 자연스레 ‘거짓말’로 ‘오해’를 유발하는, ‘불확실함’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말(언어)’의 세계에 의 해, 그 윤곽을 드러내게 된다.
문밖에 걸려 있는 양말 한 짝
선물은 발가락 수를 가리지 않고
양말 속으로 들어간다
착한 아이만 선물을 받는다는 거짓말
나는 나쁜 아이였는데 선물을 받았고
양말을 뒤지는 사람이 아닌
그 양말에 선물을 넣는 사람이 되었을 때
나쁜 아이도 선물을 받는다는 오해 하나가 풀리는 일
―「선물에 대한 오해」 부분
아이의 세계를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라는 두 가지 방식으로 나누는 것은 “착한 아이”와 “나쁜 아이”의 구분이 오직 ‘선물을 받는 일’에서 판단된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다. “착한 아이”에 대한 이 공공연한 ‘오해’는 방문 앞에 걸 어 둔 양말의 “발가락 수를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인 ‘진실’ 로 바뀐다. 그러나 선물을 받는 아이의 입장이 아니라 선 물을 주는 사람의 입장이 되었을 때 ‘오해’는 간단없이 풀 린다. 선물을 받는 입장이 되어 보면 결국 “착한 아이”라는 ‘오해’는 ‘거짓말’에서 생겨난 것임을 알게 된다. 위 시는 “착 한 아이만 선물을 받는다는 거짓말”에 대해, “문밖에 걸려 있는” 양말의 거짓된 진실에 대해, “오해 하나가 풀리는 일” 을 찾으려는, ‘거짓말’과 ‘오해’의 관계를 묻고 있다.
부근에서 발견되었다
실종자와 동행했던 것은 할 말이 많다
주인을 흔들어 깨우는 것처럼 한동안 울리다가
도착한 카드 몇 통
경찰은 패턴을 풀고 측근을 골라내고
최근의 말과 과거의 말을 선별했다
거짓말 같은 참말, 뜸 들이다 놓쳐 버린 말
끝내 마주 보지 못한 말은
화학적 감정을 유발하는 보고 싶은 한 줄
내밀한 문장은 파장이 길다
비밀의 나쁜 적은 공개가 아니고 논란으로
이번 주는 신상 털기 주간
한 사물을 충전하면
실종자와 주소가 같다
폰 케이스를 자주 바꿔 주고
몇 시간씩 눈을 맞추고 터치했을 실종자
반려 사물을 대답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밀어서 잠금이 해제되는 유서를 흘렸을 것이고
날짜를 저당 잡혀
끝에 가서 비상 탈출을 시도했을 것이다
진지하게 만들어져서 진지하게 버려진 사물
낑낑거리는 개처럼 벨 소리를 울리고 조용해졌다
―「반려 사물」 전문
사물을 주시하며 사물을 통해 ‘말’을 찾는 시인의 언어 인식은 “거짓말 같은 참말”, “끝내 마주 보지 못한 말” 등 무수한 사건들에 얽힌 “최근의 말과 과거의 말을 선별”하는 일에 주목한다. 위 시 「반려 사물」은 이러한 ‘말’의 관계를 “실종자와 동행했던” 반려 사물을 통해 드러내고자 한다. 반려 사물은 반려견이거나 반려 고양이가 아니라, 감정(듣 는 말)이 배제된 ‘핸드폰’으로 상정하고 있다. 핸드폰을 소지 했던 “실종자”는 사라지고 “부근에서 발견”된 반려 사물(핸 드폰)만이 “한동안 울리다가” 곧 그 누구도 마주하지 못하고 는 끝내 배터리가 소진되어 조용해진다(꺼진다). 반려 사물 (핸드폰)에 대한 기대는 경찰이 “패턴을 풀고” “최근의 말과 과거의 말”을 찾아내는 순간에 존재한다. “실종자”는 어디 에 있나. “밀어서 잠금이 해제되는 유서”와 “폰 케이스”로 내밀하게 관계하는 사정과 사라진 육신은 찾을 수 있을 것 인가. 어쩌면 반려 사물(핸드폰)의 “신상 털기”에 의해, “화 학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을 던져서, “실종자”를 무 사히 수색할 수 있을 것인가. “실종자와 주소가 같”은 반려 사물은 “끝내 마주 보지 못한 말”을 내려놓고 마침내는 “진 지하게 버려진 사물”이 되고 만다.
새가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사과
새와 당신을 바꿀 수 없다고 거짓말할 때
새소리를 들을 수 있죠
새는 단맛에 익숙하고
당신은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할 때
사과는 가장 맛있죠
사과 중에 가장 큰 사과는 지구라는데 따기가 힘든가요
꼭 그렇지만은 않아요
거짓과 진실의 업적으로 익어 가는 사과
3D로 보면 코앞에서 떨어질 때도 있고
낙하지점을 잘 찾기만 하면 한꺼번에 떨어지는 사과
아무것도 안 하는 우리가 따죠
새가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사과
새와 당신을 바꿀 수 없다고 모처럼 진실을 말할 때
거짓과 진실의 중간에서 사과가 떨어지네요
―「새가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부분
위 시 「새가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은 나무 위의 “사 과”를 중심으로 “새”와 “당신”의 “진실”과 “거짓말”에 귀 기 울이고 있다. 사과의 “단맛”에 대해 당신이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할 때” 새는 이미 “단맛에 익숙”해 있고, “사과”는 “거짓과 진실의 업적으로” (생각 없이 무르)익어 간다. 그 런데 나무 위의 저 “사과”는 여전히 “새가 좋아하고 당신” 도 좋아하는 ‘사물’이다. “새가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한꺼번에 떨어지는 사과”는 “거짓과 진실의 중간”에서 “아 무것도 안 하는 우리” 코앞에서 맘껏 “익어” 간다(그러나 이 것은 3D로나 확인이 가능하다). “거짓”에 익숙한 “사과”는 떨어 졌으며,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려 깎”이고, “단도를 찔 러 넣”은 단맛이 “가장” 좋은 사과가, “낙하지점을 잘” 찾아 낸 덕분에, “거짓과 진실의 중간”쯤에서 드디어 맛있는 낙 과(落果)로!
위 시는 사과가 익고 사과가 떨어지고 사과를 깎아 식탁 에 올리는 일련의 과정을, 사과를 좋아하는 땅 위의 ‘당신’ 과 저 하늘의 ‘새’를 호명하여 나무 위의 진실과 거짓을 둘 러싼 ‘오해’를 제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사과”는 낙과 이전 에는 새가 좋아하고 낙과 이후에는 당신이 좋아한다는 ‘말’ 인데, “사과” 때문에 새와 당신을 바꿀 수는 없다! “새와 당 신을 바꿀 수 없다”는 ‘말’이 “거짓말”이 아니라면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인 “사과”의 존재는 가장 맛있는 순간이 낙 과의 시절이다.
새와 당신의 감정이 사과를 좋아한다는 사실로 한데 엮 여 나에게는 모두 연민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당신을 새와 바꿀 수 있다면(혹은 없다면) “새소리를” 듣듯이, 당신의 소리 도 새소리처럼 나에게로 와 닿을 것이다(혹은 닿지 않을 것이 다). 새와 당신이, 파노라마처럼 나에게로 흐르고 이내 낙과 로 새는 멀어지고 새처럼 당신도 멀어진다.
입속을 들여다보는 의사는 좁쌀만 한 결절에 즐거워요
성대결절입니다
어쩐지 나는 로맨틱한 마음이 들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의사가 입을 열어 다섯 번째 계절과 숨은 계절을 보여 준다
결절된 성대 부근을 보면
상처가 보여 주는 용례는 자주 갈라진다고 해요
입속에 두 개의 사과가 있다고 의사는 정정해요
빈방에 통증이 숨어 있다고 또 정정해요
두 계절의 성분은 무엇입니까
의사는 자기 가슴을 또 한 번 열어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계절을 보여 준다
당신이 만든 계절과 신이 당신을 만든 계절 중에
어느 계절을 믿는지 묻는다
저는 제 몸의 온도와 속도만 믿어요
통증은 하나의 계시라서
누구나 믿을 수 있고 자란다는 특징이 있어요
입속을 들여다보는 의사는 빈방을 보고 즐거워해요
방에 피 묻은 붕대가 가득하다고 말해요
사과가 가득하다고 정정을 해요
나는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아요
방은 이제 무엇으로 가득한가요
―「사과가 가득한 방」 전문
시집의 맨 앞자리에 놓인 위 시 「사과가 가득한 방」은 입 안의 붉은 목젖과 붉은 천장이 “사과가 가득한 방”으로 제 시되고 있다. 예컨대 “성대결절”로 갈라진 상처 입은 “두 계 절의 성분”은 “돌아오는 계절과 돌아오지 않는 계절” 혹은 어디에도 없는 “다섯 번째 계절과 숨은 계절” 사이에 위치 하고 있으며, 상처로 얼룩진 입안은 붉은 “사과가 가득한 방”으로 인식된다. 무릇 상처로 더욱 붉어진 목젖과 입안은 핏빛으로 여울져 빨간 사과가 그득한 방으로 비유된다.
그런데 “성대결절”을 진단한 “의사”는 “통증은 하나의 계 시”임을 증명하고자 한다. 의사의 정정(訂正)으로 일순간 입 안의 “통증”은 “방”과 “문”으로 구분되는 세계의 안과 밖의 통로를 통하게 되고, “사과가 가득한 방”은 ‘(방)문’에 의해 두 개의 세계로 분리되게 된다. 곧 “제 몸의 온도와 속도”로 방은 두 개의 세계를 고통스럽게 오간다. “방으로 들어가 방문을 닫”으면 “사과가 가득한 방”은 “제 몸의 온도와 속 도”에 의해 더욱더 핏빛 사과로 자란다(커진다).
계절과 결절이 붉은 입안의 상처로 나뉜 “사과가 가득한 방” 안과 “문” 밖의 두 세상에서 시인은 상처를 그대로 응 시하지 않고 희화적(戱畵的)으로 승화시키고 있다. 아담의 목젖처럼 혹은 사과를 삼키다 목에 걸린 동화 속 공주처럼, 동화적 상상력을 덧대어 핏빛 상처를 “사과가 가득한 방” 으로 묘사하고 있다. 특히 결절된 성대로 입안의 사과(성대) 가 두 개로 나뉘는 것은 두 개의 계절로 갈라진 상처의 결 절을 역(易)으로 드러낸다. 이외에도 “사과가 가득한 방”의 “사과”는 여러 측면으로 이담하의 시에 자주 등장하고 있는 데, 시 「새가 좋아하고 당신이 좋아하는」 외에도 예컨대 「사 과는 용서받을 때까지」는 “사과”와 ‘사과(謝過)’를 중의적으 로 다루면서 ‘용서’의 의미를 “늦가을 사과나무”의 자세로 겹쳐 읽고 있다.
겹겹이 된다는 것, 오래 참고 참았다는 뜻으로
나를 벗기지 말라는 말엔
당신을 먼저 울게 할지도 모른다는 말
(중략)
뽀얀 눈물은 나를 그냥 두라는 말
오히려 당신은 당신의 손버릇에 부끄러워 울 수도 있지만
나를 그냥 놔둔다면
당신이 맡겨 두었던 슬픔 때문에 울게 하지는 않아요
―「맡겨 두었던 슬픔」 부분
그런데 이담하 시인에게 ‘말’은 행동을 유발하게 하는 기 준이 되어 주기도 한다. ‘말’의 또 다른 표현인 ‘행위’는 그러 므로 “그냥 놔둔다면” 누적된(맡겨 둔) “슬픔”이 되어 마침내 는 울음을 쏟게 되는 것이다. 시인에게 “눈물은 나를 그냥 두라는 말”이며, 껍질을 “벗기지 말라는 말”은 “당신을 먼 저 울게 할지도 모른다는” 다른 표현이며, “오래 참고 참았 다”는 뜻으로 사용된 “겹겹이 된다”는 표현은 슬픔을 억제 하는 의미의 ‘말’로 전이된다. 이처럼 이담하 시인은 ‘말’을 통해 행동을 결정짓고 이 ‘말’은 다시 자연스럽게 시의 언어 가 된다.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잉태하는
오후가 어둠 쪽으로 머리를 틀어요
―「오후 3시에 할 수 있는 일들」 부분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은 진실인가 거짓말인가. 위 시 에서 “오후 3시”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수시로 잉태하는 한낮의 뜨거움 앞에 서는 것이 다. “오후 3시”는 태양이 정점을 지나 다시 기울어지는 한 낮의 시간이며 “어둠 쪽으로 머리를 틀”려는, 다른 시각의 시작점이다.
질량보다 무게가 변하는 거짓말,
기계적 결과에 주목한다
질량도 늘릴 수 있는 거짓말,
거짓말의 꼬리는 왜 밝혀지거나 밟히게 될까
거짓말은 노랗거나 푸르지 않고 왜 새빨갛다고 할까
반복해서 들으면
시처럼 들려서 쉽게 용서되는 거짓말,
언제부터 입술에 접안되었을까
화학적 감정을 유발시키는 입
누가 내 아가리를 막아 주오
누가 내 아가리를 찔러 주오
누가 내 아가리를 뽑아 주오
믿기 위해 의심하고 의심하기 위해 믿는 합리적 의심과
거짓에 열광하는 세상
네발로 걷는 것들이 지배할 거야
그들이 거짓말을 이해한다면
―「거짓말 크레셴도」 전문
“크레셴도”는 점점 커지는 속도를 의미한다. “거짓말”도 크기가 존재한다면 “거짓말 크레셴도”는 걷잡을 수 없는 거 짓말의 확산에 다름 아니다. “진실에 가까운 거짓말을 잉 태하는” 거짓의 속도를 제어하고자 화자는 “화학적 감정을 유발시키는 입”을 “막아 주”고 “찔러 주”고 “뽑아” 달라고 호소한다. 그런데 “입술에 접안되”는 거짓의 ‘말’들은 때로 “시처럼 들려서 쉽게 용서”를 구하고, “거짓말”의 크레셴도 는 시를 열광하듯(?) “거짓에 열광하는 세상”을 만들고 만 다. 이처럼 “무게가 변하는 거짓말”의 크레셴도는 “믿기 위 해 의심하고 의심하기 위해 믿는 합리적 의심”을 지척에 둔 다. 태양이 뜨고 지는 자연현상처럼 자연스레 반복되고 커 지는 이 거짓말은 “네발로 걷는 것들이 지배할 거”라는 “질 량도 늘릴 수 있는 거짓말”로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부끄러움은 하나의 입, 할 말이 없다
몸의 가장 부끄러운 곳
말하는 입과 닮아서
입을 봉한다는 것은 소리를 가두는 것
입을 닫고 있을 때
조용히 하라는 소리가 몸속에 쌓여
일어날 때보다 앉을 때 조용히 하라는 쉬,
오줌을 누면서 눈과 귀를 떼어 놓는다
―「조용히 하라는 쉬」 부분
이담하 시의 ‘말’의 성찬은 종국에는 “조용히 하라는 쉬” 에 이르러 “몸의 가장 부끄러운 곳”과 대면하고 있다. “입을 닫고 있을 때”에야 비로소 ‘오해’와 ‘거짓말’의 시적 순간이 “눈과 귀를 떼어 놓”게 된다. “부끄러움”의 “입” 하나 겨우 할 말을 거르고 걸러서 비로소 시의 언어로 옮겨 적는다. “일어날 때보다 앉을 때 조용히 하라는” “쉬”의 언어로, 입 의 할 말 없음에 시인은 조용히 귀 기울일 것이다. 이담하 의 시는 「조용히 하라는 쉬」에서 다시 ‘말’이 깨어나고 있다. 이담하 시인의 ‘말’이 그렇게 ‘시어’가 되는 순간이 도래할지 니. 시인의 다음 시집은 어떤 언어일까. 성급하지만 이담하 시의 두 번째 ‘말’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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