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여행 1박 2일
정동호
11월 마지막 날 아침 8시, 정해진 장소에 아홉 명이 모였다. 농고 동창생 여섯이면 가족까지 열두 명이라야 되는데 이런저런 핑계로 세 부인이 빠졌다. 감기몸살 등 건강상 이유다. 나잇값을 제대로 하는 모양이다.
강진, 목포, 해남, 여수를 잇는 1박 2일 남도여행 길에 올랐다. 강진 영랑 생가와 시문학파기념관, 남미륵사와 다산초당을 둘러보고 목포로 들어갔다. 남농기념관과 자연사박물관, 유달산과 갓바위 야경까지 첫날 일정이다.
둘째 날은 목포대교를 지나 해남으로 간다. 두륜산 케이블카와 대흥사, 강진 가우도 구경에 이어 여수 오동도를 한 바퀴 돌아 나오는 여정이다.
어줍은 몸짓이며 굼뜬 발걸음들이 고만고만하다. 화장실도 자주 들려야 하고 식사 시간도 늦어지기 일쑤다. 차에서 기다리는 사람 사정은 내 알 바 아니란 듯, 담배까지 피우며 제 할 짓 다 한다. 노티가 잘잘 흐른다. 여행도 건강이 뒷받침 돼야 하는데 이제 한계점에 이른 모양이다.
영랑(김윤식)생가는 문간채에 이어 본채와 사랑채가 아기자기하여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하다. 단정한 초옥이 옛 반가의 귀티를 숨김없이 보여준다. 뜰 안에는 꽃 한 송이 화들짝 피어 손님을 반갑게 맞는 듯하다. 마루에 걸터앉아 ‘모란이 피기까지 삼백 예순 날 한양 섭섭해 우옵내다.’ 시구를 읊조린다. 뒷마당도 돌아보고 우물터며 장독대도 기웃해본다.
시문학파기념관은 시간에 쫓겨 수박 겉핥기로 떠나 아쉽다. 그런 중에도 변영로의 ‘논개’ 시화 앞에 우르르 몰려든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한목소리로 낭송한다. 진주인의 본색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는 정열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 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 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하 생략~
다산茶山 초당을 찾았다. 차에서 내려 가파른 숲길 따라 20여 분 숨 가쁘게 오르자 소나무 숲속에 아담한 도리 단층 기와집이 객을 맞아드린다. 조선 시대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대학자 정약용 선생이 유배 생활을 했던 곳이다. 만덕산 기슭에 자리한 다산초당. 유배 생활 18년이 결코 아깝지 않은 세월이려니, 『목민심서』『경세유표』 등 600여 권의 방대한 책을 저술한 집필실이 아니던가.
기회 따라 오가며 벼슬자리 지켰다면 여생은 편했을지라도 후세에 이름 석 자 남겼을까. 원망에 사무쳐 자책만 했었다면 책 한 권 흔적이나 있으랴. 멀리 강진만 바다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초당에 앉아 실사구시의 실학사상을 묵상해 본다.
이틀 동안 남도 오백 리 길을 누비고 다녀도 차가 막히는 곳이 없다. 교통이 원활하여 좋긴 하나 가라앉은 경기 탓인가 하여 한편 마음이 착잡하다. 유달산 기슭에서 바라본 목포시가지는 추수 끝낸 들판처럼 쓸쓸함이 느껴진다. 눈물의 항구 목포가 생기발랄한 항구도시, 무역도시로 탈바꿈할 시대를 기대해 본다.
목포는 예향의 도시다. 남농 가문뿐이겠는가. 여류소설가 박화성, 극작가 김우진, 목포의 눈물 이난영 등 걸출한 예술인들을 배출한 도시다. 자연사박물관, 남농기념관, 목포 문학관, 난 전시관, 미술관, 목포근대역사관 등은 부러운 시설들이다. 문학관 하나 없으면서 예향이라 자랑하는 진주와 비교해 본다. 목포보다 인구가 많다고 우쭐대는 생각이 부끄럽다.
해남지방을 지나는 한 시간 내내 널따란 황토밭이 퍽 인상적이다. 달착지근한 고구마가 입맛을 다시게 한다. 곳곳에 펼쳐진 푸른 배추밭은 흡사 캘리포니아 포도원 지대를 여행하는 듯하다. 길가에 트럭을 세워놓고 수많은 농민이 모여 수확 작업에 여념이 없어 뵌다. 고된 작업이지만 열심히 일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그나마 농촌의 생기를 찾는다. 배추 시세나 좋아야 할 텐데…, 괜스레 걱정해 본다.
여수에 들어서니 딴 나라 같다. 산업도시 관광도시답게 차량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엑스포공원에는 관광객들의 붐빔이 시골 장터를 방불케 한다. 토요일 저물녘이라 그런지 해상케이블카를 타려고 줄 선 행렬이 장사진을 이룬다.
오동도 동백섬은 보고 또 봐도 새롭다. 오르내리는 발걸음이 가볍다. 동백나무 숲길 따라 도란도란 걷고 싶다. 해안에 부딪혀 솟구치는 포말을 보면서 파도 소리에 귀 기울이고 싶다. 동백꽃 만발할 때 다시 찾으리라 다짐하며 섬을 빠져나온다.
맛 집 또한 여행의 멋이 아니던가. 몸은 늙어가도 입맛은 변하지 않은 게 그나마 다행이다. 강진 읍내의 불고기를 곁들인 오곡밥 정식, 목포 시내의 싱싱한 해물탕, 대흥사의 진수성찬에 돌솥 밥. 입소문으로 널리 알려진 여수 ‘게장 정식’ 다들 남도 특유의 맛깔과 푸짐함에 흐뭇해한다.
다음을 기약할 수 없을 것 같은 아쉬움 속에 ‘서로 건강 조심하라’ 손 흔들며 헤어진다.
첫댓글 정동호 선생님 ! 제 고향을 잘 다녀오셨군요. 저는 고향이 전남 해남이고, 강진은 처가가 있습니다. 남도 지방이
겨울에도 따뜻하고, 살기 좋은 곳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동호 선생님 !
임재문 선생님, 안녕하시지요. 남도여행 1박 2일 뜻있는 여행이었습니다. 친가와 처가 그리고 지금 사시는 곳을 두루 거친 셈입니다. 오래 기억 될 추억들 듬북 담아 왔습니다. 연말 건강 조심하시고 평안 하십시요.
감사합니다. 회포를 풀어봅시다. 언젠가는 그럴 수 있겟지요.
회장님께서 정말로 오랜세월전에 학창시절에 친구들과 함께하신것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