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늦게 출발했지만 비행기는 거의 제 시간에 델리에 도착했다. 날씨가 좋았던 탓이다.
비행 화면이 고장 나 답답했지만, 에어 인디아(Air India)의 기내식은 먹을 만했고, 승무원도 친절했다.
내가 채식자라고 하자 약간 당황한 듯했는데 아마 메뉴가 없었던 게 아닐까 싶다.
옆에 앉은 인도 아주머니가 요즘은 인도에도 채식자가 드물다며
자기도 채식인데 한국은 온통 고기 메뉴밖에 없더란다.
나의 맞장구에 기분 좋아하며 내게 인도에 요가(Yoga) 하러 가냐고 물었고
자신도 요가를 한다며 약간 부끄러워했다. 살이 좀 쪄서 그랬던 것 같다.
승무원은 이것저것 고기가 섞이지 않은 식단을 나름껏 꾸렸다. 먹는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더 정확하게는 먹는 것은 중요하지 않아야 한다.
수행자에게는.
인디라 간디 공항의 상징물은 바로 수인(手印)이다.
공항의 입구라고 할 수 있는 넓은 광장에 큰 손바닥으로 각종 수인을 맺고 있는 조형물을 처음 보았을 때
대단한 감동이자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때 지나가던 인도인이 웃으며 친절하게 사진을 찍어 줬다. 와, 역시 불교의 나라 인도구나.
그런데, 인도를 상징하는 델리의 인디라 간디 공항에 이렇게 불교의 상징을?..
사실, 수인(手印)은 불교의 전용 상징물은 아니다.
힌두교 최고의 신 로드 시바 Lord Shiva(시바 神)도 검지를 엄지와 붙인 수인(手印)을 맺고 있다.
외국에 들어갈 때 입국 심사는 운(運)이 따라야 한다.
내 앞의 외국인까지 많은 시간을 소요하며 꽤 까다롭게 입국심사를 하더니
내 차례가 되자 볼 것도 없다는 듯 이곳저곳 도장을 쾅쾅 찍어 공손하게 여권을 돌려준다. 단골이 된 기분이랄까...
덥고 습한 공기가 얼굴과 온몸으로 대책 없이 밀고 들어왔다.
빵빵 크락숀 소리. 먼지와 시끄러운 사람들. 영국식으로 뚝뚝 거칠게 끊어지는 영어. 완전한 7월의 인도다.
우리는 다음날 새벽 4시 30분에 호텔에서 출발했다. 날씨는 맑았다.
3,400만명이 사는 델리의 교통상황은 미래를 예측할 수 없다.
우리는 히말라야 서쪽 끝 험준한 캐시미르와 인접한 마날리까지 무려 500킬로미터 산길을 올라가야 한다.
가는 길에 약간의 변수가 있더라도 이른 새벽에 출발했으니
많이 걸려도 15시간쯤 올라가면 마날리 요가 니케탄 아쉬람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마타지와 여유 있는 저녁식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라리타 마타지는 인도 남부 벵갈루루 출신이다.
부유한 브라만 가정에서 태어난 마타지는 17살 무렵인 1974년에 마하라지를 만나기 위해
언니와 함께 인도 북부 히말라야 끝에 있는 수행자들의 도시 리시케시로 향했다.
벵갈루루와 리시케시는 2,500킬로미터 떨어져 있으며 지금도 차를 타고 꼬박 이틀 동안 달려야 하는 거리다.
여기에는 전설같은 일화가 전한다.
두 자매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께 히말라야의 한 수행자가 자신들을 부르고 있다고 말하곤 했는데
어느날 우연히 큰 오빠인 칸야쿠마리 스와미(Kanyakumari Swami) 지의 서재에서
마하라지 지(Maharaj Ji)의 책 『영혼의 과학(Science of Soul)』에 나오는 마하라지의 사진을 보자마자
"이분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 바로 그 요기 마하라지이십니다"라며 오빠에게 간청했고,
그들의 오빠는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두 여동생을 데리고 1974년 2월 리시케시 아쉬람에 도착했다.
그 뒤, 두 자매는 다시 벵갈루루의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고, 지금까지 수행자로 지내고 있다.
특히, 동생인 라리타 마타지는 1977년 6월에 히말라야 파할감 아쉬람에서 처음으로 12시간 사마디에 들었다.
이후 점점 사마디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났는데
1978년에는 리시케시에서 하루,
파할감에서 3일, 1979년에는 5일, 리시케시에서 7일, 1980년에는 8일, 1982년 델리에서 9일,
그리고 1983년 델리 요가니케탄 아쉬람에서 10일간 사마디에 들었다.
이때 마하라지는 사마디 상태의 마타지에게
154가지의 신성한 빛을 통해 영혼과 절대 영혼의 직접적인 체험을 경험하게 하며
그녀에게 요가의 모든 것을 전수했다고 선언했다.
“수많은 신도들이 이 요가 지식을 배우러 왔지만,
나는 오직 이 여신(女神) 수시 랄리타 지만을 완성시킬 수 있었다.
오늘 그녀를 완성시킴으로써,
나는 스승에 대한 나의 빚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졌다.”
마하라지의 나이 98세 때의 일이다.
일본인 제자 기무라선생에 의하면, 이 때부터 마하라지는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하는 듯,
더 이상 요가를 수련하지 않았고 급격하게 노화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2년 뒤인 1985년, 정확히 100세의 나이에 리시케시 아쉬람에서 완전한 적멸지 사마디에 들었다.
돌아가신 뒤에도 무려 10일 동안이나 몸의 열기가 식지 않아
얼음으로 몸을 식혀 생전에 미리 준비하라고 한 명상홀에 안치했다고 한다.(계속)
첫댓글 너무 재미있습니다. ^^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