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귀의 복수로 탄금대에서 진 신립장군
신립(1546-1592)은 조선 중기의 무신이며 권율의 사위이다.
권율이 관상을 잘 보아 신립의 비범함을 알아보고 사위를 삼았다고 한다.
신립은 임진왜란 때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를 임명받고 충청북도 충주시 탄금대에서 왜군과 싸우다 패하여 자결하였다.
왜군과 접전하던 당시 신립의 병사들은 탄금대 북쪽의 절벽에서 화살을 쌓아놓고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활시위가 점점 뜨거워지자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리며 강물에 열을 식혔다고 해서 그곳을 열두대라 불렀다고 한다.
탄금대는 신라시대 우륵이 가야금을 연주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산세가 평탄하고 남한강이 흐르는 경치가 돋보이는 곳이다.
탄금대는 충청북도 충주시 칠금동에 있으며, 신립 장군의 잘못된 선택이 일으킨 안타까운 사연이 전한다.
조령에 진을 쳤다가 탄금대로 옮긴 사연
신립은 산에서 사냥하다 길을 잃고 헤매게 되었다.
그러다가 소복을 입은 여인이 홀로 있는 집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여인은 “저희 집 종의 아들이 식구들을 모두 죽이고 저만 남았습니다. 종의 아내가 되든지 종의 손에 죽든지 결정해야만 합니다.”라며 울먹였다.
신립은 여인의 사정을 딱하게 여기고 종을 처치하고자 그 집에서 묵었다.
한밤중에 종이 나타나니 신립이 화살을 쏘아 종을 죽이고 여인을 구해 주었다.
여인은
“이제 저는 의지할 데가 없습니다. 제발 저를 거두어 주시지요.”라며 간곡히 부탁 하였지만
신립은 “나는 이미 혼인한 몸이오. 낭자를 데려갈 수 없소.”라며 거절하였다.
거절을 당한 여인은 이튿날 집에 불을 지르고 자결을 하였다.
집으로 돌아온 신립은 이 일을 장인인 권율에게 전하였는데 잘못했다며 꾸지람을 들었다.
한편,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신립은 삼도도순변사(三道都巡邊使)로 임명을 받고 산세가 험한 조령에 진을 쳤다.
그날 밤 꿈에 죽은 여인이 나타나
“험한 조령보다는 드넓게 펼쳐진 충주평야에 진을 치는 것이 왜적을 소탕하기 좋을 것입니다. 제 말을 따라주십시오.”라고 말하였다.
신립은 여인의 말을 믿고 충주 달천강 탄금대로 진을 옮겼다.
탄금대에서 왜적과 전투를 하다가 아쉽게 패하게 되니 신립은 스스로 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후세 사람들은 여인이 한이 맺혀 원귀(寃鬼)가 되어 신립을 죽게 한 것이라 여긴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신립이 충주 탄금대 전투에서 패한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지만, 원귀가 된 여인의 한풀이적 성격이 강하다.
신립이 전투에서 패배한 것은 무능해서가 아니라 여인 때문에 그런 것이라는 이면의 이야기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