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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11 주일설교
일흔 이레 동안 벌어질 하나님의 계획
다니엘 9:20~27
우리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역사란 시간 안에서 진행되는데 하나님은 시간 밖에 계십니다. 시간이란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시간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시간 바깥에 계시는 영원한 분입니다. 영원하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계 22: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라
영원하신 하나님에 비해 시간 안에 사는 사람은 한순간 존재하다가 사라집니다. 사람은 과거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만, 미래는 알지 못합니다. 사람이 미래를 예측하지만, 예측이 안 되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그런데 사람이 미래에 일어날 중요한 일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미래를 알려면 미래가 어떻게 생기는지 알아야 합니다. 소설의 진행과 결말은 소설가의 계획에 따라 생겨나듯이 역사의 미래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진행됩니다. 하나님의 역사 진행을 섭리(攝理, Divine Providence)라고 합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그 위대한 계획을 사람에게 미리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의 미래 계획을 미리 알려주신 약속이 바로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에 하신 약속은 구약이고 예수님이 오신 후에 하신 약속은 신약입니다.
성경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마음을 선포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그래서 설교는 목사의 말인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562년 전, BC 538년에 다니엘은 환상을 통해 하나님의 미래 계획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은 다니엘이 금식하며 기도한 응답으로 주신 것입니다(3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획을 사람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그 응답으로 이루어 가신다고 지난주 설교에서 말씀드렸습니다.
4절부터 19절까지 다니엘의 기도가 나오고 20절에는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응답을 전하러 찾아옵니다. 21절에 보면 가브리엘은 ‘빨리 날아서’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어를 성경을 보면 ‘날아서’ 온 것이 아니라 ‘지치도록(יָעַף)’ 빨리 왔다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왜 한글 성경은 빨리 날아서 왔다고 번역했을까요?
천사는 빨리 달려와도 지치지 않습니다. 지치도록 빨리 왔다는 말은 인간적인 표현이죠. 사람은 빨리 오면 지치니까요. BC 3세기에 구약을 헬라어(LXX, 70인역)로 번역할 때 ‘지치도록(יָעַף) 빨리’를 ‘날듯이(πετόμενος) 빨리’라고 번역했습니다. AD 400년에 성경을 라틴어(Vulgate)로 번역할 때 ‘날듯이 빨리’를 ‘빨리 날아서’로 번역했습니다. 그후 영어 성경, 한글 성경 모두 ‘빨리 날아서’ 왔다고 번역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천사는 날개로 날아온다고 오해하지만, 가브리엘은 날개로 날아다니지 않습니다. 날개로 달에도 못 가는데 하나님이 계시는 곳(삼층천)에 어떻게 가겠습니까?
22절에서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총명과 지혜를 주려고 왔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읽는 우리도 총명과 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23절에서는 다니엘이 기도를 시작할 때 명령이 내렸다고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의 응답은 이미 시작됩니다. 다만 그 응답이 나타나는 시기는 각각 다릅니다. 과일 중에도 복숭아는 여름에 익고 사과는 초가을에 익고 감은 늦가을에 익습니다. 반드시 빨리 익어야 좋은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기도 응답은 나타나는 그 때가 가장 좋은 때입니다.
가브리엘이 전해준 말의 핵심은 24~27절인데 이 부분은 해석이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학자마다 해석이 조금씩 다릅니다. AD 400년경에 살았던 교부 히에로니무스는 이 본문에 관해 9가지 다른 견해가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400년보다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견해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석이 어렵지만 이 놀라운 말씀을 천천히 살펴봅시다.
이 환상은 BC 538년, 고레스가 포로 귀한 칙령을 발표하기 1년 전부터 AD 70년,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는 때까지의 일을 예언합니다. 그런데 이 예언의 마지막 부분은 AD 70년을 지나 세상의 끝까지도 연장되고 있습니다.
이 환상은 다니엘 2장의 느부갓네살의 꿈에 등장한 신상 이야기와 다니엘 7장에 등장한 네 짐승 이야기를 포괄적으로 새롭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 두 이야기는 온 세상의 끝, 주님의 재림 때까지의 내용을 포함합니다. 다니엘이 본 이 환상들은 나중에 요한계시록에서 확장되고 자세하게 묘사됩니다.
24절에서 가브리엘의 말을 보면, 하나님은 우선 일흔 이레(70*7)를 기한으로 정하였는데 이것은 중요한 상징입니다. 25절을 보면 일흔 이레는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로 구분됩니다. 또 27절을 보면 한 이레가 더 나옵니다. 그래서 70이 7+62+1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우리나라 말에 이레는 곧 7일입니다. 하지만 이레로 번역된 히브리어 사부아(שָׁבוּעַ)는 7일이 아니라 그냥 7입니다. 그렇다고 사부아(שָׁבוּעַ)를 그냥 ‘일곱’이라고 번역하면 ‘일흔 이레’(70*7)가 ‘일흔일곱’(77)이 되어서 더 오해가 생기겠죠?
사부아(שָׁבוּעַ 일곱)를 7년으로 계산하면 일흔 이레는 490년이 됩니다. 그런데 BC 538년부터 AD 70년까지는 608년입니다. 490년으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이처럼 이 본문은 해석이 복잡하고 어렵습니다. 그것을 계속 따지고 있으면 우리가 이 본문 해석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대략적으로 설명하겠습니다. 일흔 이레는 7*10*7인데 이는 완전수 가운데 완전수입니다. 이는 BC 538년부터 AD 70년까지를 설명하지만, 장차 예수님이 탄생하시고 또 재림하셔서 영원히 다스릴 때까지를 상징합니다.
24절을 보면 일흔 이레는 허물이 그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용서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환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이가 기름 부음을 받는 기간입니다. 이것은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로 죗값을 치르고 유다가 회복될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포로 생활 후에 영원한 의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예수님이 탄생하실 것과 마지막에 재림하실 것까지 의미하는 이중적 의미입니다.
25절에서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명령부터 왕이 일어날 때까지가 ‘일곱 이레’라고 합니다. 여기서 왕은 누구일까요? 학자마다 설명이 다른데 우리는 에스라를 뜻한다는 설명을 받아들이겠습니다. 그러므로 일곱 이레는 고레스 칙령 때부터 에스라가 다스릴 때까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고레스에서 에스라는 49년이 아니라 80년입니다. 이것을 해석하려는 다양한 시도가 있습니다. 상당히 복잡하지만 일곱 이레는 일반적으로 에스라 시대까지로 봅니다.
다음, 25절에서 말하는 예순두 이레는 ‘곤란한 동안’입니다. 이 기간은 구약의 느헤미야 시대와 말라기 선지자의 활동이 끝나고 신약 시대가 시작될 때까지의 ‘중간 시대’입니다. 성경에는 중간 시대의 기록이 없어서 외경의 마카베오서와 일반 역사를 참고해서 그 기간에 벌어진 일을 알 수 있습니다.
그 기간에 바사가 망하고 헬라가 일어났습니다. 또 헬라가 망하고 로마가 일어납니다. 헬라의 알렉산더가 죽고 나라가 넷으로 나누어지고 북쪽 왕이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그래서 그 기간은 ‘곤란한 동안’입니다.
그러다가 BC 164년에 마카비가 헬라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은 100년동안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광장과 거리가 세워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BC 63년에 로마에 점령됩니다. 여기까지가 25절의 말씀입니다.
26절에는 예순두 이레 후, 마지막 한 이레 동안 벌어질 사건을 말합니다. 이때는 로마가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로마 시대에 벌어진 사건은 첫째,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즉 그리스도가 끊어집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을 것을 예언합니다.
둘째,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무너뜨릴 것입니다. 그것은 AD 70년 디도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되고 성전이 완전히 무너질 것을 말합니다.
26절 끝에는 그의 마지막은 홍수에 휩쓸림 같고 황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디도는 후에 로마 황제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디도와 로마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로마를 넘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상 세력에 관한 예언입니다.
그런데 27절을 보면, 마지막 한 이레의 절반에 전혀 색다른 사건도 있습니다. 그가 장차 많은 백성과 더불어 언약을 굳게 맺을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그’는 디도 장군이 아니라 그리스도입니다. 십자가에 죽기 전에 그리스도께는 백성들과 새 언약을 맺습니다. 구약 시대 내내 언약을 깨뜨린 백성에게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으면 모든 죄를 용서받고 예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해 주시는 언약을 맺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는 제사와 예물을 폐지했습니다. 예물은 히브리어로 민하(מִנחָה)인데 소제(素祭 곡식 가루 제사)를 말합니다. 예수님이 어린양으로 죽었기에 더는 희생 제사나 소제를 드리면 안 됩니다. 계속해서 희생 제사를 드리는 것은 예수님의 대속을 믿지 않는 불신이며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입니다.
27절의 마지막 부분은 다시 세상 나라에 관한 심판으로 끝납니다. 그때는 포악한 것이 날개를 의지하여 선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로마의 상징은 독수리입니다. 앗시리아, 바벨론, 페르시아, 나치 독일, 그리고 미국의 상징도 독수리입니다. 세상 세력은 예나 지금이나 날개를 펴고 힘을 과시합니다. 그 세력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복을 받지만, 로마나 나치 독일처럼 하나님을 대적하면 그 위에 진노가 쏟아질 것입니다. 쏟아진다는 말은 노아 홍수를 연상하게 합니다. 진노가 쏟아지는 것, 이것이 세상 세력의 말로입니다.
여기까지가 일흔 이레 동안 벌어질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지금은 일흔 이레의 막바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시대를 다니엘처럼 살아야 합니다. 다니엘은 어떻게 했을까요?
그로부터 1년 후에 고레스가 포로 귀환 칙령을 내립니다. 고레스는 왜 유다인들이 돌아가서 성전을 재건하라고 했을까요? 사실 포로를 돌려보내는 것은 정치적으로 위험한 일입니다. 하지만 고레스는 다니엘을 통해 이사야 44장, 45장의 예언을 보고 감동해서 그런 명령을 내렸을 것입니다
(사 44:28) 고레스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내 목자라 그가 나의 모든 기쁨을 성취하리라 하며 예루살렘에 대하여는 이르기를 중건되리라 하며 성전에 대하여는 네 기초가 놓여지리라 하는 자니라
(사 45:1~3) 여호와께서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고레스에게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그의 오른손을 붙들고 그 앞에 열국을 항복하게 하며 내가 왕들의 허리를 풀어 그 앞에 문들을 열고 성문들이 닫히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너보다 앞서 가서 험한 곳을 평탄하게 하며 놋문을 쳐서 부수며 쇠빗장을 꺾고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
다니엘이 천하를 호령하는 고레스에게 이 말씀을 전해주었을 때 고레스는 감동하여 유다 포로들에게 돌아가서 성전을 짓고 자기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스 6:3) 고레스 왕 원년에 조서를 내려 이르기를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에 대하여 이르노니 이 성전 곧 제사 드리는 처소를 건축하되 ...
(스 6:9~10) 또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 곧 하늘의 하나님께 드릴 번제의 수송아지와 숫양과 어린 양과 또 밀과 소금과 포도주와 기름을 예루살렘 제사장의 요구대로 어김없이 날마다 주어 그들이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려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하여 기도하게 하라
지금도 여러분 주변의 권력자, 실권자에게 당당하게 가서 장차 예수님이 오셔서 영원한 나라를 세울 것이라고 알려주세요. 성경에서 그들에게 전해줄 말씀을 읽어주고 설명해 주세요. 그들이 성경을 인정하든지 거부하든지 그것은 여러분 책임이 아닙니다. 그가 은혜 입은 사람이면 받아들여 고레스가 될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책임을 다한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지 여러분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섭리하시는 일흔 이레를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첫댓글 https://youtu.be/c809xXYjf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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