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수상소감]
봄꽃과 함께 전해온 소식에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수필에 깊은 애정과 훌륭한 작품을 남기신 고동주 선생님의 존함이 새겨진 상을 받게 되어, 분에 넘치는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 글 속에서 작지만 가능성을 발견해 주시고, 수상자로 뽑아주신 고동주수필문학상 최원현 운영위원장님과 유족,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저에게 수필은 낯선 미국 땅 디아스포라의 56년 삶의 기쁨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어 온 가장 친밀한 벗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에겐 부여된 삶을 ‘씨앗처럼’ 소중히 품고 그 경이로운 생명력을 정직하게 받아 적으려 합니다. 삶의 비늘을 하나씩 떼어내며, 더욱 진솔하고 맑은 문장으로 빚어내겠습니다.
오늘 주신 이 상은 그 미흡했던 기록들에 대한 가장 다정한 응원이라 믿습니다.
이 영광을 가장 든든한 독자이자 영원한 버팀목인 남편과 사랑하는 자녀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가든문학회 지도 선생님과 그린에세이 발행인님께도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단종 애사를 품은 유서 깊은 영월 땅의 맑은 기운을 가슴 가득 담고 돌아가서 그 힘으로 다시 펜을 들겠습니다. 머나먼 캘리포니아에서도 늘 깨어 있는 작가가 되도록 더욱 정진하겠습니다.
-당선소감-
[ Stop sign이 건네는 정중한 안부 ]
도로 위의 정지 표지판은 잠시 숨을 고르는 자리다. 그러나 삶이 건네는 ‘STOP’ 사인은 때로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절벽 앞에서 마주하는 서늘한 선고와 같다. 그것은 인간의 의지로 어찌할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신호이며, 평온하던 일상을 무례하게 침범하는 불청객이다.
며칠 전, 친구의 전화를 받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한참을 망연자실하게 서 있어야 했다.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형언할 수 없는 통증이 차올랐다. 내게는 동생 같은 60대의 친구에게 폐암 소식은 너무도 잔인한 정지 신호였다. 삶의 한 페이지가 날카로운 칼날에 베여 소리도 없이 잘라져 버린 것만 같았다. 가족을 위해, 또 자신의 소명을 위해 쉼 없이 달려온 그녀의 엔진이 강제로 꺼지는 순간. 암이라는 붉은 표지판은 그녀가 정성껏 설계해온 일상의 지도를 단숨에 지워버렸다.
그녀의 떨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나는 16년 전 내 앞을 가로막았던 '멈춤' 표지판을 떠올렸다. 대장암이었다. 그것은 단순한 건강의 위기가 아니라, 내 삶의 방향과 속도를 전면 재검토하라는 엄중한 명령이었다. 숨 한 번의 소중함을 잊을 만큼 가쁘게 달려오던 나는 그 자리에서 속수무책으로 멈춰 섰다. 그 멈춤은 역설적으로 내면을 처음으로 깊이 들여다보게 한
성찰의 시간이었다.
투병이라는 정박의 시간 속에서 나는 ‘살아 있음’ 그 자체의 무게를 다시 배웠다. 당시 나는 한인 여성을 상대로 하는 가정폭력 피해 여성 사역인 ‘푸른 초장의 집’을 운영하며 하루를 분 단위로 쪼개 쓰고 있었다. 쉘터(Shelter)에 찾아와 도움을 청하는 이들로 수용 시설이 부족해질 때가 많았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미국 쉘터로 보내야 했는데 언어 장벽을 느낄 한인 여성들이 염려되어 때때로 찾아가 통역해 주고 상담과 교육하는 일로 앞으로만 달리는 나날이었다.
위기의 여성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푸른초장의 집’은 살얼음판을 걷는 일상이었다. 어린 아들과 함께 들어온 가족, 아빠가 보고 싶었던 아들이 아빠에게 전화하는 바람에 은신처가 탄로 났다. 규칙상 남편이나 가족에게 노출되면 즉시 쉘터에서 나와야 한다. 또 한 여인, 지금도 그녀를 생각하면 명치 끝이 아려온다. 폭력 남편을 피해 들어온 그녀를 엘에이에서도 꽤 먼 곳에 은신처를 제공했다. 그런데 끈질기게 추적한 남편에게 위치가 발각되었고 결국 쉘터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길목에서 남편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 소식이 신문에 크게 보도되었고, 한인사회를 충격에 빠트린 사건이다. 대부분의 폭력 남편의 집착은 상상을 초월한다. 은신한 후에는 외부와 소통을 엄격히 금지하고 교육해도 작은 단서를 찾아 기어히 찾아내는 가해자들, 생사의 갈림길에서 발생하는 불행한 사건들은 늘 내 영혼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비극을 목격할 때마다 고통은 나를 짓누르곤 했다.
그토록 치열한 생명의 전장 한복판에서 대장암과 동시에 찾아온 구완와사라는 Stop sign 받고 나는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ㅣ
“하나님, 알고 계시잖아요. 푸른 초장의 집을 어떻게 합니까. 폭력에 시달리는 그 가련한 여성들을 대신해 이 사람 저 사람, 이 기관 저 기관을 찾아다녀야 하잖아요. 구완와사까지 찾아온 이 초라한 얼굴로는 도저히 사람들 앞에 설 수가 없어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교만이었을까, 아니면 남겨진 이들에 대한 절박한 사랑이었을까. 사역의 정점에서 마주한 ‘STOP’ 사인 앞에서 나는 처절하게 고뇌했다. 내가 멈추면 그들의 울타리도 무너질 것만 같아 차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타인의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사력을 다해 드나들던 사무실 문턱에서 강제로 멈춰 서야만 했다. 해결해야 할 산적한 일들을 내려놓고 병실에 누웠을 때, 창문 너머로 보이는 세상은 무심할 정도로 빠르게 흘러가고 있었다. 0.1초의 오차도 없이 돌아가는 신호등과 바삐 발걸음을 옮기는 행인들을 보며 나는 비로소 알았다.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속도로 엔진을 과열시키며 달려왔는지, 내가 없으면 무너질 것 같던 세상도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여전히 흐르고 있음을 말이다.
책임감이라는 이름으로 습관처럼 이어오던 발걸음을 멈추고서야, 내가 서야 할 진짜 출발선을 가늠할 수 있었다. 지인들이 위로하며 건넨 말처럼 이것은 내 인생의 마침표가 아니었다. 더 먼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거친 풍랑을 피해 잠시 항구에 머무는 정박의 시간이었다.
인생의 정지 표지판은 결코 반갑지 않다. 우리를 주저앉히고 깊은 절망의 수렁으로 밀어 넣기도 한다. 그러나 멈춰 서서 가쁜 숨을 고르는 동안 비로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선명한 색채로 다가온다. 질병은 삶의 곁가지를 쳐내고 본질만을 남기게 하며 실패와 좌절은 타인의 시선이 아닌 내면의 깊은 곳을 향해 청진기를 갖다 대게 한다.
도로 위의 차들이 멈춤을 통해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고 사고를 예방하듯 삶의 정지 신호 역시 더 큰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하는 보호 장치일지 모른다. 지금의 멈춤이 끝이 아니라 더 단단하고 견고한 마음으로 다시 출발하기 위한 '축적의 시간'임을 나는 투병의 고통을 통해 절절히 배웠다.
친구는 지금 붉은 신호 앞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을 뿐이다. 신호가 바뀌고 초록불이 켜지는 순간,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깊이의 눈빛과 훨씬 단단해진 보폭으로 다시 길을 나설 것이다. 완전히 멈추어 본 뒤에 다시 가속 페달을 밟을 때의 그 생경하고도 벅찬 감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것은 등 떠밀려 가는 주행이 아니라 목적지를 스스로 선택하고 조절하는 진정한 의미의 출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제 길 위에서 마주치는 붉은 스탑 사인이 예전처럼 차갑거나 밉지 않다. 오늘도 나는 그 앞에서 기꺼이, 그리고 아주 정중하게 멈춰 선다. 내 삶에 겹겹이 쌓인 조급함의 먼지를 털어내고 다시 나아갈 내일의 에너지를 채우기 위해서다. 멈춤은 끝이 아니라, 가장 아름다운 주행을 위한 가장 경건한 예식이다.
[약력]
서울 출생
1970년 도미
가정폭력여성보호소 <푸른 초장의 집>(Home on the Green Pastures)
원장(1993-2016), 현재는 고문으로 활동 중
<그린에세이> 등단(2016년)
그린에세이작가회, 가든문학회 회원
미주한국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수를 놓듯, 연서를 쓰듯≫(2020. 선우미디어)
수필집 ≪사랑이었다≫(2023. 선우미디어)
[수상소감]
담벼락 너머 세상이 온통 차갑고 시려 축축한 겨울을 밀어내고 싶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키보드를 붙잡고 저를 달랩니다. 한 페이지를 채운 후, 다음 페이지를 넘기면 어느덧 울타리 저편에서 새들이 짹짹거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은 손짓합니다. 노트북 화면을 닫을 때가 되면, 얼어붙은 마음이 온기로 변조되어 손힘을 빼게 됩니다. 고통의 바다, 고뇌의 숲을 통과하면서 한 땀 한 땀 글 힘이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살아오면서 오독했던 제 인생을 바로 잡고 읽는 방식을 새롭게 터득해나가는 것이 수필 쓰기라 생각합니다.
봄꽃이 얼굴을 내밀 즈음, 꽃향기에 실려 온 기쁜 소식을 받았습니다. 제3회 ‘고동주 문학상’에 부족한 제 글을 선정해주신 심사위원장님과 심사위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삶을 제대로 해석할 때까지 열심히 쓰고 노력하겠습니다.
[ 어떤 누수에 대하여 ]
수도요금 폭탄을 맞았다. 이유인즉 누수일 거라고 한다. 땅 밑 보이지 않는 물길 찾기가 힘들고 물 새는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난관에 부딪혔다. 수없이 귀를 바닥에 바짝 붙여도 속수무책이다. 야금야금 젖어 드는 땅 밑 세계를 읽어낼 방도가 없다. 겨우내 대형참사를 불러온 주범은 마모된 배관이다.
동네를 수소문해 누수탐지 전문가를 찾았다. 탐지기를 들고 전문가 한 분이 오셨다. 실내에선 새는 곳이 없고 마당이 문제라며 한나절 이상 탐지기를 이리저리 이동하고 있다. 물을 사용하지 않는데도 계량기가 바쁘게 돌아가고 계속 비용이 줄줄 새니 초조한 감정이 나를 소모전으로 몰기 시작한다.
그때 한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내 마음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데 받을까 말까 고민하다 응답했다.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보일러실로 들어가 가만히 그의 목소리에 귀 기울였다. 오랫동안 다른 여자를 만나 온 남편, 부부 사이의 누수된 사랑을 담담히, 그리고 흐느적거리며 말하지 않는가.
들키지 않으려 낌새를 염탐하듯 하루도 빠짐없이 집에 들어오는 남편을 누가 의심하랴. 겉으론 부인을 사랑하는 척, 속내를 보이지 않고 껍데기 사랑만 남겼다. 그런 남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원망과 분노를 넘어 체념의 목소리가 전화선에서 갈라진다. 오랫동안 줄줄 새어나간 사랑에 대해 듣고 있으니 참담하긴 나도 마찬가지였다. 이건 또 무슨 메가톤급 소식인가. 돌 망치로 한 대 맞은 듯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믿었는데, 그렇게 좋다고 난리를 부리며 따라다닐 땐 언제고, 울타리 없어도 될 만큼 든든한 파수꾼이라더니 스스로 담을 넘을 줄이야,’ 어이없다. 망해가는 집안을 일으키려 갖은 애를 써다가 가족에게 지쳤는지 그 남자의 애정 공세에 못 이긴 척 따라나서더니 희생의 대가가 이리 처참한가 싶다.
이 순간에도 배관은 틈을 벌리고 물, 사랑이 계속 새고 있는데, 아저씨는 아직 누수 배관을 못 찾고 있다. 답답할수록 젖어가는 물 자국의 모양과 크기를 상상 속에서 점점 키운다. 젖은 흔적, 젖은 사랑, ‘젖은’이란 단어가 머릿속을 기웃거린다. ‘젖은 사랑’이 무겁기만 한 지인의 심정을 어찌 헤아려준단 말인가. 땅 밑 어디선가 물 새는 소리가 상상 속 지인의 울음처럼 환청으로 들린다. 눈물이 남긴, 충혈되고 퀭한 그녀의 눈도 아른거린다.
겨울과 봄 사이, 배관이 물 자국과 눈물 꽃을 남겼다. 눈물 꽃을 피우게 내버려 둔 장본인은 방치자 남편이다. 착한 남편으로 가장假裝한 그 가장家長은 무슨 배짱으로 옮겨간 사랑에만 불태우고 있는 걸까. 배관이 낡고, 녹슬고 마모되다 틈새를 생성하고, 마침내 누수가 발생하기까지 한참 걸리는데, 둘이었다가 셋이 되는 동안 이토록 오래 가면을 썼단 말인가. 불륜 탐색 전문가를 부르라고 할까. 아니 이미 들켰으니 이혼 전문 변호사를 불러야 하나.
집 나간 약속, 한 사람에게서 벗어난 온기, 늦게라도 돌아올 것 같은 미련, 잠시 다른 계절에 머물 거라는 추측은 그녀를 더 아프게 할까. 내게 날아온 수도 요금 폭탄 청구서만큼이나 예상하지 못한 감정 손실비용을 받아 들은 게다. 봄바람에 날아온 누수의 안부가 얼마나 매서웠을까. 지인의 심정은 하염없이 밑바닥으로 침몰해가는데 남편은 반칙 사랑으로 부유浮游하고 끝없이 상승하며 비밀정원에서 무한정 즐길까.
표시 나지 않게 마모되어 가는 일, 겹겹이 쌓인 원성, 불안의 부피를 키운다. 불안의 층위를 벗겨내려 여기저기 소문을 물어 날아야 하나. 마당 이쪽 끝에서 조금씩 잰걸음 하며 탐지기를 갖다 대는 아저씨에게 말한다. ‘제발 숨은 범인을 빨리 찾아주세요.’
그 순간, 주차장 쪽 땅을 파내던 아저씨가 기쁨의 환호를 질렀다. ‘찾았다’라고. ‘심봤다’로 들렸다. 달려갔다. 배관의 녹슨 자국이 저항하는 몸부림처럼 벌겋게 입을 벌리고 있다. 상처를 알리려면 예고라도 하든지, 아저씨가 손을 대자 부스럼 같은 금속 조각이 두둑 떨어진다. 수도사업소에 전화를 걸었다. 찾았노라고. 공사 현장을 사진 찍어 보내주면 정상참작 해 새로 요금 정산을 하겠다는 것이다.
한바탕 회오리바람이 쓸어간 듯 마당은 맥이 빠져 고요하다. 그녀의 마음 마당도 소강상태로 접어들면 좋겠다. 그녀는 아직도 술렁거리며 집 밖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이슬비가 보슬비로, 가랑비, 단비, 장대비, 폭우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이든 다 시련을 동반하는 것이고 쏟아지는, 젖는 습성을 지녔다. 새어나간 사랑을 멀리 두고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맞고 있을 그녀다. 이미 건너간 마음, 누수를 확인했으니 이별 화법으로 ‘안녕’이라 말하라 하고 싶다. 누적된 누수가 혹독하게 지내온 겨울 추위를 또다시 끄집어내지 않길 바라면서.
배관 공사를 마치고 흙으로 땅을 덮는다. 자근자근 발로 밟아 땅을 다진다. 내 배관 공사는 완료했으나 사랑의 대형참사, 그 누수는 수습할 사람이 없어 보인다. 불륜 탐색 전문가도 이혼 전문 변호사도 뿌리가 흔들린 사랑을 불후의 사랑으로 돌려놓기엔 불가항력일 것 같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녀에게 속 말만 할 뿐이다. ‘사랑의 누수는 배관 문제가 아닌가 봐.’
[약력]
장금식
《계간수필》 수필 등단
수필집 《내 들판의 허수아비》, 《프로방스의 태양이 필요해》
서평집 《프랑스, 문학과 풍경이 말을 걸다》
소르본 대학원(불문학) 석사과정 졸업, 프랑스어 교사 역임, 프랑스 국제학교 강사
아르코 발표지원 선정, 정읍사문학상 수상
《선수필》, 《계간수필》 편집위원 역임
《인간과문학》 편집장 역임
현, ‘프랑스 인문학 교실’과 ‘수필교실’ 운영
[수상소감]
문학은 삶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그 안으로 스며들어 삶의 결을 어루만지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저에게 수필은 치유에 이르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잃어버린 나를 찾아가는 길이었고, 현재의 나를 받아들이는 시간이었으며, 아직 도착하지 않은 나를 기다리는 마음이었습니다. 그 길 위에서 저는 비로소 나 자신과 화해하는 법을 배웠고, 삶의 부족함과 그리움마저도 나를 이루는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수필을 쓰며 지나온 시간을 다시 만나고, 흘려보냈던 순간에 머물러 그 의미를 되짚으며 다시 제 삶의 자리로 돌아오곤 합니다. 수필은 삶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그 삶에 다시 귀를 기울이는 일이라 여겨집니다. 이름 붙이지 못했던 감정들과 무심히 지나쳤던 날들의 흔적이 문장 속에서 자리를 얻을 때, 그 자리에서 자신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때로는 아프고 부끄러운 기억들조차 글로 마주하는 순간, 그것은 저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일으켜 세우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그러한 시간의 축적 위에 고동주문학상 본상을 받게 되니 문학 앞에 다시 서는 마음이 더욱 깊어집니다. 고동주문학상이 지켜온 문학적 가치와 그 의미를 생각할 때, 이 수상은 한 개인의 성취를 넘어 문학의 본래적 자리로 돌아가게 합니다.
부족한 글을 헤아려 주신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작가로서 감당해야 할 소명을 다시 마음에 새겨 봅니다. 제가 걸어갈 문학의 길을 돌아보며, 그 길 위에서 어떤 태도로 서 있어야 하는지를 되짚어 봅니다. 사람을 이해하고 삶의 온기를 길어 올리는 글을 남기고자 합니다. 작고 사소한 이야기일지라도 진심을 담아 기록하고, 그 기록이 누군가의 마음에 조용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을 놓지 않으려 합니다.
수필은 저에게 삶을 건너가는 하나의 방식입니다. 앞으로의 글 또한 그러하기를 바랍니다. 저의 수필이 누군가의 마음에 한 줄의 숨처럼 스며들어 잠시 머물 수 있는 쉼이 되기를 바랍니다. 서로 다른 삶이 문장 위에서 만나 작은 공감과 온기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고동주 수필가가 남긴 문학의 정신을 마음 깊이 새기며 저는 다시 문장 앞에 섭니다. 사소한 삶의 결에서도 의미를 길어 올리고, 사람의 마음에 조용히 닿는 온기를 오래 남는 기록으로 남기려 합니다.
[ 두 얼굴의 빛 ]
울릉도의 밤바다에서 한 줄기 불빛을 바라본다. 칠흑 같은 수면 위에 매달린 그 빛은 멀리서 보면 길처럼 보인다. 어둠을 가르는 선 하나가 생긴 듯하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것은 길이 아니라 낙차임을 알게 된다. 위에서 아래로 곧게 꽂히는 밝음이 물속을 낮처럼 드러내고, 어둠에 익숙하던 생명들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몸을 튼다.
그 불빛은 집어등이다. 바다 위에 띄운 인공의 낮이 은빛 물결 아래를 밝히자 그림자들이 몰려든다. 또렷함은 망설임을 허락하지 않는다. 빛의 중심을 향해 정렬된 움직임 아래에는 이미 보이지 않는 그물이 내려와 있다. 집어등은 길이 아니다. 생명들을 모으기 위해 켜진 그 밝음은 스스로를 설명하지 않는다. 빛은 다만 작동할 뿐이다.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본다. 왜 우리는 또렷한 것을 곧 옳은 것이라 받아들이는가. 어둠 속에서 분명한 것은 길처럼 보이고 그 밝음은 안도로 읽힌다. 그러나 그 안도는 빛이 보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두려움을 견디지 못해 붙인 이름일지도 모른다.
밝음은 사물을 드러내지만 동시에 다른 가능성을 밀어낸다. 우리는 드러난 것만을 사실이라 믿고, 보이지 않게 된 것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묻지 않는다. 빛은 언제나 두 얼굴을 지닌다. 하나는 길처럼 보이는 얼굴이고, 다른 하나는 선택의 폭을 좁히는 얼굴이다.
돌아보면 나 역시 가장 밝은 중심만을 길이라 믿고 한 방향으로만 달려왔다. 입시 컨설팅을 하며 학생들이 나아갈 길을 안내했고, 그 길에 맞는 학습의 방향을 정교하게 짜 왔다. 학원을 운영하며 약속된 일정과 요구되는 성과 사이를 쉼 없이 오갔다. 외부 강의가 이어질수록 하루의 간격은 더욱 촘촘해졌다. 강단 위에서 나는 분명한 답을 내놓아야 하는 사람이었고, 미래의 방향을 설계하는 사람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믿었다. 환한 중심, 그 밝음 속에 서 있으면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다.
나는 학생들의 꿈을 향한 길을 안내하는 일에는 익숙했지만, 정작 내 삶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는 돌아보지 못했다. 성과는 반복되었고 기대는 나를 재촉했다. 빠르게 나아가는 일이 곧 성실함처럼 받아들여졌고, 멈춤은 뒤처짐으로 여겨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을 뿐 그 길의 끝이 어디인지 묻지 못했다.
결국 몸이 먼저 신호를 보냈다. 눈가가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고, 그 떨림은 얼굴로 번져 갔다. 정밀검사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답을 들었다. 의사는 굳이 원인을 묻는다면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의 균형이 흐트러진 자율신경실조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균형이 무너졌다는 그 말은 내 삶이 한쪽으로 기울어 있었음을 인정하게 했다. 나아가는 힘만을 키우는 동안 멈추는 힘은 점점 약해져 있었다. 나는 속도를 선택했지만, 몸은 이미 멈춤을 요청하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멈추는 힘을 잃은 밝음은 결국 스스로를 소진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내가 붙잡고 있던 것은 빛이 아니라 그 뒤에 감추어 둔 불안이었다. 밝은 중심에 서 있으면 흔들림은 드러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태도는 오히려 나를 더 깊이 기울게 하고 있었다.
병원 복도에 앉아 처방전을 기다렸다. 진단은 내려졌지만, 나는 여전히 그 말의 뜻을 헤아리고 있었다. 자율신경의 균형이라는 설명은 몸을 넘어 삶을 가리키는 듯했다. 오래도록 한쪽으로만 기울어 온 시간을 돌아보며 내 삶의 각도를 다시 생각하고 있었다.
천장 위로 번진 빛이 고르게 머물러 있었다. 그 빛은 나를 재촉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처음으로 아무것도 붙들지 않은 채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나를 내려놓는 순간, 삶은 멈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또렷해졌다. 결국 처방은 약이 아니라 멈춤에서 시작된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래서 나는 빛을 끄지 않았다. 다만 그 각도를 바꾸었다. 중심을 향해 쏟던 밝음을 낮추고 내면으로 기울이기로 했다. 만약 내 삶에 아직 남아 있는 여열이 있다면 그것은 더 큰 밝음을 향하기보다 어떤 빛 아래에 설 것인지 묻는 데 쓰고 싶었다. 오래 묻어 두었던 물음이 사라지지 않는 자리, 나를 앞세우지 않으면서도 나를 비추는 빛을 따라가 보고 싶었다. 나를 향해 돌아오는 길이 어디인지 끝까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 결심 끝에서 나는 치유에 이르는 글쓰기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로 마음먹었다. 늦은 나이에 박사과정에 도전한 것도 그 물음을 붙들기 위해서였다. 글을 통해 내가 걸어온 길을 다시 물었다. 누군가를 이끄는 대신 그 사람의 속도에 맞추어 걷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접어 두었던 그림을 펼쳤고, 합창을 하며 타인의 호흡에 내 숨을 맞추었다. 겹치지 않으면서도 끊어지지 않는 숨의 리듬처럼, 몸과 마음은 서서히 균형을 찾아가고 있었다.
빛은 길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를 드러낼 뿐이다. 집어등은 지금도 바다 위에서 켜지고 꺼진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빛은 중심을 향해 모이게 하고, 고르게 번지는 빛은 자리를 지키게 한다. 달려가게 하는 밝음이 있는가 하면 멈추어 서게 하는 밝음도 있다. 결국 길은 빛이 아니라 그 빛 앞에서 어떤 태도로 서 있는가에 따라 만들어진다.
빛은 여전히 두 얼굴을 지닌 채 나를 비춘다. 오늘도 나는 등을 하나 켠다. 누군가를 끌어모으기 위한 불빛이 아니라, 나를 잃지 않기 위한 작은 빛이다.
크게 밝히지 않아도 그 빛이면 충분하다.
[약력]
문학박사/국제사이버대학 객원교수
활동 :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한국수필작가회 , 한남문인회 회원, 충북PEN문학 사무국장.
등단 : 2016 한국수필
- 문학테라피스트
- 충청투데이 에세이 필진.
- 청주시 1인1책 강사
- 한남교육사랑 독서. 글쓰기치료 강사
저서 : 《나의 퀘렌시아》, 《차경借景》, 《레치얌!》, 공저《어디로 가는 걸까》
수상 : <한국수필독서문학상대상>, <충북대 수필문학상 최우수상>, <영광21신문 영광상사화축제기념 수필 인터넷 공모전 대상>, <좋은생각 생활문예대상 입선>, <한국수필가협회 2024 올해의 좋은 수필상>, <한남문인상 대상 공모전 수필 대상>
[심사평]
수상을 축하하며 최원현 /수필가 · 사)한국수필가협회명예이사장
이번 제3회 고동주수필문학상엔 미국을 비롯 전국 각지에서 많은 분들이 응모해 주셨습니다. 그 중 수상작들은 공통적으로 삶의 위기와 균열의 순간을 통과하며 얻은 성찰을 각기 다른 상징과 서사로 형상화했다는 점에서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었다. ‘멈춤’, ‘빛’, ‘누수’라는 서로 다른 비유적 장치들은 결국 인간 존재의 취약성과 회복 가능성을 동시에 증언하며, 수필 문학이 지향해야 할 사유의 깊이와 언어의 절
제를 균형 있게 구현하고 있다.
■ 대상 엄영아의 「Stop sign이 건네는 정중한 안부」는 ‘Stop sign’이라는 일상적 기호를 삶의 근원적 전환 장치로 확장시키며, 개인적 투병 경험과 타인의 고통을 하나의 윤리적 성찰로 통합한 점이 돋보인다. 이 작품은 단순한 병상 체험기를 넘어, 멈춤의 의미를 신학적·존재론적 차원으로 끌어올린다. 특히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을 돕는 사역의 현장과 자신의 질병 체험을 병치시키면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책
임의식과 그 이면에 숨은 인간적 한계를 정직하게 드러낸 점은 깊은 울림을 준다. 이는 자기 고백에 머무르지 않고, 멈춤을 통해 비로소 보이는 세계인 타자와 삶의 본질로 나아가는 인식의 전환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문장은 비교적 직선적이면서도 정서의 밀도가 높고, 반복되는 ‘정지’의 이미지는 작품 전반을 안정적으로 관통한다. 일부 서술에서 감정의 직접 표출이 다소 과잉된 부분도 있으나 그것마저도 체험의 진정성으로 수렴되며 설득력을 잃지 않는다. 이 작품은 ‘멈춤’을 파국이 아닌 축적과 재출발의 시간으로 재정의한 점에서, 동시대 수필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수작이라 평가된다.
■ 본상1 강미란의 「두 얼굴의 빛」은 울릉도의 집어등이라는 구체적 장면에서 출발하여, 빛의 이중성인 드러냄과 배제를 철학적으로 사유한 수작이다. 외적 서사보다 내면의 인식 변화에 집중하는 구조를 취하면서도, 이미지의 선명함과 사유의 깊이를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 특히 “밝음은 길이 아니다”라는 통찰은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명제로 기능하며, 독자로 하여금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명확함’과 ‘정답 중심의 삶’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입시 컨설팅이라는 직업적 배경과 자율신경실조증이라는 신체적 신호를 연결 지으며, 속도와 성과 중심의 삶이 어떻게 균형을 붕괴시키는지 설득력 있게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문장은 절제되어 있고, 불필요한 감정 과잉 없이 사유가 단단하게 축적된다. 또한 후반부에서 ‘빛의 각도를 바꾼다’는 표현으로 귀결되는 자기 변환의 서사는 상징적 완결성을 높인다. 이 작품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밝음의 폭력성’을 섬세하게 해부하면서, 내면으로 기울어지는 삶의 가능성을 제시한 점에서 문학적 성취가 크다.
■ 본상2 장금식의 「어떤 누수에 대하여」는 일상의 사건인 ‘수도 누수’를 출발점으로 삼아, 인간 관계, 특히 사랑의 균열과 붕괴를 은유적으로 확장한 점이 돋보인다. 물리적 누수와 감정적 누수를 병치시키는 구조는 다소 익숙한 장치일 수 있으나 이를 생생한 상황 묘사와 현실적 감정선으로 밀도 있게 구축해낸 점이 높이 평가된다. 특히 탐지기를 들고 누수를 찾는 과정과 지인의 불륜 고백이 교차되는 장면은 외부의 균열과 내부의 붕괴가 동시에 진행되는 긴장감을 효과적으로 형성한다. ‘젖은 사랑’, ‘감정 손실비용’ 등의 표현은 다소 직설적이나 현실적 감각을 잘 포착하고 있다. 문장은 구어적 리듬을 살리면서도 서사의 몰입도를 유지하고 있으며 결말부에서 “사랑의 누수는 배관 문제가 아닌가 봐”라는 문장은 작품 전체를 환기하는 여운으로 기능한다. 다만 일부 비유의 반복과 감정의 과잉 설명은 다소 절제할 필요가
있으나 그럼에도 이 작품은 일상의 사소한 균열이 어떻게 삶 전체를 흔드는 사건으로 확장되는지를 설득력 있게 형상화한 점에서 충분한 성취를 보여준다. 세 편의 수상작은 모두 ‘위기의 순간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일 것인가’라는 공통된 질문을 각기 다른 상징으로 풀어냈다. ‘멈춤’은 존재의 재정립으로, ‘빛’은 인식의 재구성으로, ‘누수’는 관계의 붕괴와 성찰로 이어진다. 이처럼 수상작들은 삶의 균열을 단순한 비극으로 소비하지 않고, 그것을 통과하는 사유의 깊이와 언어적 형상화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고동주수필문학상의 위상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준 좋은 작품들이었다.
심사위원 : 권남희(위원장). 장호병. 최원현(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