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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
이삭빛 산골시인, 문학평론가
(본명 이미영 문학 박사/명예 인문학 박사)
전북대학교 법학과 인권법 박사과정 수료
국립NwSSU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졸업
⬖국립NwSSU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겸임교수
⬖총신신학대학원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보수 교수(2016~)
⬖동양문인협회 회장
⬖한국그린문학 발행인
-1기, 3기 회장 역임
⬖노벨재단 상임이사/심의위원/인권작가소장
⬖법무보호언론인위원회 감사충남소속(2021~)
⬖주)리애드코리아 문화사업부 원장
⬖전북강사협회 5기 회장 역임
⬖안중근장군전주기념관 명예관장
⬖한국학교폭력예방협의회 책임작가
⬖대한민국 노벨문학상수상기념
-최초유명작가 111명 공동대회장 역임(국회의사당)
⬖등재 및 등록
서울대 명예의전당 등재
-(한국어 비교문학 영어논문 등록 - 서울대총장 감사장)
대한민국 가장 작은 박물관 얼굴 없는 천사시 헌정 시인(2017)
-국민천사시인(이삭빛 천사본부) 외
⬖홍보대사 전북특별자치도 한글사랑
⬖훈장수훈 Nobel Times 예술훈장
⬖문학상 및 표창/심의의원
-여성부장관 표창, 전라북도 도지사 표창외 다수
-2012 대한민국 미래를 여는 인물 대상(문화예술인대상)
-2022 IWS방송 연예대상 작사가 부문 대상
-G-WORLD문학상 수상
-프랑스올림픽 한불문학상 수상
-에이펙 APEC (Asia-Pacific Economic Cooperation) 문학상
초대전 및 심의위원
-일본오사카문학상 심사위원
-케네디대학교 총장 문화예술인 감사장
-세계아카데미 학술원 명예 인문학 박사
-정인승학글학자 전국 글짓기대회 심사위원장 외
⬖문학 탐방 및 기념
-저서 우분트, 가슴으로 만난 사람은 꽃이다V 외 다수
-탐방 이삭빛시인을 사모하는 모임 문학탐방 일본·몽골외
-시비 충남보령시 시의성지 명시 선정 시인('21년) 시비건립 외 1
⬖논문
-박사논문 A Comparative and Educational Study on the Status
of Korean Double Consonant Pronunciation('24년)
⬖공동저서
-韓國財政政策學會 「財政政策論集」 第27輯 第4號 '25년
AI 시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강화와 공평한 경제사회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정책 제언
『서 문』
자유를 밝히는 문학의 길
문학은 영혼을 깨우는 불꽃이며,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노래다. 그 불꽃은 인간의 숨결을 지켜내고, 그 노래는 자유를 향한 길을 열어간다. AI가 세상을 바꾸어가는 오늘에도 문학은 여전히 인간의 체온을 품고, 강물처럼 푸르게 흐르며 마음을 적신다.
대한민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며 국회에서 열린 문학의 자리는 우리 시대 문학의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하는 뜨거운 순간이었다. 그 순간은 단순한 행사에 머물지 않고, 영원히 간직하고 싶은 기억으로 남았다. 기성 문인에서 오늘날의 젊은 작가들까지, 시를 사랑하는 이들의 목소리가 모여들었고, 서로 다른 목소리들이 하나의 선율로 이어져 새로운 울림을 만들어냈다.
그 울림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마련된 이번 평론집은 33인의 작가와 여러 시인들의 작품과 사유를 담고 있다. 각자의 문학은 서로 다른 빛깔을 지니지만, 함께 모이면 봄의 합주처럼 따뜻하고 격조 있는 소나타가 된다. 짧은 시평 속에서도 긴 울림은 피어나며, 독자의 마음에 스며들어 삶의 가치와 예술의 향기를 나누게 되리라 믿는다. 이 책은 단순한 비평의 모음집이 아니라, 문학을 사랑하는 이들이 함께 부르는 합창이자 미래를 향한 약속이다.
오늘은 3·1절이다. 독립운동의 정신은 문학과 맞닿아 있다. 문학은 억압 속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유를 향한 목소리를 세상에 전하는 힘이었다. 마치 어둠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횃불처럼, 문학은 시대의 고난을 밝히며 미래를 향한 길을 열어왔다. 그 정신은 오늘날에도 살아 있으며, 문학은 자유와 평화를 향한 가장 오래된 증언이다.
문학은 언제나 곁에 있다. 계절처럼 돌아오고, 음악처럼 흐르며, 시처럼 피어난다. 그 울림은 국경을 넘어 세계 어디서든 공명하며 인간의 마음을 잇는 다리가 된다. 괴테가 말했듯, 문학은 국경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잇는 다리다.
시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 책은 단순한 평론집에 머물지 않기를 바란다. 문학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함께 부르는 봄의 노래이자 소나타가 되기를 소망한다. 더 나아가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유를 증명하며 살아가고, 전쟁이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염원한다.
그리고 그 순간, 숲의 나무들이 바람에 속삭이는 소리처럼 모든 시인들의 목소리가 문학의 근원적 빛과 열애하며 세상에 깊은 울림을 남기는 또 하나의 봄이 열려 독자의 삶을 따뜻하게 밝혀주기를 기대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한강 작가
사라짐을 담는 그릇
- 한강 시인을 읽는 방법에 대하여
한강의 작품은 독서라기보다 응시에 가깝다. 그녀는 세계를 설명하려 들지 않는다. 오히려 망설임으로 시작된 말들을, 사라지는 형체로 옮긴다. 피어나기보다 침전되는 언어, 화려한 문장보다 속울음 같은 이미지들. 한강을 읽는다는 것은 곧 사라지는 것을 인정하는 독서의 태도이자, 침묵 속에서 반향을 듣는 감각의 행위다.
많은 독자들이 그녀의 시와 소설을 ‘슬프다’고 표현하지만, 그것은 표면의 인상일 뿐이다. 한강은 슬픔을 기록하지 않는다. 그녀는 슬픔의 자리를 감싸는 정서의 망을 조용히 편다. 그 언어의 무게 중심은 고통보다 기억에 있고, 기억은 재현보다 흐름 속에서 살아 있다.
사라지는 것들과 살아 있는 것들 사이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되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한강의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전문
한강의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은 바로 그 흐름 안에서 태어난 작품이다. 흰 공기에 담긴 뜨거운 밥, 그리고 피어오르다 흩어지는 김. 한강은 아주 평범한 일상 한 조각을 들어 보이며 말한다 그 안에서 시간은 피어오르고 사라지고, 존재는 묵묵히 남는다고.
‘뜨거운 밥에서 김이 되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나는 밥을 먹었다’
이 시는 삶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우리 앞에 조용히 펼쳐 놓는다. 밥은 남고 김은 사라진다. 피어난 김은 곧 사라지지만, 그 사라지는 과정을 고요히 바라보는 시인의 시선은 모든 존재의 윤리를 일깨운다. 그녀는 말없이 사라짐을 견디는 방식으로, 기억을 기록한다.
이 시는 또한 한강이 몸으로 써 내려간 문학의 고요한 품격을 대표 한다. 그녀는 말로서 무엇을 해명하지 않는다. ‘밥을 먹었다’는 마지막 구절은 어쩌면 삶에 대한 가장 맑은 복원이다. 모든 상실을 품고도, 조용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그녀가 말하는 존재의 방식이다.
이러한 시적 감각은 독자의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용히 바라보기를 요청한다. 한강의 언어는 붙잡히기를 거부한다. 붙잡으려는 순간 흩어지고, 흩어지는 순간 의미가 피어난다.
그리고 시인이 말없이 응시한 ‘김’은 우리가 잊은 많은 것들을 불러온다. 산업화의 굴뚝 아래 사라진 이름들, 5·18 광장의 침묵하는 외침, 남겨진 식탁 위의 한 자락 슬픔들, 그 모든 흔적은 김처럼 피어올랐다 사라지는 존재의 기척이었다.
無聲雷(무성뢰)
-소리는 없으나, 천둥처럼 울리는 침묵의 힘
한강의 시는 이 무성뢰의 결을 품는다. 말없이 울리고, 조용히 흔들고, 그럼에도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린다. 그 침묵은 폭발보다도 강한 진동을 남긴다.
‘삶이란 우리가 살아낸 그대로가 아니라, 그 삶을 어떻게 기억하고 어떻게 떠올리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Life is not what one lived, but what one remembers and how one remembers it.
— Gabriel García Márquez)’
한강의 시는 마르케스의 이 말처럼, 기억의 형식으로 삶을 되돌리는 작품이다. 그녀는 삶을 되새기지 않고, 되묻지도 않는다. 대신 피어오르는 김처럼 지나가는 순간들을 바라본다. 그 행위 자체가 기억이며, 말보다 깊고 글보다 오래 남는 침묵의 기록이다.
「어느 늦은 저녁 나는」은 독자에게 해석을 요구하지 않는다. 대신 가만히 따라 걸을 것을 요청한다. 밥에서 피어난 김처럼, 사라지는 것 가운데 몇몇은 우리 마음속에 남아 고요히 시간을 되돌린다. 그리고 그 기억은 다시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한강을 읽는다는 것은 그런 기억 속으로 조용히 스며드는 일이다. 붙잡지 않고, 해석하지 않고, 다만 바라보는 일. 삶은 다 지나가지만, 온기는 남는다. 그 온기가 곧 우리가 견디는 방식이며, 문학이 살아 있는 증거다.
말하지 않고도 모든 것을 말하는 시의 태도
한강의 시 세계는 사라진 이후를 바라보는 시선으로 구성된다. 그녀는 상실을 기록하지 않는다. 상실의 여백을 조용히 채운다. 그리고 그 여백 안에서 기억은 발효되고, 언어는 심화된다.
한강을 읽는다는 것은, 김처럼 피어오르다 사라지는 언어를 잡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를 익히는 것이다. 밥처럼 조용히 씹히는 기억, 그 속에 남겨진 온기가 독자의 가슴속에 천천히 번진다.
흩어진 김은 사라졌지만, 온기를 간직한 그 순간은 기억보다 더 오래 남는다. 삶은 모두 지나가지만, 지나간 것들 가운데 어떤 것들은 마음속에 남아 고요히 시간을 되돌린다. 우리가 단지 살아냈던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오래도록 머물렀던 것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한다.
이것이야말로, 한강의 문학을 읽는 유일하고도 온전한 방법이다. '말 없는 그릇에 삶의 온도를 담고, 흩어진 것을 품은 시인의 품격을 바라보는 것.'...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1
고통스러운 실존의 여정, 유재기의 '맨발의 순례자'를 읽고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유재기 시인의 '맨발의 순례자'는 삶의 본질적인 고통과 그 속에서 확인하는 존재의 의미를 묵상하는 깊은 시이다. 시는 눈부시게 쏟아지는 태양의 빛과 그 빛을 온몸으로 감내하는 한 순례자의 모습을 통해, 인간이 마주하는 실존적 번민과 생존의 지난한 과정을 시각적, 감각적으로 그려낸다. '낙토(樂土)'와 '폐허(廢墟)'가 한데 뒤섞인 풍경은, 삶의 이중성과 모순을 상징하며, 그 위를 걸어가는 순례자의 고독한 발걸음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운명적 무게를 느끼게 한다. 이 시는 고통 속에서도 굳건히 자신의 길을 가는 존재의 의지를 담담하면서도 힘 있게 노래한다.
분수처럼 쏟아진다
작열하는 태양의 조각들이
방향도 없이
이름 지어진
낙토나 폐허 위에
쓰러진 갈대사이로
맨발 순례자는 멈춰서
살아가는 그 두터운
생존을 확인 하지만
어디메서
살결 태울 것 같은
빛의 충돌이
순례의 몸을 갚아 돈다. - 유재기의 ' 맨발의 순례자' 전문
상반된 이미지의 충돌과 실존적 풍경
시의 서두는 '분수처럼 쏟아지는' '작열하는 태양의 조각들'이라는 강렬한 이미지로 시작된다. 이는 단순히 자연 현상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삶에 쏟아지는 거대한 운명적 압력이나 시련을 은유한다. 주목할 점은 이 빛이 '방향도 없이' '낙토나 폐허 위에' 쏟아진다는 점이다. 이는 삶의 희비(喜悲)와 무관하게 모든 존재에게 균일하게 가해지는 고통의 보편성을 드러낸다.
빛은 일반적으로 희망이나 구원을 상징하지만, 이 시에서는 오히려 순례자의 '살결 태울 것 같은'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온다. 낙원과 폐허가 공존하는 이 이중적인 풍경은, 우리 삶이 기쁨과 절망, 성공과 실패가 교차하는 복잡한 지형임을 보여준다. 순례자는 이 상반된 풍경 속에서 자신의 '두터운 생존'을 확인하며, 고통이야말로 살아있음의 가장 확실한 증거임을 역설적으로 깨닫는다. '명암교차(明暗交叉)'의 비유처럼, 삶의 빛과 그림자가 뒤섞인 풍경이 바로 이 시의 무대이며, 그 속에서 순례자는 묵묵히 자신의 실존을 증명해낸다.
맨발의 순례자가 선택한 '고통의 확인'
시의 제목이자 핵심 주체인 '맨발의 순례자'는 문명의 편리함을 거부하고 날것 그대로의 고통을 감수하는 존재이다. 이는 가식과 허울을 벗어던지고 삶의 맨 얼굴을 직시하려는 순수한 의지를 상징한다. 그는 '쓰러진 갈대사이로' 멈춰 서서 '생존을 확인'한다. 갈대는 시련에 꺾인 연약한 존재들을 의미하며, 순례자는 그들을 보며 자신이 겪는 고통이 결코 개인만의 것이 아닌, 모든 생명이 공유하는 보편적 숙명임을 깨닫는다.
그가 확인하는 '두터운 생존'은 단순히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을 넘어, 삶의 무게와 고통의 깊이를 온몸으로 감각하는 행위이다. 이는 지성적 이해를 넘어선 육체적, 영혼적 깨달음이다. '살결 태울 것 같은' '빛의 충돌'은 외부에서 가해지는 혹독한 시련을 의미하며, 순례자는 이를 피하거나 거부하지 않고 오히려 그 빛을 '몸을 갚아 돈다'. 이는 고통을 피하려 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며, 그 고통을 통해 자신을 정화하고 의미를 얻는 행위로 볼 수 있다. '우리를 죽이지 않는 것은 우리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는 니체의 말처럼, 이 시에서 고통은 순례자를 무너뜨리지 않고 더욱 단단한 존재로 완성시킨다.
고통을 통한 존재론적 성찰
이 시는 고통을 단순히 부정적인 것으로 치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은 존재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증거이자, 더 깊은 실존적 성찰로 나아가게 하는 통로이다. 태양의 빛이 순례자의 몸을 휘감아 도는 순간은, 순례자가 외부의 시련을 온전히 내면화하고 흡수하여 자신의 존재를 더욱 견고하게 다지는 순간이다.
이는 마치 고난을 통해 얻는 성숙과도 같다. 고통 속에서 삶의 진실을 깨닫는 순례자의 모습은, 모든 인간이 자신의 내적 순례를 통해 존재의 의미를 탐색해야 함을 암시한다. '두터운 생존'은 얕은 이해가 아닌 깊은 경험과 고통을 통해 얻어진 진실이며, 이는 그 어떤 외부적 가치보다 더 굳건한 존재의 토대가 된다. 이처럼 순례자의 고난은 삶의 근원을 탐구하는 '고진감래(苦盡甘來)'의 과정이며, 이를 통해 그는 존재의 가치를 증명한다.
고통의 긍정을 넘어선 순례의 완성
'맨발의 순례자'는 고통스러운 길 위에서 비로소 삶의 본질을 깨닫는 존재이다. 시는 무겁고 고통스러운 서정을 담고 있지만, 그 끝에는 고통을 감수하고 길을 나서는 굳건한 순례자의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고통은 끝내 순례의 몸을 감싸 안는 빛이 되며, 이는 곧 고난이 존재를 완성하는 힘이 됨을 시사한다. 이 시는 '맨발 순례자는 멈춰서 / 살아가는 그 두터운 / 생존을 확인 하지만' 이라는 시구처럼, 고통을 직시하며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인간의 강인한 실존 의지를 그려낸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
유호근의 ‘고향집’
-기억의 항아리에 발효된 사랑-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향과 숨결 -시간 속에 절여진 기억의 풍경
유호근 시인의 「고향집」은 단순한 공간의 묘사를 넘어서, 고향이라는 기억의 중심에서 발효된 정서를 감각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텅 빈 바람 튀어 오르는 소리’라는 표현은 적막과 생동을 동시에 담으며, 장독대의 정적 속에 숨겨진 생명의 흔적을 떠오르게 한다. 그 안에는 ‘큼큼하며 칼칼한 젖 같은 숨결’이 스며 있고, 이는 고향의 시간이 저마다의 향으로 응축되었음을 보여준다. ‘고향은 그리움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는 말처럼, 시인은 장소를 통해 존재의 뿌리를 되짚는다.
한여름 뙤약볕 피해 마루에 걸 터 앉으니
뒤란 장독대에서
텅 빈 바람 튀어 오르는 소리가 난다
사시사철 그 안에는 큼큼하며
칼칼한 젖같은 숨결이 그득하였다
곤로 위에서 어느새 보글보글 끓는
어머니의 바쁜 손맛,
얼마나 많은 절임과
내보이지 않은 뼈마디 저림이
묻어 있을까
담겨 배어들어
쓴맛 짠맛 어우러져 진맛나도록
하늘 보고 열어 두어라
새소리 바람 소리 할머니 구시렁 소리
그저 받아들여 잠재워 두어라
긴 기다림의 발효 시간 지나고
어머니의 절여진 육신만 남아
바닥까지 닥닥 긁어 가버린
고향 집 빈 항아리에 언뜻언뜻
하얀 소금기가 붉은 석양빛에 반짝인다
– 유호근의 ‘고향집’ 전문
참고 (원제목 고향 집 항아리에 핀 소금꽃)
어머니의 육신과 손맛-절임의 미학과 삶의 희생
‘곤로 위에서 끓는 바쁜 손맛’은 어머니라는 존재를 뜨겁고도 조용한 노동으로 형상화한다. 많은 ‘절임’은 단지 음식이 아니라 세월과 희생을 상징하며, 내보이지 않은 ‘뼈마디 저림’은 고통의 흔적까지 시 안에 녹아든다. 이는 마치 마거릿 미드가 남긴 명언처럼 ‘가장 오래 기억되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위해 자신을 내어준 순간들이다’ 라는 진실을 되새기게 한다. 음식이라는 매개는 사랑의 실천을 대표하고, 그 실천은 결국 육신을 남기며 사라져 간 어머니로 이어진다.
소리의 발효-삶을 받아들이는 고향의 태도
‘새소리, 바람 소리, 할머니의 구시렁 소리’까지 받아들여 ‘잠재워 두어라’는 시인은 단순히 소리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감정과 현상들을 고요히 숙성시키는 방법을 제시한다. 이는 사자성어 화이부동(和而不同)조화를 이루되 동일하지 않음을 뜻하며, 타인과 환경을 받아들이되, 자신의 내면에서 숙성시켜 삶의 맛으로 만들어낸다는 철학과 연결된다. 고향이란 떠나와야 비로소 진실하게 반응하는 발효의 공간이며, 기억은 그곳에서 서서히 향을 피운다.
소금꽃과 석양, 삶의 잔상
작품 마지막의 ‘하얀 소금기’는 단순한 잔류물이 아니라, 삶의 본질이 증발된 뒤 남은 순수한 흔적이다. 붉은 석양에 반짝이는 그것은 사랑과 고통, 노동과 기다림의 결말이며, 시인은 항아리라는 그릇에 담아두었던 모든 ‘절여진 삶’의 마지막을 애틋하게 바라본다. 니체가 말했듯 ‘기억이란 삶의 향기이다’ 이 말처럼, 고향의 소금꽃은 그 삶의 향기를 영롱하게 발산한다.
유호근시인의 「고향집」은 단지 한 편의 시가 아니라, 삶을 절이고 숙성시켜 깊은 맛으로 내보이는 기억의 연대기이다. 뙤약볕과 항아리, 어머니의 손맛과 석양빛 사이에서 우리는 고향이라는 단어의 진정한 의미를 음미하게 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3
멈추지 않는 열정, 그 절정에서 피어난 ‘여백의 미학’
-이동환 시인의 시 「인생의 가을에서」를 읽고-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1. 막힌 혈맥을 뚫는 공학자, 시로써 삶의 숨통을 트다
이동환 시인의 「인생의 가을에서」는 이성과 감성이 완벽하게 조우한 지점에서 탄생한 수작이다. 시인은 막힌 혈관을 뚫어 생명을 살리는 ‘차세대 혈액점도검사기’를 개발해 낸 집념의 공학자(전북대 교수)다. 기계의 정밀함으로 육체의 흐름을 돕는 그가, 이번에는 시의 언어로 삶의 막힌 곳을 짚어내고 ‘여백’이라는 숨구멍을 틔운다. 복잡한 기계 장치 속에서도 생명의 순환을 고민해 온 시인의 시선은, 이제 인생이라는 거대한 캔버스 위에서 욕망과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가장 본질적인 순수를 지향하고 있다. 이는 과학의 차가운 머리와 문학의 뜨거운 가슴이 빚어낸 치유의 연금술이다.
여백으로 시작하여
봄색의 하루는 길었고
여름 색은 열정이었다
여러날 동안
켜켜이 쌓아 올린 시간의 그림자가
가을 앞에 있다
농익은 색의 찬란함으로
아름다움을 가슴에 품고
가을 나무 꽃으로 서있다
인생의 가을녘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채웠고
보이는 것을 비웠다
무채색 가득한 비움으로
인생의 가을에 선 지금
다시 하얀 여백으로 돌아간다
ㅡ 이동환의 [인생의 가을에서] 중에서
{전북대학교 교수•시인}
2. 사무엘 울만의 ‘청춘’이 머무는 찬란한 가을
화자가 노래하는 “여름 색은 열정이었다”라는 고백은 사무엘 울만의 명시 「청춘」의 한 구절을 떠올리게 한다. '청춘이란 인생의 어떤 한 시기가 아니라 마음가짐을 뜻하나니, 장미빛 볼과 붉은 입술이 아니라 강인한 의지와 불타는 열정을 말한다.' 시인이 쌓아 올린 ‘시간의 그림자’는 단순히 흘러가 버린 세월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수많은 도전 끝에 혁신적인 기술을 일궈낸 치열한 삶의 증명이자, 여전히 식지 않은 현역의 열정이다. 정년퇴임을 앞둔 시점, 그의 가을이 쇠락이 아닌 “농익은 색의 찬란함”으로 빛나는 이유는 그의 내면이 여전히 푸르른 청춘의 에너지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3. 예술가 부부의 동행, 전시장에서 만개한 ‘가을 나무 꽃’
이 시는 평생 미(美)의 길을 걸어온 아내 김정숙 교수(군산대 미술학과)의 정년퇴임 기념 초대전을 축하하는 헌시로서 그 울림이 크다. 시인은 아내를 ‘가을 나무 꽃’이라 칭송한다. 이제 곧 강단을 떠나게 될 아내의 이번 전시는 교직 생활의 마침표가 아니라, 화가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견고히 하는 절정의 무대다.
공학자 남편의 논리적인 지지와 화가 아내의 감성적인 색채가 어우러져, 부부는 서로의 삶을 가장 아름답게 비추는 거울이 되었다. 인생의 수확기인 가을,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 아내의 작품 앞에서 시인은 부부가 함께 걸어온 길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해 보인다.
4. 반박귀진(返朴歸眞)의 경지, 새로운 여백 위에 서다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다시 하얀 여백으로 돌아간다' 라고 선언한다. 이는 화려함을 뒤로하고 본연의 순수함으로 돌아간다는 ‘반박귀진(返朴歸眞)’의 철학적 경지다. 퇴임을 앞둔 시점에서 말하는 비움은 상실이 아니라, 다가올 새로운 시간을 담아내기 위한 가장 설레는 준비다. 캔버스의 흰 여백이 무한한 창조의 공간이듯, 시인과 아내에게 다가올 시간은 은퇴가 아닌 또 다른 시작의 캔버스다. 이 시는 가장 맑은 눈으로 인생의 2막을 준비하는 예술가 가족의 품격 있는 출사표이자, 찬란한 미래를 향한 희망가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4
정호승의 『봄길』,
스스로 길이 되는 사람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Ⅰ. 끝에서 시작되는 길의 철학
정호승 시인의 「봄길」은 단순한 계절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단절과 상실 앞에서, 어떻게 다시 길을 만들어 나갈 것인가에 대한 존재론적 질문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 길이 있다’는 선언은, 외부의 조건이 아니라 내면의 태도가 길을 결정한다는 시인의 철학을 담고 있다.
길이 없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멈춘다. 그러나 시인은 그 멈춤의 자리에서 다시 길을 만들어가는 사람을 노래한다. 그것은 단순한 희망이 아니라, 스스로 길이 되는 존재의 결단이다. 시인은 그 결단을 ‘봄길’이라 부른다. 봄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며, 길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있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봄길이 되어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
보라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 – 정호승의 『봄길』 전문
Ⅱ. 스스로 길이 되는 존재의 윤리
‘스스로 봄길이 되어 / 끝없이 걸어가는 사람이 있다’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이다. 시인은 길을 걷는 사람이 아니라, 길이 되는 사람을 말한다. 그것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이다. 스스로 길이 된다는 것은, 타인의 삶에 방향을 제시하고, 희망을 건네는 삶의 태도다.
이러한 존재는 외부의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다. ‘강물은 흐르다가 멈추고 / 새들은 날아가 돌아오지 않고 / 하늘과 땅 사이의 모든 꽃잎은 흩어져도’라는 구절은, 자연의 순환 속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은 멈추지 않는다. 시인은 그 지속성을 통해, 인간 존재의 품격을 말한다.
Ⅲ. 사랑의 윤리, 함께 걷는 삶
‘사랑이 끝난 곳에서도 / 사랑으로 남아 있는 사람이 있다’는 구절은, 이 시가 단순한 길의 시가 아니라, 사랑의 시임을 드러낸다. 시인은 사랑을 감정이 아니라, 존재의 방식으로 바라본다. 사랑이 끝났다고 해서 사랑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관계의 지속이 아니라, 태도의 지속이다.
‘스스로 사랑이 되어 / 한없이 봄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함께 걷는 삶의 상징이다. 그 사람은 누군가를 위해 길이 되고, 사랑이 되어 존재한다. 시인은 그 존재를 통해, 인간다움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그것은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니라, 삶으로 실천하는 사랑이다. 그리고 그 사랑은, 봄길처럼 조용히 피어나,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만든다.
Ⅳ. 존재의 품격, 길이 되는 삶
「봄길」은 삶의 끝에서 다시 시작하는 존재의 이야기이며, 스스로 길이 되고 사랑이 되는 사람의 윤리적 실천이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길을 걷고 있는가, 아니면 길이 되고 있는가. 우리는 사랑을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사랑으로 남아 있는가.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진정한 길은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길은, 함께 걷는 사람들 속에서 더욱 단단해진다. 정호승의 「봄길」은 그 길을 보여준다. 끝에서 시작하는 길, 사라진 자리에서 피어나는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스스로 감당하는 존재. 그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가장 깊은 울림이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5
이기철시인의 『따뜻한 책』 ― 언어의 숨결로 빚은 존재의 온기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이기철 시인은 언어를 단순한 소통의 도구로 보지 않는다. 그의 시 「따뜻한 책」은 말과 글, 책이라는 매개를 통해 인간의 내면과 세계를 동시에 어루만지는 언어의 윤리적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 시는 감성의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그 속에는 언어의 존재론적 본질을 향한 철학적 사유가 촘촘히 깃들어 있다. 말이 밥이 되고, 책이 의자가 되며, 글자가 불빛이 되는 이 세계는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는 윤리적 성찰의 장이다.
행간을 지나온 말들이 밥처럼 따뜻하다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
글자들의 숨 쉬는 소리가 피 속을 지날 때
글자들은 제 뼈를 녹여 마음의 단백이 된다
서서 읽는 사람아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
우리 눈이 닿을 때까지 참고 기다린 글자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 다니는 것은
세계의 잠을 깨우는 언어의 발자국 소리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
글자들은 늘 신생을 꿈꾼다
마음의 쟁반에 담기는 한 알 비타민의 말들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 –이기철의 『따뜻한 책』 전문
‘한 마디 말이 한 그릇 밥이 될 때 / 마음의 쌀 씻는 소리가 세상을 씻는다’는 구절은 언어가 인간의 정신을 양육하는 밥상임을 상징한다. 말은 허기를 채우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씻고 세계를 정화하는 힘을 지닌다. 이는 공자의 ‘온고지신(溫故知新)’을 떠올리게 한다. 과거의 말들이 현재를 따뜻하게 적시며, 새로운 의미를 창조하는 과정은 곧 언어의 윤리적 재생이다. 말은 정서와 사유를 담은 영양소이며, 그 말이 밥이 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가꾸는 존재로 거듭난다.
시인은 책을 단순한 종이 뭉치로 보지 않는다. ‘서서 읽는 사람아 / 내가 의자가 되어줄게 내 위에 앉아라’라는 구절은 책이 독자의 삶을 지지하는 존재로서, 사유의 출발점이 되는 공간임을 드러낸다. 책은 독자의 고단함을 품어주는 의자이며, 동시에 마음의 쉼터다. 니체는 ‘책은 우리를 위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흔들기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지만, 시인은 흔들림 이전에 따뜻한 안식처로서의 역할을 자임한다. 책은 등을 받쳐주는 등불이며, 사유의 씨앗을 품은 흙이다. 독자는 그 위에 앉아 세계를 바라보고, 마음을 정돈하며, 언어의 숨결을 들이마신다.
‘엽록처럼 살아 있는 예지들이 / 책 밖으로 뛰어나와 불빛이 된다’는 시적 비유는 언어의 생명성과 확장성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엽록소는 식물의 생명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이며, 여기서 언어는 생명의 촉매로 기능한다. 말들이 마음의 건반 위를 뛰어다니는 모습은 언어가 세계의 잠을 깨우는 ‘발자국 소리’로 형상화된다. 이는 마르틴 하이데거의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라는 철학적 명언처럼, 언어가 존재를 드러내고 세계를 깨우는 본질적 역할을 수행함을 시적으로 구현한다. 언어는 단순히 의미를 담는 그릇이 아니라, 존재를 일깨우는 불빛이며, 세계를 향한 창이다. 시인의 언어는 마치 새벽의 첫 숨결처럼, 어둠 속에서 조용히 빛을 피워낸다.
마지막 구절 ‘책이라는 말이 세상을 가꾼다’는 선언은 이 시의 철학적 정점이다. 책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세계를 경작하는 씨앗이다. 마음의 쟁반에 담긴 ‘한 알 비타민의 말들’은 인간 정신의 영양소로 기능하며, 독자의 내면을 풍요롭게 한다. 이는 한자성어 ‘문사철배(文思哲培 문학과 사유로 철학을 배양한다는 뜻)’를 떠올리게 한다. 책은 씨앗이고, 독자는 그 씨앗을 품은 토양이다.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은 사유의 꽃이며, 공감의 숲이다. 시인은 언어의 윤리, 존재의 온기, 세계의 각성을 아우르며, 책이라는 존재가 인간과 세계를 동시에 가꾸는 철학적 도구임을 웅변한다.
오늘날 우리는 말의 속도에 익숙해져 있지만, 시인은 말의 온도를 되묻는다. 빠르게 소비되는 언어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따뜻한 말을 건네고 있는가. 말이 밥이 되고, 책이 의자가 되며, 글자가 불빛이 되는 이 세계는 우리가 언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묻는 윤리적 성찰의 장이다. 언어는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이 시는 그 살아 있는 언어의 숨결을, 독자의 마음에 따뜻하게 불어넣는다.
그 울림은 조용하지만 깊다. 언어는 흔들어 깨우고, 앉혀 쉬게 하며, 밝혀 나아가게 한다. 말은 밥이고, 책은 의자이며, 글자는 불빛이다. 그 상징들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철학적 선언이다. 시인은 그 선언을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가장 낮은 목소리로, 그러나 가장 깊은 울림으로 속삭인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오늘도 마음의 쌀을 씻는다. 언어는 그렇게, 삶을 품고 세계를 가꾸는 가장 인간적인 숨결이 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6
이희두의 논개, 그 뜨거운 조국애를 품은 시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역사의 물결 속에서 한 여인의 이름이 강물처럼 깊게 울려 퍼진다. 이희두 시인의 「논개」는 단순한 영웅의 찬사가 아니라, 조국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희생의 서사시다. 햇살에서 잉태된 여인, 주논개의 삶은 그 자체로 조국애의 결정체다. 장수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진주성에서 왜장을 껴안고 남강으로 뛰어든 그녀의 선택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민족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불꽃이었다. '천둥도 비켜가고, 핏물도 비켜 선' 그 강물에 서린 눈빛은, 조국을 향한 애절한 사랑의 증표다. 그녀는 단지 한 여인이 아니라, 시대를 껴안은 불사조였다.
햇살에서 잉태 된 여인 주논개
장수 계내면 주촌에서 태어나
진주성에서 왜장 게야무라 로쿠스케를
열가락지로 껴안고 바다 밑으로 뛰어 들었나니
그 이름 구국의 여신, 주 논개님이라.
천둥도 비켜가고, 핏물도 비켜 선
그 푸른 바다에 논개의 눈빛이 서글퍼
사랑하픈 여인이여.
하염없이 흐르는 그 물결위에
작은 돛단배 가슴에 품으며
뜨거운 사랑 고백하노니
죽어서도 죽지 않고 애간장을 녹이는
불사조 여인이여,
그대는 우리의 자랑스런 조국이여라 - 이희두의 '논개' 전문
논개의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 조국이 위기에 처할 때, 그녀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는 용기와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애국의 본질이다. 시인은 '죽어서도 죽지 않고 애간장을 녹이는' 존재로 논개를 묘사하며, 그녀의 희생이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를 살아 숨 쉬는 정신임을 일깨운다. 이처럼 시는 역사적 사실을 넘어, 감정의 결을 따라 조국애를 노래한다. 작은 돛단배를 품은 물결 위에 논개의 사랑은 끝없이 흐르고, 그 물결은 오늘날 우리 가슴에도 잔잔한 떨림을 준다. 마치 '조국은 단지 땅이 아니라, 우리가 사랑하고 지켜야 할 영혼이다'라는 말처럼, 논개의 삶은 그 영혼을 품은 불꽃이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해, 조국을 향한 사랑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다. 그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계산이 아니라 헌신이다. 논개의 선택은 그 어떤 정치적 계산도, 개인적 이익도 없었다. 오직 조국을 향한 순수한 사랑만이 있었다. 그녀의 열가락지는 단순한 손이 아니라, 민족의 운명을 껴안은 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논개의 시를 읽으며 뜨거워지는 이유는, 그 사랑이 여전히 우리 안에 살아 있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용기는 민족의 운명을 바꾼다'는 말처럼, 논개의 삶은 우리에게 조국애의 본질을 가르쳐준다. 그녀는 우리의 자랑스런 조국이며, 그 정신은 오늘도 우리를 지탱하는 빛이다.
이희두박사(시인)
한국그린문학명예회장/ 시인/총회신학대학(총신대학교)총장 /
전 한국기독교 지도자 협의회 회장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7
추원호의 오월의 연꽃, 생명의 은유와 내면의 기도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꽃은 뿌리를 보지 못하고 피어난다. 그러나 그 깊이를 알기에 더욱 빛난다.' - 비토리오 겔리
추원호 시인의 「오월의 연꽃」은 자연의 풍경을 빌려 인간 존재의 깊이 있는 성찰을 부드럽고 시적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이 시는 연잎과 연꽃이라는 상징을 통해 탄생과 성장, 나눔과 감사의 흐름을 따라가며, 마치 생의 순환을 품은 하나의 시적 드라마처럼 전개한다.
엄마의 양수속에서 놀던 아이
세상속으로 태어날 때처럼
연못 속 한줄기 연잎이
작은 손 움켜 쥐고
처음맞는 세상으로 나온다
손바닥을 꼭 쥐고
한 줄기 바람을 잡고
물결 치는 수면 위로
빼꼼히 내다 보며
따스한 오월의 햇볕을 안고
두팔 벌려 힘껏 안아 본다
지나가는 나그네 바라 보며
파란 눈으로 웃음을 보내고
어깨를 활짝 벌려
수면 위로 드러눕는 연잎
바닷가 연안부두 돛단배 처럼
정박해 있는 연잎들
유월이 되면 가느다란 목을
하늘에 닿을 듯 길게 빼고
떨어지는 옥구슬 담아
이웃에게 베픔을 기대해 본다
유월이 되면 온 천지에
화려한 연꽃을 피워
새 생명 주심을 감사하며
두팔벌려 하나님께 기도하겠지. - 추원호의 <오월의 연꽃> 전문
첫 연에서는 엄마의 양수 속, 태초의 기억처럼 아득한 공간에서 연잎 하나가 세상으로 나오는 장면이 펼쳐진다. 아이가 세상과 첫 인사를 나누듯 연잎은 물결 위로 손을 내밀며 오월의 햇볕을 껴안는다. 이 장면은 태어남이 곧 ‘받아들임’임을, 삶은 바람을 잡고 햇살을 안는 용기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오월의 따스함은 단지 계절적 온기만이 아니라 생명을 깨우는 내면의 온기다.
중반부에 등장하는 연잎의 움직임은 사회적 존재로서의 삶을 암시한다. 나그네를 향해 웃음을 보내고, 어깨를 활짝 열며 수면 위로 누워 있는 모습은 관계 속에서의 개방, 감정의 교류, 그리고 자기 존재의 투명한 드러냄이다. 바닷가의 돛단배처럼 정박된 연잎들은 서로 머물며 조용한 연대를 형성하고, 시인은 그 평화 속에서 시간의 흐름을 묘사한다. 곧 유월이 다가오면 연잎은 목을 길게 빼고, 하늘을 향해 수직적으로 꿈을 뻗는다. 이는 성장을 향한 갈망이자,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은혜를 고스란히 받아내기 위한 준비다.
옥구슬은 비유적 의미로서 사랑과 나눔, 신의 은총을 담는 그릇이며, 이웃에게 ‘베품을 기대해 본다’는 마지막은 단순한 소망이 아니라 내면의 기도가 되어 시를 마무리짓는다. 유월의 연꽃은 화려함이 아니다. 그것은 ‘새 생명에 대한 감사’이며, 두 팔 벌려 드리는 기도 그 자체다. 인간이 자연을 닮아가며 어떻게 삶을 피워내는지, 그 과정을 시인은 연꽃의 생애를 통해 섬세하게 포착하고 있다.
「오월의 연꽃」은 단지 꽃의 피어남을 노래한 시가 아니다. 그것은 존재의 탄생에서 공존, 그리고 영적 깨달음에 이르기까지 생명의 완만한 곡선을 따라간 여정이다. 이 시가 우리에게 남기는 울림은, 피어난다는 것이 얼마나 깊은 뿌리를 가진 선택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잔잔한 기도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8
하제 김경수의 '어머니의 손끝’을 읽고
-결핍을 풍요로 빚어낸 거룩한 연금술-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가난을 녹이는 숭고한 사랑의 서막
가난은 차갑다. 그러나 어머니라는 이름은 그보다 뜨겁다. 김경수 시인은 '문풍지 사이로 스며드는 가난'을 배경으로 시를 연다. 냉기가 방을 잠식하던 시절, 어머니는 차가운 부엌에서 홀로 고군분투한다. 온몸으로 하루를 덥히는 그 행위는 생존을 위한 투쟁이자 자식을 향한 무조건적인 헌신이다. 여기서 어머니의 손끝은 단순한 신체가 아니다. 그것은 시린 세상을 막아서는 최후의 보루이며,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불씨를 지피는 온기의 발원지다. 시인은 이 도입부를 통해 우리가 잊고 지낸 사랑의 원형을 복원하며 독자의 가슴에 깊은 파동을 일으킨다.
가난이 문풍지 사이로 스며들던 밤
냉기는 켜켜이 쌓여 방을 잠식했다
어머니는 한기가 감도는 부엌에서
온몸으로 하루를 덥히고 있었다
보리쌀 씻는 소리는
어둠을 밀어내는 간절한 기도였고
솥 바닥에 남은 국물 한 방울에도
그 손끝은 맛을 잊지 않았다.
먹거리가 적을수록
어머니의 손은 더욱 크고 분주했다
없는 것을 들어내기보다
있는 것을 오래 끓여내는 법
어머니는 말없이 삶을 빚어내셨다
우리는 그 손끝에서
세월의 허기를 잊고 자랐다
지금, 그 손은
더는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으로 접혀 있지만
그 온기만큼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배울 수 없는 뜨거움으로 남아 있다
우리는 그 손끝에서
세월의 허기를 잊고 자랐다
지금, 그 손은
더는 움직이지 않는 고요함으로 접혀 있지만
그 온기만큼은 세상 어떤 것으로도
배울 수 없는 뜨거움으로 남아 있다
뜨거움으로 남아 있다 - 하제 김경수의 「어머니의 손끝」
(작사/SUNO 작곡 노래) 전문
기도가 된 노동, 소리로 읽는 헌신의 미학
보리쌀 씻는 소리는 어둠을 밀어내는 간절한 기도다. 시인은 일상의 남루한 노동을 성스러운 종교적 의식으로 격상시킨다. 솥 바닥에 남은 국물 한 방울조차 소홀히 하지 않는 정성은 삶에 대한 경외심 그 자체다. 그 손끝은 삶의 비릿한 맛을 보석 같은 진국으로 바꾸어 놓는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드셨다.’ 영국의 시인 러디어드 키플링(Rudyard Kipling)의 이 명언은 본 시의 핵심과 맞닿아 있다. 어머니는 신의 대리자로서 자식의 허기를 채우고 영혼을 어루만진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비굴해지지 않는 손끝의 섬세함은 시어마다 단단하게 박혀 독자의 감각을 깨운다.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하는 삶의 철학
어머니의 지혜는 고아취로(膏兒炊露)의 정신과 깊이 공명한다. '자식을 위해 이슬을 모아 기름진 밥을 짓는 지극한 정성'이라는 뜻이다. 시 속의 어머니는 없는 것을 탓하며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대신 있는 것을 오래 끓여내는 인내의 미학을 택한다. 이는 부족함을 풍요로 바꾸는 고도의 '삶의 연금술'이다. 어머니의 손은 '슬픔을 희망으로 튀겨내는 무쇠 가마솥'과 같다. 그 안에서 가난은 비참한 고통이 아니라, 오히려 가족을 하나로 묶는 단단한 결속의 밑거름이 된다. 시인은 말 없는 노동을 통해 삶을 정성껏 빚어내는 법을 우리에게 증언한다.
멈춰진 손끝에서 흐르는 불멸의 생명력
2연에 이르러 시적 대상은 정적인 고요함으로 수렴된다. 이제 그 손은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의 풍파를 견디고 마침내 접힌 그 손은 역설적으로 가장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다. 육체적 기능은 멈추었으나 그 영향력은 시간의 경계를 넘어 증폭된다. 시인은 이 정지된 상태를 '영원으로 향하는 사랑의 이정표' 혹은 '멈추지 않는 온기의 화석'에 비유한다. 육신의 부재는 사랑의 소멸이 아니다. 세상의 어떤 학문이나 철학으로도 체득할 수 없는 뜨거움이 자식의 혈관 속에 여전히 흐르고 있다. 죽음을 넘어선 불멸의 모성이 이 대목에서 완성되며 시적 감동은 절정에 달한다.
손끝의 기억으로 덥히는 우리의 차가운 오늘
결국, 김경수의 <어머니의 손끝>은 과거의 회상을 넘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던지는 뜨거운 경종이다. 시인은 '뜨거움으로 남아 있다'는 문장을 반복하며 시를 갈무리한다. 이는 그 온기를 잊지 말고 당신의 삶 또한 누군가에게 온기가 되라는 간절한 당부다. 우리는 모두 그 뜨거운 손끝에서 빚어지고 길러진 존재들이다. 어머니가 보여준 헌신의 미학은 혼란스러운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유일한 지표가 된다. 이 시를 읽는 이들은 누구나 마음속 가마솥을 다시 지피게 될 것이다. 그 손끝의 기억이 살아 숨 쉬는 한, 우리 삶에 진정한 추위는 존재할 수 없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9
시평 진성 시인의 ‘비가 내리면’
—감정의 우산 아래 피어나는 삶의 풍경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비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의 내면을 적시고, 기억을 흔들며, 사유를 불러오는 감정의 매개체다. 진성 시인의 「비가 내리면」은 반복되는 운율 속에 다양한 감정의 결을 담아내며, 비라는 자연의 언어를 통해 인간의 삶을 다층적으로 조명한다. 이 시는 마치 창가에 앉아 진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처럼, 독자에게 사색의 여백을 건넨다.
비가 내리면 걱정이 앞선다.
비가 내리면 걱정을 씻어 준다.
비가 내리면 지저분한 마음까지 씻어준다.
비가 내리면 그동안 쌓여던 실연도 말끔히 씻겨 준다.
비가 내리면 도량도 말끔히 청소해 준다.
비가 내리면 내 정신도 씻어준다.
비가 내리면 멋진 추억이 샘솟아 돗아난다.
비가 내리면 첫사랑이 그리워 진다 .
비가 내리면 무서워진다.
비가 내리면 미래를 위해 계획을 세워 본다.
비가 내리면 창가에 앉아 진한 차 한잔을 마셔본다
비가 내리면 나도 시인이 되어 본다.
비가 내리면 농부는 웃는다.
비가 내리면 농부는 울고 싶어진다.
비가 내리면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듯하다.
비가 내리면 비를 맞고 싶어진다.
비가 내리면
진한 차 한잔을 앞에 놓고
창가를 보며 시인 행세를 하고 있는(18.08.26)
-진성의 『비가 내리면』 전문
비에 씻기는 마음, 정화의 서정
시의 초반부는 ‘비가 내리면 걱정이 앞선다’는 현실적 감정에서 출발해, 곧 ‘걱정을 씻어 준다’는 정화의 이미지로 전환된다. 비는 여기서 단순한 불안의 상징이 아니라, 마음속 먼지를 씻어내는 치유의 존재로 기능한다. ‘지저분한 마음’과 ‘실연의 잔재’가 비에 의해 말끔히 씻겨나가는 장면은, 마치 비가 인간의 내면을 청소하는 손길처럼 묘사된다. 이는 시적 비유로서, 비를 ‘감정의 세탁기’로 형상화한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은 비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정화되고 재정비되는 과정을 서정적으로 풀어낸다.
기억과 그리움의 회귀, 비의 감성적 힘
중반부로 접어들며 시는 비가 불러오는 기억의 파편들을 하나씩 꺼내 놓는다. ‘멋진 추억이 샘솟아 돗아난다’는 표현은 비가 단순히 과거를 떠올리게 하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되살리고 감정을 재생산하는 매개체임을 보여준다. 특히 ‘첫사랑이 그리워진다’는 구절은 비가 감성의 문을 열어주는 열쇠처럼 작용함을 상징한다. 이는 마치 비가 ‘기억의 피아노 건반’을 두드려, 잊고 있던 감정의 선율을 다시 연주하는 듯한 시적 비유로 읽힌다. 이처럼 시인은 비를 통해 인간의 감정이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회귀적 흐름을 갖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삶의 양면성과 사유의 공간
시의 후반부는 비가 지닌 양면성을 조명한다. ‘농부는 웃는다’와 ‘농부는 울고 싶어진다’는 상반된 구절은 비가 생명을 키우는 동시에, 때로는 파괴를 동반하는 자연의 이중성을 상징한다. 이는 ‘희비교차(喜悲交叉)’라는 한자성어처럼,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삶의 진실을 함축한다.
하지만 시인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비가 내리면 창가에 앉아 진한 차 한잔을 마셔본다’는 장면은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유의 공간을 마련하는 순간이다. 차 한 잔과 창밖 풍경은 단순한 일상이 아니라, 내면을 정돈하고 삶을 성찰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흐름 속에서 ‘나도 시인이 되어 본다’는 고백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비가 인간을 사유의 시인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됨을 보여준다.
비가 건네는 존재의 메시지
마지막 연에서는 비를 맞고 싶어지는 충동과 함께, 자연이 살아 숨 쉬는 듯한 감각이 묘사된다. 이는 비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로 기능함을 상징한다. 마하트마 간디의 명언 ‘삶은 우리가 만드는 예술이다’처럼, 시인은 비를 통해 삶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순간을 포착한다. 비는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 질문이자, 그 답을 찾아가는 여정의 시작이다. 시인은 비를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당신은 오늘, 어떤 감정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비가 내리면」은 감정의 흐름과 기억의 회귀, 삶의 양면성과 사유의 공간을 자연스럽게 엮어낸 시적 여정이다. 진성 시인은 비라는 자연현상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정화하고, 기억을 되살리며,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다. 이 시를 읽는 순간, 우리는 모두 창가에 앉아 진한 차 한 잔을 앞에 두고, 조용히 시인이 되어간다. 그리고 그 사유의 시간 속에서, 비는 우리에게 또 하나의 시작을 속삭인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0
우병기 시인의 낮과 밤의 초상
-경계의 윤곽과 존재의 초상-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빛과 그림자의 겹침 — 분할 불가능한 경계의 미학
우병기 시인의 「낮과 밤의 초상」은 뚜렷하지 않은 선의 영역을 탐색하며, 우리가 관습적으로 구분하는 ‘낮과 밤’, ‘흑과 백’, ‘웃음과 울음’의 경계를 문제 삼는다. ‘애매한 경계, 모호한 구분’이라는 시의 초두부터 시작되는 흐름은 곧 ‘손바닥과 손등의 나눔처럼’이라는 인상적인 비유로 이어진다. 분리될 수 없지만 마주하고 있는 상태, 그것이 바로 이 시의 핵심이다.
이는 사자성어 불립문자(不立文字), 곧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진리를 암시하는 듯하다. 경계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곧 무의미한 미분이며, 시인은 그 겹침 안에서 존재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진실은 분리된 명사보다 흐르는 동사 속에 숨어 있다.’ — 버지니아 울프
애매한 경계
모호한 구분
당신은 금 그을 수 있으려나
해 뜨고 지는 풍경
지구 자전의 광경
그 겹침을 가를 수 있으려나
아직 걷고 있는 구절양장(九折羊腸)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이 또한
흑과 백의 아웅다웅
형식과 인식의 논리에서
손바닥과 손등의 나눔처럼
풀벌레 시를 받아 적는
저뭄의 시작을
울음소리 들릴 때라고 하면 되나
웃음이 크게 울다가
울음이 멋적어 되려 웃어버리는
가르마 앉을 자리를
관능에 집중함은
미학의 불가결한 요소이라서
오감을 부풀리면 좀 선명해질까
따뜻함이 치우치지 않는
후한 인심의 내 만족
그 인접선을 어디쯤 눕혀야 하나 – 우병기의 ‘낮과 밤의 초상’전문
구절양장의 길- 삶의 오르막인지 내리막인지
‘아직 걷고 있는 구절양장(九折羊腸)’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존재적 자각을 드러내는 핵심적인 장치다. 좁고 꼬불꼬불한 삶의 길에서, 우리는 여전히 방향을 알 수 없는 여정을 걷고 있다. 오르막인가, 내리막인가? 시인은 그것조차 묻지 않는다. 단지 ‘흑과 백의 아웅다웅, 형식과 인식의 논리’ 속에서 삶은 부단히 흔들린다. 여기서 시인은 존재론적 질문을 던지는 대신, 고요한 관능과 미학 속에서 윤곽을 느끼려 한다. 이는 미로 같은 세계 속에서 길을 묻는 대신, 그 길의 감각을 체험하려는 시인의 태도이며, 플로베르가 말한 ‘모든 것이 명확해질 때, 우리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는다’ 는 문장을 떠올리게 한다.
웃음과 울음 - 감정의 뒤엉킴이 드러내는 인간의 진면목
시의 중반, ‘웃음이 크게 울다가 울음이 멋적어 되려 웃어버리는’ 순간은 인간 감정의 상호반응을 섬세하게 포착한 대목이다. 감정은 선명하지 않고, 오히려 경계 없는 흐름 속에서 드러나며, 어떤 하나로 명명될 수 없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 표출된다. 이는 웃음 속에 슬픔이 깃들고, 눈물 속에도 희열이 잠재되어 있음을 시적으로 은유하는 표현이다. 이 복합성은 오감의 확장을 통해 미학적으로 감지되며, ‘관능에 집중함은 미학의 불가결한 요소’라는 구절이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짚는다. 감정은 억제의 대상이 아닌 조형의 도구가 되고, 시인은 그 복잡한 감정의 엮임을 초상화의 질감으로 새긴다.
‘모든 인간의 감정은 서로를 반사하며 자란다.’ - 칼 구스타프 융
인접선에 눕혀진 나- 초상은 경계 위에 머무른다
작품 후반부의 ‘그 인접선을 어디쯤 눕혀야 하나’라는 문장은 이 시의 철학적 정점이다. 삶의 만족은 ‘후한 인심’에서 비롯되지만, 따뜻함이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는 통찰은 온기의 균형을 유지하는 삶의 태도를 암시한다. 경계는 나누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딘가 눕혀두고 감각으로 받아들여야 할 대상이다. 낮과 밤의 초상은 그렇게 태어난다. 명암의 사이에서, 선명함과 흐릿함 사이에서,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시인은 그 ‘중간값’을 포착하려 하며, 결국 초상화는 경계 그 자체가 된다.
우병기 시인의 이 작품은 인간 존재의 선명하지 않은 윤곽과, 감정의 겹침을 초상이라는 조형 언어로 풀어낸 시적 성찰이다. 삶의 나눔을 논하는 대신, 그 흐름을 관능과 언어로 감지해 낸 이 시는 경계를 넘어서 존재의 온도를 그려낸다. 아마도 초상은 단색이 아니라, 밤과 낮의 온기와 색채가 뒤섞인 화폭일 것이다.
우병기의 「낮과 밤의 초상」은 경계와 모호함, 존재의 흐릿한 윤곽을 섬세하게 포착한 작품으로서 형이상학적 사유와 감각적 언어가 아름답게 융합된 작품이다.
웃음과 울음, 흑과 백처럼 쉽게 나눌 수 없는 감정의 복합성을 탐색하며, 인간 내면의 진실을 시적 이미지로 풀어낸 점에서 예술성과 철학성을 동시에 지닌 시로 평가받을 것이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1
존재의 경이(驚異)를 깨우는 인식의 혁명
-김환생의 '사랑’을 읽고 -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1. ‘찾음’의 허망함과 ‘마주함’의 은총
인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미(美)를 향한 구도자가 된다. 우리는 감각의 만족을 채워줄 절대적인 대상을 찾아 평생을 방랑한다. 김환생 시인의 '이 나이 평생토록'이라는 고백은 그 탐색이 실존적 고뇌였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시인은 '아름다움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더라'는 전복적 선언으로 평생의 여정을 부정한다. 이는 미(美)가 객관적 실체로 어딘가에 고립되어 있다는 서구적 이분법을 타파하는 지점이다. 시인은 '찾으려는 의지'가 오히려 대상을 은폐시킨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 도입부는 소유하려는 욕망을 내려놓고 존재를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철학적 회귀를 보여준다.
이 나이 평생토록
아름다움을 찾아 헤맸는데
아름다움은
찾아지는 것이 아니더라.
사랑하면
모든 게 아름답더라. - 김환생의 「사랑」 전문
2. 에로스(Eros)의 눈으로 본 세계의 진실
'사랑하면 모든 게 아름답더라'는 구절은 인식론적 혁명이다. 이는 ‘사랑은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것이다’라는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의 통찰을 넘어선다. 성경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한1서 4:7-8)고 증언한다. 철학적으로 이는 '사랑'이라는 주관적 상태가 객체의 본질을 드러내는 조명(Illumination)임을 뜻한다. 사랑은 대상을 어둠 속에서 끌어올려 빛의 중심으로 세우는 거룩한 연금술이다. 또한 '메마른 존재의 사막에 생명의 수맥을 터뜨리는 신령한 지팡이'와 같다. 사랑이라는 렌즈를 통과할 때, 비로소 존재는 도구적 가치를 벗고 고유한 광휘를 발한다.
3. 만화방창(萬化方暢)과 하이데거의 '존재의 빛’
시인의 깨달음은 만화방창(萬化方暢)의 세계관과 공명한다. 따뜻한 봄기운에 만물이 제각각의 생명력을 만개하듯, 사랑은 닫혀 있던 존재의 문을 여는 열쇠다.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는 존재가 스스로를 드러내는 장소를 '리히퉁(Lichtung, 숲속의 공터)'이라 불렀다. 시인에게 '사랑'은 바로 그 빛이 쏟아지는 공터다. 사랑하지 않을 때 세상은 무미건조한 사물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그러나 사랑하는 순간, 길가의 돌멩이조차 우주적 질서의 일부로 편입된다. 시인은 미(美)를 외부의 장식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관계 맺기를 통해 존재의 심연에서 길어 올린다.
4. 사랑이라는 가장 가까운 구원과 유토피아
결국 김환생의 <사랑>은 멀리 있는 '이데아'를 동경하지 말고 지금 여기의 '현상'을 사랑하라는 실존적 권고다. 아름다움은 정복하여 쟁취하는 전리품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마음의 문턱을 낮출 때 비로소 우리 영혼에 깃드는 신비로운 선물이다. 시인이 평생의 구도를 통해 정제해낸 이 짧은 정언명령은, 우리에게 가장 단순하면서도 가장 위대한 구원의 길을 제시한다. 우리가 누군가를, 혹은 이 남루한 일상을 뜨겁게 사랑하기 시작할 때, 폐허 같던 현실은 순식간에 낙원으로 변모한다. 사랑만이 인간을 참된 미의 세계로 인도하는 유일한 통로이자, 세상을 완성하는 최후의 진리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2
모상철 시인의 「가을 연정」,
감각과 상징으로 빚은 가을의 서정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가을은 감정의 결을 가장 섬세하게 드러내는 계절이다. 바람은 부드럽고, 햇살은 따뜻하며, 낙엽은 조용히 떨어진다. 이 계절은 단지 자연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면의 감정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시기이며, 사랑과 그리움, 설렘과 외로움이 교차하는 시간이다. 모상철 시인의 시 「가을 연정」은 이러한 가을의 정서를 감각의 언어로 풀어낸 작품이다. 시인은 자연의 이미지에 사랑의 감정을 이입시키며, 계절과 감정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순간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이 시는 단순한 계절의 노래가 아니라, 사랑이라는 보편적 감정을 가을이라는 감각의 틀 안에서 새롭게 조형한 서정시다.
고혹한 그대의 숨소리에
꽃이 피고 향기를 퍼 나른다
푸른 잎사귀에 살랑살랑 다가와서
건들바람의 꽃 멍울을 애무하고
붉어진 열정 수줍음이 하얗게 터트리는
싱그러움의 형형색색으로
콧방울을 유혹해 오시면
그리운 임의 향기
다가오시는 임의 발걸음 소리
톡톡 터트리는 환희의 싱그러움...
설렘으로 안아본다
선잠에서 깨어난 새벽달 돌아가는 길
달빛에 젖어드는 그리움
건들바람에 젖어든다 - 竹泉 모상철의 「가을 연정」 전문
사랑을 깨우는 자연의 언어
「가을 연정」은 감각의 언어로 가득한 시다. 시인은 시각, 청각, 후각을 넘나드는 이미지들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촉각적으로 전달한다. ‘고혹한 그대의 숨소리에 / 꽃이 피고 향기를 퍼 나른다’는 구절은 사랑하는 존재의 숨결이 자연을 깨우고 생명을 틔우는 순간을 그려낸다. 이때 ‘숨소리’는 단순한 호흡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이자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로 읽힌다. 이어지는 ‘푸른 잎사귀에 살랑살랑 다가와서 / 건들바람의 꽃 멍울을 애무하고’에서는 바람의 움직임이 감각적으로 형상화되며, 사랑의 설렘과 미묘한 떨림이 자연의 움직임 속에 녹아든다. 시인은 자연의 요소들을 통해 사랑의 감정을 시각화하고, 독자에게 그 감정을 오감으로 체험하게 한다.
사랑의 여정을 따라 흐르는 이미지
이 시의 중심에는 세 가지 상징이 자리한다. 첫째, ‘건들바람’은 사랑의 시작을 알리는 미세한 떨림이다. 이 바람은 꽃 멍울을 ‘애무’하고, 그리움에 ‘젖어들게’ 하며, 감정의 미묘한 움직임을 상징한다. 둘째, ‘꽃 멍울’은 아직 피지 않은 감정의 씨앗으로, 수줍음과 설렘이 응축된 사랑의 잠재력을 나타낸다. 셋째, ‘새벽달 돌아가는 길’은 기다림과 그리움의 시간이다. 선잠에서 깨어난 새벽달은 고요한 외로움을 품고 있으며, 그 달빛에 젖어드는 마음은 사랑하는 이를 향한 간절한 열망을 담고 있다. 이 상징들은 시의 정서를 구조화하며, 사랑의 시작과 성장, 기다림이라는 서사를 자연의 이미지로 치환해 낸다.
환희와 그리움 사이의 감정의 파동
시 전체에 흐르는 ‘연정(戀情)’의 정서는 ‘다가오시는 임’에 대한 기대감과 ‘선잠에서 깨어난 새벽달’이 상징하는 고독한 그리움 사이의 긴장 속에서 완성된다. 사랑은 늘 설렘과 외로움 사이에서 흔들리며, 그 긴장 속에서 더욱 깊어진다. ‘콧방울을 유혹해 오시면 / 그리운 임의 향기 / 다가오시는 임의 발걸음 소리’는 사랑하는 존재의 도래를 기다리는 마음의 떨림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마지막 구절 ‘달빛에 젖어드는 그리움 / 건들바람에 젖어든다’는 사랑이 자연 속에 스며드는 순간을 보여준다. 사랑은 말로 다할 수 없는 감정이고, 그 감정은 바람처럼, 달빛처럼, 조용히 다가와 마음을 적신다. 모상철 시인의 이 시편은 가을날의 감각과 사랑의 정서를 가장 아름답게 담아낸 서정시로, 한국 현대시의 감각적 깊이와 상징적 성취를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3
송하진의 「흐르는 강처럼」을 읽고
침묵의 강을 건너는 법 - 고요 속에서 피어나는 하루의 희망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깊은 강이 있다. 그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 누구도 강을 흔들지 않지만, 그 깊이는 모든 흔들림을 담아낸다. 시 속의 한 줄, ‘깊은 강은 소리 없이 흐른다’는 말은 어쩌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조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지혜는 침묵 속에서 시작된다.’ 그 말처럼, 말의 부족함은 결코 결핍이 아닌, 깊이의 표현일지도 모른다.
깊은 강은 소리없이 흐른다!
첼로의 여운처럼 묵직히
흐르는 강이 되어 보자
황혼녘, 맥을 이뤄 나직히 흐르는 산처럼
어두워 가는 세상을
그윽히 바라보자
애매하고 멍하고 복잡한 세상이라면
우리의 언어는
순하고 단순하고 명료했으면
좋아라
해뜨는 동쪽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여명은
곧 솟아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날자! 날자! 아침이다!
하루하루는 얼마나
소중한 날들인가
오늘 하루를 어떤 하루로
만들 것인가는 오로지
너의 몫이다
날자 날자
한번 더 높이 날아보자 –송하진의 흐르는 강처럼 전문
시인은 말한다. ‘첼로의 여운처럼 묵직히 흐르는 강이 되어 보자.’ 첼로는 가장 낮은 음으로 시작하지만, 가장 깊은 울림을 남긴다. 마치 과시하지 않고 살아가는 인생처럼. 잔잔한 물살로 세상의 거친 바람을 견디며, 조용히 삶을 연주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말보다 고요로, 고요보다 사유로 존재를 증명하는 삶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 시의 깊은 강이 아닐까.
그리고 저녁 빛이 물드는 시간, 시인은 황혼녘의 산을 말한다. ‘맥을 이뤄 나직히 흐르는 산처럼 어두워 가는 세상을 그윽히 바라보자.’ 산이 흐른다는 말은 언뜻 역설 같지만, 그 흐름은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치 않는 가치를 상징한다. 세상이 흔들릴 때 흔들리지 않고 바라보는 시선은, 어쩌면 우리에게 가장 어려운 훈련일지 모른다. 그 시선은 날카롭지 않고, 그윽하다. 멀리서 응시하는 따뜻한 눈빛처럼.
그런 시선은 여명을 기다리는 순간으로 이어진다. ‘해뜨는 동쪽을 기다리며 서성이는 여명은 곧 솟아오를 태양을 기다리는 중이란다.’ 세상은 자꾸 뒤를 보게 하지만, 시인은 동쪽을 말한다. 떠오를 자리, 빛이 올 자리. 여명은 아직 오지 않았지만, 그것이 오리라는 것을 아는 기다림은 이미 희망이다. 새벽이란 서성이는 발걸음 속에서 태어난다. 머무는 것이 아니라 움직이며 기다리는 것, 그것이 희망을 위한 자세다.
그리고 그 고요한 기다림은 외침으로 바뀐다. 날자! 날자! 아침이다! 반복되는 이 언어는 리듬이고 주문이며, 시작을 알리는 선언이다. 우리는 매일 같은 해를 맞지만, 그 해를 다르게 맞이할 수 있다. ‘오늘 하루를 어떤 하루로 만들 것인가는 오로지 너의 몫이다’라는 말은, 시인이 독자에게 건네는 가장 따뜻한 책임감이다. 날아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날자고 함께 외치는 목소리가 있다.
하루를 ‘창조할 수 있다’는 감각은 우리를 일으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인은 언어의 윤리를 꺼낸다. ‘애매하고 멍하고 복잡한 세상이라면 우리의 언어는 순하고 단순하고 명료했으면 좋아라’ 혼란의 시대에서 말은 무기가 되기도 하고, 방패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가 말하는 언어는 길을 밝히는 등불에 가깝다. 간결하되 진실하고, 조용하되 깊은 말. 그런 언어는 삶을 정돈해 주고, 마음의 등불이 되어준다.
삶을 향한 따뜻한 비유 깊은 강처럼 흐르기 위해선 말의 침묵을 배우고, 산처럼 서기 위해선 흔들림의 이유를 받아들여야 하며, 여명을 기다리는 동안엔 희망이 빛보다 먼저 우리에게 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날아오를 순간엔 내 목소리를 빛처럼 높이 들어야 한다.
그러니 오늘 하루도 날자. 고요하게, 그러나 힘 있게. 어떤 하루가 되든, 그것은 당신의 언어로 새겨지는 한 편의 시가 될 것이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4
이대순의 『상사화』
-상사화의 붉은 울음, 사랑과 존재의 경계에서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시를 읽는다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해석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언어 너머의 침묵을 듣는 일이며, 시인이 남긴 흔적을 따라 존재의 가장 깊은 곳으로 걸어 들어가는 일이다. 이대순 시인의 「상사화」는 바로 그런 시다. 이 시는 이승과 저승 사이, 사랑과 상실 사이, 삶과 죽음 사이에 피어난 한 송이 붉은 꽃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온 산야가 붉은 꽃술로
불타고 있네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
저승에서 이루고자
피눈물 흘린 넋이
새빨간 꽃으로 피어
났다네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애절한 운명
곤비한 영혼의
방울방울 흘린 눈물이 꽃송이로 피어
처연한 사랑 노래
가슴을 적시네 - 이대순의 『상사화』 전문
‘온 산야가 붉은 꽃술로 불타고 있네’라는 첫 구절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잔재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장면이며, 피눈물로 피어난 넋의 외침이다. 상사화는 여기서,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이 저승에서 피어난 영혼의 형상이다. 시인은 이 꽃 앞에서 독자에게 묻는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울었는가, 그리고 그 울음은 어디에 피어났는가?’
이승과 저승, 사랑의 경계에서 피어난 상징
‘살아서는 만날 수 없는 애절한 운명’이라는 구절은 이 시의 핵심 주제를 드러낸다. 상사화는 이승과 저승 사이에 피어난 꽃이며, 닿을 수 없는 사랑의 상징이다. ‘곤비한 영혼의 방울방울 흘린 눈물이 꽃송이로 피어’라는 표현은, 고통이 꽃으로 승화되는 시적 상징이며, 사랑의 비극을 통해 인간 존재의 깊이를 탐색한다.
이러한 상징은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서와 맞닿는다. 슬픔을 품되 절제된 감정으로 표현하는 태도는, 시인의 시선이 단순한 감정의 과잉이 아닌, 미학적 절제와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음을 보여준다. 상사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사랑의 흔적이며, 존재의 울림이다.
붉은 꽃과 피눈물, 감정의 형상화
시인은 상사화를 통해 사랑의 감정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한다. ‘새빨간 꽃으로 피어났다네’라는 구절은, 피눈물의 넋이 꽃으로 환생하는 장면이며, 사랑의 고통이 자연 속에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이는 고통의 흔적이며, 존재의 증언이다.
이 장면은 칼 융의 말과도 맞닿는다. 그는 ‘사랑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성장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상사화의 붉은 꽃 속에 담긴 감정의 깊이와 정확히 겹친다. 사랑은 고통이지만, 그 고통은 우리를 더 깊은 존재로 이끈다. 시인은 상사화를 통해, 그 고통의 미학을 완성한다.
붉은 꽃잎 위에 남겨진 침묵
「상사화」의 마지막 구절, ‘처연한 사랑 노래 가슴을 적시네’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을 넘어, 말로 다 담을 수 없는 사랑의 잔향을 남긴다. 이 노래는 울부짖음이 아니라, 침묵 속에 스며든 진실이다. 상사화는 피어났지만, 그 꽃잎은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이승에서 이루지 못한 사랑의 흔적이며, 저승에서도 완전히 닿지 못한 그리움의 형상이다.
시인은 이 꽃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말하지 않고 보여준다. 상사화는 말보다 깊은 상징이며, 그 붉은 빛은 감정의 언어가 닿지 못하는 곳까지 번져 있다. 이 시는 독자에게 감정을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감정이 머무는 자리를 가리킨다. 그것은 삶의 경계, 죽음의 문턱, 그리고 사랑이 끝나지 않는 곳이다.
결국, 「상사화」는 우리에게 말한다. 사랑은 피는 것이 아니라, 남는 것이다. 그것은 꽃이 진 자리에서 다시 피는 기억이며, 피눈물로 물든 침묵의 언어다. 시인은 그 언어를 붉은 꽃잎 위에 남겨두고, 독자에게 조용히 건넨다. 그 순간, 우리는 시를 읽는 것이 아니라, 시 속에 잠시 머무르게 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5
2025년 한국 노벨문학상 후보 ‘천상의 도덕’ 선정작 작가
박옥태래진의 『노을』,
노을의 장막 아래, 삶과 죽음의 붉은 서사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박옥태래진 시인의 「노을」은 단순한 자연의 저녁 풍경을 넘어, 인간 존재의 종언을 상징하는 철학적 무대다.
아! 수 만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
꿈을 부르다 죽어간 영혼들이
붉은 피의 깃발로 가을하늘에 피었습니다
깨어나 푸르던 아침의 하늘자락
오전과 정오의 불타는 인생들도
하늘자락에 걸린 남은 시간으로 몰려들고
꿈의 배신으로 목들이 잘려나간
붉은 바다위에 등신불단을 세우고
남은 미련과 유혹의 꽃들마저도 불사릅니다
수 만송이 황홀한 꽃들의 경멸이여!
다시 볼 수 없이 녹아내리는 하늘이여!
긴 삶의 흔적 유언으로 남긴 채
엄습하는 죽음의 검은 장막을 마중하는가?
사랑의 인내와 비굴한 자유와
꿈의 유혹, 사랑의 쾌락
영광의 미련, 죽음의 두려움에서
아부의 구걸 따위의 역겨움을 토해내는
꽃들의 마지막 울부짖음으로
안녕! 안녕! 이별도 사랑이었던가요?
아! 수 만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
꿈을 부르다 죽어간 영혼들이
붉은 피의 깃발로 가을하늘에 피었습니다. - 박옥태래진의 『노을』 전문
붉은 노을, 존재의 마지막 무대
시의 첫 행 ‘수만 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는 생명의 찬란한 개화가 아니라, 죽어간 영혼들의 마지막 외침이다. 이 꽃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꿈을 부르다 꺾인 존재들의 붉은 피로 피어난 깃발이며, 가을 하늘에 걸린 삶의 유언이다. 시인은 노을을 단순한 빛의 현상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선으로 설정하며, 그 위에 인간의 고통과 희망, 배신과 미련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이러한 시적 설정은 자연을 배경으로 삼되,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노을은 붉은 장막이 되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덮으며 존재의 흔적을 태운다. 이는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장이며, 시인은 그 위에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꿈의 배신과 존재의 해체
시의 중심에는 ‘꿈을 부르다 죽어간 영혼들’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인간이 추구하던 이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목들이 잘려나간’이라는 표현은 그 배신의 폭력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붉은 바다 위에 세워진 등신불단은 인간의 욕망과 미련이 불타는 제단이다. 이 장면은 마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모든 유혹과 미련을 불사르는 의식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허망지몽(虛妄之夢)이라는 한자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덧없고 실현되지 못한 꿈, 그것은 인간이 평생을 쫓다 결국 손에 쥐지 못한 이상이며, 시인은 그 허망함을 붉은 꽃으로 형상화한다. 이 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경멸을 담고 있다. ‘수 만송이 황홀한 꽃들의 경멸이여!’라는 외침은, 삶의 찬란함 속에 숨겨진 절망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폭로한다.
죽음의 미학과 시간의 소멸
‘녹아내리는 하늘’은 시간의 소멸을 상징하며, 삶의 흔적은 유언처럼 남겨진다. 시인은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닌, 삶의 정화이자 마지막 진실로 제시한다. 이 장면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떠올리게 한다. 고통과 죽음을 사랑하라는 철학적 태도는, 시 속 꽃들의 울부짖음과 절묘하게 겹친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이며, 시인은 그 진실을 노을의 붉은 장막 속에서 포착한다.
이러한 시적 사유는 칼 융의 말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삶이란 죽음으로 향하는 여행이며, 죽음은 삶의 가장 진실한 순간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시인의 붉은 노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존재의 외침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완성이며, 시인은 그 완성의 순간을 꽃과 불, 하늘과 장막으로 형상화한다.
이별의 철학,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마지막 구절 ‘안녕! 안녕! 이별도 사랑이었던가요?’는 시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이다.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다는 통찰은 시인의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 다시 반복되는 ‘수 만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는 죽음 이후에도 피어나는 존재의 흔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상징한다. 시인은 노을이라는 자연의 현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노래하며, 독자에게 삶의 본질을 묻는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5
2025년 한국 노벨문학상 후보 ‘천상의 도덕’ 선정작 작가
박옥태래진의 『노을』,
노을의 장막 아래, 삶과 죽음의 붉은 서사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박옥태래진 시인의 「노을」은 단순한 자연의 저녁 풍경을 넘어, 인간 존재의 종언을 상징하는 철학적 무대다.
아! 수 만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
꿈을 부르다 죽어간 영혼들이
붉은 피의 깃발로 가을하늘에 피었습니다
깨어나 푸르던 아침의 하늘자락
오전과 정오의 불타는 인생들도
하늘자락에 걸린 남은 시간으로 몰려들고
꿈의 배신으로 목들이 잘려나간
붉은 바다위에 등신불단을 세우고
남은 미련과 유혹의 꽃들마저도 불사릅니다
수 만송이 황홀한 꽃들의 경멸이여!
다시 볼 수 없이 녹아내리는 하늘이여!
긴 삶의 흔적 유언으로 남긴 채
엄습하는 죽음의 검은 장막을 마중하는가?
사랑의 인내와 비굴한 자유와
꿈의 유혹, 사랑의 쾌락
영광의 미련, 죽음의 두려움에서
아부의 구걸 따위의 역겨움을 토해내는
꽃들의 마지막 울부짖음으로
안녕! 안녕! 이별도 사랑이었던가요?
아! 수 만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
꿈을 부르다 죽어간 영혼들이
붉은 피의 깃발로 가을하늘에 피었습니다. - 박옥태래진의 『노을』 전문
붉은 노을, 존재의 마지막 무대
시의 첫 행 ‘수만 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는 생명의 찬란한 개화가 아니라, 죽어간 영혼들의 마지막 외침이다. 이 꽃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꿈을 부르다 꺾인 존재들의 붉은 피로 피어난 깃발이며, 가을 하늘에 걸린 삶의 유언이다. 시인은 노을을 단순한 빛의 현상이 아닌, 삶과 죽음의 경계선으로 설정하며, 그 위에 인간의 고통과 희망, 배신과 미련을 겹겹이 쌓아 올린다.
이러한 시적 설정은 자연을 배경으로 삼되, 인간의 내면을 투영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노을은 붉은 장막이 되어, 삶의 마지막 순간을 덮으며 존재의 흔적을 태운다. 이는 단순한 서정이 아니라, 철학적 사유의 장이며, 시인은 그 위에 인간의 본질을 묻는다.
꿈의 배신과 존재의 해체
시의 중심에는 ‘꿈을 부르다 죽어간 영혼들’이라는 구절이 있다. 이는 인간이 추구하던 이상이 현실의 벽에 부딪혀 좌절되는 과정을 상징한다. ‘목들이 잘려나간’이라는 표현은 그 배신의 폭력성을 극적으로 드러내며, 붉은 바다 위에 세워진 등신불단은 인간의 욕망과 미련이 불타는 제단이다. 이 장면은 마치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모든 유혹과 미련을 불사르는 의식을 연상케 한다.
이러한 이미지 속에서 우리는 허망지몽(虛妄之夢)이라는 한자성어를 떠올리게 된다. 덧없고 실현되지 못한 꿈, 그것은 인간이 평생을 쫓다 결국 손에 쥐지 못한 이상이며, 시인은 그 허망함을 붉은 꽃으로 형상화한다. 이 꽃은 아름답지만, 동시에 경멸을 담고 있다. ‘수 만송이 황홀한 꽃들의 경멸이여!’라는 외침은, 삶의 찬란함 속에 숨겨진 절망을 드러내며, 인간 존재의 이중성을 폭로한다.
죽음의 미학과 시간의 소멸
‘녹아내리는 하늘’은 시간의 소멸을 상징하며, 삶의 흔적은 유언처럼 남겨진다. 시인은 죽음을 단순한 끝이 아닌, 삶의 정화이자 마지막 진실로 제시한다. 이 장면은 니체의 ‘운명애(Amor Fati)’를 떠올리게 한다. 고통과 죽음을 사랑하라는 철학적 태도는, 시 속 꽃들의 울부짖음과 절묘하게 겹친다. 죽음은 두려움이 아니라, 삶의 진실을 드러내는 순간이며, 시인은 그 진실을 노을의 붉은 장막 속에서 포착한다.
이러한 시적 사유는 칼 융의 말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삶이란 죽음으로 향하는 여행이며, 죽음은 삶의 가장 진실한 순간이다’라고 했다. 이 말은 시인의 붉은 노을 속에서 울려 퍼지는 존재의 외침과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완성이며, 시인은 그 완성의 순간을 꽃과 불, 하늘과 장막으로 형상화한다.
이별의 철학, 사랑의 또 다른 이름
마지막 구절 ‘안녕! 안녕! 이별도 사랑이었던가요?’는 시 전체를 관통하는 철학적 질문이다. 이별은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또 다른 형태일 수 있다는 통찰은 시인의 깊은 내면을 드러낸다. 다시 반복되는 ‘수 만송이 꽃들로 일어섰습니다’는 죽음 이후에도 피어나는 존재의 흔적이며, 인간의 존엄을 상징한다. 시인은 노을이라는 자연의 현상을 통해, 인간 존재의 고통과 아름다움을 동시에 노래하며, 독자에게 삶의 본질을 묻는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6
신방윤의 『고향』,
고요한 안개 속의 진실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신방윤 시인의 「고향」은 단순한 회상의 시가 아니다. 그것은 자연의 정경을 빌려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비추는 서정적 철학의 시이다.
땅거미 진 산등성이에
산 새소리 적막한 밤
밤안개는 스멀스멀
그리움으로 밀려와
잎새를 부둥켜안고서
지난밤에 맺힌 눈물방울로
잎새를 짓누르며
아침 햇살에 부스스
이슬방울 되어 흐르는데
노송은 모진 세월을
굽은 가지에 담고서
미동도 하지 아니한 채
늘 푸른 솔잎을 보라 하네 - 신방윤의 『고향』 전문
시의 첫 행에서 ‘밤안개는 스멀스멀 그리움으로 밀려와 잎새를 부둥켜안고서’라는 표현은, 안개라는 자연현상을 감정의 실체로 치환하며, 고향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마치 안개처럼 몸을 감싸는 감각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안개는 단순한 기후가 아니라, 기억의 결이며, 감정의 숨결이다.
이러한 시적 설정은 자연과 감정이 하나로 융합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경지를 보여준다. 시인은 자연을 단순히 배경으로 삼지 않고, 감정의 매개로 삼아 고향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탐색한다. 고향은 장소가 아니라, 감정의 원형이며, 존재의 뿌리다.
눈물에서 이슬로, 감정의 정화와 순환
시의 중반부에서 ‘지난밤에 맺힌 눈물방울로 잎새를 짓누르며 아침 햇살에 부스스 이슬방울 되어 흐르는데’라는 구절은 감정의 정화 과정을 보여준다. 눈물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그것이 이슬로 변하는 순간, 슬픔은 자연의 순리 속에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이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삶의 순환과 치유를 상징한다.
이 장면은 마치 인간의 내면이 자연의 리듬에 따라 정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며, 시인은 이를 통해 고향이라는 감정의 원천이 단지 아련한 기억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힘이자 지혜임을 암시한다. 이처럼 시는 감정의 흐름을 자연의 변화 속에 녹여내며,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노송의 침묵, 삶의 진실을 말하다
시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노송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고통과 세월의 무게를 견뎌낸 존재의 상징이다. ‘모진 세월을 굽은 가지에 담고서 미동도 하지 아니한 채 늘 푸른 솔잎을 보라 하네’라는 구절은, 흔들림 없는 정신과 불변의 가치를 상징한다. 노송은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 삶의 진실이 담겨 있다.
이 장면은 견리사의(見利思義)라는 한자성어와 맞닿는다. 이익을 보거든 의로움을 먼저 생각하라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외적 유혹보다 내적 진실을 지키는 자세로 확장된다. 노송은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푸르름을 잃지 않으며, 시인은 이를 통해 인간 존재의 중심을 묻는다. 고향은 그 중심의 이름이며, 흔들리지 않는 뿌리다.
고통을 견디며 피어나는 존재의 품격
「고향」은 단순한 그리움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고통과 시련을 견디며 피어나는 존재의 품격을 노래하는 시이다. 노송이 겪어온 모진 세월처럼, 우리의 삶도 고통과 시련의 연속일 수 있다. 하지만 넬슨 만델라의 말처럼,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영광은 넘어지지 않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넘어질 때마다 일어나는 것에 있다.’ 이 시는 바로 그 ‘일어남’의 정신을 노송에 빗대어 보여준다.
고향은 단지 돌아가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내면의 자리다. 시인은 자연과 감정을 엮어, 고향이라는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며, 독자에게 삶의 진실을 조용히 일깨운다. 결국, 「고향」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어디에서 다시 일어서는가?’ 그리고 그 질문은, 노송의 푸른 솔잎처럼 오래도록 우리의 마음에 남게 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7
윤애란의 『나팔꽃』,
감정의 변형과 존재의 품격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꽃이 된 감정, 존재의 변형
윤애란의 「나팔꽃」은 단순한 식물의 노래가 아니다. 그것은 사랑의 부재와 기다림의 고통이 응축된 감정의 형상이며, 한 송이 꽃으로 변형된 존재의 서사다. ‘한없이 그리워하며 애가타다 나팔꽃으로 변해버린 슬픈 님이여’라는 첫 구절은, 사랑의 결핍이 존재를 변화시키는 순간을 시적으로 포착한다. 나팔꽃은 여기서 단순한 꽃이 아니라, 그리움의 화신이며, 감정의 물질적 전이이다.
밤이면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아침에 문을 열어주는 나팔꽃은, 사랑의 침묵과 희망의 조화를 보여준다. 시인은 이 꽃을 통해, 사랑이 단절된 자리에서도 피어나는 감정의 지속성과 시간의 리듬을 노래한다. 나팔꽃은 말하지 않지만, 그 피어남 자체가 사랑의 언어다.
한없이 그리워하며
애가타다 나팔꽃으로
변해버린 슬픈 님이여
밤이면 어둠의 꽃으로
숨어있다
아침에 문을
열어주는 나팔꽃 당신
누가 우리의 사랑을
갈라 놓았을까?
기다림에 이루지
못한 사랑
눈물씨가 떨어져
나팔꽃이 되었네
이리치이고 저리치여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나팔꽃당신
당신의 큰 나팔속에
안겨
영원히 백년해로 하고 싶네 – 윤애란의 『나팔꽃』 전문
기다림의 미학과 감정의 화학
‘기다림에 이루지 못한 사랑, 눈물씨가 떨어져 나팔꽃이 되었네’라는 구절은 이 시의 중심 주제를 드러낸다. 사랑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다림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라는 역설적 진실을 담고 있다. 눈물은 고통의 흔적이지만, 그것이 씨앗이 되어 꽃으로 피어나는 순간, 슬픔은 미학으로 승화된다.
이러한 정서는 ‘수적천석(水滴穿石)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처럼, 지속적인 기다림은 결국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라는 한자성어와 맞닿는다. 시인은 나팔꽃을 통해, 사랑의 부재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감정의 품격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애절함이 아니라, 고요한 인내의 미학이다.
나팔꽃과 백년해로, 환상의 피난처
‘당신의 큰 나팔속에 안겨 영원히 백년해로 하고 싶네’라는 마지막 구절은, 이루지 못한 사랑이 환상 속에서 완성되는 장면이다. 나팔꽃의 나팔은 단순한 꽃잎이 아니라, 사랑의 공간이며, 감정의 피난처다. 시인은 그 속에 안겨 백년해로를 꿈꾸지만, 그 꿈은 현실의 부재 속에서 더욱 처연하게 빛난다.
이 장면은 오스카 와일드의 말과도 겹친다. 그는 ‘우리는 모두 하늘을 바라보지만, 그 중 몇은 진흙 속에 발을 담근 채 바라본다’고 했다. 시적 화자는 바로 그 진흙 속에서 피어난 나팔꽃이며, 현실의 고통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피어나는 사랑의 상징이다. 그 사랑은 닿지 못했기에 더욱 선명하고, 피어나지 못했기에 더욱 깊다.
침묵의 저항, 피어남 너머의 품격
‘이리치이고 저리치여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는 나팔꽃 당신’이라는 구절은, 사랑의 고통을 견디는 존재의 단단함을 보여준다. 나팔꽃은 흔들리지만 꺾이지 않으며, 피어남 자체로 사랑의 진실을 증명한다. 시인은 이 꽃을 통해, 감정의 지속성과 존재의 품격을 동시에 노래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사랑의 완성보다 사랑의 인내를 묻는다. 나팔꽃은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 담긴 고요한 저항은 삶의 태도이자 감정의 철학이다. 결국, 사랑은 피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지킴은, 바람에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 한 송이 꽃처럼, 존재의 품격으로 피어난다. 그 품격은 말이 아닌 침묵으로 남아, 독자의 마음에 오래도록 스미게 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8
오세영의 『강물』,
- 흐름의 철학, 침묵의 진실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흐름을 닮은 존재의 자세
오세영 시인의 「강물」은 단순한 자연의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태도와 삶의 철학을 강물의 흐름에 빗대어 성찰하는 시적 명상이다. 시인은 강물이라는 자연의 움직임을 통해, 삶의 방향성과 내면의 깊이를 동시에 탐색한다.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는 첫 구절은 단순한 충고가 아니라, 존재의 균형을 되찾으려는 시인의 내면의 목소리다.
절벽에 막힌 강물이 뒤로 돌아 전진한다는 표현은, 삶의 장애 앞에서 단순히 멈추거나 좌절하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어 흐름을 지속하는 지혜를 상징한다. 이는 물처럼 유연하면서도 단단한 존재의 자세를 보여준다. 시인은 강물의 침묵 속에서, 말보다 깊은 진실을 건져 올린다.
무작정 앞만 보고 가지 마라
절벽에 막힌 강물은
뒤로 돌아 전진한다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폭포 속의 격류도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 – 오세영의 「강물」 전문
속도보다 깊이, 흐름의 미학
‘조급히 서두르지 마라 / 폭포 속의 격류도 / 소(沼)에선 쉴 줄을 안다’는 구절은, 삶의 속도에 대한 경계이자, 내면의 고요함을 회복하라는 시인의 철학적 제안이다. 폭포처럼 격렬하게 흐르던 물도 결국 소沼에서 멈추어 숨을 고른다. 이는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로, 쉼 없이 달리는 것보다 멈춤 속에서 더 깊은 성찰이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러한 정서는 ‘정중동(靜中動), 고요함 속에 움직임이 있고, 움직임 속에 고요함이 있다는 동양적 사유와 맞닿는다. 시인은 강물의 흐름을 통해, 삶의 리듬을 조율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존재의 깊이를 회복하는 시간이다.
무심함과 충만함, 존재의 역설
’무심한 강물이 영원에 이른다 / 텅 빈 마음이 충만에 이른다‘는 시의 결말은, 시적화자의 시세계가 지향하는 궁극적 철학을 드러낸다. 무심함은 단순한 무관심이 아니라, 집착을 내려놓은 존재의 자유이며, 텅 빈 마음은 욕망을 비운 자리에 깃드는 충만함이다. 시인은 강물의 무심한 흐름 속에서, 영원의 진실을 발견한다.
이 장면은 니체의 말과도 겹친다. 그는 ’깊은 고요 속에서만 위대한 것들이 태어난다‘고 했다. 오세영의 강물은 바로 그 고요 속에서 흐르며, 말하지 않고 존재하는 방식으로 삶의 진실을 드러낸다. 그리고 강물의 침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본질을 말없이 증명한다.
시의 품격, 존재의 울림
「강물」은 단순한 자연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방향과 속도, 고요함과 충만함을 동시에 성찰하는 철학적 시이며, 시인의 절제된 언어 속에 담긴 깊은 울림이다. 그는 말하지 않고 보여주는 시인이다. 그의 시는 격렬하지 않지만 단단하며, 화려하지 않지만 깊다.
오세영 시인은 한국 현대시의 품격을 지켜온 시인이며, 그의 시는 시대를 초월해 존재의 본질을 묻는다. 「강물」은 우리에게 말한다. 삶은 흐름이다. 그 흐름은 때로 돌아서고, 때로 멈추며, 결국 침묵 속에서 영원에 이른다. 그리고 그 진실은, 강물처럼 조용히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19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존재의 온도를 묻는 시의 윤리학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존재의 온도를 묻다
안도현 시인의 「너에게 묻는다」는 단 세 연으로 구성된 짧은 시이지만, 그 안에 담긴 물음은 결코 가볍지 않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는 첫 구절은, 독자의 양심을 정면으로 겨눈다. 시인은 연탄재라는 일상적 사물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윤리적 태도와 감정의 품격을 되묻는다.
연탄은 한때 누군가의 삶을 따뜻하게 데워주던 존재였다. 그러나 제 역할을 다한 뒤에는 하얀 껍데기만 남아, 무심한 발길에 차이기 쉽다. 시인은 이 연탄재를 통해, 한때 타인을 위해 자신을 불태운 존재가 얼마나 쉽게 잊히고 무시되는지를 날카롭게 지적한다. 이는 단순한 사물의 묘사를 넘어, 인간이 인간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요구하는 시적 선언이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뜨끈 뜨근한 아랫목을 만들었던
저 연탄재를 누가 발로 함부로 찰 수 있는가?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
저 연탄재를 누가 함부로 발길질할 수 있는가
-안도현의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전문
희생의 흔적, 침묵의 품격
’자신의 몸뚱아리를 다 태우며 / 뜨끈뜨끈한 아랫목을 만들었던‘이라는 구절은, 연탄이 타인을 위해 자신을 소진한 존재임을 상징한다. 이는 곧, 부모와 스승, 이름 없는 노동자들, 그리고 우리 곁의 평범한 이웃들처럼, 자신을 희생하며 타인의 삶을 지탱해온 이들에 대한 은유다. 그들은 말없이 자신을 태우고, 다 타버린 후에도 조용히 자리를 지킨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 자신의 몫을 다한 후 하늘의 뜻을 기다리는 삶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연탄은 불꽃을 내지르며 타오르지 않는다. 그저 묵묵히, 그러나 확실하게 온기를 전한다. 시인은 그 침묵의 무게를 존중하라고 말한다. 연탄재를 발로 차는 행위는 단순한 무심함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고통을 외면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시대를 초월한 감정의 원형
연탄재는 이 시에서 단순한 폐기물이 아니다. 그것은 말없이 타인을 위해 살아간 존재의 잔여물이며, 침묵 속에 깃든 뜨거운 마음의 형상이다. ’자신의 목숨을 다 버리고 / 이제 하얀 껍데기만 남아있는‘이라는 구절은, 모든 것을 내어준 존재의 마지막 흔적을 보여준다. 그 잔해는 비록 기능을 다했지만, 그 안에는 여전히 뜨거웠던 시간의 기억이 남아 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시가 연탄을 직접 사용해 본 적 없는 세대에게도 깊은 울림을 준다는 사실이다. AI가 일상을 지배하고, 감정조차 알고리즘으로 분석되는 시대에도, 연탄재는 인간의 감정적 원형을 불러온다. 그것은 기술로는 구현할 수 없는 온기이며,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공감의 상징이다. 연탄재는 과거의 난방 도구가 아니라, 누군가를 위해 자신을 태운 존재의 증거다. 그 증거는 인간다움의 마지막 온기이자, 사라지지 않는 윤리의 흔적이다.
시가 남긴 윤리적 명제
「너에게 묻는다」는 삶의 온도에 대한 시이다. 뜨거운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헌신과 소진을 의미한다. 시인은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누구의 삶을 데워주었는가. 우리는 누군가의 추위를 견디게 한 적이 있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런 존재들의 흔적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이 시는 연탄재를 통해 말한다. 진정한 뜨거움은 불꽃이 아니라, 남겨진 온기다. 그것은 말보다 깊은 침묵으로, 존재의 품격을 증명한다. 연탄재는 다 타버린 후에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 그 침묵은 시인의 언어보다 더 오래, 더 깊게, 우리를 향해 묻는다. 우리는 그 질문 앞에서, 어떤 삶의 자세로 응답할 것인가. 그것이 이 시가 우리에게 남긴 윤리적 명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0
도종환의 『담쟁이』
- 함께 오르는 삶, 도종환의 「담쟁이」가 묻는 존재의 윤리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벽 앞에서 멈추지 않는 존재
도종환의 「담쟁이」는 단순한 자연의 관찰을 넘어, 인간 존재의 태도와 삶의 윤리를 되묻는 시이다. 시인은 ‘벽’을 절망의 상징으로 설정하고, 그 앞에서 담쟁이가 보여주는 침묵의 움직임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 것은 벽 /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 그때 /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구절은, 외부의 장애보다 내면의 포기가 더 큰 벽임을 암시한다.
담쟁이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언어보다 깊은 사유를 유도한다.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벽을 ‘절망’이라 이름 붙이고, 그 이름에 스스로 갇히는가. 담쟁이는 그 이름을 바꾸지 않는다. 대신, 그 위를 기어오르며 질문을 남긴다. ‘이 벽은 정말 끝인가?’ 시인은 이 식물의 움직임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 설정한 한계와 그 너머를 향한 존재의 본질을 되묻는다.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도종환의 『담쟁이』 전문
함께 나아가는 삶의 윤리
이 시의 핵심은 ‘넘는다’는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함께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담쟁이는 벽을 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담쟁이는 벽 앞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 존재한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는 구절은, 개인의 고군분투가 아닌 공동체의 연대 속에서 절망을 감싸는 방식을 보여준다.
함께 걷는다는 것은 단순한 동행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을 나누고, 고통을 나누며, 희망을 나누는 일이다. 담쟁이는 그런 삶의 방식을 보여준다. 혼자서는 넘을 수 없는 벽도, 여럿이 함께라면 덮을 수 있다. 시인은 이 식물의 생태적 지혜를 통해, 인간 사회의 단절과 고립을 넘어서는 길을 제시한다. 연대는 이 시에서 생존의 조건이자, 절망을 넘는 유일한 방식이다.
침묵 속의 연대, 말보다 깊은 책임
담쟁이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침묵은 윤리적이다. 그것은 소리 없는 연대이며, 조용한 저항이다. 시인은 담쟁이를 통해, 말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는 구절은 단순한 인내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존재의 방식이다. 담쟁이는 결과를 향해 달리지 않는다. 그저 자신의 본질을 따라 벽을 오른다.
이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 아니다. 그것은 묵언지행(默言之行), 말없이 행하는 삶의 방식이다. 담쟁이는 말하지 않음으로써, 더 많은 것을 말한다. 시인은 이 침묵을 통해, 인간이 말로 가리는 진실을 드러낸다. 말하지 않음은 회피가 아니라, 가장 깊은 책임이다. 그것은 함께 살아가는 존재가 지녀야 할 품격이며, 공동체의 윤리이다.
담쟁이의 질문, 우리를 향한 되묻기
「담쟁이」는 넘는 시가 아니다. 그것은 묻는 시다. 시인은 담쟁이를 통해 우리에게 되묻는다. 우리는 얼마나 자주 벽을 설정하고, 그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가. 우리는 얼마나 자주 절망을 이름 붙이고, 그 이름에 굴복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그 벽을 향해 한 뼘이라도 움직인 적이 있는가.
담쟁이는 말하지 않지만,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본질적인 질문을 남긴다. 그것은 ‘넘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함께 넘으려 했는가?’이다. 시적화자는 그 질문을 통해, 인간 존재의 태도와 윤리를 되묻는다. 결국, 「담쟁이」는 벽을 넘는 시가 아니라, 벽 앞에서 함께 나아가는 삶을 말하는 시다. 그리고 그 삶은, 지금도 우리 마음의 벽을 조용히 흔들고 있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절망은 혼자 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손을 잡고, 함께 마음을 나누며, 함께 움직일 때 비로소 넘을 수 있는 것이다. 담쟁이는 그 침묵 속에서, 가장 뜨거운 연대의 언어를 남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삶의 방식임을 깨닫게 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1
김형태 시인의 「산유화」를 읽고
- 자연과 인간의 감정을 잇는 시적 다리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김형태 시인의 「산유화」는 단순한 자연시를 넘어, 인간의 감정과 존재의 본질을 탐색하는 시적 여정이다. 시인은 산에 피는 한 송이 꽃을 통해 계절의 흐름, 생명의 탄생, 그리고 인간 내면의 울림을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 작품은 자연과 인간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자, 감정의 교차점에서 피어난 시적 다리다.
‘산유화’라는 이름은 단지 식물의 명칭이 아니라, 자연과 인간이 교감하는 상징적 존재로 자리한다. 시인은 꽃을 통해 자연의 정기와 영혼을 불러내고, 그 속에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녹여낸다. 이처럼 「산유화」는 자연의 아름다움에 취한 한 인간의 내면을 따라가며, 독자에게도 그 감정의 향기를 전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자연을 바라보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일부로 살아가는가. 그리고 그 질문 속에서, 산유화는 조용히 피어난다.
산마다 꽃이 피어나는 봄날에 / 햇살은 부드럽게 땅을 깨우네 / 계곡물은 맑게 흘러 노래하고 / 새싹들은 기지개를 켜며 웃음 짓네 // 산의 정기를 머금은 꽃 한 송이 / 그윽한 향기로 숲을 채우네 / 바람에 실려 오는 꽃의 노래 / 마음을 울리는 자연의 선율이로구나 // 산새들의 지저귐 속에 숨어 / 꽃잎마다 이야기를 숨고 있네 / 산의 기운과 하나 되어 피어나는 / 그대 이름은 산유화, 산에 피는 꽃 // 산등성이 펼쳐진 꽃밭을 거닐며 / 내 마음도 함게 피어나는 듯해 / 산유화여, 너의 아름다움에 취해 / 나는 오늘도 산을 찾아 헤매네 - 김형태의 '산유화' 전문
봄의 서정, 생명의 눈부신 기지개
「산유화」는 봄날 산마다 꽃이 피어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햇살은 부드럽게 땅을 깨우네'라는 시구는 단순한 계절의 묘사를 넘어, 생명의 탄생을 알리는 서정적 선언이다. 계곡물의 노래와 새싹의 웃음은 자연의 생동감 속에 인간의 감정이 투영된 모습이다. 이는 마치 '자연은 마음의 거울이다'라는 말처럼,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비춘다. 봄은 단지 계절이 아니라, 감정의 회복과 희망의 시작이다.
산의 정기와 꽃의 향기, 존재의 본질을 묻다
'산의 정기를 머금은 꽃 한 송이'는 자연의 정수와 인간의 감성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윽한 향기로 숲을 채우는 산유화는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존재의 본질을 상징하는 시적 장치다. 바람에 실려 오는 꽃의 노래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흐름이며, 이는 독자의 마음을 울리는 자연의 선율로 다가온다. 여기서 떠오르는 物我一體(물아일체) 자연과 내가 하나 되는 경지. 시인은 산유화를 통해 그 경지를 시적으로 구현한다.
꽃잎에 숨은 이야기, 산의 영혼을 담다
'꽃잎마다 이야기를 숨고 있네'라는 표현은 자연이 들려주는 서사다. 산새들의 지저귐 속에 숨어 있는 꽃잎의 이야기는 인간의 기억과 감정이 자연 속에 녹아든 모습이다. 산의 기운과 하나 되어 피어나는 산유화는 단순한 꽃이 아니라, 산의 영혼을 품은 존재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의 내면을 탐색하며, 그 속에 감춰진 이야기를 조용히 꺼내어 독자에게 건넨다. 이는 마치 오래된 전설처럼, 마음속 깊은 울림을 남긴다.
산을 찾아 헤매는 마음, 아름다움에의 갈망
마지막 연에서 시인은 '산등성이 펼쳐진 꽃밭을 거닐며' 자신의 마음도 함께 피어난다고 말한다. 산유화의 아름다움에 취해 “오늘도 산을 찾아 헤매는” 모습은 인간의 본능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을 드러낸다. 이는 단순한 자연 탐방이 아니라, 내면의 정화와 회복을 위한 여정이다. “우리는 자연을 지배하는 존재가 아니라, 그 일부이다”라는 명언처럼, 시인은 산유화를 통해 인간이 잊고 있던 감각과 감정을 되살린다. 산유화는 단지 산에 피는 꽃이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피어나는 희망의 상징이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2
구근완 시인의 「햇살이 여는 아침」읽고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빛은 어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안에서 태어난다.
- 알베르 카뮈'
이 말처럼, 아침은 어둠을 지나 빛으로 향하는 감각의 문이다. 구근완 시인의 「햇살이 여는 아침」은 그 문이 열리는 찰나의 정서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시인은 자연의 흐름과 감정의 온도를 교차시키며, 아침 햇살 속에 깃든 늦가을의 여운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이 시는 시간의 흐름을 단순히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담긴 삶의 흔적과 감정의 결을 부드럽게 드러낸다. 아침은 단지 하루의 시작이 아니라, 존재의 리듬을 다시 조율하는 순간이다.
떠날 땐 어둑해 노을잔치 열고
갔던 길 되돌아오는 환한 전용도로
눈부신 태양 끓어오르는 불꽃
큐피트의 화살인가 눈빛 마주한다
새벽바람 찬 기운 낯설고
해 뜨는
붉은 오렌지 꽃으로 피어 오르고 있다
나목을 스치는 바람처럼
낙엽을 밟고 가는 여운처럼
아침 햇살도 늦가을 붙잡고
고요한 만경천으로 흘러가고 있다- 구근완의 '햇살이 여는 아침' 전문
시간의 반전과 감정의 회귀
'떠날 땐 어둑해 노을잔치 열고 / 갔던 길 되돌아오는 환한 전용도로'라는 구절은 시간의 반전과 감정의 회귀를 상징한다. 노을은 하루의 끝이자 감정의 침잠을 의미하고, 되돌아오는 길은 밝은 빛으로 감정을 회복하는 통로다. 시인은 이 대비를 통해 삶의 여정이 단순한 직선이 아닌, 감정의 순환과 회복의 궤적임을 암시한다. 어둠은 빛을 품고 있으며, 그 빛은 다시 삶을 비춘다. 이처럼 시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감정의 되돌림과 정서적 회복을 조용히 그려낸다.
자연의 감각과 생명의 피어남
'눈부신 태양 끓어오르는 불꽃 / 큐피트의 화살인가 눈빛 마주한다'는 구절은 아침 햇살의 강렬한 감각을 사랑과 생명의 상징으로 변환시킨다. 이어지는 '붉은 오렌지 꽃으로 피어 오르고 있다'는 표현은 아침의 빛이 꽃처럼 피어난다는 시적 상상력의 결정체다. 시인은 자연의 움직임을 감정의 언어로 번역하며, 독자에게 생명력 넘치는 감각을 전달한다. 이 장면은 자연과 인간의 감정이 교차하는 지점이며, 시인은 그 교차점에서 삶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아침은 단지 밝은 시간이 아니라, 감정이 피어나는 순간이다.
여운의 시학과 흐름의 겸허
'나목을 스치는 바람처럼 / 낙엽을 밟고 가는 여운처럼'이라는 구절은 시의 정서적 중심을 이룬다. 나목은 겨울을 앞둔 나무의 모습이며, 바람은 그 위를 지나가는 시간이다. 낙엽은 떨어진 감정의 흔적이며, 그 위를 밟고 가는 여운은 삶의 지나간 순간을 되새기는 행위다. 마지막 구절 '고요한 만경천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삶의 흐름이 자연의 질서 속에서 조용히 이어진다는 시적 겸허를 상징한다. 시인은 아침이라는 찰나의 감각 속에서, 계절과 감정, 시간과 존재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장면을 그려낸다. 그 흐름은 말없이 깊고, 그 깊이는 시의 울림이 된다.
구근완 시인
군장대학교 실버복지상담과 교수
전)군산시 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3
두하은 시인의 『이민자들의 신호』
- 경계 너머에서 보내는 침묵의 구조신호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현대 사회는 끊임없이 경계를 긋는다. 국경, 언어, 피부색, 신분, 계급. 이 모든 경계는 누군가를 ‘안’으로 들이고, 누군가를 ‘밖’으로 밀어낸다. 시「이민자들의 신호」는 이러한 경계 바깥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은 시이다. 시인은 이민자를 ‘외계에서 온 자’로 설정함으로써, 그들이 얼마나 이질적인 존재로 여겨지는지를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그러나 그 이질성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사회가 부여한 것이다. 이 시는 그 부여된 낯섦을 해체하고, 이민자들의 내면에서 발화되는 언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구조적 폭력을 고발한다.
우리는 모두 외계로부터 온 이민자다
삐빅,
튀니지의 이름 없는
호수 앞에서
우리는 외계와의 통신에 성공했다
지금부턴 지구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모든 신호에 1을 더할 것
우리는 약속한 신호로
거주하고 있는 행성에 대해 보고한다
지구의 수초를 전부 맛 본 이민자는 배가 부풀었고
나방처럼
어떤 이민자는 도시의 빛기둥을 쫓다가
자동차에 치일 뻔 했다
우리는 모래로 만든 집에서 살고 있고
곧 무너질 거라고,
1을 뺀 채 가족에게 전달했다
온전한 신호는 우리 같은 이민자만
알 수 있음
풍선이 터지지 않도록 눈치 보며
바람을 넣는 것처럼
송신기가 과열되기 전에 최대한 할 말을 실어보내기
사용설명서를 읽지 않은 이민자들에게
송신기는
1을 더하지 않은 경고문을 띄웠다
이게 마지막이야,
이민자들은 흐릿해지는 통신 사이로
한 마디를 끼워 넣는다
우리는 지구를 좋아하지만,
지구인과 함께 살 수는 없음
호수 반대편의 낚시꾼들이
우리를 보며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어느 별에 도착해도
이민자는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우리는 고향에서 본 낡은 소설을 떠올리며
지구의 집으로 걸음을 옮겼다. - 두하은의 '이민자들의 신호' 전문
암호화된 언어, 배제된 존재의 생존 전략
'모든 신호에 1을 더할 것'이라는 구절은 단순한 암호가 아니다. 그것은 이민자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한 생존 전략이다. 그들은 지구인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언어를 변형하고, 감정을 숨기며 살아간다. 이는 현실 속 이민자들이 겪는 언어적 소외와 문화적 억압을 상징한다. 그들의 말은 번역되지 않고, 그들의 감정은 이해되지 않는다. 시인은 이 암호화된 언어를 통해, 이민자들이 얼마나 조심스럽게, 그리고 얼마나 절박하게 살아가는지를 드러낸다.
익숙한 공간에서의 낯섦, 문명 속의 위협
“도시의 빛기둥을 쫓다가 자동차에 치일 뻔 했다”는 장면은 문명에 대한 동경과 그로 인한 위협을 동시에 담고 있다. 이민자는 도시의 빛을 향해 나아가지만, 그 빛은 그들을 환영하지 않는다. “풍선이 터지지 않도록 눈치 보며 바람을 넣는 것처럼”이라는 표현은 그들의 존재가 얼마나 위태로운지를 보여준다. 그들은 늘 눈치를 보며, 존재의 부피를 조절하며 살아간다. 이는 사회가 이민자에게 요구하는 ‘조용한 존재’의 압력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러한 장면들을 통해, 문명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진 폭력과 배제를 고발한다.
구조신호로서의 시, 침묵 속의 연대
'온전한 신호는 우리 같은 이민자만 알 수 있음'이라는 구절은 이 시가 단순한 고백이 아니라, 구조신호임을 암시한다. 이민자들은 서로를 알아보는 방식으로, 침묵 속에서 연대한다. 그들은 “1을 뺀 채 가족에게 전달”하며, 진짜 감정과 진짜 상황을 은밀하게 공유한다. 이는 사회가 허락하지 않은 방식으로, 진실을 나누는 행위다. 시인은 이 구조신호를 통해, 이민자들이 단지 피해자가 아니라, 저항하는 존재임을 드러낸다. 그들의 언어는 침묵 속에서 발화되고, 그 침묵은 곧 저항이다.
지구를 좋아하지만, 함께 살 수 없는 현실
'우리는 지구를 좋아하지만, 지구인과 함께 살 수는 없음'이라는 문장은 이 시의 핵심이다. 이민자들은 이 세계를 사랑하지만, 그 세계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호수 반대편의 낚시꾼들이 수군거리는 장면은, 그들이 늘 감시당하고 있다는 현실을 보여준다. “어느 별에 도착해도 이민자는 환영받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화자는, 이 세계 어디에도 자신들의 자리가 없음을 절감한다. 시인은 이 절망을 통해, 우리가 만든 경계와 배제의 구조를 정면으로 비판한다. 이 시는 단지 이민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타자화될 수 있는 세계에 대한 경고다.
「이민자들의 신호」는 사회 고발적 현대시로서, 경계 바깥에서 살아가는 존재들의 목소리를 담아낸다. 시인은 외계인의 은유를 통해, 이민자들이 겪는 소외와 억압, 그리고 침묵 속의 연대를 시적으로 형상화한다. 이 시는 단지 감정의 기록이 아니라, 구조신호다. 우리는 그 신호를 읽고, 응답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민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젠가 ‘1을 더한 언어’ 속에 갇히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4
신천희 시인의 「외상값」
-생애의 시작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사랑의 빚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산 자의 고백, 생애의 영수증을 펼치다
신천희 시인의 「외상값」은 일상의 언어로 풀어낸 인생 전체에 걸친 빚의 서사이며, 한 사람의 자식이 어머니에게 품은 말로는 다 갚지 못할 채무 고백서다. 시인은 과장이나 꾸밈 없이, 하지만 뼈저린 은유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머니에게 진 ‘외상’으로 명명한다. ‘열 달 동안 세 들어 살고도 / 한 달 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라는 표현은 인간이 생명의 시작부터 무조건적인 보살핌을 빚지고 태어난다는 존재론적 진실을 유머와 슬픔으로 동시에 들려준다.
어머니
당신의 뱃속에
열 달 동안 세 들어 살고도
한 달 치의 방세도 내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몇년 씩이나 받아먹은
따뜻한 우유값도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어머니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알면서도
저승까지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 신천희의 ‘외상값’ 전문
삶의 우유빛 채무-생존의 빚과 감성의 흔적
‘몇 년 씩이나 받아먹은 / 따뜻한 우유값도 / 한 푼도 갚지 못했습니다.’ 이 대목은 영양과 애정이 담긴 젖과 우유를 물질적 외상값으로 표현함으로써, 돌봄의 흔적을 시적 화자가 실재적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값진 채무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우유는 단순한 음료가 아닌 어머니의 살과 마음이 녹아든 사랑의 액체이며, 시인은 그 한 모금마다 새겨진 감정적 부채를 스스로 미납된 영수증으로 돌려놓는다. 이 표현은 감각적인 일상물의 사용으로 돌봄의 깊이를 담백하게 은유한 매우 절제된 시적 장치다.
‘사랑은 계산되지 않는다. 사랑은 오직 쌓인다.’ - 자크 아탈리
이승과 저승 사이, 갚지 못한 존재의 숙제
‘이승에서 갚아야 하는 것을 / 알면서도 / 저승까지 / 지고 가려는 당신에 대한 / 나의 뻔뻔한 채무입니다.’이 구절은 인간 존재가 가진 윤리적 자각과 감정적 회피의 교차점이다. 시인은 자신이 갚아야 할 빚을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어머니가 저승까지 지고 갈 것이라는 현실 너머의 사랑을 상정함으로써, 세속을 넘어서는 모성의 지속성을 강조한다. 여기에는 ‘자식은 항상 외상손님’이라는 모성의 신념이 암암리에 깔려 있으며, 생의 끝마저도 돌봄의 연속이라는 철학이 녹아 있다.
‘죽을 때까지 어머니는 한 사람이 아닌 전체 삶이다.’ - 마가렛 애트우드
본 시의 핵심 윤리- 恩重如山(은중여산)
이 시를 관통하는 정서와 윤리는 바로 恩重如山(은중여산)이다. ‘어머니의 은혜는 산처럼 무겁다’는 이 한자성어는 시인이 표현한 외상값의 본질을 압축하는 관념이다. 세를 살고, 우유를 마시고, 마음을 받는 모든 순간이 하나의 ‘은혜’이며, 그 은혜는 단순히 갚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시인은 그 무게를 단순히 부끄러움으로 감내하기보다는, 뻔뻔한 채무로 고백함으로써 모성에 대한 예의와 감사, 자각을 동시에 드러낸다.
침묵 속에서도 갚지 못하는 사랑의 잔고
「외상값」은 탁월한 시적 은유를 통해, 인간이 부모에게 지닌 본질적 부채를 유머와 경건 사이에서 균형 있게 펼쳐낸 시적 영수증이다. 시인의 말처럼, 그 값은 저승까지 어머니가 지고 가게 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시를 읽는 순간만큼은, 우리는 그 고백을 통해 사랑의 영수증에 도장을 찍는 의식적 독자가 된다.
이 시는 우리가 끝내 갚지 못하는 사랑의 영수증을 품고 사는 존재임을 일깨운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채무가 아니라, 존재의 흔적을 남긴 생애의 정산서이며, 우리가 다다를 수 없는 깊이의 정서적 장부다. 그리고 시인은 뻔뻔하다고 말하지만, 그 뻔뻔함마저도 눈물겹도록 아름답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5
박경옥의 「망월의 노래」- 택시에 실린 기억과 침묵의 여정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박경옥의 「망월의 노래」- 택시에 실린 기억과 침묵의 여정
박경옥 시인의 「망월의 노래」는 한 편의 시라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시간 구조다. 이 시는 한국 현대사의 침묵 속에 묻힌 비극과 기억의 존재론을 언어로 다시 일으켜 세우는 장송의 기도다. ‘망월동’이라는 공간은 이 작품에서 단지 지리적 좌표가 아니라, 역사적 양심과 윤리의 무게가 눌린 정신적 성소로 변모한다.
혼이 떠난 자리에
그대만이 들리는
노래가 있다
핏빛 살갗은 어디에 있을까
바람만 불어도 이기질 못할
네 형상은 어디 있는가
풀빛 미래를 남기고
자유로운 기다림으로
넋은 흩어진 채
봉분만이 누워있다
택시는
망월동 1980 번지를 향하고
0518 번호판을 달고
M16의 총성같은
경적이 울리고
봉분의 잡초는 무심히 흔들린다. - 박경옥의 '망월의 노래' 전문
이 시는 광주의 5·18 민주화운동으로 상징되는 집단의 고통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기보다는, 시적 은유와 상징을 통해 고통의 실체를 감지하도록 이끈다. 이는 비명을 외치기보다는 묵념하는 방식으로 울림을 창조하며, 택시와 잡초, 봉분과 경적이라는 일상의 기호들을 빌려 역사의 진동을 해석하는 서정적 장치로 삼는다.
그 결과, 「망월의 노래」는 시와 역사, 죽음과 생명, 언어와 기억 사이를 운행하는 예술적 택시가 되어, 독자를 과거의 길목으로 데려다 준다. 이 시를 마주한 독자는 어느 순간 망월동을 향한 정신적 승객이 되어, 말없이 흔들리는 생명의 떨림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묘역을 향한 언어의 발길
'혼이 떠난 자리에 / 그대만이 들리는 / 노래가 있다.' 이 구절은 시의 문을 여는 첫 음이며, 평범한 서정의 도입이 아닌 역사적 고통의 내부로 진입하는 시적 통로다. 박경옥 시인은 이 짧은 행간에 망월동 묘역의 기억을 얹는다. 이곳은 단순한 묘지가 아니라, 진실이 묻힌 자리이며, 산 자의 귀에만 들리는 애도의 노래가 맴도는 시간의 성지다. 시인은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하는 운전사가 되고, 언어는 택시의 시동처럼 부드럽고도 결연하게 울린다. ‘노래처럼 흘러나오는 고통의 공명’은 시적 장치인 동시에 집단 기억의 실루엣이다.
핏빛 형상, 사라진 존재의 소환
'핏빛 살갗은 어디에 있을까 / 바람만 불어도 이기질 못할 / 네 형상은 어디 있는가.' 시인의 이 음성은 처참했던 역사적 진실을 눈앞에 드러내기보다, 존재의 결락을 통해 역설적 존재감을 부각시킨다. 보이지 않는 형상은 더욱 절절하고, 살갗은 핏빛보다 뜨겁다. 그 부재의 시학은 집단적 망각의 균열을 시도하는 시인의 언어적 저항이며, 바람조차 이기지 못하는 형상은 당시 희생자들의 연약함과 절규의 상징으로 새겨진다.
“죽은 자는 묻힌 곳에 사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는 자의 마음속에 살아 있다.” -토머스 캠벨
“망각은 또 다른 폭력이다.” -미셸 푸코
봉분 속의 미래, 자유를 품은 기다림
이어지는 '풀빛 미래를 남기고 / 자유로운 기다림으로 / 넋은 흩어진 채 / 봉분만이 누워있다'는 대목은 묘지가 단순한 끝이 아닌, 다시 피어나는 시작의 자리가 되었다는 시적 선언이다. 풀빛은 희망을, 봉분은 침묵 속의 의지를, 흩어진 넋은 공동체적 책임을 말한다. ‘자유로운 기다림’은 시대적 억압에도 꺾이지 않은 죽은 자들의 영혼이 바라는 유일한 언어이며, 지금의 우리가 응답해야 할 시간의 서신이다. 이 대목은 희생자들이 남긴 메시지를 하늘 아래 새기듯 윤리와 희망이 공존하는 문학적 성소다.
“자유란, 억압받은 자가 가장 먼저 꿈꾸는 이름이다.” - 클라라 제트킨
경적과 총성, 일상 속 비극의 울림
'택시는 / 망월동 1980 번지를 향하고 / 0518 번호판을 달고 / M16의 총성같은 / 경적이 울리고' 이 구절은 시대를 관통하는 언어적 전환점이다. 박경옥 시인은 폭력과 일상, 역사와 현재의 경계를 하나의 은유적 택시에 실어 보낸다. 경적은 단순한 교통 소리가 아닌, 과거를 깨우는 총성의 메아리이며, 번호판은 5·18이라는 상징을 현재에 끌어오는 기호로 작용한다. 그 택시는 봉분을 향해 달리고, 우리가 외면하지 못할 침묵의 진실이 경적처럼 울린다. 그리고 그 소리 속에서, 무심히 흔들리는 봉분의 잡초는 말없이 생명과 기억을 흔들어 깨운다.
반포지효(反哺之孝), 문학의 품격이 된 윤리
시 전반에 흐르는 한자성어 反哺之孝는 이 작품의 윤리적 축이다. 새끼 까마귀가 자라 부모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듯, 시적화자는 젊은 희생자들의 목숨을 되새기며 기억으로 되돌려주는 문학적 효심을 보여준다. 이는 개인의 감상이 아닌, 공동체의 책임을 요구하는 시인의 선언이며, 기억은 윤리이고, 시는 그 윤리를 짓는 도구임을 말해준다. 「망월의 노래」는 단순한 애도가 아닌, 우리 모두의 책임을 묻는 문학적 촉구이며, 슬픔을 넘어선 지성의 발언이다.
흔들리는 잡초 속에 살아나는 역사
'봉분의 잡초는 무심히 흔들린다.'이 마무리 구절은 시적 정서의 여운이자, 역사라는 거대한 강의 하류에서 들려오는 마지막 떨림이다. 무심하게 흔들리는 것처럼 보이나, 잡초의 떨림은 지워지지 않는 생명의 진동이며, 산 자의 책임을 깨우는 윤리적 울림이다. 시인은 기억이라는 이름의 거울 앞에 우리를 세운다. 그 거울은 역사이며, 거울 속에는 지금 우리가 마주해야 할 과거의 눈빛이 있다.
언어의 택시, 역사로 향한 장송의 길
이 작품은 유기적으로 연결된 장송의 흐름이다. 택시는 과거로 달려가고, 그 노래는 현재를 관통해 미래로 울려 퍼진다. '망월의 노래'는 봉분에 누워 있는 자와 살아 움직이는 자 사이의 시적 중재자이며, 박경옥 시인의 언어는 역사를 잇는 길 위에서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그 택시에 탑승했는가? 아니면 여전히 기억의 정류장에서 망설이고 있는가?
이 시는 결국 기억과 윤리가 함께 타고 있는 조용한 기도이다. 봉분의 잡초가 흔들릴 때, 우리는 비로소 침묵 속에서 들리는 그대의 노래를 듣게 된다. 그리고 그 노래는 망월동 1980번지를 다시 비추며, 우리가 간직해야 할 문학적 책임과 인간적 성찰의 의무를 일깨운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6
김기성의 ‘사랑인데’
-사랑이라는 이름의 관용, 자연과 삶의 교차점-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새야 새 야 평화의 전령사 비둘기야
아침마다 반가움을 전해주는 까치야
뙤약볕에서 짜증도 없이 부지런한 일개미야
어쩌자고 벌건 대낮에
시인의 참깨밭에서 떼거리로 서성이느냐?
넘 배가 고파서 살짝 쿵 파먹는
너희를 내쫓자니 내 가슴이 미어지고
집에 가노라면 시름에 젖은
내 그녀 보기가 매우 안쓰럽다
오늘도 시인은 싱거운 웃음 피우며
꽃나무 골 밭에
고소한 참깨씨를 뿌렸다 – 김기성의 ‘사랑인데’ 전문
생명과 공존의 시선
김기성 시인의 「사랑인데」는 소박한 일상 속 생명들과의 따뜻한 시선을 담은 작품이다. 시인은 참깨밭이라는 삶의 터전에서 만난 새, 까치, 비둘기, 일개미 등 자연의 존재들을 다정한 언어로 호출하며, 이들을 ‘평화의 전령사’나 ‘반가움을 전해주는 이’로 묘사함으로써 인간과 자연 사이의 교류를 잔잔하게 펼쳐낸다.
시의 첫 구절부터 묻어나는 ‘사랑인데’라는 감정은 이 시가 단순한 서정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도덕성과 관용을 바탕으로 한 철학적 고백임을 암시한다.
갈등과 공감 - 삶 속에서 마주하는 선택의 딜레마
참깨밭에서 곡식을 파먹는 생명들에 대한 시인의 반응은 단호함이 아니라 동정심이다. ‘내쫓자니 내 가슴이 미어지고’라는 고백은 시인의 내면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도덕적 갈등을 보여주며, 타자에 대한 연민과 관용이 중심에 놓여 있다. 이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처럼, ‘사랑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인류애의 표현이다’ 라는 명언을 떠올리게 한다.
시인은 생명들을 침입자로 보지 않고 ‘배고픈 존재’로 이해하며, 그 이해는 결국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 ‘내 그녀’를 향한 미안함과 연결된다. 이처럼 시인은 모든 생명에게 사랑을 확장하고, 그 사랑은 인간관계 속의 애틋함과도 맞닿아 있다.
비유와 철학-무위 속의 자비와 품격
시인의 ‘싱거운 웃음’은 그가 고통과 갈등 속에서도 조용한 유머로 세상을 받아들이려는 자세를 나타낸다. 이는 동양철학의 사자성어 ‘연목구어(緣木求魚)’곧 불가능한 일을 바라며 애쓰는 삶의 모습을 재치 있게 비틀어 보여준다. 참깨를 지키기 위한 싸움보다 그 씨앗을 뿌리며 모든 존재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시인의 선택은 결과보다 마음을 중시하는 삶의 방식이다. 이는 달라이 라마가 말한 ‘자비는 단순히 감정이 아니라 실천이다’ 라는 명언과도 이어지며, 시인은 자연과 사랑 앞에서 실천적인 용서를 선택한다.
사랑이란 이름의 싹, 고소한 참깨씨처럼
마지막 구절의 ‘고소한 참깨씨를 뿌렸다’는 표현은 사랑의 실천이 단지 추상적인 감정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이루어지는 행위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인은 생명들에게 자리와 음식을 나누어주며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그 씨앗은 곧 삶 속에서 피어나는 꽃이 된다. 자연과 인간, 갈등과 이해, 일상의 소소한 사건들 속에서 피어난 이 시는 궁극적으로 ‘사랑’이란 이름으로 존재의 이유를 되묻는다. 결국 시인이 선택한 길은 배척이 아닌 포용이며, 그것이 품격 있는 삶의 진정한 태도가 아닐까.
이 작품은 우리에게 사랑과 자비의 실천이 얼마나 섬세하고 아름답게 일상에 녹아들 수 있는지를 일깨워준다. 참깨밭에서 웃음을 피우는 시인은 삶을 향한 믿음과 자연에 대한 존경을 고소한 씨앗처럼 뿌리고 있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7
정도영 시인의『하늘 우산』자연의 질서와 시적 겸허의 미학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자연은 시인의 눈을 통해 새로운 질서를 부여받는다. 정도영 시인의 「하늘 우산」은 일상의 자연물 '하늘, 땅, 호수, 연잎, 구름, 나뭇가지' 에 시적 상상력을 덧입혀, 존재의 관계성과 겸허를 탐색하는 작품이다. 시인은 ‘우산’이라는 일상적 사물을 자연의 구조 속에 배치함으로써, 보호와 덮임, 그리고 그늘이라는 개념을 확장한다. 이 시는 단순한 자연 묘사를 넘어서, 사물 간의 위계와 조화를 통해 인간 존재의 위치를 되묻고, 자연 앞에서의 겸손한 시선을 제안한다. 시적 상상력은 여기서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 존재론적 사유의 도구로 기능한다.
땅의 우산이
하늘이라면
작은 호수의
우산은 연잎
땅이 아무리
넓고 넓어도
하늘 우산은
다 덮고도 남아서
낮은 구름
풍선 띄우니
작은 호수를
가득 채우고
이겼노라
꽃의 깃발 세우는
연꽃 위에
구름 그늘
그려보는
나뭇가지- 정도영의 '하늘 우산' 전문
우산의 은유, 자연의 보호와 덮임
시의 첫 구절 '땅의 우산이 하늘이라면 / 작은 호수의 우산은 연잎'은 자연의 사물들이 서로를 감싸고 보호하는 관계로 읽힌다. 하늘은 땅을 덮고, 연잎은 호수를 가린다. 이처럼 시인은 자연의 구조를 ‘우산’이라는 상징으로 재구성하며, 존재 간의 상호작용을 시적으로 풀어낸다. 이는 단순한 비유를 넘어, 자연이 서로를 지탱하고 보호하는 생태적 질서를 드러낸다. 시인은 이러한 질서 속에서 인간 역시 자연의 일부로서 겸허하게 존재해야 함을 암시한다.
존재의 위계와 시적 겸손
'땅이 아무리 넓고 넓어도 / 하늘 우산은 다 덮고도 남아서'라는 구절은 자연의 위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를 되묻는 시적 장치다. 땅의 넓음조차 하늘의 덮임 앞에서는 작아지고, 이는 인간 중심의 시각을 넘어선 자연의 위대함을 상징한다. 시인은 이러한 우열을 통해 인간 존재의 겸손을 유도하며, 자연 앞에서의 낮춤과 경외를 시적으로 표현한다. 이는 단순한 자연 찬미가 아니라, 인간의 오만함을 경계하고 자연과의 조화로운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적 선언이다.
연꽃과 나뭇가지, 창작의 은유
후반부의 '꽃의 깃발 세우는 / 연꽃 위에 / 구름 그늘 / 그려보는 / 나뭇가지'는 시적 창작 행위의 은유로 읽힌다. 연꽃은 자연의 아름다움과 생명의 상징이며, 그 위에 구름의 그늘을 ‘그려보는’ 나뭇가지는 마치 시인이 붓을 들고 자연을 캔버스 삼아 그리는 모습처럼 다가온다. 이는 자연을 향한 시적 응시와 창작의 행위가 교차하는 지점으로, 시인은 자연을 단순히 바라보는 것을 넘어, 그 위에 자신의 감각을 덧입히며 존재의 흔적을 남긴다. 나뭇가지의 행위는 곧 시인의 창작이며, 자연과 인간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생태적 조화와 시적 세계의 확장
정도영 시인의 「하늘 우산」은 자연의 사물들을 시적 상상력으로 재배치하며, 존재의 관계성과 겸허를 드러낸다. 하늘, 땅, 호수, 연잎, 구름, 나뭇가지 이 모든 사물은 시인의 시선 아래에서 서로를 감싸고, 덮고, 그려내며 하나의 생태적 시학을 완성한다. 시인은 자연을 통해 인간 존재의 위치를 되묻고, 그 안에서 겸손하게 살아가는 삶의 태도를 제안한다. 이 시는 자연과 인간, 시와 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피어난, 조용하지만 깊은 울림의 시이다. 그리고 그 울림은 우리에게 자연을 다시 바라보는 낮은 시선을 선물한다.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8
성용애의 『토방이 있는 초가집 뒤뜰』
-전통의 풍경 속에서 피어나는 시적 감수성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한국의 시적 전통은 자연과 인간의 삶을 조화롭게 엮어내는 데 탁월한 감수성을 보여준다. 특히 일상의 풍경 속에서 정서적 깊이를 끌어올리는 시들은 독자에게 잔잔한 울림을 남긴다. 「토방이 있는 초가집 뒤뜰」은 그러한 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초가집 뒤뜰이라는 공간을 통해 전통적 삶의 정취와 생명의 순환, 그리고 감각적 상상력을 섬세하게 풀어낸다. 시인은 장독대와 항아리, 간장의 향이라는 소재를 통해 기다림과 익어감의 철학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며, 독자에게 정서적 공감과 미적 감동을 동시에 선사한다.
장독대에서는 만삭의 몸에
마스크 풀어 던진 항아리들
깨끗한 햇빛 그득 주어 담아 푹푹 절이고 삭혀
간장 익어가는 냄새 온 동네 날아다니다가
안개 같은 밤꽃 위에 앉아 자올 거리던 - 성용애의 '토방이 있는 초가집 뒤뜰' 전문
전통의 공간, 생명의 은유
이 시는 한국의 전통적 주거공간인 초가집 뒤뜰을 배경으로, 장독대와 항아리를 통해 생명의 순환과 기다림의 미학을 그려낸다. ‘만삭의 몸’이라는 표현은 항아리를 단순한 저장 용기가 아닌 생명을 품은 존재로 승화시키며, 자연과 인간의 삶이 맞닿는 지점을 시적으로 포착한다. 이는 단순한 풍경 묘사를 넘어, 생명과 시간의 흐름을 은유하는 장치로 기능한다. 항아리의 둥근 형태와 그 안에 담긴 발효의 시간은 곧 인간의 삶과 닮아 있으며, 시인은 이를 통해 삶의 깊이를 조용히 드러낸다.
감각의 시학과 공동체의 정서
시인은 햇빛을 ‘그득 주어 담아 푹푹 절이고 삭히는’ 행위로 표현하며, 자연의 정기를 받아 음식이 익어가는 과정을 감각적으로 묘사한다. 간장의 향이 ‘온 동네를 날아다니는’ 장면은 공동체적 정서를 환기시키며, 냄새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통해 공간을 넘나드는 감각의 시학을 구현한다. 이는 향이 단순한 후각적 자극을 넘어, 기억과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매개체로 작용함을 보여준다. 시인은 냄새를 통해 마을 전체의 삶을 연결하고, 익어가는 간장이 곧 사람들의 삶과 감정의 흐름임을 암시한다.
시적 상상력과 정서적 깊이
‘안개 같은 밤꽃 위에 앉아 자올 거리던’이라는 구절은 냄새가 생명력 있는 존재처럼 묘사되며, 시적 상상력이 극대화되는 지점이다. 이 장면은 자연과 인간, 감각과 정서가 교차하는 시적 공간을 창조하며, 독자에게 깊은 정서적 울림을 전달한다. 밤꽃 위에 앉은 향기의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존재처럼 다가오며, 시인은 이를 통해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더욱 섬세하게 그려낸다. 이러한 시적 비유는 일상의 풍경을 초월하여, 삶의 본질과 정서를 탐색하는 시인의 내면을 드러낸다.
「토방이 있는 초가집 뒤뜰」은 단순한 풍경을 넘어, 삶의 본질과 정서를 탐색하는 시적 여정이다. 시인은 전통의 공간을 배경으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그려내며, 감각적 언어와 은유를 통해 익어가는 삶의 아름다움을 조명한다. 항아리의 만삭, 간장의 향, 밤꽃 위의 자올거림은 모두 기다림과 성숙, 그리고 공동체적 정서를 상징하는 시적 장치로 작용한다. 이 시는 우리에게 말한다. 삶은 소리 없이 깊어지는 것이며, 그 속에서 우리는 익어간다는 것을.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29
윤효모 시인의 바다에서
-바다와 존재의 교차점, 시적 명상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침묵의 거울, 물과 나 사이의 성찰적 시선
이 시는 단순한 자연 풍경을 넘어 존재론적 성찰로 우리를 이끈다. ‘내가 물을 바라볼 때, 물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는 문장은 대상을 향한 시선이 결국 자신에게로 되돌아오는 철학적 구조를 내포한다. 이때 침묵은 단순한 무언이 아니라, 가장 깊은 언어이며, 반사된 모습은 과장도 왜곡도 없는 진실 그 자체이다. 시인은 마주한 자연 속에서 자기 자신을 대면하고, 인간 내면의 진실을 바라보는 방법으로 침묵과 반사라는 매개를 활용한다. 이는 마치 칼 융이 말한 ‘당신이 외부를 바라볼 때는 꿈을 꾸지만, 내부를 바라볼 때는 깨어난다’ 는 명언처럼, 바깥의 바다를 통해 시인은 결국 자신의 내면으로 침잠해 간다.
바다와 나의 그림자
내가 물을 바라볼 때
물도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은 언어였고
반사된 모습은 진실이었다
비응항 끝자락에 서면
인간은 작은 파편이 된다
그러나 그 작음 속에
모든 우주가 깃들어 있다
나는 걷지 않는다
파도가 이미 내 길을 걸었기에- 윤효모의 ‘바다에서’ 전문
비응항 끝자락, 존재의 경계를 넘어선 우주적 자각
‘비응항’이라는 구체적 공간은 시적 세계관에서 경계와 확장을 동시에 품은 장소이다. 그 끝자락에 서면, 인간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작은 파편’으로 느껴지지만, 시인은 그 작음 속에 ‘모든 우주가 깃들어 있다’고 통찰한다. 이는 동양의 사유 전통에서 자주 등장하는 ‘대유소종(大有小宗)’큰 것 속에 작은 것을 품고, 작은 것 속에 큰 것을 볼 수 있다는 철학과 맞닿아 있다.
존재는 물리적 크기로 환원되지 않으며, 시인은 우주적 질서 속의 인간의 위치를 재정의 한다. 조용하고 겸허한 태도 안에 무한의 감각을 담아내는 이 시의 사유는, 프랑스 시인 발레리의 ‘바다는 사유하는 것이다’ 라는 말처럼, 바다를 단순한 대상을 넘어서 철학적 파트너로 삼는다.
파도의 길, 인간의 순응과 시인의 겸허함
‘나는 걷지 않는다 파도가 이미 내 길을 걸었기에’라는 종결부는 시의 미학적 정수를 드러내는 장면이다. 시인은 자아를 드러내기보다, 자연의 흐름 속에 녹아드는 것을 택한다. 이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태도로, 억지로 무언가를 하거나 남기려 하지 않는 삶의 방식이며, 파도가 먼저 내디딘 그 길 위에서 자신의 존재를 겸손하게 놓아두는 모습이다. 이는 누군가의 흔적을 따르기보다, 이미 존재하는 흐름에 자신을 맡김으로써 삶의 지혜를 배우는 자세이다. ‘파도가 내 길을 걸었다’는 표현은 자연이 이미 내 삶을 알고 있으며, 그 안에서 나는 흔적을 남기려 하지 않는다는 자각이며 순응이다.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듯, ‘우리는 사랑함으로써만 이해할 수 있다’ 는 그 말처럼, 시인은 바다에 대한 사랑과 존경으로 깊은 이해에 다가간다.
이 시는 우리가 바다를 마주할 때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은유적으로 일깨운다. 반사된 모습 속에서 본래의 나를 마주하고, 파도가 남긴 길을 따르며 순응과 겸허함 속에서 존재의 본질에 다가가는 이 여정은 고요하지만 심오하다. 우리가 작은 파편일지라도, 그 속에 깃든 우주는 무한하다. 그것이 이 시가 전하는 품격 있는 진실이 아닐까?
대한민국 노벨문학상 수상 기념
유명작가 33인 외 동행 소나타 30
송미순 시인의 「흔적을 줍다Ⅱ 」
-폐허의 조각에서 피어난 은하수의 맥박-
시평: 이삭빛시인(문학박사/문학평론가)
국립 NwSSU대학교 겸임교수
도시는 자꾸 흔적을 남긴다. 흔적은 때론 아름답고, 종종 낯설며, 대부분은 지워진다. 그러나 송미순 시인의 「흔적을 줍다Ⅱ」는 그 지워지기를 기다리는 잔상들, 버려진 조각, 눌린 풀잎, 굳은 불씨, 찢긴 종이들, 그 모두를 다시 눈빛에 담는다. 이 시는 쓰레기가 아닌 시간을, 파편이 아닌 생명을, 고요한 아침이 아닌 반짝이는 재탄생을 노래하며, 우리가 외면했던 것들에서 새로운 우주적 질서를 되짚는다.
담배꽁초 조각들이
파도가 삼킨 불씨의 굳은 밤
우리의 손끝에서
부서진 병뚜껑들이 별자리를 되짚는다
한 장의 현수막은 땅의 상처를 덮던
얼굴 없는 가면이 되어
발아래서 흙이 내쉰 한숨에 멍이 들 때
종이 조각들은 나뭇잎의 그리움을 접어
강이 삼킨 편지의 목젖에서
봉사자들의 등잔불이
길 잃은 광년(光年)을 빛의 종자주머니에 담듯
쓰레기봉투 속에서
버려진 시간이 새싹으로 터진다
유리 조각에 비친 하늘 조각들
녹여내는 아침
어둠의 주름진 손바닥에 서린 은하수
발밑에 흩어진 상처들을
한 뼘씩 주울 때마다
지구의 심장이
우리 손톱 아래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송미순의 ‘흔적을 줍다Ⅱ’ 전문
시인은 아무 말 없이 땅을 응시하며 그 표면에 흩뿌려진 조각들을 줍는다. 그 손길은 단순한 정화 활동이 아닌 존재를 되살리는 ‘윤리적 실천’이다. ‘발밑에 흩어진 상처들을 / 한 뼘씩 주울 때마다’라는 구절은 마치 죽어가던 지구의 맥박을 다시 튼튼하게 뛰게 만드는 의식처럼 느껴진다. 버려진 조각이 은하수가 되고, 쓰레기봉투 안에서 새싹이 돋고, 어둠의 주름진 손바닥에 생명이 아로새겨지는 이 시의 세계는 황폐 속에서 피어나는 질서의 기적이다.
Ⅰ 폐기물의 언어, 파편에 반짝이는 별자리
‘담배꽁초 조각들이 / 파도가 삼킨 불씨의 굳은 밤’이 도입은 단순한 환경 묘사를 넘어선 풍경의 역사이자, 삶의 상흔을 기록하는 문장이다. 잊혀진 흔적들은 ‘불씨의 굳은 밤’으로 변모하고, ‘병뚜껑들이 별자리를 되짚는다’는 구절에서 우리는 파편 속 질서를 되새기는 시인의 예리한 시선을 마주한다. 고통이 남긴 흔적은 지워야 할 것이 아니라 읽어야 할 것이다.
이는 니체의 말, ‘기억은 영혼을 구성하는 것이다’를 떠올리게 한다. 버려진 물건들 속에 남은 누군가의 숨결은, 별자리를 따라 스스로를 재구성하려는 영혼의 지도일지 모른다. 이런 시적 발견은 폐허 속에서도 문명이 시작된다는 믿음을 조용히 울린다.
Ⅱ 상처의 주운 기억, 생태의 회복 몸짓
시의 중심부는 쓰레기를 줍는 봉사자들의 손길을 ‘등잔불’과 ‘종자주머니’로 형상화하며, 단순한 정화 행위가 아니라 시간의 회복, 생명의 보존이라는 존재론적 의미를 부여한다. ‘종이 조각들은 나뭇잎의 그리움을 접어 / 강이 삼킨 편지의 목젖에서’ 이 문장은 자연과 인간의 감각이 연결된 환상의 교차점이다. 종이 조각조차 그리움을 품고, 강물조차 편지를 삼킬 만큼 기억의 깊이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동양의 사자성어 수처작주(隨處作主)‘어디서든 주인이 된다’를 떠올릴 수 있다. 낯선 땅, 낯선 물질, 낯선 고통 속에서도 우리는 주인이 되어 그것을 회복의 언어로 바꾸는 존재다. 봉사자의 손끝에서 ‘버려진 시간’이 ‘새싹으로 터진다’는 서사는 생태적 정화가 아니라 시적 창조의 선언이며, 삶의 본질은 순환과 회복 속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Ⅲ 지구의 맥박, 우리 손 아래에서 다시 뛴다
‘유리 조각에 비친 하늘 조각들 / 녹여내는 아침’ 이 구절은 황혼의 슬픔을 녹여내고 새벽의 희망을 빚어내는 시적 응시를 드러낸다. 파편으로 분해된 어제를 어루만지는 오늘의 손끝은, 쓰레기를 줍는 행위가 아니라 ‘지구를 다시 만지는 예술’이 된다.
‘발밑에 흩어진 상처들을 / 한 뼘씩 주울 때마다 / 지구의 심장이 / 우리 손톱 아래서 다시 뛰기 시작한다’ 이 마지막 연은 시 전체를 품으며, 존재의 윤리를 선포한다. 우리가 외면했던 것은 단순한 쓰레기가 아니라 지구의 숨결이었고, 우리가 줍는 것은 파편이 아니라 생명의 맥박이다.
레이첼 카슨은 ‘한 사람의 작은 손길이 생명을 구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시는 그 손길에 별빛을 묻히고, 은하수를 빚어내며, 존재의 희망을 품게 한다.
흔적의 시학, 존재의 빛을 줍다
송미순 시인의 「흔적을 줍다Ⅱ」는 시라는 형식을 빌려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를 비춘다. 그것은 쓰레기 줍는 봉사자들의 등불이며, 어둠 속에서도 빛을 저장하는 마음의 태도이며, 파편 속에서도 은하수를 발견하는 예술적 통찰이다. 이 시는 우리 모두에게 말한다 ‘세상을 밝히는 시작은, 버려진 흔적 하나를 줍는 손끝에서 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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