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업 사람과사람들, 인천타임즈 제2호 2008.8.25.
詩로 세상 찾고, 꽃과 대화하는 조순현 할머니 한글 깨우치자 '시집' 내놔 / 이담하
세상 어느 곳을 돌아봐도 살맛 나는 이야기가 없다. 고유가가 아니면 금강산, 독도가 화두이다. 차라리 사람을 찾는 게 낫다 싶어 문화의 거리 쪽으로 나서보려는데, 태클이 걸렸다. 나가봐야 별것이 있겠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주저앉히는 건 주간님이다.
“부평삼거리 계시는 어머니 뵈러 가는데 거기나 가지.”
네 살인가 다섯 살 적에 돌아가신 어머니는 뭐며, 강원도 철암 어디에 묻히셨다는 어머니가 왜 공원묘지에 오셨단 말인가? 그러나 질문에는 늘 동문서답인지라 묻지도 못한다. 고호영 편집국장이 일어서니 임노순 편집주간이 앞장을 선다.
일행을 데리고 간 곳은 부평삼거리를 막 지나면 우측에 자리한 인천광역시 부평구 부평3동 570-5호, 반지하가 딸린 지상 2층의 양옥이다. 뭐가 그리 좋은지, 오는 내내 혼자 싱글벙글하기만 하던 그가 단숨에 2층으로 뛰어오르더니 손짓만으로 올라오라는 사인을 낸다.
계단 칸칸이 잘 키운 화초들이 화분에 앉아 고갤 주억거리며 인사를 한다. 2층으로 올라가니 현관에서 이미 두 사람이 포옹하고 있다. 얼굴을 안 보면 오랜만에 만나는 연인 같고 얼굴을 보면 이산가족의 모자 상봉 장면이다. 일행이 들어가 거실에 앉자마자 맥주와 과일을 내어오신다.
자그마한 체구에 단아한 이 할머니를 어디서 뵌 적이 있는 분이다 싶은데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집 나간 아들 밥 퍼 놓듯이 울 아들 언제 올지 몰라 맥주는 꼭 사 넣어두지.”
거의 이십 년 아래인 임노순 시인과 할머니가 스승과 제자로 만나 모자관계로 발전했단다.
여기저기 불편해질 연세임에도 집 안 구석구석 정리 정돈이 잘 된 가정집이다. 마음에도 먼지 하나 없을 만큼 깨끗하게 사시는 할머니의 정갈한 살림살이를 보다 보니 시원한 바람이 돌아다닌다. 고갤 들어 살펴봐도 에어컨이 없다. 박물관이나 골동품 가게에 가 있으면 제격인 우리나라 최초의 선풍기 한 대가 소음도 없이 돌아가고 있다. 1963년에 제작된 것이니 내 나이와 맞먹는다. 물건을 쉽게 사고 쉽게 버리는 요즘 사람 중의 한 사람인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할머니의 고향 곡성에서 온 듯한 흰 구름 몇 덩이가 만월산자락에서 쉬고 있는데, 할머니와 편집주간의 이야기만 계속 이어진다.
할머니는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는 아들의 입에 깨끗하게 깎은 과일을 넣어주고 시집 두 권을 내어온다.
“에이, 부끄러운 걸 뭐 하러 갖고 오래?”
“어머니, 이런 분들에겐 꼭 드려야 합니다.”
시집 제목이 『하루를 살며, 일흔을 살며』이다.
“아, 몇 해 전 모 일간지 인터뷰 기사에 나왔던 할머니, 조순현 시인!”
“시인은 무신, 당치도 않지라.”
조순현 할머니는 제도권의 학교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하고 시집을 갔단다. 그래도 육 남매를 낳아 잘 키워 학자로 사업가로 성공시켰다.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글을 배우고 싶어도 못 배웠지만 불편하진 않았다. 자녀들이 장성해 살림을 나가자, 공과금과 세금 고지서는 당신 스스로 처리해야 하는데, 이웃집 도움을 받는 게 좀 미안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노인대학에 가서 한글 공부를 시작했다. 마침내 세상이 온전하게 보였는데 그때가 69세였다.
“세상을 향해 하고 잡은 얘기가 많아지라. 그래서 글을 맹글어 볼라고 선생님을 찾았지라.”
노인대학 강사의 소개로 ‘임노순 시 창작교실’ 문을 두드렸는데 느닷없이 시를 공부하라는 권유를 받았다. 날마다 짧은 일기를 쓰게 했고, 그걸 시로 바꾸는 훈련을 받기 시작했는데 일주일 만에 첫 작품이 나왔다. 그렇게 한 편, 두 편 쌓인 게 첫 시집 ‘하루를 살며, 일흔을 살며’이다.
“시만 쓰는 줄 알았더니 어머닌 그림도 그리시네?”
신대륙이라도 발견한 듯 소리치는 편집부장의 손가락을 따라 벽을 보니 이제 막 그린 듯 물감이 마르고 있는 그림들이 보인다.
“그림이랄 게 뭐 있소? 그냥 연습해 보는 거지.”
할머니는 당신의 일에 대해선 늘 겸손하시다. 일주일에 한 번 노인대학으로 가서 그림 공부를 하고 있단다. 무궁화와 목단이 벽에서 환하게 웃고, 할머니 손끝에서 그려진 늘 푸른 소나무에선 노란 송홧가루가 폴폴 날리는 것 같다. 그뿐 아니다. 봉사와 대접을 받아야 할 연세에도 불구하고 성당에 나가 기도도 열심히 하고, 힘든 이웃을 위한 봉사를 하고 있다. 이런 어머니라면 어찌 자랑스럽지 않으랴. 시 쓰고 그림 그리는 모습에 감동한 자제들은 어머니가 80세가 되면서 첫 시집을 칠순 기념으로 펴냈듯이 두 번째도 시화집으로 묶어 팔순 기념을 하자고 한단다.
“오늘 어머니 맛있는 거 대접려고 하는데 나가시죠?”
“아니, 난 친구들과 저녁 함께 했지. 담에 혀.”
일찍 식사하셨다는 말에 더 권유하지 않고 할머니가 손수 사인 해준 시집을 들고 현관문을 나섰다.
“할머니, 화초가 어찌 이리 잘 자라요?”
“아침에 눈 뜨면 늬들 잘 잤냐고 인사 허제, 그라믄 조것들도 언능 알아들어.”
동네 사람들은 ‘죽은 화초도 살려내는 의사’라고 부른다고 한다.
시 쓰고, 그림 그리며 이웃에게 봉사하며 꽃을 기르는 할머니처럼 모든 노인들이 건강하고 아름다운 삶을 살아가길 바라면서 마음 가득 꽃향기를 채워서 돌아왔다.
<건강> 이담하의 술 이야기
술, 체질을 알고 마시면 술도 약이 된다
사상의학(四象醫學)이란 조선 말엽(19C) 이제마 선생에 의해 연구 완성된 학문이다. 선생은 유학과 한의학의 관점에서 인간과 우주를 파악하였다. 사람을 소음인(少陰人), 소양인(少陽人), 태음인(太陰人), 태양인(太陽人) 등 네 체질로 분류했다.
각 체질에 따라 생리와 병리를 다르게 파악하여 진단과 치료를 행하는 독특하고도 독창적인 체질의학이다. 사상의학은 치료의학만이 아니라 예방의학이며, 양생법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마 선생이 사망하기 전 “내가 죽은 100년 뒤에는 나의 사상의학이 세상을 풍미할 것이다.”라고 예언했다.
폐(肺)가 크고 간(肝)이 작은 자를 태양인(太陽人)이라 하는데 목이 굵으나 하체가 약하다. 간(肝)이 크고 폐(肺)가 작은 자를 태음인(太陰人)이라 하는데 목이 짧고 살이 찐 체형이다. 비장(脾臟)이 크고 신장(腎臟)이 작은 자를 소양인(小陽人)이라 하며 가슴이 크나 엉덩이가 작다. 신장(腎臟)이 크고 비장(脾臟)이 작은 자를 소음인(小陰人)이라 하며 키가 작으며 마른 체형이다.
사상의학에서는 체형뿐만 아니라 절기에 따른 분류도 있다. 봄을 소음절기(少陰節氣)라고 하며 봄에 태어나면 소음인(少陰人)이 된다. 여름은 태양절기(太陽節氣)이며 여름에 태어나면 태양인(太陽人), 소양절기(少陽節氣)인 가을에 태어나면 소양인(少陽人), 겨울인 태음절기(太陰節氣)에 태어나면 태음인(太陰人)이 되는 것이다.
소음(少陰) 절기인 봄에 태어난 사람은 이 온기(溫氣)의 영향을 받아 간(肝)과 담(膽)의 기능은 왕성하나 상대적으로 폐(肺)와 대장(大腸)의 기능은 허약하게 된다.
태양(太陽) 절기인 여름에 태어난 사람은 이 열기(熱氣)의 영향을 받아 심장(心臟)과 소장(小腸)의 기능은 왕성하나, 상대적으로 저장하고 뭉치는 수(水)의 장부인 신장(腎臟)과 방광(膀胱)의 기능은 허약하게 된다.
소양(少陽) 절기인 가을에 태어난 사람은 폐(肺)와 대장(大腸)의 기능은 왕성하나 상대적으로 간(肝)과 담(膽)의 기능은 허약하게 된다.
태음(太陰) 절기인 겨울에 태어난 사람은 한기(寒氣)의 영향을 받아 신장(腎臟)과 방광(膀胱)의 기능은 왕성하나 상대적으로 심장(心臟)과 소장(小腸)의 기능은 허약하게 된다. 이런 원리를 알면 마시는 술이 독이 되기도 하고, 약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태음인은 간이 특별히 크고 튼실하므로 알코올의 분해 능력이 뛰어나 술을 잘 마신다. 특별히 가려야 할 술은 없지만 과하면 심장을 상하게 할 우려가 있다. 안주로는 쇠고기나 두부, 유제품 등 단백질이 많은 음식이 좋다.
태양인은 간이 작고 약해 술을 삼가는 게 상책이다. 열이 많아 찬 술(생맥주)이 좋다. 어패류와 해조류가 안주로 좋으며 과일 중에서는 포도나 머루, 키위가 안주로 좋다.
소음인은 간장의 기능이 태음인처럼 좋지만 몸이 차고 기가 부족해서 맥주는 마시지 않는 게 좋다. 인삼은 몸에 좋지만 돼지고기는 피해야 한다. 특히 대장이 약해 술을 마시면 설사를 하게 되니 찬 우유는 금물이다.
소양인은 열이 많고 간이 약해 도수가 높은 술이 해롭다. 가급적 맥주를 마시고, 안주로는 열을 내려주는 돼지고기가 좋고 굴이나 새우를 곁들이면 좋다. 변비가 있을 수 있으니 섬유질이 많은 채소와 수박, 참외, 오이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
술과 같은 기호식품은 체질과는 반대인 것에 구미가 더 당긴다. 입에는 맞지 않더라도 술은 반드시 가려서 마셔야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법이다. - 조선 말엽(19C) 이제마의 사상의학(四象醫學)을 참조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