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대교구의 발자취를 되돌아 봅니다.
19세기 초, 로마 교황청에는 이상한 보고가 하나 도착했습니다.
"조선이라는 나라에는 사제가 한 명도 없는데 스스로 신앙을 지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당시 세계 어디에도 선교사 없이 스스로 교회를 이루어낸 나라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보고는 계속해서 이어졌습니다. 박해가 이어져도 공동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이야기, 성사를 전혀 받을 수 없는데도 서로 교리를 가르쳤다는 이야기, 심지어 목숨을 걸고 신앙을 전한다는 이야기 등등...
로마는 조용히 술렁이기 시작했습니다. 거기다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 조선에 성직자를 파견해 달라는 조선 신자들의 요청은 교황청의 마음을 흔들었습니다.
"조선은 하느님께서 특별히 돌보시는 땅이 아닐까?"
당시 교황청은 전 세계 선교 구역을 재편하고 있었습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등의 교회가 커지면서 관리의 어려움을 겪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조선은 아주 특이한 곳이었습니다. 오직 책과 편지로 신앙을 지켜온 공동체. 그 신심은 놀라웠지만 언제든 교리가 왜곡되거나 공동체가 흩어질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교자까지 생겨나며 선교사 한 명 없이도 신자가 계속 증가한다는 사실에 교황청은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사제가 없는 교회가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
교황청은 마침내 이 땅을 독립된 대목구로 세워야 한다고 판단합니다.
조선을 중국 북경의 한구석에 두기엔 이 땅의 열매가 너무 컸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간단치 않았습니다. 철저한 쇄국과 금교 정책을 시행하던 조선에 사제를 보낸다는 것은 곧 '목숨을 바칠 사람을 찾는다'는 뜻이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중국 사천에서 사목하고 있던 브뤼기에르 바르톨로메오(1792~1835) 신부가 조선에 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교황 성하께 간청하오니, 부디 저를 조선으로 보내 주십시오. 조선 신자들이 저를 부르고 있습니다."
그의 간절함은 누구보다 뜨거웠습니다.
마침내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1831년 9월 9일 로마의 성모 마리아 대성당에서 소칙서를 반포하여 조선을 '조선대목구'라는 이름의 독립 교구로 설정하고 브뤼기에르를 첫 번째 주교로 임명하였습니다.
1835년 브뤼기에르 주교는 조선으로 향하는 길에서 병으로 선종하지만, 그의 헌신은 불씨가 되어 앵베르·모방·샤스탕 등이 조선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그리고 조선의 가난한 신자들은 마침내 꿈꾸던 사제를 만나게 됩니다.
조선교구는 이렇게 박해 속에서 스스로 신앙을 지켜낸 조선 신자들, 그리고 그들을 잊지 않으려 한 교황청의 결단과 그곳으로 가겠다고 나선 선교사들의 용기가 서로 만나 탄생한 교회였습니다.
- 대구주보(2025년 12월 14일) 교구 문화홍보국 장성녕 안드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