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44세 프랑스인 알베르 까뮈(Albert Camus, 1913-1960)는 역사상 두 번째로
어린 나이로 받은 자이다. 프랑스령 알제리에서 태어났지만, 대학교를 졸업한 후 프랑스로 들어가 레지스탕스
신문 콤바의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여러 계층의 사람과 교제를 가졌다.
그중 실존주의자 샤르트르와 사귀면서 실존주의자로 활동하게 된다. 그의 주된 사상은 부조리에 관한 개념이다.
그를 문학상 작가로 만든 작품은 『이방인』(L’Étranger, 1942)이다. 그는 이 소설에서 부조리 사회에 사는
뫼르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또 『시지프 신화』(Le Mythe de Sisyphe, 1942)이다.
부조리(absurdity)에 관한 철학적 개념을 발전시킨다. 이 내용은 부조리에 대한 반양이다.
이것은 신화의 주인공 시지프스(Sisyphus)가 인간 중 가장 영리하고 교활한 인물인데 신들을 여러 번 속이므로
죽음을 피하고 그 권위에 도전했다. 이에 대해 제우스가 보낸 죽음의 신 타나토스를 쇠사슬로 묶어 가둬 버릴
정도로 교활했다. 후에 죽자 아내에게 자신의 시신을광장에 버리라는 유언을 남기면서 지옥의 신 하데스에게
장례를 치른다고 하여 지상에 와서 지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러자 화가 난 신들은 그에게 저주를 내린다. 산 정상으로 바위를 밀어 올리면, 정상에 닿는 순간 바위가 다시
산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형벌을 받는다.
하지만 까뮈는 이 시지프를 다른 쪽으로 해석한다. 인간의 모습과 같다는 것이다. 인간은 무의미한 일을 반복하며
결실도 없는 일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죽겠지만 죽기까지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인간을 대표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바위가 산정상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것을 보는 시지프에 주목한다. 자신의 운명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무의미하다는 것을 의식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불운을 똑바로 직시하면서 다시 내려가서 바위를 굴려 올린다.
희망이 없는 세상이지만 반복하는 무의미한 인생이지만 계속하는 것이 신에 대한 저항이고 반항인 동시에 승리라고
극찬하며 이야기를 꾸며 나간다. 신들의 저주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운명을 수용하며 살아가는 시지프를 칭송한다.
자신이 교활하게 신들에게 저주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반항하며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무한 반복성을
끊임없이 하는 것을 역설적으로 칭송한다는 것이 어처구니없다. 잘못에 대한 용서나 회개는 전혀 없다.
부조리한 세상에 대해 뫼르소를 들어서 모친의 죽음에서도 슬퍼하지도 않고 눈물조차도 흘리지 않고,
오히려 장례식장에서 담배를 피우며 비정상적 행동을 주저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여인 마리가 자신을 사랑하느냐고 물어도 사랑이 아무런 의미가 없기에 사랑하는 것 같지 않다고 투덜대며 대답한다.
결혼하자는 그녀의 제안에도 결혼하고프면 하자고 말한다. 이렇게 뫼르소는 개념이나 도덕성을 표출하지 않는다.
심지어 뜨거운 태양, 여성의 부드러운 옷감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살인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태양 때문이라고 탓으로 돌린다.
이것이 정직이라고 말할 정도이다. 사회 적응을 거절한다. 하지만 마지막 사형 선고를 받고도 자신의 잘못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이 제20세기의 인간의 모습이 아닌가? 우리는 과연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