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도성길 두번째 여정
오늘은
같이 할 산친구가 있어
좋을 것 같다.
우리집 여사님과 여행을 가기로 했는데
또 변심
서둘러 10시까지 서울 숭례문으로
집에서 10분서리에서
4104번으로
서울로 갑짜기 화장실이 급해
서울역에서 하차하여
서울역 대합실을 이용
서울역도 만원이다
지하철역에서 올라오는 여행객에
발 디딜틈도 없이
혼잡스럽다.
10시조금넘어
]명희 만나 도성길을 걷기를 시작한다.
숭례문에서 인증을 하고
길건너 성벽 재현기관을 지나
가는길
중앙일보
평안교회
배재학당을 지나
주한 러시아 대사관을 지나
정동교회와 이화여고앞도로를 따라
이곳에서 알바다.
도심이라
주위가 헷갈려 길이 에매해서
가다보니
광화문에서 서대문으로 가는 도로가
낮익은
길건너 강북삼성병원 건물이
눈에 든다.
이곳이 경교장
돈의문터 인증하는 곳
잘 알려진 것처럼 경교장은 해방 후 임시정부가 귀환해서 임시정부 청사 겸 김구 선생을 비롯한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으며, 김구 선생이 안두희의 총탄에 서거한 곳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지어져 80년이 되어가는 이 양옥 건물은 해방과 6.25전쟁 사이의 몇 년 동안 치열했던 우리 현대사의 현장이었고, '경교장'이란 이름만으로도 백범 김구 선생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입니다.
큰 병원건물이 ㄷ자형으로 삼면을 감싸고 있어 옹색해 보이는 경교장.
경교장(京橋莊)
사적 제465호(2005. 6. 13 지정)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29 (평동) 일제강점기 평안도 일대에서 금광으로 엄청난 부를 축적했던 대표적인 친일 기업인(거부답게 일제에 엄청난 국방헌금을 기부하며 여러 친일단체에서 활동함) 최창학이 별장으로 1939년에 완공한 고전주의 풍의 건물이다.
경성공업전문학교 건축과를 졸업한 김세연이 설계했으며, 지상 2층, 지하 1층, 연건평 264평 규모로, 좌우대칭형 2층 양옥으로 지어졌는데, 정면 중앙 1층에는 당시로써는 드물게 승·하차 시설을 갖춘 현관도 설치했다. 완공 당시엔 죽첨장(竹添莊)이라 불렀다.
1945년 11월 임시정부 요인들과 귀국한 김구 선생이 임시정부 청사 겸 숙소로 사용하며 인근의 다리 경구교(京口橋)의 이름을 따서 경교장으로 개명하였다.
김구 선생은 경교장에서 건국, 반탁, 통일운동을 이끌며 민족진영 인사들의 집결지 역할을 했으며, 1949년 6월 26일 이곳에서 암살되었다.
이후 최창학에게 반환되었던 건물은 중화민국 대사관저로 사용되다가 6·25전쟁 때에는 미국 특수부대가 주둔하였고, 이후 월남 대사관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1967년부터는 경교장 후면에 붙여서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 본관을 건축하면서 오랜 기간 병원 현관으로 사용되었다. 병원으로 사용되며 대대적인 수리가 있었으나 외관 및 지붕은 원래의 모습이 유지되었다.
2001년 4월 6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29호로 지정되었으며, 한국 근·현대사에서의 중요성 등이 재평가되면서 2005년 6월 13일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465호로 승격되었다.
2009년 60년 만에 경교장 전체를 복원하기로 하여, 건물 내에 있던 병원 시설들을 모두 옮기고 2011년 3월부터 공사에 들어가 2013년 3월 1일 경교장으로 새롭게 개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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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교장을 지나 새로이 단장한 도성 성곽이
걷는 객을 맞는다.
의외로 외국인도 도성길 탐방을
많이하는지 반바지 차림으로
같은길을 걷는다.
인왕산 정상
이곳은 나의 어린시절이
깃들어 있던 놀이터다.
좌우로
안산과 북악산
안산자락에 나의 모교 안산초등학교
그리고 고등학교가 있는 교남동
사직공원
모든것이 새롭다.
긴 세월 아파트와 재건된 도성길이
확 변한 모든것들이 생소하다.
기차바위길로 가는 등산로
기차바위를 기점으로 우측은 세검정
좌측은 홍제동이다.
'창의문(彰義門)'
뜻은 '올바른 의(義)를 드러내는(彰) 문(門)'으로, 조선 초 개국공신 정도전이 지었다고 한다.
창의문은 북문이면서도 정북방이 아니라 서북쪽에 있는데, '
의(義)' 자는 전통적으로 서쪽을 가리켰기 때문에[5]
창의문 이름 뜻을
'서쪽을 밝게 하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별칭으로 '북소문(北小門)', '자하문(紫霞門)'이 있다.
'북소문(北小門)'은 말 그대로 '한양도성의 북쪽(北) 소문(小門)'이란 뜻이며, 자주 불리진 않았다.
'자하문(紫霞門)' 이름은 '자핫골의 문'이란 뜻이다. '자핫골' 지명은 한양 천도 이후에 창의문 일대의 풍광이 마치 개성의 명승 '자하동(紫霞洞)'과 비슷하여 '자핫골'로 불렀던 것에서 유래했다.
한양의 남서쪽 출입문이었던 소의문이 원래 이름 '소의문' 대신 이명 '서소문'으로 대중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 비슷하게 창의문 역시 원래 이름인 '창의문'보다 '자하문'으로 훨씬 더 유명하다.
일단 창의문을 지나는 큰 도로의 이름부터가 '자하문로'고 해당 도로가 지나는 터널 이름도 자하문터널이다.
창의문로는 경복고등학교 뒷편에 있는 옛길인데 주요 도로가 아니다보니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른다.
참고로 나무위키에도 자하문로 문서가 창의문로 문서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주변 식당이나 빌라같은 곳들의 이름도 대부분 '자하문한정식', '자하문빌라' 이런 식으로,
'창의문'이라는 명칭은 상대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인근의 상명대학교에도 '자하관'이라는 강의동이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 교지의 이름도 《자하(紫霞)》이고,
축제의 이름도 '자하제'다.
창의문 인증터
인증지에는 숙정문이지만 인증은
창의문에서 하게 되여 있다.
오늘은 여기까지
이곳에서 가까운
문화탐방대장정의 인증하는 곳이
두군데
인왕산 백운동천 바위글씨앞과
경복궁 경회루를 보고
광화문 광장에서 마무리다.
경회루(慶會樓)는
경복궁 근정전 서편에 위치한 누각으로,
왕이 신하들과 연회를 베풀거나 사신을 접대하고,
가뭄이 들면 기우제를 지내는 등 국가 행사에 사용하던 건물이다.[1]
연못 안에 석재 기단부, 정면 7칸, 측면 5칸의 목조 중루(重樓)와 팔작지붕을 갖춘 무출목
이익공계(二翼工系)의 구조이다.
기둥 상부 주두(柱枓) 아래 날개처럼 생긴 공포 두 개를 두고
그 위에 보가 얹히도록 한 양식이다.[2]
단일 건물로서 대한민국에 현존하는 가장 큰 전통 목조 건축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