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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초기 복원
많은 사람들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을 액자로 봐서 그런지 이것을 하나의 캔바스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벽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에 1493년부터1497년가지 약 4년에 걸쳐, 그러니깐 제1밀라노 시대에 그려진 벽화이다. 벽화이다보니 그 보존이 만만치가 않았다. 자연적인 풍화및 탈색 등으로 인해서 거듭 손상에 직면하다가 18세기 들어서 처음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당시 복원작업은 후일에 계속해서 거듭되는 복원작업들의 잘못된 밑그림이 되고 말았다. 예컨대 1726년 Michelangelo Bellotti는 부식화 용제로 그 벽화를 닦아낸 후에 오일과 니스로 덮어버렸는가 하면 1770년대의 Giusseppe Mazza는 전임자들이 해놓은 것을 다 지우고는 다시 오일을 사용하여 원화보다 더 재채색을 하기도 했다.
EARLY RESTORATION Althought Leonardo's Last Supper had faced progressive deterioration since it had been completed, the earliest recorded restorations are in the eighteenth century. These restorations were based on the false premise that the painting was executed in an oil medium. Thus, Michelangelo Bellotti, in 1726, after cleaning the mural with caustic solvents, covered it with layers of oil and varnish. While in 1770, Giusseppe Mazza removed his predecessor's work and repainted much of the original again in oil. Understandably these treatments came under much fire and following restorers intervened by also repainting and trying to recreate Leonardo's original, rather than preserving it. A new stage in the Last Supper's history was reached in 1853 when Stefano Barezzi first tried to detach the painting from the wall. After failing to do so, he attempted to consolidate the painting by gluing the paint fragments to the base. Additionally, scientific studies of the mural were initiated at this time. However, the era of inept restorations ended only in the twentieth century, when a more responsible attitude developed. In 1903 Luigi Cavengahi began a careful study of the Last Supper using large-scale, detailed photographs as an aid. He established for the first time that the painting was executed in tempera, not oil. Between 1906 and 1908 he cleaned the paint surface and retouched missing areas. Although he removed grime and glue, he left a considerable amount of the repaint untouched. In 1924, restorer, Oreste Silvestri, further removed grime from the painting. On August 15, 1943, a bomb nearly destroyed the refectory, but the northern wall where the painting resides was braced and sandbagged as a precaution, and thus survived. However, for one year the painting had to face harsh conditions since the refectory was not repaired immediately. In 1947-1949, Mauro Pelliccioli proceeded to give the painting another cleaning and reintegration necessitated by its mildewed condition. The restorer anchored the paint using a shellac as a fixative, rather than dirt-collecting, water-soluble glue. He then cleaned the painting and lightened the tonality of the mural. Without his efforts, even less of the Last Supper would remain today. RECENT RESTORATION The most recent restoration of Leonardo's Last Supper was completed in May 1999. Work on this most recent restoration began in 1979 to repair areas where paint had flaked away, and quickly expanded to uncover fragments of the original painting covered by repainting from the above "early restorations." Pinin Brambilla Barcilon has conducted this latest restoration of Leonardo's Last Supper under the auspices of Milan's Superintendent for Artistic and Historic Heritage. She is a renowned restoration artist who made use of various new technologies to bring life back into Leonardo's masterpiece. Brambilla's task was first and foremost to stop further deterioration. Chemical analysis suggested that the over-painting which remained, was still eating away at Leonardo's original paint, and areas that were flaking away were taking parts of Leonardo's work with it as well. So, she decided the most pressing project was to remove everything that had been added after Leonardo finished the painting in 1498. The restoration therefore demanded accuracy at the micron level, and attention to the smallest details. Microscopic pictures were utilized to magnify most areas of the painting. Such pictures demonstrated how mold, glue, repaint, and smog collected on the painting while infrared reflectoscopy enabled restorers to see the artist's original painting under layers of paint. Small diameter coring surveys also were performed. Samples taken from the corings were analyzed in laboratories to provide information on colors and materials utilized by Da Vinci. Miniature TV cameras inserted in the boreholes also provided information on the cracks and cavities. Sonar and radar surveys were also taken to provide information about the elastic and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masonry and base that the painting resides upon. Therefore using the above technologically advanced techniques for analysis and employing the use of solvents to remove multiple layers, Pinin Brambilla faced an extremely slow and meticulous process. Often, only an area the size of a postage stamp was cleaned each day. The twenty year project has proved to be quite successful however. Once referring to Leonardo's Last Supper as a sick patient, Brambilla has proclaimed that she and her colleagues have been able to give back a reading of the dimensions, "of the expressive and chromatic intensity that we thought was lost forever." Brambilla, besides letting the original colors come through, added some basic color to blank areas in a way that the addition cannot be confused by the viewer with the original color. In certain areas, blank spots were left and not even painted over. Most importantly, the restorer believes that the luminosity of the original painting has been regained. Leonardo's Last Supper was reopened to the public in May 1999. The painting is now preserved by a sophisticated air filtration system, moistured monitored environment, and dust-filtering chambers. Visitors must make reservations and groups are limited to 25 people for viewing times of only 15 minutes. CONTROVERSY The most recent restoration, which took more than five times as long as Leonardo's execution of the painting, has been trumpeted by many but also condemned by many in the art world. Critics, chiefly American and English, call Brambilla's removal of earlier restorations unnecessary and destructive, erasing fragments that might have been faithful to the original. James Beck, Art History Professor at Columbia University in New York, has been a prominent critic of the restoration. He has called it 18 to 20 percent Leonardo, and 80% the work of the restorer. Beck maintains that the areas that have been painted by Brambilla's watercolor essentially repaints the masterpiece. He asserts that the painting does not represent a conservation of what remains of Da Vinci's original, but represents a repaiting of a work that doesn't even have an echo of the past. Even Martin Kemp, Professor of History at Oxford and world expert on Leonardo, questions Brambilla's decision to fill in some of the gaps of the painting with similar tones of water-colors. Although there are a number of critics, many have praised Brambilla's work. This is a topic to be debated in years and decades to come since it will never be certain as to whether the current state of the painting remains faithful to Leonardo Da Vinci's masterpiece or not. |
[6] 최후의 만찬이란 없다.
이상 벽화의 기술 자료 원문에서 살핀 바와 같이 고작해야 원작자의 10여 퍼센트만 남은 그림을 가지고서 '코드'를 운운한다는 것은 실로 웃음꺼리요, 사기극이 아닐 수 없다. 「다빈치 코드」가 주장하는 '익명의 손'이나 '여성으로서의 요한'도 아래 이미지 비교에서 계속 밝히겠지만, 우선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리페인팅(repainting)'이냐 '리스토어링(restoring)'이냐의 차이다.
후자는 원래 있던 자리에 새것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지만, 전자의 리페인팅은 완전히 아예 싹 다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제아무리 좋은 기술 제아무리 섬세한 기술과 과학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최후의 만찬이 레오나르도의 원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탈리아 국가적으로 보나 미술 학계 자체로 보나 그 그림을 매개로 하는 상술에 불과할 따름이다.
[7] 이미지 대조
가장 심하게 변형된 부위는 예수님 부위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풍체뿐만 아니라 입술, 식탁 위의 메뉴까지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의 성(性)의 바뀜이라든가 전체적인 색감의 변조는 「최후의 만찬」를 다빈치의 마스터피스 자리에서 끌어내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다빈치 코드」는 이 복원으로써 본래의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찾았다고 주장 하지만 어떠한 신빙성도 없다. 이미 위의 기술적인 원문에서 공정하게 언급되었다시피 작금 현세에 와서 레오나르도의 진짜 본래 원화는 사실상 찾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설령, 첨단 기구를 이용해서 평면적인 라인은 투사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그 투사 장치가 요한의 가슴 볼륨까지 투사했겠느냐는 얘기다. 가슴의 볼륨은 평면 투사로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표현 부위가 결코 아니다.
여러분이 당대의 복원가라고 가정해보자 원화의 라인을 추적해가다보면 명백한 원화 라인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100이면 100다 찾아지겠냐는 것이다. 가령 한 두 부분에서 이 라인이 다빈치의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부위를 맞닥뜨리면 어쩔텐가. 무엇이든 한 라인은 택일을 해야하는 데, 또 그들이 실제로 택일을 해낸 그림이 오늘날의 이 그림인데,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의 신뢰를 따고 들어가는 이 포스트에 대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이거다!'라는 반전에 우선 성공을 하고 아울러 그 드라이브에 난잡한 오/위경을 태우는 절묘함의 극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밝혔듯이 1493년 초기 원화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전세계가 레오나르도의 벽화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원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찾을 길이 없건만 한낱 위경이나 비밀문서 따위일까 보냐! 이미 지난 사설「트루먼쇼와 매트릭스」(2002.3.3)에서 언급했다시피 이런 류의 저작물들은 고도의 매체 전술에 불과하다.
복원 전 |
복원 후 |
- 예수님의 다문 입술 -전체적으로 풍체가 넓다. -접시에 음식이 있다. |
-예수님 입이 열려있다. -전체적으로 풍체가 날씬하다. -접시의 음식이 없어졌다. |
-복원전 요한은 남자 |
-복원 후 性이 바뀌어 여자가 돼버린 요한 -얼굴만 변한 게 아니라, 가슴도 부풀어 오름 |
복원 전 컬러 톤 |
복원 후 완전히 달라진 컬러 톤 |
바돌로매 |
야고보2 |
안드레 |
유다 |
베드로 |
요한 |
예수님 |
도마 |
야고보 |
빌립 |
마태 |
다대오 |
시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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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결론
트루먼쇼나 메트릭스 이후에 거듭 생산되는 이러한 방식의 접근은 이젠 어엿한 쟝르화로 자리잡은 듯하다.
특히 One이 니오(Neo)의, AMON LISA가 모나리자(Monalisa)의 숨겨진 코드라는 등의 병적일 정도로 에너그램에 집착하는 이들 쟝르의 생리적 특성은 「다빈치 코드」나 「메트릭스」 모두 동일하다.
「다빈치 코드」에서 예수의 후손으로 나오는 '메로빙거' 는 「메트릭스」에서 '메로빈지언' 으로 탈바꿈 해서 등장하고(둘다 프랑스인이며 메시야 계보로 등장) 그런가하면 또 다빈치 코드가 '예수는 죽은 후 부활하지 않고 대신 후손을 남겼다' 라는 고대 이단의 색채를 마치 정설인양 그대로 인용하고 있듯이 메트릭스 상에서의 메시야인 니오(Neo)는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다시 부활해서 살만도 한데 죽음으로써 끝을 맺는다. 게다가 흥행 미국 영화는 전례상 반드시 해피엔딩이 아니면 흥행에 실패할 위험이 있는데도 유독 메시야 Neo를 죽임으로써 끝을 맺는다.
무엇이 무엇을 카피했는지 아니면 그들 모두가 하나 같이 특정 고대 이단적 색채관을 그대로 추종하는 크리티브들인지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새삼 새로울 것이 없는 80여권에 달하는 복음 위경들이 현대에 와서 마치 새로운 발굴인양 '문화'라는 중무장을 하고 복원 돼 쏟아져 나오는 현상은 범상치가 않음에 틀림이 없다.
책에서 언급하고 있듯이 오늘날의 복음서는 단 4권으로 전해내려 오지만 1~2세기 언저리에는 80권 아니, 80권만 되었겠는가, 셀 수도 없이 많은 예수의 전기서들이 쏟아져 나왔을 텐데, 그게 오늘 날까지 전해내려 왔다면?, 그리스도교의 판도는 아마 달라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책 「다빈치 코드」가 스스로 자인 하듯이 카톨릭이라는 하나님의 역사적 장치는 이것들을 모두 죽이고 소각했다. 당대 神正의 의미로 봤을 때 어쩌면 의인도 죽어나갔을런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의인들뿐만 아니라, 일고의 가치도 없는 사악한 오/위경들도 모두 죽임 당하고 불태워졌다라는 것이 바로 하나님 경륜 아래서의 역사적 사실 구도이다.
神正, 그렇다고 하나님의 의에 손상이 오는가? 그런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단지, 그분의 섭리와 경륜의 경계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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