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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
제 1 장 성령의 은사란 무엇인가?
고전12:8-10
은사(은사 ; Spiritual Gifts)란 말은 헬라어 카리스마로서 영적 은사, 또는 은혜의 선물이란 뜻으로 그 무엇이든 사람의 공로가 아닌,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호의, 기증, 은혜, 직무 등을 일컬어 말합니다. 즉 인간은 받을 만한 자격이 없으나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신 것으로,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는 얻을 수 없고, 또한 값을 지불할 수도 없는 은혜를 말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은사란 하나님의 은사가 나타남은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영적인 직능을 쉽고 효율적으로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주어진 능력이나 기술이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모두 여섯 군데에 영적 은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고전12:8-10)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
(고전12:29-30)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30)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롬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
(엡4:11)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
(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여기에서 보듯이 벧전만 제외하면 사도 바울만이 은사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은사는 성경에서 단수로 쓰일 때는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구원을 말합니다.
(롬4:16)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롬5: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롬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은사는 기독교인으로 하여금 교회에서 그의 말은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합니다.
(고전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
그리고 특별 은사는 교인으로 하여금 교회에서 특수 사역을 수행할 수 있게 합니다.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이러한 은사는 구원받는 순간에 주어지는데 이것은 반드시 성령 충만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한 기독교인이 죄 가운데 빠져들 때는 성령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렇다고 그가 받은 영적 은사들도 모두 소멸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비로우시다는 사실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여기에서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은 '최소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나타나는 은사는 3가지로 구분됩니다.
첫째는 말씀의 은사(사도, 예언자, 복음전도, 목사, 교사, 가르치는 것),
둘째는 봉사의 은사(다스리는 것, 권고하는 것),
셋째는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영들을 분별함, 기적, 병 고침, 방언, 통역의 은사)로 구분됩니다.
이 3가지의 은사는 각각 다른 것들에 비해서 우월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말씀의 은사는 성격상 공공적이며, 그리고 말씀의 사역과 관련이 되어있으며, 다른 은사에서는 볼 수 없는 '권위'를 가지고 일을 수행해 나갑니다. 봉사의 은사들은 대체로 개인적인 차원에 속하는 은사로 이 은사들은 몸에 힘을 불어넣고 감화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능력을 나타내는 은사들은 자연적인 것을 넘어서는 것으로서 초자연적인 성격을 띠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은사들은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이 은사로 나타나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며 또한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누구나 은사의 나타남이 있는 특권이 있습니다.
(고전12:8-11)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딤후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
라고 말하였습니다. 여기에서 큰집은 교회를 의미하고 그릇들은 은사의 범주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네 개의 범주를 여기에서 말하는데, 첫째 금 그릇은 말씀의 범주를, 둘째 은그릇은 지도력의 범주를, 셋째 질그릇은 능력의 범주를, 넷째 나무그릇은 봉사의 범주를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외에도 특수한 은사의 범주가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다섯 가지 범주에 몇 개의 은사가 각기 속해있습니까? 물론 성령의 은사가 구체적으로 몇 가지나 되는가에 대하여 성경학자들 간에 의견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살펴보면 아래와 같습니다.
①봉사의 범주: 서로 도움(고전12:28)⇒남 섬김(롬12:7)⇒구제(롬12:8)⇒긍휼(롬12:8)⇒손 대접(롬12:13)
②능력의 범주: 능력(고전12:10,12:28)
병 고침(고전12:9, 12:28)⇒영분별(고전12:10)⇒방언(고전12:10,고전12:28)⇒통역(고전12:10)
③지도력 범주: 지혜의 말씀(고전12:8)⇒지식의 말씀(고전12:8)⇒믿음(고전12:9)⇒다스림 (고전12:28롬12:8)⇒권유(롬12:28)
④말씀의 범주: 사도(고전12:28,엡4:11)⇒예언자(고전12:10롬12:6엡4:11)⇒복음전도자 (엡4:11)⇒목사(엡4:11)
⇒교사(고전12:28,롬12:7엡4:11)⇒선교사(행11:22)
⑤특수: 독신(고전7:7-8)⇒순교(고전13:8)⇒신령한 노래(엡5:19,골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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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님은 은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이렇게 20여개가 되는 은사를 성령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적절히 나누어 주시고 성령님의 나타남으로 일하십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다스림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병 고침의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구제의 은사로 역사하십니다.
이러한 성령의 은사는 균등하게 분배되는 것이 아니라 상이하게 분배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또한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달란트 비유가 이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어떤 주인이 타국에 갈 때 한 종에게 다섯 달란트를, 다른 한 종에게는 두 달란트를 그리고 마지막 종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었습니다. 이렇게 성령은 자기의 뜻대로 각자에게 그 나름대로 성령의 은사를 상이하게 분배하시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 교인은 한 사람이 한 두 개나 혹은 그 이상의 성령의 은사로 쓰임을 받습니다. '나는 은사가 없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는 아직 자기의 은사를 발견하지 못했을 뿐, 받지 못한 것은 아닙니다. “받는다.”는 의미를 잘못 이해하면 내가 하나님께 은사를 받아서 쓰는 내가 주인 되는 오류에 빠지고 맙니다. “받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이 그릇대로 그의 자녀로 성령의 나타남 그 자체를 “받는다.”라고 말합니다.
또한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은사의 나타남에는 근본적으로 차별이 없다는 것입니다. 물론 금 그릇에 속하는 은사는 희귀하게 쓰이고, 나무그릇에 속하는 은사는 빈번하게 쓰입니다. 그러나 성령님이 정해주신 일정한 목적을 위해서는 모든 은사가 다같이 요긴한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론 자 한스 큉은 '모든 은사는 결과에 있어서 동등하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 받고 다섯 달란트 더 번 종에게나, 두 달란트 받고 두 달란트를 더 번 종에게나, 주인은 다같이 '착하고 진실된 종아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하라'고 같은 평가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습니다.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니라.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고전12:20-22).
그러므로 은사에 있어서는 열등감과 우월감은 절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나타남을 사모해야 합니다.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가 신앙의 척도는 아닙니다.
(딤후2:20)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우리는 타인의 신앙의 정도를 은사의 나타남의 유무로 판단하여 버릴 때가 많습니다. 과연 그렇습니까? 병 고치는 은사나 방언의 은사만 은사이고 다른 은사는 은사가 아닙니까? 그같은 은사를 행해야만 신앙이 좋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이 별 볼일이 없는 것입니까? 내가 갖고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서도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은사를 신앙의 판단의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1.성령의 은사는 동등합니다.
성령의 은사는 여러 가지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원어로 보면 카리스마는 가리스마타(karismata는 복수형입니다. 은사는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뿐이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이는 것도 잇고 천히 쓰이는 것도 있나니”(딤후2:20)라고 말씀하십니다. 큰 집은 교회이고 그릇은 은사의 범주를 의미합니다.
성령님은 은사의 주관자이십니다. 주방에서 주방장이 음식에 따라 그릇을 정하여 식탁에 내어 놓듯이 주방장은 성령님이십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우리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바로 은사입니다. 그런고로 그 나타난 은사는 같은 성령님의 역사로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모두 동등합니다. 성령님의 은사는 균등하게 배부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뜻대로 상이하게 분배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다가 보니 차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입니다. 달란트비유를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그런고로 우리는 나에게 은사가 없다고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은사를 발견하고 개발하고 훈련시키지 못하였기에 땅 속에 묻혀 있는 것과 같은 상태입니다. 모든 은사에 있어서는 결과에 동등하다고 교회학자인 한스킹 박사는 말씀하셨습니다. (고전12:20-22)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21)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데 없다 하거나 하지 못하리라 (22) 이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우월감도 열등감도 다 잘못임을 알아야 합니다.
2.은사는 도구입니다.
성경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요1:12-13)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롬3:28)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롬5:1)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신앙으로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은 구원은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은사도 선물인 것입니다. 성령님은 은사의 분배자이십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하여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선물로 은사가 나타남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말씀의 실제의 역사를 경험함으로 말씀이 확증되는 산역사가 은사의 나타남입니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 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고전14:12)
성령의 은사는 교회의 건덕을 위한 도구입니다.
성령으로 신앙을 판단하면 성령으로 성령을 난도질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은사는 결코 신앙을 심판하는 전가의 보도가 되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3.은사는 말씀의 현제성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초월할 수 없습니다. 성령의 은사는 말씀의 실제의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은사는 그 자체에 절대적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의 나타남입니다. 교회의 건덕을 위한 도구로써 말씀에 매여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말씀에 매여 있지 않다면 그러한 은사들은 지나친 열정과 광신에 빠져 궤도를 이탈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교회에 “성령을 소멸치 말며 예언을 멸시치 말고” 라고 격려한 다음에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살전5:19-21)고 경고하였던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넘쳐 사분오열되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제로 은사가 넘쳐서 사분오열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속사람이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어린아이 신앙이었던 까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은사가 나타나면 철저하게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 속사람이 장성한 그리스도의 신부로 성장해야 합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은사로 인하여 도리어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 하게 되고 불법 자가 되고 맙니다.
(고전3:1-3) 형제들아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2) 내가 너희를 젖으로 먹이고 밥으로 아니하였노니 이는 너희가 감당치 못하였음이거니와 지금도 못하리라 (3) 너희가 아직도 육신에 속한 자로다 너희 가운데 시기와 분쟁이 있으니 어찌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이 아니리요
(마7:22-23)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고전14:37)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1)말씀이 마음에 있고 생각에 기록되어 성령 안에서 순종할 때 은사는 결코 자신을 나타내는 자랑거리거나 남을 판단하는 비교의 선물이 아닙니다.
(히10:16-17)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이렇게 말씀이 마음에 있고 생각에 기록되어 순종의 삶을 사는 자는 결코 자기를 절대시하고 남을 도외시하며 더 나아가 남의 신앙을 심판하는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2)말씀에 순종할 때 나타나는 은사로 인하여 불법의 죄나 자기만 최고라는 독선에서 벗어나 분파작용의 과오를 범하지 않습니다. 카리스마는 교회 안에서 지위나 권력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 쉽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으며..”(고전1:13)그렇습니다.
모든 지체는 나누어질 것이 아니라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3)말씀에 순종할 때 은사는 개인주의에서 생기는 무질서와 혼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말씀으로 인하여 속사람이 성장하지 못하고 오직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만 추구하면 이 은사로 인하여 도리어 혼란과 무질서를 야기하기 쉽습니다. 왜 그러합니까?
말씀의 실제의 역사가 은사이기 때문에 실제의 역사를 눈으로 보고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하여 속사람이 성장하지 못한 신앙은 이것이 마치 자기공로인양 자기가 영광을 취하기 때문입니다.이는 철저하게 깨어지지 못한 옛사람으로 인한 결과입니다. 옛사람의 주체가 무엇입니까? 자존심과 이기주의입니다.
뭔가 자기를 나타내려는 이기주의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도적질하기 때문입니다. 그런가하면 남이 알아주지 않으면 자존심이 상하여 마치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를 자기 맘대로 하는 양 거드럭거리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고전14:33)하였습니다. 은사는 말씀에 따라 자기의 위치를 지킬 때 질서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4)말씀에 순종하는 삶속에 은사는 완성에 이르게 됩니다.
은사의 나타남으로 온전함에 이르는 길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그리스도의 심장과 예수의 마음으로 은사의 나타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바울은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전12:31)고 하였습니다.
그 큰 은사가 바로 아가페의 사랑가운데서 행해지는 은사입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마음에 부은바 된 자는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를
그 목적에 알맞고 정당하게 쓸 수 있는 성숙한 영적 사람입니다.
성령의 은사는 이러한 성숙한 영적 사람에 의하여 완성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빌1:8)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제 2 장 지금 내게 역사하는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는 무엇일까요?
(고전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고전12:18)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엡4:7)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고전12:27)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1.내게 성령으로 말미암아 역사하는 은사는 무엇입니까.?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시느니라”(고전12:11)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주셨다”(고전12:18)
1)내개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를 발견하는 기본조건
①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의 지체들에게만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②성령의 은사를 발견하기 전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사를 허락하여 주셨다는 것을
먼저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음을 믿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은사가 어떤 것인지를 발견하고자 하는 기쁜 기대감을 가져야 합니다.
③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심은 어떤 직무를 수행하시기를 바라시기 때문임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여 일하고자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④주신 은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2)은사를 발견하는 5단계
①성경이 말씀하시고 있는 성령의 은사는 무엇, 무엇인지를 배우고 또
나로 나타나는 성령의 은사가 더욱 강력하게 역사할 수 있도록 헌신하고
주님께 온전히 쓰임을 받아야 합니다.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은사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②교회로부터 어떤 일을 맡으라는 요청이 있을 때 순종하여 일을 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어떤 은사를 주셨는가를 깨달아 알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합니다.
③우리에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여 일을 하게 될 때에는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니 어떤 일을 할 때에 큰 즐거움과 보람을 느꼈는가를 확인하면서
그가 주신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④성령의 은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선한 결과를 나타내도록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기
때문에 일의 결과를 보아서 주신 은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⑤성령의 은사는 교회 안에서 확증되는 것이므로 교회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가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옳습니다.
2.은사가 아닌 것은?
①선천적인 재능과는 질적으로 다릅니다.
②성령의 열매와는 다릅니다.(갈5:22-23)
③성령의 은사는 그리스도인의 사명과 관련된 것이고,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인격형성과 관련된 것입니다. 은사에 열매는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④성령의 은사와 거짓 은사를 구별하여야 합니다.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
⑤이로 미루어 보아 사단도 모든 은사를 모방합니다. 그런고로 미혹되게 합니다.
3.내게 주신 은사를 어떻게 발전시킬 수 있습니까?
그 은사로 무엇을 어떻게 행하였는가에 따라 심판의 때에 상도 받고 책망도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은사를 효과적으로 사용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디모데에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십시다.
“(딤전4:14)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 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은 것을 조심 없이 말며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주신 은사의 발전을 위하여-
① 하나님의 말씀에 착념학고 은사에 관하여 체계적으로 공부하여야 합니다.
②목회자가 교인들에게 허락된 성령의 은사가 무엇인지를 발견하고 이것을 알려줌으로써
은사를 받은 대로 교회를 섬기게 해야 합니다.동기를 부여하고 또 기회를 부여하여야 합니다.
③목회자는 성령의 은사를 사용하여 할 일에 대하여 목표를 정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이럴 때 은사는 지속되고 책임감을 갖게 됩니다.
④목회자는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은사와는 다른 은사를 받은 목회자들을 가끔 초대하여
교인들로 하여금 그들의 은사를 발전시켜 나가는 일에 도움을 주는 것이 좋습니다.
“주신 은사를 따라 주의 몸 된 교회를 섬기십시오.”
성령의 나타남은 은사이며, 그 은사가 임할 때 치료받고 능력의 역사가 일어난다고
성경은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들을 때는 건강을 주시고
불순종할 때는 시험과 환난과 질병을 내렸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출15:26)
(출15:26) 가라사대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청종하고 나의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의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 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
하나님은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니라”라고“야훼 라파”
치유의 하나님이시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 들린 놋 뱀의 사건에서
모든 원수의 일을 진멸하셨습니다.
(민21:4) 백성이 호르산에서 진행하여 홍해 길로 좇아 에돔 땅을 둘러 행하려 하였다가 길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민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고 이곳에는 식물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박한 식물을 싫어하노라 하매 (민21:6)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민21:7)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하므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민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 (민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마다 놋뱀을 쳐다본즉 살더라
불 뱀에 물린 자들이 장대에 높이 달린 놋 뱀을 쳐다보면 살아나듯이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면 모두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대속의 은총은 치료의 은총입니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입었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이사야53:4)
평화를 얻고 나음을 입기 위하여 우리는 성령의 은총을 입어야 합니다.
제 3 장 성령의 나타남으로 우리의 영적생활에 어떤 축복이 있습니까?
1.성령이 나타나남으로 구원의 역사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구원의 사역입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선포하시고 제자들을 모아 가르치시고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며 마을 마다 들어가 복음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막1:14-39)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막1:15) 가라사대 때가 찼고 하나님 나라가 가까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6)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던지는 것을 보시니 저희는 어부라(막1:17)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를 따라 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막1:18)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좇으니라 (막1:19)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저희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막1:20) 곧 부르시니 그아비 세베대를 삯군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가니라 (막1:21) 저희가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막1:22) 뭇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막1:23) 마침 저희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질러 가로되 (막1: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막1:25) 예수께서 꾸짖어 가라사대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막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으로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막1:27) 다 놀라 서로 물어 가로되 이는 어찜이뇨 권세있는 새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을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1: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막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막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웠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의 일로 예수께 여짜온대 (막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떠나고여자가저희에게수종드니라(막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막1:33) 온 동네가 문앞에 모였더라 (막1:34) 예수께서 각색 병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어 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지 아니하시니라 (막1:35)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막1: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막1:37) 만나서 가로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막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1:39) 이에 온 갈릴리에 다니시며 저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고 또 귀신들을 내어 쫓으시더라
구원은 무엇입니까?
1)죄로 부터의 해방입니다.(save)
2)병든 상태를 치유하는 것입니다.(healing)
3)위험한 상태로 부터의 구출입니다.(rescue)
4)파멸이나 죽음으로 부터의 보존입니다.(preserve)
5)악한 질병으로 부터 해방시킴으로 영 혼 육이 온전하여 지는 것입니다. (make whole)
실로 복음이 선포되는 곳에 위와 같은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선포되어 병 고침의 현상이 나타났다면 그곳에 죄로 부터의 해방과 파멸이나 죽음으로 부터의 보존 즉 영생이 이루어진 것이요 악의 세력을 정복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입니다.
2.성령이 임하면 권능을 받고 성령의 나타남으로 말씀의 실제의 역사 은사가 나타납니다.
비온 뒤에는 땅이 젖어 있습니다. 붉은 잉크를 쏟았으면 그곳은 붉게 물들게 되어 있는 것이 자연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령이 임하였으면 그 능력이 어떤 현상으로 분명하게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1)성령의 나타남은 말씀의 현제성과 아울려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십니다.(하나님의 일하심)
루스드라의 앉은뱅이를 일으킨 바울과 바나바를 보고 바나바는 쓰스, 바울은 허매라고 하여 신격화하여 섬기려고 하였습니다.(행14:8-18) 메레데섬의 토인들은 바울이 뱀에 물려도 죽지 않으니 두려워하였습니다. 보십시오. 이같은 사실을 경이로운 사건으로 경탄하여 마지못할 것이나, 이는 신령한 사실을 몰랐기에 모르기에 오히려 오해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적 사실을 알아야 온전한 이해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2)성령의 일하심이 곧 능력의 역사요 실제의 사역입니다.
(히2:1-4) 그러므로 모든 들은 것을 우리가 더욱 간절히 삼갈지니 혹 흘러 떠내려 갈까 염려하노라 (2) 천사들로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들과 순종치 아니함이 공변된 보응을 받았거든 (3)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4)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 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표적과 기사, 이적의 근원은 내가 아니요 (고전12:4)성령님이십니다.(행1:8) 주의 힘이 속사람으로 일하고 말씀 안에 있는 생명으로 성품화 되어 말씀이 실제로 일하는 현장이 넘칠 때 성령 충만의 역사를 누리고 경험하게 됩니다. (행4:8-22,14:3)주의 은총이 임할 때 성령권능이 임할 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3)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는 곧 능력입니다.
성령님이 우리 안에 내주하시면 은사가 나타납니다. 내주하신 성령께서 우리들의 영 혼 육을 뚫고 역사하시도록 제한하지도 말고 소멸치도 말고 근심하게도 말고 모든 장애요인을 제거하여야 하겠습니다.
4)성령께서 나를 사용하시도록 합시다. 그때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나의 지성소인 나의 영에 거하시는 성령께서 휘장을 찢고 성소인 혼의 자리에서 성전 뜰인 육의 자리로 나아와 영력, 능력, 실력이 나타나 내가 성령의 도구로 쓰임 받는 자리로 나아갑시다. 이처럼 능력이 나타날 때 영 혼 육에 치료가 임하고 각양 은사가 나타나고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행14:8-18) 루스드라에 발을 쓰지 못하는 한 사람이 있어 앉았는데 나면서 앉은뱅이 되어 걸어 본 적이 없는 자라 (행14:9) 바울의 말하는 것을 듣거늘 바울이 주목하여 구원받을만한 믿음이 그에게 있는 것을 보고(행14:10) 큰 소리로 가로되 네 발로 바로 일어서라 하니 그 사람이 뛰 어 걷는지라 (행14:11) 무리가 바울의 행한 일을 보고 루가오니아 방언으로 소리질러 가로되 신들이 사람의 형상으로 우리 가운데 내려오셨다 하여 (행14:12) 바나바는 쓰스라 하고 바울은 그 중에 말하는 자이므로 허메라 하더라(행14:13)성밖 쓰스신당의 제사장이 소와 화관들을 가지고 대문 앞에 와서 무리와 함께 제사하고자 하니 (행 14:14) 두 사도 바나바와 바울이 듣고 옷을 찢고 무리 가운데 뛰어 들어가서 소리질러 (행14:15) 가로되 여러분이여 어찌하여 이러한 일을 하느냐 우리도 너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이라 너희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 헛된 일을 버리고 천지와 바다와 그 가운데 만유를 지으시고 살아 계신 하나님께로 돌아 오라 함이라 (행14:16)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행14:17)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음식과 기쁨으로 너희 마음에 만족케 하셨느니라 하고(행14:18)이렇게 말하여 겨우 무리를 말려 자기들에게 제사를 못하게 하니라
(고전12:4)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행1: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행4:8-22) 이에 베드로가 성령이 충만하여 가로되 백성의 관원과 장로들아 (행4:9) 만일 병인에게 행한 착한 일에 대하여 이 사람이 어떻게 구원을 얻었느냐고 오늘 우리에게 질문하면(행4:10)너희와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알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이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렛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건강하게 되어 너희 앞에 섰느니라 (행4:11)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행4:12) 다른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 음이니라 하였더라 (행4:13) 저희가 베드로와 요한이 기탄없이 말함을 보고 그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그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행4:14)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섰는 것을 보고 힐난할 말이 없는지라 (행4:15)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가로되 (행4:16)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꼬 저희로 인하여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행4:17)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저희를 위협하여 이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행4:18) 그들을 불러 경계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 하니 (행4:19) 베드로와 요한이 대답하여 가로되 하나님 앞에서 너희 말 듣는 것이 하나님 말씀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행4:20)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행4:21) 관원들이 백성을 인하여 저희를 어떻게 벌할 도리를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러라 (행4:22) 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 여 세나 되었더라
(행14:3) 두 사도가 오래 있어 주를 힘입어 담대히 말하니 주께서 저희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사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거하시니
3.파네르시스(성령의 나타남)를 사모합시다.
“은사(카리스마타)는 여러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임(디아코니아)은 여러가지나 주는 같으며 또 역사(에네게마타)는 여러가지나 주는 같으며 모든 것을 모든 사람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으나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파네르시스)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4-7)
(고전12:8)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고전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고전12: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고전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이제 우리는 성령의 나타남은 우리의 신앙에 유익함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임을 알았습니다. 이 뜻을 따라 우리에게도 성령께서 나타나실 수 있도록 새로운 결단을 갖고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해야 합니다. 주님은 그 뜻대로 우리에게 은사를 나누어주십니다. 믿음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절대적인 주권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인간 편에서 보면 순종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성령님의 입장에서 성령의 기름부음은 나누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인간 편에서 보면 성령의 나타남이라고 표현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어지다”의 헬라어“디도타이(didotai)”는 현재의 계속적인 긴장상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성령의 나타남은 단 한번 주시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몇 번이고 계속해서 나타나심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님의 나타남은 분명 한사람에게 한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조건과 상태에서 계속적으로 나타나는 것이니 열심히 사모하고 조건과 상태를 유지하여 성령의 기름부음을 통하여 성령의 나타남이 나날이 강하게 임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큰 은혜 속에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고전12: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제 4 장 우리의 속사람을 성령의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시고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는
1.은혜의 선물입니다.
카리스마타로 은사입니다.
여러 가지 은사의 근원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간절히 사모하여 속사람이 성령의 나타남으로
강력하게 주님께 쓰임 받도록 해야 합니다.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주어(롬1:11)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함이 없느니라.(롬11:29)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고전1:7)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고후1:11)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불일듯(딤후1:6)
(롬1:11)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함이니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고전1:7) 너희가 모든 은사에 부족함이 없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의 기도로 얻은 은사를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딤후1:6) 그러므로 내가 나의 안수함으로 네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다시 붙일듯하게 하기 위하여 너로 생각하게 하노니
2.신령한 직책입니다.
은사가 직책으로 사용되는 경우에 디아코니아입니다.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롬11:13)
주 안에서 받은 직분(골4:17)/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딤전1:12)
네 직무를 다하여라.(딤후4:5)
(롬11:13)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딤전1: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딤후4:5)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근신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3.신령한 역사가 나타납니다.
은사가 힘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나 작용하는 결과로 에네게마타 라고 합니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골1:29)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골2:12)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엡4:16)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골1:12)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엡4:16)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4.성령의 나타남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님이 각 사람의 영 혼 육을 뚫고 나타남을 말할 때 파네르시스라 합니다.
성령의 기름부음 즉 흐름의 결과로 “지혜나 지식의 말씀”을 받게 되거나
가르침을 받고 알게 되며(요일2:20-27)방언과 예언과 통변을 하게 되고
이러한 기름부음이 환자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전이 죽 안수시 치유가 일어나거나
능력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요일2:20-27)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24)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아들의 안과 아버지의 안에 거하리라 (25)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26) 너희를 미혹케 하는 자들에 관하여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썼노라 (27) 너희는 주께 받은 바 기름 부음이 너희 안에 거하나니 아무도 너희를 가르칠 필요가 없고 오직 그의 기름 부음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치며 또 참되고 거짓이 없으니 너희를 가르치신 그대로 주 안에 거하라
저희에게 나타나시나니(막16:12)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막16:14)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고 함이라(요3:21)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9:3)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도다.(요17:6)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요21:1)
(막16:12) 그 후에 저희 중 두 사람이 걸어서 시골로 갈 때에 예수께서 다른 모양으로 저희에게 나타나 시니
(막16:14) 그 후에 열 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 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요3:21)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요9: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니라
(요17: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요21:1)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으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안개 속에서 안개가 걷히면 사물이 분명하게 나나듯이 은사의 나타남이
우리로 하여금 신령한 세계를 분명하게 합니다.
고전12:7의 은사는 특별하게 어떤 사람에게만 주어진 것이 아니라(디아코니아)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에게는 누구에게나 내중하시는 성령께서 기름 부음의 (흐름)결과로
인간의 영 혼 육을 뚫고 수시로 나타난다(파네르시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나타남은 각 사람의 기질과 영성에 따라 “나타남”의 형태나
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요 어떤 조건과 상태에서 나타난다고 보는 것이 상식인 것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은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말씀과 기도로 거룩함의 영적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기도는 무엇입니까?
바론 은사의 즉 성령의 나타남과 훈련의 과정이며 방편이 곧 기도인 것입니다.
은사는 크게 사모하고 부르짖고 구하며 찾고 두드리는 자에게 주시고 나타납니다.
기도하고 말씀에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자에게
강력한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영을 분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약3:13-18) 너희 중에 지혜와 총명이 있는 자가 누구뇨 그는 선행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온유함으로 그 행함을 보일찌니라 (14) 그러나 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자랑하지 말라 진리를 거스려 거짓하지 말라 (15) 이러한 지혜는 위로부터 내려온 것이 아니요 세상적이요 정욕적이요 마귀적이니 (16)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17)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벽과 거짓이 없나니 (18) 화평케 하는 자들은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영적생활에서 영들을 분별하지 못하면 믿음에서 떠나게 되고 미혹하는
영들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고 더 나아가 양심의 화인 맞아 외식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게 접근하는 영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딤전4:1-5)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2)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3)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 (4) 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영분별의 은사는 말씀 안에 뿌리내린 속사람이 초자연적이면서도 초
의식적인 직관으로 분별하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영분별의 은사는 분명히 초자연적인 것이지만 이러한 분별력이 인간의 기능을 사용하여 나타나기에
초자연적이라고 말하기 보다는 초의식의 상태에서 되어지는 분별력이 라고 하는 것이 타당할 것입니다.
이 초 의식은 평소에 자연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말할 뿐인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누구나 감각기관을 통하지 않는 직관력이 있습니다.
이 직관의 기능은 사람의 영의 기능으로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독특한
분위기나 말이나 얼굴이나 자세 특히 눈 등에서 직관적으로 파악되어
그 사람이 슬픔의 영을 품고 있는 지, 분노의 영을 품고 있는지, 교만의 영을 품고 있는지,
거짓의 영을 품고 있는지 분별이 가는 것입니다.
영감은 직관의 기능을 통하여 주어지기 때문에 직감과 영감을 엄격하게 구별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고로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하여 전혀 인간의 기능과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초자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 만은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직관적인 능력이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모든 사람에게 영분별의
안목이 있는바 이를 훈련하면 그 영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존 웜버는 “능력전도”에서 “사람들이 회심할 시기를 직관적으로 감지할 수 있었던 나 자신의 능력이
그 전에는 단지 심리적인 통찰력으로 밖에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였지만,
이것이 지혜의 말씀 또는 지식의 말씀과 같은 영적 은사였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고 하였습니다.
영국의 성령 운동가인 도날드 지는 “성령의 은사들은 자연적인 인간의 재능과 선택에 초자연적인 어떤 것이 첨가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 직관력의 개발과 훈련이야 말로 영적인 능력의 민감한 반응을 높이고 이로 말미암아
성령의 나타남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고 이 훈련으로 말미암아 성려의 흐름을 위해
장애를 제거하거나 성령의 나타남을 민감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혼의 훈련이 무엇보다도 또 중요합니다.
영적세계에서 일어나는 결과로 나타나는 사람의 영적인 변화는 혼 즉 지정의에 변화를 주게 되어
기쁨을 주거나 평안을 주거나 육에 변화를 주어 육체적인 세계로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
능력이 나타나고 치유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가 영적세계에 일어나면 그 힘과 영향이 영과 혼의 전이 즉 교제가 일어나게 되어
우리 직관력이 이를 분별하게 됩니다.
전이 상태 그 영향력이 계속되는 상태를 기름부음(요1:20)이라고 하며,
영적의식의 단계에서 일어난 사건이나 변화를 혼의 직관력이 인식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이나 계시를 받아드리게 되거나 깨닫기도 하고 감동이 오기도 하며
힘을 얻어 충만하게도 됩니다.
이 기름부음의 결과로 나타나는 현상이 성령의 나타남입니다.
(고전2: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의 목적.
1(벧전4: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2(고전12:7)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의 종류.
은사의 주관자는 내가 아니고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성령의 나타남이 곧 은사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주에게서 주로 말미암고 주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롬11: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1.자연적 성품의 은사.
(롬12:6-8)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7)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8) 혹 권위 하는 자면 권위 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1)대언의 은사(prophecy)
(출4:14)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가라사대 레위 사람 네형 아론이 있지 아니하뇨 그의 말 잘함을 내가 아노라 그가 너 를 만나러 나오나니 그가 너를 볼 때에 마음에 기뻐할 것이라
2)섬기는 은사(service)
(행6:1-7)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4)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딤후1:16-18) 원컨대 주께서 오네시보로의 집에 긍휼을 베푸시옵소서 저가 나를 자주 유쾌케 하고 나의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17)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 만났느니라 (18) (원컨대 주께서 저로 하여금 그날에 주의 긍휼을 얻게 하여 주옵소서) 또 저가 에베소에서 얼마큼 나를 섬긴 것을 네가 잘 아느니라
※손님 섬기는 은사(hospitality)
(고전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행16:14-15) 두아디라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들었는데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청종하게 하신지라 (15) 저와 그 집이 다 세례를 받고 우리에게 청하여 가로되 만일 나를 주 믿는 자로 알거든 내 집에 들어와 유하라 하고 강권하여 있게 하니라
3)가르치는 일(teaching)
(행18:24-25)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 하는 유대인이 에베소에 이르니 이 사람은 학문이 많고 성경에 능한 자라 (25) 그가 일찍 주의 도를 배워 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요한의 세례만 알 따름이라
4)권위의 은사(exhortation)
(행4:36-37) 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 (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37)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5)구제의 은사(giving)
(고후8:1-5)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2)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3)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힘대로 할뿐 아니라 힘에 지나도록 자원하여 (4) 이 은혜와 성도 섬기는 일에 참여함에 대하여 우리에게 간절히 구하니 (5) 우리의 바라던 것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6)다스리는 은사(administration)
(고전12:28)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그 다음은 능력이요 그 다음은 병 고치는 은사와 서로 돕는 것과 다스리는 것과 각종 방언을 하는 것이라
7)긍휼의 은사(mercy)
(눅10:33-34)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34)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2.직분의 은사(엡4:11-12)
(엡4:11-12)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12)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1)사도(apostle)
2)선지자(prophet)
3)복음 전하는 자(evangelist)
4)목사(목자:pastor)
5)교사(teacher)
3.성령의 은사(고전12:8-10)
(고전12:8-10) 어떤이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이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10) 어떤이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이에게는 예언함을, 어떤이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이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이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1)지혜의 말씀의 은사(message of wisdom)
이 지혜의 말씀은 지혜를 언어를 통하여 발표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면 어떤 종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일까요?
어떤 종류의 지혜를 가리키는가는 알아보기 위하여 우리들은
신약 성경에서 사용된 지혜라는 말의 용법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이 지혜라는 말을
①꿈의 해석과 슬기로운 충고를 하는 일에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7:10).
②지혜는 신비스러운 숫자와 환상의 의미를 발견하는데 나타난 지성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계13:18,17:9)
③일을 잘 처리하는 기술을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행6:3).
④교회 밖에 있는 외인들을 잘 대하는 신중성을 지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골4:5) .
⑤기독교의 진리를 전하는데 사용된 분별력과 기술을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골1:28)
⑥경건하고 바른 생활을 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행위를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약1:5,3:13,17).
⑦그리스도를 성공적으로 옹호하는데 필요한 지식과 기술을 가리켜 지혜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눅21:15).
⑧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의무를 깨닫게 되면 그 하나님의 진리를 전할 능력과
성경을 해석하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마13:54,막6:2,행6:10).
⑨세례 요한과 예수께서 사람들에게 구원의 계획을 가르친 교훈을
지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11:19)
바울의 글에서 지혜라는 말의 뜻을 찾아보면
①전에는 숨겨져 있던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지식을 말합니다.
②그리스도의 속죄를 통하여 구원을 인간에게 주신다는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전1:30,골2:3).
③지혜의 모든 보화가 그리스도 안에 감춰 있습니다.(골2:3).
④하나님의 지혜는 그의 권고 속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롬11:33)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지혜의 말씀이란 지혜를 발표하여 나타낼 수 있는
초자연적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2)지식의 말씀의 은사(message of knowledge)
지식의 말씀이란 사실에 대하여 초자연적으로 영감 된 언어를 말합니다.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지식"이라는 말의 용법을 잘 연구해 보면 지식이란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 지식이란 말은 다음과 같은 지식을 말합니다.
즉 복음서에 나타나 있는 대로 하나님에 관한 지식입니다.(고후2:14).
특별히 바울은 이 지식을 가리켜 하나님께 속한 일들을 아는 지식이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고후10:5,롬11:33).
또 지식이란 지성과 이해를 의미합니다.(엡3:19).
기독교인의 믿음에 관한 지식을 뜻합니다. (롬15:14,고전1:5).
기독교에 대한 보다 깊고 보다 완전하고 보다 폭이 넓은 지식을 말합니다.
(고전12:8,13:28,14:6, 고후6:6,8:7,11:6)
기독교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높은 지식을 말하는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거짓 교사들은 이와 같은 것들을 자랑합니다.(딤전6:20).
올바른 생활 속에 나타난바와 같은 도덕적 지혜를 가리키는 수도 있는데 (벧후 1:5)
이는 다른 사람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벧전3:7).
하나님의 진리와 인간의 의무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 수도 있습니다(롬2:20,골2:3).
그러면 지혜와 지식은 어떻게 다른가요?
어떤 학자의 말에 의하면 지식은 하나님의 진리에 대한 통찰력을 말하는 것이요.
지혜란 기독교의 기본 원리에 입각하여 기독교인의 신앙생활을 잘 영위케 하는데
도움이 되는 기술을 말합니다.
데이어의 렉시콘 (Theyer's Lexicon)은 지식과 지혜를 한데 취급하고 있는데
지식은 지식 자체를 가리키는 것이고 지혜란 행위 속에 나타난 지식이라고 정의하고 있는 듯이 보입니다.
3)믿음의 은사(faith)
웨이모스 (Weymouty)씨는 그의 번역한 성경 가운데 여기에 믿음이라고 하는 말을
"특수한 믿음" (Special Faith) 이라고 번역하였습니다. 물론 그가 이렇게 번역한 것은
여기에 기록된 믿음과 구원의 믿음을 구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원의 믿음이란 이것 없이는 도저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가리킵니다. (히11:6)
구원의 믿음을 가리켜 선물(gift)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곳도 있습니다. (엡2:8).
그러나 이 성령 구절 속에서 의미하는 "선물"이라는 말은 행위" (works)에 대한
반대 개념으로 사용되었음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 12:9절에 사용된 믿음이란 말은 성령의 특수한 은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물이란 그러면 무엇일가?
도날드 지 (Donald Gee)씨는 이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 때때로 옛날의 신학자들은 믿음의 본질을 가리켜
'기적의 믿음'(Faith of Miracles) 이라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믿음은 하나님을 종들이 어떤 위기에 처해 있을 때에 아주 강한 능력으로 임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믿음은 보통 하나님을 믿는 일상적인 믿음으로부터 뛰어난 것으로 저들의 영혼 속에
하나님에 대한 확실성을 주어 모든 것을 극복하고 이길 수 있게 합니다.
아마 우리들이 주님께서 마가복음11:22절에서 말씀하신 믿음의 본질도 이와 같은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라." 예수께서 한 겨자씨만큼의 믿음이 있어도 산을 옮길 수 있다고 말씀하실 때에
그 믿음이란 이와 같은 특수한 본질의 믿음을 가리킨 것일 것입니다.
(마17:20). 하나님을 믿는 신앙을 조금 이라고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그는 어떤 이적이든지 베풀 수 있을 것입니다.
믿음의 은사의 역사에 대한 실례를 왕상 18:33-35 과 행 3:4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①구원의 믿음
(엡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②충성 의지하는 믿음(열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③은사적 믿음
(고전12:9) 다른이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이에게는 한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4)병 고치는 은사들(healing)
병 고치는 은사들
(복수형으로 사용된 것은 아마 여러 가지 병을 고치는 은사를 의미하는 것일 것입니다.)
기도를 통하여 병든 자에게 건강을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는 것을 뜻합니다.
이 병 고치는 은사는 표적의 은사로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음에
시선을 쏠리게 하는데 특별히 가치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행8:6,7, 28:8-10).
이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병이라도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병 고치는 은사를 행사하여 병자의
병을 고칠 경우에 우선 하나님께서 허락해야만 하고 다음으로 병든 사람의 태도와
영적 상태를 고려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람들의 불신앙으로 말미암아 그의 신유의 능력을 베푸시는 일에
제한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13:58).
병자는 병 고치는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에게만 절대적으로 의존할 것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모든 신자들은 병자를 위하여 기도할 자격이 있는 것입니다.(막16:18,약5:14).
그렇다면 질병은 영 혼 육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질병이라 할 때 그 질병은 무엇입니까?
질병의 상태는
①믿음이 약하여진 상태
(롬4:19)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②양심이 더러워진 상태
(고전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③죄 중에 있는 상태
(롬5:6)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히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④정신적인 천박성
(갈4:9) 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하려 하느냐
⑤물질적인 빈곤한 상태
(행20:35)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이것들이 영 혼 육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 상태입니다.
영어의 질병이란 dis(아니) ease(평안)으로서 평안을 잃어버린 상태를 의미합니다.
구약에서 건강이란 용어에 가장 적당한 말은 샬롬(평안)이라는 용어라는 것을 보면
질병은 단순한 육체의 질병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고
병든 심령은 병든 인격, 병든 가정, 병든 환경, 병든 사회를 만들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2.하나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구원하시고 속사람을 생명으로 강건케 하십니다.
치유의 의미인 SOZO 라는 헬라어는 구원이란 단어와 혼용됩니다.
구원이란 질병의 상태에서-
①구원되는 것이요.(마1:21,16:25,19:25,막13:20,눅7:50)
②온전하게 되는 것이요.(눅17:19)
③치료하는 것이요.( 막5:23,10:52,눅8:50,요11:12)
④구출되는 것이요.(마8:25,행27:20)
⑤평안의 상태를 보존하는 것입니다.(딤전2:15)
그러므로 치유는 단순한 육체의 질병을 고침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영 혼 육이 온전하고 흠 없게 되기를 바라는 구원의 사역이며,
하나님의 영이 사람들에게 돌입해온(롬8:11)것을 나타내는 외적인 표적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보이는 육체의 물리적 치유는 보이지 않는 영적 구원이
이루어지는 현상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 증거요, 구원의 능력이 나타난 표적이요
영생이 이루어진 상태입니다.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의 현상에 민감하십시오.
(눅13:1-9) 그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저희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고하니 (2)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음으로써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과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 실과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 (8) 대답하여 가로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하나님은 우리의 속사람의 마음에 말씀이 있고 생각에 그 말씀이 기록이 되어
말씀의 실제의 역사가 우리 삶속에 나타나 범사에 주님으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모든 것이 항상 있는 것도 아니고 또 그대로 멈추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변합니다.
발전하지 아니하면 퇴락하는 것입니다.
발전하여야지 퇴락하여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밭의 농부는 주인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눅13:8-9)
바로 이것입니다.
(막16:17-20)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18) 뱀을 집으며 무슨 독을 마실찌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하시더라 (19)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20)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쌔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 하시니라)
cf(시38:1-22) 여호와여 주의 노로 나를 책하지 마시고 분노로 나를 징계치 마소서 (2) 주의 살이 나를 찌르고 주의 손이 나를 심히 누르시나이다 (3) 주의 진노로 인하여 내 살에 성한 곳이 없사오며 나의 죄로 인하여 내 뼈에 평안함이 없나이다 (4) 내 죄악이 내 머리에 넘쳐서 무거운 짐 같으니 감당할 수 없나이다 (5) 내 상처가 썩어 악취가 나오니 나의 우매한 연고로소이다 (6) 내가 아프고 심히 구부러졌으며 종일토록 슬픈 중에 다니나이다 (7) 내 허리에 열기가 가득하고 내 살에 성한 곳이 없나이다 (8) 내가 피곤하고 심히 상하였으매 마음이 불안하여 신음하나이다 (9) 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10) 내 심장이 뛰고 내 기력이 쇠하여 내 눈의 빛도 나를 떠났나이다 (11) 나의 사랑하는 자와 나의 친구들이 나의 상처를 멀리하고 나의 친척들도 멀리 섰나이다 (12) 내 생명을 찾는 자가 올무를 놓고 나를 해하려는 자가 괴악한 일을 말하여 종일토록 궤계를 도모하오나 (13) 나는 귀먹은 자 같이 듣지 아니하고 벙어리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오니 (14) 나는 듣지 못하는 자 같아서 입에는 변박함이 없나이다 (15) 여호와여 내가 주를 바랐사오니 내 주 하나님이 내게 응락하시리이다 (16) 내가 말하기를 두렵건대 저희가 내게 대하여 기뻐하며 내가 실족할 때에 나를 향하여 망자존대할까 하였나이다 (17) 내가 넘어지게 되었고 나의 근심이 항상 내 앞에 있사오니 (18) 내 죄악을 고하고 내 죄를 슬퍼함이니이다 (19) 내 원수가 활발하며 강하고 무리하게 나를 미워하는 자가 무수하오며 (20) 또 악으로 선을 갚는 자들이 내가 선을 좇는 연고로 나를 대적하나이다 (21) 여호와여 나를 버리지 마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멀리하지 마소서 (22) 속히 나를 도우소서 주 나의 구원이시여
5)능력 행함의 은사(miracle)
이 능력 행함의 요지는 능력 (Power)에 있습니다.
(요14:12,행1:8 참조) 에베소에서 행하여진 특별한 기적은 은사가 나타낸 좋은 실례가 될 것입니다.
①모세와 능력 행함
②예수님과 능력 행함
③제자들과 능력 행함
④현대의 능력 행함
6)예언의 은사(대언:prophecy)-구약시대의 선지자(파수꾼의 역할을 함)
"일반적으로 말하면 예언이란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말씀을 뜻합니다.
성경의 예언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화상과 꿈을 통하여 받은 멧세지를 전했던 것입니다.
또는 예언이란 순간적인 자극을 받아 표현된 황홀하고 영감 된 언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형태의 예언의 실례를 성경에서 다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영감 된 황홀한 예언은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높이는 형식을 취할 수도 있고 또는
성도들에게 권고와 영감적 위안과 격려의 힘을 줄 수도 있습니다."
예언과 보통 설교와는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설교란 이미 계시된 말씀을 연구하여 만들어 내는데 반하여 예언은 즉흥적이요
영적인 영감의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언으로 설교나 교훈을 대치할 것이 아니라
영적 영감으로 설교나 교훈을 보충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예언의 은사를 소유하고 있는 사람을 "예언자"라고 합니다.
(행15:32,21:9,10,고전14:29 참조).
신약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의 은사의 목적은 고전 14:3 속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예언자는 신자들을 권면하고 덕을 세우고 안위하는 것입니다.
예언의 은사를 통하여 나타나는 영감은 성경의 영감과 동등한 지위에 둘 수는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들은 예언의 멧세지를 분별하라는 지시를 받고 있습니다. (고전14:29참조).
왜 예언의 멧세지를 시험해 보거나 또는 분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까?
그 한 가지 이유는 인간의 정신이 (렘23:16 겔13:23) 하나님의 예언의 멧세지와
혼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살전 5:19-20 속에 예언의 은사에 대하여 취급되어 있습니다.
보수적인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예언의 멧세지를 불신하는데 까지 이르러 (20절)
저들은 성령을 소멸 할 위험 속에 처해 있었습니다(19절).
그러나 바울은 저들에게 모든 예언의 멧세지를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라고 경고하였습니다. (21절)
그리고 불건전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또한 경고해 주었습니다.(22절)
예언이나 방언 통역은 일인칭으로 주어질 수 있습니까?
가령 예를 들면 "내 백성 너희들에게 말씀하시는 이는 나 여호와가 아니냐?"
이 질문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 그러냐 하면 어떤 일정한 멧세지의 내용을 보고 사람들은 그 멧세지를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점에 대하여 의심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영감에 대한 견해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은 기계적인가?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처럼 그저 기계적으로 사용하시는가?
또는 예언의 말씀은 다이나미컬 (dynamical)한 방법인가? 즉 하나님께서
인간의 영생을 초자연적으로 각성시켜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14:14 참조)
그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의 이성의 능력을 초월한 용어로 하나님의 멧세지를 전하게 하는 것인가?
만일 하나님께서 기계적 방법에 의하여 영감을 주셨다면 자연히 일인칭을 사용해야만 할 것이고,
다이나미컬한 방법을 사용하셨다면 멧세지는 삼인칭으로 주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그를 우러러 보고 힘을 얻게 하심이라" 등등.
체험이 풍부한 많은 전도자들은 예언의 말씀과 방언 통역은 삼인칭으로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눅1:67-69,고전14:14,15참조).
(고전14:3) 그러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①사람에게 말함
②덕을 세움
③권면
④안위
7)영들 분별의 은사(discerning of spirits)
우리들은 거짓된 영감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즉 거짓된 영감이란 인간 정신과 미혹케 하는 영들의 작용을 말합니다.
어떻게 인간이 참된 영감과 거짓된 영감을 구별할 수 있을까요?
영들 분멸하는 은사를 받은 사람은 예언자가 말하는 내용이 하나님의 성령에 의한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은사를 받은 사람은 모든 외형상의 현상을 관찰할 수 있으며
또한 영감의 참다운 본질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영들 분별의 은사는
교리적 면에서와 (요1서4:1-6)
실제적 면에서 (마7:15-23) 잘 검토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이와 같은 은사의 역사에 대한 실례를
요1:47-50
요3:1-3,
요2:25,
왕하5:20-26,
행5:3,
8:23,
16:16-18 속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성구들은 영들 분별의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영적 특징을 분별할 능력이 있다는 점을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영들 분별의 은사와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과는 구별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영들 분별의 은사와 타인의 결점을 찾아내려는 정신과는 엄격히 구별되어야 합니다.
(요일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①성령
②악령
③나의 영
8)방언의 은사(tongues)
방 언 ( 여러 가지 방언들)
" 방언의 은사는 결코 배워서 알 수 없는 언어로 초자연적으로 말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방언 통역의 초자연적 은사를 받은 사람들만이 이 방언의 내용을 알 수 있습니다.
"방언에도 두 가지 종류가 있는 듯이 보입니다.
즉 하나님께만 찬양하는 방언과 (고전14:2)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한 일정한 멧세지의 방언이 있습니다.(고전14:5).
은사 (Gift) 로서의 방언과 표적 (Sign)으로서의 방언을 구별해야 합니다.
표적으로서 방언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이요 (행2:4)
은사로서의 방언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고전12:30).
①다른 나라의 방언-통역이 필요 없는 방언:17개 언어 이상
(행2:4)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②방언기도
(고전14:2) 방언을 말하는 자는 사람에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나니 이는 알아 듣는 자가 없고 그 영으로 비밀을 말함이니라
③통역이 필요한 방언
(고전14:26-33)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9)방언 통역의 은사(interpreation)-대언의 역사
도날드 지 (Donald Gee) 씨는 방언 통역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 방언 통역의 은사의 목적은 방언하는 곳에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황홀하고
영감 된 언어인 방언을 해석하는데 있습니다.
이와 같은 방언하는 곳에 모인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상적인 언어로
방언을 통역함으로써 모든 사람들은 방언의 내용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방언 통역의 은사는 순전히 영적 작용인 것입니다.
방언이란 인간의 지성을 통하여 표현되는 언어라기보다 성령으로부터 유출되는 언어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방언을 통역하도록 영감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방언 통역도 영감적이요 즉흥적이요 황홀한 것입니다.
방언이란 결코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임으로 방언 통역도 역시
인간의 지성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방언과 방언 통역을 한데 합할 것 같으면 예언과 대등한 것이 된다는 점을 주시하십시오
.(고전 14:5 참조)
그러면 왜 예언만으로 만족할 수 없습니까?
방언이란 불신자들에게 하나의 표적이 되기 때문에 방언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고전14:22).
주: 롬12:6-8 과 고전 12:28 속에 열거되어 있는 여러 가지 직책도 "카리스마타"
(charismata)의 분류 속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은사의 영역이 넓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전14:26-33) 그런즉 형제들아 어찌할꼬 너희가 모일 때에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가르치는 말씀도 있으며 계시도 있으며 방언도 있으며 통역함도 있나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27) 만일 누가 방언으로 말하거든 두 사람이나 다불과 세 사람이 차서를 따라 하고 한 사람이 통역할 것이요 (28) 만일 통역하는 자가 없거든 교회에서는 잠잠하고 자기와 및 하나님께 말할 것이요 (29) 예언하는 자는 둘이나 셋이나 말하고 다른 이들은 분변할 것이요 (30) 만일 곁에 앉은 다른이에게 계시가 있거든 먼저 하던 자는 잠잠할찌니라 (31) 너희는 다 모든 사람으로 배우게 하고 모든 사람으로 권면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씩 하나씩 예언할 수 있느니라 (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33)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사가 나타남에도 성도가 지켜야할 영적 규율이 있습니다.
나무나 집이나 사람을 벼락 쳐서 파괴시키는 번갯불과 발전소에서 발전되어
각 가정에 공급되어 잘 이용되고 있는 전기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입니다.
작용하는 면에 있어서 양자는 상이한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2장에서 바울은 교회가 유익하게 이용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의 자원을 나타내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14장에서 그는 이 은사를 교회를 파괴하는데 이용되지 않고 도리어
교회에 덕을 세우는데 이용할 수 있도록 이 은사의 능력을 자제하는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자제하는 일에 있어서 교훈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4장을 자세히 읽어 볼 것 같으면 성령의 나타나심에 대한 지식이
결핍됨으로써 어떤 모임은 수라장으로 화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라장으로 화했던 집회를 잘 제어할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4장에는 성령의 나타남에 대산 자제를 위한 다음과 같은 원리가 제시 되어 있습니다.
(a) 조화의 가치 (5절 - 19절)
(고전14:5-19) 나는 너희가 다 방언 말하기를 원하나 특별히 예언하기를 원하노라 방언을 말하는 자가 만일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통역하지 아니하면 예언하는 자만 못하니라 (6) 그런즉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서 방언을 말하고 계시나 지식이나 예언이나 가르치는 것이나 말하지 아니하면 너희에게 무엇이 유익하리요 (7) 혹 저나 거문고와 같이 생명 없는 것이 소리를 낼 때에 그 음의 분별을 내지 아니하면 저 부는 것인지 거문고 타는 것인지 어찌 알게 되리요 (8) 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요 (9) 이와 같이 너희도 혀로서 알아 듣기 쉬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그 말하는 것을 어찌 알리요 이는 허공에다 말하는 것이라 (10) 세상에 소리의 종류가 이같이 많되 뜻 없는 소리는 없나니 (11)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야만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야만이 되리니 (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13)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할지니 (14)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히지 못하리라 (15) 그러면 어떻게 할꼬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16) 그렇지 아니하면 네가 영으로 축복할 때에 무식한 처지에 있는 자가 네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지 못하고 네 감사에 어찌 아멘 하리요 (17) 너는 감사를 잘하였으나 그러나 다른 사람은 덕 세움을 받지 못하리라 (18) 내가 너희 모든 사람보다 방언을 더 말하므로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9) 그러나 교회에서 네가 남을 가르치기 위하여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일만 마디 방언으로 말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고린도 교인들은 방언의 은사를 행사하는데 있어서 균형을 잃고 있었습니다.
아마 방언의 은사에 극적인 요소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저들에게 방언 통역과 예언의 필요성을 상기시켰던 것입니다.
방언 통역을 통하여 방언으로 말하고 있는 내용을 사람들에게 알려 줄 필요성이
있었습니다.
(b) 덕 세움
은사의 목적은 불신자를 개종케 하여 구원하며 신자들의 믿음을 격려하여 교회
의 덕을 세우는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말한 것처럼 만일 외부 사람이
교회에 들어와 통역 없이 방언으로 말하는 것을 들으면 방언하는 사람들을
미쳤다고 결론을 내렸을 것입니다 (12,23)
(고전14:12)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14:23) 그러므로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무식한 자들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아니하겠느냐
(c) 지 혜 (20절)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즉 다시 말하면 "너희들의 상식을 활용
하하"는 뜻입니다.
(고전14:20) 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 장성한 사람이 되라
(d) 자 제 (32절)
(고전14:32)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자제하라는데 반발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침묵을 지킬 수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들에게 임하면 우리들은 말해 버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와 같은 항의에 대하여 바울은 이렇게 대답 하였습니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 즉
다시 말하면 방언의 은사를 갖고 있는 사람도 자신의 방언을 자제하여 필요할
때면 하나님께만 방언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는 뜻입니다.
(e) 질 서 (40절)
(고전14:40)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이 우주의 온갖 아름다움을 창조 하
신 위대한 설계자이신 성령께서 무질서한 일을 하라고 영감을 줄 리가 없습니다.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실 때에 그 감화 감동하심을 받아 성령께서 복종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교회에 덕을 세우지 못할 일은 삼가 할 것입니다.
(f) 가르치기 쉬움
(고전14:36-37)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난 것이냐 또는 너희에게만 임한 것이냐 (37) 만일 누구든지 자기를 선지자나 혹 신령한 자로 생각하거든 내가 너희에게 편지한 것이 주의 명령인줄 알라
36절과 37절을 볼 것 같으면 어떤 고린도 교인들은 저들의 지도자들의 비판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고린도 전서 14장을 볼 것 같으면 자제해야 할 은사의 능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린도 전서 14장은 성령의 나타남에 대한 체험을 갖고 있지 못한
교회에게는 무의미한 것입니다.
고린도 교인들이 영적 은사를 행사함에 있어서 궤도를 떠났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저들은 이탈할 궤도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현대 비평가들과 같이 행했더라면 그는 궤도로 돌아가도록
현명하게 지도하는 대신에 영영 궤도로부터 떠나버리게 하였을 것입니다.
2세기와 3세기경에 교회가 어떤 무절제한 방종에 대하여 반발심을 일으켰을 때에
저들은 극단적인 반대 방향으로 흘려 성령의 역사하실 여지를 허용치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하여 교회의 열심은 식어지게 되었고 성령의 나타나심은 일반적으로
중단 상태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초대 교회의 역사를 볼 것 같으면 그때에 벌써
조직을 강화하고 확고한 신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이와 같이 교회의 조직과 신조를 강화하는 일은 이단을 막아내는데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조직과 방해하는데 이르렀고 더 나가서는 기독교를
영적 생명이 약동하는 종교로부터 하나의 정통 비 정통을 따지는 교권의 종교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제1세기에는 성령은 그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널리 알려졌었습니다.
그러나 2세기 이후로 교회는 그의 통치력으로 교회의 통치력에 맞지 않는
성령의 현상을 모두 악령(evil-Spirits)으로 규정지어 버렸습니다.
오늘날 현대에 있어서도 성령의 교리와 역사를 알지 못하는 결과로 말미암아 많은
종교 지도자들이 성령을 무시해 버리는 경향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물줄기는 온갖 방해와 냉담과 형식주의를 뚫고 유유히 흘러 내려와
오늘날 다시 부흥의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십니다.
우리들은 나타나심(manifestations)과 반작용(reac-tions)을 구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예를 들면 전구를 통하여 나타난 빛은 전기의 "나타남"입니다.
전기가 빛으로 나타나는 것은 전기의 본질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전류가 흐르는 전선에 감전되어 귀가 터질 듯한 소리를 질렀다고 하면
그 소리는 결코 전기의 나타남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왜 그러냐 하면 전기가 소리로 나타나는 것은 전기의 본질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전된 사람이 지른 소리를 전력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연히 반작용이란 그 사람의 성격과 기질의 조건에 의하여 결정되는 것입니다.
교양이 높고 참을성이 있는 사람은 크게 소리는 지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 법칙을 영적 능력에 적용하여 봅시다.
고전 12:7-10 속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의 역사는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불리어집니다.
그러나 보통 성령의 나타나심이라고 불리어지는 많은 행위는 참으로 성령의 감동하심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와 같은 행동 중에 소리를 지르는 것과 손을 드는 것과
그밖에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지식을 갖게 됨으로써 성령의 역사를 인식하고 존중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에 역사에 대하여 비판하는 비평가들은 어떤 사람의 행동이 품위가 없기 때문에
그는 성령의 영감을 받은 것이 아니라고 그릇된 결론을 내림으로써 성령의
이와 같은 특성을 무시해 버리기 쉬운 것입니다.
이와 같은 비평가들은 전기에 감전된 사람의 흉한 모양을 보고
"전기의 작용이란 저런 것이 아닌데"라고 소리를 지르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성령의 직접적인 충격은 연약한 인간의 육체에 너무나 큰 자극을 주기 때문에
조용하고 침착하게 행동을 하지 못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성령의 특성을 알 수 있는 지식을 갖게 되면 자연히 성령의
역사에 반응을 일으켜 언제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도록 격려할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조가 옅은 사람의 무절제를 비평하는 일은 마치 지금 걸음마를 겨우 배우고 있는
어린애가 넘어졌다고 비평하는 일과 꼭 같이 부당한 노릇입니다.
그러나 고린도 전서 14장에 의하여 판단해 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성령의 역사에 대하여 지성적이고 교회에 덕을 세우며 자제하는 모양으로 반응을 보여 주기를 원하고 계시다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너희도 신령한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고전14:12).
어떻게 하여야 강력한 성령의 나타남인 은사가 충만하고 말씀이 실제로
일하는 현장을 누리고 살까요?
1.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해야 합니다.
(롬8:6-7)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다.“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생각한다는 말은 영으로 기도하는 영안의 상태에서
기름부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생각이니 영으로 기도함으로서 영의 생각을 따라
생각을 이어갈 때 영은 깊은 은혜의 단계로 진입할 것입니다.
이러할 때 성령의 조명을 느낍니다.
실로 기도의 줄을 잡고 성령 안에 있음은 인간의 이성이나 육성이 죽을 때 이며
잡념이나 생각이 없어진 상태이며 이는 장시간의 기도훈련을 통하여 가능한 것입니다.
2.하나님의 마음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기록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실제로 일하는 현장은 기도하는 자로 인하여 일하십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근신하는 마음과 평안의 마음을 따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따라 행동하게 된다면 큰 능력을 유지하게 될 것이며 성령을 소멸치 않고
늘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딤후3:16-1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62:6-7)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숫군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너희 여호와로 기억하시게 하는 자들아 너희는 쉬지 말며 (7)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
(딤후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성령은 어떠할 때 소멸됩니까?
소멸이란 곧 내버려 두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앞에 가장 불쌍한 인생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내버려 두는 자 입니다.(롬1:28)
특히 조심하여 행동합시다.
①성령을 거역하고 훼방하면 소멸됩니다.
내세까지 용서받지 못합니다.
(마12:31-32)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32)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②교만하면 성령은 소멸됩니다.
(삼상16:14) 여호와의 신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의 부리신 악신이 그를 번뇌케 한지라
③물질을 탐하면 성령은 소멸됩니다.
(딤전6:7-10)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9)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10)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④방종하여 육체의 일을 쫓을 때 성령은 소멸됩니다.
(갈5:16-18)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⑤성령을 시험할 때 성령은 소멸됩니다.
(행5:1-9)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그 아내 삽비라로 더불어 소유를 팔아 (2) 그 값에서 얼마를 감추매 그 아내도 알더라 얼마를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 (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4) 땅이 그대로 있을 때에는 네 땅이 아니며 판 후에도 네 임의로 할 수가 없더냐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에 두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 한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5) 아나니아가 이 말을 듣고 엎드러져 혼이 떠나니 이 일을 듣는 사람이 다 크게 두려워하더라 (6) 젊은 사람들이 일어나 시신을 싸서 메고 나가 장사하니라 (7) 세 시간쯤 지나 그 아내가 그 생긴 일을 알지 못하고 들어 오니 (8) 베드로가 가로되 그 땅 판 값이 이것 뿐이냐 내게 말하라 하니 가로되 예 이뿐이로라 (9)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어찌 함께 꾀하여 주의 영을 시험하려 하느냐 보라 네 남편을 장사하고 오는 사람들의 발이 문앞에 이르렀으니 또 너를 메어 내가리라 한대
(신6:16)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3.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정하는 것입니다.
내주하시는 성령은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십니다.
그런고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결단하고 결정하는 것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기도를 통하여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기 위하여 무시로 기도합시다.
(롬8:27)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무시로 기도하면 영과 영은 교통할 수 있습니다.
영안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무시로 기도하는 체험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입니다.
4.하나님의 권위에 따라 말하는 것입니다.
권위는 혼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것이 권위입니다.
영력 있는 말에 권위가 있는 것이며 이는 전도의 역사를 일어나게 하는 흡인력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이 권위는 권세가 있어, 귀신을 명령대로 움직이게 하고
영권 역사가 강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가냘픈 여자의 속에서도 영력 있는 말을 권위를 나타내지만 굵은 남자의
목소리일지라도 기도로 다듬어지지 않으면 권세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5.하나님의 사역을 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깊은 기도와 성령의 흐름 속에서 환상과 투시의 은사를 받게 되면 영적세계에서 일어나는
사실을 지각하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깊은 기도와 영적인 교제 속에서 이는 가능한 것이며 하나님의 주시는 은사입니다.
투시를 통하여 질병을 진단하거나 환상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은 이러한 능력을 기도를 통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특히 유의하여야할 것은 사탄이 주는 환상이 있는바 우리는 이 단계를 넘어서야할 것입니다.
육적인 욕망을 통하여 보려는 의지는 사탄의 환상으로 나를 끌고 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사역은 영이 민감한 상태이기에 잘 분별하여 행하여야 하며 성서적이며
교회에 유익한 점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것입니다.
6.하나님의 음성을 마음으로 듣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만남이요 영적교류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말씀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인도하심을 따를 수 있습니다.
(롬8:13-14)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그런데 사탄의 음성은 귀로 들리고 성령님의 음성은 마음으로 들립니다.
성령님의 음성의 음성을 듣기 위하여 사정하고 매달려야 하며 그곳에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입니다.
7.하나님의 능력의 흐름을 지각합니다.
영적인 능력의 흐름은 지각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방언은 입술을 통하여 흐르는 능력을 혀가 지각하는 것이요,
영감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빛이나 느낌을 통하여 지각하기도 하고,
치유의 능력은 손이나 몸을 통하여 흐르는 것을 지각할 수 있으며,
능력의 흐름을 통하여 우리는 성령의 나타남이 역사하는 것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이같은 능력의 흐름은 기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실로 하나님은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주신 분이기에
그 어떤 은사도 분명히 아끼지 않으시고 주셔서 그의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우리를 통하여
나타내시고자 하실 것이기에 기도하면 영성은 개발되고 영적인 능력은 배가되어질 것입니다.
(마11:12) 세례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결론
1)은사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로서 그리스도의 몸을 섬기라고 주신 선물입니다.
2)성령의 충만함 기름 부으심이 있을 때 은사가 나타납니다.
3)은사가 있는 자는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겸손하게 쓰임 받아야 합니다.
(벧전4:10-11)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11)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느니라 아멘
4)역사가 나타날 때 오직 성 삼위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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